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잘 하면 다른 것도?

자, 이제부터 원고지를 꺼내 추리소설을 쓰기로 하자.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러 번 충고한 대로 한낱 부업으로서 말이다.
- <부업으로서의 추리소설>(1989) / 노 원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최초의 탐정 뒤팽은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자제’라고 완곡하게 돌려 설명하고 있지만 지금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고학력 실업자’이겠지요. 이후 등장한 주인공들 중에는 탐정, 경찰 등 범죄를 다루는 것이 직업인 인물들도 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처럼 살던 마을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할머니라던가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같은 성직자 등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낸 작가들은 원래 무슨 직업을 가졌을까요?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작가를 지망한 문학 지망생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소름끼치는 작품 <사이코>를 쓴 로버트 블록은 그런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고전적 공포물 작가 H.P.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17살 때 펄프 잡지에 첫 작품이 실리며 일찌감치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성년이 된 후에는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채 작품을 써 오다가 <사이코>의 성공에 힘입어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블록(1917-1994)

이렇게 블록처럼 차근차근 작가의 입지를 다져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반드시 이렇게 순탄한 길을 밟아온 작가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반드시 고생한 것은 아닐지라도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못지않게 원래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우선 범죄와 늘 마주치는 법조계 인사가 추리문학계로 여럿 투신했습니다. 이들 법조계 인사들 중에는 변호사가 가장 많은데, 최고참을 꼽으면 <월장석>(1868)의 작가인 영국의 윌키 콜린즈이며, 그 뒤를 ‘엉클 애브너’ 시리즈의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가 이어갑니다. 변호사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작가 얼 스탠리 가드너는 그가 소설 대신 변호사 업무에 전념했다면 미국 역사에 남을 뛰어난 변호사가 되었으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유능했으며 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존 그리셤 역시 변호사 출신입니다. 또한 하버드 출신의 스콧 터로우나 한때 지방검사국에 근무했던 리처드 노스 패터슨 등은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작가들입니다.

윌키 콜린스 (1824-1889)

한편 직접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나 탐정 출신 작가도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작가 대쉴 해미트는 유명한 핑커튼 탐정사에 14년 동안 근무했으며, 해미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해미트>의 작가 조 고어즈도 3년간 로스앤젤레스의 탐정 사무소에서 재직했습니다. 경찰 출신 작가로는 영국의 존 웨인라이트와 미국의 조셉 웜보가 대표적인데(웨인라이트는 22년, 웜보는 14년 근무), 이들은 천재나 영웅 대신 인간적인 경찰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형사 크리스티 오패러를 창조한 여성 작가 도로시 유낙도 경찰 근무 경력이 10년 이상이라고 하네요.

경찰 출신 작가 조셉 웜보(1937-)

제임스 본드, 007라는 불멸의 스파이를 창조한 이언 플레밍은 2차대전 중 해군 정보부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첩보임무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플레밍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007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는데, 60년대에 3백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벌어 들였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전설적인 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이 의사였다는 것은 웬만한 추리소설 팬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도일 이후의 의사 출신 작가로는 영국의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이 있습니다. 의사이자 박물학자이며 토지 측량원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그는 건강이 나빠져 의사 생활을 그만둔 후 홈즈의 인기에 영향을 받아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으로 검시관인 손다이크 박사를 내세운 그는 <노래하는 백골>에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처음부터 보여준 후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범인이 어떻게 잡히는가”에 중점을 두어 도치서술형 추리소설(일반적으로 도서 미스터리라고 불리죠)을 창안했으며, 또한 과학수사를 강조했습니다. 의사 출신 작가로는 하버드 의대 출신의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 마이클 파머, 일본의 가이도 다케루 등이 있는데, 그들은 의학적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추리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이도 다케루 (1961-)

여성 검시관이라는 흔치 않은 직업의 케이 스카페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퍼트리샤 콘웰의 약력을 보면 작가가 되기 전 검시실에서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검시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고 사무직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녀가 실제로 메스를 잡진 않았을지라도 검시실의 분위기를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파악하고 있음엔 틀림없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엄청난 양의 영화를 본 다음 영화감독의 싹을 키웠던 것으로 유명한데,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는 백과사전 세일즈맨, 서점 직원으로 일하다가 하드보일드에 흥미를 느껴 많은 양의 펄프 잡지들을 탐독한 후 6주 만에 탈고한 <미스 블랜디쉬의 난>으로 순식간에 성공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폭력 묘사로 논란도 일었지만 삽시간에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체이스를 서점 직원에서 작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배우 밀레느 드몽조를 앞에 두고 집필중(?)인 체이스. 글이 써질까요?

