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르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09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4> 괴짜 작가 (7)
  2. 2010.12.22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13> 탐정들의 나이 (7)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사람들

"당신 여권에는 작가라고 되어 있지만, 그건 아주 융통성 있는 단어이지요."
- 피터스가 라티머에게
   - <디미트리오스의 관>(1939)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에게 특유의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실상 천재 탐정이 드물게 된 요즘도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탐정보다 더 기발하고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려는 작가도 드물지 않습니다.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 시리즈의 작가 어네스트 브라마는 출생연도까지 불분명하며(그의 출생연도는 자서전적인 소설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으며, 내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도 싫다”고 돌려보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작가협회에서는 매년 ‘여름추리소설학교’를 여는데, 그 행사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이 참가하죠. 여기 참가한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평범하고 어쩌며 소심해보이기까지 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기발한 범죄를 궁리하고 있습니다만 외모만으로는 어디서나 마주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거의 은둔자처럼 살았던 브래머와는 달리 이런 저런 기벽(奇癖)이 전해져오는 유명 작가도 있습니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추리소설을 썼다’는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적인 재능과 함께 반항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우한 성장 배경 탓일지는 몰라도 그는 평범함보다는 파격적인 면을 추구했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명령불복종’과 ‘의무 불이행’으로 퇴학당하는 등 타고난 반골 기질도 있었죠. 워낙 인생이 파란만장한 터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여럿 있습니다. 몇 년 전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와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가 번역되었고, 얼마 전 출간된 앤드루 테일러의 <아메리칸 보이>는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합니다.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하는 '아메리칸 보이'


코난 도일은 젊은 시절 심령술, 신비학(神秘學), 강령술(降靈術)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이를 먹은 후에는 관심 수준을 넘어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과학적인 상식을 지닌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 냈으며, 원래 의사였던 그가 말년에 심령술 신봉자가 된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도일이 심령론을 신봉할 것을 공언하고 그 선전과 전도에 나선 것은 제1차 대전 끝 무렵부터였으므로, 그런 미신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전쟁 중에 장남 킹슬리를 비롯한 많은 친지를 잃고 마음의 균형을 잃은 탓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도일은 고고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으로 일컬어지는 ‘필트다운 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필트다운 인 사건’이란 191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이 영국 필트다운에서 발견한 원시인 두개골 화석이 사람과 오랑우탄의 턱뼈를 인위적으로 합성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근 40년이나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이지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찰스 도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확실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이 사기극의 주모자로 도슨을 비롯한 주변의 고고학자들을 꼽고 보고 있지만 약 70년 후 이 사건을 연구한 미국의 고고학자 존 윈슬로(John Winslow)는 당시 필트다운 근처에 살았고 1912년에는 공공연히 발굴현장 근처를 자주 방문했던 코난 도일을 조심스럽게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도일은 장난을 꾸밀만한 기술, 지식, 기회를 모두 갖춘 인물로서 신비학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을 한 번쯤 골려주겠다는 동기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도일의 작품 <잃어버린 세계>에 나오는 가상 지역의 지도와 필트다운 근교의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소설 속에는 뼈의 위조나 장난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오는 것을 볼 때 필트다운의 사기극은 <잃어버린 세계>의 플롯을 기초로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윈슬로에 따르면 도일은 이 사건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듯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실마리 - 이를테면 크리켓 경기에 사용하는 배트 모양의 용도불명의 코끼리 다리뼈(코난 도일은 뛰어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턱뼈가 발견된 곳에서 3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어금니 등 -를 던져 놓았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을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과연 도일이 범인이었다면 그의 장난이 성공해서 즐거워했을지 아니면 어이없어했을지 궁금합니다.

