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책 소개하기가 좀 민망합니다만...

추리소설을 쓰는 친한 후배와 함께 작업한 <조선의 명탐정들>이 나왔습니다.

작년 가을, 술 마시다 떠오른 가벼운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던 작업이 막상 출간까지 이어지니 기분이 묘하네요.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역사 미스터리라고 생각하시면 될듯요. 신문 스타일의 표지와 먹선을 이용한 일러스트가 참신한 느낌을 줘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서지 정보는 알라딘에서 퍼왔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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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군이 명탐정이었다? 조선에 투캅스가 있었다?
세종대왕에서부터 정약용까지
조선시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살펴보는 조선의 명탐정들.

실록과 역사서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강력 사건을 해결한 실존인물들을 재조명한 『조선의 명탐정들』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사건의 정황을 보고로만 듣고도 진실을 파헤친 세종대왕, 절대 권력자의 보호 아래 탈법적 존재로서 지위를 남용하며 살인을 저지른 이를 끝까지 추적한 이휘와 박처륜, 희대의 폭군이었으나 천재적인 두뇌로 사건을 꿰뚫어본 연산군, 정조의 명에 따라 미해결 사건 91건을 조사했던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에 실제 벌어졌던 사건과 이를 끝까지 추리해냈던 16인의 명탐정들을 소개한다. 책은 각 13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소설로 재구성한 사건의 도입부, 당시 시대상과 역사적 전후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한 본문, 그리고 가장 비슷한 외국 명탐정들을 비교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적 재미와 역사서를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저자는 『암살로 읽는 한국사』, 『조선전쟁생중계』 등 역사 논픽션을 비롯하여 역사소설을 집필한 경험을 살려, 『신주무원록』, 『흠흠신서』 등 꼼꼼한 참고문헌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건 정황, 추리의 방식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조선 시대에는 백성들이 억울함을 느끼면 하늘이 노한다고 생각했다. 억울함에도 종류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거나 가족이나 친구가 죽었는데 범인을 잡지 못해서 비통해하는 경우도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살인사건을 비롯한 범죄의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와중에 남들이 풀지 못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맹활약한 명탐정들이 존재했다. 연산군이나 정조처럼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의문점을 푸는 경우도 있었고, 이휘나 박처륜처럼 직접 발로 뛰면서 현장과 시신을 조사하고 범인을 지목한 관리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부족하나마 그런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노력했다." -저자 서문 중

 

정약용과 셜록 홈즈

 

 

 

                                                                         정조와 피터 윔지 경


CSI를 방불케하는 조선 시대의 사건 추리 방법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조선의 명탐정들』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슬람권에서 명예를 위해 자신의 친족 여성을 살해하는 등의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빈번했다. 본문 11장에서는 소박맞고 돌아온 여동생을 물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를 받은 남자의 사건을 추리하는 정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첩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된 친딸이 첩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첩의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딸의 살인자를 두둔했던 양반의 이야기도 5장 연산군편에 나온다. 고리사채업자의 악랄한 수법도 소개된다. 빚을 제때 갚지 않으면, 죽기 직전의 노인을 문 앞에 버려두어 사망에 이르면 그 죄를 채무자에게 덮어씌운 후, 빚을 갚으면 풀어주는 방식이다. 또한 조선시대 최대 섹스 스캔들 당사자인 어우동의 가족에 얽힌 불운한 사건과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이를 살해하고 오히려 의녀 소리를 듣는 사건 등 진귀한 사건이 소개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어떻게 그 실체를 파헤칠까? 그간 조선시대에는 그저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용의자를 붙잡아 장을 때리는 등 문초하여 죄를 자백받는다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CSI를 방불케 할 만큼 상당히 과학적인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우선 타살로 추측되는 시신은 기본적으로 세 차례 검시를 하였고, 타살일 경우 법의학서인 『신주무원록』을 토대로 꼼꼼하게 사건 정황을 추리했다. 이 방법으로 살해 도구나 사망 시간 등을 찾아내는가 하면, 심지어 익사자가 익사 전에 살해당한 후 물에 빠뜨렸는지, 목매 자살한 이가 죽임당한 후 위장되었는지 등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때로는 용의자의 심리를 간파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범죄자를 잡기도 했으며, 마치 현대의 강력계 형사들처럼 다른 사건의 범죄자를 탐문하여 진범들을 잡아내기도 했다. 『조선의 명탐정들』에서는 이렇듯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기막힌 사건들과 이를 해결하는 놀라운 수사 기법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연산군과 아르센 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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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onosk 2013.12.04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학생인 조카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는데 적당한지요.

    • 추리닝4 2013.12.04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에 역사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괜찮을 것 같긴한데...멋진 일러스트가 들어있어 보기에도 지겹지 않고요. 다만,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 같은 반전, 트릭 위주의 결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듯해요. 걍 역사 속 사건 이야기라 좀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2. 필론 2013.12.18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출간을 축하합니다.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2017.06.10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큰 키, 매부리코 '미로의 해결사'

 

셜록 홈즈

 

작품 속의 어떤 인물이 너무나 유명해지면 마치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여겨지거나 어떤 분야의 대명사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를테면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는 ‘돈키호테’,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에 비유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주류 소설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탐정들이 등장했던 미스터리 작품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다. 마른 체격에 큰 키, 날카로운 눈빛과 매부리코, 그리고 예리한 추리력으로 상징되는 셜록 홈즈가 바로 그 주인공. 미스터리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그의 이름은 탐정의 대명사로서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주홍색의 연구’에서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홈즈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의사인 친구 왓슨과 함께 런던 베이커 거리 221b의 하숙집에 살면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그의 머리 속에는 범죄와 관련된 모든 필요한 지식이 들어 있는 반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다. 취미는 바이올린 연주와 화학 실험. 정부의 모처에서 일하는 일곱 살 위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유일한 그의 혈육이다. 격투기나 봉술 등에 능할 뿐만 아니라 변장술에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왓슨을 자주 놀라게 한다.

 

 

 

 

56개의 단편,4개의 장편에 등장하는 홈즈는 개개의 작품으로 물론 유명하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에피소드는 자주 화제에 오른다.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는 그가 상대한 최강의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스위스의 라이헨바흐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잠시 알려졌다. 그러나 홈즈의 팬들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항의한 덕택에 결국 ‘빈 집의 모험’에서 부활해 늘그막까지 범죄자 혹은 독일 스파이들까지 상대하게 된다.


 

원작자인 도일은 홈즈의 사생활이나 가족 관계에 대해 별달리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지만,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불리는 홈즈의 극성스러운 팬들은 가공 인물인 홈즈를 실존인물처럼 여기면서 전기(傳記)를 만들 만큼 치밀한 연구를 했다. 윌리엄 베어링 굴드의 ‘셜록 홈즈 전기’가 그 대표적인 저작이다. 여기에는 홈즈가 실종된 기간 동안의 행적을 비롯, ‘보헤미아의 추문’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여가수 아이린 애들러와의 관계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한편 미스터리 연구가인 펠릭스 몰리는 모리어티 교수가 폭포에서 죽지 않고 '히틀러'라는 가명으로 독일에 숨어들었다는 설을 제시했으며, 미스터리 작가 렉스 스타우트는 왓슨이 여자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그가 창조한 탐정 네로 울프가 홈즈의 아들이라는 설을 은근히 흘리기도 했다.

 

 

홈즈의 모델은 도일이 다니던 대학의 스승 조셉 벨 박사였다. 벨 박사는 환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병명은 물론 생활 습관까지 알아맞힐 정도의 관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편 홈즈의 이름은 도일의 친구인 올리버 웬델 홈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셉 벨 박사

 

 

도일은 자신의 주인공인 홈즈에 특별한 저작권을 설정하지 않아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또는 조연으로 등장시키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의 주인공 뤼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단으로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켰으며, SF작가 폴 앤더슨은 ‘타임 패트롤’의 한 에피소드에 홈즈를 등장시킨다. 홈즈가 너무 유능한 까닭에 머나먼 미래에서 온 인물들조차 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어쨌든 홈즈의 팬들이 좋아해야 할지 기분 나빠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9세기의 신화적인 명탐정은 세기를 훌쩍 건너 뛴 21세기에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계속 작품에 등장할 추세다.

 

 

홈즈의 출현은 탐정물들에 대한 자극이 되었으며, 한동안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중요성을 두게 하는 역할을 했다. 홈즈가 영감을 준 모든 작품들을 열거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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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면서도 격렬한 선율

"내 취향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악보다는 독일 음악이 더 맞아.
독일 음악은 내면 성찰의 느낌이 강하지."
- 셜록 홈즈
<붉은 머리 연맹>(1891) - 코난 도일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거리를 두고 있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들으면 좋긴 하지만 흔히 듣는 가요나 팝송보다 어쩐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지루하기도 하고이런 저런 이유로 이른바 대중음악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긴 하지요.


