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남자보다 훨씬 위험한...

모든 여자들은 마음 속에 방탕함을 가지고 있다.
 <도덕론>(1735) - 알렉산더 포프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악녀들을 이야기할 때면 떠오르는 경구(驚句)가 두 개 있습니다.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와 “여자를 먼저 쏘아라”라는, 여성들에게는 틀림없이 기분 나쁠 살벌한 문장들이지요.

영화 'Deadly is the Female'

현실 사회에서야 어쨌든, 추리소설에서만큼은 적어도 ‘범죄 뒤의 여성’이 거의 필수적 요소입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남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의 심리적인 배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간에 대부분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지요(물론 여성들이 범죄조직의 두목이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닙니다^^). 게다가 요즘 작품들에서는 직접 범죄자로 등장하는 여성들도 많아졌습니다. 다만 여성이 사이코 연쇄 살인마로 나오는 경우는 공포소설 이외에서는 보기 힘든데, 이것은 FBI의 사건사례 분석 결과 연쇄살인범의 대부분이 20~30대의 백인 남성이라고 하는 점에서 납득이 가는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예외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여성작가 첼시 케인은 미모의 연쇄살인범 그레첸 로웰을 등장시키는 3부작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 뒤에 숨겨진 살인본능… 엇박자처럼 보이지만 뭔가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작가 첼시 케인(물론 왼쪽).

한편 “여자를 먼저 쏘아라”라는 말은 서독의 테러 진압부대에서 신입 대원에게 내려진 지시사항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 테러리스트들을 연구한 같은 제목의 책이 국내에도 번역된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여성 테러리스트들은 사람을 총으로 쏘는데 망설임이 거의 없으며, 남성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또한 수십 명을 죽인 여성 테러리스트들이라고 해서 광기 어린 인간인 것도 아닙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이 평범한 모습을 가진 그들의 정신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테러 행위 자체를 임무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팜 파탈(Femme Fatal)’이라는 단어는 소설보다는 영화의 선전문구에 힘입어 낯익게 된 것 같습니다. 좀 아쉽다면 어느덧 ‘팜 파탈 = 악녀’의 공식이 되어버린 것이죠. 사실 그렇게 좁은 의미가 아니라 ‘운명의 여인’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요.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매력을 지닌 여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운명의 여인’이라는 말은 남성의 이상형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격렬한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거짓말도 잘 하지요. 또한 묘하게도 미인이 많습니다.
추리소설에서는 남성을 파멸로 몰고 가는 여성이지만 반드시 사악한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단순한 여자 범죄자를 팜 파탈로 볼 수는 없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현실적인 만큼 도둑이라는 불확실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지요.
과거에도 여성 범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추리소설에서 ‘팜 파탈’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작품이 탄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쉴 해밋의 <몰타의 매>에서는 브리짓 오쇼네시라는 매력적인 여인이 탐정 샘 스페이드를 복잡한 사건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운명의 여인, 브리짓 오쇼네시(메리 애스터가 연기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에서는 덩치 큰 은행 강도 무스 말로이와 그의 옛 애인 벨마 때문에 탐정 필립 말로우가 꽤 고생을 하지요. 얼 스탠리 가드너의 <벨벳 손톱 사건>에서는 변호사 페리 메이슨이 의뢰인인 버타 부인의 거짓말 때문에 살인 혐의를 받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미지의 여인 때문에 사건 속에 휘말리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묘하게도 하드보일드 탐정들에게는 - 일부 가난한 탐정들을 빼고는 - 흔히 착실한 여비서를 거느리고 있어서 작품에 등장하는 악녀들이 한층 더 사악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성들을 악역으로 만드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는 결과가 되므로 작품들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남자들만을 범인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작품에서 악한 여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녀의 작품 중 법정 미스터리인 단편 <검찰측 증인>에서는 ‘운명의 여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다른 운명의 여인 크리스틴(마를레느 디트리히 분)-영화 '검찰측 증인'에서

