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말로우(Philip Marlowe)

 

 1959년 미스터리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사망하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챈들러는 사립탐정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그 사립탐정이란 바로 로스앤젤레스의 독신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라는 인물이다. 챈들러의 표현에 의하면 말로우는 “외롭고, 가난하며, 위험하며, 인정 있는 사나이”이며, 팬들은 그를 “현대의 기사(騎士)”로 추앙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던 <빅 슬립>에서 그의 나이는 33세였으며, 6피트(약 183cm), 190파운드(약 85kg)의 작지 않은 체격이지만 우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약간 마른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외모만으로는 그다지 튀는 면이 없는 중년 사나이지만 여자들은 종종 그에게서 야수(野獸)같은 분위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중절모에 트렌치 코트, 그리고 줄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은 사실상 하드보일드 장르의 탐정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되었다. 수입이 아주 시원찮은 것은 아니지만 방 두 개 짜리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캐비넷, 모자걸이와 달력뿐이며 여비서나 전화 자동응답기조차 두지 않고 있다. 담배 이외에도 술을 즐기는 편으로 사무실 책상의 ‘깊숙한 서랍’안에는 자신과 때로는 의뢰인에게 대접할 술병과 잔이 항상 들어 있다. 그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TV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파워스 부스)

 

  캘리포니아 출생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 보험회사 조사원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국의 태거트 와일드 검사 휘하의 경찰로 근무했지만 부당한 명령을 참지 못해 사표를 던진 후 할리우드  대로의 빌딩에 사립탐정 사무소를 열었다. 그의 특징이라고 하면 신랄할 정도의 날카로운 독설(毒舌)과 유머 감각이다. 코앞에 권총을 들이대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그것도 상대의 심경이 뒤틀릴 정도로 말을 쏘아댈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다. “인생은 비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비정함만으로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필립 말로우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대사. 

 

영화 '기나긴 이별'에서의 필립 말로우(엘리엇 굴드가 주연을 맡음)

 

  흔히 상상하는 거친 탐정의 모습과는 달리 말로우는 대단히 금욕적이다. 한가한 시간에는 위스키 잔을 한 손에 들고 체스의 묘수풀이를 즐기며, 브라우닝, T.S.엘리엇, 셰익스피어, 플로베르의 문구를 종종 인용할 정도로 고전을 즐겨 읽는다(말로우라는 이름이 16세기 영국 극작가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독신 남성 말로우는 종종 여성들로부터 유혹을 받지만, ‘직업에 대한 긍지’를 지키기 위해 의뢰인과는 절대로 자신이 정해 놓은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태도에는 훗날 변화가 생긴다. <플레이백>(챈들러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에서는 바로 전 작품 <기나긴 이별>에 등장했던 부호(富豪)의 딸 린다 롤링과 결혼 이야기가 나올 만큼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며, 미완성 유작인 <푸들 스프링>에서는 두 사람의 신혼생활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빅 슬립' 표지

  필립 말로우가 등장하는 장편은 ‘공식적’으로 일곱 편이다. 그러나 후배 하드보일드 작가인 로버트 B. 파커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푸들 스프링>을 완성시킨 후 내친 김에 <빅 슬립>의 속편 격인 <Perchance to Dream>을 썼는데, 팬과 평단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말로우가 등장하는 작품은 더 이상 나올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원작자인 챈들러나 말로우의 팬들이 원하는 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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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도사(Brother Cadfael)

 

 12세기, 세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한반도를 예로 들자면 고려시대 중반으로 묘청의 난, 무신의 난이 벌어졌으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하던 시기였다. 지구 반대편인 영국에서는 과학적인 도구도 없이 기묘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노련한 수도사가 한 사람 있었으니 그가 바로 캐드펠 수도사이다.

 

 

약초 창고에서 명상중인 캐드펠 수도사.

