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17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8> 다작(2) (8)
  2. 2010.11.03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6> 색깔 (6)

끊임없이 원고지를 채우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은 많이 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


한국은 초겨울에 접어들었지만 중국 광저우에서는 아시안 게임의 열기가 한창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고 추리소설은 추리소설… 아, 딴 길로 잠깐 들어서는 바람에 갑자기 주제가 헷갈렸습니다.

지난번에는 서양의 다작 작가들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일본의 다작 작가를 소개할 차례네요.

스포츠야 어쨌든 간에 추리소설에서만큼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이 일본이 아시아 최강국임에 틀림없습니다. 수백 명의 작가, 또 그들이 끊임없이 발표하는 수많은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들을 꾸준히 사서 읽는 독자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일본 추리소설 시장이 불황이라 문고판 추리소설 초판을 1만부만 찍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왕년에는 3만부 정도 찍었다는데 반토막보다 더 줄어들었으니 사실 불황 소리 들을 만도 합니다만).

그런데 일본의 강점 중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바로 ‘끊임없이’라는 것입니다.

자, 일단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추리작가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1999년 <비밀>이 번역된 이래 40여 편이 출간되었고, 미야베 미유키는 2000년 <화차> 이후 30여 편이 나왔습니다. 온다 리쿠 역시 2005년 <밤의 피크닉> 이후 30여 편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오사와 아리마사는 90년대 중반만 해도 여러 편이 나왔지만 요즘 '한국에서 인기 높은' 작가는 아니어서 현재 유통되는 작품은 <신주쿠 상어> 하나뿐이로군요. 어쨌든 당장 이 네 사람의 작품만 구한다고 해도 1백편이 넘으니 꽤 많은 양입니다.


다작 작가는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

 

그럼 일본에서의 출간 상황을 조금 살펴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방과후>로 등단한 이래 25년 동안 70편의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에세이 포함해서). 해마다 세 권 좀 못미치는 셈이네요. 1987년 데뷔해 1989년 <퍼펙트 블루>를 처음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는 21년간 47권의 단행본을 출간해 연간 2.2권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다 리쿠는 1992년 <여섯 번째 사요코>이래 18년간 45권을 냈습니다(연간 약 2.5권). 가장 연장자인 오사와 아리마사는 1978년 데뷔해 32년간 76권을 썼습니다(연간 약 2.3권). 우리나라 같았으면 꾸준히 많이 쓰는 작가로 인정할만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들을 다작 작가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써야 '좀 많이 쓴다'고 할까요?

진짜 다작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기 전에, 적게 쓰는 작가는 누가 있나 잠깐 살펴볼까요?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가 번역된 바 있는 노리츠키 린타로는 자신의 글 쓰는 페이스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는 22년동안 장․단편집 16권에 평론집 3권을 썼습니다.

신본격 추리작가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시마다 소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장편을 1년에 열 편씩은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시마다 소지는 열심히, 끊임없이 글을 쓰라는 의미에서 한 이야기였겠지만, 전업 작가로 나서려면 그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겁니다(시마다 소지 역시 80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럼 일본 추리작가 중에서 최고 다작 작가 넘버 원은 누구일까요?

올해 들어 여러 편의 작품이 한꺼번에 번역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입니다.
그는 1976년 등단한 이래 2008년에는 <드라큐라성의 무도회>를 출간하면서 오리지널 저작물이 500권에 도달했고(1년 평균 약 15권), 지금은 대략 530권쯤 되는군요. 누적발행부수는 3억 부를 넘어섰습니다.
<삼색 고양이> 시리즈는 장 단편집이 무려 40권을 넘겼으며 그 외에도 <세 자매 탐정단>, <하야카와 가족>, <4문자 숙어> 등 20여 가지나 되는 다양한 시리즈물을 쓰고 있습니다.

‘결말을 정하지 않고 글을 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마구 쓰는 것 같지만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수수께끼 풀이 형식의 추리소설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한창 때는 한꺼번에 여러 곳에 연재를 했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서재에 각 작품의 등장인물 일람표를 붙여놓았다고도 하는군요.


현역 최다 발표 작가, 아카가와 지로


아카가와 지로와 쌍벽을 이룰 만한 작가는 니시무라 교타로인데, 1963년 데뷔한 그의 저작물은 2010년 중반 현재 470권에 다다랐으며, 누적 발행부수는 2억 부 이상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도츠가와 경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열차나 관광지를 무대로 한 것이 많아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독특하게도 이들 두 사람과 오사와 아리마사는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원고지에 펜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기계보다는 ‘손으로 쓰는 것이 빠르다’는 것이 아카가와 지로의 주장입니다. 이분들이 손으로 쓴  것을 입력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겠군요.


