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이변(黑猫異變)


윤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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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장때를 당한 채소시장의 시세는 한없이 좋았다. 산같이 쌓아놓은 무, 배추, 그리고 고명 등속은 바람에 검불 날리듯 순식간에 없어지곤 하였다.

영수도 새벽같이 모든 사람 틈에 섞이어 무와 배추를 팔았다. 오늘에 한해서 영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팔았을 뿐 아니라 이익도 다른 날보다 특별히 많이 남아서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한 웃음이 가득하였다.

영수는 채소를 다 판 다음 집으로 돌아가려고 수레에 밧줄을 걷어 올리고 있을 때

“여보게 영수!”

하고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영수 옆에서 미나리를 팔고 있던 친구 순태였다.

“자네 벌써 다 팔았나?”

“다 팔고 집으로 가려는 참일세.”

“나도 다 팔았네.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일상 그렇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다른 날보다 쉽게 팔리고 돈도 더 남았네!”

“나도 오늘은 심심치 않았네.”

두 사람은 오늘의 장사에 한없이 만족을 느낀 듯이 껄껄 웃었다. 순태는 지게를 걸머지며 수레에 끈을 얽어매고 있는 영수를 돌아보며

“여보게 오늘은 재미를 봤으니 가다 한 잔 냄세!”

이렇게 영수의 술 비위를 충동하였다.

“하여간 누가 내든지 같이 가게.”

두 사람은 같이 걸었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순태는 지게를 지고 영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2.


영수는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가 규모가 있고 얌전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고로 일상 술잔을 대할 때마다 그 정도에 넘치지 않을 것을 늘 경계하여 왔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실수를 한 일이 없었다.

더욱이 영수가 새로 장가를 든 다음부터는 그리 많이 먹지 않던 술조차도 입에 댈 겨를이 없었다. 일찍이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일가에게 얹혀 자라나서 보통학교를 겨우 마친 다음부터 전혀 채소장수로 나선 까닭에 이제 와서는 채소장사로서의 경력과 수완도 상당히 있었고 더욱이 혼인한 다음부터 자기에게 한없이 순종해주며 넘치는 사랑과 친절을 다해 주는 아내와 더불어 남같이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생긴 후로부터는 더욱이 그러하였다.

천생으로 고운 얼굴을 타고난 그의 아내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날 때마다 그는 장에서 물건을 팔고는 한달음에 집으로 가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집안 살림도 영수의 부지런으로 말미암아 그리 궁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기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점점 고양이를 몹시 사랑하여 좋아하는 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검정고양이까지 집안에 기르고 있다.

이 고양이를 집에 기른 다음부터는 아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장에서 채소를 팔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고양이를 주려고 고기를 사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이와 같이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기를 사다 줄 적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대해서 감사와 즐거움에 넘치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영수는 이같이 아내가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 보고 싶었고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천성으로 좋아하지 않던 고양이가 자기 앞으로

“냐옹! 냐옹!”

하고 기어오면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자기 손으로 주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만 아주 고양이하고 숙친(오래 사귀어 아주 가까움)하여져서 으레 집에 들어올 때면 고양이 먹을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자기 무릎에 고양이를 얹어 놓고 어루만지며 고기를 먹이고 아내의 사랑스런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던 행복이었다.

영수가 신혼살이를 시작한 다음부터 집안 살림은 더욱 늘어갔으며 고양이도 이 두 양주 틈에서 행복한 일 년 동안을 그 집안 자식같이 그들의 재미있는 신혼 자리 속에 길러졌다.

이와 같이 신혼살이에 재미가 가득한 영수는 더욱이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건실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장에서 채소를 팔아 많은 이익을 본 다음 영수가 한 동리 사는, 더구나 소학교까지 같이 졸업을 한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수레를 끌고 오래간만에 술집으로 향하고 걸었던 것이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걸으며 지게를 지고 옆에 서서 오는 순태를 돌아보며

“우리가 아마 같이 술 먹어 본 지도 오래되었지!”

하고 오래간만에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한 잔을 서로 나눌 기쁨에 넘치는 말을 꺼냈다.

“여보게 오래되고말고. 그게 벌써 일 년이 되었네그려. 아― 자네 장가들던 날 우리가 서로 같이 한 잔 먹고는 오늘이 처음일세그려.”

“참 그렇게 되었든가?”

