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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2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13> 탐정들의 나이 (7)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경감님 눈에는 내가 아흔 살쯤 되어 보이겠지만 나 자신은 백 살도 더 먹은 기분입니다.”
  - 드루리 레인
<레인 최후의 비극>(1933)  -  엘러리 퀸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지만 - 무슨 자격증이나 허가증 같은 것은 필요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성공할수 있는지는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각각 달라지지요. 예를 들어 <사이코>의 작가 로버트 블록은 17세 때 잡지에 작품을 투고해 돈을 벌었으며, 아이러 레빈은 <죽음의 키스>(1953)로 데뷔했을 때의 나이가 24세에 불과해 천재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등단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물론 그 대척점에 있는 작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죄(大罪)>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샌더즈는 과학기술 잡지사에 근무하다가 49세가 되던 1969년 <앤더슨의 테이프>를 발표해 미국 추리작가협회상(에드거상)의 신인상을 받았고, 1971년 <모비를 찾아라>를 발표해 이듬해 에드거상 신인상을 수상한 A.H.Z.카의 나이는 70세였는데, 이는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뭐, 물론 이것이 성공할 수 있는 나이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24세에 데뷔하여 충격을 주었던 아이러 레빈


작가의 나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구요…

그렇다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의 나이는 어떨까요? 추리소설이라는 특성상 주인공들이 터무니없이 어린 경우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물론 청소년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쓴 작품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에서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별개로 보아야 하겠지요. 현실에서 스무 살도 안 된 경찰이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세상물정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애송이 탐정에게 자신의 심각한 사정을 허물없이 털어놓을 의뢰인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물론 예외 없는 예외는 없는 법이라 어린 주인공이 있긴 합니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걸작 밀실 추리소설 <노란 방의 비밀>에 등장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신문기자 조셉 룰르타비유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에 불과해 청년이라 부르기도 어색한데, 기자가 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이라고 하니 정말 19세기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룰르타비유는 후속작에도 등장해 젊은 피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젊다못해 어린 친구가 담배까지? - 조셉 룰르타비유


하지만 룰르타비유가 막내 삼촌쯤으로 보일 만큼 훨씬 어린 주인공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다나카 마사미(田中雅美)의 작품에 등장하는 호시카와 아츠코(星川厚子), 통칭 ‘앗쨩’으로 불리는 이 소녀는 불과 다섯 살의 유치원생입니다. <앗쨩의 추리 포켓>(1985)에 처음 등장하는, 소녀라고 하기도 어색한 이 꼬마는 유치원 친구가 버스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어린이 특유의 호기심과 직감(?)으로 원기 넘치는 엄마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아츠코는 시리즈 진행과 함께 나이를 먹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아마 이보다 어린 탐정은 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혹시 모르지요, 어찌될지.

반면 나이 먹은 탐정은 제법 있습니다. 로렌스 샌더즈의 <대죄>시리즈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딜레이니나 피터 러브지의 피터 다이아몬드는 경찰에서 퇴직한 50대 후반의 사람들이며, 엘러리 퀸이 버나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에 등장하는 은퇴한 연극배우이자 아마추어 탐정 드루리 레인도 환갑을 넘은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들마저 젊은이로 보이게 하는 탐정도 있습니다. L.A.모스의 <늙은 탐정(The Old Dick)>(1981)에 등장하는 제이크 스패너는 78세의 괴짜 골초 영감님으로 자신의 마지막 사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일광욕하거나 시시한 소설을 읽으며 소일하던 왕년의 사립탐정 스패너에게 40년 전 그가 형무소로 보냈던 폭력단 두목 살 피콜로가 찾아와 유괴된 손자의 몸값 75만 달러를 주는데 동행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사건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맙니다.

제임스 시겔
의 <묘비명(Epitaph)>(2001)의 주인공도 70세를 넘긴 전직 탐정 윌리엄 러스킨입니다. 그는 과거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동료가 죽기 전까지 사건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건을 이어받기로 합니다. 약간의 질투심으로 시작된 조사에서 윌리엄은 50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미해결 대량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또 최근 발생하고 있는 실종사건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에게도 위험이 다가옵니다.