90년대의 작품 중에서 기억에 남는 악녀로서는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에 나오는 행크의 아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평범한 여인인 사라가 떠오르네요. 그녀는 직접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고 범죄에 가담하지도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사건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악녀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그들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매력적인 악당도 많지만, 악녀는 더욱 매력적이고 어디서나 돋보일 겁니다. 그런 매력이 없다면 남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들은 언제라도 누군가를 파멸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인 만큼 소설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좋겠군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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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9.30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팜므파탈은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죠, 글쎄요,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에 나오는 그 환상의 여인은 팜므파탈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지나가다 2011.10.02 1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시민님// 환상의 여인은,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참고인을 의미할 뿐 결코 팜므파탈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원제도 phantom lady이지요. 결코 fantastic lady라던가 attractive lady 같은 게 아닙니다. 이 블로그의 내용과는 무관한 댓글을 다신 것 같아 한마디 적어봅니다.

  2. 평시민 2011.10.03 2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잘못 알았군요,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 추리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수수께끼의 여인 하면 '환상의 여인'이 먼저 생각납니다. 하하하.


그들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추리소설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휴가중인 형사는 절대 무리하지 않습니다.
- 밥 이든
- <중국 앵무새>(1926) / 얼 데어 비거스

 

어느덧 여름입니다.

일년 사계절 중에서도 유독 휴가철이라고 불리는 계절이기도 하죠. 나머지 계절이 휴가를 즐기기에 모자랄 것은 없겠지만 뜨거운 한여름보다는 못하기 때문일까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데다가 설날이나 추석 등의 명절 연휴가 있어서 보통 직장인들의 여름휴가는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 정도지만 외국, 즉 서구의 여름휴가는 훨씬 긴 편입니다.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은 바캉스라는 단어도 원래 제법 긴, 즉 최소한 한 달 이상의 휴가를 의미한다는데, 서구 쪽은 이렇게 기간도 긴데다가 타국으로의 여행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덕택에 유명한 휴양지나 이국적인 장소를 무대로 한 추리소설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덕분에 명탐정들은 휴가지에서마저 골치 아픈 일과 마주치곤 했지요. 요즘은 무선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혹은 족쇄일지도?) 탓에 휴가를 떠나서도 일한다는 분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만이라도 범죄로부터 떨어져 쉬고 싶어 하는 명탐정들에게도 그런 비슷한 일은 예외 없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임에 틀림없겠지요. 사건이 없으면 명탐정도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휴가는 작품 속의 탐정들보다 추리소설 초창기의 작가들에게 더 필요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면 많은 돈을 벌어 인생의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요즘 작가들과는 달리 별로 수입이 좋지 않았던 옛날 작가들은 고생만 하다가 요절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에밀 가보리오는 신문에 매일 연재를 했는데, 하루치 연재 분량이 거의 짧은 단편 분량과 맞먹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담이 만만치 않았고, 결국 과로로 인해 40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이란 말은 언제나 허망하긴 합니다만, 만약 그가 쉬엄쉬엄 글을 쓰면서 오랜 기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더라면 영국보다 프랑스에서 추리소설 선풍이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에밀 가보리오

탐정들 중 가장 긴 휴가를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셜록 홈즈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코난 도일은 명탐정 홈즈 시리즈를 쓰는데 지친 나머지 홈즈가 범죄의 화신 모리어티 교수와 스위스의 폭포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함께 떨어져 죽은 것으로 끝나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홈즈 팬들의 반발이 너무 크자 도일은 생각을 바꿔 홈즈가 운 좋게 폭포에 빠지지 않고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설정했으며, 공백 기간인 1891년부터 1894년까지 티벳과 페르시아, 이집트 등을 여행한 뒤 유럽을 거쳐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하여 후속 작품과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3년 동안의 공백은 나중 홈즈의 모방 작품을 쓴 작가들에 의해 갖가지 이야기, 즉 티벳에서 설인(雪人)의 정체를 밝혔다거나 유럽에서는 여배우 아이린 애들러와 눈이 맞아 아들을 하나 두게 되었다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문자 그대로 쏟아져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다양한 홈즈 배우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행을 무척 즐긴 데다 고고학자 맥스 맬로윈과 결혼한 덕택에 젊은 시절에는 1년의 1/3 정도를 탐사․발굴 여행으로 보냈습니다. 크리스티는 이러한 잦은 여행을 바탕으로 하여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메소포타미아의 살인>(1936), <나일 강의 죽음>(1937), <백주(白晝)의 악마>(1941)등 휴양지나 해외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작품을 여러 편 썼습니다. 이들 작품들의 기본적 특징을 들자면 대부분 엘큐울 푸아로가 등장하는데, 크리스티의 또 다른 주인공 미스 마플은 워낙 마을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국, 그것도 중동까지 보내기는 어려웠겠지요. 그렇지만 미스 마플은 <카리브 해의 죽음>에서 서인도 제도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칩니다. 사건 수사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데 참, 복도 없지요.