“자네야 원체 얌전한 사람이 장가든 다음부터는 더 얌전해져서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 동안에도 꾸준히 먹었네 만은 도무지 자네하고 한 잔 같이 할 기회가 없었네그려!”

“나는 그 동안 통 술이라고는 대질 않았네.”

“그렇겠지. 아마 자네 내무대신이 어지간히 딱정뗀(딱장대. 성질이 온순한 맛이 없이 딱딱한 사람)게지― 이사람. 하―하―하―”

“이 사람아 어느 미친놈이 계집에게 매여서 술 한 잔도 못 먹는단 말인가! 그렇지만 단 두 내외 사는데 내가 밤낮 술이나 먹고 집안 살림을 돌아보지 않아보게, 집안 꼴이 어떻게 되나!”

“그건 참 옳은 말일세! 그렇지만 자네같이 얌전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나 그렇지, 나는 암만 그러려도 그 마음이 사흘을 못 가네!”

같은 친구였지만 영수의 가라앉고 얌전한데 비해서 순태는 방탕한데 가깝고 성질이 욱하는 데가 있고 호탕한데 가까웠다.

이같이 두 사람의 성질은 정반대로 달랐으나 그들의 우정(友情)은 한없이 두터웠다.


3.


그들은 이와 같이 수작을 하는 사이에 벌써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우정에 넘치는 정다운 대화 속에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목적까지 잊은 듯하였다. 이와 같이 이야기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달은 듯이 순태는 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고

“참 여보게,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 잔 먹을 참인데 어디로 갈까?”

“나야 술집을 다니지 않았으니 어디가 좋은지 알 수 있나!”

“그럼 내 앞장을 섬세. 모처럼 먹는 술에 시시한 ‘다찌노미(立飲み. 선 채로 술이나 음료수를 마심)’야 되었나”

그들은 시외에 떨어져 있는 어느 조그마한 식당으로 갔다. 순태는 서슴지 않고 식당으로 영수를 끌고 들어갔다. 순태는 이런 곳에 매우 익숙하였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이런 곳에 들어선 영수는 한없이 서툴렀다. 더욱이 밤을 낮삼아 영업하는 이런 곳에 낮의 풍경은 너무나 질서가 없고 정이 붙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 밉지 않은 계집이 손가락으로 찌르면 터질 듯한 복슬복슬한 두 볼에 웃음을 머금고 영수에게 은근히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순태와 영수는 한 자리에 걸터앉아 몇 잔의 술이 오고가고 하였다. 영수도 원래 먹지 못하는 술이 아닌 고로 어느 정도까지 그의 정신이 몽롱하도록 마셨다.

그 옆에 앉아 말없이 술을 따르고 있던 여자는 영수의 수줍은 태도가 우스운 듯이 흘금흘금 바라보며 술을 따라주었다. 

영수는 몽롱한 가운데 자기 옆에서 웃음을 머금은 여자의 눈초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몽롱한 중에도 멋쩍은 듯이 그의 시선을 피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이 가득한 여자의 추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영수의 마음은 몽롱한 중에도 아득하였다.

영수는 마음으로 그 여자의 시선을 피하려하면서도 시선은 그 여자에게로 가곤 하였다. 

몽롱한 그의 눈 속에 보이는 그 여자의 자태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무슨 차마 하지 못할 일이나 하는 듯이 그 여자가 자기를 보지 않는 사이에 그 여자의 얼굴을 도적질하여 보다가는 그 여자의 정이 가득히 실린 시선과 마주치곤 하였다.

이와 같이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영수의 얼굴은 상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행으로 그의 얼굴이 술기운으로 인하여 벌겋게 상기가 되어 있었던 고로 아무도 그의 얼굴이 유난히 붉어지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이를 따라 그의 가슴은 한없는 파동이 일어나곤 하였다.

“아이고 퍽 얌전도 하셔. 이렇게 얌전한 분의 부인은 퍽 행복이겠지!”

영수 옆에서 정다운 시선을 던지는 그 여자는 영수의 무릎에 자기 손을 얹어 놓으며 반딧불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풍겨 오는 여자의 살내음새, 그리고 성욕을 충동하는 듯한 화장품 냄새에 섞여 미적지근한 그의 숨결이 영수의 턱밑으로 풍기며 그의 정신을 한없이 유혹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처음 당한 영수는 다만 정신이 아찔할 뿐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그 여자에게 무어라 수작 한 마디 하여 볼 용기조차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여자의 정이 가득한 눈초리에 녹아서 그는 다만 의식 없이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얼마를 마셨는지 희미한 정신을 가다듬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전등불이 환하게 방 안에 비치고 있었다. 텁텁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은 틀림없는 자기 집이었다.

