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해머(Mike Hammer)

 

 

“나는 오늘밤 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다. 난 그놈들을 쏠 때마다 즐거웠고,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놈들은 빨갱이들이다... 그 더러운 빨갱이 놈들은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다.” (<고독한 밤 One Lonely Night> 중에서)

 

  이런 말을 태연스럽게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살인청부업자도 아니고 사이코 살인마도 아니다. 미키 스필레인의 장편소설 <심판은 내가 한다 I, the Jury>(1947)에서 첫선을 보인 터프가이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가 한 말이다.

 

'심판은 내가 한다' 표지

 

그는 반공(反共)과 폭력, 그리고 섹스가 막 팔리던 시절인 1950년대의 전형적인 주인공으로, 사실 그에 대해서는 ‘터프가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드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45구경 군용 콜트 권총을 애용하는 그에게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다. 악당에 대해서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 정의의 사도이자 애국자를 자처하며 ‘내가 법이다’라고 외치는 그런 시대착오적인 폭력성향 탓에 그가 사건에 손을 대고 수사를 진행해 나가면 시체가 쌓이고 만다. 예를 들자면 자신과 사랑에 빠졌던 여인을 쏘는 데에도 전혀 주저가 없을 정도. 또한 맹렬한 반공주의자로 ‘빨갱이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주변에서 비난을 받고 신문은 그를 살인마로 취급한다. 유일하게 뉴욕 시경 살인과의 팻 체임버스 경감만이 그를 덮어주려고 한다. 해머는 냉철함이나 기지와는 거리가 멀다. 머리를 쓴다기보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실마리를 따라가면서 일단 부딪치고 보는 것이 그의 수사 방법이다.

 

TV 시리즈에서 마이크 해머를 연기한 스테이시 키치

 

  그가 법의 무력함을 느꼈던 곳은 어처구니없게도 전쟁터. 2차 대전 때 2년 동안 밀림지대에서 일본군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뉴욕 3번가 빌딩에 탐정 사무소를 차렸다. 약 183cm의 키에 90kg 정도의 체격으로 미국인치고는 유달리 큰 덩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호랑이 같은 눈에 강인한 인상을 가져 상대에게 위압감을 준다. 자칭 ‘추남’이라고 하지만 왠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그 역시 여자를 무척 밝혀 여성 용의자와도 서슴없이 관계를 갖곤 한다.  


  단순하고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 해머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상대가 단 하나 있는데, 바로 그의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비서 웰더. 이른바 1백만달러의 각선미를 가진 글래머 미녀인 웰더는 생김새와는 달리 권총도 잘 쏘고 웬만한 남자들은 때려눕힐 정도. 그녀는 해머에게 연정을 품고 언젠가는 결혼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해머는 그녀에게 도무지 접근을 하지 않고 기사도적인 애정을 바치고 있다. 1962년 <걸 헌터 Girl Hunter>에서 10년만에 등장한 해머는 사무실도 없어지고 웰더와도 헤어져 거의 주정뱅이가 된 상태였는데, 그녀가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심기일전하고는 그녀를 구하러 나선다.

 

마이크 해머 TV 시리즈 사운드트랙

  시대가 변해가면서 해머에게도 역시 많은 변화가 생긴다. 1947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럭키 스트라이크 줄담배를 피워대고 위스키와 버본을 두주불사로 마셔댔던 그가 1989년의 <킬링 맨 The Killing Man>에서는 중년의 사나이가 되어 다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담배의 유해론을 역설하고 위스키 대신 진저에일을 마시는 등 건강 지향적으로 변신한다. 또한 그의 상대 역시 악당과 ‘빨갱이’에서 CIA, FBI, 국무성, 마피아 조직원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여전하다. 1996년 <블랙 앨리 The Black Alley>에서는 나이가 들어 은퇴할 지경이지만 터프가이로서의 성격은 전혀 변함이 없다. 