이집트를 관광중인 애거서 크리스티(오른쪽)

영국의 여성작가 조이스 포터가 만들어 낸 괴짜 주인공 윌프레드 도버 경감은 주인공 치곤 무능한(?) 편이지만, 다른 명탐정들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버 4 – 절단>(1967)에서 런던 경찰청의 도버 경감은 여름휴가를 떠나는 도중 하필이면 아내가 자살하는 사람을 목격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맡게 됩니다. 무척 심통을 부리던 도버 경감은 그의 직속 부하도 휴가를 떠나다가 현장에 끌려오다시피 나타난 것을 보고 위안을 삼으면서 심술궂은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죠. 

역시 영국의 여성작가 크리스티애너 브랜드의 <위험한 여로>(1955)는 제목에 걸맞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카프리 섬이라는 이탈리아 근처의 여행지에서 관광객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코크릴 경감은 휴가를 즐기러 나왔다가 연속적인 살인사건과 마주칩니다. 말레이에서 태어난 브랜드는 인도를 거쳐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영국에 왔는데, 제법 긴 동남아시아에서의 생활 덕택인지 이국적인 배경을 묘사하는데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애너 브랜드의 '위험한 여로'

휴양지를 무대로 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유럽 작품들 쪽이 많고, 미국 작품들 쪽이 적습니다. 그나마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휴가를 즐기는 장면은 본 기억이 없네요. 동료들이 많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경찰들은 교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지만 혼자서 사무실을 꾸려 나가야 하는 사립탐정들은 그럴 정도의 여유가 있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는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존 D.맥도널드의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 트래비스 맥기는 ‘버스티드 플러쉬(Busted Flush)’라고 하는 길이 16미터의 요트를 거주지로 삼으면서 바람 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휴가날짜를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보통 때 플로리다의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맥기는 악당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바다와 맞서야 할 때도 있지만 재산을 모으는데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첨단 문명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트래비스 맥기의 배 '버스티드 플러쉬'

그런데 90년대 이후에는 변화가 온 것 같기도 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신성한 관계>나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을 보면,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한 뒤 휴양지에서 마음을 식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더군요. 요즘 작가들은 탐정(혹은 형사)에게도 복지혜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멀리 휴가를 갈 틈이 없으면 생전 가보지 못한 곳을 배경으로 한 흥미진진한 작품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좋은 책 몇 권으로 한여름의 더운 날씨가 계속될 때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피서 방법으로서도 으뜸이 아닐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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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7.09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가지에서의 살인 사건 역시 추리물에서 아주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그러한 작품으로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과 <백주의 악마>를 좋아합니다. 저도 책을 펴면 곧장 바다 냄새가 날 정도로 생생히 휴양지 풍경을 묘사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누구도 알기 어려운 비밀

세상은 거짓말장이로 가득 차 있다.
- 에버라드 도미니
<The Great Impersonation>(1920) 에드워드 필립스 오펜하임

 

