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미스터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09 방정환도 추리소설을 썼다는데… (5)
  2. 2010.10.13 한국에서 추리작가 되는 법 (14)

                                                          
                                             방정환도 추리소설을 썼다는데…

                                                                                 - 한국추리소설 102년 약사




바야흐로 동학이 곳곳을 평정한 때, 나주 군수의 아들 김 주사는 길을 가다가 ‘비밀개탁’이라고 쓰인 편지를 바람 때문에 잃어버린다. 대수롭잖게 여기고 일본 상고선을 타고 인천에 도착, 서울로 이동하던 중 돈가방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데…. 그리하여 기찰 잘하기로 유명한 정순검에게 사건을 의뢰하니….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쌍옥적'


1908년 이해조가 제국신문에 연재한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쌍옥적(雙玉笛)>은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최초’ 논쟁이 몇 차례 있었으나 우연이 아닌 증거와 추리를 이용해 사건을 풀어나가고, 별순검이라는 탐정 역이 등장해 범죄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고대부터 시작된 송사소설이나 공안소설도 범죄 해결을 다루고 있지만 확실히 논리성 부분에선 취약하지요. (주위에 홍길동전이 한국 최초 액션스릴러라고 주장하는 분도 계십니다만 ㅋㅋ) 이렇게 따지고 보니 한국 추리소설도 성취면에서 빈약하지만 짧은 역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탐소설’에 관심이 남달랐던 이해조가 뒤이어 <구의산(九疑山)>등을 발표했지만 추리소설 자체가 아무래도 서양에서 탄생했다보니 초창기는 번역, 번안소설이 주를 이룹니다. 주로 일본을 통해 들어온 쥘 베른,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해방 전까지 100편 정도가 소개됐습니다.
1920년대 중반에 비로소 국내 창작물이 등장합니다. 박병호가 경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혈가사(血袈裟)>라는 작품을 연재해 단행본으로도 출간하고, 최독견은 <사형수>를, 채만식은 <염마>를 연재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도 추리소설을 썼는데요,  <괴남녀 이인조>라는 코믹한 단편과 외국 작품을 번역한 <누구의 죄?>등을 대중 잡지 별건곤에 실었으며(당시 ‘북극성’이란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아동물로 <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등을 발표했습니다.

김내성의 본격 장편소설 '마인'과 방정환이 쓴 어린이 추리소설 '칠칠단의 비밀'


1930년대에 드디어 한국 첫 전문 추리작가가 탄생합니다. 바로 아인 김내성 선생입니다. 1935년 일본 유학 중 탐정소설 전문잡지 <프로필>에 단편 <타원형 거울>과 <탐정소설가의 살인>이 당선됩니다. 유불란 (뤼팽을 만든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일본 추리문학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가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에서 유래한 것과 비슷하죠)이란 필명으로 <기담연문왕래(국내에서 <연문기담>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표)>를 발표하기도 하고, 귀국해서 내놓은 <백가면>, <마인>이 큰 인기를 끕니다. 비록 집필 인생 후반기에는 순수소설에 치중했고 4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작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한국 추리소설 개척자’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추리소설의 개척자' 김내성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추리소설의 명맥이 끊겨 버립니다. 일제 강점시대 말기에는 대중잡지조차 거의 전쟁 독려 선전으로 내용을 채울 지경이었으며, 일본 현지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까지 검열에 걸릴 정도로 추리소설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던 터라 식민지 한국에서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해방 후인 1940년대 후반에야 방인근이 장비호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이 시리즈는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1960년대에는 허문영(필명 허문순, 성걸 등)이 <검은 독수리>등의 시리즈를 내 놓았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분들의 작품은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추리소설은 잡지를 통해 부활 조짐을 보이는데, 195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모은 대중 잡지에서는 추리 창작물뿐만 아니라 외국 작품도 꽤 많이 번역되어 실렸습니다. 특히 60년대에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제임스 본드, 즉 007 시리즈의 인기가 폭발적이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 또 한 명의 스타작가가 탄생하니 바로 김성종입니다. ‘해방 전 김내성, 해방 후 김성종’일 정도로 그는 우리 추리소설사에 독보적 존재였습니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경찰관>으로 등단해, 1974년에 한국일보 주최 공모전에 대표작 <최후의 증인>을 내놓습니다. 분단 현실의 비극을 미스터리 서사로 녹여낸 이 소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고 <흑수선>등의 이름으로 수차례 영화화되었습니다. 그 후 <제5열>, <백색인간>, <라인X>, <피아노 살인>등 내놓은 작품마다 히트를 치면서 사실상 독주시대가 열립니다. 오병호라는 의협심 강한 형사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군부대 내무반에 김성종 소설 한 권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작가는 1992년 부산 해운대에 추리문학관을 열고 최근 <안개의 사나이>를 내놓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추리작가 김성종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 추리소설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를 거치며 꾸준히 성장합니다. 해방과 전쟁, 분단과 군부독재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긴장된 삶을 살던 국민들이 약간의 여가를 갈망하게 된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합니다.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미스터리클럽>을 모태로 1983년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창립, 체계적 활동의 틀을 놓습니다. 공동 단편집을 매년 발행하고 추리문학상을 제정해 신인작가 발굴에 나섭니다. 언론인 출신의 이상우, 중앙정보국 출신의 노원, 방송작가 출신의 김남 작품이 인기를 끌었고 <계간 추리문학>, <미스터리 매거진>같은 전문 잡지와 명지사, 추리문학사, 남도출판사 등 전문 출판사들이 등장합니다. 공모전도 여럿 생겼는데 유우제, 강형원, 권경희 등이 수상자로 등단합니다. 스포츠신문에 추리소설 신춘문예가 생긴 것도 80년대 중반입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 현판식