“어떻게 집에를 왔을까?”

그러나 어떻게 집에 왔는지 조금도 그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입술은 바짝바짝 타고 목이 한없이 탈 뿐이었다.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아서 방에서 비치고 있는 전등불이 뿌연 속에서 꼬리가 달려 보였다.

“취하면 댁에까지 내가 바래다 드리지요.”

그의 귀에는 아직도 이런 여자의 음성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 가득한 눈이 도저히 잊혀 지지를 않는 것 같았다.

“취해서 못 가시면 내 방에서 주무시지!”

이런 말도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도 그는 한없이 목마른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자기가 하고 온 일이 마음에 찔리는 것 같아서 그는 선뜻 자기 아내에게 물을 달라고 호기 있게 할 용기가 없었다.

“술이 깨면 목이 마를 줄 알고 물을 줄 것이지.”

이렇게 원망 비슷하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도 지나가는 순간의 생각이었다. 영수는 땡한 골치를 붙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아내가 차려다주는 밥상을 대하였다.

“웬 술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도록 잡수시우.”

아내가 밥상을 갖다 놓으면서 이렇게 원망하듯 말하는 것이 더욱 미안하였다.

“오래간만에 누굴 만나서 그랬어.”

변명 비슷하게 이렇게 말을 하는 그는 몇술 밥을 뜨는 척하고는 수레에 채소를 싣고 장으로 갔다.

그가 채소를 다 팔고 났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시장에서 와글와글하고 물 끓듯 하던 사람도 하나씩 둘씩 툭툭 털고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영수는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사랑스러운 자기 아내가 집에서 기다릴 생각보다도 어제 식당에서 다정한 추파를 던져주던 그 여자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영수가 이같이 색다른 여자를 대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자기 아내보다도 이 색다른 여자에게로 마음이 이상하게 끌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에서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어떠한 구실이든지 만들어가지고는 식당으로 그 여자를 찾아갔다. 물론 그가 이런 곳에 다소간이라도 경험만 있다면 그 여자가 진정으로 자기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아닌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았을 것이지만 오늘까지 얌전하였고 마음이 단순한데다가 순정인 그는 그와 같은 것을 알아 볼 여지가 없었다.

그의 아내도 요새 와서 남편이 먹지 않던 술을 매일같이 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퍽 의심스럽게 여겼지만은 그 남편이 백방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에 흐지부지 속아오곤 하였다.

그것도 남편이 그전부터 술을 좋아하거나 불량한 사람 같으면 언짢은 소리도 하고 못 먹게 말려도 볼 것이지만은 요즈음 와서 별안간 술을 입에 대며 밤마다 나가는 것이 난봉이 나서 그러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전에 없던 옷 모양도 내고 세수도 다시 하며 수상한 행동이 보일 때 그 아내가 참다못해서

“아니 어디를 가게 이렇게 야단이요”

하고 물으면 영수는 다만

“친구의 집에 무슨 날이 되어서 가―”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장사를 더 크게 해 보려고 누구에게 돈 말을 했더니 만나자고 그래서”

할 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아내는 고지식한 남편의 말이라 그대로 믿어오게 되었다.

오늘도 영수는 저녁을 먹은 다음 부랴부랴 옷을 입은 다음 식당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가 식당을 향하고 걷는 순간만은 장사도 집안 살림도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확실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만 처음 날 자기에게 한없이 친절히 해 주고 은근히 정다운 뜻을 보여준 그 화자라는 여자가 그리울 뿐이었다.

영수는 한달음에 식당으로 달려갔다. 화자는 자기를 기다리는 듯이 반기며 맞이하여 주었다. 은근히 영수의 손을 붙잡고

“어서 오세요.”

하고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그 여자의 태도는 확실히 이 순진한 영수의 영혼을 불사르고 남을 만하였다.

“나는 꼭 당신이 오실 줄 알고 기다렸어요.”

화자가 이와 같이 정을 가득이 싣고 하는 말은 더욱이 영수를 황홀케 하였다.