추리작가들은 죽음, 수수께끼, 음모, 시기, 질투…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지만, 그들의 평상시 생활은 여느 사람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 돈이 많아진다면 생활수준은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또 요즘은 독자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해외의 스타급 작가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매스컴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가의 신간 안내나 인터뷰 기사가 문화면에 실리는 것 못지않게 작가가 사기를 당했다든가 표절로 제소됐다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도 실리곤 하죠. 게다가 오래 전에 사망한 작가들마저도 요즘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십 년, 길게는 1백 년 전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마저 연구가들이 파헤쳐 전기(傳記)로 발간하기 때문인데요, 한마디로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례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등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걸작 시리즈를 남긴 엘러리 퀸이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B.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 다른 필명인 바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드루리 레인 시리즈 4부작도 발표했지요. 퀸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컬럼비아 대학이 강연 요청을 하자, 둘 중 누가 갈 것인지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해서 결국은 리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퀸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던 터라 리는 고심 끝에 검정 마스크를 쓰고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퀸이 대중 앞에 나타나야 할 때면 항상 리가 검정 마스크를 쓴 채로 나섰으며, 바너비 로스 역으로는 더네이가 검정 마스크를 썼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강연회에 나타나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터라 1936년 <퍼블리셔스 위클리>를 통해 이들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 퀸과 로스가 같은 작가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거의 밝혀졌지요, 그러나 그들의 작업 분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이나 친지들을 통해 테마와 플롯,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틀은 더네이가, 그 기본에 살을 붙이고 세밀한 점을 보완하는 일은 리가 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할 뿐입니다.

복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수많은 추리소설보다 훨씬 기묘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을 발표한 지 얼마 후인 1926년 12월, 당시 35세의 크리스티는 저녁식사 후 드라이브를 나간다고 말한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그녀의 소지품이 남아있던 차가 호수 근처의 풀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은 자살했거나 혹은 사고를 당했을 것 같은 정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흘 동안 전문가와 경찰, 보도진은 다양한 가설을 세웠으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근처를 철저한 수색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크리스티는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실종 다음날인 토요일부터 묵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외도 등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가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기억상실증을 일으킨 것으로 설명되었지만, 그 ‘실종’은 마치 계획이라도 짠 듯이 물 흐르듯 차질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외도한 남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진짜 기억상실증’ 등 가지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했지만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 사건의 기억을 잊고 싶어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실종된 애거서 크리스티 수색에 나선 사람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기발한 작품 세계와 맞먹을 만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의 죽음 역시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음주와 아편 흡입, 또 조울증 등으로 혼란한 정신상태였던 포우는 40세였던 1849년 9월 리치먼드에서 열차에 탄 뒤 닷새 후인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사흘 만에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병원 임상기록을 검토한 결과 포우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의해 광견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임상기록에 따르면 포우는 입원 당일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가 다음날 호전되었고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는데 이 증세는 광견병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확정된 진실이 아닌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불분명한 만큼 더욱 자세한 분석 방법이 나오게 되면 혹시 다른 이유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포가 죽음을 맞이하던 시기를 다룬 작품이 무척 많은데, 번역된 작품으로는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 등이 있습니다.

포의 묘비

포가 죽은 지 약 150여년이 지난 1996년 12월, 미국의 하드보일드 추리작가 유진 이지가 시카고 시내의 빌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채 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밧줄은 빌딩 14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금고에 연결되어 있었고, 금고 옆에는 권총 한 자루, 그의 주머니에는 브래스 너클(brass knuckle:격투할 때 손에 끼우는 쇳조각)과 현금 약 5백 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사무실 문은 잠겨 있어서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 일단 자살로 판단했습니다. 한동안 슬럼프였던 그가 새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설명에서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전행위라는 추론까지 나왔지만, 하지만 이지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10대의 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며 이미 생활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리를 잡은 작가였던 만큼 책을 더 팔기 위해 자살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신작 집필을 위해 취재해 왔던 민간무장그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가족들을 안전한 호텔로 옮기고 방탄복과 권총을 지닌 채 홀로 사무실에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살로 보기에도 미심쩍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유진 이지 Eugene Izzi(1953-1996)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이지는 운동으로 단련된 180cm, 100kg의 거구인데, 대낮에 사무실에서 격투한 흔적도 없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워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시카고 경찰은 밀실살인을 자주 다룬 작가 에드워드 호크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지만 뾰족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고 하네요.