그럼 클래식 음악추리소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역시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연관성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추리소설의 등장 초기부터 배경이나 소품으로서 만만찮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의 대중화를 성공시킨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음악과 미스터리를 연결시킨 시조(始祖)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를 보면 홈즈가 장차 하숙집 룸메이트가 될 왓슨에게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고, 단편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붉은 머리 클럽>에서는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사라사테(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의 연주회에 찾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왓슨에 따르면 홈즈는 문학이나 철학에는 거의 지식이 없고 관심도 없는 반면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이자 수준급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을 연주중인 홈즈


심지어 홈즈는 오페라에도 등장했습니다. 작가인 도일이 홈즈 시리즈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1893년 단편 <마지막 문제>에서 홈즈가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처리하면서 시리즈를 중단하자, 이듬해인 1894년 작곡가인 리처드 모튼과 H.C.배리는 <셜록 홈즈의 유령>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어 세상을 떠난 홈즈를 유령으로 만들어 출연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홈즈를 창조한 도일은 음악에 대해 전문가였을까요? 대개 바이올린은 턱 밑에 대고 팔로 받쳐 들고 연주하죠. 그런데 <주홍색 연구>에는 홈즈가 안락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옆으로 눕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치 기타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이건 가능하긴 해도 일반적인 연주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낭랑하고, 우울하고, 몽환적이고, 또는 명랑했으니 보통 솜씨가 아닌 것은 틀림없습니다. 도일이 설마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리는 없으니 무척 변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뜬금없이 입으로- 이빨로 기타를 연주했던 지미 헨드릭스가 머리에 떠오르는군요).

홈즈의 후배 탐정들도 여전히 고전음악을 즐깁니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스 경감은 스트립쇼를 종종 찾아가는 통속적인 취미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집에서 <니벨룽의 반지><발퀴레> 등 바그너의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덱스터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등장인물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지만, 미국 작가 카터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놀랍게도 살인 흉기로 쓰였습니다. 오디오 광()인 탐정 알 휠러가 등장하는 <찰리의 방법>에서, 악당은 스테레오 음향 설비가 된 밀폐된 방에 피해자를 가둔 채 볼륨을 최대로 높인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기상천외한 살인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이 실제로 가능할지 의문스럽지만, 오래 전 중국에서 커다란 종() 속에 사람을 집어넣고 종을 울려 고문하거나 죽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추리작가 중에는 작곡가로 활동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 전 <즐거운 살인>(1948)이 국내에 소개된 영국 작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크리스핀은 23세 때 소설가로 데뷔해 유머 넘치는 고전적 미스터리 장편 9편을 발표했으며(그 중에는 오페라 무대를 소재로 한 <백조의 노래(Swan Song)>(1947)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오페라와 레퀴엠(장송곡), 영화음악 등을 남긴 작곡가였습니다.

악보를 다듬는 에드먼드 크리스핀


추리소설을 발표한 음악인도 있는데, 1923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공식 첫 공연 <라 보엠>에서 미미 역을 맡았던 퀴나 마리오(Queena Mario)가 집필한 <오페라 하우스의 살인(Murder in the Opera House)>(1934), <살인이 메피스토를 만나다(Murder Meets Mephisto)>(1942), <죽음이 델릴라에 떨어지다(Death Drops Delilah)>(1944) 등 세 작품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살려 뮤지컬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입니다.

퀴나 마리오


퀴나 마리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며 세인트루이스에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길 만큼 유명한 소프라노 헬렌 트라우벨(Helen Traubel)<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살인(The Metropolitan Murders)>(1951)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대필(代筆)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와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손가락 없는 환상곡>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군요. 80년대에 유라 사부로의 <운명 교향곡 살인사건>이 번역된 적도 있는데, 은근히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클래식 음악이 중요하게 이용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일찍 작고한 이갑재의 <로맨틱한 초상>이 있고, 김성종의 <피아노 살인>에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지요.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들을수록 좋은 것이 고전음악입니다. 다만 요즘 일부러 음악을 들은 지가 꽤 오래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좀 쑥스럽긴 합니다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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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2.02.02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갑재 님의 요절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맨틱한 초상>은 정말 오디오와 클래식에 대한 그 분의 깊은 지식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인데 말이죠.


해피엔딩에 작별인사를

"행복한 결말은 없어요 … 다만 행복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요."
- 에밀리 폴리팩스
<Mr. Polifax on th China Station>(1983) - 도로시 길먼

많은 사람들이 ‘추리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드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추리소설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대표적인 사례가 ‘권선징악의 교훈’이라는 것인 만큼 이러한 생각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일본의 어느 경제학자는 ‘권선징악’보다는 ‘범죄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게 잡히면 벌을 받는다’, 즉 ‘바보 짓 하지 말라’는 쪽이 훨씬 강하다고 하더군요).
‘해피엔드(happy end)’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소설, 극, 영화 따위에서 주인공이 잘 되는 것으로 끝맺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건전한 해피엔딩의 대명사로 금방 떠오르는 작가는 딕 프랜시스입니다. 모험소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경마 미스터리에서는 주인공이 악당에게 위협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거쳐 나와 마치 밝은 햇살을 보는 것과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곤 합니다.

딕 프랜시스

하지만 많은 추리소설의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일까요? 범죄가 벌어지고 사건을 무난히 해결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일단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몸의 상처야 나을지언정 마음의 상처가 쉽게 나을 리가 있겠습니까. 탐정, 경찰, 혹은 그 누군가가 나서서 범인을 잡아주긴 합니다만 피해자가 돌아오진 않으니까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서 결말 부분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다른 방향도 있지요. 이를테면 국가 원수가 저격을 당했는데 주인공인 경호원이 총알을 몸으로 막았다고 해 보죠. 자신의 임무는 완수했지만 중상을 입고 생명이 오늘 내일 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난다면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설이니까 하하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여기까지는 좀 삐딱하게 본 해피엔딩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코난 도일의 홈즈를 통해 추리소설은 황금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명탐정의 대명사이자 전지전능한 인물처럼 보이던 홈즈가 의외로 실패를 자주 했습니다. 단편 첫 작품인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부터 고객(?)의 의뢰를 완수하는데 실패하고 있지요. 그럭저럭 넘어가긴 했지만, <다섯 개의 오렌지 씨>에서는 의뢰인의 신변 보호마저 실패하고 맙니다. 이런 작품을 거쳐 코난 도일은 역사상 최고의 언해피엔딩(unhappy ending)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는 홈즈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스물세 번째 단편인 <마지막 사건>에서 ‘범죄의 나폴레옹’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셜록 홈즈를 스위스의 폭포에 떨어뜨려 버립니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히 죽었다는 것이죠(… 물론 홈즈는 누구나 다 아시는 것처럼 다시 돌아옵니다만). 이렇게 추리소설의 언해피엔딩은 일찌감치 있었던 것입니다.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의 마지막 격투

잠깐 다른 관점에서 볼까요.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에는 그의 성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르센 뤼팽이 처음 등장한 작품의 제목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였으며, 체포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자, 아시다시피 범죄자가 체포되는 것은 해피엔딩입니다만 그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슬픈 분위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어진 작품에서는 교도소에서 탈옥한 뒤 수사관들을 끊임없이 골탕 먹이고 끊임없는 범죄 행각을 벌이며 그만의 해피엔딩을 즐기고 있지요. .
주인공이 없는 작품에서도 언해피엔딩이 벌어집니다. 이를테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절해고도의 외딴 섬에 모인 열 명이 차례로 목숨을 빼앗깁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과거의 죄악에 대한 징벌이라는 요소도 있고, 탐정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동정하기도,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이 모두 죽어가는 것만큼(그게 혹시 자연사라면 모를까요) 끔찍한 결말은 없을 겁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등장한 하드보일드에서는 자기파괴적인 주인공이 종종 등장하죠. 얽히고설킨 사건을 가까스로 해결하지만 주인공이 얻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필립 말로우 같은 시니컬한 인물은 빠져도 될 일에 쓸 데 없이 뛰어들어서(?) 고생만 하다가 몸은 골병이 들고 챙기는 것은 없는 밑지는 장사만 하지요. 말로우가 “이번 사건은 해피엔딩이로군. 짭짤하게 건졌지.”하고 싱긋 웃으며 혼잣말 하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궁지에 몰린 필립 말로우 - 영화 '빅 슬립'에서


이미 눈치 채신 계신 분도 많겠지만, 제목으로 쓴 '해피엔드에 작별인사를'은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단편집에는 사소한 계기로 인해 어이없는 불행을 맞이하는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이보다 훨씬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작품도 많습니다만 그런 작품의 제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잃을 수 있으니 이쯤에서 입을 다물겠습니다.

