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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44> 언해피엔딩 (1)

해피엔딩에 작별인사를

"행복한 결말은 없어요 … 다만 행복한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요."
- 에밀리 폴리팩스
<Mr. Polifax on th China Station>(1983) - 도로시 길먼

많은 사람들이 ‘추리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드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추리소설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대표적인 사례가 ‘권선징악의 교훈’이라는 것인 만큼 이러한 생각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일본의 어느 경제학자는 ‘권선징악’보다는 ‘범죄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게 잡히면 벌을 받는다’, 즉 ‘바보 짓 하지 말라’는 쪽이 훨씬 강하다고 하더군요).
‘해피엔드(happy end)’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소설, 극, 영화 따위에서 주인공이 잘 되는 것으로 끝맺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건전한 해피엔딩의 대명사로 금방 떠오르는 작가는 딕 프랜시스입니다. 모험소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경마 미스터리에서는 주인공이 악당에게 위협은 물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만,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거쳐 나와 마치 밝은 햇살을 보는 것과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곤 합니다.

딕 프랜시스

하지만 많은 추리소설의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일까요? 범죄가 벌어지고 사건을 무난히 해결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일단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행복해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몸의 상처야 나을지언정 마음의 상처가 쉽게 나을 리가 있겠습니까. 탐정, 경찰, 혹은 그 누군가가 나서서 범인을 잡아주긴 합니다만 피해자가 돌아오진 않으니까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서 결말 부분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다른 방향도 있지요. 이를테면 국가 원수가 저격을 당했는데 주인공인 경호원이 총알을 몸으로 막았다고 해 보죠. 자신의 임무는 완수했지만 중상을 입고 생명이 오늘 내일 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난다면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설이니까 하하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여기까지는 좀 삐딱하게 본 해피엔딩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코난 도일의 홈즈를 통해 추리소설은 황금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명탐정의 대명사이자 전지전능한 인물처럼 보이던 홈즈가 의외로 실패를 자주 했습니다. 단편 첫 작품인 <보헤미아의 스캔들>에서부터 고객(?)의 의뢰를 완수하는데 실패하고 있지요. 그럭저럭 넘어가긴 했지만, <다섯 개의 오렌지 씨>에서는 의뢰인의 신변 보호마저 실패하고 맙니다. 이런 작품을 거쳐 코난 도일은 역사상 최고의 언해피엔딩(unhappy ending)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는 홈즈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스물세 번째 단편인 <마지막 사건>에서 ‘범죄의 나폴레옹’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셜록 홈즈를 스위스의 폭포에 떨어뜨려 버립니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히 죽었다는 것이죠(… 물론 홈즈는 누구나 다 아시는 것처럼 다시 돌아옵니다만). 이렇게 추리소설의 언해피엔딩은 일찌감치 있었던 것입니다.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의 마지막 격투

잠깐 다른 관점에서 볼까요.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에는 그의 성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르센 뤼팽이 처음 등장한 작품의 제목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였으며, 체포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자, 아시다시피 범죄자가 체포되는 것은 해피엔딩입니다만 그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어쩐지 슬픈 분위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어진 작품에서는 교도소에서 탈옥한 뒤 수사관들을 끊임없이 골탕 먹이고 끊임없는 범죄 행각을 벌이며 그만의 해피엔딩을 즐기고 있지요. .
주인공이 없는 작품에서도 언해피엔딩이 벌어집니다. 이를테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절해고도의 외딴 섬에 모인 열 명이 차례로 목숨을 빼앗깁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과거의 죄악에 대한 징벌이라는 요소도 있고, 탐정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동정하기도,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이 모두 죽어가는 것만큼(그게 혹시 자연사라면 모를까요) 끔찍한 결말은 없을 겁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등장한 하드보일드에서는 자기파괴적인 주인공이 종종 등장하죠. 얽히고설킨 사건을 가까스로 해결하지만 주인공이 얻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필립 말로우 같은 시니컬한 인물은 빠져도 될 일에 쓸 데 없이 뛰어들어서(?) 고생만 하다가 몸은 골병이 들고 챙기는 것은 없는 밑지는 장사만 하지요. 말로우가 “이번 사건은 해피엔딩이로군. 짭짤하게 건졌지.”하고 싱긋 웃으며 혼잣말 하는 장면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궁지에 몰린 필립 말로우 - 영화 '빅 슬립'에서


이미 눈치 채신 계신 분도 많겠지만, 제목으로 쓴 '해피엔드에 작별인사를'은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단편집에는 사소한 계기로 인해 어이없는 불행을 맞이하는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이보다 훨씬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는 작품도 많습니다만 그런 작품의 제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잃을 수 있으니 이쯤에서 입을 다물겠습니다.

우타노 쇼고


허구에서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그게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속이 뒤집힐  일이지요. 존 그리셤의 논픽션 <이노센트 맨>을 보면 정의도 얼마든지 패배한다는 현실을 가슴 아플 정도로 보여줍니다. 누명을 뒤집어쓰고 오랜 시간 고통을 받던 사람의 결백함이 밝혀진 직후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불굴의 의지로 거대한 악을 물리치는 한 사람의 무용담을 즐기는 것이겠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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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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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11.02 1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모두 언해피엔딩이지만 그래도 악역을 맡은 이들은 모두 죽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최근에 본 걸작 스릴러 영화들은 대부분 악역의 승리로 끝나니 참 아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