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2.16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1> 감방 속의 작가 (4)
  2. 2010.10.07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 변장 (3)

그들은 창살 뒤에서 무엇을 했을까

자본가들은 돈을 모으고 교도소로 가지요.
작가들은 교도소로 간 다음 돈을 법니다.
-고든 크로스
     - <화형법정> (1937) 존 딕슨 카
 

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사설 보안경비업체가 사원을 모집하면서 박사급의 고급인력뿐만 아니라 강절도범 등 전과자를 모집한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첨단 컴퓨터 범죄를 막기 위해 해커(hacker)를 키우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하죠. 이건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이론에 따른다는 것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흥미로운 일이긴 합니다.

소설가 사이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써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를 다루는 추리소설의 경우 범죄자가 훨씬 실감나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아니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에 등장한 추리소설가 중 교도소 신세를 겪은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겠고 또한 그들이 모두 성공한 작가가 되었을 리는 없겠지만, 사실 근대 추리소설의 뿌리는 어느 탈옥수의 회고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범죄자였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수사국의 책임자가 되는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François Eugène Vidocq)는 웬만한 소설의 주인공보다 훨씬 극적인 인생을 살아간 인물이었습니다. 빵집 아들로 태어난 비도크는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입대, 5년 동안 군인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정식 제대특명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망병이 되어 체포당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감방에 있던 위조지폐범 두 명이 그들의 죄를 비도크에게 뒤집어 씌우기까지 했지요.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은 비도크는 그로부터 10년 동안 옥살이와 탈옥을 거듭하며 반평생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도크의 '회고록'

그는 이 기간 동안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했고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생리와 수법을 파악하게 되었으며 또한 변장의 명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평생을 숨어서 사느니 차라리 경찰의 정보원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1년 9개월의 옥살이를 자청해 교도소 안에서 스파이 노릇을 했으며, 형기를 마친 다음에는 정식으로 경찰 전속 탐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의 범죄가 극심하게 증가하자 비도크는 개심한 전과자들을 모아 특별 팀인 범죄수사국을 창설하는데, 이들은 대단한 활약을 벌여 창설 8년 만에 파리의 범죄율을 40%나 떨어뜨렸습니다. 이러한 눈부신 공적으로 비도크는 루이 18세에 의해 위조지폐 사범이라는 무고한 죄에 대해 완전한 사면을 받았습니다.

비도크는 50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책의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4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서 <회고록>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썼다고는 해도 과장된 부분이 많아 허풍이라고 혹평받기도 하며 심지어는 창작물이라는 말까지 듣지만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우, 영국의 윌키 콜린즈, 프랑스의 에밀 가보리오 등 근대 추리소설의 기초를 세운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대 추리소설의 시조로 인정받는 포우는 공교롭게도 음주 난동으로 필라델피아의 교도소에 잠시 구금되어 있을 때 이 책을 읽었다고 그의 편지에서 밝히고 있네요.

1896년 2월 미국에서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idney Porter)라는 은행 출납계원이 854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체포당합니다. 그는 병든 아내를 이유로 보석절차를 받아 잠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재판이 있기 전 온두라스로 도망쳤다가 아내가 위독해지자 돌아와서 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은행원이 되기 전 잠깐 기자 생활도 했던 그는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때가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899년 아직 복역 중이던 포터는 오 헨리(O. Henry)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단편을 발표했으며, 모범수가 되어 3년 만에 형기를 마친 그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등 수많은 주옥같은 단편을 남겼습니다.

단편소설의 거장 O.헨리

오 헨리를 추리소설가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셜록 홈즈의 패러디인 ‘샘록 존스’ 시리즈를 쓰는가 하면 꽤 많은 수의 작품이 범죄와 연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되살아난 개심(改心)>(1909)에 등장하는 금고털이 지미 밸런타인은 교도소에서 만난 인물이 모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오 헨리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은행 감사 때 장부의 숫자가 맞지 않자 말단 출납계 직원이었던 오 헨리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다는 설도 있으며, 그가 경영하고 있던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횡령한 것이 사실이라는 설도 있는데 정작 본인은 죽을 때까지 그 일에 대해서 함구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미국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기반을 확립한 대쉴 해미트는 1950년대 좌익 소탕 열풍에 휘말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했던 그는 반(反) 파시스트가 되어 1930년대에 미국 공산당에 입당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냉전시대에 접어들어 매카시 의원의 반미(反美) 조사위원회에서 자신의 활동이나 동료를 밝히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법정 모독죄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몰타의 매>(1929)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좌익이라는 낙인이 찍혀 도서관에서 금서로 규정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빨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심지 굳은 인물, 대쉴 해미트


한편 해미트의 작품은 한 전과자가 추리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8년 열아홉 살의 흑인 청년 체스터 하임즈는 무장 강도 혐의로 7년형을 언도받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29년 펄프 잡지 <블랙 마스크>에 연재된 해미트의 <붉은 수확>을 읽은 후 영감을 얻어 교도소에서 소설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1945년 첫 장편 <If He Hollers Let Him Go>를 발표한 그는 1953년 절친한 흑인작가인 제임스 볼드윈, 리처드 라이트 등이 살고 있던 프랑스로 떠나 84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유럽에 머무르면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체스터 하임즈

