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人肉) 속에 묻힌 야광주(夜光珠)

L.J.비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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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줄기로 들어가기 전에 나의 내력을 잠깐 이야기하려한다. 나는 원래 보석 도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건으로 경찰의 손에 잡혔다가 개심을 한 뒤로부터는 도리어 ‘재거맨’ 탐정의 부하가 되어 충실하게 일을 보아오는 중이다. 내가 본시 보석 도적이었던 만큼 보석에 대하여 지식과 경험이 많으므로 그것을 이용하여 많은 보석 도적을 체포한 일이 있다. 이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


하인이 가지고 들어온 ‘머틀 캐드맨’이라는 명함을 보고 나는 “흥 마이너스 까닭으로 왔구나”하고 즉각하였다. 사실 말하면 만나보고 싶지가 아니하였다. 그것은 불쾌한 3년 전의 기억 4인조 일단의 보석전문의 도적이었었다. 머틀 캐드먼이라는 자가 그 중의 하나였었고 액튼 도에스라는 게 나였다.

경찰의 손에 잡히어 개심을 하여가지고 재거맨 탐정의 부하가 되기 전의 나는 그 4인조의 타락한 중에도 제일 타락된 사람이었었다. 그리고 좀 부끄러운 말이나 나는 캐드맨의 아름다운 얼굴에 적지 아니한 정을 끌리고 있었다.

3년이 지나는 동안에 나는 그를 있는 줄을 모르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갑가기 그의 방문을 받고 나니 묵은 상처를 다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를 만나지 아니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그는 분명히 마이너스 야광주 사건으로 왔으리라고 생각하니 좀 만나보고도 싶었다.

그때에 한참 유명하던 마이너스 대좌(大佐)가 비장하여 둔 야광주를 누구인지 훔쳐가 버린 것이 바로 몇 주일 전 일이었다. 그 야광주가 유명하고 값이 많은 만큼 경찰의 재거맨 탐정은 밤낮없이 수색을 하면서 나에게도 그 조력을 시키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잃어버린 야광주는 끝이 없는 바다 밑에 가라앉은 것처럼 종적이 묘연하였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매우 초조하던 판이라 불쾌는 하지만 캐드맨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가 방으로 들어올 때에 에로틱한 향내가 나의 코를 쏘며 모자 앞가리개로부터 늘어뜨린 엷은 베일에 싸인 그의 얼굴은 옛과 다름없이 매력과 요염한 자태가 그대로 갖추어 있었다. 

“무슨 특별한 일이 계십니까?” 하고 나는 아주 은근하고도 상냥하게 물었다. 그는 문을 자주 돌아보며

“저― 마이너스 야광주 사건으로 좀 뵈러 왔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 야광주를 찾으려고 하시지요? 그렇지만 그런 헛수고는 그만 두세요. 아무리 애를 쓰셔도 당신의 손으로 돌아오지는 못할 터이니까요.” 하는 그의 말소리는 적의와 반항을 머금고 점점 높아졌다. 나는 일부러 침착한 체 하느라고 꺼지지도 아니한 여송연에 불을 붙이면서 물었다.

“혹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당신에게서 그러한 충고를 듣는다는 것은 매우 의외인데요? 하필 그만쯤 한 것을 가지고 옛 동간을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공연한 헛수고를 하시지 말라고 충고를 하러 온 것이에요.” 하고 그는 침한 태도로 말을 하면서 똑바로 나를 건너다 보았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이에요.” 하고 나는 다시 물었다.

“네, 말씀하지요… 그 야광주를 누가 훔쳐갔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훔쳤어요. 그것은 너무 자세히 이야기해드릴 수는 없습니다마는 하여간 내가 수중에 넣은 것만은 사실이에요.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훔치는 데는 애도 무척 쓰고 어려운 일도 여러 번 겪었어요.”

“우리라니요? 그러면 당신이 혼자서 훔친 것이 아니라 동료가 있었다는 말씀이지요? 옛날의 동료…….”

“옛날 동료하고도 벌써 손을 끊었습니다. 이번 일은 다만 한 사람의 새 동료하고 한 것이에요. 그 새 동료라는 이는 당신도 아시겠지만 레온 리온삭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심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것을 보고 그는 승리나 한 듯이 입모습에 미소를 띠우고 다시 말을 하였다.

“물론 당신도 리온삭을 아시지요?”

“뭐 나는 이름만 들었을 뿐입니다. 내가 만일 전날의 ― 개심하기 전의 액튼 도에스일 것 같으면 혹 그의 이름을 듣고만이라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겠지요. 좌우간 당신은 좋은 동료를 얻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범죄 대왕이라고 할 만큼 교묘하고 대담하니까요. 그러나 인제 보십시오. 오래지 않아서 그 큰 고기가 경찰의 그물에 걸릴 테니까.”

이 말에 그는 깔깔 웃었다. 그 웃음에는 나의 신경을 꼬집는 조소가 품겨 있었다. 나는 지지 아니하고 비꼬아서 말을 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이 사건에 레온 리온삭이라는 대적(大賊)이 참례를 했으니까 마이너스 야광주를 도저히 찾아내지 못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 말을 해 주려고 일부러 찾아오시다니 매우 친절하십니다 그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단념하실 당신도 아니요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원래 그 야광주를 훔치려던 것은 내가 생각해낸 것이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마이너스 대좌의 따님과 결혼을 하시게 되었지요?”

나는 깜짝 놀랐다. 대관절 이 여자가 어디서 그 소식을 들었을까?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젊은 핏기운이 피어올랐다.

“더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그 야광주를 훔쳐가지고 아주 안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 야광주를 찾으러 든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 같으면 기어코 찾아낼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 때에는 당신은 죽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마음이 괴로워요. 그래서 당신더러 그 수색을 단념해 주시라는 것이에요. 아니 그것보담도 경찰의 방침을 딴 방면으로 돌려놓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 청을 아니 들어주시면 나는 당신이 전과자라는 것을 당신의 약혼자인 마이너스 대좌의 따님에게 말을 할 테야요.”

이렇게 말은 했으나 그는 나의 시선을 피하여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갑자기 반항하는 소리로 “당신에게는 그렇게 해도 관계치 아니하겠지요?” 하였다.

나는 단연코 결심을 하였다.

“네, 관계치 아니합니다. 한 번 결심한 것은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나는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가 한 말을 당신은 신용치 아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말은 나의 귀에 들어오지 아니합니다.”

“네, 이만치 말씀을 해도 듣지 아니하셨지요? 그러나 나중에 후회는 하지 마십시오.” 하고 그는 문 밖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나는 급히 그를 불러들여가지고

“잠깐 기다리십시오. 당신네는 이미 우리 수중에 엉켜 들었다는 것을 말해 둡니다. 당신은 내 앞에서 당신네가 마이너스 야광주를 훔쳤다는 것을 자백했지요? 하물며 탐정의 부하 앞에서… 만일 내가 지금 재거맨 탐정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을 체포하면 어쩔겁니까?”

“네, 그것은 재량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그 때에는 당신도 나와 한 가지로 절망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현재에 있어서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한 몸입니다. 편지를 마이너스 대좌의 댁에 하려거든 그것은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고 우선 전화로 하십시오 그려… 자 ― 내가 밀리센트 양을 불러 드리지요.”

나는 대좌의 집에 전화를 걸고 나의 약혼자인 밀리센트 양을 불렀다. 그 동안이 약 삼십 초 밖에는 아니 되는데 그는 평온한 체 하고 있기는 하나 얼굴에는 핏기가 없이 창백하였다. 그 새에 밀리센트 양이 전화 앞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밀리센트 양입니까? 네, 지금 나한테 어느 부인이 왔는데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하겠다니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나는 그를 돌아보며

“밀리센트 양이 나왔습니다. 이야기 하십시오.” 하고 수화기를 내어 주었다.

그는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그의 손은 이상하게 떨렸다. 그러면서 그는 수화기를 그의 조그만 귀에 대었다. 나는 무섭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면서 고요히 여송연을 피웠다. 그때 갑자기 짜그락 소리가 들리며

“아! 당신은… 당신은 비겁합니다.” 하고 울며 부르짖는 그의 소리가 들렸다. 그는 몸을 뒤틀면서 고민하는 것이 방금 쓰러질 것 같았다. 그것을 붙들어 주려고 가까이 가는 나의 손목을 꽉 흐트려 쥐었다. 그는 대리석 같이 해쓱하여진 입술을 열어

“나는… 나는” 하며 혼잣말같이 목을 흐느끼었다.

이 경이의 순간 ― 그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절정에 이르른 순간 ― 에 나는 그가 나와 밀리센트 양 사이에 성립된 약혼을 방해하려는 연극이나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나는 격렬한 혼란을 느끼면서 나의 팔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에게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만쯤한 연극으로 마음을 바꿀 내가 아닙니다.” 하고 냉냉하게 말을 하였다. 그런즉 그는 애원하듯이 눈물을 흘리며

“여보세요 나를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나를 당신과 같은 바른 길로 구해내 주세요. 당신밖에는 힘을 입을 곳이 없습니다.”

그는 장갑을 긴 손으로 자기의 목을 누르며 소리를 느끼어 울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넉넉히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매 나는 몸서리가 끼쳤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흐느끼며 말을 하였다.

“당신은 죄의 구렁에서 헤어 나왔습니다. 당신은 그 죄의 구렁에 나 혼자만 남기어 두었습니다. 나도 구해내 주세요. 나는 아무리 몸부림을 하여도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주위의 힘이 너무 큰 까닭이어요. 얼마나 내가 괴로워하는지 당신은 아십니까? 죄로 수를 놓은 과거, 허위에 찬 현재, 광명이 없는 미래… 아! 나는 어찌하면 좋아요. 나는 지금 끊임없는 공포에 싸여 밤이면 꿈도 아니면서 감옥 문이 덜크럭 열리는 소리와 간수의 발소리를 듣습니다.”

그는 무서운 환영을 보지 아니하려는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이 이상하게도 또다시 나의 마음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그 속에서 떠나버리면 그만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물론 평범한 말인 줄은 나도 알았다.

“그것이… 그것이 당신의 말입니까?  나는 지금 물 속에 빠져 있습니다. 당신이 손을 빌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찌할 수가 없어요.”

그는 구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가 비틀비틀하면서

“나는 가겠습니다.” 하고 걸어 나갔다. 그 말소리는 싸늘하고도 구슬프게 나의 귀에 울리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리들은 악운을 타고 났습니다.”

그는 다시 한 줄기 눈물을 두 볼로 흘렸다. 나의 마음은 한량없이 슬펐다.

“그러나 마이너스 야광주는 아무리 활동을 하셔도 당신이 찾아내지 못합니다.” 하고 문 앞까지 나아간 나에게 그는 말을 하였다. 

“그 보석에 대해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리온삭은 표면상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사진기술이 아주 놀라우니까요. 어디라고 말씀해드릴 수는 없고 하여간 이 근처에서 1마일 가량 되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리온삭의 사진관 유리지붕이 새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집의 주인이 일꾼을 불러다가 지붕을 고치던 날 웬 손님이 리온삭을 찾아왔습니다. 그때에 야광주를 그는 몸에다 지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손님이 아무리 보아도 탐정 같아서 어디다가 숨겨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의외의 사건 하나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유리지붕 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인부가 어찌하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촬영장으로 떨어져가지고는 왼편 겨드랑이 밑에 유리조각으로 큰 상처를 내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리온삭은 외과수술을 잘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는 얼핏 달려들어 부상한 사람을 딴 방에다 누이고 상처를 꿰매어 주었습니다. 상처를 꿰매면서 그는 응접실에 있는 손님을 꼭 탐정으로만 알고 야광주를 감추려는 판인데 문득 생각하고 그 야광주를 가제에 싸서 그 사람의 상처 속에다 집어넣고는 꿰매어 두었습니다. 그 사람은 물론 그 때에 기절이 되었댔으니까.”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랍고도 의혹에 찬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 참 이상한 이야기로군요.”

“뭐 이 말을 꼭 믿으시라는 것은 아니니까 신용 여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고…” 하며 그는 내가 반신반의하는 것을 좀 불만히 느끼는 듯하였다.

