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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9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4> 괴짜 작가 (7)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사람들

"당신 여권에는 작가라고 되어 있지만, 그건 아주 융통성 있는 단어이지요."
- 피터스가 라티머에게
   - <디미트리오스의 관>(1939)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에게 특유의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실상 천재 탐정이 드물게 된 요즘도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탐정보다 더 기발하고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려는 작가도 드물지 않습니다.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 시리즈의 작가 어네스트 브라마는 출생연도까지 불분명하며(그의 출생연도는 자서전적인 소설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으며, 내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도 싫다”고 돌려보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작가협회에서는 매년 ‘여름추리소설학교’를 여는데, 그 행사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이 참가하죠. 여기 참가한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평범하고 어쩌며 소심해보이기까지 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기발한 범죄를 궁리하고 있습니다만 외모만으로는 어디서나 마주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거의 은둔자처럼 살았던 브래머와는 달리 이런 저런 기벽(奇癖)이 전해져오는 유명 작가도 있습니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추리소설을 썼다’는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적인 재능과 함께 반항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우한 성장 배경 탓일지는 몰라도 그는 평범함보다는 파격적인 면을 추구했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명령불복종’과 ‘의무 불이행’으로 퇴학당하는 등 타고난 반골 기질도 있었죠. 워낙 인생이 파란만장한 터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여럿 있습니다. 몇 년 전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와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가 번역되었고, 얼마 전 출간된 앤드루 테일러의 <아메리칸 보이>는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합니다.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하는 '아메리칸 보이'


코난 도일은 젊은 시절 심령술, 신비학(神秘學), 강령술(降靈術)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이를 먹은 후에는 관심 수준을 넘어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과학적인 상식을 지닌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 냈으며, 원래 의사였던 그가 말년에 심령술 신봉자가 된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도일이 심령론을 신봉할 것을 공언하고 그 선전과 전도에 나선 것은 제1차 대전 끝 무렵부터였으므로, 그런 미신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전쟁 중에 장남 킹슬리를 비롯한 많은 친지를 잃고 마음의 균형을 잃은 탓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도일은 고고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으로 일컬어지는 ‘필트다운 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필트다운 인 사건’이란 191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이 영국 필트다운에서 발견한 원시인 두개골 화석이 사람과 오랑우탄의 턱뼈를 인위적으로 합성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근 40년이나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이지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찰스 도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확실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이 사기극의 주모자로 도슨을 비롯한 주변의 고고학자들을 꼽고 보고 있지만 약 70년 후 이 사건을 연구한 미국의 고고학자 존 윈슬로(John Winslow)는 당시 필트다운 근처에 살았고 1912년에는 공공연히 발굴현장 근처를 자주 방문했던 코난 도일을 조심스럽게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도일은 장난을 꾸밀만한 기술, 지식, 기회를 모두 갖춘 인물로서 신비학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을 한 번쯤 골려주겠다는 동기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도일의 작품 <잃어버린 세계>에 나오는 가상 지역의 지도와 필트다운 근교의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소설 속에는 뼈의 위조나 장난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오는 것을 볼 때 필트다운의 사기극은 <잃어버린 세계>의 플롯을 기초로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윈슬로에 따르면 도일은 이 사건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듯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실마리 - 이를테면 크리켓 경기에 사용하는 배트 모양의 용도불명의 코끼리 다리뼈(코난 도일은 뛰어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턱뼈가 발견된 곳에서 3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어금니 등 -를 던져 놓았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을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과연 도일이 범인이었다면 그의 장난이 성공해서 즐거워했을지 아니면 어이없어했을지 궁금합니다.

밀실을 다룬 고전 <노란 방의 비밀>과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자 가스통 르루도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못지않은 기발한 장난기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기자였던 르루는 형무소에 있던 귀족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류를 위조, 동료 기자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특종을 따 낸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르루의 작품 집필 때의 습관도 유명합니다. 그가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작품을 쓸 때면 온 집안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그는 창문으로 뛰어가 총을 쏩니다. 그러면 그 신호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접시들을 깨뜨리고 냄비들을 두들기며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며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끝냈으니 화끈하게! 가스통 르루의 캐리커쳐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인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역시 기발한 재능과 독특한 장난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추리작가 도로시 솔즈베리 데이비스의 기억에 의하면, 어떤 만찬에 참석한 하이스미스는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애완용 뱀 두 마리(민달팽이라는 이야기도 있네요)를 테이블에 꺼내 놓고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는 모습을 태연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1995년 작고할 때 예상대로(?) 놀라운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쓸 때 머물렀던 뉴욕 주 북부의 한 예술인 공동체 마을에 3백만 달러라는 그녀의 유산을 모두 기증한 것이지요. 이 일은 마을 공동체 1백년 역사상 한 사람의 기증으로서는 최고액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젊은 시절. (작품집의 표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큰 활약을 보인 다카키 아키미츠의 성공은 미신과도 같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후 직업을 얻지 못해 2년 동안이나 실업자로 지내던 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을 쓰면 성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문학 수업 같은 것은 해 본적도 없었던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점괘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학생 시절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는 추리소설을 선택했으며, 전쟁 후 물자 부족으로 원고지도 없어 잡다한 종이에 약 6백매 정도의 장편을 3주 정도 걸려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출판사 이곳저곳에 원고를 가져갔지만, 인쇄용지도 부족한 판국에 이름도 없는 젊은이가 쓴 장편소설을 상대해 주는 곳이 있을 리가 없지요. 여기서 그는 다시 한 번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대가(大家)에게 이 원고를 보내면 인정받을 것이고, 그럼 성공할 것이다’라는 낙관적인 점괘가 다시 나오자 그는 원고지에 깨끗하게 다시 쓴 후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 에도가와 란포에게 원고를 보낸 것이죠. 란포는 이 무명 청년의 작품을 읽은 후 참신한 내용에 감탄해서 출판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역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문신 살인사건>(1948)이며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미즈 교스케는 최고의 천재 탐정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점의 인생론>, <방위학(方位學)입문>, <상성(相性)판단>등 일련의 점술 관련 서적을 집필하며 점술의 전면적 신봉자임을 밝혔습니다.

점을 신봉했던 다카키 아키미츠

사실 그의 점에 대한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 부친이 많은 빚을 남긴 채 급서(急逝)하고 자신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을 때, 부친의 친구에게 손금 점을 본 후 점괘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어쩌면 작가들의 인생만 살펴봐도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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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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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10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글을 쓸 때의 버릇은 특별히 없습니다만, 굳이 하나 든다면 밤에 써야 더 잘 써지더군요.

  2. 시무언 2011.03.10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난 도일같은 경우는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죠. 그것도 어찌보면 괴짜고...

  3. 카메라이언 2011.03.10 0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쩜 좋아요. 전 너무 평범한 것 같아요. 꺅. ==33 후다닥 도망.

  4. 갈매 2011.03.11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특이한 기벽이, 기질이 있어야 작가가 되는 것일까요? ^^

  5. 행인2 2011.03.11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선생, 정말 멋집니다^^
    '태양은 가득히'나 '낯선 승객'이나 정말 대단한 작품인데.

  6. myungworry 2011.03.14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예쁘군요. 물론 소설도 좋습니다만.

  7. Miss Baby 2011.05.2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카키 아키미츠의 문신살인사건 북리뷰를 하기 위해 작가 리서치하는 도중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을 발췌했습니다만,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코멘트 달아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자체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많이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jaera1990.blog.me/130109318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