 

  베네딕트 수도원 소속의 수사인 캐드펠은 명민한 두뇌와 파란만장한 과거를 숨긴, 겉으로 보기엔 느긋하게 약초를 재배하는 조용한 50대 후반의 노인이다. 웨일즈 출신 귀족의 아들인 그는 첫 번째 십자군 전쟁에 참가해 예루살렘 탈환의 현장에도 있었으며, 또한 10여 년 간 선장으로서 팔레스타인 연안 경비를 맡아 이슬람의 해적과도 싸웠다. 선원 시절의 유일한 흔적은 그가 걸을 때 양쪽으로 어깨를 흔드는 버릇이다. 40대의 나이로 고국에 돌아온 그는 평온한 삶을 찾아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조용하지 않던 세상은 그를 평온하게 내버려두지 않아, 당시로서는 기괴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과 마주치게 한다.


  그는 오랜 기간 이교도의 땅에 머무르며 쌓은 다양한 경험에 수도원에서 쌓은 지식을 동시에 가진 덕택에 다른 수도사들이 갖지 못한 넓은 시야와 판단력, 그리고 그 판단을 즉시 실천에 옮기는 행동력을 가졌다. 그의 독특한 사고방식은 때로 부 수도원장에게서 이단(異端)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

 

 

'수도사의 두건'(호주판) 표지

 

  그의 유일한 자랑거리라면 15년간 애지중지 보살펴 온 약초 농장. 젊은 시절 세계 각지를 방랑하며 모은 진귀한 약초들을 재배해 새로운 묘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항상 진지한 그에게도 장난꾸러기 같은 습관이 하나 있다. 미사 후에 벌어지는 지루한 회의 도중 기둥 뒤에 교묘히 숨어 잠자는 것. 그러다가도 누군가 질문을 하면 태연히 대답을 하는 재주는 수도원의 누구도 모르고 있는 비밀이다.


  캐드펠에게는 30세 이상의 나이 차이를 초월한 진실한 협력자가 있다. 시리즈 제2작 <99번째 주검>에 처음 등장한 슈롭셔의 행정관인 휴 버링가라는 사나이로,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판단력과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한때 캐드펠 수도사와 머리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역량에 감탄한 후 의기투합하게 되어, 서로간에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버링가의 아들 이름인 자일즈는 다름아닌 캐드펠 수도사가 지어준 것이다.


  이외에도 캐드펠에게 협력적인 라덜퍼스 수도원장, 차기 수도원장을 노리는 야심가 로버트 부원장, 실존 인물인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의 맛을 더해준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와 캐드펠 수도사 역의 데릭 재코비


 캐드펠 시리즈는 수수께끼 풀이형 미스터리로서의 요소도 충분히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왕권 쟁탈 다툼 때문에 소란하던 무렵의 인간 군상 묘사도 또다른 볼거리이다. 게다가 실존 인물의 등장도 잦기 때문에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과도 같은 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캐드펠 시리즈 중 장편은 시기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넓은 흐름을 보는데 편리하지만 독립된 작품으로 생각하고 읽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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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메이슨(Perry Mason)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아무래도 형사, 사립탐정 등 사건과 직접 마주치는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들 못지 않게 범죄 사건과 마주칠 수 있는 직업으로는 먼저 변호사를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변호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캘리포니아의 변호사 페리 메이슨을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인 가드너에 의하면 그의 인상은 다음과 같다. “그는 듬직한 인상을 준다. 살이 쪄서 듬직한 것이 아니라 다부지고 힘있는 듬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어깨, 빈틈없는 얼굴, 그리고 인내력 있어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사실 이런 인상은 체격에서 약간 차이가 날 뿐 작가인 가드너의 자화상과도 같다)

 

TV 시리즈로 제작된 페리 메이슨. 주연은 레이먼드 버.

 

  중년의 독신 형사 변호사인 메이슨은 문자 그대로 ‘꺾이지 않는 사나이’로, 자신이 맡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위험이나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확신을 가지게 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거는 배짱도 가지고 있다. 