어쩌면 추리소설가들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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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6.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의 죽음을 모델로 한 작품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2. 시무언 2011.06.27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게 코난 도일이 크리스티의 실종때 수사를 도왔다는군요. 그외의 사건도 해결한적이 있고


 

사람의 가장 가까운 벗 


모든 개들에겐 벼룩이 있지 - 그게 보통 개라면 말일세
- 파(Parr) 경찰국장
 - <The Recoil>(1930), 프레드릭 어빙 앤더슨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을 꼽으라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꽤 많은 사람이 개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저도 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강아지는 어린 아이의 벗입니다^^

 

예전에는 개가 가축에 속했지만 요즘은 반려동물이라고 하죠? 모양이나 크기는 제 각각이지만 묘하게도 무조건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점은 모두 같은 개들은 애완용에서부터 경비용, 맹도견, 썰매 끄는 개에서 심지어는 식용, 약용(!)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또한 개에게는 충성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전설이건 실화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 이야기는 웬만한 나라에는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개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벙어리 목격자>의 책머리에는 당시 키우던 테리어 종 개 피터에 대한 헌사가 실려 있습니다. 한편 다소 괴팍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하드보일드 작가 제임스 엘로이는 자신을 미친 개(mad dog)’라 불러달라고 하는데, 그러는 것이 개에게 욕이 되는 건지 칭찬이 되는 건지 알쏭달쏭하네요.

크리스티의 애견 '피터'. 딸인 로자먼드가 데리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개들은 흔히 두 가지 역할 중 하나, 즉 범죄를 저지르는 쪽의 개와 범죄를 해결하는 쪽의 개 중 하나를 맡게 되는데, 비록 범죄자 측면에 있는 개들이라도 어쨌든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했음이 틀림없기 때문에 개보다는 그 주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범죄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개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개의 냄새 맡는 능력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냥감을 찾는데 쓰였으며, 현대에는 마약이나 폭발물을 찾아내거나 인명을 구조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개들을 등장시켰습니다.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 <주홍색 연구>의 첫머리에는 왓슨이 불독 새끼를 한 마리 기르고 있다고 했으며(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불독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숙집 주인인 허드슨 부인의 병든 개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약이 독약인지 아닌지 실험하는데 쓰였습니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생김새가 볼품없지만 냄새 맡는 데는 대단히 뛰어난 ‘토비’라는 잡종 개가 범인을 추적하는 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경찰견 같은 특별한 훈련을 받은 개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용 개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 덩치는 작아도 잘 짖는다면 충분히 경비견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정용 개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줄 때도 있습니다. 역시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실버 블레이즈>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왓슨 : “달리 내가 주의해야 할 만한 것이 있을까?”
  홈즈 : “그날 밤 강아지의 낌새가 이상했던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네.”
  왓슨 : “강아지는 그날 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홈즈 :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즉,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아지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내부 사람에 의한 범행임을 홈즈는 금방 파악한 것입니다.

앤드류 복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전과 27범의 무허가 탐정 버크(Burke)는 격투에 능하고 총도 잘 쏘지만 뉴욕의 뒷골목에 사는 만큼 집을 비울 때는 자신의 개인 팬지에게 집의 경비를 맡깁니다. 1백kg이 넘는 매스티프종 개에다가 하필이면 꽃 이름을 붙여 준 이유는 만약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 그 개의 이름이 공격적이라면 재판에 불리하다는 변호사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 하네요(작가인 복스는 변호사입니다!). 이름만 별난 것이 아니라, 훈련도 반대로 시켜 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앉아’라고 하면 덤벼들고, ‘덤벼’하면 앉게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이지요.

