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원작 그림이 가진 열정과 자연스러움- 즉 elan(열의) -은 흉내 낼 방법이 없지.
모사품은 아무리 원작과 닮았더라도 둘 사이에는 큰 심리적 차이가 있어.
모사품에는 진지함이 결여되고 너무 완벽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네.
   
- 파일로 밴스
<카나리아 살인사건> (1927) S.S. 밴 다인
 
인터넷 이용은 일상생활이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로군요. 그러면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지자 예전에는 드물었던 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표절 문제입니다. 여러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들을 '복사 및 짜깁기'해서 학교 숙제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네요. 이렇게 타인의 노력을 어려움 없이 가로채는 비양심적인 표절 행위는 학술 논문이나 음악,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문학 부문에서도 꽤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심지어 일간지 신춘문예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대신 인터넷의 엄청난 전파력 덕분에 빨리 들통나기도 합니다만

특히 추리소설은 작품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비슷한 트릭을 사용하기만 해도 오해를 살 여지가 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기발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다른 작품에 나온 비슷한 아이디어가 사용된 것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라고 해서 모조리 표절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추리소설이 표절로 의심받는 경우는 트릭이 비슷할 때, 혹은 상황이나 구성이 비슷할 때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은 범인의 의외성만으로 평가하자면 역대 최고 작품 중 하나인데, 놀랍게도 그보다 9년 전 거의 비슷한 트릭을 사용한 작품이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스웨덴 해군 장교이자 소설가인 새뮤얼 아우구스트 두제가 1917년 발표한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가 바로 그것인데, 일기 형식으로 서술된 이 작품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크리스티의 ‘세계적 명성’ 밑에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스미르노 박사의 일기


한편 엘러리 퀸은 크리스티의 작품 제목 때문에 집필하던 작품을 중단한 적도 있습니다. 제목의 표절을 피했다고나 할까요. 퀸은 서구의 전래동요 ‘마더 구즈(Mother Goose)’중에서 ‘10명의 인디언’을 제재로 삼아 <The Indian Club Mystery>라는 제목으로 집필 중이었는데, 크리스티가 먼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발표하는 바람에 도중에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각각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바꿔 범행을 저지른다’는 아이디어는 누구든 한번쯤 상상해 볼 수 있었는지 여러 작가가 사용했습니다. <태양은 가득히>로 유명한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가 데뷔작 <낯선 승객>(1950)에서 사용한 이 아이디어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A Penknife in My Heart>(1958)에서 다시 나왔습니다. 비슷한 소재라는 것을 알게 된 블레이크는 하이스미스에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프레드릭 브라운의 <교환 살인>(1962), 로렌스 블록의 단편 <핸드볼 코트에서 만난 이방인>(이 작품은 <낯선 승객>과 제목마저 흡사하군요)등이 나왔지만 이미 보편화된 소재라 별다른 시비가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TV 드라마 <CSI>에서도 이런 에피소드를 다루기도 했지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낯선 승객'


일본 추리소설계의 선구자인 에도가와 란포도 몇 차례 표절 시비에 휩쓸린 일이 있습니다. 그의 데뷔작이 된 단편 <2전 동화>(1923)의 원고를 읽은 잡지사 편집진은 ‘초보 작가치고는 너무 뛰어난 작품’이라 외국 작품의 아이디어를 베낀 것이 아닌지 잠시 의심했다고 합니다. 물론 소재가 일본어 암호였기 때문에 순수 창작물임을 인정받고 오히려 잡지사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 그러나 란포의 이름이 유명해진 뒤, 그의 단편 <화승총(火繩銃)>이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의 밀실을 다룬 단편 <둠도프 사건>(1911)과 유사한 트릭을 사용한 것이 알려지며 약간 표절 시비가 일었습니다. 그러나 란포의 해명에 의하면 <화승총>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15년 잡지에 투고했으나 채택되지 않은 사실상 그의 처녀작으로, 아이디어 자체는 그의 창작이 아니라 미국의 사건 실화집에서 얻은 것임을 밝히며 표절 시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런 모양의 화승총이었을까요?


트릭의 유사성은 판정이 매우 미묘해서 심사 기준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경마를 소재로 한 <짙은 갈색 파스텔(焦茶色のパステル)>로 28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오카지마 후타리는 1년 전 다른 작품으로 응모해 최종심사까지 올라갔다가 아쉽게 탈락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트릭의 유사성 때문이었지요. 1년 전의 심사위원들은 ‘마권(馬券)을 이용해 훔친 말의 몸값을 받으려 한다’는 트릭이 여류 작가 나츠키 시즈코의 단편 <5천만 엔짜리 남자>에서 쓰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독창성이 결여되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7년 후 유사한 트릭을 사용한 아베 사토루의 <사라진 항적(消された航跡)>은 요코미조 세이시 상 당선작으로 결정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확실히 줄을 잘 서야 세상살이도 편해지겠군요.

