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4.27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1> 시리즈 (3)
  2. 2010.12.29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14> 겨울 (4)
  3. 2010.10.20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4> 야구 (4)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잃어버린 세계>의 속편을 쓸 생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룡은 두 작품으로 충분해요."

 - 마이클 크라이튼, 1995년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맛이 좋은 음식은 아껴 먹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차분하게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게 되고, 또한 다 읽은 다음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이 부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요. 그런데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간단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고르면 됩니다. 

추리소설은 시리즈가 많습니다. 굳이 속편이라는 표현을 하지도 않을 정도로 장편이나 단편을 막론하고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뒤팽이나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등 추리소설의 초창기에도  그랬듯 인기를 얻은 수많은 탐정은 대부분 많건 적건 여러 작품에 등장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우선이다’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본다면 소설에서 후속편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거나 낯익건 작품의 재미만 있으면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작품의 연속성은 작가와 독자에게 편리함과 친숙함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해 한번 인기를 얻으면 다음 작품에도 탄력을 받기 때문에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다만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서도 존 그리샴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리즈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가스실>과 <타임 투 킬>, <소환장>과 <불법의 제왕> 등에서 관련 사건이나 인물을 약간씩 언급할 뿐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작품에 연결성을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편을 쓴 것은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에 불과합니다(영화로는 후속편이 제작되었지만 그가 쓴 소설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요).

존 그리샴


그러나 많은 추리작가들이 하나의 주인공을 만든 후 계속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여성 작가 매저리 앨링엄은 독자 가운데 절반은 스토리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주인공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매력 있는 주인공을 창조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오래 이어진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해갑니다. 조르주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 경감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 또한 전형적인 나이든 사람의 모습(?)인 고집스러운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미키 스필레인의 시리즈 주인공인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초기 대단히 거칠고 직선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다소 조심스러워졌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이크 해머 시리즈 'The Big Kill'


그런데 작품의 발표 순서가 주인공의 활약 순서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셜록 홈즈 시리즈로, 많은 연구자들이 작품 연대기를 만들 만큼 뒤죽박죽 섞여 있지요. 예를 들어 <마지막 문제>에서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알려진 홈즈는 <배스커빌 가문의 사냥개>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홈즈가 폭포에 떨어지기 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홈즈와 쌍벽을 이루는  뤼팽 시리즈 역시 작품 발표순서와 작품 속의 사건 발생 시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기를 얻으면 독자들은 후속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전편을 원하기도 합니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는 <붉은 10월>(1984)이 성공하자 후속작인 <패트리어트 게임>(1987)을 썼는데, 여기에는 전작에서 잭 라이언이 영국에서 벌인 무용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수>에서 잭 라이언은 대학생으로 잠깐 등장하며 그의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티븐 킹은 딱 부러진 후속편을 쓰진 않았는데, 메인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가끔 과거의 이야기들과 현재의 이야기들이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주인공으로는 소설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심지어는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을 때도 있지요. <토미노커즈>(1987)의 한 대목인 ‘뱅고어에 사는 또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에서 ‘뱅고어의 어떤 작가’가 누구인지는 뭐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스티븐 킹의 '토미노커스'


인기 있는 시리즈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어집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언 플레밍의 전설적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일 것입니다. 1954년 <카지노 로열>로 세상에 등장한 제임스 본드는 작가인 플레밍이 1964년 세상을 떠나면서 끝나는 듯 싶었지만 플레밍 재단이 새 작가를 물색 끝에 선정한 존 가드너가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시리즈가 이어졌습니다. 가드너는 14편의 본드 시리즈와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 두 편을 쓴 후 70세가 되던 96년 새로운 작가 레이먼드 벤슨에게 본드를 넘겨줍니다. 본드에 대해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가졌다는 벤슨은 2002년까지 여섯 편을 썼고, 그 뒤를 이은 찰리 힉슨은 본드의 어린 시절을 그린 시리즈 여섯 편을 썼습니다(<실버핀>(2005)이라는 작품이 번역되어 있군요). 그리고 2008년 세바스천 포크스가 <Devil May Care>(2008) 한 편을 발표한 뒤 제프리 디버가 뒤를 이어 <Carte Blanche>를 오는 5월 말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프리 디버와 그의 첫 제임스 본드 시리즈 작품 'Carte Blanche'. 매우 기대됩니다^^