“좌우간 그 다음은 어찌 되었나요?”

“오래지 아니하여 그 인부는 정신을 차려가지고 자기가 유리에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퍽 놀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수술을 받고 난 뒤라 과히 아프지도 않고 해서 다음 날 다시 와서 약을 바르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리온삭은 겨우 안심을 하고 나서 응접실에서 기다리던 손님한테로 왔는데 실상 알고 보면 그 손님이 탐정도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그 인부는…?”

“그 인부가 어디론지 가 버리고 보이지를 아니해요.”

“응?! 웬일인가요?!”

“자기의 상처 속에 야광주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던지… 그렇잖으면…….

“그러나 사람이 저절로 없어져 버리는 법이야 있나요?” 하고 나는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에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사실로 없어졌단 말씀이에요. 리온삭이 아무리 눈을 뒤집어쓰고 찾아다녀야 찾아낼 수가 없어요.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이 야광주를 발견한 것 같은데 리온삭은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해요. 그의 말을 들으면 야광주를 숨겨둔 상처의 수술은 아주 교묘해서 아무라도 그것을 알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 사람을 찾아내어야만 문제가 해결이 될 텐데 당신이 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리온삭보다 먼저 찾아보시지요.”

“아주 재미있는 사건인걸요.” 하고 나는 진정으로 흥미를 느끼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요! 그러나 리온삭은 위험한 사람이니까 될 수 있으면 그 주위에 가까이 가지 마시고 또 아까 말씀한 경찰에 고발하신다는 그런 것은 그만 두십시오.”

“나는 당신을 괴롭게 할 거은 결코 아니하겠다고 여기서 맹세하겠습니다.”

이 말에 그는 나의 얼굴을 고요히 바라보다가 아무 말이 없이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 뒤에 이때껏 나는 그를 다시 만나보지 못하였다. 나의 눈에는 지금도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생각건대 그는 헛된 행복의 그림자를 단념한 듯하다.


*


재거맨 탐정은 주먹을 부르쥐면서 소리를 질렀다.

“레온 리온삭이라면 범죄의 제왕이다. 그 전기뱀장어 같은 녀석을 묘하게 잡아넣을 사람은 지금의 경찰에는 없을 것이다.”

“마침 선생님의 말과 같이 묘하게 빠져나가는 사람입니다.” 하고 웃으면서 나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나는 탐정에게 머틀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부 말했으나 차마 그 성명까지는 일러주지 못하였다.

탐정은 곰곰 생각하면서

“용이치 않은 일이다. 리온삭에게도 역시 용이치 않은 일이겠지… 그가 보통 도적놈이면 벌써 옛날에 붙잡혔겠지만 그의 행동은 그의 말과 한 가지 되어 맞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면밀하고 교묘한 사내가 어찌 그 인부를 놓쳤을가?”

“위험 경우기 때문에 놓친 게지요.”

“그 인부가 틀림없이 자기의 살 속에 그와 같은 야광주가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게야… 그래서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러한 횡재를 한 것을 다행으로 슬그머니 달아나 버린 게지…”

“대개 그렇겠지요.”

“그러나 리온삭은 단념을 아니 할 걸… 땅을 파헤치고라도 찾아낼 테야… 아마 신문광고를 이용하겠지.”

“아―니 리온삭은 그렇게 섣불리는 아니할걸요?”

하고 나는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그 밖에는 더 방법이 없지 않나? 나는 지금부터 신문 광고를 좀 조사해봐야겠군… 마이너스 야광주라는 것보담도 리온삭이라는 고기가 크니까…”

“재량대로 해 보십시오만은 헛수고일 것 같습니다.”

사실 재거맨 탐정은 실패를 하였다. 일주일이 지나 그를 찾아가니까 실패를 했다고 투덜거리기만 하였다. 나는 그에게 나의 계책을 이야기했다.

“내 계책을 들어보십시오. 리온삭 같은 큰 고기는 미끼가 없이는 낚여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저편의 광고를 기다리는 것보담도 우리가 광고를 내는 게 좋습니다.”

“광고를 내다니?”

“별 것이 없어요. 지붕 고치는 인부를 찾는 짧은 광고만 내면 그만입니다… 주소 성명이 분명치 못하나 어느 달 어느 날 ― 즉 보석을 잃어버리던 날로부터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하고… 그리고 그 인부는 어느 사진관의 지붕을 고치다가 미끄러져서 큰 부상을 당했는데 그 뒤로 간 곳이 없으니 아는 사람이 그를 찾아주면 사례를 하겠다고… 이렇게 광고를 내어 놓으면 리온삭이 볼 것 아닙니까? 보고는 하하 이 광고를 낸 사람은 마이너스 야광주에 관해서 인연이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호기심으로 찾아올 것이 아닙니까?”

“옳다 옳다… 자네 말이 그럴 듯 허이… 그러면 그 광고주는?”

“내 이름으로 해 두지요.”

“됐어 됐어… 광고를 보면 궁금해서라도 찾아올 터란 말이야. 자 ― 그러면 오늘 저녁 석간부터라도 광고를 내지.”

“네… 그래서 그가 찾아온다든지 부하를 보낼지도 모르나 하여간 면회를 하기 전에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어놓기로 하지요. 잘하면 그 당장에서 체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것 참 썩 묘― 하다 그럴 거야…” 하고 탐정은 좋아서 날뛰었다.

“내가 전화를 걸면 곧 오셔야 합니다. 큰 모험이니까요.”

우리는 마주 앉아 애를 써가며 광고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그날 석간에 광고를 내었다.

며칠이 지나갔으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우리는 그래도 계속해서 광고를 내었다.

과연 일주일쯤 해서 돌연 문제의 인물인 리온삭이 나를 찾아왔다. 다행히 나는 집에 있었음으로 뛰는 피를 억제하면서 경찰서의 재거맨 탐정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마침 탐정이 집에 없고 사오십 분 지나지 아니하면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대답이 왔다.

나는 할 수 없이 돌아오는 대로 곧 와 달라는 부탁들 하여 놓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그와의 면회 시간을 길게 끌려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바로 이어 그의 정체가 내 앞에 나타날 때에는 나의 혈관에는 터질 듯이 피가 뛰놀았다.

그는 조그마한 신사로 수염이 곱고 눈은 맑은 하늘과 같이 영롱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보통 사람보다 특별히 다른 점이라고는 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고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은근히 인사를 하고 나서 의자를 권하였다.

“네, 좋습니다.” 하고 그도 은근히 대답은 하나 앉으려고는 아니하였다. 다만 그러고 무엇인지 이상스러운 듯이 나의 얼굴을 쓰윽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광고가 처음 나는 날부터 나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던 게다.

“그 광고 내신 것을 보았는데…” 하고 수염을 만지면서 하려던 말을 급히 끊었다.

“네, 그 광고를 보고 오셨습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판에 전화가 왔다. 재거맨 탐정이나 아닌가? 그일 것 같으면 전화를 건다던가 꾸물거릴 리가 없었다.

그때 경우에 나는 리온삭에게 등을 향할 수가 없었으므로 전화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그는 숭글스럽게 웃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하고 주의를 시켜주었다. 

“관계치 않습니다. 두어 두십시오.”

그는 또 싱긋 웃었다. 

“그렇습니까…”하고 그는 외투 포켓 속에 두 손을 집어넣고 아무렇지도 아니한 듯이 이야기를 하엿다. “나는 어디선지 당신을 한 번 본 듯 한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나의 사진관에서 본 듯한데요.”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때에 당신이 미끄러져서 우리 지붕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네… 그때야말로 경을 톡톡히 쳤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인부로 가장하고 나의 집에 들어 온…….

“틀림없습니다. 그 때의 인부가 즉 나입니다.”

그는 숨이 막히는 듯이 “응…” 하였다. 격렬한 전화 벨소리는 그 때에 이미 그쳤었다. 

“그래 그 때의 상처는 어찌 되었습니까?”

“염려하신 덕으로 다 나았습니다.”

“그건 잘 되었군요. 나는 퍽 걱정을 하면서 당신을 찾아 다녔지요? 그 때에 당신은 수염을 기르셨지요? 지금 보니까 10년은 젊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상처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아니합니까? 살이 뻣뻣하지나 아니해요?”

“약간 그렇지 아니한 것도 아닌데 다시 간단한 수술을 받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응?! 아무렇지도 않다!?”

“자 ―보십시오.” 하고 나는 포켓 속에서 한 장의 종이쪽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그가 종이쪽 위에 시선을 내려트릴 때에 도어 핸들이 가볍게 움직였다. 탐정이 온 게지… 하고 나는 속으로 안심하였다. 

리온삭은 갑자기 소리를 높여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액튼 도에스 씨의 청으로 씨의 지시를 따라 조그마한 상처를 수술하였고 그 속에서는 한 개의 야광주를 꺼내었다… 의사 존 게팅”

그는 종이쪽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그의 눈은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도에스 씨의 청으로…랬으니 그러면 당신은 그 속에 야광주가 들은 줄을 알았습니다, 그려?”

“네… 어느 기회에…”

“응… 그 년이 이야기를 했구나! 그 년이지요?”

“절대로 누구라는 것은 말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명은 내가 얻어 가겠습니다.”

그 때에 나는 포켓 속에 집어넣은 그의 손에서 피스톨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지 말고 마음을 진정하구려… 우리 선생님 재거맨 탐정과 부하가 지금 당신의 뒤에서 대령하고 있으니까요.” 이 말에 그는 으르렁거리며 덤벼들었다. 동시에 네 사람의 굳센 여덟 개의 팔이 그의 팔을 움켜 쥐이고 수갑을 채웠다. 


한 시간 뒤에 나는 탐정에게 노란 마이너스 야광주를 내어 주었다. 게팅 의사의 증명서와 겨드랑의 상처가 없으면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정말이라고 믿지는 아니할 것이다. 

사실 나는 머틀이 와서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리온삭을 의심하여 왔다. 그럼으로 그와 공부하고 있는 머틀이 방문 온 것을 보고 그가 마이너스 야광주 사건으로 온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전부터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리온삭의 집안을 뒤져 보려고 하던 차에 다행히 유리 지붕을 고친다는 말을 듣고 인부로 가장하고 뛰어 들어간 것이었었다. 그러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고 그것이 또 다행으로 내 살 속에 야광주가 기어 들어오게 된 것이었었다. 그것도 머틀이 와서 이야기를 해 주기 전에는 꿈에도 생각지를 못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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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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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이변(黑猫異變)


윤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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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장때를 당한 채소시장의 시세는 한없이 좋았다. 산같이 쌓아놓은 무, 배추, 그리고 고명 등속은 바람에 검불 날리듯 순식간에 없어지곤 하였다.

영수도 새벽같이 모든 사람 틈에 섞이어 무와 배추를 팔았다. 오늘에 한해서 영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팔았을 뿐 아니라 이익도 다른 날보다 특별히 많이 남아서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한 웃음이 가득하였다.

영수는 채소를 다 판 다음 집으로 돌아가려고 수레에 밧줄을 걷어 올리고 있을 때

“여보게 영수!”

하고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영수 옆에서 미나리를 팔고 있던 친구 순태였다.

“자네 벌써 다 팔았나?”

“다 팔고 집으로 가려는 참일세.”

“나도 다 팔았네.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일상 그렇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다른 날보다 쉽게 팔리고 돈도 더 남았네!”

“나도 오늘은 심심치 않았네.”

두 사람은 오늘의 장사에 한없이 만족을 느낀 듯이 껄껄 웃었다. 순태는 지게를 걸머지며 수레에 끈을 얽어매고 있는 영수를 돌아보며

“여보게 오늘은 재미를 봤으니 가다 한 잔 냄세!”

이렇게 영수의 술 비위를 충동하였다.

“하여간 누가 내든지 같이 가게.”

두 사람은 같이 걸었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순태는 지게를 지고 영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2.


영수는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가 규모가 있고 얌전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고로 일상 술잔을 대할 때마다 그 정도에 넘치지 않을 것을 늘 경계하여 왔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실수를 한 일이 없었다.