트릭이 추리소설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면 트릭을 생명으로 삼는 마술사라면 추리소설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요? 1938년 <Death from a Top Hat>으로 데뷔한 클레이튼 로슨은 마술사인 그레이트 멀리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는데, 작가 자신도 그레이트 멀리니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 마술사였으며 마술에 관한 책을 집필할 정도로 조예가 깊었습니다. 일본에도 마술사 출신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작가인 아와사카 츠마오(泡坂妻夫)는 일본 마술계의 큰 상인 이시다 덴가이(石田天海)상을 받았으며, 문장(紋章)화가로도 활동하고 있어 어떤 것이 본업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군요.
직업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범죄자 출신 작가도 있습니다. 이들은 예전에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일화 한 토막을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Jackrabbit Parole>(1986)을 복역 중에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캐나다 출신의 스티븐 리드가 1999년 6월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은행 강도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16살 때부터 1백 40여 차례 이상의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며 1천5백만 달러를 훔친 리드는 항상 스톱워치를 들고 1분 30초 내에 달아났기 때문에 ‘스톱워치 갱’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도단의 두목이었습니다. 1980년 30세로 체포된 리드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87년 출감 후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하고 영화나 TV에도 출연하며 다채로운 활동을 벌여왔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다시 범행을 저지르다가 잡힌 것입니다.

2008년의 스티븐 리드

과거의 솜씨나 경력은 화려했을지 몰라도 약 20년 만에 다시 은행을 털기에는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복역한지 18년 만인 2008년에 석방되었다고 합니다만… 역시 경험을 살려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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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7.02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들의 전직이 그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마련입니다. 체스터 하임즈 역시 전과자 작가로서 뉴욕 뒷골목이나 할렘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로 유명하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마벨의 사랑>도 보고 싶습니다.


그들은 창살 뒤에서 무엇을 했을까

자본가들은 돈을 모으고 교도소로 가지요.
작가들은 교도소로 간 다음 돈을 법니다.
-고든 크로스
     - <화형법정> (1937) 존 딕슨 카
 

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사설 보안경비업체가 사원을 모집하면서 박사급의 고급인력뿐만 아니라 강절도범 등 전과자를 모집한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첨단 컴퓨터 범죄를 막기 위해 해커(hacker)를 키우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하죠. 이건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이론에 따른다는 것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흥미로운 일이긴 합니다.

소설가 사이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써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를 다루는 추리소설의 경우 범죄자가 훨씬 실감나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아니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에 등장한 추리소설가 중 교도소 신세를 겪은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겠고 또한 그들이 모두 성공한 작가가 되었을 리는 없겠지만, 사실 근대 추리소설의 뿌리는 어느 탈옥수의 회고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범죄자였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수사국의 책임자가 되는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François Eugène Vidocq)는 웬만한 소설의 주인공보다 훨씬 극적인 인생을 살아간 인물이었습니다. 빵집 아들로 태어난 비도크는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입대, 5년 동안 군인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정식 제대특명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망병이 되어 체포당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감방에 있던 위조지폐범 두 명이 그들의 죄를 비도크에게 뒤집어 씌우기까지 했지요.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은 비도크는 그로부터 10년 동안 옥살이와 탈옥을 거듭하며 반평생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도크의 '회고록'

그는 이 기간 동안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했고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생리와 수법을 파악하게 되었으며 또한 변장의 명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평생을 숨어서 사느니 차라리 경찰의 정보원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1년 9개월의 옥살이를 자청해 교도소 안에서 스파이 노릇을 했으며, 형기를 마친 다음에는 정식으로 경찰 전속 탐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의 범죄가 극심하게 증가하자 비도크는 개심한 전과자들을 모아 특별 팀인 범죄수사국을 창설하는데, 이들은 대단한 활약을 벌여 창설 8년 만에 파리의 범죄율을 40%나 떨어뜨렸습니다. 이러한 눈부신 공적으로 비도크는 루이 18세에 의해 위조지폐 사범이라는 무고한 죄에 대해 완전한 사면을 받았습니다.