  메이슨의 사건 해결 방식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무죄면 무죄, 유죄면 유죄를 확증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일단 직접 나서는 편이며, 경찰보다 앞서서 사건 현장에 뛰어들 때도 있다. 때로는 의뢰인에게 고압적이거나 거친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사건 전체를 보면서 충분한 숙고 끝에 나온 행동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죄없는 의뢰인이라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좋을 만큼 확실한 변호사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페리 메이슨 시리즈 작품들의 패턴은 매우 단순한 편이다. 미스터리 평론가 러셀 나이는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패턴을 다음과 같은 일곱 단계로 분석했다. 


  1. 사건을 의뢰받는다 → 2. 메이슨이 조사에 나선다 → 3. 의뢰인이 무고하게 체포된다 → 4. 메이슨은 여전히 조사해 나간다 → 5. 재판이 시작된다 → 6. 메이슨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 7. 법정에서 진범이 밝혀진다.


  이런 단순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이 어째서 그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바로 그 단순한 형식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인 가드너의 경력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가드너는 하드보일드 탐정과 흡사한 성격의 페리 메이슨이 기묘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게 만들었으며, 변호사의 경력을 살린 법정에서의 한바탕 대결 장면은 여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재미였던 것이다.


  다양한 조연급 인물들도 메이슨 시리즈의 재미를 더해준다. 메이슨을 사모하는 미인 여비서 델라 스트리트는 머리 좋고 유능하며, 헌신적이고 눈치도 빠른데다가 사람 보는 눈이 날카로워 메이슨도 언제나 조언을 구할 정도. 그리고 메이슨 대신 궂은 일을 맡아 조사하는 사립탐정 폴 드레이크가 있다. 그는 도무지 유능할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지녔지만 미행에 뛰어나며 맡은 일은 반드시 해 낼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정 조연 중에는 동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사건건 메이슨과 법정에서 대결하는 지방검사 해밀턴 ‘햄’ 버거가 바로 그런 인물. 그는 악당은 아니지만 엉뚱한 사람을 체포했다가 법정에서 메이슨에게 항상 패배하는 인물로서, 언젠가는 빚을 갚아주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아쉽게도 능력이 부족해 독자는 그가 승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컬러 TV 시대에 다시 제작된 페리 메이슨 시리즈. 역시 레이먼드 버가 주연을 맡았다.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책 뿐만 아니라 레이먼드 버 주연의 TV시리즈도 대단한 인기를 얻어 오랜 동안 방영되었으며, 가드너 사후에는 미스터리 작가 토머스 체스테인이 가드너 미망인의 허락을 얻어 몇 권의 책을 발표하기도 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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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페이드(Sam Spade)

 

샌프란시스코의 사립탐정인 샘 스페이드는 최초의 하드보일드 탐정도 아니며, 원작자 대쉴 해미트의 첫 번째 시리즈 탐정도 아니지만 하드보일드 탐정의 계보를 논할 때는 항상 첫머리에 오른다.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잘 알려진 덕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많지 않은 해미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용모는 데뷔작인 ‘몰타의 매’ 서두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새뮤얼 스페이드의 길고 각진 턱은 끝이 브이(V)자 모양으로 튀어나왔다. 그 위에는 좀더 유연하지만 역시 V자 모양의 입이 있다. 코 끝을 따라 콧구멍 선이 깊숙이 패였으므로 그것도 역시 작지만 V자 모양이다. 노란빛 도는 회색 눈만이 수평이지만, 매부리코 위에 새겨진 한 쌍의 골진 주름에서 바깥쪽으로 뻗어나간 숱 많은 눈썹 역시 V자를 그리고 있다. 게다가 이마의 바랜 듯한 금빛 연갈색 머리털 끝선이 관자놀이까지 이어져 있다.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얼굴은 유쾌한 금발의 악마처럼 보였다…. 키는 6피트(약 183㎝),두 어깨가 봉긋할 정도로 살이 쪄서 전체적인 모습이 마치 원뿔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샘 스페이드를 연기한 험프리 보가트(영화 '몰타의 매'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구석구석까지 훤하게 꿰뚫고 있어 ‘나의 거리’라고 즐겨 말하는 그는 열 살 정도 연상인 마일즈 아처, 여비서 에피 페라인과 함께 ‘스페이드 & 아처 탐정 사무소’를 개업하고 있었으나, 아처가 살해당하면서 사무실 이름을 ‘샘 스페이드 탐정 사무소’로 변경한다.