트릭의 유사성만큼은 아니지만 상황이나 플롯이 비슷한 경우도 드물지는 않은 편입니다.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나이가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동료나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증인들을 찾아 나서지만 증인들은 사라지거나 살해되며 차츰 집행 날짜가 다가온다…

음, 언젠가 읽은 것 같다고 기억하실 분도 계실 것 같군요. 이것은 서스펜스의 거장 윌리엄 아이리쉬의 대표작 <환상의 여인>과 조너던 라티머의 <처형 6일 전> 등 두 작품의 골격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만 소개해 놓으면 뭔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시겠죠. 아무래도 훨씬 유명한 아이리쉬의 작품을 라티머가 베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라티머의 작품이 무려 7년이나 앞서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이 두 작품은 소재만 비슷할 뿐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고 해결 방식도 각각 독창적이라서 읽어보신다면 표절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으실 겁니다.

영화 '환상의 여인' 포스터


표절로 보기 애매한 상황이 또 있군요. 자기 작품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죠. 코난 도일은 1924년 단편 <세 사람의 가리데브>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30여 년 전에 발표했던 <붉은 머리 클럽>(1891)과 <증권 중개인>(1893)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변형해서 쓴 작품이기 때문에 홈즈 연구자들의 불만을 제외하고는 별 논란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떨어진 도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이라 해도 이미 꽤 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표절 이야기로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 만화 <김전일>에서 사용된 것이 기억나는군요. 사실 이건 표절이라기보다 트릭을 그냥 갖다 썼기 때문에 주제에서 핀트가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시마다 소지는 이 사건에 대해 특별히 소송을 걸거나 하는 일의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유례가 없는 트릭이라고 자부하고 있어, 트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영상화등의 2차사용은 지금까지 거절해 왔다. 때문에 트릭을 유용하는 텔레비전 기획은 절대로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김전일>시리즈의 이 에피소드는 원작만화로는 볼 수 있지만(트릭에 관해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은 비디오 등에서 빠지게 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점성술 살인사건>은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만화나 드라마 등에서 시마다 소지의 허락을 당연히 받은 것으로 알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전해지긴 합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도용을 다룬 기사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작품에 대해 다 알면 좋겠지만, 전 세계의 추리소설을 모두 읽기는커녕 구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요즘 나온 새로운 트릭이라고 해 봐야 사실은 과거의 트릭을 약간 뒤틀어 변형한 정도에 불과한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야기의 핵심으로 삼지 않는 것이 좋다’는 영국 작가 H.R.F.키팅의 충고는 아이디어를 짜 내느라 고심하는 작가가 머릿속에 새겨두어야 할 만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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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2.10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절 시비 하니 절대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2008년 KBS <이야기 발전소>에 한 화가가 죽은 뒤 유령이 되어 다른 화가의 몸에 빙의하여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간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지어서 나갔고 좋은 점수를 낸 적이 있는데 그 날 시청자 게시판에 그 이야기가 MBC의 모 드라마와 내용이 거의 같다는 표절 의혹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드라마에 대하여 전혀 몰랐거든요. 다행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경험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그 드라마를 보고 표절하여 이야기를 냈다면 그건 제 양심이 아니라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2. 카메라이언 2011.02.14 0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헉 매회 요즘 제가 읽으려고 하거나, 읽었거나, 읽다 중단한 책들 이야기가 나와서 뜨끔뜨끔 한다니깐요. 'ㅂ'... ...;;;;; 이번엔 환상의 여인에서 흠칫. 아는 언니께 읽겠다고 4 개월 전에 얻어놓고 여전히 책장에 꽂아놓은 채 방치. (;;;) 이번에야 말로 홈스 패스티쉬 모음집 베이커가의 살인 끝까지 읽고 나면 읽어야겠어요. 'ㅂ';;; 카나리아 살인사건도 옆에 쌓아놓고 모른 척했는데 어서 읽어야겠 ;;;

    그나저나 베이커 가의 살인 책 보고 한 분께서 저도 써보라고 해서 함 써보려고요. ㅋㅋㅋ 잼날 것 같아요. ]서울에 사는 셜록홈스가 아니라 설록수(설록차??) 이야기라도? 탐정 설록수가 설록차 창립자를 살인자로 몰릴 위기에서 구해줘서 새로 나오는 생수 이름을 설록수로 지었다는 결론? ㅋㅋㅋ<--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야기의 핵심으로 삼지 말라는 이야기 방금 전에 보고서 이런다 ;;;;; 표절시비나 조심해야 ;;;;; 쿨럭 ;;;

  3. 허니문 차일드 2011.02.15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 문학동네에서 펴낸 <편집된 죽음>이란 책을 봤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콩쿠르상 수상이 결정되던 날 복수의 수레바퀴가 돌아간다는... (이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그 복수의 방법이 바로 표절시비입니다. 그 책의 원제가 바로 <별쇄본>이죠. 작가 하나 묻어버리는 게 일도 아니더군요. 내용 중에 바로 표절에 관한 의식이 있었느냐, 아니면 정신병에 의한 무의식 표절이냐는 내용이 나옵니다. 음악도 기본 몇 가닥 멜로다가 동일하면 표절판정이 나오는데 무의식 중에 나오는 표절도 무시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초이님도 대단하시네요. 이 글 한 편 쓰기 위해 얼마나 공부를 하셨을까요. ^^ 많이 보고 배우고 갑니다.


