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05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2> 고양이 (3)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
 
"우리 집 고양이는 폭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1948년 제임스 샌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양이는 어쩐지 가까이하기 어려운 짐승 같습니다.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산 것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5천년 이상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서도 사람보다는 고양이 쪽에서 먼저 거리를 두곤 하죠(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개하고는 많이 다르더군요).

또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사자이며 악(惡)이나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의 숙적인 스펙터의 우두머리 블로펠드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장면은 그런 시각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금기는 무척 뿌리 깊어 요즘도 서양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매우 불쾌하게 여기곤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지요?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도둑을 잡는데 고양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답니다. 다만 개처럼 냄새를 쫓아가는 과학적 방식이 아니라 주술적 매개체로 썼지요. 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고양이를 잡아다가 시루 속에 넣고 상여줄로 시루를 감고 불을 때면서 도둑의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들게 해 달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렇게 해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도둑도 주문대로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든다는 것이다. 전북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항아리에 넣고 불을 때면서 주문을 외우다가 항아리 뚜껑을 열면 고양이가 도둑의 집으로 가서 죽고, 그때 도둑도 따라서 죽는다고 한다. 또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장례에 썼던 삼줄로 묶어 3일간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게 한 후 삼거리에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역시 도둑도 함께 죽는다는 것이다. 

…음, 끔찍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효력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추리소설보다는 공포소설로 보아야 할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아내를 살해한 죄목으로 다음날 사형 당할 예정인 한 사나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플루토’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는 단지 좀 똘똘해 보일 뿐 아무런 나쁜 짓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보통 고양이가 하는 흔한 행동, 즉 할퀴는 정도에 그치지요. 그러나 이 검은 고양이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아내를 죽이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주인공마저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19세기에 발표한 이런 구닥다리(?) 작품이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괴기영화에 나오는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 쓴 괴물은 더더욱 아닌,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은 고양이'(알퐁스 르그로의 그림)

현대 추리소설에서 고양이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립 탐정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종종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건 의뢰가 없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탐정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엘러리 퀸은 단편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에서 독자에게 희한한 수수께끼를 하나 제시합니다. 중풍으로 기동을 못하는, 그리고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는 할머니가 왜 매주 검은 고양이를 한 마리씩 사는 것일까요? 이 수수께끼의 뒤에는 놀라운 진상이 숨어 있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분을 위해서 여기서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양이의 복수극 같은 괴기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주로 집에서 집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에게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애완동물로서 무척 사랑 받는 것 같습니다.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타키(Taki)라는 이름의 검정색 페르시아 고양이를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키웠으며 문인들과의 편지에서도 소식을 써 보내기도 했습니다.

챈들러와 그의 고양이 타키

이렇게 고양이들이 작가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급기야는 고양이가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작가 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코코(Coco)’라는 이름의 입맛 까다로운 수컷 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 <The Cat Who…>로 이어지는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코는 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치고는 터무니없이 머리가 좋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에 코코의 주인인 신문기자 짐 클라인이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코코가 스트레스를 받는 기미를 보이자 클라인은 ‘얌얌’이라는 이름의 암놈 샴 고양이를 구해 함께 키우게 됩니다. 작가 브라운은 과거에 생일 선물로 받은 고양이에 코코라는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는데, 어느 날 10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브라운 여사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자 1966년 첫 장편인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를 발표한 후 코코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2007년까지 발표했습니다(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1913년생입니다). 시리즈 30번째 장편이 될 뻔했던 <The Cat Who Smelled Smoke>는 출간이 취소되었다는데 이유는 모르겠군요.

릴리언 잭슨 브라운의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

그 뒤를 이었다고 하긴 뭣하지만, 역시 미국의 여성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은 고양이 머피 부인(고양이의 이름입니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내용보다 더 독특한 것은 이 시리즈를 쓰는 것이 작가 브라운이 키우는 고양이 스니키 파이 브라운이라는 것이지요. 작가 브라운은 자신이 공동 저자라고 주장합니다만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리타 메이 브라운과 스니키 파이 브라운

한편 일본 작가 아카가와 지로는 ‘홈즈’라는 이름의 암컷 얼룩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양이 홈즈의 주인인 가타야마 요시타로는 강력 사건을 다루는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피(血)만 보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현기증을 일으켜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고양이 홈즈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유머 미스터리를 표방한 홈즈 시리즈는 첫 작품 1978년 <얼룩고양이 홈즈의 추리>가 발표된 이래 장편 33권, 단편집 14권이라는 대하(大河) 시리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아키프 피린치의 <펠리데(Felidae)>는 인간의 사건이 아닌 고양이의 사건을 고양이가 해결한다는 독특한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심지어 컴퓨터까지 다루지만,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탐정 노릇을 하는 고양이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소설의 선구자였던 에드 맥베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탐정소설을 가지고 온갖 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맞아요. 고양이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금붕어는 어떨까요? 금붕어 앞에 범죄 무기로 의심되는 것을 들자 금붕어가 물거품을 뻐끔뻐끔 내 뿜는다… 맙소사.”

(:P)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추리닝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평시민 2011.05.05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개보다 자유분방하니 고양이가 탐정 노릇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물 탐정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고양이 외에 과연 어떤 동물이 탐정 노릇을 하면 어울릴까요.

  2. 2011.05.09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