우타노 쇼고


허구에서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그게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속이 뒤집힐  일이지요. 존 그리셤의 논픽션 <이노센트 맨>을 보면 정의도 얼마든지 패배한다는 현실을 가슴 아플 정도로 보여줍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오랜 시간 고통을 받던 사람의 결백함이 밝혀진 직후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불굴의 의지로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한 사람의 무용담을 즐기는 것이겠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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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11.02 1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모두 언해피엔딩이지만 그래도 악역을 맡은 이들은 모두 죽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최근에 본 걸작 스릴러 영화들은 대부분 악역의 승리로 끝나니 참 아쉽더군요.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것

누구나 할리우드에서 6주일 이상 살게 되면,
갑자기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병에 걸린다고 한다.
 <트럼프 살인사건(The Four of Hearts)>(1938) - 엘러리 퀸


어느덧 활자(책)보다 영상(영화)이 강세를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음먹고 일정을 잡아야 하는 행사였지요. 그나마 개봉영화는 많지도 않아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었지만, 컬러 TV의 등장, 비디오․케이블 TV의 보급, 인터넷의 보편화, 그리고 이제는 DMB 등 기술 발전을 통해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영화 중 하나가 열차 강도를 소재로 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영화는 범죄를 소재로 한 것이 많았는데, 범죄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중소설인 추리소설은 역시 대중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옮기기에 매우 적합한 듯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화관계자들이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는 독자라고도 합니다(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작가가 영화와 관계를 맺는 데는 작품 자체에 작가가 관여할 때, 즉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거나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가장 많습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는 일일이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라서 원작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볼 때가 흔하지요. 좀 오래된 기록입니다만, 1993년판 영화관련 기네스북을 보면, 가장 많이 영화에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명탐정 셜록 홈즈였습니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창조한 전설적 인물 셜록 홈즈는 1900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211편의 영화에 등장해 2위인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159편)과 3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115편)을 여유 있게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숫자에서 눈치 챌 수 있듯 홈즈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해서 모두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인기가 있으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명한 주인공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이런 일은 드물지 않은데, 예를 들어 얼 데어 비거스의 찰리 챈 시리즈는 장편 여섯 개에 불과하지만 영화로는 1931년부터 1949년까지 20년 남짓 사이에 무려 43편이 제작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영화로 제작된 찰리 챈 시리즈

‘만약…’이라는 말은 언제나 여운이 남지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도 어쩌면 007과 같은 인기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사립탐정 루 아처(Lew Archer)의 이름이 루 하퍼(Lew Harper)로 바뀌고 제목도 <움직이는 표적>에서 <하퍼>가 된 이유는 주연배우 폴 뉴먼의 성공작들이 모두 H로 시작되었기 때문(<허드 Hud>, <허슬러 The Hustler> 등)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각본을 맡았던 -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 - 윌리엄 골드먼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아처 시리즈를 영화 시리즈로 제작할 계획을 세운 영화사는 아처의 이름을 계속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으며, 맥도널드가 그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당시 각색을 맡았던 골드맨이 아처와 발음이 비슷한 하퍼로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오락영화로 만들기에는 줄거리가 무거운 편이었던 아처 시리즈는 이런 이유로 <하퍼>와 <The Drowning Pool>등 두 편만 제작되는데 그쳤습니다. 골드먼은 아처 시리즈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소름>에 애착을 가지고 각본도 썼지만, 뉴먼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제작되지 않고 창고 어딘가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수백, 혹은 1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각색하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원작과 달라지기 때문에 원작을 읽은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도 불만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재키 브라운> <표적>등 호평 받은 영화의 원작자 엘모어 레너드는 영화계가 잡으려고 경쟁을 벌이는 현역 최고 작가 중 하나지만, 그의 첫 각본이자 자신의 작품을 직접 각색한 <The Moonshine War>가 제작되던 1970년에는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디트로이트의 디킨스' 엘모어 레너드

촬영 현장에 처음 나간 그는 프로듀서나 감독이 걸핏하면 각본을 즉석에서 바꾸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고, 주연 배우 패트릭 맥구헌이 ‘자신의 대사가 엉망이 되니 기분이 어때요?’하는 질문에 대답도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영화화 과정에서는 대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만큼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 판권을 팔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영화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제임스 엘로이의 태도가 훨씬 편할 것 같네요.

  유명한 추리작가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각색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탐정 필립 말로우를 탄생시킨 하드보일드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역시 위대한 하드보일드 작가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케인의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3)을 훌륭하게 시나리오로 만들어 호평을 받았으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의혹의 전망차> 역시 여성 추리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그가 각색한 작품입니다. 히치콕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새>는 로맨틱 서스펜스 작가 대프네 뒤 모리에의 단편 소설을 경찰소설의 대가 에드 멕베인이 각색한 것이지요.

  작가의 활동은 원작이나 시나리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가는 그 시대를 다룬 영화나 혹은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에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저명인사였던 코난 도일의 전기 영화는 제작된 적이 없지만, 그와 미국의 유명한 마술사인 해리 후디니의 친분은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위대한 후디니(Great Houdini)>(1976), <젊은 해리 후디니(Young Harry Houdini)>(1987), <후디니(Houdini)>(1998) 등 후디니의 전기 영화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유명 작가가 실명으로 나오는 영화로는 1926년 발생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을 다룬 <애거서(Agatha)>(1979), 하드보일드 작가 대쉴 해밋과 그의 동반자적 존재였던 여성 극작가 릴리언 헬만의 이야기를 다룬 <줄리아(Julia)>(1977), <대쉬와 릴리(Dash and Lilly)>(1999)등이 있으며, 좀 독특한 소재의 영화로 빔 벤더스 감독의 <해미트(Hammett)>(1982)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탐정 출신 추리작가 조 고어즈가 해미트의 사립탐정 시절을 그린(물론 허구이죠)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해밋을 연기한 프레드릭 포러스트는 10년 후 제작된 <시티즌 콘(Citizen Cohn)>에서도 해미트로 등장합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해밋'

  여건이 되면 작가가 영화에 출연도 합니다. 코난 도일은 역시 이쪽에서도 선구자로 <5백만 달러 위조 계획(The $5,000,000 Counterfeiting Plot)>(1914), 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1925) 등 두 편의 무성영화에서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변호사 출신 작가 얼 스탠리 가드너는 TV 시리즈 <페리 메이슨>에서 판사 역으로 출연했는데, 재판 과정에 익숙한 그로서는 근엄한 얼굴로 앉아있는 검사 연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조연으로 등장한 이들과는 달리, 화끈한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쓴 미키 스필레인은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걸 헌터>(1963)에 직접 해머로 등장했습니다. 스필레인은 TV 시리즈인 <형사 콜롬보>에도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살해당하는 소설가를 연기했지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범죄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남긴 트루먼 캐포티는 귀여운(?) 아저씨 같은 외모와는 달리 <5인의 탐정(Murder by Death)>라는 코믹 미스터리 영화에 출연해 명탐정들을 골탕 먹이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유명 희곡작가 닐 사이먼이 각본을 쓴, 싸구려 추리소설들을 야유하는 듯한 이 영화에서 캐포티가 연기한 괴상한 인물 라이오넬 트웨인은 탐정들이 너무 영리한 나머지 겸손함을 잃고 독자들을 기만한다고 질타하며, 결국에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복수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에서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체격에 강렬한 인상을 지닌 그는 ‘스티븐 킹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이라는 퀴즈가 있을 정도로 자주 출연했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그를 찾아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이죠. 킹은 출연뿐만 아니라 <맥시멈 오버드라이브>의 감독을 맡은 적도 있는데,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이젠 감독 역할에 관심을 끊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2009년 말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영화 <이중 배상>에 각본을 썼던 레이먼드 챈들러가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죠(지금은 DVD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챈들러입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세계의 수천만 명이 보았을 터인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던 것도 놀랍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연구자가 거의 같은 시기에 발견했다는 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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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8.25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93년까지 만들어진 홈즈 영화가 211편이면 지금은 그보다도 더 많겠군요, 다 보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로 보고 싶은 추리소설 걸작은 존 딕슨 카의 <벨벳의 악마>,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김내성의 <마인>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건 내가 맡은 최초의 사건이거든."
-셜록 홈즈
<글로리아 스콧 호>(1893) / 아서 코난 도일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게 되는 데에는 - 그것을 어릴 때부터 바라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얼떨결에 택하게 되었든 간에 - 누구든지 크건 작건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추리소설 속에는 어지간한 인간승리 드라마를 능가할 만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주인공도 등장합니다(물론 허구의 인물이니만큼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작가들이 노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요). 그들이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연유로 범죄와 싸우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오귀스트 뒤팽은 대단히 품위 있고 명석한 두뇌의 귀족이지만 집안이 몰락한 탓에 무너질 듯이 낡아빠진 하숙집에 친구와 함께 살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뚜렷한 직업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사건을 해결하고 사례금을 받기도 하죠. 뒤팽은 불과 세 편의 단편에만 등장했으며 범죄 수사를 직업으로 삼지도 않았지만 포가 40세로 요절하지 않고 좀 더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면 다른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에밀 가보리오가 발표한 세계 최초의 장편 탐정소설 <르루즈 사건>(1866)에 처음 등장한 르코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뒤 비천한 일을 하며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인 타바레에게서 범죄자가 되거나 아니면 범죄를 막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 프랑스 경찰 범죄수사국에 투신해 과거 어둡던 시절에 익혔던 여러 가지 수법을 이용해 범죄를 수사하게 됩니다.

