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말로우(Philip Marlowe)

 

 1959년 미스터리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사망하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챈들러는 사립탐정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그 사립탐정이란 바로 로스앤젤레스의 독신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라는 인물이다. 챈들러의 표현에 의하면 말로우는 “외롭고, 가난하며, 위험하며, 인정 있는 사나이”이며, 팬들은 그를 “현대의 기사(騎士)”로 추앙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던 <빅 슬립>에서 그의 나이는 33세였으며, 6피트(약 183cm), 190파운드(약 85kg)의 작지 않은 체격이지만 우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약간 마른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외모만으로는 그다지 튀는 면이 없는 중년 사나이지만 여자들은 종종 그에게서 야수(野獸)같은 분위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중절모에 트렌치 코트, 그리고 줄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은 사실상 하드보일드 장르의 탐정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되었다. 수입이 아주 시원찮은 것은 아니지만 방 두 개 짜리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캐비넷, 모자걸이와 달력뿐이며 여비서나 전화 자동응답기조차 두지 않고 있다. 담배 이외에도 술을 즐기는 편으로 사무실 책상의 ‘깊숙한 서랍’안에는 자신과 때로는 의뢰인에게 대접할 술병과 잔이 항상 들어 있다. 그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TV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파워스 부스)

 

  캘리포니아 출생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 보험회사 조사원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국의 태거트 와일드 검사 휘하의 경찰로 근무했지만 부당한 명령을 참지 못해 사표를 던진 후 할리우드  대로의 빌딩에 사립탐정 사무소를 열었다. 그의 특징이라고 하면 신랄할 정도의 날카로운 독설(毒舌)과 유머 감각이다. 코앞에 권총을 들이대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그것도 상대의 심경이 뒤틀릴 정도로 말을 쏘아댈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다. “인생은 비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비정함만으로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필립 말로우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대사. 

 

영화 '기나긴 이별'에서의 필립 말로우(엘리엇 굴드가 주연을 맡음)

 

  흔히 상상하는 거친 탐정의 모습과는 달리 말로우는 대단히 금욕적이다. 한가한 시간에는 위스키 잔을 한 손에 들고 체스의 묘수풀이를 즐기며, 브라우닝, T.S.엘리엇, 셰익스피어, 플로베르의 문구를 종종 인용할 정도로 고전을 즐겨 읽는다(말로우라는 이름이 16세기 영국 극작가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독신 남성 말로우는 종종 여성들로부터 유혹을 받지만, ‘직업에 대한 긍지’를 지키기 위해 의뢰인과는 절대로 자신이 정해 놓은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태도에는 훗날 변화가 생긴다. <플레이백>(챈들러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에서는 바로 전 작품 <기나긴 이별>에 등장했던 부호(富豪)의 딸 린다 롤링과 결혼 이야기가 나올 만큼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며, 미완성 유작인 <푸들 스프링>에서는 두 사람의 신혼생활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빅 슬립' 표지

  필립 말로우가 등장하는 장편은 ‘공식적’으로 일곱 편이다. 그러나 후배 하드보일드 작가인 로버트 B. 파커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푸들 스프링>을 완성시킨 후 내친 김에 <빅 슬립>의 속편 격인 <Perchance to Dream>을 썼는데, 팬과 평단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말로우가 등장하는 작품은 더 이상 나올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원작자인 챈들러나 말로우의 팬들이 원하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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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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