스페이드는 과거 수수께끼 풀이형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천재’ 탐정들처럼 앉은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강인한 집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천재’ 탐정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의 가치관에 있다. 그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도덕군자가 아니다. 여성 의뢰인이나 동료의 아내와도 관계를 가질 정도로 호색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 일을 망치거나 협박에 굴하지도 않으며, 금전에 절대로 매수 당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념은 도덕적이라기보다 이른바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는’ 탐정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데, 자신의 의지를 결사적으로 관철한다는 이러한 정신은 해미트의 후배 작가들이 창조한 탐정들에게도 꾸준히 이어지게 된다.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작품은 장편 ‘몰타의 매’와 단편 세 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몰타의 매’는 놀랍게도 1931년부터 1941년까지 10년 사이에 세 차례나 제작되었는데, 존 휴스턴 감독이 제작한 1941년 작품이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 샘 스페이드 역은 험프리 보가트가 맡았는데, 얼굴 생김새나 체격 등이 원작에 묘사된 용모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연기를 보여서 고전영화 팬들에게는 ‘샘 스페이드=험프리 보가트’의 이미지가 심어져 있다.

 

 

샘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단편집 'A Man Called Spade'


해미트에 따르면, 샘 스페이드에게는 특정한 모델이 없다고 한다. 그는 함께 생활하던 여러 명의 탐정들에게 약간씩 장점과 이미지를 따와서 스페이드를 창조했다. 즉 샘 스페이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理想的) 탐정인 셈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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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템플러(Simon Temlar)- 더 세인트(The Saint)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웬만한 지역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름만큼 많지만, 원문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번역 미스터리의 왕국인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일반 독자들은 번역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주인공의 이름은커녕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책이 아닌 다른 매체 덕분에 운 좋게도 국내에 팬을 얻는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이번에 소개할 ‘세인트’라는 인물은 장편이 하나도 번역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행운아다.

 

 

 

세인트, 즉 성자(聖者)라는 독특한 별명을 가진 사이먼 템플러(Simon Templar)라는 영국 출신의 이 사나이에게 세인트라는 별명이 붙게 된 이유는 머리 위에 후광(後光)을 지닌 사람의 선화(線畵)를 범죄 현장에 그려 놓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그러나 가장 최근에 제작된 발 킬머 주연의 영화에는 흥미롭게도 어린 시절의 어두운 과거가 설명되어 있다).

 

그의 신상명세는 ‘뉴욕의 세인트’(The Saint in New York․1935)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당시의 나이는 31세(그렇지만 해당 작품의 배경이 정확히 1935년이라는 설명은 없다)이며, 신장 6피트 2인치(약 185㎝), 체중 175파운드(약 80㎏)의 단단한 체격을 지녔다. 푸른색 눈동자, 머리 색깔은 검정색. 왼쪽 어깨에 총에 관통상을 입은 흉터가 있으며, 오른팔에도 8인치(약 20㎝) 정도의 흉터가 있다. 또한 언제나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용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만화로 등장한 세인트

 

외견상의 특징은 이렇고, 성격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대담 무쌍하다는 표현이 가능한 인물로 달변가에 두뇌회전도 빠르다. 언더그라운드적 인물이지만 고급 호텔이나 화려한 별장에 거주하는 사치스러운 면도 있다. 위험 인물들과 마주칠 일이 많으므로 권총과 단검을 늘 휴대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게다가 그를 노리는 인물들이 수두룩하지만 절대 숨어 다니지 않으며, 반드시 필요할 때만 간단히 변장한다(기껏해야 옷을 갈아입거나 콧수염을 다는 수준). 그의 신분은 경찰도 아니며 공인된 사립탐정도 아니다. ‘현대의 로빈 훗’이라는 또 다른 별명에 걸맞게 그는 원래 범죄자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스코틀랜드 야드에 협력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한 이후 범죄에서 손을 떼고 악당들과 맞서게 된다. 그는 범죄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범죄자들의 심리를 쉽게 파악하는 것은 물론 예언자라고 불릴 정도로 위험을 빨리 파악하며, 독특하게도 다분히 범죄적인 수법으로 그들과 대적한다. 모든 위험을 취미활동처럼 즐기며, 모아 놓은 재산이 많은 편이라 행동범위도 넓어 미국에서 유럽 대륙을 비롯한 전 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세인트 시리즈는 여러 차례 영화와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는데,1960년대 후반에 방영된 첫 번째 TV 시리즈의 주연을 맡았던 로저 무어는 대단한 인기를 얻어 제임스 본드, 즉 007 역으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세인트 역을 맡은 로저 무어