'르콕 탐정' 표지

반면 같은 프랑스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인물 아르센 뤼팽은 르코크와 비슷한 결손 가정 출신이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뤼팽의 아버지는 격투기의 달인으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기법을 가르치는 방랑자였고 어머니인 앙리에뜨는 자상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뤼팽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사기죄로 갇혀 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뤼팽이 범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때 범죄자의 가족인 어머니가 사회로부터 받은 냉대에 대한 반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 셜록 홈즈는 우연찮은 일로 자신의 재능을 심각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가 왓슨에게 회고한 바에 따르면, 홈즈는 대학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발휘해 그의 아버지의 신상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 냅니다. 그리고는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란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사실과 거짓을 간파하는 게 자네에긴 식은 죽 먹기로군. 그게 바로 자네가 갈 길일세’라는 찬사를 듣지요(<글로리아 스콧 호>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낱 취미 정도로만 생각해 오던 홈즈는 추리력을 이용하는 것이 어엿한 직업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이 때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홈즈는 이들 중 누구일까요? '글로리아 스콧'의 삽화(시드니 패짓의 그림)

20세기 초반까지 등장한 천재적인 탐정은 대체로 이렇게 타고 난 재능을 직업으로 살린 인물들이었지만, 가스등에서 전기등으로 변하고 마차가 자동차로 변하는 시대가 되면서 차츰 판도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즉 적어도 두뇌 면에서 천재라기보다는 보통 사람 수준의 주인공들이 나타난 것이죠.

특히 귀족 등 신분 격차가 유럽보다 덜하던 미국에 등장한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웬만큼 지성을 갖추었지만 성격이 원만하다고 하긴 어려운 인물들이었습니다. 대쉴 해밋은 워낙 과작(寡作)을 한 터라 등장인물의 사생활이나 과거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뒤를 이은 레이먼드 챈들러나 로스 맥도널드의 주인공은 비교적 자세한 경력이 알려져 있습니다. 챈들러가 창조한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는 원래 지방검사국 소속의 경찰이었지만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 수 없어 사표를 던지고 한결 자유스러운, 하지만 권력은 없는사립탐정이 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로스 맥도널드가 창조한 사립탐정 루 아처 역시 말로우와 비슷한 경력을 지녔습니다. 아처 역시 지방검사국 소속 경찰이었으나, 경찰들의 부패를 참지 못해 사직하고 탐정의 길로 나섭니다.

루 아처는 '루 하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영화에 등장했습니다(폴 뉴먼이 연기).

20세기 중반의 미국 작가들은 경찰에 대해 뭔가 불신감을 품고 있었는지 이런 패턴은 자주 반복되었지만, 70년대 이후 약간씩 변화가 생겨났는데, 훗날 등장한 여성 하드보일드 탐정들의 경력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지요. 현대 미국 여성 하드보일드 계의 양대 작가인 수 그래프튼과 새러 패러츠키의 인물들이 대표적. 그래프튼의 주인공 킨지 밀혼은 20세에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일선에 배치되었지만 규칙에 얽매이는 생활이 싫어 퇴직하고 탐정 면허를 얻어 개업합니다. 한편 패러츠키의 주인공 V.I. 워쇼스키는 원래 변호사였으며 역시 변호사인 동료와 결혼했지만 자신의 이상(理想)과 어긋나는 법조계와 여자의 자립심을 무시하는 남편에게서 모두 결별하고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한편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인물을 꼽으라면 영국의 여성 작가 P.D.제임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사립탐정 코델리아 그레이를 선정할 수 있을 겁이다. 태어난 후 불과 한 시간 만에 어머니를 잃는 것으로 시작된 힘든 어린 시절을 거친 그레이는 고생 끝에 케임브리지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두었으나 방랑 생활을 하던 아버지의 요청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계 각국을 유랑하지요. 아버지가 로마에서 사망한 후 런던으로 돌아온 그녀는 전직 경찰 버니 프라이드의 탐정 사무소에 들어가 탐정에게서 필요한 기술을 배워 공동 경영자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 뿐. 프라이드가 불치의 암으로 고민하다가 자살하는 바람에 그레이는 불과 22세의 나이로 사립탐정사무소의 소장이 됩니다.

드라마로 제작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주인공이 탐정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반드시 첫 작품에서 밝혀지는 것만은 아닙니다독자들이 주인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만큼 인기가 생겨야 작가도 다음 작품에서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하지요. 왕년의 홈즈가 그렇게 소개되었지요. 사실 대부분의 작가는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배경을 만들어 놓습니다. 다만 너무 한꺼번에 드러내 놓기에는 어색하기도 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꺼내놓는 겁니다(물론 코난 도일은 그렇게 계획적으로 쓴 것 같진 않습니다만). 최근 들어서는 위에 열거한 특별한 사연들이 너무 가식적으로 보이는지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한 계기가 소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H.R.F.키팅의 주인공인 인도 봄베이 경찰의 고테이 경감은 어린시절부터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인물이고, 자넷 에바노비치의 여주인공 스테파니 플럼은 직장에서 해고된 후 말 그대로 돈은 필요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용의자를 소환하는 일을 하게 되는, 어쩌면 이웃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추리소설은 시리즈가 많은 만큼 탐정들이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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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7.28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탐정이 된 사연..., 저도 연구중입니다. 극적일수록 더 좋겠지만 제가 전에 KBS <이야기 발전소>에 들고 갔던 작품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의문사를 목격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 된 소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지만 이러한 이야기라면 다음 편을 만들기가 어렵겠지요.


그들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추리소설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휴가중인 형사는 절대 무리하지 않습니다.
- 밥 이든
- <중국 앵무새>(1926) / 얼 데어 비거스

 

어느덧 여름입니다.

일년 사계절 중에서도 유독 휴가철이라고 불리는 계절이기도 하죠. 나머지 계절이 휴가를 즐기기에 모자랄 것은 없겠지만 뜨거운 한여름보다는 못하기 때문일까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데다가 설날이나 추석 등의 명절 연휴가 있어서 보통 직장인들의 여름휴가는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 정도지만 외국, 즉 서구의 여름휴가는 훨씬 긴 편입니다.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은 바캉스라는 단어도 원래 제법 긴, 즉 최소한 한 달 이상의 휴가를 의미한다는데, 서구 쪽은 이렇게 기간도 긴데다가 타국으로의 여행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덕택에 유명한 휴양지나 이국적인 장소를 무대로 한 추리소설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덕분에 명탐정들은 휴가지에서마저 골치 아픈 일과 마주치곤 했지요. 요즘은 무선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혹은 족쇄일지도?) 탓에 휴가를 떠나서도 일한다는 분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만이라도 범죄로부터 떨어져 쉬고 싶어 하는 명탐정들에게도 그런 비슷한 일은 예외 없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임에 틀림없겠지요. 사건이 없으면 명탐정도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휴가는 작품 속의 탐정들보다 추리소설 초창기의 작가들에게 더 필요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면 많은 돈을 벌어 인생의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요즘 작가들과는 달리 별로 수입이 좋지 않았던 옛날 작가들은 고생만 하다가 요절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에밀 가보리오는 신문에 매일 연재를 했는데, 하루치 연재 분량이 거의 짧은 단편 분량과 맞먹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담이 만만치 않았고, 결국 과로로 인해 40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이란 말은 언제나 허망하긴 합니다만, 만약 그가 쉬엄쉬엄 글을 쓰면서 오랜 기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더라면 영국보다 프랑스에서 추리소설 선풍이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에밀 가보리오

