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잃어버린 세계>의 속편을 쓸 생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룡은 두 작품으로 충분해요."

 - 마이클 크라이튼, 1995년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맛이 좋은 음식은 아껴 먹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차분하게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게 되고, 또한 다 읽은 다음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이 부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요. 그런데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간단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고르면 됩니다. 

추리소설은 시리즈가 많습니다. 굳이 속편이라는 표현을 하지도 않을 정도로 장편이나 단편을 막론하고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뒤팽이나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등 추리소설의 초창기에도  그랬듯 인기를 얻은 수많은 탐정은 대부분 많건 적건 여러 작품에 등장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우선이다’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본다면 소설에서 후속편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거나 낯익건 작품의 재미만 있으면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작품의 연속성은 작가와 독자에게 편리함과 친숙함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해 한번 인기를 얻으면 다음 작품에도 탄력을 받기 때문에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다만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서도 존 그리샴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리즈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가스실>과 <타임 투 킬>, <소환장>과 <불법의 제왕> 등에서 관련 사건이나 인물을 약간씩 언급할 뿐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작품에 연결성을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편을 쓴 것은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에 불과합니다(영화로는 후속편이 제작되었지만 그가 쓴 소설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요).

존 그리샴


그러나 많은 추리작가들이 하나의 주인공을 만든 후 계속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여성 작가 매저리 앨링엄은 독자 가운데 절반은 스토리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주인공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매력 있는 주인공을 창조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오래 이어진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해갑니다. 조르주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 경감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 또한 전형적인 나이든 사람의 모습(?)인 고집스러운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미키 스필레인의 시리즈 주인공인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초기 대단히 거칠고 직선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다소 조심스러워졌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이크 해머 시리즈 'The Big Kill'


그런데 작품의 발표 순서가 주인공의 활약 순서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셜록 홈즈 시리즈로, 많은 연구자들이 작품 연대기를 만들 만큼 뒤죽박죽 섞여 있지요. 예를 들어 <마지막 문제>에서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알려진 홈즈는 <배스커빌 가문의 사냥개>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홈즈가 폭포에 떨어지기 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홈즈와 쌍벽을 이루는  뤼팽 시리즈 역시 작품 발표순서와 작품 속의 사건 발생 시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기를 얻으면 독자들은 후속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전편을 원하기도 합니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는 <붉은 10월>(1984)이 성공하자 후속작인 <패트리어트 게임>(1987)을 썼는데, 여기에는 전작에서 잭 라이언이 영국에서 벌인 무용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수>에서 잭 라이언은 대학생으로 잠깐 등장하며 그의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티븐 킹은 딱 부러진 후속편을 쓰진 않았는데, 메인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가끔 과거의 이야기들과 현재의 이야기들이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주인공으로는 소설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심지어는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을 때도 있지요. <토미노커즈>(1987)의 한 대목인 ‘뱅고어에 사는 또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에서 ‘뱅고어의 어떤 작가’가 누구인지는 뭐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스티븐 킹의 '토미노커스'


인기 있는 시리즈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어집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언 플레밍의 전설적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일 것입니다. 1954년 <카지노 로열>로 세상에 등장한 제임스 본드는 작가인 플레밍이 1964년 세상을 떠나면서 끝나는 듯 싶었지만 플레밍 재단이 새 작가를 물색 끝에 선정한 존 가드너가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시리즈가 이어졌습니다. 가드너는 14편의 본드 시리즈와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 두 편을 쓴 후 70세가 되던 96년 새로운 작가 레이먼드 벤슨에게 본드를 넘겨줍니다. 본드에 대해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가졌다는 벤슨은 2002년까지 여섯 편을 썼고, 그 뒤를 이은 찰리 힉슨은 본드의 어린 시절을 그린 시리즈 여섯 편을 썼습니다(<실버핀>(2005)이라는 작품이 번역되어 있군요). 그리고 2008년 세바스천 포크스가 <Devil May Care>(2008) 한 편을 발표한 뒤 제프리 디버가 뒤를 이어 <Carte Blanche>를 오는 5월 말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프리 디버와 그의 첫 제임스 본드 시리즈 작품 'Carte Blanche'. 매우 기대됩니다^^

(본드의 팬이며 그에 대한 연구서 <James Bond Dossier>(1965)도 발표한 바 있는 킹즐리 에이미스가 1968년 로버트 마캄이라는 필명으로 007이 등장하는 <손 대령>을 내 놓았지만 재단의 인증이 없어 공식적인 시리즈 로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 명작의 속편을 현대에 새로 발표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원래 작품이 유명할수록 꽤 든든한 배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렛 미첼)의 속편 <스칼렛>(알렉산드라 리플리)이나 <레베카>(대프니 뒤 모리에)의 속편 <미세스 드윈터>(수잔 힐) 등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오페라의 유령> 속편이지요. <코마로프 파일>까지 주로 국제적 모략을 다룬 작품을 써 오다가 잠시 절필선언까지 했던 프레데릭 포사이스는 느닷없이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맨하탄의 유령(번역작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 2-에릭의 부활)>을 발표합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을 떨어뜨릴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옛 친구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구성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습니다.

프레데릭 포사이스


우리나라의 특성상 아쉬운 점은 좀 다른 이외국 작품을 읽을 때 호응이 없어서 더 이상의 번역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많은 시리즈가 이런 상황입니다. 후속작에서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때도 있고, 갑자기 시리즈 중간의 작품부터 읽게 되어서 작품 속 인간관계 및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팔리지 않는 책을 출판사에게 내 달라고 하기도 어려우니,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ㅠㅠ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등 작품이 완역된 작가는 정말 복받은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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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현제 2011.04.28 1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에서 변한 탐정 하니까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가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점성술사에서 감자기 뇌의학자가 되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장면 이해가 안되네요. 물론 중간 사이에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요...

  2. 평시민 2011.04.28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물 이야기를 하자면 며칠은 걸려야 되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김내성 선생님의 유불란, 김성종 선생님의 오병호, 노원 선생님의 하영구 및 최선실, 이상우 선생님의 추병태 경감 등을 들 수 있지요, 최근 갈호태와 강지성 콤비, 문달과 설천 콤비, 백용준 형사 등 시리즈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들이 고정 팬을 확보하여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시리즈물을 빨리 선보이고 싶습니다.

  3. 쏘댕기자 2011.06.1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갈호태 아저씨를 어여 다시 보고파요! ㅎㅎ
    그건그렇고 '맨하탄의 유령' 소설 자체는 괜찮았던 건가요? 뮤지컬은 엄청난 혹평이었는데...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 

소화할 수 있을지 식사 전에 숙고해야 한다
- 소프 헤이즐(채식주의자 탐정)
 - <Sir Gilbert Murrell's Picture>(1912), 빅터 화이트처치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마치 고전적 추리소설 속에 나올 법한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뒤팽이나 홈즈 같은 위대한 명탐정을 예상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탐정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람입니다. 바로 19세기의 미식가이자 유명한 법률가인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이 그의 저서 <미식예찬(Physiologie du goût)>에 남긴 말입니다. 사바랭이 음식으로 범죄를 해결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음식 취향만으로도 인간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담은 훗날 등장하게 될 사립탐정의 대담함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맨 윗줄의 '영리한 자만이…' 역시 그가 남긴 말입니다.

브리야 사바랭(오른쪽 위)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 추리소설과 요리의 관계는 끊을 수 없습니다. 음식에 독을 넣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기록이 남아 있으며, 심지어 어떤 작품에서는 음식 재료가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끔찍한 범죄 장면 이외에도 추리소설에서는 요리에 대한 장면이 많이 등장해 관심 있는 독자의 눈길을 끌곤 합니다.
사건을 조사할 때는 배가 부르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식사를 거를 정도였던 전설적인 명탐정 홈즈를 미식가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건 해결 후 여유가 생기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장면이 작품 속에서는 드물지 않아 훗날 셜록 홈즈 연구가들에 의해 <Dining with Sherlock Holmes>, <Sherlock Holmes Cookbook> 등의 요리 관련 서적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홈즈가 차린 것은 음식이 아니로군요('해군 조약'- 시드니 파젯의 그림)


미식가 탐정의 선구자로는 밴 다인의 <벤슨 살인사건>, <그린 살인사건>등에서 활약하는 박식함의 대명사 파일로 밴스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벤슨 살인사건>에서 밴스는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지적 향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안내인의 한 사람이지. 야만인은 야만인처럼 요리해 먹는다네.…(중략) 요리 예술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문화적 영광도 최고가 되었지. 음식 예술이 저하하면 인간 문명도 쇠퇴한다네.”라는 말로 고급 요리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파일로 밴스 시리즈로 막대한 수입을 올린 밴 다인은 실생활에서 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과 식사를 즐기는 등 사치스럽게 살아 온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탓인지 작고한 후 남은 재산이 전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요리에 대해 전문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로는 네로 울프 시리즈를 쓴 렉스 스타우트를 들어야겠군요. 지금까지 등장한 탐정 중 최고의 미식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네로 울프는 탐정 업무의 조수 아치 굿윈뿐만 아니라 정원사, 요리사 등을 고용하고 있는데, 굿윈은 자신보다 요리사인 프리츠 브레너의 월급이 더 많다고 불평을 하고 있을 정도로 요리에 대한 집착은 대단합니다. 그런 울프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요리장이 너무 많다(Too Many Cooks)>(1938)입니다. 이 작품에서 울프는 ‘15인의 명(名) 요리장’ 행사에 참석해 ‘고급 요리에 미친 미국의 공헌’에 대해 연설하러 갔다가 살인 혐의를 쓴 요리장 벨린의 누명을 벗겨 줍니다. 그런데 무엇으로든 신세를 갚겠다는 벨린에게 울프가 요구한 것은 금전적인 보수가 아니라 벨린 특유의 소시지 요리법(소시스 미뉴이 Saucisse minuit)이었습니다. 하지만 꼼짝 않고 맛있는 음식만 찾는 결과인지, 울프의 체중은 무려 300파운드(약 130kg)에 달한다고 하네요.

