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윔지 경(Lord Peter Wimsey)

 

미스터리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들 중 직업 경찰이나 사립탐정이 아닌 아마추어 탐정들의 직업은 무척 다양하다. 그런데 외국, 특히 영국 작품 속에서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직업’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한 인물들이 가끔 등장하는데, ‘귀족’이라는 신분을 지닌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피터 데스 브리든 윔지’라는 거창한 본명을 지녔지만 피터경(卿)이라는 호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890년 15대 덴버 공작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이튼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1차대전에 참전, 정보장교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런던 피카딜리 110A플랫의 집에서 부관이었던 번터를 집사로 삼아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낸다.

 

왼쪽부터 피터 윔지 경( 로버트 몽고메리)과 번터(시모어 힉스), 그리고 해리엣 베인(콘스턴스 커밍스). 영화 'Busman;s Holiday'에서.

 

6피트(약 180㎝)의 신장, 소탈해 보이고 유머도 깃들인 인상이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이며 식성은 까다로운 편이다. 게다가 식후에는 반드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의 집사 번터가 커피를 아주 잘 끓이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외눈 안경과 지팡이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단테를 좋아하고, 바흐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등 예술가적인 감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고서 수집, 크리켓 등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다. 범죄 연구에 취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 범죄학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외모와 행동으로 볼 때 전형적인 영국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답게 윔지 집안의 문장은 눈에 띄는데, 검은 바탕의 방패에 쥐 3마리가 달리는 그림이 있고, 그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도약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갑옷을 입은 두 기사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기사가 발을 디디고 있는 받침대에는 ‘나, 윔지를 지키리(I Hold By My Whimsy)’라는 글이 쓰여 있다.

 

윔지 경 가문의 문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그였지만, 1921년 벌어진 유명한 보석 도난사건의 검찰측 증인으로 나서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후 ‘귀족 탐정’으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사람들은 ‘상류층 구역의 셜록 홈즈’라고도 부르게 된다.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는 그는 타인의 간섭을 적게 받는 귀족이라는 특권을 살려 마치 취미처럼 탐정 역할을 자처해 나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친형 제럴드 윔지경이 살인 혐의자로 몰리자 날카로운 두뇌회전과 왕성한 행동력으로 누명을 벗겨주어 가문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되는 해리엣 베인과의 만남도 살인사건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맹독(猛毒)’(1930)에서 애인 살해 혐의로 구속된 여류 추리소설가 해리엣 베인을 처음 만난 피터경은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총명하고 성격도 좋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피터경은 해리엣의 혐의를 벗기고 여러 차례 구혼을 거듭한 끝에 결국 결혼하게 된다.

  

'시체는 누구?' 표지에 나온 윔지 경

 

한편 첫 사건에서 친하게 된 런던 경찰국의 찰스 파커 주임경감은 피터경의 여동생 메어리와 결혼하게 돼 그의 집안은 범죄로 얽혀 있는(?) 셈이 됐다.

비록 괴상한 사건이 자주 따라다니지만 피터경과 해리엣의 결혼생활은 무척 행복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3명의 아들을 거느린 화목한 집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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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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