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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3 한국에서 추리작가 되는 법 (14)

서사의 시대랍니다. 장편이 대세라네요. 순문학 작가들의 추리기법 차용이 늘고 외국의 유명 미스터리 작품이 앞 다퉈 번역돼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산업이 커지면서 ‘원 소스 멀티 유즈’란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 덕에 한국 추리소설도 저급 변두리 문학이란 오명은 ‘초큼’ 벗게 됐습니다. 외부 요인에 기댄 것이라 씁쓸한 측면도 있지만 존재감조차 미미하던 과거에 비하면 음지에서 양지로 고개를 내민 기분이랄까요. 몇몇 작가는 완성 원고 없이도 출판사와 계약할 정도니 국내 작품이라면 눈길조차 안주던 5~6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여전히 한국 추리소설의 미래를 낙관하긴 애매한 시점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긍정적입니다. 이제 수준 높은 작품을 통해 시장을 키우는 건 작가들 책임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겠지요. 다행히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창작 기반이 조금씩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 지망생들이 꽤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추리작가란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순문학처럼 신춘문예나 출판사 문예지 같이 공식화된 등단 절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추리문단에도 다양한 등용문이 있습니다.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아는 범위에서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절대적 기준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요식 행위에 불과하지만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이니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창작카페를 중심으로 추리작가 지망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선, 근사한 장편을 하나 탈고했다면 선택의 폭은 넓습니다.
고민 없이 바로 원하는 출판사에 날려보시길….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추리작품은 확률적으로 희박했는데 지금은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원고를 제본해 우편으로 보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금가지, 랜덤, 노블마인, 시공사, 시작, 북스피어 같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들은 자사 사이트나 온라인 카페에 독자 투고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채택 여부는 편집회의에서 결정되는데 아마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두 달 안에 결과를 통보 받으실 수 있습니다. 행여 답장이 없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시길요. 편집자들도 투고 원고 일일이 검토하는 작업이 큰 일이랍니다. 당장 출간하기엔 부족하나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라면 수정을 전제로 가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일화지만 1974년 미국의 한 무명작가가 자신의 재능에 절망해 휴지통에 버린 원고를 그의 부인이 수거해서 격려 끝에 완성,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바로 ‘장르의 제왕’ 스티븐 킹의 실질적 데뷔작인 <캐리>의 탄생입니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도 당초 에도가와 란포상에 투고하려 했으나 원고 매수가 규정을 넘어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판사를 찾아 갔고, 그 작품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우부메의 여름>입니다.
직접 투고해 출판사와 인연을 맺을 경우 차후에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죠. 대형 출판사라면 영화나 드라마 제작 같은 2차 저작권 판매에 에이전트 역할도 맡아줍니다.  


두 번째는 장편 공모전에 도전하는 방법입니다. 

 ‘장르소설 재발견’ 분위기에 힘입어 수년 전부터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문학상을 신설했습니다. 다만 추리부문이라고 꼭 찍어 한정된 것은 없고 호러, SF, 로맨스 등 장르문학 전반에 대해 투고를 받습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김내성문학상>, <소설문학사 추리장편 공모전>등을 통해 유우제, 권경희, 이승영, 임사라 같은 실력파 작가들이 대거 배출됐는데 이들 상이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면 한국 추리소설도 전성기를 한번 맞지 않았을까 아쉬워해 봅니다.)


주요 공모전의 수상 작품들


먼저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뉴웨이브 문학상>은 올해로 4번째 입니다. 첫해는 국문학자 유광수씨의 역사 스릴러 <진시황 프로젝트>가, 다음 해는 수상작을 못 냈고 작년에는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학파의 암투를 다룬 <천년의 침묵>이 선정됐습니다. 올해는 이달 중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상금은 1억원.


<멀티문학상>은 영상물 원작을 발굴하기 위해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방송사 SBS, 영화사 쇼박스가 손잡고 작년 신설됐습니다. SF와 판타지를 주로 쓰는 김이환씨의 <절망의 구>가 첫해 당선 됐고 올해는 수상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상금은 역시 1억원. osmu21.co.kr에서 응모 요강 확인 가능. 계간지 자음과 모음에서 진행하는 <네오픽션상>도 있답니다. 올해는 유현산씨의 추리소설 <살인자의 편지>가 선정됐습니다. 매년 6월말 응모 마감해 가을호에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상금은 5천만원.


문화부 주최 <디지털작가상>은 올해로 5회째. 올 12월 10일까지 원고를 받고 내년 1월 초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비교적 짧은 원고지 500매 이상이면 응모 가능하고 대상 뿐 아니라 우수상, 장려상 등 여러 편을 뽑기 때문에 수상 확률이 높은 편입니다. 한국전자출판협회(
www.kepa.or.kr)에서 온라인 접수합니다. 대상 상금은 2천만원. 작년에는 <기억은 잠들지 않는다>라는 양지현씨의 추리소설이 뽑혔습니다.  

최근 경향을 보면 미스터리 쪽이 강세입니다. 공모전을 통한 데뷔는 짧은 시간에 작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겠죠. 결정적으로 상금이 짭짤하다는 것. 흐흐~
낙선한 작품이라도 수준작들은 별도 계약을 통해 단행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폼 나는 장편 없다고 추리작가의 꿈을 꺾진 마십시오. 단편 창작부터 재미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재작년 타계한 에드워드 D. 호크는 1천여편에 가까운 단편으로 추리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입니다. 