(본드의 팬이며 그에 대한 연구서 <James Bond Dossier>(1965)도 발표한 바 있는 킹즐리 에이미스가 1968년 로버트 마캄이라는 필명으로 007이 등장하는 <손 대령>을 내 놓았지만 재단의 인증이 없어 공식적인 시리즈 로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 명작의 속편을 현대에 새로 발표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원래 작품이 유명할수록 꽤 든든한 배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렛 미첼)의 속편 <스칼렛>(알렉산드라 리플리)이나 <레베카>(대프니 뒤 모리에)의 속편 <미세스 드윈터>(수잔 힐) 등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오페라의 유령> 속편이지요. <코마로프 파일>까지 주로 국제적 모략을 다룬 작품을 써 오다가 잠시 절필선언까지 했던 프레데릭 포사이스는 느닷없이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맨하탄의 유령(번역작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 2-에릭의 부활)>을 발표합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을 떨어뜨릴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옛 친구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구성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습니다.

프레데릭 포사이스


우리나라의 특성상 아쉬운 점은 좀 다른 이외국 작품을 읽을 때 호응이 없어서 더 이상의 번역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많은 시리즈가 이런 상황입니다. 후속작에서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때도 있고, 갑자기 시리즈 중간의 작품부터 읽게 되어서 작품 속 인간관계 및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팔리지 않는 책을 출판사에게 내 달라고 하기도 어려우니,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ㅠㅠ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등 작품이 완역된 작가는 정말 복받은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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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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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현제 2011.04.28 1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에서 변한 탐정 하니까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가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점성술사에서 감자기 뇌의학자가 되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장면 이해가 안되네요. 물론 중간 사이에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요...

  2. 평시민 2011.04.28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물 이야기를 하자면 며칠은 걸려야 되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김내성 선생님의 유불란, 김성종 선생님의 오병호, 노원 선생님의 하영구 및 최선실, 이상우 선생님의 추병태 경감 등을 들 수 있지요, 최근 갈호태와 강지성 콤비, 문달과 설천 콤비, 백용준 형사 등 시리즈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들이 고정 팬을 확보하여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시리즈물을 빨리 선보이고 싶습니다.

  3. 쏘댕기자 2011.06.1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갈호태 아저씨를 어여 다시 보고파요! ㅎㅎ
    그건그렇고 '맨하탄의 유령' 소설 자체는 괜찮았던 건가요? 뮤지컬은 엄청난 혹평이었는데...


흰 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이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패터 시의 사람들이
그해 겨울에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리려면 꽤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호그 연속살인>(1979)  -  윌리엄 디앤드리어

 

추리소설의 계절은 흔히 여름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작품 외적인 입장, 즉 ‘여름의 무더위를 쫓기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시장 구조적인 시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오히려 겨울 쪽이 매력을 갖춘 계절처럼 보이긴 합니다. 고전적인 수수께끼 풀이 추리소설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만이 가진 요소, 특히 눈은 훌륭한 배경 및 소재가 되곤 하지요.

올해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고 방정을 떨었더니 웬걸, 한바탕 쏟아지고 또 내릴 분위기네요


눈에는 다양한 특성이 있습니다.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등 많은 이름이 있을 정도로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가지각색이고 땅에 떨어진 후에도 녹거나 얼어붙거나 아니면 얼지도 녹지도 않고 어중간할 때도 있기 때문에 변화무쌍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작가들은 눈을 트릭으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사건의 중요한 배경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배경’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표현인데, 눈이 내린다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햇볕이 화창하다’, ‘이슬비가 내린다’ 등의 날씨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웬만큼 내린 눈은 흔적을 남겨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교통수단의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는 위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람 키 정도로 눈이 쌓이게 되면 발자국 트릭 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태풍이나 홍수처럼 주변 사물을 어디론가 날려 보내지는 않는다는 것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엄청난 폭설이 등장하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네 번째 장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프랑스의 칼레까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특급열차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열차가 폭설 때문에 한밤중 유고슬라비아 국경 근처의 철길에서 꼼짝 못하게 되고, 그 무렵 만원이던 1등석 침대차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기차가 멈춘 곳은 외진 곳이라 누구도 열차로 몰래 들어오거나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침대차 안에 타고 있던 열 세 명의 승객 중 누군가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승객 모두에게는 각각의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것 같지만 하필이면 그 열 세 명 중에 푸아로라는 명탐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로 사건은 뭐, 고비가 있지만 순조롭게 해결되지요. 이 작품에서는 폭설이 기차를 고립시키기 위한 배경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만, 독특한 범인의 설정은 이 작품을 영원한 걸작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승객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지는 명탐정 푸아로(중앙).