로버트 파커가 창조한 탐정 스펜서 역시 요리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확실할 때는 무엇이든 요리해서 먹어라’는 신조 때문에 혼자서도 거창한 요리를 만드는 그는 권투와 조깅 등으로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중년의 나이에도 탄탄한 몸집을 유지한다는 것이 네로 울프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 술, 식당 등을 소개한 <스펜서의 요리>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스펜서의 요리'

많이 먹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무능하기로 악명 높은 도버 경감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조이스 포터가 창조한 이 먹성 좋은 인물은 어지간히 배가 불러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전히 손을 뻗치는 습성 때문인지 240파운드(약 108kg)라는 거구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이를 능가하는 인물이 있는데, 중견 작가 야마무라 마사오(山村正夫)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키 렌타로(滝連太郞)라는 아마추어 탐정입니다. 학생 시절 럭비선수였던 그는 키가 2m에 달하는 장신으로 앉은자리에서 초밥 50개를 먹어치우는가 하면 한 끼 식사에 보통 사람의 3인분을 먹는 왕성한 식욕 때문에 ‘걸어 다니는 위장’이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대학 사학과의 조교로 재직 중인 그는 은사에게서 ‘연구자로는 장래성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추리력만큼은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많이 먹을수록 나른해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배가 불러야 머리회전이 더 좋아진다니 정말 별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워낙 요리 장면이 많다 보니 따로 책이 발간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네로 울프 못지않은 미식가였던 렉스 스타우트가 직접 집필한 <The Nero Wolf Cookbook>(1973)에는 아침과 점심식사, 더운 날과 추운 날의 저녁식사, 후식, 손님접대요리에 이르기까지 200여종 이상의 요리법이 나와 있습니다(물론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도 포함되어 있지요). 한편 미국 추리작가협회(MWA)는 작가들 특유의 요리법을 모아 <Plots and Pans>(1989)를 발간했습니다. 전채요리에서 후식까지 요리 풀코스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는데, 완벽한 조리법에서 아무렇게나 만드는 듯한 조리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혀 요리에 실력이 없는 독자라도 기자 플레치(Fletch) 시리즈의 작가 그레고리 맥도널드의 달걀 샌드위치 정도는 쉽사리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요리 방법이란 ‘빵 사이에 달걀 프라이를 넣는 것’인데, 작가는 절반 혹은 1/4로 자르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네요… 무척 심오해 보입니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 의외로 많은 추리작가가 요리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잘 살펴보면 스티븐 킹의 빵 만드는 법, 개빈 라이얼의 피자,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아보카도 샌드위치 등 요리와 작품 스타일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입니다. 후속작(?)인 <A Taste of Murder>, <A Second Helping of Murder>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추리작가들은 이렇게 요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여성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도 요리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 여성추리작가협회(Sisters in Crime)는 <Desserticide>(1995)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Desserticide’라는 제목은 ‘후식(dessert)’과 ‘죽임(cide)’의 합성어인데, 제목뿐만 아니라 ‘독이 든 사과 케이크(Poisoned Apple Cake)’, ‘달콤한 복수 초콜렛 바(Sweet Revenge Chocolete Bars)', ‘연쇄살인범 과자(Serial Killer Cookie)', 티라미수(Tiramisu)를 변형한 ‘테러-미수(Terror-Misu)'등 살벌하고 기발한 이름이 붙은 요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주인공들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새러 패러츠키의 V.I.워쇼스키와 수 그래프튼의 킨지 밀혼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식사 습관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워쇼스키는 혼자서라도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정도지만, 킨지 밀혼은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며 평상시에는 패스트푸드를 즐기곤 하죠. 퍼트리샤 콘웰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검시관 케이 스카페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요리를 한다’고 할 정도로 요리에 관한한 선배들을 능가합니다. 또한 작품에 나온 요리를 바탕으로 <Food to Die for: Secrets from Kay Scarpetta's Kitchen>(2001)이라는 요리책이 나올 정도인데, ‘마이애미 스타일 칠리’(하트 잭), ‘초콜렛 피칸 파이’(시체농장) 등이 실려 있습니다.

'케이 스카페타의 부엌 비결'^^

덧붙여 <요리장이 너무 많다>에서 네로 울프가 그렇게 원했던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번역판에서는 모두 누락되어 있습니다-을 소개합니다.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실제로 만들어 볼 수는 없었는데(물론 핑계입니다^^),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군요. 만들어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소감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P)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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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4.21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절대미각 식탐정>이란 만화가 떠오르네요.
    정말 만화답게 엄청난 식탐을 자랑하던....얼마 전 완결이 되어서...아쉬워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에서 음식을 참 맛나게 표현하던데...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샌드위치와 맥주가 땡긴다는..

    소시스 미뉴이는..어떤 맛일까요...꾸..꿀꺽..

  2. 평시민 2011.04.21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식은 역시 추리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마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도 중간중간 요리나 가사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미국의 코지 미스터리를 보면 음식에 대한 묘사가 훌륭한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 요리를 다룬 추리소설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3. hansang 2011.04.22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장르문학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는데 아주 반갑네요. 제 졸문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좋은 글이기도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4. 갈매 2011.04.22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거슨.. 진정한 맞춤 포스팅!!!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저같은 초보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조만간 <too many cooks>는 꼭 읽어보겠어요.

    스카페타 시리즈는 저도 대학때 대여섯권 읽었는데..하도 오래되서, 이제 그녀가 요리를 즐겼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오리털 잠바였던가, 오리털 이불이었던가, 그 오리털의 출처를 찾아 범인을 잡던 에피소드만 살짝 기억이 나네요. ^^;;


    저기 나오는 책들-특히 요리책들 <plots and fans> 등이 지름신을 불러일으키는군요!
    언급된 소설도 다 읽어보고 싶고~~

    아.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먹어볼 요리도 많고!

    평시민님, 한국요리를 다룬 추리소설이라, 이거 재밌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5. 갈매 2011.04.22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 친구인 @searcherJ(Jung-youn, Yim)님이 링크를 소개하자 제게 궁금하다며 보내오신 멘션인데..
    해결 좀 해주세요~~ ^^

    "우와~ 이거 너무 재밌어요! 예전 탐정영화중에 유명 요리평론가들이 요리방법으로 연쇄살인 당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혹시 아시나요?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람의 가장 가까운 벗 


모든 개들에겐 벼룩이 있지 - 그게 보통 개라면 말일세
- 파(Parr) 경찰국장
 - <The Recoil>(1930), 프레드릭 어빙 앤더슨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을 꼽으라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꽤 많은 사람이 개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저도 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강아지는 어린 아이의 벗입니다^^

 

예전에는 개가 가축에 속했지만 요즘은 반려동물이라고 하죠? 모양이나 크기는 제 각각이지만 묘하게도 무조건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점은 모두 같은 개들은 애완용에서부터 경비용, 맹도견, 썰매 끄는 개에서 심지어는 식용, 약용(!)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또한 개에게는 충성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전설이건 실화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 이야기는 웬만한 나라에는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개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벙어리 목격자>의 책머리에는 당시 키우던 테리어 종 개 피터에 대한 헌사가 실려 있습니다. 한편 다소 괴팍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하드보일드 작가 제임스 엘로이는 자신을 미친 개(mad dog)’라 불러달라고 하는데, 그러는 것이 개에게 욕이 되는 건지 칭찬이 되는 건지 알쏭달쏭하네요.

크리스티의 애견 '피터'. 딸인 로자먼드가 데리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개들은 흔히 두 가지 역할 중 하나, 즉 범죄를 저지르는 쪽의 개와 범죄를 해결하는 쪽의 개 중 하나를 맡게 되는데, 비록 범죄자 측면에 있는 개들이라도 어쨌든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했음이 틀림없기 때문에 개보다는 그 주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범죄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개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개의 냄새 맡는 능력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냥감을 찾는데 쓰였으며, 현대에는 마약이나 폭발물을 찾아내거나 인명을 구조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개들을 등장시켰습니다.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 <주홍색 연구>의 첫머리에는 왓슨이 불독 새끼를 한 마리 기르고 있다고 했으며(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불독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숙집 주인인 허드슨 부인의 병든 개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약이 독약인지 아닌지 실험하는데 쓰였습니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생김새가 볼품없지만 냄새 맡는 데는 대단히 뛰어난 ‘토비’라는 잡종 개가 범인을 추적하는 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경찰견 같은 특별한 훈련을 받은 개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용 개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 덩치는 작아도 잘 짖는다면 충분히 경비견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용 개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줄 때도 있습니다. 역시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실버 블레이즈>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왓슨 : “달리 내가 주의해야 할 만한 것이 있을까?”
  홈즈 : “그날 밤 강아지의 낌새가 이상했던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네.”
  왓슨 : “강아지는 그날 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홈즈 :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즉,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아지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내부 사람에 의한 범행임을 홈즈는 금방 파악한 것입니다.