무슨 이름이 그래요?

주인공의 이름이 나의 취미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주제일지라도
그것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고경(苦境)에 빠진다.
     - 수필 <창백한 뇌수>(1939), 김내성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많은 고심을 하게 됩니다. 소재나 플롯은 물론 기본이고,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성격에서부터 사건 무대가 되는 배경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들 중 쉬운 것은 하나도 없지요.

헌데 언뜻 보면 등장인물의 이름 짓기는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뭐… 순간적으로 멋진 이름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것처럼 운이 좋을 때도 어쩌다가 있겠지만, 항상 그렇게 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인공의 이름은 작품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여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활자매체에서 등장인물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을 통해 독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아기 이름을 지어 보신 분이라면 고개를 끄떡이실지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작명하는 것은 동서양 작가들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추리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키 스필레인의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이름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깁니다. ‘마이크’라는 평범한 이름 뒤에 붙은 ‘해머(Hammer, 쇠망치)’라는 성은 그가 거칠고 강인한 남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그러고보니 ‘슬렛지 해머(Sledge Hammer, 대형 쇠망치)’라는 이름의 형사가 등장하는 뒤죽박죽 TV 시리즈도 있었습니다만…).

터프가이의 대명사 마이크 해머(TV 시리즈에서 대린 맥거번이 연기했습니다).


우리나라 작품의 등장인물 중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 비록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 김홍신 씨 원작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이었습니다. 원래는 ‘권총찬’이었다가 최종 단계에서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떤 식으로 이름을 지을까요? 아마 어감이나 의미를 고려해 지어낸 이름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멋지거나 독특한 이름이 실존한다면 작가는 그것을 빌려 쓰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주인공들만 살펴봐도 다른 곳에서 본 듯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의 이름은 코난 도일이 미국의 법률학자인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이름을 가져와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법률학자 올리버 웬델 홈즈


셜록 홈즈와 마찬가지로 영국 사람이며 국제적인 명성 또한 그에 못지않은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원작자 이언 플레밍의 눈에 우연히 띈 책 <서인도제도의 새들(Birds in the West Indies)>을 쓴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의 책


얼 스탠리 가드너가 창조한 명 변호사 페리 메이슨은 선배 작가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의 작품에 나오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의 이름에서 따 왔는데, 재미있는 것은 페리 메이슨이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지만 랜돌프 메이슨은 악덕 변호사라는 점입니다.

'악덕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로스 맥도널드가 창조한 사립탐정 루 아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나는 선배 작가 해미트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의 작품 <몰타의 매>에 등장했던 마일즈 아처의 이름을 빌렸다는 것이고, 자신의 탄생 별자리가 궁수(弓手-Archer)자리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맥도널드가 직접 밝힌 바가 없어서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습니다만….

존경의 뜻을 담은 주인공의 이름을 또 들자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館)’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 시마다 기요시(島田潔)가 있습니다. 이 이름은 등단시절부터 그를 후원해주었던 작가 시마다 소지(島田莊司)의 성과 그가 창조한 주인공 미타라이 기요시(御手洗潔)의 이름을 합성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미타라이 기요시라는 이름에는 좀 어이없는(?) 사연이 있더군요. ‘미타라이’는 절 등에서 참배자가 손을 씻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화장실, 즉 변소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마다 소지의 어린 시절 별명은 ‘벤죠 소지(便所掃除)’, 즉 ‘변소 청소’였다고 하는데 이 별명이 훗날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명탐정 이름의 기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미타라이'라는 이름에 이런 심오한 의미가….


미국 작가 로버트 파커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스펜서는 일반적 이름인 ‘Spencer’가 아니라 ‘Spenser’로 표기하는데, 이는 16세기의 시인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 1552-1599)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그런데 ‘스펜서’가 이름인지 성(姓)인지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독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또 있는데요, 앤드류 복스가 창조한 전과자 출신 탐정 버크 역시 성인지 이름인지 불분명하군요.