  해머 시리즈는 세계 1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적어도 1억 8천만 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며, 시리즈 중 일곱 작품은 지난 50년 간의 역대 베스트셀러 리스트 상위권에 들어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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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윔지 경(Lord Peter Wimsey)

 

미스터리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들 중 직업 경찰이나 사립탐정이 아닌 아마추어 탐정들의 직업은 무척 다양하다. 그런데 외국, 특히 영국 작품 속에서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직업’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한 인물들이 가끔 등장하는데, ‘귀족’이라는 신분을 지닌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피터 데스 브리든 윔지’라는 거창한 본명을 지녔지만 피터경(卿)이라는 호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890년 15대 덴버 공작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이튼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1차대전에 참전, 정보장교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런던 피카딜리 110A플랫의 집에서 부관이었던 번터를 집사로 삼아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낸다.

 

왼쪽부터 피터 윔지 경( 로버트 몽고메리)과 번터(시모어 힉스), 그리고 해리엣 베인(콘스턴스 커밍스). 영화 'Busman;s Holiday'에서.

 

6피트(약 180㎝)의 신장, 소탈해 보이고 유머도 깃들인 인상이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이며 식성은 까다로운 편이다. 게다가 식후에는 반드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의 집사 번터가 커피를 아주 잘 끓이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외눈 안경과 지팡이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단테를 좋아하고, 바흐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등 예술가적인 감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고서 수집, 크리켓 등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다. 범죄 연구에 취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 범죄학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외모와 행동으로 볼 때 전형적인 영국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답게 윔지 집안의 문장은 눈에 띄는데, 검은 바탕의 방패에 쥐 3마리가 달리는 그림이 있고, 그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도약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갑옷을 입은 두 기사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기사가 발을 디디고 있는 받침대에는 ‘나, 윔지를 지키리(I Hold By My Whimsy)’라는 글이 쓰여 있다.

 

윔지 경 가문의 문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그였지만, 1921년 벌어진 유명한 보석 도난사건의 검찰측 증인으로 나서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후 ‘귀족 탐정’으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사람들은 ‘상류층 구역의 셜록 홈즈’라고도 부르게 된다.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는 그는 타인의 간섭을 적게 받는 귀족이라는 특권을 살려 마치 취미처럼 탐정 역할을 자처해 나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친형 제럴드 윔지경이 살인 혐의자로 몰리자 날카로운 두뇌회전과 왕성한 행동력으로 누명을 벗겨주어 가문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되는 해리엣 베인과의 만남도 살인사건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맹독(猛毒)’(1930)에서 애인 살해 혐의로 구속된 여류 추리소설가 해리엣 베인을 처음 만난 피터경은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총명하고 성격도 좋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피터경은 해리엣의 혐의를 벗기고 여러 차례 구혼을 거듭한 끝에 결국 결혼하게 된다.

  

'시체는 누구?' 표지에 나온 윔지 경

 

한편 첫 사건에서 친하게 된 런던 경찰국의 찰스 파커 주임경감은 피터경의 여동생 메어리와 결혼하게 돼 그의 집안은 범죄로 얽혀 있는(?) 셈이 됐다.

비록 괴상한 사건이 자주 따라다니지만 피터경과 해리엣의 결혼생활은 무척 행복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3명의 아들을 거느린 화목한 집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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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퀼  푸아로(Hercule Poirot)

 

19세기에 추리소설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후 전 세계의 작품에 등장한 탐정들의 숫자는 좀 과장을 보태 한강 백사장의 모래만큼이나 많지만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로 범위를 좁히면 대략 백 단위로 줄어들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명성과 인기를 동시에 얻은 주인공을 꼽으라면 아마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마치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한국에서 인기 얻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궤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되려면 우선 번역되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푸아로를 연기한 앨버트 피니


이런 점에서 에르퀼 푸아로라는 인물은 무척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에서 선보인 포와로는 무척 독특한 외모(160㎝를 간신히 넘는 작은 키, 대머리에 가까운 달걀형 머리, 잘 손질한 콧수염과 흥분하면 고양이 같이 빛나는 녹색 눈동자)의 소유자로, 그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번역되었고, 덕택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들을 가지게 되었다.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표지

 