붉고 푸른 전등 광선이 착잡하게 섞여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그 속의 풍경은 한없이 음침하고 더욱이 저급적인 레코드의 속된 유행가의 음향이 한데 섞여 나오는 그 속의 공기는 한없이 추잡하였다. 그러나 영수는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이 황홀 찬란한 그 판에 자기의 영혼까지 불사르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즐거운 것이 일하고 밥 먹고 아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이런 다음부터 영수는 거의 날마다 이 식당에 가게 되었다. 화자라는 그 여자도 처음에는 이 낯모를 부수수한 손님에게 대해서 될 수 있는 데까지 갖은 교태를 다 부려서 그의 마음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이 거듭함을 따라 영수의 태도가 점점 자기에게로 가장 진실하게 끌려오는 것을 알고 화자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그리고 공연한 짓을 하였다 하는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영수가 돈 있는 집 자식으로 양복이라도 번드레하게 입고 돈냥이라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었다면 화자로서도 그릴 이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수는 보잘것없는 채소장사요 게다가 아내까지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안 화자로서는 영수가 아무리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을 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돌아올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영수는 이 화자라는 여자를 보기 위하여 이 식당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갔으나 화자의 얼굴은 차차로 보기 드물었다. 어떠한 때에는 다만 억지로 왔느냐는 인사를 하고 자기 옆에 말없이 앉았을 따름이요, 그렇지 않으면 영수의 존재는 잊은 듯이 다른 손님하고 앉아서 갖은 교태를 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꼴을 당한 영수는 참다못하여 화자를 붙잡고 

“너 왜 요새 이렇게 내게 무정하게 구니”

하고 원망하듯이 말하면

“아이고 왜 이리 속을 못 채리우, 이런 곳에 있는 년이 어떻게 당신 비위만 맞춘단 말요.”

하고 툭 쏘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이것이 이런 데 있는 여자의 버릇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은근한 마음이 있으면서 같이 있는 여자의 면목도 있고 그리고 여러 손님도 있는 관계로 짐짓 마음에 없는 말로 여러 사람의 이목을 잠깐 속이는 수단이거니 하였다.

자기의 밝지 못한 것을 모르는 영수는 이러한 화자의 모든 태도를 자기의 편리하도록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이 화자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와서는 아무리 이곳에 와도 화자의 그림자가 차차 자기 앞에서 멀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화자의 얼굴조차 얻어 볼 수 없었다.

자기의 순정을 다해서 한 달 동안이나 사랑하는 아내도 살림도 다 내던지고 사랑하던 화자로부터 한 마디 따뜻한 말도 들어보지 못하고 냉대를 당한 영수는 분노와 절망의 불길이 가슴 속에 터질 듯이 치밀어 올라왔다.

원망과 저주에 넘치는 술잔을 한없이 들었다. 점점 흥분해가는 그의 마음은 무엇이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같이 되었다.

한 달 사이에 영수의 마음은 거칠고 한없이 불량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기르고 있는 검정고양이만은 이와 같이 변해 가는 주인을 조금도 변치 않고 따르고 있었다.

영수가 상신(喪神: 병이나 충격 따위로 정신을 잃음)이 될 만큼 술을 먹고 잔뜩 흥분이 되어 들어오는 주인을 본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고 가까이 갔다. 그러나 한없이 흥분된 영수는 식당에서 화자에게 받은 분풀이를 고양이에게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에 한해서는 자기 앞에서 얼씬거리며 덤비는 고양이조차 한없이 밉게 보였다.

그리하여 원망이 뭉쳐진 그의 정신은 다만 세상이 귀찮다는 듯이 쫓아오는 고양이를 발길로 밀쳤다.

그러나 의식 없는 동물만은 주인이 화가 났든 안 났든 알 까닭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만

“냐옹― 냐옹―”

하고 발로 밀치고 가는 주인에게 기어올랐다.

“엣― 귀찮아!”

“캑―”

순간이었다. 영수는 기어오르는 고양이를 발길로 내질렀다. 힘센 발길에 내질린 고양이는 비명을 지르며 한간 밖에 떨어졌다.

이같이 혹독하게 주인의 발길에 채인 고양이는 얼마동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고양이가 그만 아무데나 피해버렸으면 관계없었을 것이나 아무 지능(知能)을 갖지 못한 동물이라 오늘까지 주인이 자기에게 극진히 친절히 해 준 관계로

‘오늘 주인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내가 주인에게 잘못한 게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한 고양이는 더욱 교태를 지어가지고 발길로 찬 주인의 앞으로 기어가서 옷자락에 매달리게 되었다.