밀실을 다룬 고전 <노란 방의 비밀>과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자 가스통 르루도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못지않은 기발한 장난기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기자였던 르루는 형무소에 있던 귀족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류를 위조, 동료 기자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특종을 따 낸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르루의 작품 집필 때의 습관도 유명합니다. 그가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작품을 쓸 때면 온 집안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그는 창문으로 뛰어가 총을 쏩니다. 그러면 그 신호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접시들을 깨뜨리고 냄비들을 두들기며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며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끝냈으니 화끈하게! 가스통 르루의 캐리커쳐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인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역시 기발한 재능과 독특한 장난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추리작가 도로시 솔즈베리 데이비스의 기억에 의하면, 어떤 만찬에 참석한 하이스미스는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애완용 뱀 두 마리(민달팽이라는 이야기도 있네요)를 테이블에 꺼내 놓고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는 모습을 태연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1995년 작고할 때 예상대로(?) 놀라운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쓸 때 머물렀던 뉴욕 주 북부의 한 예술인 공동체 마을에 3백만 달러라는 그녀의 유산을 모두 기증한 것이지요. 이 일은 마을 공동체 1백년 역사상 한 사람의 기증으로서는 최고액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젊은 시절. (작품집의 표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큰 활약을 보인 다카키 아키미츠의 성공은 미신과도 같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후 직업을 얻지 못해 2년 동안이나 실업자로 지내던 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을 쓰면 성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문학 수업 같은 것은 해 본적도 없었던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점괘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학생 시절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는 추리소설을 선택했으며, 전쟁 후 물자 부족으로 원고지도 없어 잡다한 종이에 약 6백매 정도의 장편을 3주 정도 걸려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출판사 이곳저곳에 원고를 가져갔지만, 인쇄용지도 부족한 판국에 이름도 없는 젊은이가 쓴 장편소설을 상대해 주는 곳이 있을 리가 없지요. 여기서 그는 다시 한 번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대가(大家)에게 이 원고를 보내면 인정받을 것이고, 그럼 성공할 것이다’라는 낙관적인 점괘가 다시 나오자 그는 원고지에 깨끗하게 다시 쓴 후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 에도가와 란포에게 원고를 보낸 것이죠. 란포는 이 무명 청년의 작품을 읽은 후 참신한 내용에 감탄해서 출판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역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문신 살인사건>(1948)이며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미즈 교스케는 최고의 천재 탐정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점의 인생론>, <방위학(方位學)입문>, <상성(相性)판단>등 일련의 점술 관련 서적을 집필하며 점술의 전면적 신봉자임을 밝혔습니다.

점을 신봉했던 다카키 아키미츠

사실 그의 점에 대한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 부친이 많은 빚을 남긴 채 급서(急逝)하고 자신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을 때, 부친의 친구에게 손금 점을 본 후 점괘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어쩌면 작가들의 인생만 살펴봐도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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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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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10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글을 쓸 때의 버릇은 특별히 없습니다만, 굳이 하나 든다면 밤에 써야 더 잘 써지더군요.

  2. 시무언 2011.03.10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난 도일같은 경우는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죠. 그것도 어찌보면 괴짜고...

  3. 카메라이언 2011.03.10 0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쩜 좋아요. 전 너무 평범한 것 같아요. 꺅. ==33 후다닥 도망.

  4. 갈매 2011.03.11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특이한 기벽이, 기질이 있어야 작가가 되는 것일까요? ^^

  5. 행인2 2011.03.11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선생, 정말 멋집니다^^
    '태양은 가득히'나 '낯선 승객'이나 정말 대단한 작품인데.

  6. myungworry 2011.03.14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예쁘군요. 물론 소설도 좋습니다만.