벨기에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푸아로는 브뤼셀 경찰에 재직하고 있던 1904년께 스코틀랜드 야드의 재프 경감과 합동수사를 펼치며 국제 위조화폐사건을 해결했고,1909년에는 프랑스 경찰과 함께 국제적 범죄자를 체포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경찰에서 퇴직한 직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의 모국 벨기에는 전쟁에 휩싸였고 푸아로는 친구들과 함께 영국으로 피난하며, 이때 머무르게 된 에섹스주 스타일즈 저택의 노부인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훗날 그 노부인이 살해되자 푸아로는 예전 벨기에에서 알게 된 영국인 친구 아더 헤이스팅즈 대위의 도움을 얻어 사건을 해결하면서 영국에서 탐정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이 요란하고 별난 외모와 과장된 몸짓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보일 때도 있는 푸아로는 런던에서 한때 헤이스팅즈와 함께 사립탐정사무실을 개업했다. 항상 자신만만하며 자신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그는 헤이스팅즈가 아르헨티나로 떠난 후에는 집사와 여비서를 두고 일한 적도 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취미는 머리 염색과 호박을 재배하는 것.

 

TV 시리즈에 등장한 푸아로(오른쪽. 데이빗 수셰이가 연기)

그는 ‘질서와 방법’을 중시해 사건을 추리해 나간다. 물적 증거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직감을 더 중요시하며, 사건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얻은 자료를 ‘회색 뇌세포’로 분석해 범인의 심리를 통찰해낸다.


나이가 들어 관절염으로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등장한 마지막 사건 ‘커튼’에서 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푸아로의 명성은 너무나 높아 뉴욕타임스에서는 그의 부고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기사에는 푸아로의 나이가 120세로 나와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푸아로는 한때 죽었다가 살아난 셜록 홈스와는 달리 20년 이상 새로운 작품이 나오질 않았다. 작가인 크리스티가 그의 유산 상속자에게 포와로의 후속편을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유언을 남긴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8년 푸아로가 등장하는 ‘새로운’ 작품이 발표되었다. 책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소설화한 ‘블랙 커피’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 이 대본은 크리스티 본인이 직접 썼으며, 크리스티의 전기 작가인 찰스 오스본이 소설화해 두 사람의 공저(共著)로 되어 있다. 약 70년 전인 1930년 방송되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블랙 커피’는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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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분서의 형사들(Detectives of 87th Precinct)

 

성공적인 미스터리 시리즈라고 하면 대부분 멋진(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지만) 한 명의 주인공으로 상징되기 마련이다.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우의 작품에 등장하는 뒤팽을 필두로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엘러리 퀸, 미스 마플, 샘 스페이드 등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개성과 독특한 매력을 지녀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친근한 존재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첫 선을 보인 <87번 지서>시리즈에는 작품을 대표하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경찰소설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되는 <87번 지서>시리즈는 경찰의 수사활동이 중심 내용이 된다. 즉 한 명의 형사가 어떤 사건을 담당하더라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형사를 비롯, 경찰 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는 <87번 지서>라는 경찰서가 실질적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영화 <경관 혐오자>(1958). 맨 왼쪽은 스티브 카렐라 역을 맡은 로버트 로지아.

 

87번 지서는 뉴욕 시내의 가공 도시 아이솔라에 있는 일개 지서에 불과하다(‘아이솔라’는 이탈리아 어로 ‘섬 island'를 의미하며, 맨해튼이 모델이다). 첫 작품 <경찰 혐오자>의 내용에 따르면, 87번 지서에는 16명의 형사가 배속되어 있지만, 그들의 관할구역은 9만 명의 주민이 사는 35개 블록으로 116명의 형사가 있어도 손이 모자라 일을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지역.


87번 지서에는 프릭 서장과 번즈 수사주임 이하 다양한 형사들이 등장한다. 지서 내에서 가장 유능한 형사인 스티브 카렐라는 가장 많은 작품에 중심인물로 등장해 이 시리즈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계인 카렐라는 몸집이 크지만 결코 둔해 보이지는 않으며, 마치 동양인과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는 수사 도중 테디 프랭클린이라는 아름다운 벙어리 아가씨와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다.