호크와 스펜서(오른쪽) - TV 시리즈 '스펜서'에서


이들은 사립탐정이니까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고 하지만, 콜린 덱스터의 주인공 모스 경감은 한동안 성 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많은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열네 번째 장편에서야 모스의 이름이 ‘엔데버(Endeaver)’라고 밝혀지면서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콜린 덱스터는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십자말풀이(crossword)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독자가 엔데버의 이름을 ‘end’와 ‘over’의 합성으로 넘겨짚어 해석해 그가 시리즈를 끝내거나 심지어 절필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예 이름이 없으면 편할까요? 대쉴 해미트는 하드보일드의 선구적인 작품 <붉은 수확>의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컨티넨틀 탐정사의 탐정이라는 의미인 ‘컨티넨틀 오프(Continental Op)’로만 불리는 이 중년의 독신 인물은 두 개의 장편을 비롯해 무려 28편의 중․단편에 등장하면서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탐정 '컨티넨틀 옵'


현대 작품에도 해미트의 착상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가가 있습니다. 빌 프론지니는 아예 ‘무명(無名) 탐정(Nameless Detective)’을 만들어 냈습니다. 프론지니는 이 40대 사나이의 여자관계에서부터 폐암이 겁나도 연신 담배를 피워 무는 강박관념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쓰지 않고도 솜씨 있게 묘사하고 있지요. 이 무명 탐정은 콜린 윌콕스와의 합작 <Two spot>(1978)에도 등장하는데, 윌콕스의 주인공 프랭크 헤이스팅즈 경사가 “빌(Bill)”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그런데 이 “빌”은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작가인 프론지니의 이름입니다).

작품에 잠깐 나오는, 즉 조연에도 못 미치는 인물들의 이름은 그냥 눈에 띄는 이름을 응용하는 것이 보통이라고도 합니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이름을 쓰거나 어떤 작가는 사람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책, 즉 전화번호부를 이용하기도 한다네요. 하지만 다작으로 유명한 아카가와 지로는 똑같은 이름이 계속 이어지는 전화번호부는 이용하기 불편해 잡지의 당첨자 발표 명단을 종종 이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백 편이 넘는 작품을 쓴 사람이니, 등장인물 숫자만도 엄청날 겁니다. 혹시 같은 이름이 있을지도…?

이름을 결정하는 방법은 작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너무 흔한 이름을 쓰지 말라는 것이죠. 이를테면 ‘홍길동’이나 ‘임꺽정’, 혹은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 당대의 유명인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는 유치한 방법을 쓴다면 망하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설마, 그럴 분은 없으시겠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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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1.26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탐정의 이름 하니 저도 생각납니다. 어렸을 적에 제가 어린이용 탐정소설을 쓰는 걸 본 제 사촌동생이 자기도 소설 쓰겠다며 자기 친구 이름을 딴 탐정이 주인공인 소설을 하나 썼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제가 만든 탐정에 그 이름을 붙였지요, 캐릭터 성격이나 외모 등은 다르지만요. 빨리 그 탐정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2. 레이 2011.01.26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마다 소지 님. ㅋㅋ
    제임스 본드, 어렸을 때 본드(접착제)라고 킥킥거렸는데 조류학자의 이름이었군요~

  3. 카메라이언 2011.01.27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타라이 기요시가 왜 이리 좋은가 했더니 변소여서였군요...아...어쩐지...넘...좋더라............(네이버 닉네임이 특급변소. 본래 이 변소는 변태완소의 줄임말로 카페 김종일의 경계문학의 초코소라빵님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마음이 들어 계속 쓰고 있 ;;;)

    저는 주인공 이름 윤해환은 고등학교 때 문학교과서에서 본 윤동주 아명이 마음에 들어 기억해 뒀다 피씨통신에서 고 3 때부터 필명으로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카메라이언 윤해환이라는 캐릭터 이름을 지은 건... 한 5 년 된 것 같은데요, 상당히 고민해서 지었던 듯해요, 정말.

    의도는 아니었지만, 사진 동호회 다니며 본 것들이라든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 메모하고, 취재하고, 직접 dslr 사용법 배우고, 어울리면서 스캔들도 뿌리면서(;;;) 카메라이언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출사다니면서 이런 출사지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서해안에 붉은 깃발의 섬 만들고, 사미사-사진에 미친 사람들 동호회 이름, 그 다음엔 동호회 시삽인 혁클베리-이건 실제로 한 동호회 시삽이시고 꽤나 유명하신 블로거이신 분의 예전 별명으로, 허락받고 빌렸어요- 정하고...(그 후로 글 쓴다고 동호회 안 나가버렸 ;; 열심히 활동하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배은망덕한 ㅡㅡ;;;;) 또 중간에 등장하는 반항야옹이는 제 옛날 다른 동호회 닉네임에다... 이야 정말 뭔가 상당히 설정이 많았네요. ;;;; 와, 엄청 덧글 길어졌다. ;;;;;

    주인공 이름들은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로 뭔가 복합적으로 (;;;) 만들고, 때문에 바꾸고 또 바꾸는데 그냥 인물들, 별 생각없이 짓는 인물들은 보통 눈앞에 보이는 책 저자 이름을 써요. (;;;;;)

  4. 이야기꾼 2011.01.27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 편하게 짓기로는 추리소설가 황세연을 빼놓을 수 없지요.
    온갖 한국추리소설가를 범인, 피해자, 목격자로 골고루 활용,
    작금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검색하면 '살인자 ***'으로 뜰 정도!

    대표적 인물로는 김성종, 이상우, 백휴, 서미애, 최혁곤, 한이...등등등...

    그러고 보니 드라마 작가 중에도 있네요...지화자, 배신남, 이런 이름으로 짓는 분이...