어떤 탐정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갑니다. 로스 맥도널드의 주인공 루 아처는 <움직이는 표적>(1949)에 처음 등장했을 때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30대 중반이었지만 4반세기가 지난 후의 마지막 작품 <블루 해머(The Blue Hammer)>(1976)에서는 20대의 여성이 딸처럼 보일 만큼 원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로버트 파커의 주인공, 보스턴의 사립탐정 스펜서 역시 처음에는 독신 생활을 즐기는 3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어 삶의 연륜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리바이의 A(A is for Alibi)>, <강도의 B(B is for Burglar)> 등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되는 작품을 쓰는 여성작가 수 그래프튼은 데뷔작에서 27세였던 여탐정 킨지 밀혼이 대략 두 작품 반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게 해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 될 <0의 Z(Z is for Zero)>(제목을 미리 정해 놓았다고 하는군요)에서는 40세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21편이 나왔으니 앞으로 다섯 편 남았군요. 성공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후속 작품의 계획까지 세우는 것은 무척 세심하거나 야망이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추리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알파벳으로 스물여섯 편의 시리즈를 쓰겠다고 결정한 그래프튼은 그런 점에서도 대단한 작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26번째 작품을 기대합니다 - 수 그래프튼


한편 아무런 생각 없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나이를 언급했다가 혹시라도 인기를 얻어 작품이 이어진다면 호기심 많은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사생활까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닐까 싶군요. 크리스티는 작품마다 빈틈없이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감탄시켰지만 주인공의 나이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탓에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크리스티는 데뷔작이자 푸아로가 등장하는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을 1920년에 발표한 후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이상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고, 푸아로가 세상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커튼>을 유작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푸아로의 죽음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부고가 실렸는데, 거기에 실린 그의 추정 연령은 무려 120세였던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에 실린 푸아로의 부고 기사


심지어 크리스티의 평전(評傳)을 쓴 H.R.F.키팅은 푸아로가 1904년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했다는 기록에 따라 당시 60세였다면 1970년 중반까지 살아있었으니 130세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줄리언 시먼즈는 <위대한 탐정들(The Great Detective)>에서 푸아로가 퇴직했을 때 40대였다며 100세를 넘겼다는 설에 반론을 제기했지요. 결국 푸아로의 나이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일찌감치 모습이 굳어진 주인공은 나이를 먹지 않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독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자면 제임스 본드, 이름보다 007이라는 번호로 더 잘 알려진 첩보원이지요. 작가 이언 플레밍이 세상을 떠난지 한참 되었습니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본드의 나이는 점점 젊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50년 이상 87번 관서(분서라고도 많이 번역되었네요) 시리즈를 발표했던 에드 맥베인은 등장인물의 나이에 대해 별로 고민이 없었습니다. 어떤 인터뷰(1992년입니다)에서는 이렇게도 말했지요.

질문: 인물들의 나이-예를 들어 쌍둥이(사실상의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라의 아들입니다)- 를 조금씩 먹게 하는 것은 어떻게 결정하십니까?

맥베인 : 쌍둥이는 “사춘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도 그들이 도대체 몇 살인지 모르겠군요. 다음 책을 쓸 때 살펴봐야겠습니다. 카렐라와 다른 사나이들은 모두 30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예요.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은 덕에 그가 수많은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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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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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0.12.23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만든 탐정의 나이를 먹게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소년탐정 김전일이나 코난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죠), 사극이라면 <로마 서브 로사>시리즈의 고르디아누스처럼 나이를 먹게 해야겠지만 현대물에서는 계속 그 나이를 유지시키기로 했습니다.

  2. 레이 2010.12.23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나이하면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 탐정, 이거 좋네요.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점차 성숙해가는 모습도 흥미로울 것 같고요.
    알파벳 시리즈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국내에도 소개될 날이 오길... 계속 쓰시고 계실 작가분께 감탄하고 갑니다.

  3. 카메라이언 2010.12.23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키키킥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가요. 포와로는 혹시 알고 보면 장삼봉이랑 같은 수준의 선인? 키키키킥. 역시 명탐정 코난이 젤 웃겨요. ㅋㅋㅋㅋ

  4. 평시민 2010.12.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장편 주인공이라..., 그러고 보니 저와 나이가 비슷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