  7. Miss Baby 2011.05.2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카키 아키미츠의 문신살인사건 북리뷰를 하기 위해 작가 리서치하는 도중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을 발췌했습니다만,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코멘트 달아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자체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많이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jaera1990.blog.me/130109318644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경감님 눈에는 내가 아흔 살쯤 되어 보이겠지만 나 자신은 백 살도 더 먹은 기분입니다.”
  - 드루리 레인
<레인 최후의 비극>(1933)  -  엘러리 퀸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지만 - 무슨 자격증이나 허가증 같은 것은 필요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성공할수 있는지는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각각 달라지지요. 예를 들어 <사이코>의 작가 로버트 블록은 17세 때 잡지에 작품을 투고해 돈을 벌었으며, 아이러 레빈은 <죽음의 키스>(1953)로 데뷔했을 때의 나이가 24세에 불과해 천재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등단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물론 그 대척점에 있는 작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죄(大罪)>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샌더즈는 과학기술 잡지사에 근무하다가 49세가 되던 1969년 <앤더슨의 테이프>를 발표해 미국 추리작가협회상(에드거상)의 신인상을 받았고, 1971년 <모비를 찾아라>를 발표해 이듬해 에드거상 신인상을 수상한 A.H.Z.카의 나이는 70세였는데, 이는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뭐, 물론 이것이 성공할 수 있는 나이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24세에 데뷔하여 충격을 주었던 아이러 레빈


작가의 나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구요…

그렇다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의 나이는 어떨까요? 추리소설이라는 특성상 주인공들이 터무니없이 어린 경우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물론 청소년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쓴 작품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에서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별개로 보아야 하겠지요. 현실에서 스무 살도 안 된 경찰이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세상물정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애송이 탐정에게 자신의 심각한 사정을 허물없이 털어놓을 의뢰인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물론 예외 없는 예외는 없는 법이라 어린 주인공이 있긴 합니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걸작 밀실 추리소설 <노란 방의 비밀>에 등장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신문기자 조셉 룰르타비유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에 불과해 청년이라 부르기도 어색한데, 기자가 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이라고 하니 정말 19세기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룰르타비유는 후속작에도 등장해 젊은 피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젊다못해 어린 친구가 담배까지? - 조셉 룰르타비유


하지만 룰르타비유가 막내 삼촌쯤으로 보일 만큼 훨씬 어린 주인공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다나카 마사미(田中雅美)의 작품에 등장하는 호시카와 아츠코(星川厚子), 통칭 ‘앗쨩’으로 불리는 이 소녀는 불과 다섯 살의 유치원생입니다. <앗쨩의 추리 포켓>(1985)에 처음 등장하는, 소녀라고 하기도 어색한 이 꼬마는 유치원 친구가 버스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어린이 특유의 호기심과 직감(?)으로 원기 넘치는 엄마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아츠코는 시리즈 진행과 함께 나이를 먹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아마 이보다 어린 탐정은 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혹시 모르지요, 어찌될지.

반면 나이 먹은 탐정은 제법 있습니다. 로렌스 샌더즈의 <대죄>시리즈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딜레이니나 피터 러브지의 피터 다이아몬드는 경찰에서 퇴직한 50대 후반의 사람들이며, 엘러리 퀸이 버나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에 등장하는 은퇴한 연극배우이자 아마추어 탐정 드루리 레인도 환갑을 넘은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들마저 젊은이로 보이게 하는 탐정도 있습니다. L.A.모스의 <늙은 탐정(The Old Dick)>(1981)에 등장하는 제이크 스패너는 78세의 괴짜 골초 영감님으로 자신의 마지막 사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일광욕하거나 시시한 소설을 읽으며 소일하던 왕년의 사립탐정 스패너에게 40년 전 그가 형무소로 보냈던 폭력단 두목 살 피콜로가 찾아와 유괴된 손자의 몸값 75만 달러를 주는데 동행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사건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맙니다.

제임스 시겔
의 <묘비명(Epitaph)>(2001)의 주인공도 70세를 넘긴 전직 탐정 윌리엄 러스킨입니다. 그는 과거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동료가 죽기 전까지 사건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건을 이어받기로 합니다. 약간의 질투심으로 시작된 조사에서 윌리엄은 50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미해결 대량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또 최근 발생하고 있는 실종사건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에게도 위험이 다가옵니다.