끊임없이 원고지를 채우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은 많이 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   마쓰모토 세이초


한국은 초겨울에 접어들었지만 중국 광저우에서는 아시안 게임의 열기가 한창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고 추리소설은 추리소설… 아, 딴 길로 잠깐 들어서는 바람에 갑자기 주제가 헷갈렸습니다.

지난번에는 서양의 다작 작가들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일본의 다작 작가를 소개할 차례네요.

스포츠야 어쨌든 간에 추리소설에서만큼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이 일본이 아시아 최강국임에 틀림없습니다. 수백 명의 작가, 또 그들이 끊임없이 발표하는 수많은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들을 꾸준히 사서 읽는 독자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일본 추리소설 시장이 불황이라 문고판 추리소설 초판을 1만부만 찍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왕년에는 3만부 정도 찍었다는데 반토막보다 더 줄어들었으니 사실 불황 소리 들을 만도 합니다만).

그런데 일본의 강점 중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바로 ‘끊임없이’라는 것입니다.

자, 일단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추리작가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1999년 <비밀>이 번역된 이래 40여 편이 출간되었고, 미야베 미유키는 2000년 <화차> 이후 30여 편이 나왔습니다. 온다 리쿠 역시 2005년 <밤의 피크닉> 이후 30여 편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오사와 아리마사는 90년대 중반만 해도 여러 편이 나왔지만 요즘 '한국에서 인기 높은' 작가는 아니어서 현재 유통되는 작품은 <신주쿠 상어> 하나뿐이로군요. 어쨌든 당장 이 네 사람의 작품만 구한다고 해도 1백편이 넘으니 꽤 많은 양입니다.


다작 작가는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

 

그럼 일본에서의 출간 상황을 조금 살펴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방과후>로 등단한 이래 25년 동안 70편의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에세이 포함해서). 해마다 세 권 좀 못미치는 셈이네요. 1987년 데뷔해 1989년 <퍼펙트 블루>를 처음 출간한 미야베 미유키는 21년간 47권의 단행본을 출간해 연간 2.2권을 기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다 리쿠는 1992년 <여섯 번째 사요코>이래 18년간 45권을 냈습니다(연간 약 2.5권). 가장 연장자인 오사와 아리마사는 1978년 데뷔해 32년간 76권을 썼습니다(연간 약 2.3권). 우리나라 같았으면 꾸준히 많이 쓰는 작가로 인정할만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들을 다작 작가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써야 '좀 많이 쓴다'고 할까요?

진짜 다작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기 전에, 적게 쓰는 작가는 누가 있나 잠깐 살펴볼까요?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가 번역된 바 있는 노리츠키 린타로는 자신의 글 쓰는 페이스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는 22년동안 장․단편집 16권에 평론집 3권을 썼습니다.

신본격 추리작가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시마다 소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장편을 1년에 열 편씩은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시마다 소지는 열심히, 끊임없이 글을 쓰라는 의미에서 한 이야기였겠지만, 전업 작가로 나서려면 그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겁니다(시마다 소지 역시 80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럼 일본 추리작가 중에서 최고 다작 작가 넘버 원은 누구일까요?

올해 들어 여러 편의 작품이 한꺼번에 번역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입니다.
그는 1976년 등단한 이래 2008년에는 <드라큐라성의 무도회>를 출간하면서 오리지널 저작물이 500권에 도달했고(1년 평균 약 15권), 지금은 대략 530권쯤 되는군요. 누적발행부수는 3억 부를 넘어섰습니다.
<삼색 고양이> 시리즈는 장 단편집이 무려 40권을 넘겼으며 그 외에도 <세 자매 탐정단>, <하야카와 가족>, <4문자 숙어> 등 20여 가지나 되는 다양한 시리즈물을 쓰고 있습니다.

‘결말을 정하지 않고 글을 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마구 쓰는 것 같지만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수수께끼 풀이 형식의 추리소설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한창 때는 한꺼번에 여러 곳에 연재를 했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서재에 각 작품의 등장인물 일람표를 붙여놓았다고도 하는군요.


현역 최다 발표 작가, 아카가와 지로


아카가와 지로와 쌍벽을 이룰 만한 작가는 니시무라 교타로인데, 1963년 데뷔한 그의 저작물은 2010년 중반 현재 470권에 다다랐으며, 누적 발행부수는 2억 부 이상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도츠가와 경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열차나 관광지를 무대로 한 것이 많아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독특하게도 이들 두 사람과 오사와 아리마사는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원고지에 펜으로 쓰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기계보다는 ‘손으로 쓰는 것이 빠르다’는 것이 아카가와 지로의 주장입니다. 이분들이 손으로 쓴  것을 입력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겠군요.


원고를 '손으로 쓰는' 니시무라 교타로



엄청난 집필 능력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과거의 작가들도 있습니다.