 

TV 드라마로 제작된 87분서 시리즈. 스티브 카렐라(오른쪽, 로버트 랜싱이 연기)와 테디 카렐라(지나 롤란즈가 연기)

 

카렐라의 동료로는 아버지가 이름을 장난스럽게 지었다고 불평하는 유태계 형사 마이어 마이어, 타인을 압도하는 우람한 체격의 인텔리 흑인 형사 아더 브라운, 빨간 머리에 흉터가 있는 코튼 호스, 유도의 명수 할 윌리스, 신참 형사 버트 클링, 그리고 이른바 ‘썩은  사과’라고 불리는 부패한 형사 로저 하빌랜드 등 독특한 인물들이 등장해 지서를 활기 있게 만들고 작품을 빛내준다.

 

이들은 작품에 따라 주연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조연 혹은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배속 인원이 16명이지만 수많은 형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수사 도중 피살되기도 하고 때로는 승진 등을 통해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시리즈가 시작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주연급 등장인물들은 거의 나이를 먹지 않고 있는데 반해 시간은 약간씩 흐르고 있다. 카렐라 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형사들은 모두 30대의 나이지만 카렐라 부부의 쌍둥이 아이들은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었다.

 

<살의의 쐐기> 표지

이 시리즈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매우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사건 현장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생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사건을 앉은자리에서 척척 해결하는 초인적 인물이 아니라, 봉급이 적다고 불평도 하고 연애도 하다가 때로는 실연의 상처도 입는 보통 사람들이다.


<87번 지서> 시리즈는 현역 작가의 미스터리 시리즈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고 있는 작품이다. 1956년 <경찰 혐오자>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해마다 한 권 꼴로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2000년에도 어김없이 장편 <마지막 춤 The Last>이 발간되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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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Ellery Queen)

 

미스터리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그 역시 미스터리 작가이다)의 이름이 같으며, 그 이름 또한 가명이라면 독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 작품성이 뛰어나다면 그 반대로 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장편 미스터리 소설의 황금기인 1930년대에 등장한 아마추어 탐정 엘러리 퀸은 이름만큼이나 참신한 능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자리잡았다.


뉴욕 시 경찰 간부인 리처드 퀸의 아들인 엘러리 퀸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직후 할키스 살인사건(<그리스 관의 비밀>)을 수사중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한 차례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데 성공하고 경찰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추리소설가가 된 퀸은 뉴욕 웨스트 87번가의 아파트에서 아버지, 그리고 집안 일을 맡아 하는 고아 소년 쥬너와 함께 살면서 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TV 드라마에서 엘러리 퀸을 연기한 짐 허튼(오른쪽)

 

그의 아버지 리처드 퀸이 작은 체격에 성격도 급한 반면 엘러리는 대략 180cm의 큰 키에  느긋한 성격을 가져 대조적이다. 젊은 나이지만 항상 사슬이 달려 있는 테 없는 코안경을 쓰고 있는 퀸은 난해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 코안경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우아한 동작으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다. 술을 좋아하긴 해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반면 담배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피우는데 생각에 잠기면 줄담배를 피워댄다.


엘러리 퀸에 대해 연구한 미스터리 평론가 프랜시스 네빈스는 퀸의 활동을 3기로 나누었다. 초기 국명 미스터리 시기가 1기, 1936년 <중간 지대>에서 <용의 이빨>까지가 2기, 그리고 1942년 <재앙의 거리>부터가 3기이다. 난해한 트릭을 해결해 나가던 1기와는 달리 2기는 인간 묘사를 주로 하는 등 작풍이 변화했으며, 3기부터는 사회성을 갖춘 고급 미스터리로 최고의 작품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 따라 엘러리의 모습도 변했다. 젊은 시절의 엘러리는 명문 대학 출신의 인텔리로 지성(知性)과 이성(理性)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수시로 고전 문헌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아무리 복잡한 사건과 마주쳐도 치밀한 분석과 논리를 구사해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그는 범인에 대한 동정(감정)과 진상규명의 사명감(이성)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상의 마을 라이츠빌을 무대로 한 <열흘간의 불가사의>에서는 그의 갈등이 현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두 시기에 나타나는 퀸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 미스터리 작가이자 연구가인 줄리안 시먼즈는 ‘엘러리 퀸이 두 사람이다(초기 퀸과 후기 퀸은 형제간이라는 것)’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

초기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작품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J.J.맥에 따르면 퀸 부자는 범죄수사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후 이탈리아에서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성기와 다른 점이라면 엘러리에게 아내와 아들이 생겼다는 것.