앤드류 복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전과 27범의 무허가 탐정 버크(Burke)는 격투에 능하고 총도 잘 쏘지만 뉴욕의 뒷골목에 사는 만큼 집을 비울 때는 자신의 개인 팬지에게 집의 경비를 맡깁니다. 1백kg이 넘는 매스티프종 개에다가 하필이면 꽃 이름을 붙여 준 이유는 만약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 그 개의 이름이 공격적이라면 재판에 불리하다는 변호사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 하네요(작가인 복스는 변호사입니다!). 이름만 별난 것이 아니라, 훈련도 반대로 시켜 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앉아’라고 하면 덤벼들고, ‘덤벼’하면 앉게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이지요.

최근에 번역된 작품 중에는 가스미 류이치의 <롱 도그 바이>라는 독특한 작품이 있군요 (제목이 어째 눈에 익다 싶으시겠는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롱 굿바이>를 따온 것이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짐작하시다시피 애로우라는 이름의 잡종 개입니다. 개들 사이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그 주인공을 돕는 것도 개들이죠. 사람은 별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개판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스미 류이치와 애견 '하치' (작가 홈페이지에서)


악당들은 개들을 범죄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들에게는 야성의 본능이 조금씩은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에 의해 폭발하게 되면 순한 애완견에서 맹수로 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배스커빌의 가문의 개>는 개를 범죄에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이자 코난 도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명문 집안 배스커빌 집안의 헨리 경이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그의 얼굴은 공포로 인해 격심하게 일그러져 있고, 근처에는 거대한 개의 발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화자(話者)인 왓슨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때 안개의 둑에서 튀어나온 저 시커먼 형체와 야만스러운 얼굴보다 더 잔인하고 처참하며 흉악한 것을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추리소설에 등장한 가장 무시무시한 개가 아닐까요. 이에 맞먹는 개로는 스티븐 킹의 <쿠조>에 등장하는 광견병에 걸린 세인트버나드 종 쿠조 정도를 꼽겠습니다.

이것이 배스커빌 가문의 '무서운' 개(?)의 기념엽서입니다.


훈련된 개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 단순해 보였는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작품도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건 반사를 이용한 범죄. 소련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개를 이용한 조건 반사 실험으로 1904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실험 내용은 다 아시겠지만,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 종을 울리는 일이 되풀이되면 나중에는 음식 없이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어느 작품(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만 제목은 좀 숨겨놓지요)에서는 이런 조건 반사를 범죄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장(山莊)에 사는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산장의 사나이는 개를 좋아하며, 절벽 쪽에 서서 ‘야호’ 소리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절벽’ - ‘야호’ - ‘개’라는 세 가지를 연결시킨 악당은 궁리 끝에 손 안대고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덩치 큰 세인트 버나드 종 개를 한 마리 사서, ‘야호’하며 소리친 후 개가 먹을 것을 보고 달려들어 주인의 양 어깨에 두 다리를 걸치게 하는 조건 반사 훈련을 시킨 것이지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어쨌든 기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조르주 심농의 <황색 개>에서는 프랑스 서북부 어촌마을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고 실종되고 여러 가지 변고가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사건 현장에는 누런 개 한 마리가 어정거리죠. 마스티프 종인 것 같기도 하고 불도그 같기도 한 그 개가 총을 쏘고 사람을 잡아가고 그러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어쨌든 개만큼 사실과 다르게 표현되는 짐승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개보다 못하다’는 말에서부터 ‘제 버릇 개 못 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등의 속담이라던가, 화날 때 쓰는 욕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쓰는 일상용어들을 개가 알아듣는다면 무척 섭섭하지 않을까요. 개들에게 요즘 세상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혹시 ‘우리들보다 못하다’ 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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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4.14 2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물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도 좋지요, 사람의 성격에 동물적인 특징을 대입해도 좋을 것 같고..., 예를 들어 범행을 하는데 이 사람이 미끼 구실, 저 사람이 사냥개 구실 등을 했다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저도 동물을 좋아해 동물 관련 미스터리도 써보고 싶습니다.

  2. 행인3 2011.04.24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들 본질이 그런 가봐요.
    머리 나쁜 강아지로 소문난 X추를 키우는데 요놈은 자기 주인 돌아오기 한시간 전에 (어스름해지기 시작하면) 현관에 딱 앉아있어요. 눕지도 않고 대문만 바라보고 딱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걸 보고 있는데 괴롭습니다. 가끔씩 발이 저린지 섰다가 다시 앉곤 하는데 한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으니 보는 게 부담스럽고...참...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곳

진실은 바보같다
-기디언 펠 박사
 - <The Crooked Hinge>(1938), 존 딕슨 카

 

추리소설에서 다루는 지능적 범죄에는 철벽같은 알리바이, 시체(및 범행) 숨기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밀실입니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밀실도 쉽게 만들 수 없습니다


밀실이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누구도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는 방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방이 트여 있더라도 출입구가 잠겨 있는 고층건물의 옥상, 커다란 창문이 있지만 보통 사다리 정도로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탑의 방, 누가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는 해변 모래사장,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잠수함이나 우주선 같이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장소도 밀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궁극적으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드나들 수 없는 장소라면 모두 밀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작가들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는 3차원적 세계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마치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독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그래서 밀실 범죄는 흔히 ‘불가능 범죄’라고도 합니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되는 법이지요. 기원전에 기록된 성서 외경의 <벨과 뱀>에서 밀실을 다루었을 정도로 역사는 무척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 작가 존 딕슨 카는 <세 개의 관>(1935)에서 주인공인 펠 박사의 입을 빌려 밀실 트릭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한편 마술사 출신 작가인 클레이튼 로슨의 <Death From a Top Hat>(1938)에서는 마술사 겸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가 펠 박사의 밀실 강의를 이용해 약간의 내용을 더 추가하고 세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는 <탐정소설의 수수께끼(探偵小說の「謎」)>에서 밀실 트릭에 대해 정리했지요.

존 딕슨 카의 '세 개의 관'


다음 밀실 트릭들은 위 세 사람의 이론을 토대로 해서 요약한 밀실 트릭들입니다. 훗날 작품을 읽을 분들을 위해서 기본적인 해설만 했으며, 작가나 작품 제목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밀실 트릭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진짜 밀실이며 사람이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2. 밀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한 밀실이 아닌 경우

이들 커다란 두 분류를 기본으로 하여 세부적인 분류가 가능합니다.

더보기

 
덧붙이자면 밀실과 연관된 분야가 있는데, 바로 밀실을 빠져나오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밀실 트릭을 역으로 이용한다고도 할 수 있으며, 주로 교도소에서의 탈옥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목 등에서 결론이 이미 예고된 작품이라 대표적인 작품의 제목을 소개해도 지장이 없을 것 같네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는 작품으로는 자크 푸트렐의 단편 <13호 독방의 문제>, 모리스 르블랑의 단편 <뤼팽의 탈옥>등이 있습니다. 또한 정통적인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스티븐 킹의 <쇼생크 탈출>도 탈옥 기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891년 선을 보인 이즈라엘 쟁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는 밀실을 다룬 최초의 장편 분량 소설로서 영국의 신문에 연재되며 호평을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가스통 르루가 본격적인 밀실을 다룬 작품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을 써서 현재까지도 밀실 작품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편 코난 도일도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단편 <얼룩 끈>(1892)에서 밀실 사건에 도전합니다.

이즈라엘 쟁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


존 딕슨 카는 ‘밀실의 거장(The Master of the Locked Room)’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가지고 있지요. <유다의 창>(1938), <세 개의 관>, <비틀어진 경첩>등은 밀실을 다룬 그의 걸작입니다. 카의 전기 <존 딕슨 카: 기적을 해명한 사나이(John Dickson Carr: The Man Who Explained Miracles)>(1994)를 집필한 더글러스 G. 그린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밀실을 다룬 걸작들의 목록은 언제나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교한 해결 방법을 고안해 낸 존 딕슨 카의 작품들로, 그 자신만의 작품 영역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작가들에 의한 밀실 작품들이다.”

존 딕슨 카의 전기 '기적을 해명한 사나이' 표지

밀실 트릭의 대부분은 현대적 상식으로 바라볼 때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흔히 볼 수 없는 특수한 장치를 쓰거나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기법 같은 아이디어만으로는 독자에게 호응을 얻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지요.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오락을 위한 살인>에서 추리작가가 되려면 피해야 하는 항목을 열거한 바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밀실이었습니다: “밀실은 피하라. 오늘날 그것에 신기함과 흥미를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천재 밖에 없다.”