르포라이터이자 사회파, 하드보일드, 포르노 작가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던 카지야마 도시유키(1930~1975)는 한창 전성기이던 1971년에는 주간지 연재 6개, 신문연재 2개, 월간지 연재 2개, 그리고 소설 전문지에 많은 작품을 기고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매달 원고지 1천-1천2백매를 썼으며, 이틀 사이에 252매를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원고지 규격이 일본에서는 4백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원고 분량을 한국 원고지 분량으로 계산하려면 두 배를 해야 됩니다). 

물론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 같은 기기가 없던,  손으로 쓰던 시절이지요. 그의 조수였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빨리 쓰면서도 글씨는 깨끗했으며 틀린 글자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가 구상하던 마지막 작품 <적란운(積亂雲)>은 8천매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예정하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사사자와 사호(1930~2002)는 야쿠자와의 싸움, 교통사고, 자살미수 등으로 여러 번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만 그 와중에서도 매월 1천 2백에서 1천 5백매씩 원고를 쓰면서 평생 4백권 출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목표에는 못미쳤지만 380권(마지막 작품은 미완성이었는데 그와 친분이 있던 후배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완성했습니다)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입니다.
그가 첫 작품을 쓴 것은 보통 작가들보다 훨씬 늦은 40살이 되어서였습니다. 늦게 데뷔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할 일은 많다. 시간과의 경쟁이다’라고 하면서 한 달에 1천매씩 쓰는 한편 끊임없이 자료조사와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러기를 40년, 80세가 될 때까지도 정력적인 집필을 한 그는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고대사, 현대사까지 파헤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작품 수는 솔직히 세어 볼 엄두가 나질 않는데, 일본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보니 2,224건이 검색되는군요. 저서 목록만으로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것 같습니다.


기차 역에서 알리바이 트릭을 구상중인 마쓰모토 세이초

원고지 한 장 쉽사리 못 채우는 입장에서 위에 언급한 작가들은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질 않는군요. 마쓰모토 세이초가 ‘노력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대부분은 운이다’라는 언급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 말이 평범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팔자에 맡기라는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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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0.11.18 0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럴 줄 알았어 ;;;;; 역시나 대망의 1위는 아카가와 지로 님이로군요. ㄱㅡ;;;;;;;;;;; 아우 정말, 일 년에 장편 열 편에서 시마다 소지님 미워지고 으흑흑... 이 시간에 혼자 막 울분을 토하다 갑니다. 아우 어서 읽고 써야겠어요.

  2. 이야기꾼 2010.11.18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훗...
    부러우면 지는 거다...

  3. 블레이드 2010.11.19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 저도 일년에 세권쯤은 쓸 수 있습니다. ㅡ.ㅜ;;; 문제는 5백권을 쓴다고 해도 3억권을 돌파할 자신과 능력이 없다는거죠. 저도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님과 같은 의견입닏. 능력과 여건이 되면 쓸 수 있을만큼 써야죠. 다..다만 팔리느냐가..ㅜ.ㅜ;;;

  4. 평시민 2010.11.19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소설 쓰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쓰면서 '적어도 1년에 한 권!'이라는 목표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들을 공모에 냈다가 모두 미역국 끓이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단편을 쓰면서 질을 높이는 훈련을 했고 이제 다시 장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양과 질 모두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름 뒤에 숨어있는 비밀


"난 필명이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 웨스트레이크가 한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는, 맑은 날에는 그가 글을 썼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스타크가 일을 떠맡았다고 했습니다." 
                                     -<다크 하프 The Dark Half>(1989), 스티븐 킹

자기의 본래 모습조차 잊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괴도 아르센 뤼팽은 각각의 변장에 어울리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마 열 개는 충분히 넘은 것 같지만 스무 개까지는 안 되는 것 같네요. 뭐,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이니까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마는 너무 많으면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테지요.

