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 울프(Nero Wolfe)

 

 

어떤 작품의 주인공, 그 중에서도 탐정이라고 하면 보통 날렵하거나 거친 외모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셜록 홈즈 이래 워낙 이런 스타일의 인물들이 많다 보니 이른바 미스터리의 황금기(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명석한 두뇌뿐만 아니라 성격 및 외모도 보통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어찌 보면 별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도 뉴욕 웨스트 35번가의 고풍스러운 브라운 스톤 저택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네로 울프는 무척 독특한 존재다.

 

고대 로마의 폭군과 늑대를 방불케 하는 이름의 그에게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엄청난 체격. 서양인 체격으로는 보통인 6피트(약 180㎝)의 키에 체중이 무려 300파운드(약 135㎏, 작품에 따라 250파운드에서 350파운드까지 오락가락하는데, 작가의 실수라는 설도 있다)에 육박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대단한 위압감을 주었다. 성격도 별나 이름처럼 독재적인 면도 있으며, 여자를 싫어해 독신으로 지냈다. 난초를 망치는 파리들을 세상의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그의 동반자는 맥주와 난초?

 


그는 거대한 체격 탓인지 움직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의뢰인이 찾아와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맞이할 정도여서 문자 그대로 안락의자형 탐정. 때문에 사건의 주변 조사를 하는 일에는 조수인 아치 굿윈이 나서서 움직였다. 체격이나 성격 등 많은 점에서 대조적인 청년 굿윈은 고용주인 울프를 항상 존경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리력만은 인정하기 때문에 그를 도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울프의 천재성은 사무실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도 조수인 아치가 조사한 내용만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평상시 그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요리사가 가져다 주는 아침 식사를 한 후 9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실로 올라가 두 시간 동안 난초를 살펴본다. 11시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우편물과 보고서들을 읽은 후 1시부터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업무를 보다가 4시부터 6시까지 온실에서 난초를 돌본 후 저녁 8시에 저녁식사. 그리고는 침실로 들어가 잠들기 전까지 책을 본다.

 

 

영화에 등장한 네로 울프(왼쪽 두번째)와 아치 굿윈(맨 왼쪽). 에드워드 아놀드와 라이오넬 스탠더가 각각 연기했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가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는 비결은 미식(美食) 취미에 있었다. 매일 맥주 7ℓ정도를 마시며,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 그의 음식에 대한 정열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서, 사건수사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주 싫어하지만 맛있는 요리가 있는 곳이라면 먼길도 사양하지 않는다. 국내에도 소개된 ‘요리장이 너무 많다’에서 그러한 울프의 성격을 잘 볼 수 있다. 세계의 유명 요리사들이 모인 대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울프는 사건을 해결하는 대가로 돈 대신 ‘소시스 미뉴이’라는 비장의 요리법을 전수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의 또 다른 취미는 난초 가꾸기로, 옥상에 있는 온실에서 하루 네 시간씩 1만여 종의 난초를 감상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면회 사절이다. 이 두 가지 취미를 위해 일류 요리사와 난초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을 정도. 조수인 아치는 자신보다 요리사의 보수가 더 많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조수, 요리사, 난초 전문가 등 일급의 고용인과 호화로운 음식, 맥주, 그리고 난초 재배를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건을 의뢰 받으면 엄청난 거액의 보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워낙 일하는 것을 싫어해 은행에 잔고가 충분하면 사건을 맡지 않을 때도 있다. 자존심 역시 무척 강해서 좀처럼 경찰과도 협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니카라과에서 발행한 네로 울프 우표


작가인 렉스 스타우트는 네로 울프가 셜록 홈즈의 아들이라는 설을 은근히 흘리기도 했는데, 일부러 두 사람의 이름에 들어간 모음을 똑같게 만들었다(셜록 홈즈 Sherlock Holmes와 네로 울프 Nero Wolfe 의 모음들은 e-o, o-e로 이어져 있다). 날씬한 체격의 홈스와 비대한 체격의 울프가 도무지 혈연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홈즈의 전기작가인 윌리엄 베어링 굴드는 교묘한 가설을 만들어 놓아 많은 연구가들과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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