1990년대 들어 한국추리작가협회는 일본추리작가협회와 교류를 시작할 정도로 외연을 넓혔고, 1993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대박을 치면서 추리 서사의 토대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스포츠신문 자본은 끊임없이 연재물을 만들어내고, 통신 동호회를 통한 온라인 작가의 등장은 장르문학의 다양성에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성기는 짧았습니다. 비디오, 케이블TV 등 다양한 영상매체의 발달과 휴대전화 보급 등이 추리소설 독자층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여기에 IMF 외환위기에 따른 출판시장 위축까지 겹치면서 침체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장 신춘문예가 다 사라지면서 작가 수급에 애를 먹었고, 작품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 추리소설의 침체 요인으로 작품의 선정성, 폭력성을 흔히 드는 것입니다.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옹호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것이 실제로 추리소설의 침체와 직결된다는 적절한 근거 제시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시비를 걸 정도로 선정적이라면 성인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 잘 팔려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2천년대 들어 미스터리 붐이 다시 일지만 그때는 이미 외국 작품에 독자를 다 빼앗긴 상황이었습니다. <다빈치 코드>로 대변되는 팩션의 열풍,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등 일본 인기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지면서 국내 작가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추리소설 시장에 국내 창작물은 10%도 안 될 정도로 기형적 구조를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성 고정 독자가 늘고 시장 규모를 키운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국내 작가의 창작욕을 자극한 점도 하나의 수확입니다.



지금도 추리소설 창작 열기는 뜨겁습니다. 인터넷 창작카페가 활성화 되고 기성 작가의 작품도 꾸준히 나오는 편입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계간 미스터리>의 신인상 투고작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출판사들도 우호적이고 상금 1억원의 장르소설 공모전도 생겼습니다. 분명 반길만한 현상이지만 한국 추리소설의 지속적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덧붙임>한국 추리소설 미래는 장밋빛인가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다빈치 코드>같은 추리소설이 탄생할 것이다.’

한국 추리소설 현황을 다루면서 말미에 이런 식의 낙관적 전망을 내는 기사가 많습니다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막연한 기대일 뿐입니다.


미스터리 소설(넓게는 장르소설) 강국이 되기 위해선 축적된 역사와 자국 작품을 소화할 넓은 시장, 영어권역, 두터운 작가층,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조건들이 골고루 갖춰져야 하는데 지금 현실은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 미스터리가 쏟아지면서 독자와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한국 작품은 저질이라는 편견은 여전합니다. 순문학과의 벽도 엄연히 존재하고요. 다수의 작가가 기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팩션, 혹은 액션 영화 스타일에 가까운 스릴러에 집중하다보니 정통 미스터리 작품은 기근 상황입니다. 게다가 한국 추리문단의 최고 약점은 인기 작가 몇 명에 의존해 지탱해 왔다는 점입니다. 일본이 ‘사회파’니 ‘본격파’니 그들만의 스타일로 오랫동안 시장을 개척해 장르강국이 된 점과 확연히 비교됩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인기작가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수십만 권의 판매고를 기록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추리소설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김연아와 박태환이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고 피겨나 수영 강국이 아니듯 말이죠. 기본적으로 국내 작가의 작품이 연간 1백 편 정도 출간되고(좀 많나요^^;;) 누구나 휴가를 떠날 때 한국 창작 추리소설 한 권쯤 들고 가서 읽는 생활이 일반화될 때, 바로 그때가 추리소설 선진국이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되는 데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체계적 작가 양성, 내재된 역량의 축적, 한국형 스타일의 작풍 확립 없이는 침체된 분위기를 한동안 반전시키기 힘들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부디 이런 예측이 빗나가길 고대합니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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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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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0.11.09 2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그 날 스치듯 들었던 추리소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군요. 와아 흥미로워요. 방정환 선생도 추리소설을 쓰셨었군요! ㅎㅎ