독자에게는 언제나 소설 속의 엘러리와 똑같은 증거-실마리가 공평하게 주어지면서 같은 상황에서 논리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배려를 해 준다. 초기 국명 시리즈에서는 종반에 ‘독자에의 도전’이 있어서, 추리력에 자신 있는 독자라면 해결편을 읽기 전에 탐정의 머리에 도전하고픈 의욕이 생기도록 부추긴다. 이 페어플레이 정신은 퀸이 평생 추구하던 것이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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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로 밴스 (Philo Vance)

 

미스터리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들을 대상으로 가장 박식한 탐정, 가장 현학적인 탐정, 가장 고상한 취미를 가진 탐정, 가장 게으른 탐정을 꼽는다고 하면 독자들마다 각각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부문에서 평점을 매긴 후 종합점수를 낸다고 하면 아마도 미국의 아마추어 탐정 파일로 밴스가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미리 밝혀두자면 ‘파일로 밴스’는 본명이 아니다. 사건의 기술자인 S.S.반 다인에 의하면 ‘그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임의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추리소설 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파일로 밴스는 처음 등장했을 때 34세의 젊은 사나이로, 여러 명문학교(이튼․하버드․케임브리지․옥스퍼드 등)를 졸업한 수재로 학식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취미 이상의 전문지식(고고학, 미술, 클래식 음악 등)을 지니고 있다. 1차 대전 중 육군 중위로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 미국 고고학회, 뉴욕 시립도서관 평의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종신 이사직을 맡는 등 젊은 나이에 이미 여러 개의 직함을 가졌으며, ‘폴로의 기법’ ‘이집트 상형문자의 모음(母音)’ ‘방사능의 원자 구조’ ‘명(明) 왕조의 도기(陶器)’ 등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파일로 밴스가 처음 등장한 작품 <벤슨 살인사건>


그러던 중 숙모가 작고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자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면서, 뉴욕 이스트 38번가의 낡은 아파트를 개조해 호화롭게 꾸미고 동서양의 미술품을 수집해 가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가족은 없는 독신으로, 친구이자 사건 기록자인 반 다인, 집사 겸 요리사 칼리와 함께 살고 있다.


다양한 직함만큼이나 취미도 다양한데, 미술품 감상을 비롯해 고전음악 감상, 열대어와 개의 사육 등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대학 시절 펜싱부 주장이었으며, 골프와 격투기에도 일가견이 있을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만 걷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뭔가 탈 것만 있으면 겨우 100m라도 걸으려고 하지 않는 별난 면도 있다.


밴스가 범죄 해결에 뛰어들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다. 어느날 아침 ‘뉴욕 최고의 게으름뱅이’ 밴스가 때 아니게 일찍(일찍이라 해도 아침 9시였지만)일어나 있었고, 그 때 그와 친분이 있었던 지방검사 존 F X 마컴이 찾아와 살인사건 현장에 가 보자고 제의한다. 그보다 얼마 전 밴스는 사교클럽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한번쯤 현장에 나가보고 싶다던 말을 했었고, 지방검사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결국 밴스는 첫 번째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을 시작으로 마컴이 뉴욕의 지방검사로 재직했던 4년 동안 많은 난(難) 사건을 ‘취미 삼아’ 풀어나가게 된다.


밴스는 물적 증거보다 정신분석적 연역법을 중시한다. 용의자들의 심리상태를 정밀하게 고찰한 후 그 중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것. 범인을 체포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고도의 심리적 전술을 사용해 자신의 손을 대지 않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냉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케닐 살인사건>. 윌리엄 파웰이 파일로 밴스를 연기했다.