비도크는 50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책의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4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서 <회고록>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썼다고는 해도 과장된 부분이 많아 허풍이라고 혹평받기도 하며 심지어는 창작물이라는 말까지 듣지만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우, 영국의 윌키 콜린즈, 프랑스의 에밀 가보리오 등 근대 추리소설의 기초를 세운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대 추리소설의 시조로 인정받는 포우는 공교롭게도 음주 난동으로 필라델피아의 교도소에 잠시 구금되어 있을 때 이 책을 읽었다고 그의 편지에서 밝히고 있네요.

1896년 2월 미국에서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idney Porter)라는 은행 출납계원이 854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체포당합니다. 그는 병든 아내를 이유로 보석절차를 받아 잠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재판이 있기 전 온두라스로 도망쳤다가 아내가 위독해지자 돌아와서 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은행원이 되기 전 잠깐 기자 생활도 했던 그는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때가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899년 아직 복역 중이던 포터는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단편을 발표했으며, 모범수가 되어 3년 만에 형기를 마친 그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등 수많은 주옥같은 단편을 남겼습니다.

단편소설의 거장 O.헨리

오 헨리를 추리소설가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셜록 홈즈의 패러디인 ‘샘록 존스’ 시리즈를 쓰는가 하면 꽤 많은 수의 작품이 범죄와 연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되살아난 개심(改心)>(1909)에 등장하는 금고털이 지미 밸런타인은 교도소에서 만난 인물이 모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오 헨리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은행 감사 때 장부의 숫자가 맞지 않자 말단 출납계 직원이었던 오 헨리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다는 설도 있으며, 그가 경영하고 있던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횡령한 것이 사실이라는 설도 있는데 정작 본인은 죽을 때까지 그 일에 대해서 함구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미국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기반을 확립한 대쉴 해미트는 1950년대 좌익 소탕 열풍에 휘말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했던 그는 반(反) 파시스트가 되어 1930년대에 미국 공산당에 입당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냉전시대에 접어들어 매카시 의원의 반미(反美) 조사위원회에서 자신의 활동이나 동료를 밝히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법정 모독죄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몰타의 매>(1929)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좌익이라는 낙인이 찍혀 도서관에서 금서로 규정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심지 굳은 인물, 대쉴 해미트


한편 해미트의 작품은 한 전과자가 추리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8년 열아홉 살의 흑인 청년 체스터 하임즈는 무장 강도 혐의로 7년형을 언도받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29년 펄프 잡지 <블랙 마스크>에 연재된 해미트의 <붉은 수확>을 읽은 후 영감을 얻어 교도소에서 소설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1945년 첫 장편 <If He Hollers Let Him Go>를 발표한 그는 1953년 절친한 흑인작가인 제임스 볼드윈, 리처드 라이트 등이 살고 있던 프랑스로 떠나 84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유럽에 머무르면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체스터 하임즈

그가 창조해 낸 할렘의 형사 ‘코핀(Coffin: 관) 에드 존슨’과 ‘그레이브 디거(Gravedigger) 존스’ 콤비 - 어렸을 때 어느 책에서 '관 짜는 에드와 무덤 파는 존스'라고 소개한 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는 강렬한 이미지로 미국보다 유럽의 추리소설 애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는데, 그들의 인물 묘사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 덕분이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블랙 달리아>와 <L.A.컨피덴셜>이 소개된 제임스 엘로이 역시 젊은 시절의 일부를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열 살 때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그는 청소년기에 사유지 침입, 알코올 중독, 폭행 등으로 전과자가 되고 말았지요. 20대 후반에 문학에 눈을 뜬 그는 술을 끊고 골프 캐디 일자리를 얻은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해 <Brown's Requiem>(1981)으로 데뷔합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미국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소설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엘로이


이렇게 한때의 어려움을 겪고 입신한 이들과는 반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다가 철창신세를 진 작가도 없지 않습니다. 영국 보수당 부의장․런던시장 후보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프리 아처 경(卿)의 사례는 가장 유명합니다. 단거리 육상선수로 올림픽에도 출전한 바 있으며 1969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화려한 경력의 아처는 그로부터 5년 후 투자에 실패,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의원직을 사퇴했으나 당시의 경험을 살린 소설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고, 제3작 <케인과 아벨>은 미국에서 TV 미니시리즈로 제작, 방영되면서 거물급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한편 정치활동을 재개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때 보수당 당수 물망에까지 올랐습니다.