어떤 탐정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갑니다. 로스 맥도널드의 주인공 루 아처는 <움직이는 표적>(1949)에 처음 등장했을 때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30대 중반이었지만 4반세기가 지난 후의 마지막 작품 <블루 해머(The Blue Hammer)>(1976)에서는 20대의 여성이 딸처럼 보일 만큼 원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로버트 파커의 주인공, 보스턴의 사립탐정 스펜서 역시 처음에는 독신 생활을 즐기는 3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어 삶의 연륜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리바이의 A(A is for Alibi)>, <강도의 B(B is for Burglar)> 등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되는 작품을 쓰는 여성작가 수 그래프튼은 데뷔작에서 27세였던 여탐정 킨지 밀혼이 대략 두 작품 반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게 해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 될 <0의 Z(Z is for Zero)>(제목을 미리 정해 놓았다고 하는군요)에서는 40세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21편이 나왔으니 앞으로 다섯 편 남았군요. 성공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후속 작품의 계획까지 세우는 것은 무척 세심하거나 야망이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추리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알파벳으로 스물여섯 편의 시리즈를 쓰겠다고 결정한 그래프튼은 그런 점에서도 대단한 작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26번째 작품을 기대합니다 - 수 그래프튼


한편 아무런 생각 없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나이를 언급했다가 혹시라도 인기를 얻어 작품이 이어진다면 호기심 많은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사생활까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닐까 싶군요. 크리스티는 작품마다 빈틈없이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감탄시켰지만 주인공의 나이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탓에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크리스티는 데뷔작이자 푸아로가 등장하는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을 1920년에 발표한 후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이상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고, 푸아로가 세상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커튼>을 유작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푸아로의 죽음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부고가 실렸는데, 거기에 실린 그의 추정 연령은 무려 120세였던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에 실린 푸아로의 부고 기사


심지어 크리스티의 평전(評傳)을 쓴 H.R.F.키팅은 푸아로가 1904년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했다는 기록에 따라 당시 60세였다면 1970년 중반까지 살아있었으니 130세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줄리언 시먼즈는 <위대한 탐정들(The Great Detective)>에서 푸아로가 퇴직했을 때 40대였다며 100세를 넘겼다는 설에 반론을 제기했지요. 결국 푸아로의 나이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일찌감치 모습이 굳어진 주인공은 나이를 먹지 않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독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자면 제임스 본드, 이름보다 007이라는 번호로 더 잘 알려진 첩보원이지요. 작가 이언 플레밍이 세상을 떠난지 한참 되었습니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본드의 나이는 점점 젊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50년 이상 87번 관서(분서라고도 많이 번역되었네요) 시리즈를 발표했던 에드 맥베인은 등장인물의 나이에 대해 별로 고민이 없었습니다. 어떤 인터뷰(1992년입니다)에서는 이렇게도 말했지요.

질문: 인물들의 나이-예를 들어 쌍둥이(사실상의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라의 아들입니다)- 를 조금씩 먹게 하는 것은 어떻게 결정하십니까?

맥베인 : 쌍둥이는 “사춘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도 그들이 도대체 몇 살인지 모르겠군요. 다음 책을 쓸 때 살펴봐야겠습니다. 카렐라와 다른 사나이들은 모두 30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예요.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은 덕에 그가 수많은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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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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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0.12.23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만든 탐정의 나이를 먹게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소년탐정 김전일이나 코난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죠), 사극이라면 <로마 서브 로사>시리즈의 고르디아누스처럼 나이를 먹게 해야겠지만 현대물에서는 계속 그 나이를 유지시키기로 했습니다.

  2. 레이 2010.12.23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나이하면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 탐정, 이거 좋네요.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점차 성숙해가는 모습도 흥미로울 것 같고요.
    알파벳 시리즈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국내에도 소개될 날이 오길... 계속 쓰시고 계실 작가분께 감탄하고 갑니다.

  3. 카메라이언 2010.12.23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키키킥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가요. 포와로는 혹시 알고 보면 장삼봉이랑 같은 수준의 선인? 키키키킥. 역시 명탐정 코난이 젤 웃겨요. ㅋㅋㅋㅋ

  4. 평시민 2010.12.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장편 주인공이라..., 그러고 보니 저와 나이가 비슷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