최근에 번역된 작품 중에는 가스미 류이치의 <롱 도그 바이>라는 독특한 작품이 있군요 (제목이 어째 눈에 익다 싶으시겠는데, 레이먼드 챈들러의 <롱 굿바이>를 따온 것이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짐작하시다시피 애로우라는 이름의 잡종 개입니다. 개들 사이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그 주인공을 돕는 것도 개들이죠. 사람은 별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개판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스미 류이치와 애견 '하치' (작가 홈페이지에서)


악당들은 개들을 범죄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들에게는 야성의 본능이 조금씩은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에 의해 폭발하게 되면 순한 애완견에서 맹수로 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배스커빌의 가문의 개>는 개를 범죄에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이자 코난 도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명문 집안 배스커빌 집안의 헨리 경이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그의 얼굴은 공포로 인해 격심하게 일그러져 있고, 근처에는 거대한 개의 발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화자(話者)인 왓슨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때 안개의 둑에서 튀어나온 저 시커먼 형체와 야만스러운 얼굴보다 더 잔인하고 처참하며 흉악한 것을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추리소설에 등장한 가장 무시무시한 개가 아닐까요. 이에 맞먹는 개로는 스티븐 킹의 <쿠조>에 등장하는 광견병에 걸린 세인트버나드 종 쿠조 정도를 꼽겠습니다.

이것이 배스커빌 가문의 '무서운' 개(?)의 기념엽서입니다.


훈련된 개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 단순해 보였는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작품도 나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건 반사를 이용한 범죄. 소련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개를 이용한 조건 반사 실험으로 1904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실험 내용은 다 아시겠지만,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 종을 울리는 일이 되풀이되면 나중에는 음식 없이 종만 울려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어느 작품(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만 제목은 좀 숨겨놓지요)에서는 이런 조건 반사를 범죄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장(山莊)에 사는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산장의 사나이는 개를 좋아하며, 절벽 쪽에 서서 ‘야호’ 소리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절벽’ - ‘야호’ - ‘개’라는 세 가지를 연결시킨 악당은 궁리 끝에 손 안대고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덩치 큰 세인트 버나드 종 개를 한 마리 사서, ‘야호’하며 소리친 후 개가 먹을 것을 보고 달려들어 주인의 양 어깨에 두 다리를 걸치게 하는 조건 반사 훈련을 시킨 것이지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어쨌든 기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조르주 심농의 <황색 개>에서는 프랑스 서북부 어촌마을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고 실종되고 여러 가지 변고가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사건 현장에는 누런 개 한 마리가 어정거리죠. 마스티프 종인 것 같기도 하고 불도그 같기도 한 그 개가 총을 쏘고 사람을 잡아가고 그러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어쨌든 개만큼 사실과 다르게 표현되는 짐승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개보다 못하다’는 말에서부터 ‘제 버릇 개 못 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등의 속담이라던가, 화날 때 쓰는 욕에 이르기까지 흔하게 쓰는 일상용어들을 개가 알아듣는다면 무척 섭섭하지 않을까요. 개들에게 요즘 세상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혹시 ‘우리들보다 못하다’ 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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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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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4.14 2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물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도 좋지요, 사람의 성격에 동물적인 특징을 대입해도 좋을 것 같고..., 예를 들어 범행을 하는데 이 사람이 미끼 구실, 저 사람이 사냥개 구실 등을 했다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저도 동물을 좋아해 동물 관련 미스터리도 써보고 싶습니다.

  2. 행인3 2011.04.24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들 본질이 그런 가봐요.
    머리 나쁜 강아지로 소문난 X추를 키우는데 요놈은 자기 주인 돌아오기 한시간 전에 (어스름해지기 시작하면) 현관에 딱 앉아있어요. 눕지도 않고 대문만 바라보고 딱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걸 보고 있는데 괴롭습니다. 가끔씩 발이 저린지 섰다가 다시 앉곤 하는데 한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으니 보는 게 부담스럽고...참...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경감님 눈에는 내가 아흔 살쯤 되어 보이겠지만 나 자신은 백 살도 더 먹은 기분입니다.”
  - 드루리 레인
<레인 최후의 비극>(1933)  -  엘러리 퀸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지만 - 무슨 자격증이나 허가증 같은 것은 필요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성공할수 있는지는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각각 달라지지요. 예를 들어 <사이코>의 작가 로버트 블록은 17세 때 잡지에 작품을 투고해 돈을 벌었으며, 아이러 레빈은 <죽음의 키스>(1953)로 데뷔했을 때의 나이가 24세에 불과해 천재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찌감치 등단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물론 그 대척점에 있는 작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죄(大罪)>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샌더즈는 과학기술 잡지사에 근무하다가 49세가 되던 1969년 <앤더슨의 테이프>를 발표해 미국 추리작가협회상(에드거상)의 신인상을 받았고, 1971년 <모비를 찾아라>를 발표해 이듬해 에드거상 신인상을 수상한 A.H.Z.카의 나이는 70세였는데, 이는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뭐, 물론 이것이 성공할 수 있는 나이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24세에 데뷔하여 충격을 주었던 아이러 레빈