파란만장한 경력의 제프리 아처. 롤러코스터 인생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1987년 그가 매춘부와 같이 잤다는 기사가 타블로이드 일간지에 실리면서 정치적인 몰락의 구멍에 빠지게 되지요. 그는 이 기사를 보도한 데일리 스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 친구 테드 프란시스의 알리바이 입증에 힘입어 승소해 배상금 50만 파운드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2년 후 친구인 프란시스가 아처의 부탁으로 거짓증언을 했다고 폭로, 결국 99년 11월 런던 시장 선거전에서 중도 하차하고 출당 처분을 받는 한편 위증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적용된 5건의 기소내용 가운데 위증 등 4건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최장 4년의 징역형과 함께 소송비용 17만5천 파운드를 12개월 내에 납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특히 형기 가운데 2년 이상은 반드시 실형을 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역 중에도<교도소 일기(A Prison Diary)>를 출간했으며 2003년 7월 영국 남부 교도소에서 2년 만에 가석방되어 런던의 자택으로 귀가, 불사조 같다는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려는 듯 계속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석방 이후의 작품으로 <배반의 자화상>(2005)이 번역되어 있군요.

옥살이를 한 작가들 중 성공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교도소 생활이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작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지난해 교도소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지간하면 신세지고 싶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성공한 추리작가가 되는 길은 직접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남의 책을 많이 읽고 머릿속에서만 구상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겠지요. 세상에는 하도 별난 범죄가 많고 또 추리소설도 엄청나게 많으니 활자를 통한 간접경험만 해도 모자랄 게 없을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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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2.18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추리소설가 중에도 교도소에 다녀 온 양반이 있지요. 황세연 작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 명의 도용, 좌중을 썰렁하게 하는 농담 남발 혐의로....는 아니고요,
    군복무를 교도소에서 했다고 합니다. ㅎㅎ

  2. 카메라이언 2011.02.19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야야... 엄청나네요. 어렸을 때엔 여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교도소(수녀원, 절)는 밥도 주고 하니까 어쩌면 글 쓰기에 이상적인 곳일지도 몰라.'라는 로망(?)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떻게 저딴 생각을 했었는지. (;;;) 왠지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면서, 대작가님들의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입을 쩌억 벌리고 갑니다. 그리고, 오 헨리 님의 샘록 존스 시리즈 너무 궁금한데요. <--설록수 준비하고 있다 보니 호기심이 마구마구!

    • 평시민 2011.02.19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찾아보기는 힘들어졌지만 도서관에서라도 <꼭두각시 인형>을 검색해 보십시오, 오 헨리의 추리소설 단편집이고 샘록 존스 시리즈도 세 편 실려 있습니다. 패러디물이라 그런지 억지 개그물이긴 하지만요.

    • 카메라이언 2011.02.21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혹시나 아는 덕후가 갖고 있을까 싶어 물었더니, 이 덕후도 없더군요. (;;;) 도서관에 가야겠어요. 국립도서관인가, 어디에 한 권 있다는데... 과연 볼 수 있으려나. ㄱㅡ;;;;



조 고어즈 작고 소식을 전하면서 대쉴 해미트(Dashiell Hammett) 이야기를 잠깐 꺼낸 바 있는데, 1월 14일 뉴욕발 AP통신은  해미트의 미출간(unpublished) 단편소설이 그의 사후 50년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쏘았다 So I Shot Him>라는 제목의 19페이지짜리 이 단편 스릴러는 <몰타의 매>에서 볼 수 있는 해미트의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대쉴 해미트



이 작품은 오는 2월 28일 출간될 <스트랜드 매거진> 겨울/봄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자 앤드류 F.걸리 Andrew F. Gulli는 이 작품을 포함한 해미트의 다른 작품들을 텍사스 대학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냈다고 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대학 도서관 같은 곳에서 해방 이전의 작품들이 이렇게 한번쯤 발굴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려나요(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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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콘티넨탈오프 2011.01.15 1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미~

    해미트의 미출간 단편이 발견됐다고라..

    19페이지면 10장 내외인데 좀 감질나긴 하지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