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알기 어려운 비밀

세상은 거짓말장이로 가득 차 있다.
- 에버라드 도미니
<The Great Impersonation>(1920) 에드워드 필립스 오펜하임

 

추리작가들은 죽음, 수수께끼, 음모, 시기, 질투…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지만, 그들의 평상시 생활은 여느 사람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 돈이 많아진다면 생활수준은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또 요즘은 독자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해외의 스타급 작가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매스컴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가의 신간 안내나 인터뷰 기사가 문화면에 실리는 것 못지않게 작가가 사기를 당했다든가 표절로 제소됐다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도 실리곤 하죠. 게다가 오래 전에 사망한 작가들마저도 요즘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십 년, 길게는 1백 년 전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마저 연구가들이 파헤쳐 전기(傳記)로 발간하기 때문인데요, 한마디로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례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등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걸작 시리즈를 남긴 엘러리 퀸이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B.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 다른 필명인 바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드루리 레인 시리즈 4부작도 발표했지요. 퀸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컬럼비아 대학이 강연 요청을 하자, 둘 중 누가 갈 것인지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해서 결국은 리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퀸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던 터라 리는 고심 끝에 검정 마스크를 쓰고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퀸이 대중 앞에 나타나야 할 때면 항상 리가 검정 마스크를 쓴 채로 나섰으며, 바너비 로스 역으로는 더네이가 검정 마스크를 썼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강연회에 나타나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터라 1936년 <퍼블리셔스 위클리>를 통해 이들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 퀸과 로스가 같은 작가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거의 밝혀졌지요, 그러나 그들의 작업 분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이나 친지들을 통해 테마와 플롯,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틀은 더네이가, 그 기본에 살을 붙이고 세밀한 점을 보완하는 일은 리가 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할 뿐입니다.

복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수많은 추리소설보다 훨씬 기묘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을 발표한 지 얼마 후인 1926년 12월, 당시 35세의 크리스티는 저녁식사 후 드라이브를 나간다고 말한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그녀의 소지품이 남아있던 차가 호수 근처의 풀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은 자살했거나 혹은 사고를 당했을 것 같은 정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흘 동안 전문가와 경찰, 보도진은 다양한 가설을 세웠으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근처를 철저한 수색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크리스티는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실종 다음날인 토요일부터 묵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외도 등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가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기억상실증을 일으킨 것으로 설명되었지만, 그 ‘실종’은 마치 계획이라도 짠 듯이 물 흐르듯 차질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외도한 남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진짜 기억상실증’ 등 가지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했지만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 사건의 기억을 잊고 싶어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실종된 애거서 크리스티 수색에 나선 사람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기발한 작품 세계와 맞먹을 만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의 죽음 역시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음주와 아편 흡입, 또 조울증 등으로 혼란한 정신상태였던 포우는 40세였던 1849년 9월 리치먼드에서 열차에 탄 뒤 닷새 후인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사흘 만에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병원 임상기록을 검토한 결과 포우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의해 광견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임상기록에 따르면 포우는 입원 당일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가 다음날 호전되었고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는데 이 증세는 광견병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확정된 진실이 아닌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불분명한 만큼 더욱 자세한 분석 방법이 나오게 되면 혹시 다른 이유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포가 죽음을 맞이하던 시기를 다룬 작품이 무척 많은데, 번역된 작품으로는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 등이 있습니다.

포의 묘비

포가 죽은 지 약 150여년이 지난 1996년 12월, 미국의 하드보일드 추리작가 유진 이지가 시카고 시내의 빌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채 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밧줄은 빌딩 14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금고에 연결되어 있었고, 금고 옆에는 권총 한 자루, 그의 주머니에는 브래스 너클(brass knuckle:격투할 때 손에 끼우는 쇳조각)과 현금 약 5백 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사무실 문은 잠겨 있어서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 일단 자살로 판단했습니다. 한동안 슬럼프였던 그가 새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설명에서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전행위라는 추론까지 나왔지만, 하지만 이지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10대의 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며 이미 생활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리를 잡은 작가였던 만큼 책을 더 팔기 위해 자살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신작 집필을 위해 취재해 왔던 민간무장그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가족들을 안전한 호텔로 옮기고 방탄복과 권총을 지닌 채 홀로 사무실에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살로 보기에도 미심쩍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유진 이지 Eugene Izzi(1953-1996)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이지는 운동으로 단련된 180cm, 100kg의 거구인데, 대낮에 사무실에서 격투한 흔적도 없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워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시카고 경찰은 밀실살인을 자주 다룬 작가 에드워드 호크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지만 뾰족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고 하네요.

어쩌면 추리소설가들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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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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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6.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의 죽음을 모델로 한 작품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2. 시무언 2011.06.27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게 코난 도일이 크리스티의 실종때 수사를 도왔다는군요. 그외의 사건도 해결한적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