 

 

반면 영화는 TV가 대중화되기 전 인기를 끌어 여러 차례 제작되었지만, 최근 제작된 영화는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해 짧은 시일 안에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928년 ‘호랑이와의 만남’(Meet the Tiger)에 처음 등장한 지 어언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인트라는 인물의 매력은 원작자와는 상관없이 이미지를 쇄신해 가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변변한 전자제품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태어났을 세인트가 1997년 제작된 영화에서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인트는 소설 속 이미지처럼,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질 무렵이면 새 영화든 만화든 또다시 나타날 것임에 틀림없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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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울프(Nero Wolfe)

 

 

어떤 작품의 주인공, 그 중에서도 탐정이라고 하면 보통 날렵하거나 거친 외모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셜록 홈즈 이래 워낙 이런 스타일의 인물들이 많다 보니 이른바 미스터리의 황금기(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명석한 두뇌뿐만 아니라 성격 및 외모도 보통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어찌 보면 별난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도 뉴욕 웨스트 35번가의 고풍스러운 브라운 스톤 저택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는 네로 울프는 무척 독특한 존재다.

 

고대 로마의 폭군과 늑대를 방불케 하는 이름의 그에게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엄청난 체격. 서양인 체격으로는 보통인 6피트(약 180㎝)의 키에 체중이 무려 300파운드(약 135㎏, 작품에 따라 250파운드에서 350파운드까지 오락가락하는데, 작가의 실수라는 설도 있다)에 육박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대단한 위압감을 주었다. 성격도 별나 이름처럼 독재적인 면도 있으며, 여자를 싫어해 독신으로 지냈다. 난초를 망치는 파리들을 세상의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그의 동반자는 맥주와 난초?

 


그는 거대한 체격 탓인지 움직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의뢰인이 찾아와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맞이할 정도여서 문자 그대로 안락의자형 탐정. 때문에 사건의 주변 조사를 하는 일에는 조수인 아치 굿윈이 나서서 움직였다. 체격이나 성격 등 많은 점에서 대조적인 청년 굿윈은 고용주인 울프를 항상 존경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리력만은 인정하기 때문에 그를 도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울프의 천재성은 사무실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도 조수인 아치가 조사한 내용만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평상시 그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요리사가 가져다 주는 아침 식사를 한 후 9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실로 올라가 두 시간 동안 난초를 살펴본다. 11시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우편물과 보고서들을 읽은 후 1시부터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업무를 보다가 4시부터 6시까지 온실에서 난초를 돌본 후 저녁 8시에 저녁식사. 그리고는 침실로 들어가 잠들기 전까지 책을 본다.

 

 

영화에 등장한 네로 울프(왼쪽 두번째)와 아치 굿윈(맨 왼쪽). 에드워드 아놀드와 라이오넬 스탠더가 각각 연기했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가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는 비결은 미식(美食) 취미에 있었다. 매일 맥주 7ℓ정도를 마시며,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 그의 음식에 대한 정열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서, 사건수사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주 싫어하지만 맛있는 요리가 있는 곳이라면 먼길도 사양하지 않는다. 국내에도 소개된 ‘요리장이 너무 많다’에서 그러한 울프의 성격을 잘 볼 수 있다. 세계의 유명 요리사들이 모인 대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울프는 사건을 해결하는 대가로 돈 대신 ‘소시스 미뉴이’라는 비장의 요리법을 전수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의 또 다른 취미는 난초 가꾸기로, 옥상에 있는 온실에서 하루 네 시간씩 1만여 종의 난초를 감상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면회 사절이다. 이 두 가지 취미를 위해 일류 요리사와 난초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을 정도. 조수인 아치는 자신보다 요리사의 보수가 더 많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조수, 요리사, 난초 전문가 등 일급의 고용인과 호화로운 음식, 맥주, 그리고 난초 재배를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건을 의뢰 받으면 엄청난 거액의 보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워낙 일하는 것을 싫어해 은행에 잔고가 충분하면 사건을 맡지 않을 때도 있다. 자존심 역시 무척 강해서 좀처럼 경찰과도 협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니카라과에서 발행한 네로 울프 우표