“에잇― 경칠 놈의 것”

영수는 이 끈기 있게 덤비는 고양이에게 아까 식당에서 당한 원망의 불길과 아울러 모든 분풀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덤벼드는 고양이의 멱줄띠를 죽어라 하고 쥔 다음 몇 번을 휘둘러놓고는 고양이는 한 손에 쥔 채 도마 위에 놓여 있는 식도를 들어 고양이의 면상을 갈겼다. 

불의에 이 무서운 참형을 당한 고양이는 마지막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고 죽을힘을 다해서 영수의 손에서 빠졌다.

이 심상치 않은 소리에 놀란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서 있는 남편의 흉한 꼴을 아찔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고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오?”

“……”

입을 다물고 서 있는 남편의 얼굴에는 처참한 살기가 가득하였다. 그의 아내는 다만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이 꼴을 바라볼 뿐이었다.

영수는 별안간 먹은 술이 홱 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의식이 분명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제정신이 차차 돌아오기 시작하였을 때 자기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식도가 쥐여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손에서 떨어지는 칼 소리와 아울러 영수는 후회에 넘치는 눈물이 두 눈에서 반짝였다.

그 이튿날 영수는 고양이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다. 그리고 화자의 일도 잊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가 한없이 귀여워하는 고양이에게 그와 같이 무참한 짓을 한 것이 한없이 후회가 났다. 고양이는 그 다음부터 한 눈이 멀어버렸다. 그때 식도로 갈길 적에 불행하게도 바른편 눈을 맞았기 때문에 영수의 친절한 치료로 낫기는 했으나 영영 한 눈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글쎄 여보 말도 못하는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 꼴을 만들어 놓는단 말요.”

아내가 애처로운 듯이 이렇게 자기를 보고 원망을 할 때마다 영수는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나!”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영수는 그날부터 고양이가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기를 사다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혼난 고양이는 이 주인만 보면

“냐옹! 냐옹!”

하고 슬슬 피하고 오질 않았다. 영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부르면 더욱 피하고 오질 않았다.

“내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돈을 들여가며 좋은 것을 사다주고 하는데도 오질 않아!”

이러한 섭섭한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밥상에 놓여 있는 밥을 고기국물에 비벼서 주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이 주는 밥을 먹지도 않고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

그의 측은한 마음은 차차로 미움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고양이의 이같이 야멸찬 짓에 잊어버렸던 화자의 얄미운 행동이 이 고양이와 같이 연상하게 되었다. 

영수가 한때의 잘못으로 이같이 고양이로 하여금 영원한 불구(不具)를 만들어 놓고 한없는 후회에 가슴을 태우며 갖은 친절을 다 해주었으나 주인의 이 친절을 받지 않고 얄밉게 구는 고양이를 밉게 보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수가 특별히 고양이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늘도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술을 먹고 들어왔다.

그의 술 취한 몽롱한 눈에 먼 눈을 한 발로 어루만지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 눈을 깜짝거리며 술 취한 영수를 원망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영수의 몽롱한 머릿속에는 고양이의 꼴이 측은하게도 보였으나 자기에게 너무나 쌀쌀히 하는 것이 끝없이 밉게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정신은 또다시 맹수같이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경칠 놈의 고양이, 그렇게 해 주어도 그래?”

영수는 또다시 미친 사람 같이 날뛰어 고양이에게 덤벼들었다. 이 무서운 습격을 당한 고양이는 도망질을 쳤다.

“요놈의 자식 놓칠 줄 아니?”

쫓겨 가는 고양이를 영수는 마치 맹수와 같이 날뛰며 쫓아갔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영수는 쫓아가서 발로 밟은 다음 고양이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무서운 경험을 가진 고양이는 발로 비비며 마지막 용기를 다 내서 빠지려 하며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요놈의 자식 살려둘 줄 아니?”

한없이 흥분한 영수는 고양이 모가지를 움켜쥔 채 마루 아래로 내려가서 댓돌에다가 힘껏 다해서 내동댕이쳤다.

“캑!”

하고 비명을 지른 고양이는 댓돌에 부딪친 채 두서너 번 버둥버둥하다가 그만 아무 소리도 없고 말았다. 고양이의 입에서 흘러서 나오는 피가 댓돌 아래로 벌겋게 흘러서 보기에도 처참할 뿐이었다.