 

마컴이 검사 직에서 물러난 직후 밴스는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떠났으며,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밴스는 독자들에게서도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 이상의 천재적 탐정은 없다’에서부터 ‘너무나 완벽한 인물이라 도무지 사람처럼 느껴지질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하다. 등장한 지 80년이 되어 가는 요즘은 과거와 같이 많은 팬들에게 사랑 받기가 쉽지 않겠지만, 단편들이 판을 치던 시절 장편 시대를 열어 젖히면서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는 점만으로도 기억에 남겨놓아야만 하는 주인공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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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손다이크 박사 (Dr. John Thorndyke)

 

오귀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 같은 인물들은 대단한 추리력을 갖춘 명탐정들이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흔히 말하는 ‘심증(心證)’만으로 범인을 잡아낸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은 물증, 즉 물적 증거(物的證據)가 없으면 아무리 유력한 혐의자에게라도 유죄 판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수상한 물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물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정확한 감식을 거쳐야만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추리소설 사상 최초의 전문 법의학자(法醫學者)라고 할 수 있는 손다이크 박사는 과학수사의 새 길을 개척한 인물이다. 물론 과거의 수사방식을 꼭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인 탐정들이 아무래도 단순한 방법 즉 기껏해야 돋보기를 이용하거나 줄자로 길이를 재는 데 불과했던 반면 그는 정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거를 확보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1907년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로 독자에게 첫선을 보인 그는 체계적인 과학지식을 구사해 지문의 위조사건을 밝혀내면서 일약 홈즈의 라이벌 위치에까지 떠올랐다.

 

<손다이크 박사의 사건> 표지

그의 본명은 존 이블린 손다이크. 법의학자이자 변호사라는 직함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방면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1870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세인트 마거리트 병원 부속 의학교에서 병리학과 법의학을 전공했다. 해부학,고고학,식물학,이집트학,안과학 등에 조예가 깊으며 그것이 그의 수사능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당시 등장한 탐정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의 사생활은 가족 관계 이외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결혼 경험이 없는 독신자이며, 런던의 템플 지구 5A 킹스 벤치 거리의 자택에서 조수이며 그의 연대기를 엮은 크리스토퍼 저비스, 연구실의 조수 겸 사진사이며 대단히 뛰어난 기술자인 나사니엘 폴턴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범죄수사를 위해 온갖 설비를 갖춘 개인 연구실을 가지고 있으며,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휴대용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녹색 가방을 항상 들고 다닌다. 그 가방 안에는 각종 약품과 소형 현미경을 비롯해 자신의 연구실을 축소해 놓은 듯한 갖가지 실험장비가 들어 있다. 사건을 만나면 즉시 현장의 증거품을 크든 작든 모두 수집하여 조사․분석해 사건을 해결한다.

 

손다이크 박사는 추리나 분석의 재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탐정 중에서 뛰어난 편에 속한다. 키가 크며 호리호리하지만 강인한 체격이며, 그리스인 같은 콧날에 고전적으로 균형 잡힌 얼굴을 지녔다. 게다가 남다른 시각(視覺)과 청각능력에 뛰어난 손재주까지 가졌으니 가히 초인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손다이크 박사(왼쪽)

 

하지만 그는 발견한 증거물들을 모아 하나씩 맞춰 가며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길 뿐, 과학자답게 상식을 벗어나는 데가 없는 온화하고 소박한 성품이므로 일반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증거 제일주의라는 현실적이며 현대적인 수사 방식을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커다란 공적을 세운 인물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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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아처(Lew Archer)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계보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언급되는 세 명의 탐정이 있다. 등장하는 순서대로 따져보면 앞의 두 명은 예전에 소개한 바 있는 샘 스페이드(작가-대쉴 해밋)와 필립 말로(작가-레이먼드 챈들러),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루 아처가 바로 세 번째 인물이다.


아처의 모습을 단순히 표현하자면 ‘대단히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울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 아처가 처음 등장한 <움직이는 타겟>(작가의 이름이 로스 맥도널드가 아닌 존 맥도널드로 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립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처의 신상명세는 다음과 같다. 본명은 루이스 A. 아처. 1913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났으며, 경찰학교를 졸업한 뒤 경찰관으로 약 2년간 근무했지만 타성과 부패를 참지 못해 사표를 던지고 사립탐정사무소를 개업했다. 2차 대전 중에는 군 정보부에서 일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사립탐정 업무에 복귀한다. 한 차례 결혼했으나 성격 차이로 이혼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다.