허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H.R.F.키팅은 ‘밀실 트릭은 추리소설을 쓰려고 생각했던 일이 있는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궁극적인 유혹’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고전적인 작품들은 트릭의 효용성을 떠나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실력 있는 작가들은 간결한 트릭만으로도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있습니다. 밀실 트릭은 모든 트릭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궁극적이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요즘도 밀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자주 나오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46번째 밀실>이나 이시모치 아사미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 여러 작품이 번역되어 있으니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밀실을 끝없이 추구하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키팅은 밀실에 대한 매력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불가능 범죄는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 내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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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4.07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제대로 된 밀실물을 써 보고 싶습니다만 밀실도 당위성이 있어야 만드는 법이니 스토리상 제대로 연결되도록 해야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을 보면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가 아주 기가 막히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좋겟습니다.

  2. 카메라이언 2011.04.08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헷 전 지금 연재 중인 붉은깃발의섬~을 밀실로 범벅해 놓았다는. 밀실 넘넘 사랑해요. 딕슨 카의 밀실은 구부러진 경첩에서 졌다고 느꼈었다는. 정말 화딱지 났었어요. 못 맞춰서. 으흑흑. 나빠. ㅠㅠ


진짜보다 더 진짜다울까?

중년의 삶이란 언제나 젊은 시절 꿈의 패러디라고 누가 말했던가?

 - <Better Off Dead>(1951), 헬렌 맥클로이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은 코난 도일이 썼다’

위의 문장은 맞는 말일까요? 답부터 밝히자면 ‘아니오’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쓴 것은 아닙니다. 셜록 홈즈라는 명탐정을 탄생시킨 사람은 분명히 코난 도일이지만 그 이외의 많은(셀 수 없을 정도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홈즈를 등장시켰습니다. 홈즈 이야기는 조금 뒤에 설명하겠지만, 특정 작가가 창조해 낸 주인공을 다른 작가가 차용해 작품을 쓰는 것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패러디(parody), 다른 하나는 패스티쉬(pastiche)입니다. 우리나라도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용어들이 일반인에게도 익숙해졌는데, ‘패러디’도 그런 용어 중 하나입니다. 패러디란 원래 작품을 약간 비꼬거나 희화(戱畵)한 풍자물이지요. 한편 패스티쉬는 원래 작품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안작(贋作)이라고도 합니다. 오마주니 헌정작이니 뭐 파고 들어가면 더 많겠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셜록 홈즈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면서 모험소설이기도 하고 스파이소설(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최후의 인사 등)이기도 하며 공포소설(배스커빌 가문의 사냥개, 서섹스의 흡혈귀 등), SF 소설(기어다니는 사람 등)이기도 합니다. 이런 넓은 스펙트럼과 확실한 캐릭터,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장과 약간은 정형화된 패턴. 이 정도의 멍석이 깔려 있다면 ‘나도 한 번쯤은…’ 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겠죠.

유명해지면 모조품이 금방 나오는 것처럼, 등장하자마자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명탐정 홈즈의 모방 작품은 일찌감치 등장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설가이며 도일의 친구이기도 한 로버트 바(Robert Barr)는 홈즈의 이름을 절묘하게 바꾼 ‘셜로 콤즈(Sherlaw Kombs)’가 등장하는 단편 <The Great Pegram Mystery>를 1892년 발표했습니다. ‘진짜’ 홈즈가 등장하는 첫 번째 단편인 <보헤미아의 추문>이 발표된 것이 1891년이니, 불과 1년이라는 짧은 사이에 등장한 것이지요.

'The Great Pegram Mystery'의 삽화(오른쪽이 셜로 콤즈). 홈즈와 별로 다른 점이 없어 보입니다

한편 괴도 뤼팽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도 자신의 단편 <한 발 늦은 셜록 홈즈>(1904)에 홈즈를 등장시켰습니다. 문제는 홈즈를 멍청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죠. 유능한 인물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가 정작 뤼팽과의 대결에서는 거듭 실수를 저지르고 뒤통수를 맞으니 도일의 심기가 편할 리는 없었습니다. 르블랑은 도일의 항의를 받자 머리글자만 앞뒤로 돌려 ‘에를록 쇼메스 Herlock Sholmes’라는 이름으로 바꿔놓았는데, 나중 작품 <기암성>(1905)에서는 총을 마구 쏘아 대는 인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자신은 첫 번째 뤼팽 시리즈(홈즈가 등장한 지 20년 후 발표)를 쓸 때까지만 해도 코난 도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홈즈 팬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아르센 뤼팽 대 에를록 쇼메스' 영어판 표지

어쨌든 장 단편을 통틀어 60여 편의 오리지널 홈즈 시리즈를 남긴 도일은 ‘홈즈’라는 이름에 저작권 설정 등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탓에 지금까지 7천여 편 이상의 ‘가짜’ 홈즈 시리즈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목록만으로도 책을 한 권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한편, 홈즈 못지않은 명성을 얻은 뤼팽도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습니다. 르블랑이 작고한 후 프랑스의 서스펜스 작가인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합작으로 모험소설에 가까운 속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는 뤼팽이 범죄자라기보다는 모험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뤼팽 역시 르블랑이 생각조차 못했을 아시아에서 수모를 당했다. 뤼팽은 에도가와 란포의 <황금가면>에서 일본의 보물을 노리고 프랑스 대사로 변장해 잠입에 성공하지만,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明智小五郞)와의 대결에서 보기 좋게 패해 도망치는 망신을 당합니다.

유명하기로는 이들에 뒤지지 않는 007 제임스 본드도 모방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몇 가지 흥미 있는 패러디를 살펴보죠.

1964년 도널드 스탠리(Donald Stanley)는 <홈즈, 007을 만나다(Holmes Meets 007)>를 잡지에 발표했는데, 3년 후 1에서 221B까지의 번호가 붙어 있는 222권의 한정판 책으로 만들어 발간했습니다(221B는 아시다시피 홈즈의 하숙집 주소입니다).

․ 윌리엄 헨리 놀스(William Henley Knoles)가 클라이드 앨리슨(Clyde Allison)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0008 시리즈는 본드 패러디 중에서 아마도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60년대에 모두 20권이 나온 이 시리즈는 내용이 보잘것없지만, 전집이라면 값이 5천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0008' 시리즈 중 하나인 'Gamefinger'. 007 시리즈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 003 1/2은 007의 절반일까요? R.D. 매스콧(R. D. Mascott)은 1967년 <003 1/2: 제임스 본드 주니어의 모험(003 1/2: The Adventures Of James Bond Junior)>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본드의 조카인 제임스 본드 주니어가 주인공으로 활약합니다.

'제임스 본드 주니어의 모험'

․ 이름을 읽으려다 당황하게 되는 ‘I*n Fl*m*ng’의 <앨리게이터(Alligator)>(1962), 발음은 비슷하지만 철자가 다른 이언 플레밍(Ian Phleming)의 <푸시 라무르와 세 마리 곰(Pussy L’Amour And The Three Bears)>(1965), 그리고 아이 엠 플레이밍(I. M. Flaming)의 <스네이크핑거(Snakefinger)>(1966) 등은 작가의 이름까지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이런 모방 작품에 대해 달갑게 여기는 작가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코난 도일의 아들 에이드리언 도일은 추리소설가 존 딕슨 카와 함께 패스티쉬 작품을 모은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Exploits of Sherlock Holmes)>(1954)을 엮기도 했지만, 엘러리 퀸이 엮은 패러디 작품집 <셜록 홈즈의 재난(The Misadventures of Sherlock Holmes)>(1944)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항의해 결국 판매금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셜록 홈즈의 재난'

푸아로나 미스 마플을 창조한 크리스티, 캐드펠 수도사 시리즈를 쓴 엘리스 피터즈는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자신의 주인공을 더 사용하지 못하게 법적인 조치를 취해 놓았지요. 그들은 평생 동안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신들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혹시라도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그러하였을 겁니다. 홈즈나 왓슨이 상상도 못할 만큼 다양한 모양으로 수많은 작품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들의 결정은 그다지 놀랍거나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막아 놓더라도 완벽한 것이란 없습니다. 명탐정들은 워낙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특징만 제대로 묘사해 놓으면 설령 이름이 바뀌더라도 원래 누구였는지 쉽사리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인의 명탐정(Murder by Death)>(1976)은 이런 식의 패러디 영화로 가장 대표적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마일로 페리에, 제시카 마블스, 샘 다이아몬드, 딕과 도라 찰스턴, 시드니 왕인데 이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엘큐울 푸아로, 미스 제인 마플, 대쉴 해밋의 샘 스페이드, 닉과 노라 찰스 부부, 얼 데어 비거스의 찰리 챈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리소설 팬들이 보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인터넷의 세계적 보급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패러디, 패스티쉬 작품들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어렵지 않게 여러 사람 앞에 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이어 열성 팬들이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 팬 픽션(Fan Fiction)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죠. 마니아층이 두터워지면서 팬 픽션은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SF, 영화,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상상력도 늘어나는 것 같네요.