영수는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다시 집어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물독 옆을 파고 묻어버리고 나서는 비틀거리며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자기 남편이 요사이 와서 한없이 난폭해진 것을 슬퍼할 뿐이었다. 그의 아내는 무참히 죽은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와서 곱게 흙을 더 덮어 주고는 힘없이 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흑묘이변' 삽화 (구본웅 그림)


그 이튿날 영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려가지고 어젯밤에 자기가 너무나 잔인했던 것을 뉘우쳤다. 그러나 이미 자기 손에 아무 죄 없는 고양이가 죽은 것을 너무나 쓰라리게 생각하였다.

영수는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들어가서 물독 옆을 들여다보았다. 한눈 먼 고양이가 자기를 원망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묻혀 있는 곳을 다져주었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영수의 아내는 그날부터 마치 어린애를 잃어버린 어머니같이 아무 힘도 없어 보였다.

아내가 이와 같이 기운이 없어 하는 것을 본 영수는 더욱이 마음이 괴로웠다.

“그게 무슨 짓이람. 술을 먹지 말아야지.”

이렇게 후회까지도 하였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내 장에 갔다 오는 길에 고양이를 또 하나 얻어 보리다.”

이같이 자기 아내를 위로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지긋지긋한 행동을 한 번 본 다음부터는 그 남편을 대할 때마다 몸에서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여보 글쎄 그 전에는 그렇지 않더니 웬일이요. 안 먹던 술을 입에 대지 않나. 술주정을 하지 않나. 조용한 집안이 난가가 되니 도무지 동네가 부끄럽구려.”

이같이 아내에게 충고를 받을 때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다.

“지난 일을 말하면 소용 있소.”

“난 그 고양이가 불쌍해서 죽겠소.”

“여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소용 있소, 내 어디 또 하나 얻어 보리다.”

“그렇지만 당신이 또 죽이면 어떡하우.”

“그럴 리야 있소. 그것도 술김에 한 번이지. 자― 하여간 내 어디 얻어 보리다.”

“그럼 하나 얻어다 주어요. 그게 없으니까 집안이 빈 것 같구려.”

영수는 속마음으로는 고양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만큼 싫었으나 또 한편으로 자기 아내의 마음도 위로해줄 겸 또 그와 같은 고양이를 한 마리 얻어다 잘 길러주는 것이 먼저 자기 손에 무참히 죽은 고양이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되는 것 같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영수는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먼저 죽여 버린 고양이와 흡사한 것을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수는 한참이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들여다보다가 몇 푼의 돈을 어린아이들에게 던져주고 그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고양이 얻어왔소.”

그의 아내는 고양이 얻어왔다는 바람에 한달음에 대문까지 뛰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죽은 놈과 똑같을까?”

그의 아내는 한없이 즐거워하면서 내려놓기를 싫어하였다. 영수는 밥상을 앞에 놓은 다음에 고양이를 불러 무릎 위에 놓고 그중 맛있는 것을 가려 주었다.

“아이 여보, 좀 귀엽소.”

그의 아내는 만족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귀엽기야 하지만 고양이는 야멸찬 짐승이 되어서 소용없어.”

“그렇지만 좋은 걸 어떡하우.”

오래간만에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 이튿날 아침 영수가 세수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왔을 때 고양이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영수는 따라오는 꼴이 귀여워서

“냐옹! 이리 온.”

하고 불렀다.

영수는 세수를 한 다음 수건으로 얼굴의 물을 씻으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안고 마루로 올라오려고 돌아보았다.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는 쪼그리고 앉아서 한 발로 바른 눈을 비비고 있었다. 영수는 이 순간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것은 전날 죽여 버린 고양이가 한 눈이 먼 다음부터 늘 발로 바른편 눈을 만지고 있던 것이 생각이 갑자기 나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그 고양이를 찬찬이 살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어제 자기가 데리고 올 때까지 아무 일도 없던 고양이가 오늘 아침에는 그 바른편 한 눈이 확실히 멀어 있지 않은가. 그 고양이는 한 눈을 만지며 왼편 한 눈으로 영수를 쳐다보며 “냐옹! 냐옹!”하고 있었다.

“아― 이상도 하다!”

영수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전신을 떨었다.

“어쩌면 같은 바른편 눈이 멀었을까!”

이와 같은 의문은 더욱 영수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한 속으로 끌고 달음질하였다. 그러나

“아마 그 전부터 바른편 눈이 상했었던 게지.”

이같이 생각을 돌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결코 좋지는 않았다.