원고를 '손으로 쓰는' 니시무라 교타로



엄청난 집필 능력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과거의 작가들도 있습니다.

르포라이터이자 사회파, 하드보일드, 포르노 작가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던 카지야마 도시유키(1930~1975)는 한창 전성기이던 1971년에는 주간지 연재 6개, 신문연재 2개, 월간지 연재 2개, 그리고 소설 전문지에 많은 작품을 기고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매달 원고지 1천-1천2백매를 썼으며, 이틀 사이에 252매를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원고지 규격이 일본에서는 4백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원고 분량을 한국 원고지 분량으로 계산하려면 두 배를 해야 됩니다). 

물론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 같은 기기가 없던,  손으로 쓰던 시절이지요. 그의 조수였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빨리 쓰면서도 글씨는 깨끗했으며 틀린 글자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가 구상하던 마지막 작품 <적란운(積亂雲)>은 8천매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예정하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사사자와 사호(1930~2002)는 야쿠자와의 싸움, 교통사고, 자살미수 등으로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만 그 와중에서도 매월 1천 2백에서 1천 5백매씩 원고를 쓰면서 평생 4백권 출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목표에는 못미쳤지만 380권(마지막 작품은 미완성이었는데 그와 친분이 있던 후배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완성했습니다)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입니다.
그가 첫 작품을 쓴 것은 보통 작가들보다 훨씬 늦은 40살이 되어서였습니다. 늦게 데뷔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할 일은 많다. 시간과의 경쟁이다’라고 하면서 한 달에 1천매씩 쓰는 한편 끊임없이 자료조사와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러기를 40년, 80세가 될 때까지도 정력적인 집필을 한 그는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고대사, 현대사까지 파헤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작품 수는 솔직히 세어 볼 엄두가 나질 않는데, 일본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보니 2,224건이 검색되는군요. 저서 목록만으로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것 같습니다.


기차 역에서 알리바이 트릭을 구상중인 마쓰모토 세이초

원고지 한 장 쉽사리 못 채우는 입장에서 위에 언급한 작가들은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질 않는군요. 마쓰모토 세이초가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대부분은 운이다’라는 언급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말이 평범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팔자에 맡기라는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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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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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0.11.18 0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럴 줄 알았어 ;;;;; 역시나 대망의 1위는 아카가와 지로 님이로군요. ㄱㅡ;;;;;;;;;;; 아우 정말, 일 년에 장편 열 편에서 시마다 소지님 미워지고 으흑흑... 이 시간에 혼자 막 울분을 토하다 갑니다. 아우 어서 읽고 써야겠어요.

  2. 이야기꾼 2010.11.18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훗...
    부러우면 지는 거다...

  3. 블레이드 2010.11.19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 저도 일년에 세권쯤은 쓸 수 있습니다. ㅡ.ㅜ;;; 문제는 5백권을 쓴다고 해도 3억권을 돌파할 자신과 능력이 없다는거죠. 저도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님과 같은 의견입닏. 능력과 여건이 되면 쓸 수 있을만큼 써야죠. 다..다만 팔리느냐가..ㅜ.ㅜ;;;

  4. 평시민 2010.11.19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소설 쓰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쓰면서 '적어도 1년에 한 권!'이라는 목표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들을 공모에 냈다가 모두 미역국 끓이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단편을 쓰면서 질을 높이는 훈련을 했고 이제 다시 장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양과 질 모두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범죄와 죽음의 빛깔

'백(白)’자에서 나는 고결(高潔) 내지 고상(高尙)을 연상하는 동시에, 아니 그보다 먼저 그 어떤 병적 환영을 뇌리에 그릴 수 있으며 그리고 거기에 한층 더 강렬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 수필 <백가성(白哥姓)>, 김내성           

 

우리나라에서 색깔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한국 축구팀이나 응원단에 ‘붉은 악마’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만, 최소한 7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유니폼은 대개 푸른 색 계통이었지 붉은 색은 잘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만 붉은 색은 빨갱이, 즉 공산당의 색깔이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색깔론’이라는 단어 자체는 미술 관련 주제를 벗어나게 되면 논쟁을 의미하게 되어버립니다. 이념 싸움이 되기도 하고, 자칫하면 ‘흑백논쟁’이 되어버려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회색분자’로 취급받는 일도 생깁니다.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는 이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런 사상이나 이념을 다룰 것이 아니라 추리소설의 색깔을 한번 살펴보려 하니까요.