더욱이 영수가 새로 장가를 든 다음부터는 그리 많이 먹지 않던 술조차도 입에 댈 겨를이 없었다. 일찍이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일가에게 얹혀 자라나서 보통학교를 겨우 마친 다음부터 전혀 채소장수로 나선 까닭에 이제 와서는 채소장사로서의 경력과 수완도 상당히 있었고 더욱이 혼인한 다음부터 자기에게 한없이 순종해주며 넘치는 사랑과 친절을 다해 주는 아내와 더불어 남같이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생긴 후로부터는 더욱이 그러하였다.

천생으로 고운 얼굴을 타고난 그의 아내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날 때마다 그는 장에서 물건을 팔고는 한달음에 집으로 가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집안 살림도 영수의 부지런으로 말미암아 그리 궁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기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점점 고양이를 몹시 사랑하여 좋아하는 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검정고양이까지 집안에 기르고 있다.

이 고양이를 집에 기른 다음부터는 아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장에서 채소를 팔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고양이를 주려고 고기를 사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이와 같이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기를 사다 줄 적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대해서 감사와 즐거움에 넘치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영수는 이같이 아내가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 보고 싶었고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천성으로 좋아하지 않던 고양이가 자기 앞으로

“냐옹! 냐옹!”

하고 기어오면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자기 손으로 주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만 아주 고양이하고 숙친(오래 사귀어 아주 가까움)하여져서 으레 집에 들어올 때면 고양이 먹을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자기 무릎에 고양이를 얹어 놓고 어루만지며 고기를 먹이고 아내의 사랑스런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던 행복이었다.

영수가 신혼살이를 시작한 다음부터 집안 살림은 더욱 늘어갔으며 고양이도 이 두 양주 틈에서 행복한 일 년 동안을 그 집안 자식같이 그들의 재미있는 신혼 자리 속에 길러졌다.

이와 같이 신혼살이에 재미가 가득한 영수는 더욱이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건실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장에서 채소를 팔아 많은 이익을 본 다음 영수가 한 동리 사는, 더구나 소학교까지 같이 졸업을 한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수레를 끌고 오래간만에 술집으로 향하고 걸었던 것이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걸으며 지게를 지고 옆에 서서 오는 순태를 돌아보며

“우리가 아마 같이 술 먹어 본 지도 오래되었지!”

하고 오래간만에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한 잔을 서로 나눌 기쁨에 넘치는 말을 꺼냈다.

“여보게 오래되고말고. 그게 벌써 일 년이 되었네그려. 아― 자네 장가들던 날 우리가 서로 같이 한 잔 먹고는 오늘이 처음일세그려.”

“참 그렇게 되었든가?”

“자네야 원체 얌전한 사람이 장가든 다음부터는 더 얌전해져서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 동안에도 꾸준히 먹었네 만은 도무지 자네하고 한 잔 같이 할 기회가 없었네그려!”

“나는 그 동안 통 술이라고는 대질 않았네.”

“그렇겠지. 아마 자네 내무대신이 어지간히 딱정뗀(딱장대. 성질이 온순한 맛이 없이 딱딱한 사람)게지― 이사람. 하―하―하―”

“이 사람아 어느 미친놈이 계집에게 매여서 술 한 잔도 못 먹는단 말인가! 그렇지만 단 두 내외 사는데 내가 밤낮 술이나 먹고 집안 살림을 돌아보지 않아보게, 집안 꼴이 어떻게 되나!”

“그건 참 옳은 말일세! 그렇지만 자네같이 얌전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나 그렇지, 나는 암만 그러려도 그 마음이 사흘을 못 가네!”

같은 친구였지만 영수의 가라앉고 얌전한데 비해서 순태는 방탕한데 가깝고 성질이 욱하는 데가 있고 호탕한데 가까웠다.

이같이 두 사람의 성질은 정반대로 달랐으나 그들의 우정(友情)은 한없이 두터웠다.


3.


그들은 이와 같이 수작을 하는 사이에 벌써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우정에 넘치는 정다운 대화 속에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목적까지 잊은 듯하였다. 이와 같이 이야기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달은 듯이 순태는 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고

“참 여보게,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 잔 먹을 참인데 어디로 갈까?”

“나야 술집을 다니지 않았으니 어디가 좋은지 알 수 있나!”

“그럼 내 앞장을 섬세. 모처럼 먹는 술에 시시한 ‘다찌노미(立飲み. 선 채로 술이나 음료수를 마심)’야 되었나”

그들은 시외에 떨어져 있는 어느 조그마한 식당으로 갔다. 순태는 서슴지 않고 식당으로 영수를 끌고 들어갔다. 순태는 이런 곳에 매우 익숙하였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이런 곳에 들어선 영수는 한없이 서툴렀다. 더욱이 밤을 낮삼아 영업하는 이런 곳에 낮의 풍경은 너무나 질서가 없고 정이 붙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 밉지 않은 계집이 손가락으로 찌르면 터질 듯한 복슬복슬한 두 볼에 웃음을 머금고 영수에게 은근히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순태와 영수는 한 자리에 걸터앉아 몇 잔의 술이 오고가고 하였다. 영수도 원래 먹지 못하는 술이 아닌 고로 어느 정도까지 그의 정신이 몽롱하도록 마셨다.

그 옆에 앉아 말없이 술을 따르고 있던 여자는 영수의 수줍은 태도가 우스운 듯이 흘금흘금 바라보며 술을 따라주었다. 

영수는 몽롱한 가운데 자기 옆에서 웃음을 머금은 여자의 눈초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몽롱한 중에도 멋쩍은 듯이 그의 시선을 피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이 가득한 여자의 추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영수의 마음은 몽롱한 중에도 아득하였다.

영수는 마음으로 그 여자의 시선을 피하려하면서도 시선은 그 여자에게로 가곤 하였다. 

몽롱한 그의 눈 속에 보이는 그 여자의 자태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무슨 차마 하지 못할 일이나 하는 듯이 그 여자가 자기를 보지 않는 사이에 그 여자의 얼굴을 도적질하여 보다가는 그 여자의 정이 가득히 실린 시선과 마주치곤 하였다.

이와 같이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영수의 얼굴은 상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행으로 그의 얼굴이 술기운으로 인하여 벌겋게 상기가 되어 있었던 고로 아무도 그의 얼굴이 유난히 붉어지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이를 따라 그의 가슴은 한없는 파동이 일어나곤 하였다.

“아이고 퍽 얌전도 하셔. 이렇게 얌전한 분의 부인은 퍽 행복이겠지!”

영수 옆에서 정다운 시선을 던지는 그 여자는 영수의 무릎에 자기 손을 얹어 놓으며 반딧불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풍겨 오는 여자의 살내음새, 그리고 성욕을 충동하는 듯한 화장품 냄새에 섞여 미적지근한 그의 숨결이 영수의 턱밑으로 풍기며 그의 정신을 한없이 유혹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처음 당한 영수는 다만 정신이 아찔할 뿐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그 여자에게 무어라 수작 한 마디 하여 볼 용기조차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여자의 정이 가득한 눈초리에 녹아서 그는 다만 의식 없이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얼마를 마셨는지 희미한 정신을 가다듬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전등불이 환하게 방 안에 비치고 있었다. 텁텁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은 틀림없는 자기 집이었다.

“어떻게 집에를 왔을까?”

그러나 어떻게 집에 왔는지 조금도 그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입술은 바짝바짝 타고 목이 한없이 탈 뿐이었다.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아서 방에서 비치고 있는 전등불이 뿌연 속에서 꼬리가 달려 보였다.

“취하면 댁에까지 내가 바래다 드리지요.”

그의 귀에는 아직도 이런 여자의 음성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 가득한 눈이 도저히 잊혀 지지를 않는 것 같았다.

“취해서 못 가시면 내 방에서 주무시지!”

이런 말도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도 그는 한없이 목마른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자기가 하고 온 일이 마음에 찔리는 것 같아서 그는 선뜻 자기 아내에게 물을 달라고 호기 있게 할 용기가 없었다.

“술이 깨면 목이 마를 줄 알고 물을 줄 것이지.”

이렇게 원망 비슷하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도 지나가는 순간의 생각이었다. 영수는 땡한 골치를 붙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아내가 차려다주는 밥상을 대하였다.

“웬 술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도록 잡수시우.”

아내가 밥상을 갖다 놓으면서 이렇게 원망하듯 말하는 것이 더욱 미안하였다.

“오래간만에 누굴 만나서 그랬어.”

변명 비슷하게 이렇게 말을 하는 그는 몇술 밥을 뜨는 척하고는 수레에 채소를 싣고 장으로 갔다.

그가 채소를 다 팔고 났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시장에서 와글와글하고 물 끓듯 하던 사람도 하나씩 둘씩 툭툭 털고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영수는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사랑스러운 자기 아내가 집에서 기다릴 생각보다도 어제 식당에서 다정한 추파를 던져주던 그 여자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영수가 이같이 색다른 여자를 대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자기 아내보다도 이 색다른 여자에게로 마음이 이상하게 끌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에서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어떠한 구실이든지 만들어가지고는 식당으로 그 여자를 찾아갔다. 물론 그가 이런 곳에 다소간이라도 경험만 있다면 그 여자가 진정으로 자기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아닌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았을 것이지만 오늘까지 얌전하였고 마음이 단순한데다가 순정인 그는 그와 같은 것을 알아 볼 여지가 없었다.

그의 아내도 요새 와서 남편이 먹지 않던 술을 매일같이 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퍽 의심스럽게 여겼지만은 그 남편이 백방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에 흐지부지 속아오곤 하였다.

그것도 남편이 그전부터 술을 좋아하거나 불량한 사람 같으면 언짢은 소리도 하고 못 먹게 말려도 볼 것이지만은 요즈음 와서 별안간 술을 입에 대며 밤마다 나가는 것이 난봉이 나서 그러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전에 없던 옷 모양도 내고 세수도 다시 하며 수상한 행동이 보일 때 그 아내가 참다못해서

“아니 어디를 가게 이렇게 야단이요”

하고 물으면 영수는 다만

“친구의 집에 무슨 날이 되어서 가―”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장사를 더 크게 해 보려고 누구에게 돈 말을 했더니 만나자고 그래서”

할 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아내는 고지식한 남편의 말이라 그대로 믿어오게 되었다.

오늘도 영수는 저녁을 먹은 다음 부랴부랴 옷을 입은 다음 식당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가 식당을 향하고 걷는 순간만은 장사도 집안 살림도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확실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만 처음 날 자기에게 한없이 친절히 해 주고 은근히 정다운 뜻을 보여준 그 화자라는 여자가 그리울 뿐이었다.

영수는 한달음에 식당으로 달려갔다. 화자는 자기를 기다리는 듯이 반기며 맞이하여 주었다. 은근히 영수의 손을 붙잡고

“어서 오세요.”

하고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그 여자의 태도는 확실히 이 순진한 영수의 영혼을 불사르고 남을 만하였다.

“나는 꼭 당신이 오실 줄 알고 기다렸어요.”

화자가 이와 같이 정을 가득이 싣고 하는 말은 더욱이 영수를 황홀케 하였다.

붉고 푸른 전등 광선이 착잡하게 섞여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그 속의 풍경은 한없이 음침하고 더욱이 저급적인 레코드의 속된 유행가의 음향이 한데 섞여 나오는 그 속의 공기는 한없이 추잡하였다. 그러나 영수는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이 황홀 찬란한 그 판에 자기의 영혼까지 불사르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즐거운 것이 일하고 밥 먹고 아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이런 다음부터 영수는 거의 날마다 이 식당에 가게 되었다. 화자라는 그 여자도 처음에는 이 낯모를 부수수한 손님에게 대해서 될 수 있는 데까지 갖은 교태를 다 부려서 그의 마음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이 거듭함을 따라 영수의 태도가 점점 자기에게로 가장 진실하게 끌려오는 것을 알고 화자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그리고 공연한 짓을 하였다 하는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영수가 돈 있는 집 자식으로 양복이라도 번드레하게 입고 돈냥이라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었다면 화자로서도 그릴 이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수는 보잘것없는 채소장사요 게다가 아내까지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안 화자로서는 영수가 아무리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을 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돌아올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영수는 이 화자라는 여자를 보기 위하여 이 식당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갔으나 화자의 얼굴은 차차로 보기 드물었다. 어떠한 때에는 다만 억지로 왔느냐는 인사를 하고 자기 옆에 말없이 앉았을 따름이요, 그렇지 않으면 영수의 존재는 잊은 듯이 다른 손님하고 앉아서 갖은 교태를 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꼴을 당한 영수는 참다못하여 화자를 붙잡고 

“너 왜 요새 이렇게 내게 무정하게 구니”

하고 원망하듯이 말하면

“아이고 왜 이리 속을 못 채리우, 이런 곳에 있는 년이 어떻게 당신 비위만 맞춘단 말요.”