작가인 렉스 스타우트는 네로 울프가 셜록 홈즈의 아들이라는 설을 은근히 흘리기도 했는데, 일부러 두 사람의 이름에 들어간 모음을 똑같게 만들었다(셜록 홈즈 Sherlock Holmes와 네로 울프 Nero Wolfe 의 모음들은 e-o, o-e로 이어져 있다). 날씬한 체격의 홈스와 비대한 체격의 울프가 도무지 혈연관계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홈즈의 전기작가인 윌리엄 베어링 굴드는 교묘한 가설을 만들어 놓아 많은 연구가들과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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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뒤팽

 

“분석적인 정신 기능 그 자체는 거의 분석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얻어내는 효과에서 그 실체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해 확실한 것 중 하나는 그러한 자질을 충분히 갖춘, 혜택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나 아주 생생한 기쁨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분석가는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거기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그는 수수께끼, 어려운 문제, 암호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풀 때는 여느 사람의 이해력으로 보면 초인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진실로 질서정연한 순서를 거쳐 얻어지는 것인데도 얼른 보기에는 직감적인 해답처럼 생각되기 마련이다.”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모르그 거리의 살인' (해리 클라크 그림)


앞의 글이 어떤 몰락한 귀족 가문의 젊은 신사, 그것도 거듭된 불운으로 삶에 대한 활력을 잃은 나머지 세상에서 활약한다거나 집안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을 단념한 사나이에 대한 소개를 하기 위해 쓰여졌다면 좀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불운한 젊은 신사는 다름 아닌 근대 ‘최초의 미스터리 작품’에 등장하는 ‘최초의 명탐정’ 뒤팽이다.

 

18XX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나’(사건의 기록자)는 몽마르트 거리의 이름 없는 도서관에서 뒤팽을 처음 만나게 된다. 우연히 희귀한 책을 찾고 있던 두 사람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절친한 사이가 되고, 결국 ‘나’는 한동안 생제르맹 거리의 낡아빠진 저택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뒤팽이 마주친 괴상한 사건과 그것을 해결해 내는 놀라운 능력에 대해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상과 인연을 거의 끊고 지내는 뒤팽은 밝은 태양보다는 어두운 밤을 좋아해서, 새벽 동이 트는 즉시 집안의 창문을 모두 가리고 강한 향기를 뿜는 촛불을 두 개 켠 후 독서 혹은 대화를 나누거나 사색에 잠긴다. 그리고 다시 밤이 돌아오면 거리로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다. 그가 세상의 일에 관심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다. 범죄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 덕택에 모든 사람들이 두 손을 들어버린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져 경찰국장인 G를 도와 해결에 나선다.

 

 


그가 처음 등장한 작품은 두 모녀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 밀폐된 방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사건을, 뒤팽은 신문의 관련 기사를 차분하게 읽고 사건 현장을 살펴본 후 범행 상황과 범인을 정확하게 밝혀낸다.