검은 머리, 푸른 눈에 185㎝,86㎏의 나름대로 당당한 체격을 가졌지만 아처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등장하는 첫 번째 작품인 ‘움직이는 표적’에는 ‘웃고 있는 코요테처럼 야위고 굶주린 얼굴’ 혹은 ‘야윈 식인종 같은 얼굴’, ‘나라도 믿지 못할 얼굴’ 등의 묘사가 나오는데, 그것이 모두 자기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 그러나 악한 인상은 아닌지 특별히 주변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눈에 띄지는 않으며, 오히려 여성들에게는 매력 있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는 당대의 미남 배우 중 하나인 폴 뉴먼이 아처 역을 맡았다(영화에서는 원작과 달리 이름이 ‘루 하퍼’로 바뀌었다).

 

폴 뉴먼이 주연한 영화 <하퍼>


자칭 ‘이혼사건 전문’ 탐정인 아처가 다루는 사건은 암흑가의 범죄조직이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 가출 또는 실종사건 쪽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가정 비극을 예리하게 묘사한 ‘위철리 가문의 여인’(1961)을 비롯해 ‘사라진 아버지’가 테마가 되는 ‘갤튼 사건’(1959), ‘지하 인간’(1971)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의 물질문명을 혐오하는 모습이 점점 더 짙어진다.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키는 속물주의에 대한 혐오를 묘사한 ‘검은 돈’(1966)을 비롯, 샌타바버라 해안을 뒤덮은 석유오염사건을 배경으로 한 ‘잠자는 미녀’(1973)는 환경오염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표현하고 있다.


현대의 기술문명 사회에 살고 있지만 뿌리내릴 가정도 없고 친구도 없는 아처는 선배 탐정인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와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인물이다. 마치 현대의 기사(騎士)와도 같은 그들에 비해 싼값에 천한 일을 맡아 하는 아처는 어떻게 보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꿈을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정신, 협박이나 폭력․유혹에 굴하지 않는 것은 명예를 추구하는 사립탐정들만의 미덕이다.


젊은 시절(30대 중반)의 아처는 미국의 선배 탐정들이 그렇듯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는 단순한 탐정이 아닌 ‘관찰자’로서의 시각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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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경감(Inspector Morse)

 

현대 영국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점수를 매기거나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1등'이라고 결정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모스 경감을 가장 상위권에 놓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영국의 작품이 좀처럼 소개되지 않은 편이라 그의 이름은 생소한 편이겠지만, 90년 영국 추리작가협회의 '가장 좋아하는 탐정' 투표에서 전설적인 영웅 셜록 홈즈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는 기록 하나만으로도 대충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소우가 연기한 모스 경감

 

흰색의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에 무척 신경 쓰는 중년의 독신 사나이인 그의 직함은 영국 옥스퍼드주 템즈 밸리 경찰서의 주임경감이다. 그의 이름은 1975년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에 처음 등장한 이래 한동안 ‘E’라는 머리글자로만 표시되어 오다가 20여년이 지난 1996년 ‘죽음은 나의 이웃’에서 ‘엔데버’라고 밝혀진다. 여기까지가 그의 표면적인 모습인데, 성격 면으로 들어가면 여타 미스터리 작품 속의 주인공들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퉁명스럽고 까다로운 데다가 우울하기까지 해서 영웅적인 모습이 보이기는커녕 도무지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그렇지만 결코 악하지는 않은 그의 성격은 인간다운 모습을 느끼게 해주면서 오히려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취미로 크로스워드 퍼즐(십자말풀이)를 즐기는가 하면 고전 음악, 특히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음악 연주를 들으며 공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사건에 대한 상상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그의 취미가 모두 고상한 것만은 아니다. 술을 좋아하는데다가 금연 구역이 늘어나는 것에 분개하는 애연가이기도 하다. 또한 때때로 스트립쇼 구경을 즐기며, 사건에 관계된 매력적인 여인에게 자주 반하기도 하지만 결혼을 할 만큼의 관계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그의 수사 방법은 독특한 편. 남들이 보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사건을 복잡하게 생각하기도 하며, 때로는 직감적 추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수사방법을 지향하는 그의 부하 루이스 형사부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종사건이라는 보고가 들어오더라도 모스 경감은 살인사건으로 여길 정도. 두 사람은 수사방법의 차이 때문에 가끔 충돌이 생기는데, 루이스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한마디가 모스 경감의 상상력을 자극할 때도 많다-이럴 때 모스 경감은 그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던진다. “루이스, 자넨 천재야!”

