아연중독자(亞鉛中毒者)
최유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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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7년 12월 모진 비바람이 부는 어두운 밤.
영국 Y주(州) R이라고 하는 어촌(漁村) 회회교(回回敎) 사원의 P 교부는 방금 참회식을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 갑자기 현관의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었다. 그 소리가 너무 요란스럽기 때문에 P교부는 하인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손수 문을 열러 나갔다. 그러나 그가 문안에까지 가기 전 키가 후리후리 큰 젊은 사람 하나가 밖으로부터 문을 함부로 밀치고 들어왔다. 그는 문을 콰당 닫고는 문에 등을 대고 허덕거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피가 붉은 피가 질질 흘러내렸다.
“저놈을 못 들어오게 하세요. 지금 방금 쫓아옵니다. 저놈이 나를 죽이려고…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여기 들어오기만 하면 나를 죽이고 말 것입니다.”
청년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P교부는 물론 놀랐다. 그는 이 동리의 젊은 사람의 얼굴은 대개 안다. 그러나 이렇게 약질로 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나이는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고 차림차림으로 보아 가난한 노동자 같았다. 옷은 진흙투성이가 되고 모자는 쓰지 아니하였다.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흥분이 되어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목에서 식식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마 먼 곳에서 달음질을 쳐온 것이 분명하다.
“자네가 누군가?”하고 P교부가 물었다.
“나는요.” 하고 말을 하려다가 그는 귀를 기울였다.
“옵니다, 와요. 문 밖에까지 왔습니다. 못 들어오게 하세요. 못 들어오게.”
P교부는 아마 미친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하였으나 어쨌건 문을 잠갔다.
“자 인젠 괜찮으이… 아무도 못 들어올 테니.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듣자구.”
교부는 그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안기를 권하였다.
“자 앉게.”
“겉문을 닫아 주십시오.” 하고는 그 창으로 해서 정원을 내어다 보았다.
“이 방에 겉문은 없어.”
이때에 탕 하고 피스톨 소리가 들리고 유리창이 산산 부서지면서 총알이 왱하고 교부의 귀를 스치어 지나갔다.
“악” 소리를 치고 청년은 가슴을 뜯으면서 교부의 발밑에 쓰러졌다. 가슴에 탄환을 맞은 것이다.
교부는 유리창을 열고 뜰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캄캄 어둔 속에서 비와 바람이 사납게 날릴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한참이나 어두운 속을 흘겨보다가 방으로 들어와 왼편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젊은이의 옆에 섰다.
이때에 피스톨 소리를 듣고 하인이 방으로 달려왔다. 교부는 그를 식혀 순사와 의사를 불러오게 하였다.
먼저 의사가 왔다.
수술을 하여 가슴에 박힌 탄환을 뽑았다. 상처는 비교적 얕아서 어쩌면 생명에는 별 일이 없으리라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 다음 순사가 와서 조사를 하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혼수상태에 마저 말을 물을 수가 없다.
그 이튿날 경찰서에서 형사가 와서 다시 조사를 하였으나 역시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하였다. 다만 그 젊은이가 어제 4시 차로 그곳 정거장에 내렸고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밖에는 더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P교부는 명탐정 섹스턴 블레이크에게 전보를 쳤다.
 
2.
 

블레이크 탐정은 P교부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탐정의 눈에 먼저 띤 것은 침대 아래로 축 늘어진 젊은이의 팔이었다.
그 팔의 근육은 불룩하게 내밀어 있는데 탐정이 시험적으로 팔을 번쩍 쳐드니까 손바닥이 팔과 거의 직각으로 측 늘어졌다. 탐정은 무엇을 짐작함인지
“흐-ㅁ”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그는 누워있는 젊은이의 입을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와 잇몸 사이에 붓으로 그은 듯이 푸른 줄이 죽죽 뻗어 있었다.
“이 푸른 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알 수 있나요. 대관절 그게 무엇입니까.”
“이 푸른 줄은!”
하고 탐정은 입을 열었다.
“이 젊은이가 퍽 오래전부터 연독(鉛毒)에 걸려 있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팔목의 관절 말입니다. 이 관절에 힘이 없어 보이고 또 수직으로 측 늘어지는 것은 이 사람이 오래 동안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연에 중독이 된 것을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대개 연독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간판장이, 연세공(鉛細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젊은이도 그러한 종류의 일을 하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손이 깨끗한 것을 보면 간판장이는 아닙니다. 또 손가락마다 불에 덴 형적이 없는 것을 보면 납장이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는 확실히 연세공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정체를 알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혹시 참고 될 일인지 모르겠으나…”
하고 P교부가 입을 열었다.
“바른 편 팔에 이상한 상처가 셋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난 수요일에 발견하였을 때는 극히 적어서 얼른 알아보기도 어렵더니 오늘 보니까 아조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구면요.”
P교부가 말을 마치며 그 젊은이의 오른편 팔의 상처를 찾아 탐정에게 보였다.
“녜. 그것은 종두입니다. 즉 우두를 맞은 지 약 나흘쯤 된 현상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생각건대 이 젊은이는 셋필드 동리에서 온 연세공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그리 단정적으로 말씀하십니까?”
“이 젊은이는 확실히 나흘 전에 우두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국 북부에는 우두를 맞히는 곳이 업고 유독 셋필드 동리에서 천연두가 유행되어 전 시민에게 우두를 맞힌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여기에 부첨해서 말해 둘 것은 이 사건은 1887년 12월 셋필드 동리에 천연두가 극성할 때에 생겨진 일이다.
“그리고 이 젊은이가 연세공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하였습니다만 그 셋필드 동리에는 연세공 일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 거개가 연독에 걸려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더구나 그 동리에서 왔다는 것이 확실한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결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이 다음 차로 그 동리를 찾아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우선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그 명부를 조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 이러저러하게 생긴 연세공 일하는 젊은이에게 우두를 놓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서 그런 기억을 하는 의사만 찾으면 이 사건의 비밀은 반분 해득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탐정 블레이크는 셋필드 동리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3 .
 