하고 툭 쏘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이것이 이런 데 있는 여자의 버릇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은근한 마음이 있으면서 같이 있는 여자의 면목도 있고 그리고 여러 손님도 있는 관계로 짐짓 마음에 없는 말로 여러 사람의 이목을 잠깐 속이는 수단이거니 하였다.

자기의 밝지 못한 것을 모르는 영수는 이러한 화자의 모든 태도를 자기의 편리하도록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이 화자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와서는 아무리 이곳에 와도 화자의 그림자가 차차 자기 앞에서 멀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화자의 얼굴조차 얻어 볼 수 없었다.

자기의 순정을 다해서 한 달 동안이나 사랑하는 아내도 살림도 다 내던지고 사랑하던 화자로부터 한 마디 따뜻한 말도 들어보지 못하고 냉대를 당한 영수는 분노와 절망의 불길이 가슴 속에 터질 듯이 치밀어 올라왔다.

원망과 저주에 넘치는 술잔을 한없이 들었다. 점점 흥분해가는 그의 마음은 무엇이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같이 되었다.

한 달 사이에 영수의 마음은 거칠고 한없이 불량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기르고 있는 검정고양이만은 이와 같이 변해 가는 주인을 조금도 변치 않고 따르고 있었다.

영수가 상신(喪神: 병이나 충격 따위로 정신을 잃음)이 될 만큼 술을 먹고 잔뜩 흥분이 되어 들어오는 주인을 본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고 가까이 갔다. 그러나 한없이 흥분된 영수는 식당에서 화자에게 받은 분풀이를 고양이에게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에 한해서는 자기 앞에서 얼씬거리며 덤비는 고양이조차 한없이 밉게 보였다.

그리하여 원망이 뭉쳐진 그의 정신은 다만 세상이 귀찮다는 듯이 쫓아오는 고양이를 발길로 밀쳤다.

그러나 의식 없는 동물만은 주인이 화가 났든 안 났든 알 까닭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만

“냐옹― 냐옹―”

하고 발로 밀치고 가는 주인에게 기어올랐다.

“엣― 귀찮아!”

“캑―”

순간이었다. 영수는 기어오르는 고양이를 발길로 내질렀다. 힘센 발길에 내질린 고양이는 비명을 지르며 한간 밖에 떨어졌다.

이같이 혹독하게 주인의 발길에 채인 고양이는 얼마동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고양이가 그만 아무데나 피해버렸으면 관계없었을 것이나 아무 지능(知能)을 갖지 못한 동물이라 오늘까지 주인이 자기에게 극진히 친절히 해 준 관계로

‘오늘 주인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내가 주인에게 잘못한 게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한 고양이는 더욱 교태를 지어가지고 발길로 찬 주인의 앞으로 기어가서 옷자락에 매달리게 되었다.

“에잇― 경칠 놈의 것”

영수는 이 끈기 있게 덤비는 고양이에게 아까 식당에서 당한 원망의 불길과 아울러 모든 분풀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덤벼드는 고양이의 멱줄띠를 죽어라 하고 쥔 다음 몇 번을 휘둘러놓고는 고양이는 한 손에 쥔 채 도마 위에 놓여 있는 식도를 들어 고양이의 면상을 갈겼다. 

불의에 이 무서운 참형을 당한 고양이는 마지막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고 죽을힘을 다해서 영수의 손에서 빠졌다.

이 심상치 않은 소리에 놀란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서 있는 남편의 흉한 꼴을 아찔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고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오?”

“……”

입을 다물고 서 있는 남편의 얼굴에는 처참한 살기가 가득하였다. 그의 아내는 다만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이 꼴을 바라볼 뿐이었다.

영수는 별안간 먹은 술이 홱 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의식이 분명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제정신이 차차 돌아오기 시작하였을 때 자기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식도가 쥐여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손에서 떨어지는 칼 소리와 아울러 영수는 후회에 넘치는 눈물이 두 눈에서 반짝였다.

그 이튿날 영수는 고양이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다. 그리고 화자의 일도 잊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가 한없이 귀여워하는 고양이에게 그와 같이 무참한 짓을 한 것이 한없이 후회가 났다. 고양이는 그 다음부터 한 눈이 멀어버렸다. 그때 식도로 갈길 적에 불행하게도 바른편 눈을 맞았기 때문에 영수의 친절한 치료로 낫기는 했으나 영영 한 눈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글쎄 여보 말도 못하는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 꼴을 만들어 놓는단 말요.”

아내가 애처로운 듯이 이렇게 자기를 보고 원망을 할 때마다 영수는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나!”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영수는 그날부터 고양이가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기를 사다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혼난 고양이는 이 주인만 보면

“냐옹! 냐옹!”

하고 슬슬 피하고 오질 않았다. 영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부르면 더욱 피하고 오질 않았다.

“내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돈을 들여가며 좋은 것을 사다주고 하는데도 오질 않아!”

이러한 섭섭한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밥상에 놓여 있는 밥을 고기국물에 비벼서 주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이 주는 밥을 먹지도 않고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

그의 측은한 마음은 차차로 미움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고양이의 이같이 야멸찬 짓에 잊어버렸던 화자의 얄미운 행동이 이 고양이와 같이 연상하게 되었다. 

영수가 한때의 잘못으로 이같이 고양이로 하여금 영원한 불구(不具)를 만들어 놓고 한없는 후회에 가슴을 태우며 갖은 친절을 다 해주었으나 주인의 이 친절을 받지 않고 얄밉게 구는 고양이를 밉게 보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수가 특별히 고양이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늘도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술을 먹고 들어왔다.

그의 술 취한 몽롱한 눈에 먼 눈을 한 발로 어루만지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 눈을 깜짝거리며 술 취한 영수를 원망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영수의 몽롱한 머릿속에는 고양이의 꼴이 측은하게도 보였으나 자기에게 너무나 쌀쌀히 하는 것이 끝없이 밉게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정신은 또다시 맹수같이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경칠 놈의 고양이, 그렇게 해 주어도 그래?”

영수는 또다시 미친 사람 같이 날뛰어 고양이에게 덤벼들었다. 이 무서운 습격을 당한 고양이는 도망질을 쳤다.

“요놈의 자식 놓칠 줄 아니?”

쫓겨 가는 고양이를 영수는 마치 맹수와 같이 날뛰며 쫓아갔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영수는 쫓아가서 발로 밟은 다음 고양이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무서운 경험을 가진 고양이는 발로 비비며 마지막 용기를 다 내서 빠지려 하며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요놈의 자식 살려둘 줄 아니?”

한없이 흥분한 영수는 고양이 모가지를 움켜쥔 채 마루 아래로 내려가서 댓돌에다가 힘껏 다해서 내동댕이쳤다.

“캑!”

하고 비명을 지른 고양이는 댓돌에 부딪친 채 두서너 번 버둥버둥하다가 그만 아무 소리도 없고 말았다. 고양이의 입에서 흘러서 나오는 피가 댓돌 아래로 벌겋게 흘러서 보기에도 처참할 뿐이었다.

영수는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다시 집어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물독 옆을 파고 묻어버리고 나서는 비틀거리며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자기 남편이 요사이 와서 한없이 난폭해진 것을 슬퍼할 뿐이었다. 그의 아내는 무참히 죽은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와서 곱게 흙을 더 덮어 주고는 힘없이 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흑묘이변' 삽화 (구본웅 그림)


그 이튿날 영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려가지고 어젯밤에 자기가 너무나 잔인했던 것을 뉘우쳤다. 그러나 이미 자기 손에 아무 죄 없는 고양이가 죽은 것을 너무나 쓰라리게 생각하였다.

영수는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들어가서 물독 옆을 들여다보았다. 한눈 먼 고양이가 자기를 원망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묻혀 있는 곳을 다져주었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영수의 아내는 그날부터 마치 어린애를 잃어버린 어머니같이 아무 힘도 없어 보였다.

아내가 이와 같이 기운이 없어 하는 것을 본 영수는 더욱이 마음이 괴로웠다.

“그게 무슨 짓이람. 술을 먹지 말아야지.”

이렇게 후회까지도 하였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내 장에 갔다 오는 길에 고양이를 또 하나 얻어 보리다.”

이같이 자기 아내를 위로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지긋지긋한 행동을 한 번 본 다음부터는 그 남편을 대할 때마다 몸에서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여보 글쎄 그 전에는 그렇지 않더니 웬일이요. 안 먹던 술을 입에 대지 않나. 술주정을 하지 않나. 조용한 집안이 난가가 되니 도무지 동네가 부끄럽구려.”

이같이 아내에게 충고를 받을 때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다.

“지난 일을 말하면 소용 있소.”

“난 그 고양이가 불쌍해서 죽겠소.”

“여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소용 있소, 내 어디 또 하나 얻어 보리다.”

“그렇지만 당신이 또 죽이면 어떡하우.”

“그럴 리야 있소. 그것도 술김에 한 번이지. 자― 하여간 내 어디 얻어 보리다.”

“그럼 하나 얻어다 주어요. 그게 없으니까 집안이 빈 것 같구려.”

영수는 속마음으로는 고양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만큼 싫었으나 또 한편으로 자기 아내의 마음도 위로해줄 겸 또 그와 같은 고양이를 한 마리 얻어다 잘 길러주는 것이 먼저 자기 손에 무참히 죽은 고양이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되는 것 같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영수는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먼저 죽여 버린 고양이와 흡사한 것을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수는 한참이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들여다보다가 몇 푼의 돈을 어린아이들에게 던져주고 그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고양이 얻어왔소.”

그의 아내는 고양이 얻어왔다는 바람에 한달음에 대문까지 뛰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죽은 놈과 똑같을까?”

그의 아내는 한없이 즐거워하면서 내려놓기를 싫어하였다. 영수는 밥상을 앞에 놓은 다음에 고양이를 불러 무릎 위에 놓고 그중 맛있는 것을 가려 주었다.

“아이 여보, 좀 귀엽소.”

그의 아내는 만족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귀엽기야 하지만 고양이는 야멸찬 짐승이 되어서 소용없어.”

“그렇지만 좋은 걸 어떡하우.”

오래간만에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 이튿날 아침 영수가 세수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왔을 때 고양이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영수는 따라오는 꼴이 귀여워서

“냐옹! 이리 온.”

하고 불렀다.

영수는 세수를 한 다음 수건으로 얼굴의 물을 씻으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안고 마루로 올라오려고 돌아보았다.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는 쪼그리고 앉아서 한 발로 바른 눈을 비비고 있었다. 영수는 이 순간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것은 전날 죽여 버린 고양이가 한 눈이 먼 다음부터 늘 발로 바른편 눈을 만지고 있던 것이 생각이 갑자기 나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그 고양이를 찬찬이 살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어제 자기가 데리고 올 때까지 아무 일도 없던 고양이가 오늘 아침에는 그 바른편 한 눈이 확실히 멀어 있지 않은가. 그 고양이는 한 눈을 만지며 왼편 한 눈으로 영수를 쳐다보며 “냐옹! 냐옹!”하고 있었다.

“아― 이상도 하다!”

영수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전신을 떨었다.

“어쩌면 같은 바른편 눈이 멀었을까!”

이와 같은 의문은 더욱 영수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한 속으로 끌고 달음질하였다. 그러나

“아마 그 전부터 바른편 눈이 상했었던 게지.”

이같이 생각을 돌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결코 좋지는 않았다.