얼마 전 소식을 보니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영화가 제작된다고 하던데, 원작과는 달리 젊은 시절 이야기라고 하네요. 제작사가 디즈니라고 하니 도대체 어떤 내용이 될지 궁금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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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30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플의 젊은 시절이라..., 저도 한 번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영화로 나오는군요, 마플이 1930년도에 등장했을 때 65~70세 정도였으니 젊은 시절이라면 50여년 전인 1880년대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때를 배경으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1891~1894년 셜록 홈즈의 공백기에 마플이 활동한다든지 하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2. 카메라이언 2011.04.03 0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헷, 그러고 보니 제가 제일 처음 본 셜록 홈즈가 나오는 코난 도일이 쓰지 않은 소설은 기암성이었나 봐요. ///ㅅ/// 중학교 때였나 초등학교 때였나 ... ...

  3. 블랙애더 2011.08.10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즈니의 마플 역에 제니퍼 가너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쌓아온 이미지만으론 요즘 TV에서 나오는 다른 수사 미드(CSI, NCIS, 본즈, 탐정 몽크)랑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살면서 각각의 길을 가

사람들이 삶의 규칙들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내 여력이 되는 한 맞서 대항할 낡은 관습이 하나 있다.
결혼이 바로 그것이다.
 - 조르주 심농 (프란시스 라카생과의 대화에서, 1975)
 

추리소설이 인기 있는 나라에서 추리작가 부부는 드문 존재가 아닙니다. 젊은 시절 문학 수업 도중 사귀는 경우도 있고 추리작가들의 모임에서 마음이 맞는 경우도 있겠고, 그 이외에 남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연도 있을 수 있겠고과정이야 어쨌든 맺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을 하나 완성한 다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곤 하는데, 만약 작가에게 솔직할 수 있는 배우자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 특히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추리소설의 경우에는 -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 즉 1930년대에는 합작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팀을 이루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100여 편의 작품을 함께 발표한 G.D.H. 콜(George Douglas Howard Cole)과 M.I. 콜(Margaret Isabel Cole) 부부가 선구자 격입니다(콜 부인의 남동생 역시 사회학자이며 추리소설을 쓴 레이먼드 포스트게이트(Raymond Postgate)로 법정추리의 걸작 <12인의 평결(Verdict of Twelve)>(1940)을 썼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남편이 줄거리를 착상하고 집필은 아내가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고, 아쉽게도 그들의 작품 활동은 남편의 작고 후 끝나고 말았습니다.

G.D.H.콜, M.I콜 부부

스웨덴 출신의 페르 발루(Per Wahlöö)와 마이 흐웨발(Maj Sjöwall 발음과 표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여기를 참조했습니다.) 부부도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인 남편 발루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쓰기 이전 이미 두 편의 경찰소설을 발표한 바 있으며 아내인 흐웨발은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요. 이들은 스톡홀름 경찰국 ‘마르틴 베크 경감’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초기 이들의 작품은 에드 맥베인의 <87 분서>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정통적 수사물이었지만 나중에는 숨은 권력을 비판하는 사회적인 스타일로 차츰 변화했으며 당시 스웨덴의 사회를 엿볼 수도 있는 방대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총 10권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집필할 예정이었으나 1975년 남편인 발루가 먼저 사망하는 바람에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흐웨발은 혼자서 열 번째 작품인 <테러리스트 (Terrorist)>를 발표, 시리즈를 어렵게 마무리했습니다. 흐웨발은 10년 이상 소설 집필에서 손을 떼고 있다가 1990년 네덜란드 추리작가인 토머스 로스와의 합작인 <그레타 가르보를 닮은 여인 (Kvinnan Som Liknade Greta Garbo)>을 발표해 독자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스웨덴 우표에 실린 흐웨발과 발루 부부

명성만으로 따져볼 때 가장 화려한 부부 작가로는 로스 맥도널드와 마가렛 밀러 부부를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캐나다에서 성장한 맥도널드는 캐나다 태생의 동갑나기 밀러와 1938년 결혼, 1983년 작고하기까지 45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작품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남편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아내는 심리 서스펜스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게다가 각각 미국 추리작가협회(MWA)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에드거상 거장(Grand Master)으로도 선정된 유일한 부부이기도 합니다.

로스 맥도널드, 마가렛 밀라 부부

맥도널드-밀라 부부의 선배 격인 미국 추리작가협회 창설 멤버이자 하드보일드 작가 브렛 할리데이는 세 차례 결혼했던 상대가 모두 추리작가였다는 놀라운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아내인 캐슬린 롤린스와는 함께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 두 번째 아내인 헬렌 맥클로이는 기자 출신으로 여자로서는 최초로 미국 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세 번째 아내인 메리 새비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추리작가였습니다.

브렛 할리데이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웨스턴, SF,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발표하며, 장․단편에 모두 능할 뿐만 아니라 예리한 미스터리 평론가이기도 한 빌 프론지니는 오직 추리소설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여성 작가 마르시아 멀러의 배우자이기도 합니다. 이들 커플은 종종 함께 작품을 썼는데, 그들의 합작품 중 <더블(Double)>에는 독특하게도 서로의 주인공, 즉 프론지니의 이름 없는 탐정과 멀러의 샤론 맥콘이 등장해 협조하며 사건을 해결합니다.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다음에 결혼한 두 사람은 결혼 전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멀러-프론지니 부부의 합작 'Double'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작가 부부로는 조너던 켈러맨과 페이 켈러맨 부부가 있습니다. 각각 정신과 의사와 치과의사였던 두 사람은 특이하게도 결혼 이후 작가생활을 시작해 명성을 얻었습니다.

페이(왼쪽), 조너던 켈러맨 부부

가까운 일본에도 이미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부부 작가가 여럿 있습니다. 서술 미스터리의 대가 오리하라 이치(析原一)와 니츠 키요미(新津きよみ) 부부는 대학 졸업 후 여행과 관련된 직장에 다니면서 습작활동을 했으며, 같은 해(1988년) 작가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2중 생활>이라는 공동작품도 발표했지만 각각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독립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열성 팬이 적지 않은 신본격파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의 부인은 공포소설과 팬터지 소설로 유명한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로, 공교롭게도 생일도 단 하루 차이(남편이 하루 앞이랍니다)나는 동갑나기입니다. 또 일상 미스터리를 주로 쓰는 가노 도모코(加納朋子)와 <우행록>을 쓴 누쿠이 도쿠로(貫井德郞)도 부부 사이입니다.

이들 뛰어난 부부 작가들을 살펴보노라면 한 가지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그들의 2세도 과연 추리작가로 활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미술가나 음악가 등 예술가들 집안은 후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과학 계통에서도 프랑스의 베르누이 집안은 뛰어난 수학자들을 연이어 배출했다고 하는데, 추리문학계의 경우는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아 아직까지 돋보이는 가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2대를 이어간 집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미국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수 그래프튼(Sue Grafton)은 역시 추리작가였던 아버지 C.W.그래프튼(Cornelius Warren Grafton)보다 훨씬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여성 추리작가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딸 캐롤 히긴스 클라크도 추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과연 어머니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P)

메리 히긴스 클라크(왼쪽), 캐롤 히긴스 클라크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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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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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23 2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부 작가라면 무엇보다도 남편은 남성 입장, 여성은 여성 입장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부 작가, 아니, 사실은 합작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방식으로 써 나갔을지가 더 궁금합니다. 엘러리 퀸의 경우(소문이지만) 리가 글을 쓰고 구성 등은 더네이가 했다고 합니다.

  2. 추리닝4 2011.03.24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도 부부 추리작가들 있지요. 이 회장님, 황 선배.. ^^

  3. 카메라이언 2011.03.24 0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 쿠헉! 이 얼마나 대단한... (뭐, 뭔가 결혼을 해도 될 것 같아. ;;)

  4. 필론 2011.03.27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 그래프튼의 아버지도 추리작가이셨군요.^^ 대를 이어서 추리문학을 쓰는 열정이 아름다워 보이네요.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많지도 않소. 1주일에 3백 달러와 필요경비면 되요."
- 모우지스 와인
   - <인간의 덫 The Big Fix>(1973)  로저 L.사이먼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을 직업별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첫째 경찰 등 국가 소속의 공무원, 둘째 직업적 사립탐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탐정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의 수입을 한번 살펴볼까요?
우선 경찰이나 형사는 대도시 경찰본부에 있건 시골 파출소에 있건 똑같은 공무원 신분이라 고정 수입이 있으니 이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즘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 에코>를 다시 읽어 보니 90년대 미국에는 부업(이를테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부지런한 경찰도 있었더군요.

이와 달리 사립탐정은 수입의 격차가 큰 편입니다. 잘 나가는 쪽은 대형 탐정 사무소를 차려 비서나 직원까지 두기도 하지만 끼니마저 걱정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은 탐정도 있습니다. 작품 속 최초의 사립탐정이었던 셜록 홈즈는 사치스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생활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민층 의뢰인에게는 돈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어쩌다가 찾아오는 돈 많은 고관대작에게는 많은 보수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당시의 물가가 지금처럼 살인적이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훗날 등장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립탐정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심지어 90년대 중반에 재닛 에바노비치가 발표한 작품의 제목은 <그래, 난 돈을 위해 산다>였습니다(지금 새로 번역된 것은 원제인 <원 포 더 머니 One for the Money>로 출간되었죠).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스테파니 플럼은 속옷 회사에서 해고된 후 돈을 벌 길이 막막한 끝에 용의자를 소환하는 위험한 일을 맡게 됩니다. 누구와 마음먹고 싸워본 경험도 없고 총도 쏘아 본 적도 없는 젊은 여성이 보수가 많은 편이라고 해서 뛰어든 것인데,  문제는 모든 것이 성과급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입이 적다는 것이죠. 과연 그녀는 어떻게 될까요? 영화로도 제작중이라니 곧 볼 수 있을 겁니다.