그런데 영국의 추리소설가 존 크리시(John Creasey)는 비록 얼굴 생김새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없었을망정 이름의 숫자는 뤼팽을 압도합니다. 추리소설을 쓸 때는 존 크리시를 비롯해 고든 애쉬, 패트릭 길, J.J.매릭, 제레미 요크 등을 사용했으며 웨스턴 소설(서부극 소설입니다)을 쓸 때는 텍스 라일리, 지미 와일드, 켄 레인저 등, 그리고 로맨스 소설을 쓸 때는 마가렛 쿡, 엘리제 퍼캠프스 등 여성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품 표지에 올라간 이름은 무려 28개,그리고 6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존 크리시 - 스물여덟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실제 이름 대신 쓰는 가짜 이름은 범죄자들이 사용하면 가명(假名), 연예인들이 사용하면 예명(藝名), 작가들이 사용하면 필명(筆名) 등 다양하게 일컬어지는데(그러고 보니 이름 자체에도 다양한 이름이 많군요), 작가들이 필명을 쓰는 이유는 본명이 추리소설에 별로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거나, 유명인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하다던가, 발음이 어렵다던가, 혹은 이름을 숨기고 싶다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작가인 케네스 밀러(Kenneth Millar)는 추리소설을 쓰는 아내 마가렛 밀러(Margaret Millar)보다 늦게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네 권의 작품을 발표한 후 이미 유명했던 아내의 작품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존 로스 맥도널드(John Ross Macdonald)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유명 추리작가 존 D.맥도널드(John D.MacDonald)와 혼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그가 선택한 이름은 로스 맥도널드(Ross Macdonald)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그는 하드보일드의 거장이 되었고, 지금은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요. 역시 사람의 앞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의 계관 시인이며 옥스포드 대학 교수였던 세실 데이 루이스(Cecil Day-Lewis)는 낡은 지붕의 수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즐겨 읽던 추리소설을 직접 쓰기로 했는데, 본명으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워 니콜라스 블레이크(Nicholas Blake)라는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처녀작인 <증거의 문제(A Question of Proof)>(1935)가 성공하면서 작가가 누구인지 금방 밝혀졌으나, 평생 본명으로는 추리소설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스티븐 킹은 웨스트레이크의 작품 이미지에서 착상해 <다크 하프(The Dark Half)>(1989)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소설가 새드 보먼트(Thad Beaumont)는 조지 스타크(George Stark)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범죄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 이름은 바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Donald Westlake)의 필명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에서 따온 것입니다. 웨스트레이크는 본명으로 <뉴욕을 털어라 (The Hot Rock)>(1970)와 같은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작품을 쓰지만 스타크란 필명으로는 <인간 사냥 (The Hunter, 리 마빈이 주연한 <포인트 블랭크 Point Blank>, 멜 깁슨 주연의 <페이백 Payback> 등 두 차례나 영화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1962)과 같은 어둡고 폭력적인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웨스트레이크의 필명은 스타크 이외에도 앨런 마셜, 터커 코우 등 15개가 더 있습니다.

오늘은 맑은 날인가요 궂은 날인가요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두 명이 함께 작품을 쓸 때면 대개 ‘누구와 누구’라는 식으로 쓰지만, 필명 하나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국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떠오르네요. 작품 속 탐정의 이름이자 작가의 이름이기도 한 엘러리 퀸은 사촌 형제 사이인 프레드릭 더네이(Frederic Dannay)와 맨프레드 리(Manfred B. Lee)의 합작 필명이란 것은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하지만 ‘더네이’나 ‘리’도 본명이 아닌데, 그들의 원래 이름은 대니얼 네이던(Daniel Nathan)과 맨포드 레포프스키(Manford Lepofsky)입니다. <로마 모자의 수수께끼>로 데뷔한 그들은 바나비 로스(Barnaby Ross)라는 필명으로도 <Y의 비극>등의 걸작을 발표한 뒤, 이름이 밝혀지기 전까지 퀸과 로스로 각각 행세하며 장난기 넘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컴퓨터의 덫(コンピュ-タの熱い罠)>(1986)을 쓴 오카지마 후타리(岡嶋二人)는 이름에서부터 ‘두 사람(二人)’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의미 그대로 도쿠야마 준이치(德山諄一)와 이노우에 이즈미(井上泉) 두 사람의 합작 필명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은 성(性)을 숨기기 위해 필명을 쓴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처럼 여겨지지만 20세기에만 해도 여성 작가들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인 미스터리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남자 이름을 써야만 했습니다. 영국 여성작가 루시 비어트리스 맬리슨(Lucy Beatrice Malleson)은 앤소니 길버트(Anthony Gilbert), J.키머니 키스(J.Kimeny Keith)라는 필명으로, 미국 시카고 출신의 여성작가 조지애너 앤 랜돌프(Georgiana Ann Randolph)는 크레이그 라이스(Craig Rice), 마이클 배닝(Michael Venning)이라는 남성적인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지요.

필명은 아니지만 영국 작가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Phyllis Dorothy James)는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위해 약자를 써서 P.D.제임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우리나라에 번역된 어느 작품에서는 P.D.를 Ph.D로 오해했는지 ‘제임스 박사’라고 소개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야구광인 오오이 히로스케(大井廣介)는 타지마 리마코(田島莉茉子)라는 이름으로 <야구 살인사건(野球殺人事件)>이라는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여성 작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1930년대 활약한 미국 작가 풀턴 아워즐러(Fulton Oursler, 1893-1952)는 추리소설을 쓸 때는 이름을 앤소니 애봇(Anthony Abbot)이라는 필명으로 바꾸고, 작품은 모두 ‘about’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 제목이 모두 ‘A’로 시작되기 때문에 도서관의 10진 분류법에 의해 정리하면 항상 목록 앞부분에 오도록 한 것이지요. 이와는 좀 다르지만, 본명이 재니스 영 브룩스(Janice Young Brooks)인 미국의 여성작가 질 처칠(Jill Churchill)은 알파벳 순으로 진열된 서점 책꽂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근처에 자리 잡기 위한 필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필명은 어떤 방법으로 지을까요?