‘눈 속의 고립’이라는 상황은 범인이 당장 누구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어딘가로 도망치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탐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만약 악당 쪽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렇게 되면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공포소설이 되는 셈이지요. 스티븐 킹은 <샤이닝>(1977)과 <미저리>(1987)에서 그러한 무서움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이닝>은 한겨울동안 로키산맥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호텔을 관리하게 된 주인공 잭 토렌스가 이른바 오두막집 열병(Cabin Fever, 고립된 곳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신경증) 증세로 차츰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의 목숨마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미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외딴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만(호텔에 존재하던 유령 탓이었지요), 어쨌든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며칠도 아닌 몇 달 동안 꼼짝 못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습니다. 한편 <미저리>에는 유령보다 더 무서운 집착을 가진 여인이 등장합니다. 눈길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소설가 폴 쉘던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미저리 체스테인’의 팬인 애니라는 여인에게 운 좋게(?) 구조되지만 그의 행운은 당분간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아니, 그것은 행운이 아니었지요.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설을 써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바깥은 눈이 와서 도망갈 수조차 없고 난감할 따름입니다.

눈 속의 산장이 보이는 '미저리' 오디오북 커버


눈이 많이 내리는 때를 살펴보니 그것은 12월과 1월로 이어지는, 즉 ‘연말연시’라고 불리는 시점입니다. 1년 365일 중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그다지 특별한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점(해가 바뀐다는 것)을 맞이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의미를 두곤 합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화된 명절이 있고, 새해맞이 행사 역시 어느 나라에나 다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들뜬 사람들 사이에서 사고나 범죄는 발생하고, 때가 때인 만큼 당사자나 주변 사람은 평상시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을뿐더러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는 뭔가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밀실 상태의 방에서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되는 살벌한 분위기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L.A.컨피덴셜>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찰서 유치장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작됩니다. ‘피투성이 크리스마스’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과거의 정신적 상처와 야심을 숨긴 젊은 형사 세 사람의 운명을 크게 바꾸는 방아쇠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피투성이 크리스마스' 사건 - 영화 'L.A.컨피덴셜'에서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42번째 작품 <자장가(Lullaby)>에서는 10대 베이비시터 소녀가 새해 전날 살해됩니다. 살인을 주로 담당하는 형사들에게 사람의 죽음이란 그다지 드물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하필 이런 즐거운 때에 불행한 소식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전해 주는 일은 평상시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죽은 소녀의 부모에게는 이 날이 더 이상 새해의 전날이 아니라 딸의 기일(忌日)이라는 가슴 아픈 날로 돌변하는 것이니까요. 새해로 접어드는 새벽 3시 무렵 주인공인 카렐라 형사가 소녀의 집 현관을 노크한 후, 부모가 문을 열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하는 것으로 작가는 그 장면을 마무리 짓습니다. 독자들의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악마의 눈물>에서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무차별 총격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번이 아니라 그날 중 세 차례 더 학살극을 벌이겠다는 범인의 예고에 필적 전문가 파커 킨케이드를 비롯한 수사진이 막으러 나섭니다(시리즈 작품이 아니지만, 낯익은 인물이 깜짝 등장해서 즐거움을 주네요. 그 ‘낯익은 인물’은 연말인데도 아무 약속도 없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옛날 일을 한번 살펴볼까요? 코난 도일은 1887년 12월 <비튼>지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셜록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홍색 연구>를 발표했는데, 작품의 고료로 불과 25파운드밖에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도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실의가 컸습니다. 