스테파니 플럼의 좌충우돌 무용담 '원 포 더 머니'


사립탐정과 의뢰인의 정식 고용관계는 일정액의 보수를 지불할 때부터입니다. 즉 현대의 사립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은 의뢰인이 탐정을 찾아와 의뢰할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한 후, 마지막으로 경비를 지불하면서 시작되죠. 미국의 경우 2차 대전 이전에 등장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는 보통 하루 20-25달러에 필요경비를 요구했고,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온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는 1일 50달러를 요구하다가 1960년대에는 1일 1백 달러로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 초반 로버트 파커의 탐정 스펜서는 하루 200달러에 필요경비, 그리고 아더 라이언즈의 탐정 제이콥 애쉬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하루 125달러, 필요경비 및 1마일(약 1.6Km)당 15센트의 연료비까지 청구합니다. 적지 않아 보이지만 이래저래 들어가는 비용이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사건 의뢰가 얼마나 자주 들어오느냐에 좌우됩니다. 그래서 의뢰가 없어 들어올 돈이 없으면 이웃 할머니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하는 일까지 마지못해 맡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렇다고 탐정들에게 자존심마저 없는 것은 아니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의뢰인이라면 거절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펜서는 <가출(Ceremony)>(1982)이라는 작품에서 딸을 찾아달라는 거만한 아버지에게 착수금으로 2천억 달러라는 거액을 요구해 기가 질리게 만들었지만 딸의 어머니가 부탁하자 1달러에 사건을 맡는, 얼핏 보기에는 허세와도 같은 자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딸은 어디로 갔을까요. 로버트 B.파커의 'Ceremony'.


또한 미키 스필레인의 탐정 마이크 해머는 <심판은 내가 한다>에서 친구가 살해되자 보수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복수를 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듭니다.

고정수입이 없는 사립탐정과는 달리 아마추어 탐정은 사건에 관해서는 가장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특별한 소속감, 의무감도 없는 그들은 범죄 수사를 취미로 즐길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는 편이죠. 게다가 가끔 부수입이 생기기도 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몰락한 집안의 아들이자 탐정의 원조 뒤팽은 특별한 직업도 없이 많지 않은 유산의 이자 수입으로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금전적 수입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살인사건의 수사에 뛰어들지만,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편지를 찾아주는 댓가로 5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챙기는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아마추어 탐정 중에서 경제적 관점으로 마음이 편했을 인물을 꼽자면 S.S.반 다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일로 밴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젊은 독신 사나이인 그는 숙모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생활에 관한 한 아무런 걱정 없이 이스트 38번가의 호화 맨션에 친구이자 사건 기록자인 반 다인과 함께 거주하며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취미로 살인사건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파일로 밴스(윌리엄 파웰이 연기) - '케넬 살인사건'


경찰이지만 자기 돈, 그것도 쌈짓돈 수준의 적은 돈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을 써가면서 수사하는 유별난 형사가 있습니다. 츠츠이 야스타카(筒井康隆)의 단편집 <부호형사(富豪刑事)>(1978)에 등장하는 칸베 다이스케(神戶大助)는 검소하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던 형사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어 놓은 부유한 형사입니다. 엄청난 갑부인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그다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축재한 것을 후회해 오다가, 형사가 된 아들이 정의를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죠. 자가용은 캐딜락, 한 개 8천5백 엔짜리 시가를 절반도 피우지 않고 버리는 칸베 형사는 밀실 사건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해 사건 현장과 똑같은 건물을 짓는가 하면, 유괴범을 잡기 위해 길바닥에 현찰 5백만 엔을 뿌리기도 하며 문자 그대로 돈을 물 쓰듯 하며 사건을 해결합니다.

 

드라마로 제작된 '부호형사'. 주인공이 여자(후카다 교코 분)로 바뀌었군요. (이건 아직 못 봤습니다.)


우스갯소리 하나. 실제 의사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가 훨씬 인기 있는 이유는 아무리 위독한 환자라도 거뜬히 치료하는 솜씨에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회복되어 퇴원하는 환자에게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작품 속의 탐정들이 인기 있는 이유도 드라마 속의 의사와 마찬가지로 보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위험 속에 뛰어들어 솜씨 좋게 해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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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17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방영된 드라마 <도망자 플랜 B>의 주인공인 탐정 지우는 돈 밝히는 바람둥이죠, 조만간 방영할 <시티헌터>의 탐정 또한 원작 캐릭터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의 탐정보다는 초라한 사무실에 앉아서 정의와 진실을 쫓는 탐정 쪽이 마음에 들더군요.

  2. 카메라이언 2011.03.17 0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호형사 드라마 너무 재미있게 봤었어요. ㅋㅋㅋ 후카다 교코에게 정말 딱 맞는 역할이었다는. ㅋㅋㅋ 아우 이제나 저제나 원작 번역되어 안 나오나 기다리는데, 여적 소식은 없군요. 정말 궁금한데... ... ... ㄱㅜ 나 정말 일어 배워야 하나...OTL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사람들

"당신 여권에는 작가라고 되어 있지만, 그건 아주 융통성 있는 단어이지요."
- 피터스가 라티머에게
   - <디미트리오스의 관>(1939)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에게 특유의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실상 천재 탐정이 드물게 된 요즘도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탐정보다 더 기발하고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려는 작가도 드물지 않습니다.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 시리즈의 작가 어네스트 브라마는 출생연도까지 불분명하며(그의 출생연도는 자서전적인 소설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으며, 내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도 싫다”고 돌려보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작가협회에서는 매년 ‘여름추리소설학교’를 여는데, 그 행사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이 참가하죠. 여기 참가한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평범하고 어쩌며 소심해보이기까지 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기발한 범죄를 궁리하고 있습니다만 외모만으로는 어디서나 마주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거의 은둔자처럼 살았던 브래머와는 달리 이런 저런 기벽(奇癖)이 전해져오는 유명 작가도 있습니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추리소설을 썼다’는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적인 재능과 함께 반항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우한 성장 배경 탓일지는 몰라도 그는 평범함보다는 파격적인 면을 추구했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명령불복종’과 ‘의무 불이행’으로 퇴학당하는 등 타고난 반골 기질도 있었죠. 워낙 인생이 파란만장한 터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여럿 있습니다. 몇 년 전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와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가 번역되었고, 얼마 전 출간된 앤드루 테일러의 <아메리칸 보이>는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합니다.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하는 '아메리칸 보이'


코난 도일은 젊은 시절 심령술, 신비학(神秘學), 강령술(降靈術)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이를 먹은 후에는 관심 수준을 넘어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과학적인 상식을 지닌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 냈으며, 원래 의사였던 그가 말년에 심령술 신봉자가 된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도일이 심령론을 신봉할 것을 공언하고 그 선전과 전도에 나선 것은 제1차 대전 끝 무렵부터였으므로, 그런 미신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전쟁 중에 장남 킹슬리를 비롯한 많은 친지를 잃고 마음의 균형을 잃은 탓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도일은 고고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으로 일컬어지는 ‘필트다운 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필트다운 인 사건’이란 191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이 영국 필트다운에서 발견한 원시인 두개골 화석이 사람과 오랑우탄의 턱뼈를 인위적으로 합성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근 40년이나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이지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찰스 도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확실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이 사기극의 주모자로 도슨을 비롯한 주변의 고고학자들을 꼽고 보고 있지만 약 70년 후 이 사건을 연구한 미국의 고고학자 존 윈슬로(John Winslow)는 당시 필트다운 근처에 살았고 1912년에는 공공연히 발굴현장 근처를 자주 방문했던 코난 도일을 조심스럽게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도일은 장난을 꾸밀만한 기술, 지식, 기회를 모두 갖춘 인물로서 신비학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을 한 번쯤 골려주겠다는 동기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도일의 작품 <잃어버린 세계>에 나오는 가상 지역의 지도와 필트다운 근교의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소설 속에는 뼈의 위조나 장난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오는 것을 볼 때 필트다운의 사기극은 <잃어버린 세계>의 플롯을 기초로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윈슬로에 따르면 도일은 이 사건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듯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실마리 - 이를테면 크리켓 경기에 사용하는 배트 모양의 용도불명의 코끼리 다리뼈(코난 도일은 뛰어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턱뼈가 발견된 곳에서 3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어금니 등 -를 던져 놓았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을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과연 도일이 범인이었다면 그의 장난이 성공해서 즐거워했을지 아니면 어이없어했을지 궁금합니다.