새로 얻어온 고양이가 “냐옹― 냐옹―” 하고 자기를 유달리 따를 때마다 몸에 소름이 쪽쪽 돋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영수는 그전같이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가 자기에게 친하게 덤벼들 때마다 영수는 고개를 외면을 하고는 슬슬 밀어버렸다.

영수가 이렇게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며 영수의 무릎에도 기어오르며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기도 하였다.

이같이 고양이가 영수에게 따르면 따를수록 영수는 싫증이 점점 더하여갔다.

“여보, 이제는 고양이가 보기도 지긋지긋하니 갖다 버립시다.”

참다못해서 영수가 아내에게 고양이 갖다버릴 의논을 하였다.

“여보, 애써 얻어온 것을 갖다버리면 불쌍하지 않소?”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한다 할지라도 영수는 기어이 갖다 버릴 결심을 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따위 물건을 언제까지든지 두고 보겠단 말요.”

“아니 가만있는 게 뭐래우?”

“그래 남편이 싫어하면 먼저 버리는 게 아니라 이까짓 고양이가 남편보담 더하단 말요?”

영수는 이같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고 참 변덕도 심하오. 주워올 때는 언제고 또 갖다 버리는 것은 무어유.”

그의 아내도 지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 보기 싫은 고양이를 끼고 살란 말야―”

“누가 보기 싫은 것을 당신더러 보라우.”

“그럼 그만 둬. 그렇게 고양이가 놓기 싫으면 고양이만 데리고 살아보지. 난 고양이가 보기 싫어 집에 안 있을 테야.”

영수는 이같이 잘라 말했다.

영수의 아내도 고양이를 좋아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자기 남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더 항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정― 싫은 거야 어떻게 하우. 갖다 버리던지 마음대로 하구려.”

영수는 두말하지 않고 고양이를 지게에다 얹고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수는 고양이를 지게에다 지고 삼십 리나 떨어져 있는 먼 곳에다 갖다버렸다.

“에― 이제는 근심 하나를 덜었다. 너도 팔자가 좋은 놈이면 훌륭한 집에 길리우겠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십 리나 넘어와 우연히 돌아다 볼 때 무엇인지 휙, 하고 앞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영수는 깜짝 놀라 다시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제가 쫓아올라구―”

또 먼저 일이 문득 생각나서 참아버리곤 하였다. 그보다도 날이 갈수록 고양이에 대한 미운 생각보다도 무서운 생각이 점점 드는 것이었다.

“여보 이것 좀 옮겨놓아 주어요.”

영수는 자기 아내가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쫓아내려갔다.

영수의 아내는 부엌에서 문 옆에 놓여 있는 김치 중두리(항아리보다는 조금 크고 독보다는 조금 작은 오지그릇)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영수는 그의 아내가 들고 쩔쩔매는 중두리를 받아 들었다. 그가 번쩍 중두리를 들어서 옮겨 놓을 때 어느 틈에 따라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영수 발밑에서 “냐옹”거리고 있었다.

영수는 고양이가 밟힐까 염려해서 고양이를 피해서 발을 옮겨 놓다가 그만 중두리를 안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경칠 놈의 고양이.”

영수는 분노의 불길이 걷잡을 새 없이 타올랐다. 중두리는 쩡 하고 몇 조각이 부서지고 넘어지는 바람에 깨어진 조각이 튀어 올라와서 그의 이마에는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근치근한 피가 머리에서 흐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영수는 눈이 뒤집힐 만큼 그의 분길은 한층 더하였다. 그의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의 불길은 오늘까지 고양이를 미워하던 생각과 아울러 터져버렸다.

영수는 일어서면서 눈앞에 보이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깜짝 놀란 그의 아내는 남편의 앞을 막아서며

“그까짓 고양이를 뭘 그러우―”

하고 애원하듯이 가로막았다.

“무어야!”

미친 듯이 날뛰는 영수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는 고양이가 한 눈을 지그시 뜨고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았다.

영수는 자기 앞을 막고 서서 말리는 아내를 밀치고 한 손에 쥐어진 도끼를 힘 있게 들어서 아래로 내려쳤다.

“으악―”

영수는 이 뜻밖의 비명에 정신을 잃고 자기 발밑에 벌어져 있는 참혹한 현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두 귀에서는 ‘왱’하고 모기 소리 같은 소리가 나며 두 눈에는 번갯불같이 반짝할 뿐이었다.

영수의 발밑에는 뜨거운 피가 벌겋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머리가 두 쪽으로 깨어진 채 아무 소리도 없었다.

“여보……”

영수는 억지로 정신을 수습하여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자기가 죽였으리라고 믿었던 고양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뜻하지 아니한 자기 아내가 보기에도 참혹한 죽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뜻하지 아니한 살인을 한 그의 정신은 공포에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사형대가 눈에 어른하고 비쳤다. 당장 무엇이 자기의 목을 자르는 것 같이 모가지가 답답하였다.

영수는 이 무서운 사실을 부인(否認)하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감은 눈에는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아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온몸을 떨고 또다시 잊으려 하였다.

“냐―옹”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유령이 또 자기를 향하고 덤비는 것도 같았다. 영수는 그만 실신한 채 그 자리에 혼도(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짐)하여 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린 영수는 무서운 죄적(罪跡)을 감추기 위해서 물독 뒤를 깊이 파고 아내의 신체를 파묻은 다음 흘러 있는 피를 흙을 파서 덮고 모든 흔적을 없이 한 다음에 그는 또다사 타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달아난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후 영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영수는 이 사흘 동안을 무서운 공포 속에서 지냈다.

밤만 되면 원통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이 자기의 목을 누르는 것만 같고 먼저 죽은 고양이가 함부로 덤벼 온 전신을 집어 뜯는 것 같았다. 그는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웠다가 수없이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바람에 문소리만 나도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사복형사가 그의 집에 이르러서 가택수색을 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잡고 수색하는 형사의 뒤만 따를 뿐이었다.

형사 일동은 아무 흔적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향하여 갔다.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뛰놀았다. 형사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이리 저리 보다가 새 흙이 덮여 있는 물독 옆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영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나오려 하였다.

“냐옹―”

이 순간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알 수 없는 고양이 소리에 형사대는 발을 멈췄다. 

“냐옹”

또 들려왔다. 멀리 땅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군!”

“냐옹”

은은히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는 물독 뒤에서 나왔다.

“그곳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니 이상하군.”

“땅 속에서 나는 게 이상하니 파 보지.”

이 순간 영수의 정신은 먼 지옥을 걷는 것 같았다. 얼마 안 되어 영수의 아내 신체는 그 처참한 형체를 나타내었다.


모든 죄수를 실은 자동차는 재판소에서 나와서 형무소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이 죄수 중에는 오늘 사형의 언도(言渡)를 받고 형장을 향하여 가는 죄수가 있었으니 그는 얼마 전에 자기 아내를 죽인 영수였다. 마지막 형장으로 향하야 가는 영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이 몽롱한 그의 귀에는 다만

“냐옹”

하고 저주에 넘치는 고양이 소리가 바람결에 어디서인지 들려오는 듯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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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4.01.03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당시 벌써 검은 고양이의 번안물이 있었다니 놀랍군요.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코너도 잘 보았습니다.

  2. 빠오징(寶敬) 2014.04.05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지게 보고 갑니다.^^

  3. gg 2014.09.16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번안으로 보니 색다르네요 ㅎㅎ



피 칠한 세균(細菌)
Les microbes sanglants

카미
  근춘(槿春)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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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층계의 사람 그림자(人影)
(무대는 큰 호텔 앞 층계)

 
루폭 홀메스 일주일 이래로 날마다 괴이한 범죄사건이 이 장자(長者)호텔에서 일어나 유숙하는 손님들은 매일 저녁이면 무서운 부르짖는 소리에 꿈을 깬다. 그리고 어제 저녁 이 호텔에서 자는 외국 부호의 누가 방 안에서 단도에 찔려 죽고 가진 것을 도둑맞았다고 함으로 나는 장자 호텔의 지배인의 부탁을 받아 이 보이지 않는 살인범을 체포하려고 호텔 문앞 층계에 어두침침한 곳에 심복 부하 너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복부하 서장과 부하 형사들이 호텔 문간에서 파수를 보고 있으니까 누구든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무서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 선생님! 들으셨습니까?

루폭 홀메스 조용하여라. 움직이지 말아라. 꼭 틀어박혀 있거라.

심복부하 저것 봐! 깜짝하는 동안에 전등이 꺼져버렸어요! 선생님! 선생님! 들어보세요! 누가 달음박질로 층계를 내려옵니다. 우리들 앞으로 이상한 그림자가 지나갔습니다!

루폭 홀메스 자 쏴라! 그것을! (심복부하는 이상한 그림자를 향하여 권총을 쏘았다)

심복부하 고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꼭 탄환이 명중한 것이에요!

루폭 홀메스 어떤가 조사하여 보지. (그는 회중전등을 켜 가지고 층계를 비춰 본다) 정말 흉한 한 사람이 부상하였다. 보아라, 층계 위에 피가 묻어 있지. 이 피 흐른 뒤를 따라가면 괴이한 흉한이 잠복하여 있는 곳이 닥칠 터이지. (두 사람은 피 떨어진 자국을 따라간다) 이것 봐 이것 봐 이것 이상하구나! 핏자국은 이 층에 있는 늙은 세균학자가 있는 문 앞에 와서 뚝 끊어졌다. 그런데 늙은 세균학자의 방문은 부서지지 아니하였다. 흉한들이 설마 열쇠구멍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 떨어진 자국은 이 문 앞에 그쳤다. 이에 대하여는 무슨 곡절이 있겠지. 문을 두드려 보자! (그는 문을 두드렸다)

늙은 세균학자의 소리 (방 안에서) 이맘때 와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대체 누구야?

루폭 홀메스 세균학자 아저씨 악한들이 당신 계신 방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열어주시오!

은 세균학자 (문을 열고서) 무엇이라고요? 나와 같이 늙어빠진 세균학자 방에 악한이?

서장 - (달음질하여 와서) 나는 검증하려고 왔습니다. 외국인 부호가 이 호텔에서 단도에 찔려 죽고 가졌던 것을 도둑맞았습니다. 피해자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괴물이 왔습니다! 낙지가! 낙지가! 무서워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합니다.

루폭 홀메스 늙은 세균학자 방안에 들어가 봅시다. 나는 하여튼 까닭을 차차 알아냅니다.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2막 유리상자
(
무대는 세균학자의 방)


늙은 세균학자
이곳이 내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들어오셔서 찾아보시오. 나는 무서워서 몸이 떨립니다.

루폭 홀메스 이 큰 방안에 놓인 유리상자는 무엇입니까?

서장 마치 수족관에 있는 큰 양어상자와 같습니다그려.

늙은 세균학자 그렇구말구요. 이것은 실상 일종의 양어상자이지요. 그러나 가운데에는 물은 들어있지 아니하지요. 이 큰 유리상자 속에는 세균이 들어있지요. 나는 세균 연구하기를 좋아해요. 보시지요. 이 세균은 육안이라도 보이지요. 주위의 유리벽이 확대경이 되어 있는 고로 저것 보시오. 꼭 개미 만하게 보이지요. 이 유리상자 안에 여섯 마리 배양합니다. 이것이 신형구상균(新型球狀菌)’이고 이 아름다운 것이 금색포도상균(金色葡萄狀菌)’이고 이쪽 것이 콜레라 균이고 저것이

루폭 홀메스 (말 가운데를 잘라) 그러나 겨우 여섯 마리를 넣는 데에 무엇 하러 이와 같이 큰 양어상자가 듭니까? 이 상자로 말하면 거진 천장에 닿을 만하지 않습니까?

늙은 세균학자 (황당하여) 그것은

루폭 홀메스 (낮은 소리로 서장을 향하여) 십 분 이내에 괴이한 살인범은 일망타진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부하 형사하고 여기 남아 계시오. 저 세균학자를 잘 주의해서 그리고 저 유리상자에도 눈을 떼서는 안 됩니다. 나는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부하와 같이 나간다)


3막 세균에게 공황(恐慌)이 온다
(무대는 앞과 같음)

 

루폭 홀메스 (돌아와서) 너무 기다리셨습니다.