탐정들 중 가장 긴 휴가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셜록 홈즈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코난 도일은 명탐정 홈즈 시리즈를 쓰는데 지친 나머지 홈즈가 범죄의 화신 모리어티 교수와 스위스의 폭포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함께 떨어져 죽은 것으로 끝나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홈즈 팬들의 반발이 너무 크자 도일은 생각을 바꿔 홈즈가 운 좋게 폭포에 빠지지 않고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설정했으며, 공백 기간인 1891년부터 1894년까지 티벳과 페르시아, 이집트 등을 여행한 뒤 유럽을 거쳐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하여 후속 작품과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3년 동안의 공백은 나중 홈즈의 모방 작품을 쓴 작가들에 의해 갖가지 이야기, 즉 티벳에서 설인(雪人)의 정체를 밝혔다거나 유럽에서는 여배우 아이린 애들러와 눈이 맞아 아들을 하나 두게 되었다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문자 그대로 쏟아져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다양한 홈즈 배우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행을 무척 즐긴 데다 고고학자 맥스 맬로윈과 결혼한 덕택에 젊은 시절에는 1년의 1/3 정도를 탐사․발굴 여행으로 보냈습니다. 크리스티는 이러한 잦은 여행을 바탕으로 하여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메소포타미아의 살인>(1936), <나일 강의 죽음>(1937), <백주(白晝)의 악마>(1941)등 휴양지나 해외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작품을 여러 편 썼습니다. 이들 작품들의 기본적 특징을 들자면 대부분 엘큐울 푸아로가 등장하는데, 크리스티의 또 다른 주인공 미스 마플은 워낙 마을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국, 그것도 중동까지 보내기는 어려웠겠지요. 그렇지만 미스 마플은 <카리브 해의 죽음>에서 서인도 제도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칩니다. 사건 수사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데 참, 복도 없지요.

이집트를 관광중인 애거서 크리스티(오른쪽)

영국의 여성작가 조이스 포터가 만들어 낸 괴짜 주인공 윌프레드 도버 경감은 주인공 치곤 무능한(?) 편이지만, 다른 명탐정들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버 4 – 절단>(1967)에서 런던 경찰청의 도버 경감은 여름휴가를 떠나는 도중 하필이면 아내가 자살하는 사람을 목격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맡게 됩니다. 무척 심통을 부리던 도버 경감은 그의 직속 부하도 휴가를 떠나다가 현장에 끌려오다시피 나타난 것을 보고 위안을 삼으면서 심술궂은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죠. 

역시 영국의 여성작가 크리스티애너 브랜드의 <위험한 여로>(1955)는 제목에 걸맞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카프리 섬이라는 이탈리아 근처의 여행지에서 관광객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코크릴 경감은 휴가를 즐기러 나왔다가 연속적인 살인사건과 마주칩니다. 말레이에서 태어난 브랜드는 인도를 거쳐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영국에 왔는데, 제법 긴 동남아시아에서의 생활 덕택인지 이국적인 배경을 묘사하는데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애너 브랜드의 '위험한 여로'

휴양지를 무대로 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유럽 작품들 쪽이 많고, 미국 작품들 쪽이 적습니다. 그나마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휴가를 즐기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네요. 동료들이 많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경찰들은 교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지만 혼자서 사무실을 꾸려 나가야 하는 사립탐정들은 그럴 정도의 여유가 있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는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존 D.맥도널드의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 트래비스 맥기는 ‘버스티드 플러쉬(Busted Flush)’라고 하는 길이 16미터의 요트를 거주지로 삼으면서 바람 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휴가날짜를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보통 때 플로리다의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맥기는 악당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바다와 맞서야 할 때도 있지만 재산을 모으는데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첨단 문명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트래비스 맥기의 배 '버스티드 플러쉬'

그런데 90년대 이후에는 변화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신성한 관계>나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을 보면,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한 뒤 휴양지에서 마음을 식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더군요. 요즘 작가들은 탐정(혹은 형사)에게도 복지혜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멀리 휴가를 갈 틈이 없으면 생전 가보지 못한 곳을 배경으로 한 흥미진진한 작품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좋은 책 몇 권으로 한여름의 더운 날씨가 계속될 때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피서 방법으로서도 으뜸이 아닐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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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7.09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가지에서의 살인 사건 역시 추리물에서 아주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그러한 작품으로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과 <백주의 악마>를 좋아합니다. 저도 책을 펴면 곧장 바다 냄새가 날 정도로 생생히 휴양지 풍경을 묘사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평범한 것은 싫다

탐정 일이란 천한 짓이지. 오직 신사나 악당만이 할 수 있어.
-키스 이네스
<The Rising of the Moon>(1945)  -  글래디스 미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때그때 달라지긴 합니다. 예를 들어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잘생기고 인간성은 훌륭하고 머리 역시 좋아서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 태반입니다. 다만 너무 착한 것이 약점일 뿐. 이 주인공들은 어떤 위험과 마주쳐도 죽지 않으니(좀 고생은 합니다만) 초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TV처럼 눈으로 보는 것에 의존하는 영상 매체에서는 잘생긴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반면 추리소설은 두뇌의 오락이라는 측면이 강한 탓에 등장인물들, 특히 탐정들의 외모나 성격은 그들의 뛰어난 머리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다소 독특한 묘사와 설정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현대 추리소설의 원조 격인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포는 자신의 반항적인 기질 탓인지 유별난 성격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퇴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아마추어 탐정 뒤팽은 밝은 쪽 보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훨씬 강합니다. 밤의 어두움을 좋아해서 대낮부터 창문을 가린 채 향기 나는 촛불을 켜 놓고 명상에 잠기는가 하면 밤이 되면 거리로 나가 산책을 즐긴다는 습관은 도무지 평범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주인공에게 이런 괴상한 버릇을 부여한 것은 훗날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산책중인 뒤팽(오른쪽)과 친구(포처럼 보입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탐정이지만 그에게도 괴상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 조차 모를 정도로 범죄 이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가끔 괴상한 바이올린 곡을 연주해 룸메이트인 왓슨을 괴롭게 만들 때도 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편, 모르핀, 코카인 등 마약을 상습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에 단속이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요즘 같았으면 홈즈는 정의를 추구하는 명탐정이 되기는커녕 마약 중독자로 교도소와 재활센터를 들락거리느라 사건을 다룰 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뒤팽, 홈즈는 점잖은 편입니다. 수수께끼 풀이 형식 추리소설의 시대에 등장했던 탐정들의 괴벽은 작품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나 주로 쓰였을 뿐이었지 그 요소들을 크게 강조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고 불렸던 수많은 단편의 주인공들은 홈즈라는 인물의 개성을 능가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괴상한 습관을 보여주었습니다.

멍청한 얼굴에 우산을 거듭 잃어버리는 브라운 신부라던가, 쉴 새 없이 매듭을 만지작거리며 수다를 떠는 구석의 노인, 왕위 계승 신분을 버리고 러시아에서 쫓겨나 런던 교외의 낡고 큰 저택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잘레스키 왕자, 철저한 채식주의자에 적에게 잡혀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탐정 소프 헤이즐, 셜록 홈즈의 열성 팬으로 통신교육 탐정기술강좌를 수강한 아마추어 (엉터리) 탐정 파일로 겁, 심지어는 뤼팽 같은 도둑들까지 탐정으로 나설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약점이 보이지 않는 탐정들도 수두룩하게 등장했습니다. 오만한 성격만 제외하면 매력적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너무나 사무적인 오스틴 프리먼의 손다이크 박사 등은 그리스 조각 같은 외모에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닌 대표적 탐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은 그저 추리력을 보여주는 기계로 보일 만큼 독자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을 주기 어려웠지요. 


황금기의 주요 작가이며 밀실의 제왕이라 불리는 미국 작가 존 딕슨 카는 늑대인간, 마녀, 강령술(降靈術), 흡혈귀 전설 등 괴기스러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기디언 펠 박사나 헨리 메리베일 경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진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 딱딱함을 탈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유머란 범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를 전환해 주는 데에는 가벼운 웃음만큼 적절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주인공들의 철저한 완벽함 보다는 어딘가 보이는 약점은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도 있지요.