  

모스 경감과 루이스 형사부장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작품은 현대판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한-그렇지만 현실적인-사건을 제시하고 독자에게 정보를 하나 하나 제공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진상에 접근하는 방식은 영국 본격 추리소설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또한 두세 차례 거듭되는 반전은 독자들을 자극시킨다. 또한 홈즈와 왓슨 콤비와는 달리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모스 경감과 루이스 부장의 콤비 역시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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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경감 (Chief Inspector Maigret)

 

영어 문화권의 미스터리 문학사에 있어서 1930년대는 장편소설의 황금기라고도 불렸으며 수많은 천재적 탐정들이 활개를 치던 시대였다. 당시 등장한 주인공들은 터무니없이 머리가 좋은 것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보통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면을 보여주려고 애썼기 때문에 대부분 기인(奇人)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 영어권과는 좀 다른 스타일이지만 나름대로 미스터리가 인기 있던 프랑스에서 독특한 주인공이 등장했다. 1931년 <수상한 라트비아인 Pietr-le-Letton>의 주역으로 등장한 파리 경찰국 소속의 형사 매그레가 바로 그 인물인데, 그의 독특함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재 탐정들과는 달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에 있다. 날카로운 두뇌회전, 현학적인 말 뇌까리기 따위는 그에게서 볼 수 없다. 

 

1931년의 <수상한 라트비아인> 광고

 

  매그레라는 이름에는 ‘말라깽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름과는 달리 신장 180cm, 체중 1백kg의 우람한 체격을 지니고 있다. 짙은 색의 모자와 트렌치 코트는 잘 어울리지만 굵은 골격 덕택에 새 바지를 걸쳐도 금방 모양이 흐트러진다. 파이프 담배를 즐겨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으며,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대여섯개(많을 때는 열다섯개 이상)의 파이프가 놓여 있다. 파이프를 깨무는 습관이 있어서 그의 파이프에는 이빨자국이 많이 나 있는 편이다. 한편 술도 즐기는데, 와인을 비롯해 맥주, 브랜디까지 가리지 않는다. 취미는 영화감상으로, 미국 서부영화와 코메디 영화를 즐겨 본다.


  1887년 프랑스의 시골에서 태어난 매그레는 청소년 시절 의사를 지망한 의학도였으나, 부친의 사망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파리로 떠나 경찰이 된다. 말단 순경에서 4년만에 서장 비서가 되고, 그 사이 친구의 소개로 만난 루이즈와 결혼한다. 이후 매그레는 순조롭게 승진을 거듭한다. 파리 경찰국 소속의 형사로 배속된 다음 20대 후반에 부경감, 30대 후반에 경감으로 승진하고 40대 중반 파리 경찰청장의 자리에 오른다.

 

 

매그레 경감의 동상

   결코 천재적 탐정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는 그의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그 자신이 범죄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될 무렵이면 그는 동기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되고, 범인을 찾아내게 된다. 수많은 범죄자들과 만나면서 쌓은 인간에 대한 관찰력은 그의 소중한 재산이다. 자신을 범죄자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며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집중한 다음, 물적증거보다는 심리전술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다 보니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본국인 프랑스는 물론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되었고, 찰스 로튼, 루퍼트 데이비스 등 여러 연기파 배우들이 메그레 역을 맡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명배우 장 가방이 매그레의 이미지를 잘 살린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그레 경감 역을 맡았던 장 가방

 

  1백여 편이 넘는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덕택에 그의 사생활은 다른 어떤 주인공들보다도 자세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신비감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으며, 일부 평론가는 미스터리적 요소로 따져볼 때 단순히 범죄를 소재만으로 사용했을 뿐 수준 미달에 가깝다는 혹평도 하고 있다.하지만 미스터리 작품 중 매그레 시리즈만큼 인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작품도 흔치 않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가치가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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