 

오귀스트 뒤팽(왼쪽)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그가 사건을 훌륭히 해결해내자 경찰은 그에게 종종 사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게 되고, 그 결과 두 개의 사건 기록이 더 남는다.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는 실제로 미국에서 발생한 미해결 사건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을 파리로 무대를 옮겨 뒤팽으로 하여금 해결하게 만든 작품이며, ‘도둑맞은 편지’는 맹점(盲點)을 이용한 재치 있는 작품이다.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뒤팽은 여러 면에서 훗날 등장하는 미스터리 작품 속 주인공들의 전형이 되었다. 기묘한 사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인공의 뛰어난 두뇌회전, 별나다고 생각될 정도의 독특한 개성, 명탐정의 조수 역할을 하는 보조적 인물(이것은 나중에 등장한 홈즈의 친구 왓슨의 이름을 따 ‘왓슨 역’이라고 불리게 된다), 한 수 아래의 경찰, 고급스러운 유머, 그리고 논리적인 해결과 의외의 범인 등은 미스터리 작품의 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뒤팽은 두 개의 살인사건에서 특별한 보수를 원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했지만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편지를 찾아낸 후 사건 담당자인 경찰국장에게서 사례금을 받아내 사립탐정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뒤팽의 모델은 실존 인물이었던 프랑수아 비도크라는 것이 정설이다. 프랑스 출신의 범죄자였으며 훗날 범죄수사국의 책임자가 되는 비도크는 현직에서 은퇴한 뒤 회고록을 집필해 포를 비롯한 비슷한 시기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뒤팽은 비도크의 뒤를 따르는 데 만족할 수 없었던지 그에 대해 ‘육감도 끈기도 좋았지만 사고(思考)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모르그 거리의 살인)’고 혹평한 바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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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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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직관 - 브라운 신부

 

코넌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 셜록 홈즈가 명성을 날리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무렵, 미스터리의 붐을 타고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가지각색의 탐정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찻잔 속 돌풍 정도의 화제도 되지 못한 채 금방 잊혀졌다. 이른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인기를 얻은 주인공들도 있지만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홈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가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브라운 신부는 그 흔치 않은 인물 중에서도 단연 첫 손에 꼽을 만한 인물이다.

 

 


가톨릭 신부라고 하면 위엄 있고 중후한 풍채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브라운 신부는 그런 모습과 한참 거리가 멀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단편 ‘푸른 십자가’(1911)에 묘사된 용모는 도무지 기품 있는 성직자나 명탐정의 분위기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 “작은 체격에 동부지방의 전형적인 멍청이처럼 생겼으며, 얼굴은 노포크의 명물인 푸딩처럼 둥글고 얼빠져 보이며… 눈은 북해(北海)처럼 흐리멍텅하다…커다란 모자에 낡고 커다란 우산을 자주 잃어버린다….” 이쯤 되면 평범하긴커녕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는 누구보다도 예리한 직감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추리법은 돋보기나 줄자를 이용한 과학적인 증거 분석보다는 직감적인 상상력에 의지한다. 즉 범인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면서 범인의 내면을 파악해내는 것이다(‘외모는 평범함보다 못 미치지만 두뇌회전은 날카로운 탐정’이라고 하면 TV시리즈로 방영된 ‘형사 콜롬보’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텐데, 실제로 콜롬보 시리즈의 작가 윌리엄 링크와 리처드 레빈슨은 브라운 신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사라딘 공작의 죄악'에서 (시드니 시모어 그림)

 

 

한편 성직자로서의 경력도 만만치 않다. 20여 년 전 미국에 머무르면서 시카고 교도소 부속 성당의 사제로 있었으며 귀국 후에는 에섹스, 캠버웰을 거쳐 런던 외곽의 사제로 있다. 한편 유일하게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바로 브라운 신부의 이름(first name). ‘아폴로의 눈’(1911) 서두에 잠깐 그의 신상이 다음처럼 언급된다. “캠버웰의 성 프랜시스 자비엘 성당의 J 브라운 신부님”. 하지만 단지 그것 뿐으로 ‘J’가 어떤 이름의 약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품에서는 그나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신부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벌(罰)보다 구원을 우선하는’ 성직자다운 정신이다. 브라운 신부는 정의를 추구하지만 자비로움을 잃지 않는다. 그의 사명은 범인을 체포하는 것보다 회개시켜서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 그가 거둔 최대의 성공이라면 유럽을 주름잡던 거물 도둑 프랑보를 개심 시킨 것.‘푸른 십자가’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신부와 마주치며 혼이 난 프랑보는 마침내 회개하고 사립탐정으로 전향해 신부를 돕게 된다.

