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金榮注. 1919- 1998)는 앞에 언급했던 두 화가들과는 약간 다른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김내성이 추리소설을 떠나 순문학을 추구하던 시절 작품의 삽화를 맡은 것이죠. 그래서인지 삽화의 분위기도 사뭇 다릅니다.

예를 들면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애인(愛人)」입니다.

 

「애인」1회(경향신문 1954년 10월 1일)

 

 

또 사실상의 유작이었던 「실락원의 별」(역시 경향신문 연재)도 삽화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추리소설이었던 「사상의 장미」에서도 함께 했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잡지 '신시대' 창간호인 1953년 5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잡지의 폐간으로 인하여 3회만에 중단되었다가 약 1년 후인 1954년 8월부터 잡지 '신태양'을 통해 다시 시작하여 1956년 9월 완성됩니다.

 

 

김영주는 처음 연재할 때 삽화를 맡았으며 다시 연재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다만 연재 몇 회를 남기고는 다른 삽화가 - 이름이 나오지 않아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림의 서명이나 화풍으로 보아 김관현(金寬鉉)으로 보입니다- 로 바뀌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맡은 세 삽화가의 화풍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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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사의 장미 2017.01.29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상의 장미'가 전자책으로 나왔네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oquery=%EC%9C%A4%EB%B0%B1%EB%82%A8+%EC%95%BC%EB%8B%B4&ie=utf8&query=%EC%82%AC%EC%83%81%EC%9D%98+%EC%9E%A5%EB%AF%B8


김용환(金龍煥, 1912~1998)이란 이름은 삽화가보다 만화가로 훨씬 유명합니다. 한국 만화의 선구자로서 만화가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체육부 주관 한국만화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코주부'라는 만화로 잘 알려져 있지요. 해방 전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하다가 20대의 나이에 삽화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해방 후에는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리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약했습니다.

 

김내성과의 첫 인연이 정확히 어떤 작품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실제로는 모험소설이지만 '본격 탐정소설'이라고 소개된 김내성의 번안작품이 있습니다. '아리랑' 창간호부터 연재한「붉은 나비」라는 작품인데, 오르치의 「빨강 별꽃」을 번안한 것이죠.

 

'탐정왕 김내성'이라는 문구가 이채롭습니다('아리랑' 1955년 창간호 광고)

 

이 작품의 삽화를 김용환이 맡았고, 이후 '아리랑'에 실린 김내성의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닌 번안작이었습니다. 「붉은 나비」에 이어 「삼총사」를 연재했는데, 역시 김용환의 삽화를 볼 수 있습니다. '검호(劍豪)소설'이라는 표제가 눈에 띄는군요.

 

 

 

김내성은「삼총사」의 뒤를 이어 속편 격인「무적 달따냥」을 '아리랑'에 연재했습니다. 요즘 보는 그래픽 노블에 맞먹을 만큼의 세심한 필치가 돋보이는 삽화입니다.

 

(자료 복사 과정에서 좀 비틀렸습니다 ㅠㅠ)

그러나 1957년, 김내성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아리랑'은 추모작으로 그의 작품 몇 편을 더 실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일석이조」(원제는 「악마파」)의 삽화입니다.

 

('木丁'은 김용환의 호입니다)

 

 

역시 '아리랑'에 추모작으로 실린 「창공의 곡예사」의 삽화입니다.

 

 

김내성 작고 이듬해인 1958년 잡지에 다시 연재되었던 「태풍」의 삽화입니다. 턱을 괴고 앉아있는 사람은 명탐정 유불란입니다.

 

 

김용환의 화풍은 대단히 서구적이어서 - 마치 미국 만화를 보는 듯하다고 할까요 - 탐정소설에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지만 김용환은 꽤 많은 국내 단편추리소설의 삽화를 맡아 훌륭한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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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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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추리소설에서 삽화를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대개 삽화는 단행본보다는 잡지나 신문 등에 연재할 때 실리는데, 그런 연재 지면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겠고, 두 번째로는 아마도 비용 절감 측면, 즉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작가의 원고료 이외에 화가의 삽화 비용까지 들이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삽화는 비용이 많이 들겠고, 반대로 그저 그런 삽화는 작품 분위기까지 깎아먹을 수 있으니 양날의 칼 같은 존재이긴 합니다.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를 조사하다 보니 신문과 잡지 등을 많이 찾게 되는데, 추리소설이 잡지에 실리던 식민지 시기부터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던 1990년대까지 반세기 넘는 동안의 자료에서 꽤 많은 삽화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삽화들은 단행본이 아닌 정기간행물에 실린 탓에 기억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재소설이야 인기를 끌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단행본으로 출간되지만, 거기에 삽화가 함께 실리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었으니까요.
많지는 않지만, 그 동안 잊혀져 왔던 추리소설의 삽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순서도 제각각이 될 것 같고, 일단은 작품 설명보다 그림만 올리게 되겠습니다. 삽화를 그린 분들에 대한 조사는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해서, 수박 겉핥기가 될까 걱정스럽긴 합니다만…

먼저 김내성의 작품 속 삽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전속계약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특정 작가에 특정 화가가 꼭 붙어 다닐 리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여러 작품을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습니다. 김내성의 경우 정현웅(鄭玄雄, 1911-1976), 김용환(金龍煥, 1912~1998), 김영주(金榮注. 1919- 1998) 등 세 분이 눈에 띄는군요.

우선 정현웅의 작품부터 시작할까요.

김내성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인 1937년  조선일보에 「가상 범인」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의 한국 문단 첫 번째 추리소설이지요. 이 작품에 삽화를 맡은 사람이 정현웅입니다.

 

 

김내성의 첫 성공작이라고 할 만한 「백가면」('소년'에 연재)에서도 훌륭한 솜씨를 볼 수 있습니다(삽화가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듬해인 1938년 잡지 조광에 발표한「살인예술가」의 삽화 역시 정현웅이 맡았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맡았지요. 아래 작품은 단편입니다.

 

정현웅은 한국 전쟁 발발 후 월북하면서 김내성과의 인연이 끊어집니다(물론 본인도 삽화를 그리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만). 정현웅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정현웅 전집」(청년사, 2011),「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돌베개, 2012) 등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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