서장 당신 뒤에 따라오는 저 바지만 입은 남자는 누구요? 저 남자의 몸에는 푸른 반점이 그려 있소. ! 가슴에 콜레라 보균자(保菌者)’라 쓴 패를 달고 있소.

루폭 홀메스 (낮은 소리로 서장과 형사를 향하여) 안심하시오. 이것은 나의 심복부하요. 내가 콜레라 환자로 변장시켰어요.

서장 왜 그런 무서운 변장을?

루폭 홀메스 지금 곧 알지요. (그는 유리상자에 사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먼저 이 늙은 세균학자를 체포하여 주시오. (형사들은 늙은 세균학자를 체포한다) 그리고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여라. (심복부하는 사다리로 물이 없는 큰 유리로 만든 양어상자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세균을 기르는 내부에 뛰어들었다)

서장 이것 어찌된 일인가? 여섯 마리의 세균이 다 죽게 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콜레라 환자로 변장한 당신의 부하가 들어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이 네 귀퉁이로 도망하오! 그런데 묘하오. 이 양어상자에 들어간즉 당신의 부하도 세균과 같이 조그맣게 보이는구료!

루폭 홀메스 - 나의 추상(推想)이 틀리지 아니하였어요! (늙은 세균학자를 향하여) 어떠냐 스펙도라스? (세균학자는 갑자기 가발을 벗고 수염을 떼었다)

스펙도라스 그렇다 내가! 너의 추측이 맞았다, 루폭 홀메스 군. 세균의 분장을 하고 저 유리상자 속에 있는 것은 나의 동료이다. 이 양어상자는 확대경(擴大鏡)이 아니고 확소경(擴小鏡)이다. 나의 동료를 범죄케 한 후에는 이 속에 넣어 정말 세균같이 보인 것이다.

서장 피해자가 괴물이 왔습니다! 낙지가! 낙지가!” 한 말의 의미로 그것을 깨달았다. 스펙도라스의 수하가 만든 촉수(觸手)가 달린 세균의 옷을 입고 마치 정말 괴물과 같이 낙지의 모양을 하고 왔었던 게다.

루폭 홀메스 그렇습니다. 그만 이 유리상자 속에 있는 악한들을 잡아내면 그만입니다. 보시오. 나의 계획이 꼭 들어맞았어요. 변장한 세균들은 상자 속에 콜레라 환자가 들어온 줄 알고 무서워하는 것이에요.



작가 카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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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중독자(亞鉛中毒者)
최유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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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7년 12월 모진 비바람이 부는 어두운 밤.
영국 Y주(州) R이라고 하는 어촌(漁村) 회회교(回回敎) 사원의 P 교부는 방금 참회식을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 갑자기 현관의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었다. 그 소리가 너무 요란스럽기 때문에 P교부는 하인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손수 문을 열러 나갔다. 그러나 그가 문안에까지 가기 전 키가 후리후리 큰 젊은 사람 하나가 밖으로부터 문을 함부로 밀치고 들어왔다. 그는 문을 콰당 닫고는 문에 등을 대고 허덕거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피가 붉은 피가 질질 흘러내렸다.
“저놈을 못 들어오게 하세요. 지금 방금 쫓아옵니다. 저놈이 나를 죽이려고…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여기 들어오기만 하면 나를 죽이고 말 것입니다.”
청년은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P교부는 물론 놀랐다. 그는 이 동리의 젊은 사람의 얼굴은 대개 안다. 그러나 이렇게 약질로 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나이는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고 차림차림으로 보아 가난한 노동자 같았다. 옷은 진흙투성이가 되고 모자는 쓰지 아니하였다.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흥분이 되어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목에서 식식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마 먼 곳에서 달음질을 쳐온 것이 분명하다.
“자네가 누군가?”하고 P교부가 물었다.
“나는요.” 하고 말을 하려다가 그는 귀를 기울였다.
“옵니다, 와요. 문 밖에까지 왔습니다. 못 들어오게 하세요. 못 들어오게.”
P교부는 아마 미친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하였으나 어쨌건 문을 잠갔다.
“자 인젠 괜찮으이… 아무도 못 들어올 테니.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듣자구.”
교부는 그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안기를 권하였다.
“자 앉게.”
“겉문을 닫아 주십시오.” 하고는 그 창으로 해서 정원을 내어다 보았다.
“이 방에 겉문은 없어.”
이때에 탕 하고 피스톨 소리가 들리고 유리창이 산산 부서지면서 총알이 왱하고 교부의 귀를 스치어 지나갔다.
“악” 소리를 치고 청년은 가슴을 뜯으면서 교부의 발밑에 쓰러졌다. 가슴에 탄환을 맞은 것이다.
교부는 유리창을 열고 뜰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캄캄 어둔 속에서 비와 바람이 사납게 날릴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한참이나 어두운 속을 흘겨보다가 방으로 들어와 왼편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젊은이의 옆에 섰다.
이때에 피스톨 소리를 듣고 하인이 방으로 달려왔다. 교부는 그를 식혀 순사와 의사를 불러오게 하였다.
먼저 의사가 왔다.
수술을 하여 가슴에 박힌 탄환을 뽑았다. 상처는 비교적 얕아서 어쩌면 생명에는 별 일이 없으리라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 다음 순사가 와서 조사를 하였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혼수상태에 마저 말을 물을 수가 없다.
그 이튿날 경찰서에서 형사가 와서 다시 조사를 하였으나 역시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하였다. 다만 그 젊은이가 어제 4시 차로 그곳 정거장에 내렸고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밖에는 더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P교부는 명탐정 섹스턴 블레이크에게 전보를 쳤다.
 
2.
 

블레이크 탐정은 P교부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탐정의 눈에 먼저 띤 것은 침대 아래로 축 늘어진 젊은이의 팔이었다.
그 팔의 근육은 불룩하게 내밀어 있는데 탐정이 시험적으로 팔을 번쩍 쳐드니까 손바닥이 팔과 거의 직각으로 측 늘어졌다. 탐정은 무엇을 짐작함인지
“흐-ㅁ”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그는 누워있는 젊은이의 입을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와 잇몸 사이에 붓으로 그은 듯이 푸른 줄이 죽죽 뻗어 있었다.
“이 푸른 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알 수 있나요. 대관절 그게 무엇입니까.”
“이 푸른 줄은!”
하고 탐정은 입을 열었다.
“이 젊은이가 퍽 오래전부터 연독(鉛毒)에 걸려 있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팔목의 관절 말입니다. 이 관절에 힘이 없어 보이고 또 수직으로 측 늘어지는 것은 이 사람이 오래 동안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연에 중독이 된 것을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대개 연독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간판장이, 연세공(鉛細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젊은이도 그러한 종류의 일을 하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손이 깨끗한 것을 보면 간판장이는 아닙니다. 또 손가락마다 불에 덴 형적이 없는 것을 보면 납장이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는 확실히 연세공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정체를 알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혹시 참고 될 일인지 모르겠으나…”
하고 P교부가 입을 열었다.
“바른 편 팔에 이상한 상처가 셋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난 수요일에 발견하였을 때는 극히 적어서 얼른 알아보기도 어렵더니 오늘 보니까 아조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구면요.”
P교부가 말을 마치며 그 젊은이의 오른편 팔의 상처를 찾아 탐정에게 보였다.
“녜. 그것은 종두입니다. 즉 우두를 맞은 지 약 나흘쯤 된 현상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생각건대 이 젊은이는 셋필드 동리에서 온 연세공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그리 단정적으로 말씀하십니까?”
“이 젊은이는 확실히 나흘 전에 우두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국 북부에는 우두를 맞히는 곳이 업고 유독 셋필드 동리에서 천연두가 유행되어 전 시민에게 우두를 맞힌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여기에 부첨해서 말해 둘 것은 이 사건은 1887년 12월 셋필드 동리에 천연두가 극성할 때에 생겨진 일이다.
“그리고 이 젊은이가 연세공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하였습니다만 그 셋필드 동리에는 연세공 일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 거개가 연독에 걸려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더구나 그 동리에서 왔다는 것이 확실한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결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이 다음 차로 그 동리를 찾아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우선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그 명부를 조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 이러저러하게 생긴 연세공 일하는 젊은이에게 우두를 놓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서 그런 기억을 하는 의사만 찾으면 이 사건의 비밀은 반분 해득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탐정 블레이크는 셋필드 동리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3 .
 

“녜!”
열일곱 번째에 만난 의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말한 그러한 젊은이에게 내가 월요일 날 우두를 놓았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아서 윌슨’이요, 주거는 포드랜드 거리 5번지입니다.”
… 15분 후. 탐정은 마차를 잡아타고 포드랜드 거리로 달리였다.
그리하여 집을 찾고 마침 병으로 신음하는 그의 아버지를 면회하였다.
“나는 섹스턴 블레이크라는 사람인데 당신 아드님에 대해서 좀 조사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 아드님은 지난 수요일에 이곳을 떠나 록스빅 촌에를 갔지요.”
그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하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탐정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죄다 하였다.
그 아버지는 분노의 눈을 번뜩이면서
“그러면 내 아들 아서를 쏜 놈은 줄리언입니다. 필시 도중에서 내 아들이 노먼을 만나러 간다니까 갑작이 제 악행이 드러날까 봐 아서를 죽이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고 줄리언이 그 앞에 있으면 당장에 때려라도 죽일 듯한 기세였다.
“하여간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녜. 이야기하고말고요. 내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죄다 말씀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 나는 록스빅 관(館)의 심부름꾼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관에 있던 사람으로는 부인을 잃은 노먼 경(卿)과 단 하나의 아들 레이프와 경의 생질 되는 줄리언이었습니다. 줄리언은 원래 양친이 죄다 구몰하야 의지할 데가 없는 고로 경이 데려다 둔 것입니다. 아들 레이프는 마음이 착하고 성행이 또 좋은 젊은이였으나 생질 되는 줄리언은 원래 성질부터 나쁜 사람이라 공연히 레이프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오던 차 어느 날 밤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맞닥뜨렸습니다. 마침 그 집에 도적이 들어 경의 금고를 깨뜨리는 것을 레이프가 발견하였습니다. 급하게 된 도적은 달려드는 레이프의 머리를 때려 혼도케 하고 들창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놀라 줄리언과 내가 그 방으로 뛰어갔을 때 레이프는 금고 옆에 기절해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줄리언은 나에게 눈을 끔쩍 하면서 가까이 부르더니 “만약 노먼 경에게 레이프가 금고를 깨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발견하였다고 말만 해주면 500파운드를 주겠다”고 꾀었습니다 ― 대단히 부끄러운 말씀이나 나는 그때 돈에 눈이 어두워 줄리언과 약속하고 노먼 경에게 거짓말 보고를 하였습니다. ― 정신을 잃었던 레이프가 그렇지 않음을 변명하였으나 경은 내 말을 신용하여 자기의 아들 레이프를 축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경은 전에 써 두었든 유언장을 꺼내어 아들 레이프에게 상속하려던 재산을 전부 줄리언에게 주어 달라고 고쳐 써 놓았습니다 ― 나는 줄리언에게 약속대로 500파운드를 받고 몇 달 지나 그 집을 하직한 후 고향인 셋필드 동리에 돌아와 술집을 시작하였습니다. ― 그리고 1861년에 장가를 들어 그 이듬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것이 곧 아서였습니다. 그러자 아서가 열여덟 살 먹던 해 불행히도 아내가 그만 병으로 죽고 또 장사도 시원치가 안어 술집을 그만 둔 후 집을 옮겨 연세공일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자식놈도 연독에 걸리고 또 나도 그 중독으로 폐병이 들어 지금까지 앓는 중 의사의 최후선고를 받고 보니 예전 줄리언과의 한 일이 양심이 찔려 견딜 수가 없는 고로 늦었으나마 노먼 경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아서를 불러 자세한 이야기를 토파하고 록스빅 촌에 가서 노먼 경을 초청해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이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비가 없어서 스카보로 역까지의 표밖에 더 사지 못하고 거기서부터는 그 촌까지 걸어가게 되였든 것입니다 ― 그래 나는 늦어도 어제 밤까지는 돌아오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뜻밖에 당신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면―”
블레이크 탐정은 입을 떼었다.
“-당신의 말씀에 의하면 아서는 수요일 밤 록스빅 촌을 향하는 도중에 줄리언을 만나 무심히 줄리언에게 가는 향방과 용무를 말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죄상이 탄로될 것을 두려워 도망하는 아서를 그 사원까지 쫓아가 쏘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도 그에 동감입니다. 그러나 하여간 지금 다시 그 촌으로 가든 일을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탐정은 즉시 다음 기차로 셋필드 동리를 떠나 저녁 여섯 시 전에 록스빅 촌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여섯시 반이나 되어 노먼 경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마침 경은 3주간 전에 어디를 가서 월요일에나 돌아온다는 것, 줄리언 역시 지난 수요일에 집을 나간 채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줄리언은 어디 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블레이크는 P교부를 향하야 입을 열었다.
“―아서의 생사가 판명되기까지는 뛰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즉 아서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죽어버렸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다시 뛰쳐나올지 모르지만 자기의 비밀이 드러난 것을 알면 두 번 다시 얼굴을 비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블레이크 탐정의 말은 적중되고 말았다. 줄리언의 행방은 며칠이 지나도 전연 불명이었다. 월요일에 노먼경이 돌아왔다. 그리하여 블레이크와 면회하였다. 그리고 화요일에 아서는 겨우 본정신이 나서 그의 입으로 진술한 바는 그 아버지의 말과 꼭 같았다.
줄리언은 얼마가 지나도 역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서의 아버지는 기어코 속병으로 죽고 아서는 노먼 경으로부터 주급(週給) 3파운드를 영구히 받기로 하여 행복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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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악한
최유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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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탐정 섹스턴 블레이크는 현관에 나서 장갑을 끼면서 싸늘한 아침 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환히 개인 2월의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에 서릿발이 비치고 있다.

