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스페이드(Sam Spade)

 

샌프란시스코의 사립탐정인 샘 스페이드는 최초의 하드보일드 탐정도 아니며, 원작자 대쉴 해미트의 첫 번째 시리즈 탐정도 아니지만 하드보일드 탐정의 계보를 논할 때는 항상 첫머리에 오른다.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잘 알려진 덕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많지 않은 해미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용모는 데뷔작인 ‘몰타의 매’ 서두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새뮤얼 스페이드의 길고 각진 턱은 끝이 브이(V)자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그 위에는 좀더 유연하지만 역시 V자 모양의 입이 있다. 코 끝을 따라 콧구멍 선이 깊숙이 패였으므로 그것도 역시 작지만 V자 모양이다. 노란빛 도는 회색 눈만이 수평이지만, 매부리코 위에 새겨진 한 쌍의 골진 주름에서 바깥쪽으로 뻗어나간 숱 많은 눈썹 역시 V자를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마의 바랜 듯한 금빛 연갈색 머리털 끝선이 관자놀이까지 이어져 있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얼굴은 유쾌한 금발의 악마처럼 보였다…. 키는 6피트(약 183㎝),두 어깨가 봉긋할 정도로 살이 쪄서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원뿔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샘 스페이드를 연기한 험프리 보가트(영화 '몰타의 매'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구석구석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어 ‘나의 거리’라고 즐겨 말하는 그는 열 살 정도 연상인 마일즈 아처, 여비서 에피 페라인과 함께 ‘스페이드 & 아처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있었으나, 아처가 살해당하면서 사무실 이름을 ‘샘 스페이드 탐정 사무소’로 변경한다.


스페이드는 과거 수수께끼 풀이형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천재’ 탐정들처럼 앉은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강인한 집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천재’ 탐정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의 가치관에 있다. 그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도덕군자가 아니다. 여성 의뢰인이나 동료의 아내와도 관계를 가질 정도로 호색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 일을 망치거나 협박에 굴하지도 않으며, 금전에 절대로 매수 당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념은 도덕적이라기보다 이른바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는’ 탐정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데, 자신의 의지를 결사적으로 관철한다는 이러한 정신은 해미트의 후배 작가들이 창조한 탐정들에게도 꾸준히 이어지게 된다.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작품은 장편 ‘몰타의 매’와 단편 세 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몰타의 매’는 놀랍게도 1931년부터 1941년까지 10년 사이에 세 차례나 제작되었는데, 존 휴스턴 감독이 제작한 1941년 작품이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 샘 스페이드 역은 험프리 보가트가 맡았는데, 얼굴 생김새나 체격 등이 원작에 묘사된 용모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연기를 보여서 고전영화 팬들에게는 ‘샘 스페이드=험프리 보가트’의 이미지가 심어져 있다.

 

 

샘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단편집 'A Man Called Spade'


해미트에 따르면, 샘 스페이드에게는 특정한 모델이 없다고 한다. 그는 함께 생활하던 여러 명의 탐정들에게 약간씩 장점과 이미지를 따와서 스페이드를 창조했다. 즉 샘 스페이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理想的) 탐정인 셈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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