'세 개의 관' 표지에 보이는 펠 박사

유머가 가미된 작품들이 성공하게 되자 앞에 열거한 명탐정들의 괴상한 점들도 단숨에 평범하게 보일 만큼 경이적인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여성 작가 조이스 포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윌프레드 도버 경감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신장 188cm, 체중 100kg을 넘는 몸집을 가졌지만 근육질이 없고 대부분이 지방질이라 마치 하마처럼 보이는데다가 커다란 얼굴에 히틀러 같은 콧수염을 길러 첫 인상에서부터 부담감을 주는 인물이지요. 명색이 소설 주인공인데 외모가 이렇게 험악하다면 그것을 상쇄할 만한 뛰어난 두뇌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그는 영국 경찰국의 가장 무능한 경관으로 꼽히며, 범죄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것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수사를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귀찮아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게으름은 지저분한 와이셔츠와 원래 색깔이 어땠는지  알 수 없는 넥타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감을 보좌하는 찰스 맥그리거는 도버와는 달리 잘생기고 지성적인 인물이지만, 젊은이에게 고생이 필요하다는 상관의 생각으로 도버 경감과 일하게 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도버 경감이 어떤 사람인지 딱 감이 오시겠지요?

도버 경감을 잇는 영국의 괴짜 경찰은 80년대 피터 러브지의 작품에 등장한 피터 다이아몬드 경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는 <마지막 형사>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데, 심술궂고 고집불통이며 현대의 첨단 수사기술을 불신하는 ‘마지막 고참 형사’입니다. 뚱뚱하고 몸집이 크다는 점에서는 도버 경감과 비슷하지만, 무능하면서도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았던 도버와는 달리 다이아몬드 경감은 자신의 실수에 대한 문책을 받고 결국 경찰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맛봅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을 떠나서도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끈질긴 면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주인공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괴짜들이라면 70년대 이후 미국에 등장한 탐정들은 현실 사회를 반영하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로저 사이먼의 <인간의 덫(The Big Fix)>에 등장한 유태계 사립탐정 모우지스 와인은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을 거리낌 없이 상용하고 있으며, 조셉 핸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보험조사원 데이브 브랜드스태터는 동성연애자입니다. 앤드류 복스의 주인공 버크는 무허가 탐정인데 전과 27범이기까지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겨야 그를 찾을 일이 생길까 궁금할 지경이죠.

사립탐정 모우지스 와인(리처드 드레이푸스).

이 정도만 소개해도 푸아로나 미스 마플 같은 사람이 얼마나 평범하고 무난한 인물인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들은 아무리 이상한 성격을 가졌더라도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가끔 상식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시바타 렌자부로의 <유령신사>,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에 등장하는 탐정은 유령과 이미 죽어서 심장이 뛰지 않는 시체입니다.

무엇을 구상하십니까... 야마구치 마사야

여기에 한술 더 떠 공룡 탐정도 있습니다. 에릭 가르시아의 <Anonymous Rex>, <Casual Rex>, <Hot and Sweaty Rex>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빈센트 루비오는 사람 크기로 진화한 밸로시랩터 -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에서 떼지어 사람들을 습격하던 작은 공룡이 기억나시죠 - 로, 사람처럼 변장하고 태연하게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구 인구의 10% 정도가 변장한 공룡이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니 이미 보신 분도 계실 듯 싶네요.

맨 왼쪽이 주인공 빈센트 루비오(샘 트래멀). 겉보기엔 공룡처럼 보이진 않네요.

약점을 보완하는 쪽과 강점을 더욱 살리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좋을지는 정답이 없겠지요. 적어도 추리소설에서만큼은 이제 초인적인 천재 탐정이 오히려 너무 평범한(아니면 흔한) 만큼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비록 괴상하게 보이더라도 개성이 살아 있는 주인공들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도 며칠 지났네요.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올해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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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11.01.06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공룡!;;

  2. 이야기꾼 2011.01.0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룡 탐정에 비하면
    제가 구상한 탐정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너무 기괴하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는데요...ㅎㅎ

  3. 허니문 베이베 2011.01.06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전환으로 허니문 차일드에서 베이베로 바꿨습니다. ㅎㅎ 추리닝님 글 읽다보면 회사에 금방 도착한다는. 덕분에 아이폰 배터리 빨리 소모돼도 마냥 즐겁다는. 탐정의 성격은 괴팍할수록, 특이할수록, 독특할수록 시선을 잡아 끄는 것 같습니다.^^

  4. 시무언 2011.01.07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하게 몇몇 팬들은 홈즈가 피도 눈물도 없는 추리 기계라고 얘기하더군요. 사회성이 부족할뿐이지 홈즈도 충분히 인간적인데(실수도 하고 말이죠)

    • 추리닝4 2011.01.11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솔직히 최근엔 홈즈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어릴때부터 봐온 너무 익숙한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여전히 탐정하면 홈즈!!

  5. 평시민 2011.01.08 0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셜록 홈즈 사건집>에 나오는 단편 <세 명의 개리뎁>을 보면 왓슨이 범인의 총에 맞았을 때 홈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 있죠, 홈즈가 왓슨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여러 캐릭터를 구상하고 있지요, 새해에 작가 분들 모두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멋진 캐릭터를 많이 구상하시기 바랍니다.

  6. 카메라이언 2011.01.09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핫핫 공룡탐정 ;;;;;;; 아우 생각만 해도 웃겨요. 크핫핫 ;;;; 음음 저도 제 캐릭터들 생각하는데... 아우 너무들 평범해요. 카메라이언만 해도 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보이는 정도 수준이니까요. 호호호... 라고 웃을 일이 아니잖아! OTL

    • 추리닝4 2011.01.11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메라이언님은 이미 확고한 본인 캐릭텨 있으셔요^^

    • 카메라이언 2011.01.11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무슨 초 감동의 세계로 빠지는 말씀을... ;ㅂ;
      한미모에 올릴 단편 열심히 쓰고 있사와요. 트릭을 중심으로 한 명탐정 카메라이언이 등장하는 롯데리아 살인사건-제목은 바뀌겠지만요-여요. 호호호. 기대하셔도 좋사와요-라고 자신있게 말은 못하겠습니다. OTL


흰 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이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패터 시의 사람들이
그해 겨울에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리려면 꽤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호그 연속살인>(1979)  -  윌리엄 디앤드리어

 

추리소설의 계절은 흔히 여름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작품 외적인 입장, 즉 ‘여름의 무더위를 쫓기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시장 구조적인 시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오히려 겨울 쪽이 매력을 갖춘 계절처럼 보이긴 합니다. 고전적인 수수께끼 풀이 추리소설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만이 가진 요소, 특히 눈은 훌륭한 배경 및 소재가 되곤 하지요.

올해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고 방정을 떨었더니 웬걸, 한바탕 쏟아지고 또 내릴 분위기네요


눈에는 다양한 특성이 있습니다.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등 많은 이름이 있을 정도로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가지각색이고 땅에 떨어진 후에도 녹거나 얼어붙거나 아니면 얼지도 녹지도 않고 어중간할 때도 있기 때문에 변화무쌍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작가들은 눈을 트릭으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사건의 중요한 배경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배경’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표현인데, 눈이 내린다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햇볕이 화창하다’, ‘이슬비가 내린다’ 등의 날씨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웬만큼 내린 눈은 흔적을 남겨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교통수단의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는 위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람 키 정도로 눈이 쌓이게 되면 발자국 트릭 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태풍이나 홍수처럼 주변 사물을 어디론가 날려 보내지는 않는다는 것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엄청난 폭설이 등장하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네 번째 장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프랑스의 칼레까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특급열차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열차가 폭설 때문에 한밤중 유고슬라비아 국경 근처의 철길에서 꼼짝 못하게 되고, 그 무렵 만원이던 1등석 침대차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기차가 멈춘 곳은 외진 곳이라 누구도 열차로 몰래 들어오거나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침대차 안에 타고 있던 열 세 명의 승객 중 누군가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승객 모두에게는 각각의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것 같지만 하필이면 그 열 세 명 중에 푸아로라는 명탐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로 사건은 뭐, 고비가 있지만 순조롭게 해결되지요. 이 작품에서는 폭설이 기차를 고립시키기 위한 배경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만, 독특한 범인의 설정은 이 작품을 영원한 걸작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승객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지는 명탐정 푸아로(중앙).


‘눈 속의 고립’이라는 상황은 범인이 당장 누구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어딘가로 도망치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탐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만약 악당 쪽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렇게 되면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공포소설이 되는 셈이지요. 스티븐 킹은 <샤이닝>(1977)과 <미저리>(1987)에서 그러한 무서움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이닝>은 한겨울동안 로키산맥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호텔을 관리하게 된 주인공 잭 토렌스가 이른바 오두막집 열병(Cabin Fever, 고립된 곳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신경증) 증세로 차츰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의 목숨마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미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외딴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만(호텔에 존재하던 유령 탓이었지요), 어쨌든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며칠도 아닌 몇 달 동안 꼼짝 못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습니다. 한편 <미저리>에는 유령보다 더 무서운 집착을 가진 여인이 등장합니다. 눈길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소설가 폴 쉘던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미저리 체스테인’의 팬인 애니라는 여인에게 운 좋게(?) 구조되지만 그의 행운은 당분간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아니, 그것은 행운이 아니었지요.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설을 써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바깥은 눈이 와서 도망갈 수조차 없고 난감할 따름입니다.