그때 마침 이웃 하숙집의 레시 부인이 오는 것을 보고 블레이크는 웃으면서 인사를 하였다. 부인은 무엇인지 머뭇머뭇하다가 결심을 한 듯이 그의 옆으로 가까이 걸어왔다.
“그 색시가 월요일 아침에 나간 채로 돌아오질 아니합니다!”
“왜? 어데 앓나요?”
“모르겠어요. 월요일 아침에 나간채로 통 돌아오질 아니하니까요. 병이 들었는지 어쩐지 알 수가 있나요! 맘이 놓이질 안습니다. 어쩌면 좋을지… 아직 어린 색시인데…”
그 색시라면 블레이크도 잘 아는 터이다. 벌써 2년 이상이나 이웃집 레시 부인의 집에 하숙하고 있는 윈센트라고 하는 아주 어여쁘게 생긴 타이피스트다.
“시방 바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우리 집에 가셔서 그이 방을 좀 보아 주세요… 어쩐지 걱정이 되어서…”
“뭘 그리 걱정이 됩니까?”
“그래도 2년 동안이나 같이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나가서 아니 돌아온 때는 없답니다. …저 그이하고 친한 저비스라는 양반이 있지요? 벌써 스무 번은 더 찾아왔을 것이에요. 와서는 ‘아니 왔습니까?’하고 또 오고 또 오고… 글쎄 월요일 날 아침 8시 반에 나간 뒤로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아마 그 편지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아서…”
“편지가 왔어요?”
하고 블레이크가 물었다.
“네. 토요일 날 아침에 버밍엄에서 편지가 왔는데 그걸 보고 퍽 걱정을 했어요. 화요일 날도 또 그런 편지가 왔길래 문틈으로 밀어 넣어 두었지요.”
“뭘 동무 집에 놀러가지 아니 했을까요?”
“그렇다면 나한테 기별도 했을 것이고 또 저비스 씨하고는 사이가 그렇지 않은데 그이조차 모를 리가 있나요!?”
“그도 그렇긴 합니다… 대관절 그이 방을 가서 좀 봅시다.”
레시 부인은 블레이크를 삼층으로 데리고 올라가 윈센트의 방문에 열쇠를 끼이면서
“먼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나는 월요일 날 소제를 하고 이때 들어가지도 아니했으니까요.”
하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블레이크는 레시 부인을 제지하며
“당신은 여기서 잠간 기다리시오.”
하고 그의 매 눈 같은 두 눈은 벌써 먼지 앉은 방바닥에 자국이 난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블레이크는 그 발자국의 치수를 재고 본을 그리었다.
그리고 또 바로 문 안에는 방바닥에 네모난 봉투가 놓였던 자국이 있고 그 옆에 장갑 낀 손가락 자국이 두 개 박혀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자물쇠를 조사해 보니까 최근에 난 듯한 흠집이 있었다.
“어때요?”
하고 레시 부인이 물었다.
“글쎄…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마는 윈센트 양이 자기 자유의사로 이렇게 집을 비우지 아니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자물쇠를 누가 열고 들어와서 부인이 문틈으로 밀어 넣은 편지를 집어간 듯합니다. 그 사람은 발이 크고 구두 끝이 네모난 놈을 신은 모양인데 저 저비스라는 사람은 발이 작지요?”
“네”
“저비스는 스네일이라는 사람의 비서지요?”
“네. 그리고 윈센트도 역시 그 집 전방에서 일을 본답니다.”
“알았습니다. 내가 다 맡아서 조사해 보지요. 내일 저녁까지는 윈센트 양이 어디 갔는지 알아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마십시오.”
블레이크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그 안날-수요일-의 신문을 내 놓고 열심으로 조사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경찰난 가운데 ‘못된 비서(秘書)’라는 아주 짧은 기사를 발견하였다.
‘침사이드의 유명한 자물쇠상점의 주인 스네일 씨의 비서 저비스는 동씨의 50원짜리 지폐 두 장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오늘 아침에 고소를 하였다. 스네일 씨는 전기 지폐 두 장을 책상 위에 놓아두었었는데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분실을 하였다. 그리하여 찾아본 결과 전기 비서 저비스의 모자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범인 저비스는 자기가 훔치지 아니하였다고 함으로 목하 엄중히 취조중이다’
신문기사는 이상과 같았다.
“이건 좀 이상한걸!”
하고 블레이크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비스라는 청년은 윈센트 양의 유일한 동무요 또 애인이다. 윈센트는 저비스 청년 외에는 동무도 없고 친척도 없다. 그런데 윈센트 양이 행방불명이 된 이 때에 그를 위하여 애써 줄 저비스가 고소를 당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자물쇠상점의 주인 스네일 씨는 그다지 풍채가 좋은 신사는 아니었다.
보드라워 보이는 불그레한 큰 손과 번들번들한 대머리진 이마에 40쯤 되어 보이는 신사요 머리털은 성클고 불그레하고 입술은 두텁고 눈은 적으면서 날카로웠다.
이 신사와 만나서 블레이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으니 그는 몹시 탐정인 블레이크를 싫어하였고 또 그는 10호나 되는 앞이 네모난 큰 구두(윈센트 양의 방에 자국이 난 그런) 구두를 신고 있었다.
블레이크는 스네일의 눈치를 살피면서 책상 옆에 단장을 기대놓고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오늘 찾아온 것은 윈센트 양에 대해서 여쭈어 볼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그 색시가 댁에서 일을 보았는데 월요일 날 행방불명이 되였다지요?”
하고 블레이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스네일은 싱그레 웃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네일은 이상스럽게도 바른편 손을 움직거리고 있었다. 그 손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왼편 팔 밑에 숨겨있는 봉투 같은 것을 살그머니 집어서 책상 위에 덮인 흡취지 밑에 숨기고 있는 것이었었다.
블레이크는 그것을 못 본 체하면서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봉투였었고 ‘―센트’라고 쓴 것과 ‘―자―스퀘어’라고 쓴 글자만은 보였던 것이다.
블레이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안심을 한 스네일은 눈치도 모르고 천연스럽게 말대답을 하였다.
“미안합니다. 여기서 조사해 보아야 소용없습니다. 윈센트 양은 지난 토요일 날 해고를 했으니까요. 그 뒤에 그가 어찌 되었다든가 무엇을 했다든가 그런 것은 통히 나는 모르니까요.”
“네. 그렇습니까. 그러면 괜히 폐를 끼쳤습니다.”
하고 블레이크는 일어섰다.
“천만에!”
하고 스네일도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섰다.
“앗차! 단장을 잊었군.”
하고 돌아서 낭하로 나왔을 때에 블레이크는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그는 전문의 소매치기도 부러워할 만한 민첩한 솜씨로 아까 스네일이 흡취지 밑에 숨겨둔 봉투를 훔쳐 포켓 속에 넣고 그 다음 단장을 집어들고는 시치미를 뚝 따고 방을 나왔다.
스네일과 작별하고 나와서 그는 지금 훔친 편지를 꺼내 보았다.
추측하는 바와 같이 화요일 날 레시 부인이 윈센트 양의 방에 밀어 넣었다던 편지인 듯싶은 편지이요, 버밍엄의 변호사 베어링 씨에게서 온 것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윈센트 양!
일전에 당신이 보내주신 증거로써 당신이 이곳의 윈센트 씨의 유일한 유족인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동씨의 유산 22만 원을 드리겠사오니 될 수 있는 대로 곧 와 주십시오. 여비로 50원짜리 지폐 두 장(번호는 12501호와 12502호)을 동봉합니다.”
편지를 읽고 난 블레이크는 잠깐 생각하였다.
“편지를 내가 훔쳐온 줄은 스네일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날이면 윈센트 양의 신변이 위험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곳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스네일이 잃어버렸다는 지폐의 번호를 물어 보았다. 생각한대로 편지 내용에 쓰인 것과 꼭 같았다.
다음에 블레이크는 경찰서로 가서 버밍엄에 장거리전화를 걸고 변호사 베어링 씨와 이야기를 하였다.
저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윈센트 양은 유산 22만 원을 받아 가지고 오늘 아침차로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 차는 오후 1시에 런던 유스톤 역에 도착할 터이다. 윈센트 양이라는 여자는 뼈가 불거진 30세가량의 부인으로 머리는 붉고 눈은 검고 값 많은 털외투를 입었다.”
즉 정말 윈센트 양과는 같지도 아니한 여자였었다.
블레이크는 전화가 끝난 뒤에 경부에게
“저비스 청년은 언제 옵니까?”
하고 물었다.
“3시에 오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3시에는 내가 여기 오지 못할 듯합니다. 그가 오거든 고소는 취하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오후 3시에 저비스와 윈센트 양이 경찰서에 왔고 잔뜩 결박을 진 스네일을 블레이크가 데리고 왔다.
블레이크는 여러 사람 앞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스네일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알기는 하나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두 장의 지폐는 버밍엄 시의 변호사 베어링 씨가 윈센트 양에게 보낸 것을 스네일 씨가 그 편지와 한 가지로 훔친 것만은 사실입니다. 스네일은 윈센트 양을 도티의 빈 집에 감금하여두고 그의 하숙에 가서 그 편지를 훔친 것입니다. 그것이 화요일입니다. 그 편지는 윈센트 양의 백부 윈센트 씨의 유산 22만 원을 받아가라는 것이요. 그 속에 여비로 50원짜리 지폐 두 장을 넣어 보낸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든지 사실 내막을 탐지한 스네일은 욕심이 낫습니다. 월요일 날 아침 스네일은 상점에 출근하는 윈센트 양을 꼬여 도티의 빈집으로 보냈습니다. 속을 모르는 윈센트 양은 시키는 대로 도티의 빈 집에 가니까 기다리고 있던 스네일의 누이가 그를 꼬여 정해두었던 빈집에 감금을 시켰습니다. 윈센트 양은 그 곳에 사흘 동안 감금당해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스네일의 누이는 버밍엄에 가서 베어링 변호사를 만나 자기가 윈센트 양이라고 하고 유산 22만 원을 받아가지고 오늘 오후 1시 차로 유스톤 역에 내렸습니다. 나는 유스톤 역에서 기다리다가 그의 뒤를 따라 도티의 빈 집에서 그를 붙잡았습니다. 윈센트 양이라고 속이고 가져 온 22만 원의 유산도 여기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윈센트 양은 친척도 지기도 없음으로 그가 행방불명이 된 것을 문제 삼을 사람은 저비스 군입니다. 그들은 약혼까지 했으니까요. 그럼으로 스네일은 이 저비스 군을 처치할 양으로 마침 수중에 있든 지폐 ― 윈센트 양의 편지 속에서 꺼낸 건을 저비스 군의 모자 속에 집어넣고는 도적의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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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걸인(乞人) 

최유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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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걸인 하나가 길 옆에 서 있는 푯말(里程標)에 기대어 앉아 한가롭게 사기 골통대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의 뒤로는 나무사이로 산길이 비스듬히 뻗쳐 있고 길 왼편으로 언덕 위에는 숲 사이에서 흰 지붕이 내어다 보인다.