밀실을 다룬 고전 <노란 방의 비밀>과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자 가스통 르루도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못지않은 기발한 장난기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기자였던 르루는 형무소에 있던 귀족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류를 위조, 동료 기자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특종을 따 낸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르루의 작품 집필 때의 습관도 유명합니다. 그가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작품을 쓸 때면 온 집안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그는 창문으로 뛰어가 총을 쏩니다. 그러면 그 신호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접시들을 깨뜨리고 냄비들을 두들기며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며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끝냈으니 화끈하게! 가스통 르루의 캐리커쳐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인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역시 기발한 재능과 독특한 장난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추리작가 도로시 솔즈베리 데이비스의 기억에 의하면, 어떤 만찬에 참석한 하이스미스는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애완용 뱀 두 마리(민달팽이라는 이야기도 있네요)를 테이블에 꺼내 놓고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는 모습을 태연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1995년 작고할 때 예상대로(?) 놀라운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쓸 때 머물렀던 뉴욕 주 북부의 한 예술인 공동체 마을에 3백만 달러라는 그녀의 유산을 모두 기증한 것이지요. 이 일은 마을 공동체 1백년 역사상 한 사람의 기증으로서는 최고액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젊은 시절. (작품집의 표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큰 활약을 보인 다카키 아키미츠의 성공은 미신과도 같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후 직업을 얻지 못해 2년 동안이나 실업자로 지내던 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을 쓰면 성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문학 수업 같은 것은 해 본적도 없었던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점괘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학생 시절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는 추리소설을 선택했으며, 전쟁 후 물자 부족으로 원고지도 없어 잡다한 종이에 약 6백매 정도의 장편을 3주 정도 걸려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출판사 이곳저곳에 원고를 가져갔지만, 인쇄용지도 부족한 판국에 이름도 없는 젊은이가 쓴 장편소설을 상대해 주는 곳이 있을 리가 없지요. 여기서 그는 다시 한 번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대가(大家)에게 이 원고를 보내면 인정받을 것이고, 그럼 성공할 것이다’라는 낙관적인 점괘가 다시 나오자 그는 원고지에 깨끗하게 다시 쓴 후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 에도가와 란포에게 원고를 보낸 것이죠. 란포는 이 무명 청년의 작품을 읽은 후 참신한 내용에 감탄해서 출판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역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문신 살인사건>(1948)이며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미즈 교스케는 최고의 천재 탐정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점의 인생론>, <방위학(方位學)입문>, <상성(相性)판단>등 일련의 점술 관련 서적을 집필하며 점술의 전면적 신봉자임을 밝혔습니다.

점을 신봉했던 다카키 아키미츠

사실 그의 점에 대한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 부친이 많은 빚을 남긴 채 급서(急逝)하고 자신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을 때, 부친의 친구에게 손금 점을 본 후 점괘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어쩌면 작가들의 인생만 살펴봐도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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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10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글을 쓸 때의 버릇은 특별히 없습니다만, 굳이 하나 든다면 밤에 써야 더 잘 써지더군요.

  2. 시무언 2011.03.10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난 도일같은 경우는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죠. 그것도 어찌보면 괴짜고...

  3. 카메라이언 2011.03.10 0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쩜 좋아요. 전 너무 평범한 것 같아요. 꺅. ==33 후다닥 도망.

  4. 갈매 2011.03.11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특이한 기벽이, 기질이 있어야 작가가 되는 것일까요? ^^

  5. 행인2 2011.03.11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선생, 정말 멋집니다^^
    '태양은 가득히'나 '낯선 승객'이나 정말 대단한 작품인데.

  6. myungworry 2011.03.14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예쁘군요. 물론 소설도 좋습니다만.

  7. Miss Baby 2011.05.2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카키 아키미츠의 문신살인사건 북리뷰를 하기 위해 작가 리서치하는 도중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을 발췌했습니다만,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코멘트 달아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자체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많이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jaera1990.blog.me/130109318644


극복하면 더욱 가치 있는 것

나는 실수하거나 과신으로 속아넘어가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네.
-맥스 캐러도스
   - <디오니소스 은화>(1914) 어네스트 브래머

1842년 에드거 앨런 포우가 아마추어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한 후 속속 등장한 추리소설 속의 탐정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능력(추리력뿐만 아니라 체력이나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명탐정’이라는 호칭을 당당히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탐정이 장점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금방 질려 버릴 것 같습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인물은 친근감도 떨어지고 오히려 사건 해결에 왜 이리 시간이 걸리나 싶은 생각까지 들 듯 하네요. 나름대로 인간적인 면모들을 드러내 보여서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주인공을 영웅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주인공들에게 뭔가 특징을 부여했는데, 그것은 독특한 외모나 취향일 수도 있었고 약간의 결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결점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별난 성격이지요. 특출한 능력의 탐정이 가진 괴팍한 성격 - 이것은 일종의 공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국 작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가 창조한 ‘평범한 주인공’ 조셉 프렌치 경감은 오히려 파격적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25년 <프렌치 경감 대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프렌치 경감은 온화한 성격과 성실함, 그리고 끈기라는 우수한 자질을 갖춘 유능한 경찰이지만, 허구의 인물치고는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 오히려 특징으로 보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도 등장했습니다. 1914년 영국 작가 어네스트 브래머의 단편에 처음 등장한 맥스 캐러도스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손끝으로 편지나 신문에 쓰인 글자를 읽어낼 정도의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며, 그의 하인 퍼킨슨은 놀라운 기억력으로 캐러도스의 눈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맥스 캐러도스

주인공들에게 별난 성격 수준을 넘어선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부여하면 손발이 묶인 듯한 제약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효용이 생깁니다. 우선 독자들은 주인공이 어떤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와 함께 동정심도 느끼기 시작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마주치면 주인공이 과연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며, 나아가서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움 섞인 격려를 보내게 됩니다.

신체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캐러도스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러리 퀸이 버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비극’ 4부작에 등장하는 아마추어 탐정이자 은퇴한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 드루리 레인은 후천적인 청각장애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술을 보며 대화가 가능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사색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인물은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에 처음 등장하는 링컨 라임일 것입니다. 그는 현장조사 도중 사고를 당해 머리와 한쪽 손만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침대 탐정’이지만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요. 그는 뛰어난 판단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유능한 인물들을 지휘하여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링컨 라임(왼쪽, 덴젤 워싱턴이 연기)-영화 '본 콜렉터'에서


신체장애라는 극단적인 핸디캡은 때로 작위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 인물 묘사에 자주 쓰이는 방법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자꾸 사건이 이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위에 언급한 링컨 라임 같은 사람도 사실 경찰 소속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서 신체적 장애보다는 정신적인 약점을 가진 인물이 더 많은 편입니다.

예전부터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알코올 중독, 바꿔 말하면 ‘주정뱅이’인데, 에반 헌터의 커트 캐넌이나 로렌스 블록의 매트 스커더가 대표적인 인물이죠. 이들은 원래 잘나가던 사람들이었으나 사립탐정이었던 캐넌은 아내의 배신으로, 형사였던 스커더는 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실수로 무고한 소녀를 사살한 후 충격을 받아 술을 탐닉하게 된 사람입니다. 꼭 알코올 중독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탐정 중에는 이른바 트라우마(trauma)라고 하는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토머스 해리스의 스릴러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을 괴롭히는 것은 야간 경비원으로 근무하다가 살해된 아버지, 호텔 청소부였던 어머니, 말 도살장에서 보냈던 유년기 등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이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헌데 이런 악당이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함부로 건드리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악당의 입장에서 볼 때)를 가져옵니다. A.J. 퀸넬의 화끈한 작품 <불타는 사나이>(<맨 온 파이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죠)의 주인공 크리시는 한때 최고의 용병이었지만 무의미한 삶에 지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보디가드를 맡으며 어느덧 인생의 밝은 면을 보게 되죠. 그런데 악당들이 소녀를 유괴하는 무모한 짓을 하고 말지요. 인간폭탄의 도화선을 점화한 겁니다.

'불타는 사나이' 크리시. 여기도 덴젤 워싱턴이 등장했네요.

최근에 접한 작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폴 트렘블레이의 <리틀 슬립>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크 제네비치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사람은 어디 하나 번듯한 데가 없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얼굴도 항상 일그러져 있는데다가 기면증 - 운전할 때나, 의뢰인이 왔을 때나, 혹은 목숨이 걸린 위기에서도 갑자기 잠이 들어버리는 - 이라는 희귀한 병까지 지니고 있어서 이래서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정말 안타까울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을 용케 꾸역꾸역 넘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음 작품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됩니다.