그가 창조해 낸 할렘의 형사 ‘코핀(Coffin: 관) 에드 존슨’과 ‘그레이브 디거(Gravedigger) 존스’ 콤비 - 어렸을 때 어느 책에서 '관 짜는 에드와 무덤 파는 존스'라고 소개한 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는 강렬한 이미지로 미국보다 유럽의 추리소설 애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는데, 그들의 인물 묘사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 덕분이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블랙 달리아>와 <L.A.컨피덴셜>이 소개된 제임스 엘로이 역시 젊은 시절의 일부를 교도소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열 살 때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그는 청소년기에 사유지 침입, 알코올 중독, 폭행 등으로 전과자가 되고 말았지요. 20대 후반에 문학에 눈을 뜬 그는 술을 끊고 골프 캐디 일자리를 얻은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해 <Brown's Requiem>(1981)으로 데뷔합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미국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소설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엘로이


이렇게 한때의 어려움을 겪고 입신한 이들과는 반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다가 철창신세를 진 작가도 없지 않습니다. 영국 보수당 부의장․런던시장 후보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프리 아처 경(卿)의 사례는 가장 유명합니다. 단거리 육상선수로 올림픽에도 출전한 바 있으며 1969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화려한 경력의 아처는 그로부터 5년 후 투자에 실패,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의원직을 사퇴했으나 당시의 경험을 살린 소설 <한 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고, 제3작 <케인과 아벨>은 미국에서 TV 미니시리즈로 제작, 방영되면서 거물급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한편 정치활동을 재개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때 보수당 당수 물망에까지 올랐습니다.

파란만장한 경력의 제프리 아처. 롤러코스터 인생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1987년 그가 매춘부와 같이 잤다는 기사가 타블로이드 일간지에 실리면서 정치적인 몰락의 구멍에 빠지게 되지요. 그는 이 기사를 보도한 데일리 스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 친구 테드 프란시스의 알리바이 입증에 힘입어 승소해 배상금 50만 파운드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2년 후 친구인 프란시스가 아처의 부탁으로 거짓증언을 했다고 폭로, 결국 99년 11월 런던 시장 선거전에서 중도 하차하고 출당 처분을 받는 한편 위증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적용된 5건의 기소내용 가운데 위증 등 4건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최장 4년의 징역형과 함께 소송비용 17만5천 파운드를 12개월 내에 납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특히 형기 가운데 2년 이상은 반드시 실형을 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역 중에도<교도소 일기(A Prison Diary)>를 출간했으며 2003년 7월 영국 남부 교도소에서 2년 만에 가석방되어 런던의 자택으로 귀가, 불사조 같다는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려는 듯 계속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석방 이후의 작품으로 <배반의 자화상>(2005)이 번역되어 있군요.

옥살이를 한 작가들 중 성공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교도소 생활이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작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지난해 교도소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지간하면 신세지고 싶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성공한 추리작가가 되는 길은 직접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남의 책을 많이 읽고 머릿속에서만 구상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겠지요. 세상에는 하도 별난 범죄가 많고 또 추리소설도 엄청나게 많으니 활자를 통한 간접경험만 해도 모자랄 게 없을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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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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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2.18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추리소설가 중에도 교도소에 다녀 온 양반이 있지요. 황세연 작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 명의 도용, 좌중을 썰렁하게 하는 농담 남발 혐의로....는 아니고요,
    군복무를 교도소에서 했다고 합니다. ㅎㅎ

  2. 카메라이언 2011.02.19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야야... 엄청나네요. 어렸을 때엔 여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교도소(수녀원, 절)는 밥도 주고 하니까 어쩌면 글 쓰기에 이상적인 곳일지도 몰라.'라는 로망(?)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떻게 저딴 생각을 했었는지. (;;;) 왠지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면서, 대작가님들의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입을 쩌억 벌리고 갑니다. 그리고, 오 헨리 님의 샘록 존스 시리즈 너무 궁금한데요. <--설록수 준비하고 있다 보니 호기심이 마구마구!

    • 평시민 2011.02.19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찾아보기는 힘들어졌지만 도서관에서라도 <꼭두각시 인형>을 검색해 보십시오, 오 헨리의 추리소설 단편집이고 샘록 존스 시리즈도 세 편 실려 있습니다. 패러디물이라 그런지 억지 개그물이긴 하지만요.

    • 카메라이언 2011.02.21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혹시나 아는 덕후가 갖고 있을까 싶어 물었더니, 이 덕후도 없더군요. (;;;) 도서관에 가야겠어요. 국립도서관인가, 어디에 한 권 있다는데... 과연 볼 수 있으려나. ㄱㅡ;;;;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숨기는 방법

                                  

"당신이 어떤 인물로  변장했을 때 당신 자신이 완전하게 그 인물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들통 날 걸세.” 