새로 얻어온 고양이가 “냐옹― 냐옹―” 하고 자기를 유달리 따를 때마다 몸에 소름이 쪽쪽 돋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영수는 그전같이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가 자기에게 친하게 덤벼들 때마다 영수는 고개를 외면을 하고는 슬슬 밀어버렸다.

영수가 이렇게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며 영수의 무릎에도 기어오르며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기도 하였다.

이같이 고양이가 영수에게 따르면 따를수록 영수는 싫증이 점점 더하여갔다.

“여보, 이제는 고양이가 보기도 지긋지긋하니 갖다 버립시다.”

참다못해서 영수가 아내에게 고양이 갖다버릴 의논을 하였다.

“여보, 애써 얻어온 것을 갖다버리면 불쌍하지 않소?”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한다 할지라도 영수는 기어이 갖다 버릴 결심을 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따위 물건을 언제까지든지 두고 보겠단 말요.”

“아니 가만있는 게 뭐래우?”

“그래 남편이 싫어하면 먼저 버리는 게 아니라 이까짓 고양이가 남편보담 더하단 말요?”

영수는 이같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고 참 변덕도 심하오. 주워올 때는 언제고 또 갖다 버리는 것은 무어유.”

그의 아내도 지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 보기 싫은 고양이를 끼고 살란 말야―”

“누가 보기 싫은 것을 당신더러 보라우.”

“그럼 그만 둬. 그렇게 고양이가 놓기 싫으면 고양이만 데리고 살아보지. 난 고양이가 보기 싫어 집에 안 있을 테야.”

영수는 이같이 잘라 말했다.

영수의 아내도 고양이를 좋아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자기 남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더 항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정― 싫은 거야 어떻게 하우. 갖다 버리던지 마음대로 하구려.”

영수는 두말하지 않고 고양이를 지게에다 얹고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수는 고양이를 지게에다 지고 삼십 리나 떨어져 있는 먼 곳에다 갖다버렸다.

“에― 이제는 근심 하나를 덜었다. 너도 팔자가 좋은 놈이면 훌륭한 집에 길리우겠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십 리나 넘어와 우연히 돌아다 볼 때 무엇인지 휙, 하고 앞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영수는 깜짝 놀라 다시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제가 쫓아올라구―”

또 먼저 일이 문득 생각나서 참아버리곤 하였다. 그보다도 날이 갈수록 고양이에 대한 미운 생각보다도 무서운 생각이 점점 드는 것이었다.

“여보 이것 좀 옮겨놓아 주어요.”

영수는 자기 아내가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쫓아내려갔다.

영수의 아내는 부엌에서 문 옆에 놓여 있는 김치 중두리(항아리보다는 조금 크고 독보다는 조금 작은 오지그릇)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영수는 그의 아내가 들고 쩔쩔매는 중두리를 받아 들었다. 그가 번쩍 중두리를 들어서 옮겨 놓을 때 어느 틈에 따라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영수 발밑에서 “냐옹”거리고 있었다.

영수는 고양이가 밟힐까 염려해서 고양이를 피해서 발을 옮겨 놓다가 그만 중두리를 안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경칠 놈의 고양이.”

영수는 분노의 불길이 걷잡을 새 없이 타올랐다. 중두리는 쩡 하고 몇 조각이 부서지고 넘어지는 바람에 깨어진 조각이 튀어 올라와서 그의 이마에는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근치근한 피가 머리에서 흐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영수는 눈이 뒤집힐 만큼 그의 분길은 한층 더하였다. 그의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의 불길은 오늘까지 고양이를 미워하던 생각과 아울러 터져버렸다.

영수는 일어서면서 눈앞에 보이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깜짝 놀란 그의 아내는 남편의 앞을 막아서며

“그까짓 고양이를 뭘 그러우―”

하고 애원하듯이 가로막았다.

“무어야!”

미친 듯이 날뛰는 영수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는 고양이가 한 눈을 지그시 뜨고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았다.

영수는 자기 앞을 막고 서서 말리는 아내를 밀치고 한 손에 쥐어진 도끼를 힘 있게 들어서 아래로 내려쳤다.

“으악―”

영수는 이 뜻밖의 비명에 정신을 잃고 자기 발밑에 벌어져 있는 참혹한 현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두 귀에서는 ‘왱’하고 모기 소리 같은 소리가 나며 두 눈에는 번갯불같이 반짝할 뿐이었다.

영수의 발밑에는 뜨거운 피가 벌겋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머리가 두 쪽으로 깨어진 채 아무 소리도 없었다.

