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손다이크 박사 (Dr. John Thorndyke)

 

오귀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 같은 인물들은 대단한 추리력을 갖춘 명탐정들이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흔히 말하는 ‘심증(心證)’만으로 범인을 잡아낸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은 물증, 즉 물적 증거(物的證據)가 없으면 아무리 유력한 혐의자에게라도 유죄 판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수상한 물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물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정확한 감식을 거쳐야만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추리소설 사상 최초의 전문 법의학자(法醫學者)라고 할 수 있는 손다이크 박사는 과학수사의 새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물론 과거의 수사방식을 꼭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인 탐정들이 아무래도 단순한 방법 즉 기껏해야 돋보기를 이용하거나 줄자로 길이를 재는 데 불과했던 반면 그는 정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거를 확보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1907년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로 독자에게 첫선을 보인 그는 체계적인 과학지식을 구사해 지문의 위조사건을 밝혀내면서 일약 홈즈의 라이벌 위치에까지 떠올랐다.

 

<손다이크 박사의 사건> 표지

그의 본명은 존 이블린 손다이크. 법의학자이자 변호사라는 직함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방면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1870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세인트 마거리트 병원 부속 의학교에서 병리학과 법의학을 전공했다. 해부학,고고학,식물학,이집트학,안과학 등에 조예가 깊으며 그것이 그의 수사능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당시 등장한 탐정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의 사생활은 가족 관계 이외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결혼 경험이 없는 독신자이며, 런던의 템플 지구 5A 킹스 벤치 거리의 자택에서 조수이며 그의 연대기를 엮은 크리스토퍼 저비스, 연구실의 조수 겸 사진사이며 대단히 뛰어난 기술자인 나사니엘 폴턴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범죄수사를 위해 온갖 설비를 갖춘 개인 연구실을 가지고 있으며,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휴대용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녹색 가방을 항상 들고 다닌다. 그 가방 안에는 각종 약품과 소형 현미경을 비롯해 자신의 연구실을 축소해 놓은 듯한 갖가지 실험장비가 들어 있다. 사건을 만나면 즉시 현장의 증거품을 크든 작든 모두 수집하여 조사․분석해 사건을 해결한다.

 

손다이크 박사는 추리나 분석의 재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탐정 중에서 뛰어난 편에 속한다. 키가 크며 호리호리하지만 강인한 체격이며, 그리스인 같은 콧날에 고전적으로 균형 잡힌 얼굴을 지녔다. 게다가 남다른 시각(視覺)과 청각능력에 뛰어난 손재주까지 가졌으니 가히 초인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손다이크 박사(왼쪽)

 

하지만 그는 발견한 증거물들을 모아 하나씩 맞춰 가며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길 뿐, 과학자답게 상식을 벗어나는 데가 없는 온화하고 소박한 성품이므로 일반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증거 제일주의라는 현실적이며 현대적인 수사 방식을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커다란 공적을 세운 인물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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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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