그 걸인이 문득 몸을 돌이키노라니까 언덕 위에 있는 집들 가운데 제일 높은 집 들창에서 무엇인지 이상한 광선이 번쩍 비치고는 이어 사라진다.

“망원경인 모양인데… 대체 저 사람은 망원경을 가지고 무얼 찾누?”

이렇게 그 걸인은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계를 꺼내보니 5시 50분이다.

조금 있다가 누가 등 뒤의 산길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푯말 옆으로 지나갈 때에 걸인은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회색 옷을 입고 바짝 말랐으나 든든하게 생긴 노인이다.

“이상한 노인이다”고 걸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시 한참 있노라니까 등 뒤에서 자전거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오든 젊은 사람은 걸인 앞에 와서 내린다.

“여보게 심부름 좀 아니 들어 주겠나?”

“힘들시 안할 일이면”하고 걸인은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뭘… 힘든 일은 아니야… 저 S까지 갔다 올 거야.”

“S라니 어데요?”

“저―기 산울타리가 있지?”

“예”하고 걸인이 바라보니 아까 그 노인이 가던 곳이다.

“그리해서 곧장 돌아나가면 바로 S야 … 거기 가면 ‘붉은 사자(獅子)’라는 술집이 있는데 그 주인한테 이걸 좀 주어 달라구.”

“소중한 물건인가요?”

“아―니, 영수증을 모아둔 거야… 이걸 그 주인한테 전하면 은전 한 푼 삯으로 줄 테니 받으라고… 그렇지만 가다가 풀어보면 안 돼.”

걸인은 꾸러미를 받아 가지고 걸어갔다.

등 뒤에서 그 청년은 소리를 쳤다.

“이것 봐― 산울타리를 돌아가― 그래서 수풀 새로 10리쯤 가면 되는 거야. 응, ‘붉은 사자’ 알았지?”

“네 알았습니다.”

걸인은 산울타리 옆으로 돌아가 낙엽이 쌓인 좁은 길로 걸어갔다. 청년은 발자국 소리가 그치기까지 귀를 기울이고 서서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야 하는 게야. 저 녀석이 죽으러 가누만.”

하고 투덜거리면서 시계를 꺼내 본다. 그리고 나서 여송연 한 개를 꺼내어 절반을 잘라 한 도막을 길가 풀밭에 버리고 한 도막을 피어 문다. 여송연이 거진 다 탔을 때 그는 피우던 토막을 길바닥에 버리고 발로 싹싹 부비면서 중얼거린다.

“이게 증거다. ― 또 아까 같은 거지가 지나가다가 집어가지 않아야 할 텐데… 뭘 그럴 리야 없겠지.”

그는 이렇게 일부러 증거를 만들어 놓고 나서 자전거에 뛰어 올라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 5리쯤 가서 열어 제친 대문이 있고 그리 들어서면 짙은 숲이 있다. 좀 더 들어가면 판장 울타리가 있다. 그 청년은 자전거에서 내려 판장 하나에 손을 대니 쉽사리 부서진다. 그는 그 구멍으로 들어가 다시 판장을 봉해 놓았다.

저―편으로 적은 길이 보인다. 문득 그는 몸을 움칫하였다. 나뭇잎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아까 네거리에서 걸인 옆을 지나가든 그 회색양복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그 청년은 피스톨을 꺼내어 겨누었다.

“탕―”

노인은 네 활개를 벌리고 앞으로 퍽 엎으러졌다. 청년은 총구멍에서 연기가 아직 나오는 피스톨을 넘어진 노인 옆에 내던지고 오던 길로 달아나 버린다.

여기는 ‘붉은 사자’라는 술집.

“여보게 팍―스 자네한테 은전 한 푼 갚아 주네”하고 아까 자전거를 타고 숲속에서 노인을 쏘아 죽인 그 청년이 주인에게 하는 말이다. 주인은 어리둥절한다.

“은전 한 푼? 웬 거야?”

“웬 거지가 내 피스톨을 가져왔지?”

“아―니.”

“허! 그 웬일일가?! 다른 게 아니라 자네 집에 있는 심부름 하는 아이가 손재주가 있다길래 내 피스톨에 새긴 이름을 깎아달라고 웬 거지한테 자네에게로 보냈는데…”

“아―니 거지라곤 보지도 못했어.”

이렇게 걱정삼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문밖에서 동리사람들이 요란하게 떠들면서 술집 앞으로 가까이 온다.

“레이필 영감이 죽었다. 어떤 거지가 죽였다.”

자전거 타고 온 청년과 술집 주인은 문 앞으로 뛰어나왔다.

“엥!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셨어!?”

청년은 짐짓 놀래는 체하고 부르짖었다.

“시체 옆에 걸인이 쭉 웅크리고 앉은 것을 산지기가 발견했다나, 숲 속에서 말이야… 지금 저기 순사도 와.”

“허― 그가 큰일 났군.” 하고 청년은 군중 속에 섞여 갔다.

“자네는 뭘 그리 걱정하나? 자네 아저씨하고 그리 좋아 지내지도 아니했으면서…”하고 한 사람이 놀려 준다.

저편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순사가 달려온다. 순사는 청년을 보고 인사를 한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하고 청년이 순사더러 물었다.

“모릅니다. 지금 가서 조사를 해 보아야지.”

“산지기는?”

“산막에 있다지요. 시체도 우선 산막에 두어 두었고.”

“거지 놈은?”

“역시 그 집에다 가두어 두었답디다.”

여러 해 동안 아까 죽은 그 노인과 자전거 탄 청년의 숙질간에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노인은 사냥을 좋아하고 술을 먹기는 하나 그 기상은 어디까지든지 신사적이었었다. 그러나 조카 길버트(자전거 탄 청년)는 아주 고약한 악당이었다.

얼마 전에 아저씨와 싸우고 그 집에서 쫓기어 났다가 추근추근하게 다시 들어왔었다. 그는 최근 아저씨가 마누라를 얻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하는 날이면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이 훅 날아가 버린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한 계책을 세웠다.

그날 아저씨가 S까지 가는 기미를 알고 길버트는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망원경으로 자기의 도구로 쓸 걸인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즉 걸인에게 피스톨을 주어 보내는 체 하고 실상은 자기가 죽여 놓은 뒤에 그 죄를 걸인에게 둘러씌운 것이다.

산막집에 당도하였다.

순사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커다란 산지기가 문을 열었다.

“나리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들어가도 좋은가.”

“네 들어오십시오.”

순사를 따라 길버트가 들어가려고 하니까 산지기가 가로 막는다.

“안됩니다. 경찰서에서 오신 이가 조사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아니 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외조카야!”

“네 그런 줄 알지만 아무도 들이지 못합니다.”

“흥 잘한다. 두고 보자 이제는 내가 이 산의 주인이야”

산지기는 들은 체도 아니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한 10분 기다리노라니까 산지기가 문을 열어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들어오십시오.”

방 한가운데는 둥근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피스톨과 아까 그가 걸인에게 준 꾸러미가 놓여 있다. 그 옆에 순사가 앉아 있다. 길버트는 불안스럽게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저씨는 어디 모셨습니까?”

산지기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문을 닫은 옆방을 가리켰다. 순사가 조용히

“이걸 아시겠습니까?”하고 피스톨을 가리킨다.

“네. 내 피스톨입니다. ‘붉은 사자’의 주인에게 보내라고 거지를 주었습니다.”

순사의 얼굴은 무섭게 변한다.

“이 꾸러미는?”

“이건 아저씨 것입니다. 속에 금시계가 들었어요. 오늘 소포로 부치려고 한 것입니다. …엉!?”

깜짝 놀라 길버트는 뒤로 물러섰다.

옆방 문이 갑자기 열리며 죽은 줄 알았던 아저씨가 나오는 것이다. 옆에는 그 거지가 서서 있고―.

길버트는 잠시 멍―하고 섰다가 갑자기 달아나려고 하는 것을 산지기가 꽉 껴안았다.

노인의 눈에서 노여운 불길이 쏟아 나오며 야단을 쳤다.

“이놈의 자식 네가 나를 죽이려고 들어!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 이 배은망덕한 도적놈의 자식!”

“그렇지만 아저씨…”

“잔말 말아 이놈의 자식! 괜히 살인미수 죄로 붙잡아 가게 할 테야… 그렇지만 천도가 무심치 않아서 살아났다. 네가 이놈 네거리에서 만난 그 거지가 정말 거지였다면 지금쯤 나는 수풀 속에 죽어 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천행으로 죽질 아니 했어… 네가 네거리서 맛난 그 걸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가 밝고 민첩한 양반이야… 그이는 곧 네 간계를 간파하고 네 계책을 뒤틀어 놓은 거야… 왜? 알고 싶어? 못된 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그이가 숲 속으로 나를 쫓아와서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이가 내 옷을 입고 나처럼 변장을 하고 너한테 피스톨을 맞았어. 그이는 여러 번 피스톨 과녁이 되었지만 이 자식아 너같이 겨냥할 줄 모르는 자식은 처음이라더라.”

노인은 끝에 가서 이렇게 조롱까지 하였다. 그 걸인은 노인의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뭘요. 그런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는 피스톨은 잘 맞지 않는 법이니까요.”하였다.

그 말이랄지 어성이 아까 네거리에서 만났던 그런 야비한 것은 전연 없고 어데서 나왔는지 아주 점잖았다. 그리하여 길버트는 한 번 더 놀랐다. 걸인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고 당신 조카는 보니까 아무래도 수상해요. 눈가에 망원경 대었던 자국이 남았지요. 구두에 먼지도 아니 묻고 자전거 바퀴에도 먼지가 앉지 않았는데 아주 멀리서 온 것처럼 하거든요. 그러고 큰길로 가면 S까지 아주 가까운데 일부러 멀고 좁은 길로 나를 가라는 것이 수상해요. 그러고 피스톨도 원체 잘 쏠장 싶지도 아니했고…”

“이놈아 너는 명색이 무어야? 망할 자식 같으니… 누구야 너는?”하고 길버트가 욕을 하였다.

“나요? 나는 섹스턴 블레이크라는 사람입니다”하고 유명한 명탐정은 고요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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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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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emix 2010.10.08 0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묘하게 읽히는 맛이 있네요.
    분명 옮김이라는 걸 봤는데도, 읽으면서 그냥 1920-30년대 조선이 배경이겠거니 하다가 뒤에 외국 이름들이 나와서 그제야 '참, 해외 단편이지' 했는데..
    근대기 문장과 추리소설이 묘하게 뒤얽혀서 흥미진진하게 읽히는데요.
    작가가 누군가 해서 잡지 이미지를 봤는데, 섹스턴 블레이크는 시리즈의 이름인거고, 이 시리즈의 저자는 명확하지 않은 건가요? 궁금하네요. ^^

  2. 추리닝4 2010.10.08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섹스턴 블레이크라는 한 사람의 주인공을 가지고 무진장 많은 작가들(2백명 이상)이 무진장 많은 작품(4천편 이상)을 썼습니다. 좀 무책임한 답입니다만, 작품 게재 당시 원제목은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의 어떤 작품을 번역했는지 알아내질 못했네요. 원문 대조할 만한 곳도 없어서 아직까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