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템플러(Simon Temlar)- 더 세인트(The Saint)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웬만한 지역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름만큼 많지만, 원문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번역 미스터리의 왕국인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일반 독자들은 번역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주인공의 이름은커녕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책이 아닌 다른 매체 덕분에 운 좋게도 국내에 팬을 얻는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세인트’라는 인물은 장편이 하나도 번역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행운아다.

 

 

 

세인트, 즉 성자(聖者)라는 독특한 별명을 가진 사이먼 템플러(Simon Templar)라는 영국 출신의 이 사나이에게 세인트라는 별명이 붙게 된 이유는 머리 위에 후광(後光)을 지닌 사람의 선화(線畵)를 범죄 현장에 그려 놓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그러나 가장 최근에 제작된 발 킬머 주연의 영화에는 흥미롭게도 어린 시절의 어두운 과거가 설명되어 있다).

 

그의 신상명세는 ‘뉴욕의 세인트’(The Saint in New York․1935)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당시의 나이는 31세(그렇지만 해당 작품의 배경이 정확히 1935년이라는 설명은 없다)이며, 신장 6피트 2인치(약 185㎝), 체중 175파운드(약 80㎏)의 단단한 체격을 지녔다. 푸른색 눈동자, 머리 색깔은 검정색. 왼쪽 어깨에 총에 관통상을 입은 흉터가 있으며, 오른팔에도 8인치(약 20㎝) 정도의 흉터가 있다. 또한 언제나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용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만화로 등장한 세인트

 

외견상의 특징은 이렇고, 성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대담 무쌍하다는 표현이 가능한 인물로 달변가에 두뇌회전도 빠르다. 언더그라운드적 인물이지만 고급 호텔이나 화려한 별장에 거주하는 사치스러운 면도 있다. 위험 인물들과 마주칠 일이 많으므로 권총과 단검을 늘 휴대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게다가 그를 노리는 인물들이 수두룩하지만 절대 숨어 다니지 않으며, 반드시 필요할 때만 간단히 변장한다(기껏해야 옷을 갈아입거나 콧수염을 다는 수준). 그의 신분은 경찰도 아니며 공인된 사립탐정도 아니다. ‘현대의 로빈 훗’이라는 또 다른 별명에 걸맞게 그는 원래 범죄자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스코틀랜드 야드에 협력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한 이후 범죄에서 손을 떼고 악당들과 맞서게 된다. 그는 범죄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범죄자들의 심리를 쉽게 파악하는 것은 물론 예언자라고 불릴 정도로 위험을 빨리 파악하며, 독특하게도 다분히 범죄적인 수법으로 그들과 대적한다. 모든 위험을 취미활동처럼 즐기며, 모아 놓은 재산이 많은 편이라 행동범위도 넓어 미국에서 유럽 대륙을 비롯한 전 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세인트 시리즈는 여러 차례 영화와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는데,1960년대 후반에 방영된 첫 번째 TV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던 로저 무어는 대단한 인기를 얻어 제임스 본드, 즉 007 역으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세인트 역을 맡은 로저 무어

 

 

반면 영화는 TV가 대중화되기 전 인기를 끌어 여러 차례 제작되었지만, 최근 제작된 영화는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해 짧은 시일 안에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928년 ‘호랑이와의 만남’(Meet the Tiger)에 처음 등장한 지 어언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인트라는 인물의 매력은 원작자와는 상관없이 이미지를 쇄신해 가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변변한 전자제품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태어났을 세인트가 1997년 제작된 영화에서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인트는 소설 속 이미지처럼,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질 무렵이면 새 영화든 만화든 또다시 나타날 것임에 틀림없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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