    꼬리.
    블로그 디자인이 바뀌었네요. 훨씬 시원하고 좋아요. ^-^

    • 추리닝4 2010.11.10 14: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날 스치듯 이야기를 했군요ㅋ 최근 이야기는 시시콜콜 적기가 좀 부담스럽네요^^; 글구 편집장님이 자료를 많이 주셨어요. 80년대 추리작가협회 현판식 사진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블로그 디자인은 어느 순간 바뀌어있더라는 ㅎ

    • 카메라이언 2011.01.18 0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 ... 추리소설을 보고 추리소설을 쓰는 제가 보기에 이 주소는 백퍼센트 광고! 이 주소에 추리소설 있을 리 없다!! (주소가 gamehanpan 인데 누를 리 없잖아욧!!!! ;;;) 혹시나 싶어 네이버에 검색하니 역시나 게임사이트였 ;; (;;;)

  2. 무혼자 2011.08.21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스럽게도 한국 추리소설 역사를 쓰셨군요. 한번은 읽고 기억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등에 관한 발전적 문제는 금방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각듭니다.

  3. Dokuta 2011.09.17 0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내성의 <기담 연문 왕래>(일본말)를 공개했습니다. 일본말을 할 수 있는 분은 와 보십시오.
    http://www36.atwiki.jp/asianmystery/pages/163.html


서사의 시대랍니다. 장편이 대세라네요. 순문학 작가들의 추리기법 차용이 늘고 외국의 유명 미스터리 작품이 앞 다퉈 번역돼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산업이 커지면서 ‘원 소스 멀티 유즈’란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 덕에 한국 추리소설도 저급 변두리 문학이란 오명은 ‘초큼’ 벗게 됐습니다. 외부 요인에 기댄 것이라 씁쓸한 측면도 있지만 존재감조차 미미하던 과거에 비하면 음지에서 양지로 고개를 내민 기분이랄까요. 몇몇 작가는 완성 원고 없이도 출판사와 계약할 정도니 국내 작품이라면 눈길조차 안주던 5~6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여전히 한국 추리소설의 미래를 낙관하긴 애매한 시점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긍정적입니다. 이제 수준 높은 작품을 통해 시장을 키우는 건 작가들 책임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겠지요. 다행히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창작 기반이 조금씩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 지망생들이 꽤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추리작가란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순문학처럼 신춘문예나 출판사 문예지 같이 공식화된 등단 절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추리문단에도 다양한 등용문이 있습니다.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아는 범위에서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절대적 기준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요식 행위에 불과하지만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이니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창작카페를 중심으로 추리작가 지망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선, 근사한 장편을 하나 탈고했다면 선택의 폭은 넓습니다.
고민 없이 바로 원하는 출판사에 날려보시길….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추리작품은 확률적으로 희박했는데 지금은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원고를 제본해 우편으로 보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금가지, 랜덤, 노블마인, 시공사, 시작, 북스피어 같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들은 자사 사이트나 온라인 카페에 독자 투고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채택 여부는 편집회의에서 결정되는데 아마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두 달 안에 결과를 통보 받으실 수 있습니다. 행여 답장이 없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시길요. 편집자들도 투고 원고 일일이 검토하는 작업이 큰 일이랍니다. 당장 출간하기엔 부족하나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라면 수정을 전제로 가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1974년 미국의 한 무명작가가 자신의 재능에 절망해 휴지통에 버린 원고를 그의 부인이 수거해서 격려 끝에 완성,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바로 ‘장르의 제왕’ 스티븐 킹의 실질적 데뷔작인 <캐리>의 탄생입니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도 당초 에도가와 란포상에 투고하려 했으나 원고 매수가 규정을 넘어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판사를 찾아 갔고, 그 작품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우부메의 여름>입니다.
직접 투고해 출판사와 인연을 맺을 경우 차후에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죠. 대형 출판사라면 영화나 드라마 제작 같은 2차 저작권 판매에 에이전트 역할도 맡아줍니다.  