고전적인 추리소설은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색의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뒤팽이나 홈즈, 뤼팽 등이 등장하는 고전 작품들은 낡은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일찌기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의 데뷔작 제목을 <주홍색 연구>라고 지었습니다만, 제게는 주홍색보다는 세피아색의 화면이 연상되곤 합니다.


셜록 홈즈는 흑백이 제격? (셜록 홈즈 역은 존 배리모어)


21세기에 들어와 우리나라에 다시 몰아친 홈즈와 뤼팽 붐은 새로운 독자들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읽은 적이 있었던 책을 다시 보려는 분들의 추억이 결합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절모를 쓰고 구겨진 트렌치코트 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 어둠 속에 서 있는 하드보일드 사립탐정 역시 단색이어야만 제격일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느껴진다면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작품의 색깔은 다채롭습니다.


최근 2007년부터 요즘까지 우리나라에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창작/번역 모두 포함) 색깔이 들어가 있는 작품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색이 선두를 차지했을까요?

1위는 단연 검정색입니다. ‘블랙’, ‘검정’, ‘암흑’ 등의 단어가 들어간 작품은 모두 18편이고, ‘어둠’, ‘다크(dark)'까지 포함하면 7편이 더 추가되어 모두 25편이나 됩니다.


패션업계에서는 매우 세련된 색깔로 여겨지는 검정색이지만, 범죄와 관련이 된다면 그다지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흑백이 가려졌다’, ‘흑막(黑幕)이 걷혔다’, ‘검은 세력’ 등 흔히 쓰는 말에서 볼 수 있듯 흰색이 결백함을 의미하는 반면 검정색은 뭔가 음흉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곤 하지요. 이런 검정색의 느낌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작가는 미국의 코넬 울리치(필명 윌리엄 아이리쉬)와 일본의 마쓰모토 세이초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코넬 울리치 원작의 영화 [검은 옷의 신부](1968)


울리치는 그의 문체, 그리고 작품 분위기에서 어두움이 느껴집니다. <검은 옷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1940)을 시작으로 <검은 커튼(The Black Curtain)>(1941), <검은 알리바이(Black Alibi)>(1942), <검은 천사(The Black Angel)>(1943), <공포의 검은 길(The Black Path of Fear)>(1944), <상복의 랑데뷰(The Black Rendezvous)>(1948)등의 작품은 블랙 시리즈로 일컬어지면서 ‘블랙 울리치(Black Woolich)’라는 별명을 그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한편 마쓰모토 세이초의 검정색은 어떤 분위기라기보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어두운 세력’처럼 느껴집니다. <검은 땅의 그림(黑地の繪)>(1958), <검은 화집(黑い畵集)>(1959), <검은 나무숲(黑い樹海)>(1960), <일본의 검은 안개(日本の黑い霧)>(1960), <검은 복음(黑い福音)>(1961), <검은 수첩(黑い手帖)>(1961), <검은 양식(黑の樣式)>(1967), <검은 회랑(黑の回廊)>(1976) , <검은 하늘(黑い空)>(1988) 등 ‘흑(黑)’이라는 한자를 집어넣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은 한자 생활권인 만큼 색깔이 들어가는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흑백’이라는 대조적인 느낌을 살린 작품들이 제법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카키 아키미츠(高木彬光)의 <검은 무지개(黑い虹)>, 아유카와 데츠야(鮎川哲也)의 <검은 백조(黑い白鳥)>, 요코미조 세이시(橫構正史)의 <백과 흑(白と黑)>, 유라 사부로(由良三郞)의 <흑백의 환영(黑白の幻影)>등을 들 수 있지요. 참고로 일본에서 ‘흑이냐 백이냐’는 ‘죄가 있냐 결백하냐’를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검정색 때문에 곤욕을 치른 작가도 있습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작가 아토다 타카시는 언젠가 독자에게 항의를 받은 일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왜 등장인물 중 ‘흑(黑)’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악당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흑’씨 성도 없고 ‘흑’자가 들어가는 이름도 별로 없으니, 추리소설 속에서 마음 놓고 써도 될 듯 싶습니다(그런데 '흑'씨 성의 인물이 나오면 비현실적이니 쓸 수도 없겠군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점점 팬이 늘어나고 있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는 첫 두 작품에 '블랙'이 붙어 있습니다.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 혹시 모조리 '블랙'이 붙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이 두 작품으로 색깔은 끝이 났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색은  붉은 색입니다(모두 13편으로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검정색과는 꽤 큰 차이가...). 신호등에서 멈춤을 의미하는 색이며 또한 사람 피의 색깔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눈에 많이 띄고, 약간 경계심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과 지난 여름 출간된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파란 색이 9편, 흰 색이 7편 등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더보기