눈 속의 산장이 보이는 '미저리' 오디오북 커버


눈이 많이 내리는 때를 살펴보니 그것은 12월과 1월로 이어지는, 즉 ‘연말연시’라고 불리는 시점입니다. 1년 365일 중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그다지 특별한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점(해가 바뀐다는 것)을 맞이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의미를 두곤 합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화된 명절이 있고, 새해맞이 행사 역시 어느 나라에나 다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들뜬 사람들 사이에서 사고나 범죄는 발생하고, 때가 때인 만큼 당사자나 주변 사람은 평상시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을뿐더러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는 뭔가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밀실 상태의 방에서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되는 살벌한 분위기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L.A.컨피덴셜>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찰서 유치장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작됩니다. ‘피투성이 크리스마스’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과거의 정신적 상처와 야심을 숨긴 젊은 형사 세 사람의 운명을 크게 바꾸는 방아쇠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피투성이 크리스마스' 사건 - 영화 'L.A.컨피덴셜'에서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42번째 작품 <자장가(Lullaby)>에서는 10대 베이비시터 소녀가 새해 전날 살해됩니다. 살인을 주로 담당하는 형사들에게 사람의 죽음이란 그다지 드물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하필 이런 즐거운 때에 불행한 소식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전해 주는 일은 평상시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죽은 소녀의 부모에게는 이 날이 더 이상 새해의 전날이 아니라 딸의 기일(忌日)이라는 가슴 아픈 날로 돌변하는 것이니까요. 새해로 접어드는 새벽 3시 무렵 주인공인 카렐라 형사가 소녀의 집 현관을 노크한 후, 부모가 문을 열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하는 것으로 작가는 그 장면을 마무리 짓습니다. 독자들의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악마의 눈물>에서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무차별 총격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번이 아니라 그날 중 세 차례 더 학살극을 벌이겠다는 범인의 예고에 필적 전문가 파커 킨케이드를 비롯한 수사진이 막으러 나섭니다(시리즈 작품이 아니지만, 낯익은 인물이 깜짝 등장해서 즐거움을 주네요. 그 ‘낯익은 인물’은 연말인데도 아무 약속도 없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옛날 일을 한번 살펴볼까요? 코난 도일은 1887년 12월 <비튼>지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셜록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홍색 연구>를 발표했는데, 작품의 고료로 불과 25파운드밖에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도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실의가 컸습니다. 

셜록 홈즈가 이 잡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주홍색 연구>에 주목한 미국 잡지 <리핑코트>지가 도일에게 새 작품 원고를 청탁했고, 이때 쓴 두 번째 장편 <네 사람의 서명>은 1890년 1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푸대접받던 도일의 작품들은 드디어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운명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도일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가장 잘 탄 작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다만 <주홍색 연구>나 <네 사람의 서명>은 잡지의 연말 특집에 실렸어도 내용은 전혀 크리스마스나 새해 분위기와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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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10.12.30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한 눈사람 사건>이랑 <고리키 공원> 읽어보고 싶네요.
    눈사람 속에 시신을 숨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은 있는데 생각해보니 작품으로 읽어본 적은 없군요.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김전일 만화에서 눈사람(아니면 그냥 눈?)속에 시신 숨긴 이야기가 있었는 거 같아요.)

    지난 글 덕분에 이번 겨울에 <심플 플랜>을 재밌게 읽었습니다.(우와우와~ 스콧 스미스!)

  2. 카메라이언 2011.01.03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그리고... ... 눈+살인... ... 눈의 살인...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인데요? 호호 'ㅂ'


“가장 흔한 범죄가 가장 불가사의 할 때가 많지. 왜냐하면 추리를 끌어낼만한 특별하거나 새로운 특징이 없기 때문일세.”  - 코난 도일 <주홍색 연구>에서



영국 드라마 <셜록>이 특별한 이유


“당신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군. 어떻게 아냐고? 머리는 짧고 팔은 새까맣게 탔잖아. 손목만 검게 탄 걸로 봐서 분명 긴 옷을 입었고…. 그건 바로 군의관이란 얘기지.” 

택시 안에서 홈즈가 왓슨 박사에게 추리력을 뽐내며 ‘지 자랑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홈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헌팅캡을 눌러쓰고 담배 파이프를 문 매부리코의 사내가 아닙니다. 곱슬머리에 모델처럼 쫙 빠진 몸매, 슬림한 바바리코트 걸치고 머플러 휘날리는 완전 간지남입니다. 그리고 지팡이 대신 스마트폰으로 무장했군요.

올해 영국 BBC에서 만든 3부작 드라마 <셜록>의 한 장면입니다. 21세기형 셜록 홈즈는 이렇게 뽀대나게 환생했습니다.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왼쪽)와 왓슨 역의 마틴 프리먼

영화 '셜록 홈즈'. 홈즈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오른쪽)와 왓슨 역의 주드 로



뭐, 홈즈야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탐정인지라 수많은 패스티시와 패러디 작품이 탄생했고, 또 지겹도록 영상화 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BBC 드라마에 눈길이 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동안 각색된 홈즈물 대부분은 19세기 후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흐음, 왜 f(x)의 빅토리아가 아른아른^^;)의 배경은 살리되, 이야기 구조는 많이 바꿨습니다만 이 <셜록>은 100년 세월을 훨씬 뛰어넘어 배경을 현재의 런던으로 가져오면서도 비교적 원작 설정에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작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셜록 홈즈>를 떠올리면 바로 비교가 되시리라.

예를 들면 드라마 1편 제목이 <분홍색 연구 A Study in Pink>입니다. 누가 봐도 1887년 홈즈가 첫 등장한 <주홍색 연구 A Study in Scarlet>의 오마주입니다. 왓슨은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다가 런던으로 돌아왔고 (영국은 그때도, 최근에도 아프간과 전쟁질을 했군요) 생활고 때문에 같이 하숙할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홈즈를 만난다는 설정도 원작을 따랐습니다. ‘Rache’라고 쓴 메시지와 독이 든 알약을 소재로 활용하는 점도 흡사합니다.

다만, 신문 광고 대신 인터넷이, 마차 대신 택시가, 코카인 대신 니코틴 패치가 활용되고 원작보다 젊고 샤방샤방한 홈즈는 좀 더 열심히 뛰어 다닙니다. 점잖은 왓슨 박사도 귀여운 이미지로 변신했는데 원작보다 비중이 줄어 좀 찌그러져 보이는 정도가 불만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제작진의 선택은 꽤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디테일한 극본, 세련된 편집, 적당한 활극이 버무려져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흡입력 넘치는 모던한 홈즈로 재탄생시켰으니까요. 

이 드라마를 보노라면 ‘독자(시청자)의 시선은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 따라 간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암튼 홈즈는 자신의 고국에서 탄생한 드라마 덕에 ‘100년 전 명탐정’의 낡은 이미지를 벗고 변신을 꾀할 수도 있겠네요. 셜로키언들이 원작 훼손이라고 달갑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박제된 홈즈보다 진화한 캐릭터로 생명력을 더하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여전히 먹히는 ‘세계 최고 탐정’

홈즈가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이유는 당연히 이름만으로 절반 먹고 들어가는 캐릭터 때문이겠죠. 

아서 코난 도일에 의해 1887년 <주홍색 연구>에 첫 등장해 1927년 <셜록 홈즈의 사건집>까지 40년 동안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에서 활약합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과학적, 논리적인 사건 해결법은 명탐정의 전형을 제시합니다. 약간 정형화된 소설 패턴이 되레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홈즈의 탄생 전후에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뒤팽,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 등이 차례로 등장하지만 홈즈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끊임 없이 출간되는 홈즈 관련 서적들



홈즈란 인물의 특징은 <주홍색 연구> 앞부분에 자세히 나옵니다.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데 너무나 깡말라서 훨씬 더 커 보이고 눈은 날카롭고 살집이 없는 매부리코는 전체적으로 기민하고 단호한 인상이다. 각지고 돌출된 턱 또한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문학, 철학,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고 정치는 약간, 식물학 중에도 아편이나 독성 물질에 대해서는 해박하고 화학, 해부학, 범죄 관련 문헌에는 정통하다. 바이올린 연주가 수준급이고 펜싱과 권투 실력은 프로급. 가끔씩 우울증에 빠져 며칠씩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도 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은 의사입니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죽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소설을 몇 편 발표해 재능을 인정받지만 가족 생계 때문에 전업 작가가 되는 건 주저했다고 합니다. 스물셋에 병원을 개업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환자가 많지 않아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합니다. 