존 크리시가 기디언 경감 시리즈를 발표할 때 썼던 ‘J.J.매릭(J.J.Maric)’이란 필명은 자신의 이름 존(‘J’ohn), 부인 진(‘J’ean), 두 아들 마틴(‘Mar’tin)과 리처드(‘Ric’hard)등 가족 이름을 합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신데렐라의 함정(Piège pour Cendrillon)>(1962), <긴 일요일의 약혼식(Un long dimanche de fiançailles)>(1991)등의 작품이 소개된 프랑스 작가 세바스띠앙 자프리조(Sebastien Japrisot)의 본명은 장 밥티스트 로시(Jean-Baptiste Rossi)인데, 그는 자신의 이름 철자 순서를 바꿔(애너그램 anagram이라고도 합니다) 새 이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내 추리작가 중 가장 독특한 필명을 가진 분을 꼽아보자면 바로 원로 추리작가인 노원 선생님입니다. 원래 언노운(Unknown: '알려지지 않은','알 수 없는')을 한글로 차용한 안노운(安老雲)을 필명으로 사용하려 했다가 더 짧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노원(No One: 한자명은 盧媛→盧遠→魯元으로 세 차례 바뀝니다)’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단편 <미스터리 클럽의 살인>에는 안노운 경감이 등장해 한 가닥 흔적을 남기고 있지요.

'안노운'이 되실 뻔한 노 원 선생님


일본 추리문학계의 거두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의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인데, 에드거 앨런 포우의 이름과 흡사하게 들리는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추리소설의 원조인 포우의 이름을 빌린 작가답게 그는 일본 추리문학계의 선구자로서 추리작가협회의 조직 및 위상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요즘 눈에 띄는 독특한 필명의 작가는 <불야성(不夜城)>(1996)으로 알려진 하세 세이슈(馳星周)입니다. 그의 필명은 국내 독자들에게 일본식 발음으로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한자를 거꾸로 읽어보면 옳커니 할 독자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세 세이슈는 홍콩 영화의 팬인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주성치(周星馳)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자기의 필명으로 삼은 것이지요. 코믹한 배우의 이름을 빌리긴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웃음기라고는 거의 없이 어둡고 진지합니다.

성공하려면 이분에게 이름을 얻어가야... 시마다 소지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는 <점성술 살인사건(占星術殺人事件)>(1981)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신본격(新本格)작가들의 대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인 작가들을 추천하고 독려했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사건>을 쓴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작가 우타노 쇼고(歌野晶午), <살육에 이르는 병>의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我孫子武丸),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郞)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시마다 소지는 점성술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성명학(姓名學)에도 일가견이 있어 이들의 필명을 다 지어주었다고 하는군요.

그나저나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작품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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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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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뎅뎅 2010.10.28 1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저도 주성치 왕팬인데. 필명은 하나도 없는 저는 한때 별명이 한 스무개남짓 됐던 적도 있습니다. 실없는 오라버니가 저를 닥치는대로 부르다가 그만... 그때 다 적어나 둘 걸, 지금은 대여섯개 밖에 생각이 안나요.

    • 추리닝4 2010.10.29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성 자자한 그 오라버니 어릴때부터 언어유희를 꽤 즐기셨군. 합류걸님^^; .. 다른 얘기지만 나는 네이버에서 '최코치'란 닉네임을 쓰는데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 관련 일 하는 사람인 줄 알더라는 ㅠㅠ

  2. 갈매 2010.10.28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마다 소지!
    재밌네요. 우타노 쇼고며 아야츠지 유키토의 필명을 지어줬다니. 이들의 이름이 다 필명이었던 거군요.
    저도 좋은 필명 하나 얻으면 글이, 팍팍 써지려나??

  3. 카메라이언 2010.10.30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할아버지의 소설 '뉴욕을 털어라'와 '페이백'은 와앗, 정말 거리가 있는데요! '뉴욕을 털어라'는 정말 가볍던데! 새삼 놀랍니다. 아아, 그나저나 시마다 소지 넘넘 좋아하는데 저렇게 생기셨구나. 사진은 처음 봤어요. 와 멋져멋져 꺅꺅!

  4. 이야기꾼 2010.10.30 1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명하면 <류삼> 씨라는..ㅎㅎ
    그나저나 요새 류삼씨는 뭐하시나...

  5. 붕붕 2010.11.05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류삼', '삼류'...
    아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필론 2010.12.08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ill Bass와 John Jefferson이 한팀으로 Jefferson Bass란 이름으로 Body Farm 시리즈를 내는것이나,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캐슬의 캐릭터가 실제 작가처럼 책을 낸 Richard Castle의 경우도 특이한 경우인것 같습니다.

    • 추리닝4 2010.12.09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리처드 캐슬 이름으로 출간하는 아이디어는 괜찮은 것 같아요..극중에서 함께 포커 치던 제임스 패터슨 옹이 생각납니당 ㅋㅋ 필론님 블로그와 링크 완료^^

    • 필론 2010.12.09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임스 패터슨이 (시즌 2에서는 마이클 코넬리가)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것도 드라마 캐슬의 매력인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