셜록 홈즈가 이 잡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주홍색 연구>에 주목한 미국 잡지 <리핑코트>지가 도일에게 새 작품 원고를 청탁했고, 이때 쓴 두 번째 장편 <네 사람의 서명>은 1890년 1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푸대접받던 도일의 작품들은 드디어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운명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도일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가장 잘 탄 작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다만 <주홍색 연구>나 <네 사람의 서명>은 잡지의 연말 특집에 실렸어도 내용은 전혀 크리스마스나 새해 분위기와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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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10.12.30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한 눈사람 사건>이랑 <고리키 공원> 읽어보고 싶네요.
    눈사람 속에 시신을 숨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은 있는데 생각해보니 작품으로 읽어본 적은 없군요.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김전일 만화에서 눈사람(아니면 그냥 눈?)속에 시신 숨긴 이야기가 있었는 거 같아요.)

    지난 글 덕분에 이번 겨울에 <심플 플랜>을 재밌게 읽었습니다.(우와우와~ 스콧 스미스!)

  2. 카메라이언 2011.01.03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그리고... ... 눈+살인... ... 눈의 살인...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인데요? 호호 'ㅂ'



속고 속이는 죽음의 다이아몬드

                                  

탐정 짓은 그만하고 야구나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네 차례야.
                                                -<스트라이크 살인>(1984), 리처드 로젠

 

한동안 서늘한 가을 날씨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국 프로야구도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도 포스트시즌 경기가 벌어지는 중이고, 겨울이 되기 전에 모두 끝이 나겠지요.

여기서 잠깐. 일반적으로 운동장은 '그라운드Ground'라고 하지만 야구장은 '다이아몬드 Diamond'라고 합니다. 이유는 단순한데, 하늘에서 보면 각 루를 이어지는 내야 지역이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1980년대 후반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던 무키 윌슨은 야구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이유를 묻자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아내가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원했거든요."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계의 밀실 미스터리(?)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1994년 7월의 일이니 꽤 되었습니다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진 라몬트 감독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잘 아시겠지만 추신수 선수가 현재 소속된 팀입니다)와의 경기 도중 상대팀 간판선수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강타자 알버트 벨이 부정 배트를 쓴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심판은 벨의 배트를 압수해서 사무국에 보내기 전까지 심판 라커룸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심판 라커룸에 들어간 심판들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날 압수했던 벨의 배트 대신 그의 동료 폴 소렌토의 배트가 놓여 있었던 겁니다. 라커룸 문은 잠겨 있고 열쇠를 가진 것은 분명히 심판들 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심판들 중 누군가가 바꿔친 것도 절대 아니었습니다. 추리소설에 나올 만한 불가사의한 밀실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요?

배트가 수상하면 이렇게 검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과학수사 팀이나 명탐정이 나설 필요도 없이, 심판들은 곧 알아챘습니다. 동료 선수가 천정을 통해 라커룸에 들어가 다른 배트와 바꿔치기 한 것이었습니다. 상황은 금방 확인됐고, 인디언스 팀은 벨의 배트를 내 놓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 배트는 X선 검사결과 이물질, 즉 코르크가 들어 있는 것으로 판명돼 벨은 7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반 년쯤 지나 이듬해 춘계 훈련 때 인디언스의 투수 제이슨 그림슬리는 자신이 배트를 바꿔치기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처음에는 벨의 다른 배트로 바꾸려 했지만 모두 코르크가 들어 있어서 할 수 없이 소렌토의 것을 가져가야만 했다는 것이었지요.(미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실험한 것을 보면 코르크를 넣었을 때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부정방망이를 사용한 것은 어쩌면 헛수고였을지도?) 야구계의 밀실 미스터리는 이렇게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나저나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추리소설과 야구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억지를 써 본다면 몇 가지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규칙이지요. 야구를 비롯한 운동경기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어서 선수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하며, 추리소설 역시 유달리 규칙이 많기 때문에 작가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써야만 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약간 위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반칙왕’이나 ‘엉터리 작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경쟁입니다. 선수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심지어 직접 경기를 하지 않는 관중까지도 응원으로 경쟁을 합니다. 추리소설 속에서는 탐정과 범인사이에 대결이 벌어지지만, 그 바깥 - 즉 현실에서는 작가와 독자의 머리싸움이 벌어지지요. 작가는 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독자는 작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위해 꼼꼼하게 읽거나 심지어 메모까지 해 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씁니다.