셜록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


그는 의과대학을 다닐 때 스승이었던 조셉 벨에게서 영감을 받아 홈즈를 탄생시킵니다. 벨 박사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의 직업과 고향, 가족 관계 등을 잘 맞췄다고 합니다. 구두에 묻은 흙이나 몸의 피부병 같은 걸 이용해서요.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던 홈즈는 1893년 <마지막 사건>에서 숙적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스위스의 한 폭포에 떨어지면서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코난 도일이 자신보다 더 인기 있는 홈즈에 실증을 느껴 ‘살해’했다는 설인데요, 결국 독자들 압력에 못 이겨 9년 만에 부활합니다.  

이런 대중의 열렬한 환영 이면에는 당시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수도는 각 대륙에서 몰려든 이민자들로 급팽창합니다. 빈민촌이 늘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런던 경찰은 범죄자 검거에 늘 허덕댑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소한 실마리를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사건을 척척 해결해내는 홈즈는 런던의 영웅이었던 셈이지요.

  

셜록 홈즈의 이름으로…

홈즈의 재창조가 활발했던 이유는 코난 도일이 저작권을 설정해 놓지 않은 점도 한몫 했습니다. 코난 도일 친구인 로버트 바란 사람이 ‘셜로 콤즈’ 라는 짝퉁 소설을 냈을 정도입니다. 

참 양심 없는 양반입죠.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의 괴로 뤼팽 작품에 홈즈를 무능한 탐정으로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참 질투 많은 양반입죠.


홈즈가 첫 등장한 ' 주홍색 연구'와 한국 작가의 패스티시 작품 '경성탐정록'



유명 작가들이 홈즈를 차용해 쓴 작품도 꽤 됩니다.

1944년 엘러리 퀸과 존 딕슨 카는 패러디집 <셜록 홈즈의 재난>이란 책을 냅니다. 이에 코난 도일의 셋째 아들 에이드리언이 분노하면서 서점에서 책이 회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아버지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에이드리언은 직접 홈즈 시리즈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존 딕슨 카와 공동으로 1954년에 단편집 <셜록 홈즈 미해결 사건집>을 발표합니다. 책은 잘 팔렸다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 또한 짝퉁.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가족들조차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티븐 킹이 쓴 <닥터스 케이스>란 작품에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홈즈가 등장합니다. 왓슨이 사건을 먼저 해결한다니 아! 놀라운 반전. 홈즈가 아흔 넘게 산 것으로 설정해 그의 노년의 삶을 그린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도 유명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니콜라스 메이어의 <셜록 홈즈 7퍼센트의 용액>에서는 마약에 중독된 홈즈가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치료를 받는다는군요. 

홈즈가 개 이름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아예 주인공을 왓슨 박사와 악당 모리어티 교수로 설정한 작품도 있다니 홈즈의 인기를 실감케 합니다.


한국형 셜록 홈즈도 있습니다. 바로 한동진, 한상진 형제가 작년에 발표한 단편집 <경성탐정록>입니다. 

설정이 재밌습니다.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을 배경으로 열혈 조선 청년 설홍주와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러온 왕도손의 활약을 그렸습니다. 주인공 이름에서 바로 홈즈와 왓슨이 연상이 되시리라.
한국적 정서와 익숙한 지명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운수 좋은 날>, <광화사>같은 단편 제목들은 현진건, 김동인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국내작가 작품 중에서는 흔하지 않는 본격 미스터리물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미니시리즈 <셜록>이 1편 인기에 힘입어 내년에 시즌2가 나온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도 ‘국민 명탐정’ 한명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국민 캐릭터 ‘뽀로로’도 만들었으니 언젠가 가능하겠지요? 비유가 좀 거시기한감요^^;


사소한 태클; 베이커 거리는 부자 동네랍니다.
코난 도일이 홈즈를 썼을 땐 100번지까지 밖에 없다가 1930년대 들어 홀수 번지가 생겼답니다. 홈즈의 방은 온갖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명품 바이올린을 헐값에 구입한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만 불독도 키우고 허드슨 부인은 손님이 올 때마다 차를 내옵니다. 궁핍해 하숙 동거인을 구한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잃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홈즈와 떨어질 수 없는 소품이 사냥모자와 파이프(블로그 왼쪽 위 그림 참고)인데요.
원작에는 이것들에 대한 묘사가 명확하지 않은데 삽화가가 즐겨 그린 탓에 이미지가 굳어져버렸습니다. 홈즈처럼 멋을 아는 남자가 도시에서 사냥모자를 쓰는 일은 거의 없었겠죠. 파이프도 마찬가지로 연극배우인 윌리엄 질렛이 사용해 유명해진 것이랍니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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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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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뎅뎅뎅 2010.10.26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드라마 2편까지 봤는데요. 홈즈의 낭창낭창한 몸매와 까칠한 성격이 마음에 들더군요. 스마트폰으로 날씨 검색할 때 가끔 홈즈 생각을 합니다요. 쿄쿄~
    근데 M르블랑이었나요? 셜록 홈즈 철자를 바꿔서 혈록 쇼움즈인지 하는 탐정이 루팡이랑 대결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릴 때는 홈즈보다는 루팡 팬이었는데, 요즘은 루팡은 별로 안 땡깁니다.

    • 추리닝4 2010.10.27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 전철에서 <셜록>보다가 홈즈 그 놈 넘 멋지다면서 내게 문자 보낸걸로 아는데 기억하시는지 ㅎㅎ..나이 탓인지 홈즈고 뤼팽이고 다 싫고 걸그룹 <시크릿>이 최고라는^^;

  2. 최망최망 2010.10.26 2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근데 저는 언제부터인가 셜록 홈즈=이대근 국장으로 인식이 되어서, 홈즈만 보면 흠칫 놀래요. 언젠가 이국장이 남색 바바리 입고 긴 우산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계시는 걸 봤는데, 홈즈가 따로 없었다는...

    그나저나, 셜록 다운받아놨는데, 봐야겠네요.

    • 추리닝4 2010.10.27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바바리와 우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 국장과 홈즈는 싱크로율이 그다지^^; 요즘 현직 판사가 쓴 추리소설 <어둠의 변호사>시리즈가 반응이 좋은데 거기 고진이라는 꽤 멋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나와. 창백한 지식인의 느낌이랄까. 이 국장이 탐정이라면 그 캐릭터에 가까운듯(이 국장 이 댓글 보면 곤란하데^^;;;;)

    • 갈매 2010.10.28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닥 싱크로율이 높지 않다는데 한표!
      이 국장 요즘, 다른 블로그 탐방도 다니시는 듯.. ㅋㅋㅋㅋ 언젠가 보실지도~~~ ㅋㅋ

      오옹. 궁금하군요.. 어둠의 변호사를 비롯하여,
      저 <경성탐정록> 등등.

      저는 어릴 때 홈즈 시리즈 중 일부가 동화전집에 있었는데.. 그중에 <얼룩끈>을 읽다가 오싹오싹해서 잠도 못자고 덜덜덜 떨던 기억이.. ㅋ

  3. 카메라이언 2010.10.27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흐흐 저도 시즌 1 다 봤어요. 아 어찌나 재미있던지. 시즌 2 기대기대기대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집에 셜록홈즈 미해결 사건집 있어요. 경성탐정록은 얼마 전 다른 집에 입양보냈다는. 곧 2 나오겠죠? 나와야 하는데요? 어서 출판사에서 좀 출간 좀 해주셔야 할텐데요?

    그나저나, 홈즈를 오마쥬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994년부터 연재 중인 명탐정코난도 빼놓을 수 없죠. 모리어티교수를 연상시키는 검은 조직과의 끈질긴 인연이라던가, 도대체가 끝날 생각이 없는 듯한 단편위주의 에피소드하며 흐흐흐... 아서 코난 도일 경이 본다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합니다.

    • 추리닝4 2010.10.27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셜록 홈즈 미해결 사건집은 절반 정도 읽고 방치. 코난 도일이 안썼다니깐 그닥 집중하지 않게 되더라는. 기분탓이겠죠ㅎㅎ 경성탐정록과 같이 사진 찍으려고 방 다 뒤졌는데 그 책 안보이더라고요^^;..김전일이나 코난 참 재밌죠. 일본에는 트릭만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당^^

  4. 샐리* 2010.12.29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아, 저도 최근에 셜록 에피소드 3편을 끝냈습니다.
    시즌2를 기다리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재미있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