 

알렉 기네스가 브라운 신부 역을 맡은 ''The Detective'

일부 미스터리 연구가들은 브라운 신부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고도 주장한다. 브라운 신부는 자신의 교구(敎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같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멕시코,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기괴한 사건들-비록 세상을 뒤흔들 만한 사건은 거의 없었지만-과 마주치며 또 놀랄 만큼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니 가히 신출귀몰한 인물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2000년 스포츠투데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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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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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 매부리코 '미로의 해결사'

 

셜록 홈즈

 

작품 속의 어떤 인물이 너무나 유명해지면 마치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여겨지거나 어떤 분야의 대명사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는 ‘돈키호테’,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 비유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주류 소설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탐정들이 등장했던 미스터리 작품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다. 마른 체격에 큰 키, 날카로운 눈빛과 매부리코, 그리고 예리한 추리력으로 상징되는 셜록 홈즈가 바로 그 주인공. 미스터리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그의 이름은 탐정의 대명사로서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주홍색의 연구’에서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홈즈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의사인 친구 왓슨과 함께 런던 베이커 거리 221b의 하숙집에 살면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의 머리 속에는 범죄와 관련된 모든 필요한 지식이 들어 있는 반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다. 취미는 바이올린 연주와 화학 실험. 정부의 모처에서 일하는 일곱 살 위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유일한 그의 혈육이다. 격투기나 봉술 등에 능할 뿐만 아니라 변장술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왓슨을 자주 놀라게 한다.

 

 

 

 

56개의 단편,4개의 장편에 등장하는 홈즈는 개개의 작품으로 물론 유명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에피소드는 자주 화제에 오른다.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는 그가 상대한 최강의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스위스의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잠시 알려졌다. 그러나 홈즈의 팬들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항의한 덕택에 결국 ‘빈 집의 모험’에서 부활해 늘그막까지 범죄자 혹은 독일 스파이들까지 상대하게 된다.


 

원작자인 도일은 홈즈의 사생활이나 가족 관계에 대해 별달리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지만,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불리는 홈즈의 극성스러운 팬들은 가공 인물인 홈즈를 실존인물처럼 여기면서 전기(傳記)를 만들 만큼 치밀한 연구를 했다. 윌리엄 베어링 굴드의 ‘셜록 홈즈 전기’가 그 대표적인 저작이다. 여기에는 홈즈가 실종된 기간 동안의 행적을 비롯, ‘보헤미아의 추문’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여가수 아이린 애들러와의 관계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한편 미스터리 연구가인 펠릭스 몰리는 모리어티 교수가 폭포에서 죽지 않고 '히틀러'라는 가명으로 독일에 숨어들었다는 설을 제시했으며, 미스터리 작가 렉스 스타우트는 왓슨이 여자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그가 창조한 탐정 네로 울프가 홈즈의 아들이라는 설을 은근히 흘리기도 했다.

 

 

홈즈의 모델은 도일이 다니던 대학의 스승 조셉 벨 박사였다. 벨 박사는 환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병명은 물론 생활 습관까지 알아맞힐 정도의 관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편 홈즈의 이름은 도일의 친구인 올리버 웬델 홈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셉 벨 박사

 

 

도일은 자신의 주인공인 홈즈에 특별한 저작권을 설정하지 않아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또는 조연으로 등장시키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의 주인공 뤼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단으로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켰으며, SF작가 폴 앤더슨은 ‘타임 패트롤’의 한 에피소드에 홈즈를 등장시킨다. 홈즈가 너무 유능한 까닭에 머나먼 미래에서 온 인물들조차 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어쨌든 홈즈의 팬들이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9세기의 신화적인 명탐정은 세기를 훌쩍 건너 뛴 21세기에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계속 작품에 등장할 추세다.

 

 

홈즈의 출현은 탐정물들에 대한 자극이 되었으며, 한동안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중요성을 두게 하는 역할을 했다. 홈즈가 영감을 준 모든 작품들을 열거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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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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