                                                                  
-<39계단>(1915), 존 버캔
   

                                                                      
어린 시절 뭔가 잘못했을 때, 아니면 누구를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을 때 손오공처럼 둔갑술을 가졌으면 했던 기억이 있는 분은 많을 것입니다. 추리소설 속의 탐정이나 악당들이 주문만 외워서 순식간에 변신할 수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현실성을 중시하는 추리소설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보통 사람에게는 초능력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변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쫓아가거나 쫓기는 경우,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싶은 경우 등 이유야 어쨌든 간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 변장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변장 장면은 비현실적입니다. TV 시리즈나 영화로 제작되었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서는 등장인물이 인조 피부를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만, 영화와 현실이 똑같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다양한 인물은 물론 심지어는 무생물로까지 둔갑하는 코미디 영화 <마스터 오브 디스가이즈(Master of Disguise)>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말 그대로 코미디니까 그냥 봐 줄 수 있는 것이었지요. 

이것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페이스오프'에서


변장은 크게 영구적인 변장과 일시적인 변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변장은 바뀐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일시적인 변장은 필요할 때만 자신의 모습을 감출 뿐 평상시에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영구적인 변장 중 대표적인 것은 물리적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에서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거의 완전할 정도로 다른 얼굴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수배중인 악당이 주로 이용하며, 증인이나 정치적 망명자 등도 신변보호를 위해 이용하곤 하지요. 가끔 성형수술로 특정한 사람과 똑같은 얼굴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렇게 되려면 원래부터 체격이나 용모가 가까운 편이어야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 있었던 카게무샤(影武者)라던가, 이라크의 전 대통령 후세인은 집권 당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여럿 ‘만들어’ 암살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지요.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의 얼굴 피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상대방 행세를 하는 <페이스 오프(Face Off)>(1997)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사람의 외모는 피부보다 골격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처럼 다른 사람 얼굴의 피부를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얼굴과 절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신분을 위장하는 것만으로도 영구적 변장이 가능합니다. 땅이 넓고 신분등록제도가 약간 느슨한 편인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주민등록 제도가 철저한 편인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사회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이, 신용불량 때문에 재기불능이 되어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인생을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火車)>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 변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변장술로, 전쟁 때는 적군의 옷을 입고 기습공격을 하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전술적 위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등장하는 뒤팽은 편지를 훔친 장관을 찾아갔을 때 본명 대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름을 사칭하고 남의 집을 뒤지는 뒤팽 -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은 이런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요. 프랑스의 실존인물 비도크는 다양한 사람으로 변장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면서 수사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으며, 그의 후배뻘인 명탐정 홈즈와 괴도 뤼팽 역시 놀라운 변장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홈즈는 노인에서부터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로 변장했고, 뤼팽은 귀족이나 건달은 물론 한술 더 떠 경찰 간부로 변장해 형사들을 지휘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 등장했던 일본의 전설적 범죄자 ‘괴인 20면상(怪人 20面相)’은 얼굴이 스무 개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뒤흔들어놓곤 했습니다.


실제 변장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작품이 있습니다.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재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에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암살을 의뢰받은 암살전문가 ‘재칼’은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체격을 가진 덴마크 목사, 미국 대학생의 여권을 훔치고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또 다른 여권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임무 수행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재칼은 대단히 세심하게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합니다. 암살용 무기와 가짜 신분증을 마련한 그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이탈리아의 밀라노, 제노바 등을 거쳐 프랑스로 침투해 들어가는데, 프랑스 경찰은 암살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정작 암살자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난감한 처지에서 대책을 세워야만 합니다.

제이슨 본은 그의 본명이 아닙니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변장은 공권력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경찰을 비롯한 정부 조직은 범죄나 테러조직 침투나 함정 수사를 위해 위장을 하는데, 때로는 신분을 아예 바꿔버리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1980)에서는 거물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월남전 특수부대 출신 - 한때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뛰어난 변장술을 갖춘 - 요원을 제이슨 본(Jason Bourne)이라는 인물로 변신시킵니다. 그런데 그가 임무수행 와중에 사고로 기억을 상실하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지요(이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배경과 내용이 많이 바뀌긴 합니다).

엘러리 퀸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 표지

피해자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네요. 자신의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서 변장이라는 말이 어색합니다만, 살인자가 피해자의 신분을 숨겨 자신의 범행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어떤 작품인지 밝히는 순간 작품의 맛이 달아나 버리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엘러리 퀸의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에서는 뉴욕 중심가의 한 호텔 대기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기묘하게도 피살자의 복장이 모두 뒤집혀 있습니다. 즉 상의는 등 쪽에서 단추가 채워져 있고 구두를 제외한 셔츠, 바지, 조끼, 그리고 속옷까지 그런 식으로 입혀져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가구나 시계, 카펫 등 방안의 가구라는 가구도 마찬가지로 반대편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이며 왜 모든 것이 뒤집혀 있는 것일까요.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도입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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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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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gnon 2010.10.07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엘러리 퀸의 소설, 제목부터 확 끄는데요?? 찾아봐야겠어요!!

    이 시리즈, 정말 재밌어요! ^^

  2. 2010.10.11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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