두 번째는 장편 공모전에 도전하는 방법입니다. 

 ‘장르소설 재발견’ 분위기에 힘입어 수년 전부터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문학상을 신설했습니다. 다만 추리부문이라고 꼭 찍어 한정된 것은 없고 호러, SF, 로맨스 등 장르문학 전반에 대해 투고를 받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김내성문학상>, <소설문학사 추리장편 공모전>등을 통해 유우제, 권경희, 이승영, 임사라 같은 실력파 작가들이 대거 배출됐는데 이들 상이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면 한국 추리소설도 전성기를 한번 맞지 않았을까 아쉬워해 봅니다.)


주요 공모전의 수상 작품들


먼저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뉴웨이브 문학상>은 올해로 4번째 입니다. 첫해는 국문학자 유광수씨의 역사 스릴러 <진시황 프로젝트>가, 다음 해는 수상작을 못 냈고 작년에는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학파의 암투를 다룬 <천년의 침묵>이 선정됐습니다. 올해는 이달 중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상금은 1억원.


<멀티문학상>은 영상물 원작을 발굴하기 위해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방송사 SBS, 영화사 쇼박스가 손잡고 작년 신설됐습니다. SF와 판타지를 주로 쓰는 김이환씨의 <절망의 구>가 첫해 당선 됐고 올해는 수상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상금은 역시 1억원. osmu21.co.kr에서 응모 요강 확인 가능. 계간지 자음과 모음에서 진행하는 <네오픽션상>도 있답니다. 올해는 유현산씨의 추리소설 <살인자의 편지>가 선정됐습니다. 매년 6월말 응모 마감해 가을호에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상금은 5천만원.


문화부 주최 <디지털작가상>은 올해로 5회째. 올 12월 10일까지 원고를 받고 내년 1월 초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비교적 짧은 원고지 500매 이상이면 응모 가능하고 대상 뿐 아니라 우수상, 장려상 등 여러 편을 뽑기 때문에 수상 확률이 높은 편입니다. 한국전자출판협회(
www.kepa.or.kr)에서 온라인 접수합니다. 대상 상금은 2천만원. 작년에는 <기억은 잠들지 않는다>라는 양지현씨의 추리소설이 뽑혔습니다.  

최근 경향을 보면 미스터리 쪽이 강세입니다. 공모전을 통한 데뷔는 짧은 시간에 작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겠죠. 결정적으로 상금이 짭짤하다는 것. 흐흐~
낙선한 작품이라도 수준작들은 별도 계약을 통해 단행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폼 나는 장편 없다고 추리작가의 꿈을 꺾진 마십시오. 단편 창작부터 재미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재작년 타계한 에드워드 D. 호크는 1천여편에 가까운 단편으로 추리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입니다. 


스포츠신문에서 주관하던 신춘문예가 2천년대 들어 다 폐지되는 바람에 지금 단편을 공모하는 곳은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2002년부터 발행하는 잡지 <계간미스터리>가 유일합니다. 매분기마다 <미스터리 신인상>을 뽑는데 분량은 70~200매.
mysteryhouse@hanmail.net으로 접수 가능합니다. 당선작에는 한국추리작가협회 입회 자격과 집필 지원이 있습니다. 매년 여름에 나오는 단편집 <올해의 추리소설>에 작품을 실을 수 있고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미스터리'. 앞쪽은 창간호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매년 여름 출간하는 공동단편집 '올해의 추리소설'


얼마 전 추리작가로 등단한 현직 판사 이야기가 여러 신문에 실렸는데요, 바로 서울 고법에 근무하는 도진기씨입니다. 그는 ‘심플맨’이란 필명으로 꾸준히 <계간미스터리>에 투고 해왔고, 올 여름호에 <선택>이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곧이어 장편 <붉은 집 살인사건>과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연달아 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에서도 장르 전문잡지 <네오픽션>을 내년 초 창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월간지가 될 것 같은데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한 신인상 신설을 기대해봅니다. 