미국 추리작가 존 D.맥도널드는 ‘최근의 추리소설들을 보면 탐정들이 온갖 특징과 소도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다운 마음은 없다.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도 않은 인물들을 만들어 내어 보통 사람들과 뚜렷한 차이만 만들면 성격 묘사가 확실하게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특징 있는 인물을 구상하는 것은 쉽지만, 그 인물을 어떻게 생생하게 살려 내느냐는 작가의 능력에 달렸지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특징만 기억나고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희미한 경우도 많은데, 과연 그것이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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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무언 2011.03.03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퍼센트의 용액같은 경우는 완벽해보이던 홈즈에게 그런 약점을 부여하는 시도라고 볼수있겠군요

  2. 카메라이언 2011.03.03 0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캐릭터가 생생하게 기억나면 어쩐지 좋던데요. ㅋㅋㅋ 그런데 홈즈의 지동설 천동설은 정말, 다시 읽어도 너무 웃기더라고요. ㅋㅋㅋㅋ 아우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BBC 보고 나서 전집 다시 읽다가 혼자서 막 웃었다는. ㅋㅋㅋㅋ 그나저나 신작 이야기 들을 때마다 다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어로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영어까지 공부하면 대체 글은 언제 (;;;;)

  3. 평시민 2011.03.03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반영웅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약점이 있는 캐릭터 쪽이 더 끌리더군요, 제가 만든 캐릭터 중 한 명은 약점이 너무 많아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4. 이야기꾼 2011.03.0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크>는 정말 쵝오!
    저 기묘한 캐릭터가 스토리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연구해보면
    추리소설, 특히 코지나 클래식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지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정말 독특(하다고 자부하는)한 몇 캐릭터를 구상중....
    어서 그들이 지면에서 활약을 좀 해야할텐데요....



여럿이 함께 하면 어려운 일도 있다

두 사람의 좋은 취향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못된 취향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루시 버레커
     - <The Yellow Room Conspiracy> (1994) 피터 디킨슨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속담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조사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협동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국민 정서상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틀림없이 상위권에 올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미나 꿀벌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협동 정신은 스포츠는 물론이고 사회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통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술적인 창작활동분야가 그런 곳이죠.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관련, 작곡 등 음악관련, 미술관련 등의 창작물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창작이란 산술적인 것이 아닌 오묘한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한다고 해서 혼자 할 때보다 몇 배 뛰어난 작품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초반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를 연 영국 탐정작가클럽 회원들인 G.K.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등 14명의 작가가 릴레이로 <The Floating Admiral>(1931)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다시 모여 <The Scoop>(1933)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을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보이시죠?

이 연속극에 이어 작가들은 자신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Ask a Policeman> (1933)을 합작했으며, 이런 활동은 5년 후 <Double Death>(1938)까지 이어졌습니다. 추리소설 판 올스타 전을 벌인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지금 이 작품 제목이라도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발표 당시에야 물론 화제가 되었겠지만, 작품 자체는 후세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기는커녕 까마득히 잊혀져 버리고 만 것이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 20세기 초반 프랑스 대중소설계를 뒤흔들어놓은 초인적 악당 팡토마스(Fantômas)’를 창조해 낸 피에르 수베스트르(Pierre Souvestre)와 마르셀 알랭(Marcel Allain)을 성공한 합작 작가의 원조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1126세의 젊은 기자 알랭과 그보다 열한 살 연상의 기자인 수베스트르가 만들어낸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일이 목표인 팡토마스 시리즈는 놀랄만한 인기를 얻어 매달 새로운 작품이 등장했고, 단지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잠깐 중단되었습니다. 수베스트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알랭은 전쟁에 징집되었기 때문이지요. 알랭은 전쟁이 끝난 후 혼자서 작품을 썼지만 인기는 여전했고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사나이가 팡토마스! (DVD 커버)


팡토마스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던 무렵 미국에는 역대 최고의 합작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제왕으로 불리게 되는 엘러리 퀸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스터리 팬이었던 동갑내기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는 1920년대 S.S.반 다인의 미스터리가 선풍을 일으키자 자신들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 이외에도 버나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걸작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습니다.

퀸의 뒤를 이어 등장한 합작 작가로는 패트릭 쿠엔틴
(Patrick Quentin)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리처드 윌슨 웹(Richard Wilson Webb)은 마사 모트 켈리(Martha Mott Kelly), 메리 루이스 애스웰(Mary Louise Aswell) 등 두 명의 여성 작가와 함께 Q.패트릭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써 오다가 역시 영국 출신이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휴 휠러(Hugh, C. Wheeler)와 함께 패트릭 쿠엔틴이라는 이름으로 <A Puzzle for Fools>(1936)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기 그들은 퀸의 국명 시리즈를 의식한 듯 <A Puzzle for Players>(1938), <A Puzzle for Puppets)>(1944), <A Puzzle for Wantons>(1945), <A Puzzle for Fiends>(1936), <A Puzzle for Pilgrims>(1947) 퍼즐이라는 제목이 붙은 여섯 편의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조너던 스태그(Jonathan Stagge)라는 필명으로도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52년 이후 웹이 건강상의 문제로 합작을 포기하며 해체되었으나 휠러는 패트릭 쿠엔틴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까지 계속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퍼즐 시리즈 중 하나인 'A Puzzle for Players'

프랑스에는
20세기 중반 추리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 콤비가 등장했습니다.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그들이죠. 두 사람은 각각 작품을 써 오다가 1952년 첫 합작품인 <악마 같은 여자>(영화 <디아볼릭>의 원작)를 발표했으며, 4년 후 발표한 <죽음의 입구>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 <현기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세련된 서스펜스로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이들은 공동저작에만 매달리지 않았는데, 부알로는 주로 라디오의 스릴러 드라마 시나리오를 썼으며 대학교수출신인 나르스자크는 <하드보일드 론>, <시므농 론>등 미스터리 평론서를 집필했습니다.

피에르 부알로(오른쪽)와 토마 나르스자크

윌리엄 링크와 리처드 레빈슨은 전업 소설가가 아니라 범죄 드라마 전문 작가이지만
,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도 지명도가 높은 주인공인 콜롬보 형사를 탄생시킨 콤비입니다.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난 링크와 레빈슨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금방 친구가 되었는데, 이들은 매주 다섯 권씩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토론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범인을 먼저 보여주는 도치서술형(흔히 도서추리라고 하죠)의 전형인 콜롬보 시리즈는 1971년 첫 방영되면서 총격전으로 일관된 당시의 TV 수사물과는 현격한 수준차이를 보여주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콜롬보 역의 주연 배우 피터 포크는 그저 그런 배우에서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역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시카의 추리극장>역시 이들의 작품인데, 1987년 레빈슨이 심장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들의 합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콜롬보일까요? 윌리엄 링크(왼쪽)와 피터 포크.


일본 신인작가의 등용문인
28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오카지마 후타리는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 두 사람의 공동 필명인데, 7살 차이의 이 콤비는 수준급 작품을 발표해 오다가 묘하게도 수상 7년 후에 해산하고 말았습니다.

오카지마 후타리의 데뷔작 '짙은 갈색 파스텔'


일본에는 부녀 합작 작가도 있었습니다. 후지 유키오(藤雪夫)1950년 딸의 이름인 엔도 케이코(遠藤桂子)로 데뷔해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84년 딸과 함께 <사자좌(獅子座)>를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세상을 떠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뛰어난 합작 작가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웬만큼 호흡이 맞지 않고서는 추리소설의 오묘한 짜임새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합작 작가들이 친척이거나 어릴 때부터의 친구였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십각관의 살인>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일본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는 다른 점에서 합작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합작 작가인 퀸의 팬인 유키토는 자신도 다케모토 켄지라는 작가와 합작 장편을 쓰려는 계획을 오래 전부터 해 왔고 플롯도 준비를 해 놓았는데 단 한 가지, 둘 다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계획이 실현되려면 아무래도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을 하나 더 끌어들여야만 할 것 같다고 하면서요).

여러 면에서 볼 때 합작이란 어려운 일이지만 완벽한 조화만 이룰 수 있다면
1+1=2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작업임엔 틀림없습니다. 참, 부부 작가는 많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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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1.02.24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롬보와 디아볼릭, 현기증에 그런 과거가. 꺅. 너무 좋아요. ㅋㅋㅋ 그나저나 부부작가 하니 블 모 작가님이 또 생각이 마구 나요. ㅋㅋㅋ

  2. 평시민 2011.02.27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엘러리 퀸이야말로 합작의 시너지 효과를 가장 잘 본 작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팡토마 시리즈도 한국에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추리닝4 2011.03.07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작가들도 공동 추리물 한번 시도해 보는 것 괜찮을 듯. 한권을 두 명이 쓰기 어려우면 한 캐릭터를 공유하면서 연작물로.

  3. 평시민 2011.03.10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39클루스>시리즈 역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작가 릭 라이어던이 전체 구성과 캐릭터 기획 및 1권 집필을 하고 6명의 작가들이 이어서 쓴 작품이죠. 언제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참여하고 싶습니다.

    • 카메라이언 2011.03.10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내성 오마쥬 모음집 어때요? 흐흐 <--지금 쓰고 있어서 이러는 거 맞음. ㅋㅋㅋ

  4. 평시민 2011.03.10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내성 오마쥬 좋지요, 유불란을 주인공으로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대신 배경이 일제 때여야 하니 그 방면에서 조사를 많이 해야겠군요.

    • 카메라이언 2011.03.11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마쥬니까 시대는 현재에 유불란이 주인공이라든가, 일제강점기 시대 유불란 주인공한 것도 나오고, 저처럼 김내성 자체를 주인공한 것도 쓰고 그밖에 연문기담이라든가 홈즈 시리즈 번안집 패러디 뭐 이런 것 나오면 재미있을 듯요. ㅋㅋ 근데 백주년 지나서 좀 무리일까나~ 아우 난 김내성 님 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