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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2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3> 약점 (6)

극복하면 더욱 가치 있는 것

나는 실수하거나 과신으로 속아넘어가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네.
-맥스 캐러도스
   - <디오니소스 은화>(1914) 어네스트 브래머

1842년 에드거 앨런 포우가 아마추어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한 후 속속 등장한 추리소설 속의 탐정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능력(추리력뿐만 아니라 체력이나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명탐정’이라는 호칭을 당당히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탐정이 장점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금방 질려 버릴 것 같습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인물은 친근감도 떨어지고 오히려 사건 해결에 왜 이리 시간이 걸리나 싶은 생각까지 들 듯 하네요. 나름대로 인간적인 면모들을 드러내 보여서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주인공을 영웅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주인공들에게 뭔가 특징을 부여했는데, 그것은 독특한 외모나 취향일 수도 있었고 약간의 결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결점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별난 성격이지요. 특출한 능력의 탐정이 가진 괴팍한 성격 - 이것은 일종의 공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국 작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가 창조한 ‘평범한 주인공’ 조셉 프렌치 경감은 오히려 파격적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25년 <프렌치 경감 대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프렌치 경감은 온화한 성격과 성실함, 그리고 끈기라는 우수한 자질을 갖춘 유능한 경찰이지만, 허구의 인물치고는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 오히려 특징으로 보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도 등장했습니다. 1914년 영국 작가 어네스트 브래머의 단편에 처음 등장한 맥스 캐러도스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손끝으로 편지나 신문에 쓰인 글자를 읽어낼 정도의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며, 그의 하인 퍼킨슨은 놀라운 기억력으로 캐러도스의 눈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맥스 캐러도스

주인공들에게 별난 성격 수준을 넘어선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부여하면 손발이 묶인 듯한 제약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효용이 생깁니다. 우선 독자들은 주인공이 어떤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와 함께 동정심도 느끼기 시작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마주치면 주인공이 과연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며, 나아가서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움 섞인 격려를 보내게 됩니다.

신체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캐러도스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러리 퀸이 버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비극’ 4부작에 등장하는 아마추어 탐정이자 은퇴한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 드루리 레인은 후천적인 청각장애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술을 보며 대화가 가능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사색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인물은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에 처음 등장하는 링컨 라임일 것입니다. 그는 현장조사 도중 사고를 당해 머리와 한쪽 손만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침대 탐정’이지만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요. 그는 뛰어난 판단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유능한 인물들을 지휘하여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링컨 라임(왼쪽, 덴젤 워싱턴이 연기)-영화 '본 콜렉터'에서


신체장애라는 극단적인 핸디캡은 때로 작위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 인물 묘사에 자주 쓰이는 방법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자꾸 사건이 이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위에 언급한 링컨 라임 같은 사람도 사실 경찰 소속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서 신체적 장애보다는 정신적인 약점을 가진 인물이 더 많은 편입니다.

예전부터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알코올 중독, 바꿔 말하면 ‘주정뱅이’인데, 에반 헌터의 커트 캐넌이나 로렌스 블록의 매트 스커더가 대표적인 인물이죠. 이들은 원래 잘나가던 사람들이었으나 사립탐정이었던 캐넌은 아내의 배신으로, 형사였던 스커더는 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실수로 무고한 소녀를 사살한 후 충격을 받아 술을 탐닉하게 된 사람입니다. 꼭 알코올 중독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탐정 중에는 이른바 트라우마(trauma)라고 하는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토머스 해리스의 스릴러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을 괴롭히는 것은 야간 경비원으로 근무하다가 살해된 아버지, 호텔 청소부였던 어머니, 말 도살장에서 보냈던 유년기 등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이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헌데 이런 악당이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함부로 건드리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악당의 입장에서 볼 때)를 가져옵니다. A.J. 퀸넬의 화끈한 작품 <불타는 사나이>(<맨 온 파이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죠)의 주인공 크리시는 한때 최고의 용병이었지만 무의미한 삶에 지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보디가드를 맡으며 어느덧 인생의 밝은 면을 보게 되죠. 그런데 악당들이 소녀를 유괴하는 무모한 짓을 하고 말지요. 인간폭탄의 도화선을 점화한 겁니다.

'불타는 사나이' 크리시. 여기도 덴젤 워싱턴이 등장했네요.

최근에 접한 작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폴 트렘블레이의 <리틀 슬립>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크 제네비치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사람은 어디 하나 번듯한 데가 없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얼굴도 항상 일그러져 있는데다가 기면증 - 운전할 때나, 의뢰인이 왔을 때나, 혹은 목숨이 걸린 위기에서도 갑자기 잠이 들어버리는 - 이라는 희귀한 병까지 지니고 있어서 이래서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정말 안타까울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을 용케 꾸역꾸역 넘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음 작품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됩니다.

미국 추리작가 존 D.맥도널드는 ‘최근의 추리소설들을 보면 탐정들이 온갖 특징과 소도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다운 마음은 없다.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도 않은 인물들을 만들어 내어 보통 사람들과 뚜렷한 차이만 만들면 성격 묘사가 확실하게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특징 있는 인물을 구상하는 것은 쉽지만, 그 인물을 어떻게 생생하게 살려 내느냐는 작가의 능력에 달렸지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특징만 기억나고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희미한 경우도 많은데, 과연 그것이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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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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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무언 2011.03.03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퍼센트의 용액같은 경우는 완벽해보이던 홈즈에게 그런 약점을 부여하는 시도라고 볼수있겠군요

  2. 카메라이언 2011.03.03 0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캐릭터가 생생하게 기억나면 어쩐지 좋던데요. ㅋㅋㅋ 그런데 홈즈의 지동설 천동설은 정말, 다시 읽어도 너무 웃기더라고요. ㅋㅋㅋㅋ 아우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BBC 보고 나서 전집 다시 읽다가 혼자서 막 웃었다는. ㅋㅋㅋㅋ 그나저나 신작 이야기 들을 때마다 다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어로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영어까지 공부하면 대체 글은 언제 (;;;;)

  3. 평시민 2011.03.03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반영웅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약점이 있는 캐릭터 쪽이 더 끌리더군요, 제가 만든 캐릭터 중 한 명은 약점이 너무 많아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4. 이야기꾼 2011.03.0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크>는 정말 쵝오!
    저 기묘한 캐릭터가 스토리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연구해보면
    추리소설, 특히 코지나 클래식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지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정말 독특(하다고 자부하는)한 몇 캐릭터를 구상중....
    어서 그들이 지면에서 활약을 좀 해야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