공동 작품집을 통해 데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장르 창작의 큰 흐름 하나가 인터넷 카페의 활성화입니다. 환상문학 웹진인 <거울‧mirror.pe.kr>이나 공포문학의 <유령의 공포카페‧ cafe.naver.com/64ghost>같은 곳이 유명합니다. 이들 카페에선 게시판에 올라 온 회원들 작품을 선별해 공동 창작집을 꾸준히 내는데 신인 등용문으로서 큰 역할을 합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5권까지 나왔고,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cafe.naver.com/openhanmymo)이 주도하는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은 3권이 곧 출간됩니다.

장르소설 창작카페에서도 다양한 작품집이 나옵니다


최근 공포장편 <무녀굴>을 발표한 신진오씨도 창작 카페에서 오랫동안 습작을 하며 실력을 다져왔습니다. 작가 육성 시스템이 빈약한 장르문학계의 모범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시대 흐름을 반영하듯 전자책도 있습니다.
지난 여름 교보문고에서 젊은 추리작가들과 손잡고 <미스테리 노블>시리즈를 런칭했습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1년에 단편을 40편 제공합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운영자 앞으로 개별 투고하면 운영진이 선별해 <미스테리 노블>에 실을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나 획기적인 시도라 눈여겨볼만 합니다.
전자책 회사 바로북에서 운영하는 <아이작가‧ www.ijakga.com>도 한국추리작가협회와 연계, 이곳에 글을 연재하면 <계간미스터리>신인상에 자동 투고됩니다.

전자책 출간의 장점은 실험성 높은 작품을 부담 없이 발표할 수 있고, 수익 분배 방식도 작가에게 유리합니다. <미스테리 노블>의 경우, 저자가 다시 오프라인으로 책을 내고 싶어 할 때 계약상 제약 요인은 없습니다.


교보문고 전자북이 젊은 작가들과 손잡고 만드는 '미스테리 노블'시리즈


네이버에서는 작년부터 <오늘의 캐스트>에 장르 단편을 한 주에 한 편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황금가지와 시공사, 제우미디어가 돌아가면서 추천하는데 해당 출판사 투고를 통해 실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런저런 작은 공모전이 있습니다만, 중요한건 작가 타이틀이 아니라 얼마나 재밌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쓰는가겠죠.

추리소설이 발전한 나라 대부분은 선진국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치 상황이 안정돼야 비로소 ‘지적 유희’를 즐길 여유가 생긴다는 거죠. 특히 일본 추리작가들은 서양문화의 산물인 미스터리를 사회파, 신본격 같은 자신들만의 색깔로 발전시켜 최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추리작가협회 회원만 700명에, 하루에 한 권 이상 자국 작가의 추리소설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 쏟아지는 추리소설 중 우리 작가 비중은 10%가 채 안됩니다. 그 만큼 안방 시장을 다 내주고 있는데요, 상황을 반전시킬 '한국형 스타일'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의 대거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10만권을 팔 수 있는 추리작가 한 명보다 1만권 팔 수 있는 추리작가 10명이 절박한 시점입니다. (개인적 소원은 1만권이라도 한번 팔아 봤으면 ㅠㅠ)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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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찬찬 2010.10.14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치네요~
    작가 저변이 넓어져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죠?
    1만부 작가가 될 그날을 위하여~ㅎㅎ

  2. 뎅뎅뎅 2010.10.1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꽤 여러가지 루트가 있었군요. 그나저나 책들을 보니 부럽네요. 잇힝~

  3. artemix 2010.10.15 1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이제야 차분히 읽어봤습니당.
    추리문학도 경제력과 관련이 깊군요.

    우리 추리소설이 잘 되려면 어서 선진국이 되어야??
    어디 추리소설 뿐이겠어요~~ ^^

    아무튼 어서 1만부 작가가 되는 그날이 오시길 바라며!!!

  4. 카메라이언 2010.10.18 2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른 척 보고가려고 했는데 덧글 보고 뜨끔해서 -_ -; 포스트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럼요 많이많이 책 나와야죠. +-_-+

  5. 돌꽃 2010.10.22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설명 잘해놨네. 링크 좀 걸어놓겠음...^^

  6. 구즈마 2010.11.05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 추리물들 보면 저도 정말 부럽습니다. 영미권 작가들 작품세계도 끝이 없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한국 작가분 발굴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 추리닝4 2010.11.06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우리나라도 젊고, 재능있는 추리작가가 많이 나와야죠. 그래야 제가 슬쩍 묻어갈텐데요^^;; 꼭 좋은 작품 많이 발굴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당~~

  7. 붕붕 2010.11.05 1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만부'에 자꾸만 눈이 가는게 저뿐만은 아니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