스포츠신문에서 주관하던 신춘문예가 2천년대 들어 다 폐지되는 바람에 지금 단편을 공모하는 곳은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2002년부터 발행하는 잡지 <계간미스터리>가 유일합니다. 매분기마다 <미스터리 신인상>을 뽑는데 분량은 70~200매.
mysteryhouse@hanmail.net으로 접수 가능합니다. 당선작에는 한국추리작가협회 입회 자격과 집필 지원이 있습니다. 매년 여름에 나오는 단편집 <올해의 추리소설>에 작품을 실을 수 있고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미스터리'. 앞쪽은 창간호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매년 여름 출간하는 공동단편집 '올해의 추리소설'


얼마 전 추리작가로 등단한 현직 판사 이야기가 여러 신문에 실렸는데요, 바로 서울 고법에 근무하는 도진기씨입니다. 그는 ‘심플맨’이란 필명으로 꾸준히 <계간미스터리>에 투고 해왔고, 올 여름호에 <선택>이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곧이어 장편 <붉은 집 살인사건>과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연달아 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에서도 장르 전문잡지 <네오픽션>을 내년 초 창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월간지가 될 것 같은데 젊은 작가 발굴을 위한 신인상 신설을 기대해봅니다. 


공동 작품집을 통해 데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장르 창작의 큰 흐름 하나가 인터넷 카페의 활성화입니다. 환상문학 웹진인 <거울‧mirror.pe.kr>이나 공포문학의 <유령의 공포카페‧ cafe.naver.com/64ghost>같은 곳이 유명합니다. 이들 카페에선 게시판에 올라 온 회원들 작품을 선별해 공동 창작집을 꾸준히 내는데 신인 등용문으로서 큰 역할을 합니다.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은 5권까지 나왔고,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cafe.naver.com/openhanmymo)이 주도하는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은 3권이 곧 출간됩니다.

장르소설 창작카페에서도 다양한 작품집이 나옵니다


최근 공포장편 <무녀굴>을 발표한 신진오씨도 창작 카페에서 오랫동안 습작을 하며 실력을 다져왔습니다. 작가 육성 시스템이 빈약한 장르문학계의 모범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시대 흐름을 반영하듯 전자책도 있습니다.
지난 여름 교보문고에서 젊은 추리작가들과 손잡고 <미스테리 노블>시리즈를 런칭했습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1년에 단편을 40편 제공합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운영자 앞으로 개별 투고하면 운영진이 선별해 <미스테리 노블>에 실을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나 획기적인 시도라 눈여겨볼만 합니다.
전자책 회사 바로북에서 운영하는 <아이작가‧ www.ijakga.com>도 한국추리작가협회와 연계, 이곳에 글을 연재하면 <계간미스터리>신인상에 자동 투고됩니다.

전자책 출간의 장점은 실험성 높은 작품을 부담 없이 발표할 수 있고, 수익 분배 방식도 작가에게 유리합니다. <미스테리 노블>의 경우, 저자가 다시 오프라인으로 책을 내고 싶어 할 때 계약상 제약 요인은 없습니다.


교보문고 전자북이 젊은 작가들과 손잡고 만드는 '미스테리 노블'시리즈


네이버에서는 작년부터 <오늘의 캐스트>에 장르 단편을 한 주에 한 편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황금가지와 시공사, 제우미디어가 돌아가면서 추천하는데 해당 출판사 투고를 통해 실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런저런 작은 공모전이 있습니다만, 중요한건 작가 타이틀이 아니라 얼마나 재밌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쓰는가겠죠.

추리소설이 발전한 나라 대부분은 선진국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치 상황이 안정돼야 비로소 ‘지적 유희’를 즐길 여유가 생긴다는 거죠. 특히 일본 추리작가들은 서양문화의 산물인 미스터리를 사회파, 신본격 같은 자신들만의 색깔로 발전시켜 최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추리작가협회 회원만 700명에, 하루에 한 권 이상 자국 작가의 추리소설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 쏟아지는 추리소설 중 우리 작가 비중은 10%가 채 안됩니다. 그 만큼 안방 시장을 다 내주고 있는데요, 상황을 반전시킬 '한국형 스타일'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의 대거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10만권을 팔 수 있는 추리작가 한 명보다 1만권 팔 수 있는 추리작가 10명이 절박한 시점입니다. (개인적 소원은 1만권이라도 한번 팔아 봤으면 ㅠㅠ)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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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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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찬찬 2010.10.14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치네요~
    작가 저변이 넓어져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죠?
    1만부 작가가 될 그날을 위하여~ㅎㅎ

  2. 뎅뎅뎅 2010.10.1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꽤 여러가지 루트가 있었군요. 그나저나 책들을 보니 부럽네요. 잇힝~

  3. artemix 2010.10.15 1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이제야 차분히 읽어봤습니당.
    추리문학도 경제력과 관련이 깊군요.

    우리 추리소설이 잘 되려면 어서 선진국이 되어야??
    어디 추리소설 뿐이겠어요~~ ^^

    아무튼 어서 1만부 작가가 되는 그날이 오시길 바라며!!!

  4. 카메라이언 2010.10.18 2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른 척 보고가려고 했는데 덧글 보고 뜨끔해서 -_ -; 포스트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럼요 많이많이 책 나와야죠. +-_-+

  5. 돌꽃 2010.10.22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설명 잘해놨네. 링크 좀 걸어놓겠음...^^

  6. 구즈마 2010.11.05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 추리물들 보면 저도 정말 부럽습니다. 영미권 작가들 작품세계도 끝이 없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한국 작가분 발굴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 추리닝4 2010.11.06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우리나라도 젊고, 재능있는 추리작가가 많이 나와야죠. 그래야 제가 슬쩍 묻어갈텐데요^^;; 꼭 좋은 작품 많이 발굴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당~~

  7. 붕붕 2010.11.05 1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만부'에 자꾸만 눈이 가는게 저뿐만은 아니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