이런 승부욕 탓인지 추리작가 중에는 야구팬이 적지 않습니다. 거장 엘러리 퀸(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입니다)은 단편집 <엘러리 퀸의 새로운 모험(The New Adventures of Ellery Queen)>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스포츠 소재 작품에 할애했는데, 그중 <사람이 개를 물었다 Man Bites Dog>(1940)는 월드 시리즈가 한창 벌어지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황금의 투타 콤비? - 어린 시절의 엘러리 퀸(왼쪽이 리, 오른쪽이 더네이) (1912년 촬영)


또한 걸작 단편 <특별요리(Speciality of the house)>를 쓴 스탠리 엘린은 브루클린 다저스(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사랑하고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증오하는 프로야구 팬(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관계는 미국 프로 스포츠 계에서 최고의 앙숙으로 꼽힙니다)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 구장 펜웨이 파크


또한 올해 작고한 로버트 파커는 자신이 살고 있는 보스턴의 프로야구팀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습니다. 사립탐정 스펜서는 <최후의 도박(Mortal Stakes)>(1975)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의뢰로 에이스 투수 마티 랩이 승부조작을 하는지 조사에 나섭니다. 여기서 스펜서는 야구장이라면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만한 곳이 없다고 극찬하는 대목이 있는데, 저도 가 본 적은 없지만 TV 중계 화면만으로만 보아도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포의 시구'를 하는 스티븐 킹.

보스턴의 팬이라면 스티븐 킹이 더 유명하겠군요. 그의 작품 치고는 '덜 무서운'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The Girl Who Loved Tom Gordon)>(1999)가 눈에 띄고(톰 고든은 레드삭스의 구원투수로 활약했는데 나중에는 뉴욕 양키즈로 팀을 옮깁니다), 베이브 루스의 저주가 깨지던 2004년 시즌을 다룬 <Faithful>이라는 논픽션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유명작가인 폴 오스터가 먹고살기 힘들던 무명시절 ‘탐정소설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1976)입니다. 살해 협박을 당하는 스타 야구선수가 나오고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냄새가 푹푹 풍기는 매력적인 작품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폴 오스터에게 큰 돈을 벌어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때 야구 카드게임도 고안해서 팔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야구 관련 추리소설이 많은 나라는 일본입니다. 일본은 프로축구 창설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계기로 축구의 인기가 높아졌지만 역시 최고 인기 종목은 ‘미국이 발명하지 않았으면 일본이 발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구입니다. 그러다 보니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 역시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번역된 야구 관련 작품으로는 고교야구선수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1989)가 있겠군요. 생각보다는 적은 것 같습니다.

일본 작가 중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면 구장에서 스타 선수가 살해되는 사건을 다룬 <4만 명의 목격자(四万人の目擊者)>(1959)를 쓴 아리마 요리치카(有馬賴義)를 들 수 있겠는데,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야구 입단 테스트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자비로 아마추어 팀을 창단해 감독 겸 투수를 맡았는가 하면 1960년대에는 대학야구팀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한 경력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야구 관련 추리소설은 정현웅의 <스타의 마지막 여름(<황제 살인>으로도 출간>(1986), 박청하의 <마운드의 틈입자>(1990), 이승영의 <코리안 시리즈 살인사건>(1992), 그리고 단편으로 문윤성의 <프로야구와 프로도박사> 등으로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닙니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이후 바람을 타고 잠깐 나오는 듯하더니 요즘은 보기 어렵네요. 좀 아쉽습니다.

한국 추리작가들이 쓴 야구 소재 작품들.


야구 시즌이 끝나면 팬들께서는 섭섭하겠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야구는 다시 시작합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시길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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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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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0.10.21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핫...야구와 추리소설이 이렇게 얽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카메라이언 2010.10.21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역시 앨러리퀸의 야구 소설(?)이 제일 먼저 나오는군요. 야, 정말 그런데 야구나 축구나 여러가지 미스터리를 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듯해요. 베이비루스 우주인설에 맞춘 추리물도 나올 수 있을 듯하고. 흐흐. 또, 전 명탐정 코난도 정말 좋아하는데(광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만 합니다만 주변에서 인정을 안 합죠) 이 이야기를 보면 코난과 가장 친한 친구(?)인 핫토리 헤이지가 각각 축구와 야구로 캐릭터를 표현합죠. 때문에 요 두 소년이 서로의 스포츠가 최고다, 하고 싸울 때란 참 즐겁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