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감사해야만 할 분 
 
사실 어머니에게 있어서 형사의 일은 놀이처럼 쉬운 일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알아내는 따위의 일은 어머니에게 있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 형사 데이빗
<어머니는 잘 아신다 (Mom Knows Best)>(1952) 제임스 야페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은 다른 한편으로 가정의 달이라고도 합니다. 아마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정과 관계된 기념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 등의 기념일이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데 비해 부모를 기리는 날의 유래는 의외로 짧습니다. 어머니날의 발상지는 미국으로, 필라델피아의 한 소녀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지에 카네이션 꽃다발을 갖다놓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 점점 풍습이 될 정도로 널리 퍼진 후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 정식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어머니날이 제정되었으며, 아버지날이 따로 없었던 터라 1973년부터는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좀 늦었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님께

그럼 추리소설에서 어머니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자주 등장하진 않더라도 어머니는 어머니죠.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으로는 제임스 야페가 발표한 <브롱스의 엄마(Mom in Bronx)>시리즈를 우선 꼽을 수 있겠습니다. 뉴욕 시경 살인과의 형사인 데이빗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골치 아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럼 사건의 전모를 들은 어머니는 몇 가지 뜻 모를 질문을 던진 후 아들의 무능력에 대해 한탄하면서 순식간에 진상을 파악해내고 맙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인텔리’ 며느리 셜리는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지만 어머니는 점잖게 면박을 주면서 그에 대한 답을 내어 놓곤 하죠.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엄마’는 세상 사람들의 심리는 모두 똑같다는 견해 아래 이웃과 친척, 주변 가게 점원 등을 예로 들면서 범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엄마' 시리즈 단편집

미국의 여성작가 크레이그 라이스의 <스위트홈 살인사건(Home Sweet Homicide)>(1944)도 어머니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데이나, 에이프릴, 아치라고 하는 열네 살, 열두 살, 열 살짜리 삼남매입니다. 이들의 어머니 매리언은 신문기자였던 남편이 일찍 죽은 후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 어렵게 아이들을 키워 왔습니다. 어느날 이웃집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이들 삼남매는 어린 마음에 추리작가인 어머니가 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에 뛰어드는데, 마침 인간성 좋은 미남인 빌 스미스 형사가 사건을 맡자 삼남매는 한술 더 떠 스미스 형사를 어머니 매리언과 맺어줄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경찰의 수사와 아이들의 참견이 뒤얽히면서 사건은 점입가경이 되어 가는데, 과연 삼남매의 희망대로 일이 이루어질까요?

1946년 1월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크레이그 라이스

하지만 작가 크레이그 라이스의 생애는 따뜻하고 유쾌한 이 작품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일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라이스의 부모는 육아에 관심이 없어서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친척에게 맡겨졌습니다. 게다가 이 친척 역시 방랑벽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스는 정규교육을 받지도 못하며 성장했습니다. 성인이 된 그녀는 1920년대부터 문필 활동을 시작해 작가로서는 성공했습니다만  세 차례나 결혼에 실패했으며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1957년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48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사인(死因)은 불명이며 자살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스위트홈 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는 사랑 넘치는 가족의 모습은 그녀가 끝내 이룰 수 없었던 꿈이었을까요.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 기억나는 ‘어머니’로는 스웨덴 작가 리사 마르클룬드의 <폭파범>에 등장하는 여성 기자 안니카 뱅트슨이 있군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취재에 열심인 그녀는 신문사에서 자신을 무시하려는 동료(선배도 있고 부하도 있습니다)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 돌아오지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피곤해 죽을 지경이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가사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아서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곤 합니다.

리자 마르클룬드

친어머니는 아니라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고 거침없는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도 감히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오직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부모를 일찍 잃은 그를 키워준 유모 빅트와르입니다. 뤼팽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빅트와르는 가끔 그의 부탁으로 사건 속에 뛰어들어 정보를 수집해 줄 때도 있으며, 뤼팽의 딸인 주느비에브까지 키우고 보살펴 주면서 뤼팽에게 바른 길로 돌아서라고 항상 종용하지만 그것만큼은 뤼팽에게 먹혀들지 않아서 안타깝게 여기지요.

20세기에 등장한 탐정 중 살벌한 이력을 가진 사람 중 하나는 버크(Burke)로만 불리는 뉴욕의 무허가 탐정일 것입니다. 미국 작가 앤드류 복스(Andrew Vachss)가 창조한 그는 부모를 모르는 고아로 ‘버크’가 이름인지 성인지도 불분명하며, 전과 27범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자가 우글거리는 뉴욕 뒷골목을 무대로 살아가는 버크의 동료나 친구도 다양한데, 그 중 중국요리점을 경영하는 ‘마마 웡’이라는 여인은 버크의 어머니 같은 노릇을 합니다. 버크가 음식을 먹으러 가면 기어코 좋은 음식을 차려 먹이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한편으로는 버크의 은행 역할을 해 주기도 합니다.

앤드류 복스

지독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뤼팽이나 버크가 그래도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도 어머니와 비슷한 따뜻한 역할을 해 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신인 여성 탐정 역시 모성본능만큼은 누구에게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라 패러츠키의 여성 탐정 V.I.워쇼스키는 원래 변호사였으나, 역시 변호사였던 남편과 이혼하고 사립탐정이 되었지요. 그녀는 “두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평온한 중산층 생활을 누리는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인만큼 언젠가는 하드보일드 '어머니' 사립탐정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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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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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5.1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월에 아주 좋은 주제입니다. 저는 역시 제임스 야페의 '어머니' 시리즈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칭기즈칸의 어머니처럼 엄한 편이 좋은지, 아니면 미드 <캐슬>에 나오는 캐슬의 어머니처럼 우스울 정도로 철부지인 어머니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어디에서나 어머니 캐릭터는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