흰 색은 한국 추리소설의 선구자 김내성 선생이 끊임없이 추구하던 색깔입니다. 수필 <창백한 뇌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지요.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구작(舊作)을 더듬어서 거의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작중인물(作中人物)의 이름들을 추려 보았다. 그러한 결과 그들이 태반(殆半)은 ‘백(白)’가성을 가지고 있다는 기이한 사실을 나는 발견하였다. [백가면(白假面)]을 위시하여 [황금굴(黃金窟)]의 백희(白姬), [연문기담(戀文綺譚)]의 백장주(白章珠), [무마(霧魔)]의 백웅(白雄), [시유리(屍琉璃)]의 백추(白秋), [살인예술가(殺人藝術家)]의 백상몽(白想夢), [백사도(白蛇圖)]의 백화(白華), [심야(深夜)의 공포(恐怖)]의 백린(白麟), [마인(魔人)]의 백영호(白英豪)씨 일가, 검열관계로 중단된 [백(白)과 홍(紅)]의 백룡(白龍), 그리고 아직 미발표의 장편 [혈석류(血石榴)]의 주인공은 백수(白秀)로 되어 있다."

 

약간의 강박적인 모습도 보입니다만, 그 순수함이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을 개척한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울리치나 세이초, 그리고 김내성은 한 가지 색에 집착했습니다만, 미국의 작가 존 D.맥도널드나 월터 모즐리는 다양한 색깔의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맥도널드의 대표적 주인공인 배를 탄 사립탐정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는 모두 21편이 있는데, 첫 작품인 <The Deep Blue Good-by> (1964)에서부터 마지막인 <The Lonely Silver Rain>(1984)까지 모두 제목에 색깔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스물 한 개의 색깔 중에 검정색은 빠져 있군요.

이 아름다운 여인이 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 영화[블루 데빌]에서


90년대 등장해 클린턴 전 대통령도 애독자라고 밝힌 바 있는 월터 모즐리의 흑인 사립탐정 이지 롤린스 시리즈도 역시 단 한 편을 제외하고는 제목에 색깔이 들어갑니다(단편집 제외). 번역된 작품이 하나도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Devil in a Blue Dress>(1990)는 다행히도 <블루 데빌>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비디오나 DVD 등으로 나와 있습니다(덴젤 워싱턴이 주인공 롤린스 역을 맡았습니다).



그나저나 추리소설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과연 무슨 색깔이 떠오르십니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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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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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0.11.05 0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이 너무 어려워서 덧글이 안 달렸나 봅니다. ㅋㅋㅋ 퇴근하고 다시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추리소설하면 생각나는 색...은 역시 검은 색인 듯합니다. 책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미리 하셨듯이 그러하고, 그보다는 정말 말이에요, 책장이요, 온통 까아아아아매애애애애애요오오오오오오 -,.-;;; 표지들에 검은 색이 많다는 이야기. 흐흐흐흐 하지만 김내성작가님의 책은 마인이 흰 색이라, 아아 혹시 '백'이 많이 들어가서 그럴까나 하고 문득 생각했답니다.

    • 추리닝4 2010.11.05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책장 이야기를 하자면 전 밀리언셀러클럽 책이 많다 보니 하얀 느낌. 예전 노블하우스란 출판사에서 나온 제프리 디버와 퍼트리샤 콘웰 시리즈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책들도 옆면은 다 하~얗다는..

    • 카메라이언 2010.11.05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맞다. 밀리언셀러는 그러고보니 하얗네요! 저어기 위에 꽂힌 것을 보다 목이 뒤로 삐끗할 뻔 (;;;)

  2. 얼룩끈 2010.11.11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깔과 추리를 연결시키다니...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 추리소설의 성격에 따라 색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정통 추리물이라면 붉은색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붉은색은 피의 색이기 때문이지요.

  3. 얼룩끈 2010.11.19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감사합니다. 새 작품에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