작가의 나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구요…

그렇다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의 나이는 어떨까요? 추리소설이라는 특성상 주인공들이 터무니없이 어린 경우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물론 청소년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쓴 작품에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에서부터 10대 청소년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별개로 보아야 하겠지요. 현실에서 스무 살도 안 된 경찰이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세상물정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애송이 탐정에게 자신의 심각한 사정을 허물없이 털어놓을 의뢰인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물론 예외 없는 예외는 없는 법이라 어린 주인공이 있긴 합니다.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걸작 밀실 추리소설 <노란 방의 비밀>에 등장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신문기자 조셉 룰르타비유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에 불과해 청년이라 부르기도 어색한데, 기자가 된 것은 그보다 2년 전이라고 하니 정말 19세기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룰르타비유는 후속작에도 등장해 젊은 피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젊다못해 어린 친구가 담배까지? - 조셉 룰르타비유


하지만 룰르타비유가 막내 삼촌쯤으로 보일 만큼 훨씬 어린 주인공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다나카 마사미(田中雅美)의 작품에 등장하는 호시카와 아츠코(星川厚子), 통칭 ‘앗쨩’으로 불리는 이 소녀는 불과 다섯 살의 유치원생입니다. <앗쨩의 추리 포켓>(1985)에 처음 등장하는, 소녀라고 하기도 어색한 이 꼬마는 유치원 친구가 버스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어린이 특유의 호기심과 직감(?)으로 원기 넘치는 엄마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아츠코는 시리즈 진행과 함께 나이를 먹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아마 이보다 어린 탐정은 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혹시 모르지요, 어찌될지.

반면 나이 먹은 탐정은 제법 있습니다. 로렌스 샌더즈의 <대죄>시리즈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딜레이니나 피터 러브지의 피터 다이아몬드는 경찰에서 퇴직한 50대 후반의 사람들이며, 엘러리 퀸이 버나비 로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에 등장하는 은퇴한 연극배우이자 아마추어 탐정 드루리 레인도 환갑을 넘은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들마저 젊은이로 보이게 하는 탐정도 있습니다. L.A.모스의 <늙은 탐정(The Old Dick)>(1981)에 등장하는 제이크 스패너는 78세의 괴짜 골초 영감님으로 자신의 마지막 사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일광욕하거나 시시한 소설을 읽으며 소일하던 왕년의 사립탐정 스패너에게 40년 전 그가 형무소로 보냈던 폭력단 두목 살 피콜로가 찾아와 유괴된 손자의 몸값 75만 달러를 주는데 동행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사건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맙니다.

제임스 시겔
의 <묘비명(Epitaph)>(2001)의 주인공도 70세를 넘긴 전직 탐정 윌리엄 러스킨입니다. 그는 과거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동료가 죽기 전까지 사건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건을 이어받기로 합니다. 약간의 질투심으로 시작된 조사에서 윌리엄은 50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미해결 대량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또 최근 발생하고 있는 실종사건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에게도 위험이 다가옵니다.