“녜!”
열일곱 번째에 만난 의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말한 그러한 젊은이에게 내가 월요일 날 우두를 놓았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아서 윌슨’이요, 주거는 포드랜드 거리 5번지입니다.”
… 15분 후. 탐정은 마차를 잡아타고 포드랜드 거리로 달리였다.
그리하여 집을 찾고 마침 병으로 신음하는 그의 아버지를 면회하였다.
“나는 섹스턴 블레이크라는 사람인데 당신 아드님에 대해서 좀 조사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 아드님은 지난 수요일에 이곳을 떠나 록스빅 촌에를 갔지요.”
그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하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탐정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죄다 하였다.
그 아버지는 분노의 눈을 번뜩이면서
“그러면 내 아들 아서를 쏜 놈은 줄리언입니다. 필시 도중에서 내 아들이 노먼을 만나러 간다니까 갑작이 제 악행이 드러날까 봐 아서를 죽이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고 줄리언이 그 앞에 있으면 당장에 때려라도 죽일 듯한 기세였다.
“하여간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녜. 이야기하고말고요. 내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죄다 말씀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 나는 록스빅 관(館)의 심부름꾼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관에 있던 사람으로는 부인을 잃은 노먼 경(卿)과 단 하나의 아들 레이프와 경의 생질 되는 줄리언이었습니다. 줄리언은 원래 양친이 죄다 구몰하야 의지할 데가 없는 고로 경이 데려다 둔 것입니다. 아들 레이프는 마음이 착하고 성행이 또 좋은 젊은이였으나 생질 되는 줄리언은 원래 성질부터 나쁜 사람이라 공연히 레이프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오던 차 어느 날 밤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맞닥뜨렸습니다. 마침 그 집에 도적이 들어 경의 금고를 깨뜨리는 것을 레이프가 발견하였습니다. 급하게 된 도적은 달려드는 레이프의 머리를 때려 혼도케 하고 들창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줄리언과 내가 그 방으로 뛰어갔을 때 레이프는 금고 옆에 기절해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줄리언은 나에게 눈을 끔쩍 하면서 가까이 부르더니 “만약 노먼 경에게 레이프가 금고를 깨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발견하였다고 말만 해주면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꾀었습니다 ― 대단히 부끄러운 말씀이나 나는 그때 돈에 눈이 어두워 줄리언과 약속하고 노먼 경에게 거짓말 보고를 하였습니다. ― 정신을 잃었던 레이프가 그렇지 않음을 변명하였으나 경은 내 말을 신용하여 자기의 아들 레이프를 축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경은 전에 써 두었든 유언장을 꺼내어 아들 레이프에게 상속하려던 재산을 전부 줄리언에게 주어 달라고 고쳐 써 놓았습니다 ― 나는 줄리언에게 약속대로 500파운드를 받고 몇 달 지나 그 집을 하직한 후 고향인 셋필드 동리에 돌아와 술집을 시작하였습니다. ― 그리고 1861년에 장가를 들어 그 이듬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것이 곧 아서였습니다. 그러자 아서가 열여덟 살 먹던 해 불행히도 아내가 그만 병으로 죽고 또 장사도 시원치가 안어 술집을 그만 둔 후 집을 옮겨 연세공일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자식놈도 연독에 걸리고 또 나도 그 중독으로 폐병이 들어 지금까지 앓는 중 의사의 최후선고를 받고 보니 예전 줄리언과의 한 일이 양심이 찔려 견딜 수가 없는 고로 늦었으나마 노먼 경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아서를 불러 자세한 이야기를 토파하고 록스빅 촌에 가서 노먼 경을 초청해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이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비가 없어서 스카보로 역까지의 표밖에 더 사지 못하고 거기서부터는 그 촌까지 걸어가게 되였든 것입니다 ― 그래 나는 늦어도 어제 밤까지는 돌아오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뜻밖에 당신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면―”
블레이크 탐정은 입을 떼었다.
“-당신의 말씀에 의하면 아서는 수요일 밤 록스빅 촌을 향하는 도중에 줄리언을 만나 무심히 줄리언에게 가는 향방과 용무를 말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죄상이 탄로될 것을 두려워 도망하는 아서를 그 사원까지 쫓아가 쏘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도 그에 동감입니다. 그러나 하여간 지금 다시 그 촌으로 가든 일을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탐정은 즉시 다음 기차로 셋필드 동리를 떠나 저녁 여섯 시 전에 록스빅 촌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여섯시 반이나 되어 노먼 경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마침 경은 3주간 전에 어디를 가서 월요일에나 돌아온다는 것, 줄리언 역시 지난 수요일에 집을 나간 채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줄리언은 어디 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P교부를 향하야 입을 열었다.
“―아서의 생사가 판명되기까지는 뛰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즉 아서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죽어버렸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다시 뛰쳐나올지 모르지만 자기의 비밀이 드러난 것을 알면 두 번 다시 얼굴을 비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블레이크 탐정의 말은 적중되고 말았다. 줄리언의 행방은 며칠이 지나도 전연 불명이었다. 월요일에 노먼경이 돌아왔다. 그리하여 블레이크와 면회하였다. 그리고 화요일에 아서는 겨우 본정신이 나서 그의 입으로 진술한 바는 그 아버지의 말과 꼭 같았다.
줄리언은 얼마가 지나도 역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서의 아버지는 기어코 속병으로 죽고 아서는 노먼 경으로부터 주급(週給) 3파운드를 영구히 받기로 하여 행복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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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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