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레 경감 (Chief Inspector Maigret)

 

영어 문화권의 미스터리 문학사에 있어서 1930년대는 장편소설의 황금기라고도 불렸으며 수많은 천재적 탐정들이 활개를 치던 시대였다. 당시 등장한 주인공들은 터무니없이 머리가 좋은 것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보통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면을 보여주려고 애썼기 때문에 대부분 기인(奇人)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 영어권과는 좀 다른 스타일이지만 나름대로 미스터리가 인기 있던 프랑스에서 독특한 주인공이 등장했다. 1931년 <수상한 라트비아인 Pietr-le-Letton>의 주역으로 등장한 파리 경찰국 소속의 형사 매그레가 바로 그 인물인데, 그의 독특함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재 탐정들과는 달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에 있다. 날카로운 두뇌회전, 현학적인 말 뇌까리기 따위는 그에게서 볼 수 없다. 

 

1931년의 <수상한 라트비아인> 광고

 

  매그레라는 이름에는 ‘말라깽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름과는 달리 신장 180cm, 체중 1백kg의 우람한 체격을 지니고 있다. 짙은 색의 모자와 트렌치 코트는 잘 어울리지만 굵은 골격 덕택에 새 바지를 걸쳐도 금방 모양이 흐트러진다. 파이프 담배를 즐겨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으며,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대여섯개(많을 때는 열다섯개 이상)의 파이프가 놓여 있다. 파이프를 깨무는 습관이 있어서 그의 파이프에는 이빨자국이 많이 나 있는 편이다. 한편 술도 즐기는데, 와인을 비롯해 맥주, 브랜디까지 가리지 않는다. 취미는 영화감상으로, 미국 서부영화와 코메디 영화를 즐겨 본다.


  1887년 프랑스의 시골에서 태어난 매그레는 청소년 시절 의사를 지망한 의학도였으나, 부친의 사망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파리로 떠나 경찰이 된다. 말단 순경에서 4년만에 서장 비서가 되고, 그 사이 친구의 소개로 만난 루이즈와 결혼한다. 이후 매그레는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한다. 파리 경찰국 소속의 형사로 배속된 다음 20대 후반에 부경감, 30대 후반에 경감으로 승진하고 40대 중반 파리 경찰청장의 자리에 오른다.

 

 

매그레 경감의 동상

   결코 천재적 탐정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는 그의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그 자신이 범죄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될 무렵이면 그는 동기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되고, 범인을 찾아내게 된다. 수많은 범죄자들과 만나면서 쌓은 인간에 대한 관찰력은 그의 소중한 재산이다. 자신을 범죄자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며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한 다음, 물적증거보다는 심리전술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다 보니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본국인 프랑스는 물론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되었고, 찰스 로튼, 루퍼트 데이비스 등 여러 연기파 배우들이 메그레 역을 맡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명배우 장 가방이 매그레의 이미지를 잘 살린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그레 경감 역을 맡았던 장 가방

 

  1백여 편이 넘는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덕택에 그의 사생활은 다른 어떤 주인공들보다도 자세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신비감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일부 평론가는 미스터리적 요소로 따져볼 때 단순히 범죄를 소재만으로 사용했을 뿐 수준 미달에 가깝다는 혹평도 하고 있다.하지만 미스터리 작품 중 매그레 시리즈만큼 인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작품도 흔치 않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가치가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추리닝4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