어떤 탐정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갑니다. 로스 맥도널드의 주인공 루 아처는 <움직이는 표적>(1949)에 처음 등장했을 때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30대 중반이었지만 4반세기가 지난 후의 마지막 작품 <블루 해머(The Blue Hammer)>(1976)에서는 20대의 여성이 딸처럼 보일 만큼 원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로버트 파커의 주인공, 보스턴의 사립탐정 스펜서 역시 처음에는 독신 생활을 즐기는 3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어 삶의 연륜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리바이의 A(A is for Alibi)>, <강도의 B(B is for Burglar)> 등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되는 작품을 쓰는 여성작가 수 그래프튼은 데뷔작에서 27세였던 여탐정 킨지 밀혼이 대략 두 작품 반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게 해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 될 <0의 Z(Z is for Zero)>(제목을 미리 정해 놓았다고 하는군요)에서는 40세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21편이 나왔으니 앞으로 다섯 편 남았군요. 성공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후속 작품의 계획까지 세우는 것은 무척 세심하거나 야망이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추리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알파벳으로 스물여섯 편의 시리즈를 쓰겠다고 결정한 그래프튼은 그런 점에서도 대단한 작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26번째 작품을 기대합니다 - 수 그래프튼


한편 아무런 생각 없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나이를 언급했다가 혹시라도 인기를 얻어 작품이 이어진다면 호기심 많은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사생활까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닐까 싶군요. 크리스티는 작품마다 빈틈없이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감탄시켰지만 주인공의 나이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탓에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크리스티는 데뷔작이자 푸아로가 등장하는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을 1920년에 발표한 후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이상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고, 푸아로가 세상을 떠나는 내용을 담은 <커튼>을 유작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푸아로의 죽음은 뉴욕 타임즈에까지 부고가 실렸는데, 거기에 실린 그의 추정 연령은 무려 120세였던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에 실린 푸아로의 부고 기사


심지어 크리스티의 평전(評傳)을 쓴 H.R.F.키팅은 푸아로가 1904년 벨기에 경찰에서 은퇴했다는 기록에 따라 당시 60세였다면 1970년 중반까지 살아있었으니 130세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줄리언 시먼즈는 <위대한 탐정들(The Great Detective)>에서 푸아로가 퇴직했을 때 40대였다며 100세를 넘겼다는 설에 반론을 제기했지요. 결국 푸아로의 나이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일찌감치 모습이 굳어진 주인공은 나이를 먹지 않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독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자면 제임스 본드, 이름보다 007이라는 번호로 더 잘 알려진 첩보원이지요. 작가 이언 플레밍이 세상을 떠난지 한참 되었습니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본드의 나이는 점점 젊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50년 이상 87번 관서(분서라고도 많이 번역되었네요) 시리즈를 발표했던 에드 맥베인은 등장인물의 나이에 대해 별로 고민이 없었습니다. 어떤 인터뷰(1992년입니다)에서는 이렇게도 말했지요.

질문: 인물들의 나이-예를 들어 쌍둥이(사실상의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라의 아들입니다)- 를 조금씩 먹게 하는 것은 어떻게 결정하십니까?

맥베인 : 쌍둥이는 “사춘기”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도 그들이 도대체 몇 살인지 모르겠군요. 다음 책을 쓸 때 살펴봐야겠습니다. 카렐라와 다른 사나이들은 모두 30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예요.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은 덕에 그가 수많은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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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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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0.12.23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만든 탐정의 나이를 먹게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소년탐정 김전일이나 코난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죠), 사극이라면 <로마 서브 로사>시리즈의 고르디아누스처럼 나이를 먹게 해야겠지만 현대물에서는 계속 그 나이를 유지시키기로 했습니다.

  2. 레이 2010.12.23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나이하면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 탐정, 이거 좋네요.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점차 성숙해가는 모습도 흥미로울 것 같고요.
    알파벳 시리즈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국내에도 소개될 날이 오길... 계속 쓰시고 계실 작가분께 감탄하고 갑니다.

  3. 카메라이언 2010.12.23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키키킥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가요. 포와로는 혹시 알고 보면 장삼봉이랑 같은 수준의 선인? 키키키킥. 역시 명탐정 코난이 젤 웃겨요. ㅋㅋㅋㅋ

  4. 평시민 2010.12.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장편 주인공이라..., 그러고 보니 저와 나이가 비슷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