“여보……”

영수는 억지로 정신을 수습하여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자기가 죽였으리라고 믿었던 고양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뜻하지 아니한 자기 아내가 보기에도 참혹한 죽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뜻하지 아니한 살인을 한 그의 정신은 공포에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사형대가 눈에 어른하고 비쳤다. 당장 무엇이 자기의 목을 자르는 것 같이 모가지가 답답하였다.

영수는 이 무서운 사실을 부인(否認)하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감은 눈에는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아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온몸을 떨고 또다시 잊으려 하였다.

“냐―옹”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유령이 또 자기를 향하고 덤비는 것도 같았다. 영수는 그만 실신한 채 그 자리에 혼도(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짐)하여 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린 영수는 무서운 죄적(罪跡)을 감추기 위해서 물독 뒤를 깊이 파고 아내의 신체를 파묻은 다음 흘러 있는 피를 흙을 파서 덮고 모든 흔적을 없이 한 다음에 그는 또다사 타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달아난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후 영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영수는 이 사흘 동안을 무서운 공포 속에서 지냈다.

밤만 되면 원통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이 자기의 목을 누르는 것만 같고 먼저 죽은 고양이가 함부로 덤벼 온 전신을 집어 뜯는 것 같았다. 그는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웠다가 수없이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바람에 문소리만 나도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사복형사가 그의 집에 이르러서 가택수색을 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잡고 수색하는 형사의 뒤만 따를 뿐이었다.

형사 일동은 아무 흔적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향하여 갔다.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뛰놀았다. 형사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이리 저리 보다가 새 흙이 덮여 있는 물독 옆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영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나오려 하였다.

“냐옹―”

이 순간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알 수 없는 고양이 소리에 형사대는 발을 멈췄다. 

“냐옹”

또 들려왔다. 멀리 땅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군!”

“냐옹”

은은히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는 물독 뒤에서 나왔다.

“그곳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니 이상하군.”

“땅 속에서 나는 게 이상하니 파 보지.”

이 순간 영수의 정신은 먼 지옥을 걷는 것 같았다. 얼마 안 되어 영수의 아내 신체는 그 처참한 형체를 나타내었다.


모든 죄수를 실은 자동차는 재판소에서 나와서 형무소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이 죄수 중에는 오늘 사형의 언도(言渡)를 받고 형장을 향하여 가는 죄수가 있었으니 그는 얼마 전에 자기 아내를 죽인 영수였다. 마지막 형장으로 향하야 가는 영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이 몽롱한 그의 귀에는 다만

“냐옹”

하고 저주에 넘치는 고양이 소리가 바람결에 어디서인지 들려오는 듯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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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4.01.03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당시 벌써 검은 고양이의 번안물이 있었다니 놀랍군요.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코너도 잘 보았습니다.

  2. 빠오징(寶敬) 2014.04.05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지게 보고 갑니다.^^

  3. gg 2014.09.16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번안으로 보니 색다르네요 ㅎㅎ


오귀스트 뒤팽

 

“분석적인 정신 기능 그 자체는 거의 분석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얻어내는 효과에서 그 실체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해 확실한 것 중 하나는 그러한 자질을 충분히 갖춘, 혜택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나 아주 생생한 기쁨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분석가는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거기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그는 수수께끼, 어려운 문제, 암호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풀 때는 여느 사람의 이해력으로 보면 초인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진실로 질서정연한 순서를 거쳐 얻어지는 것인데도 얼른 보기에는 직감적인 해답처럼 생각되기 마련이다.”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모르그 거리의 살인' (해리 클라크 그림)


앞의 글이 어떤 몰락한 귀족 가문의 젊은 신사, 그것도 거듭된 불운으로 삶에 대한 활력을 잃은 나머지 세상에서 활약한다거나 집안을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을 단념한 사나이에 대한 소개를 하기 위해 쓰여졌다면 좀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불운한 젊은 신사는 다름 아닌 근대 ‘최초의 미스터리 작품’에 등장하는 ‘최초의 명탐정’ 뒤팽이다.

 

18XX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나’(사건의 기록자)는 몽마르트 거리의 이름 없는 도서관에서 뒤팽을 처음 만나게 된다. 우연히 희귀한 책을 찾고 있던 두 사람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절친한 사이가 되고, 결국 ‘나’는 한동안 생제르맹 거리의 낡아빠진 저택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뒤팽이 마주친 괴상한 사건과 그것을 해결해 내는 놀라운 능력에 대해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상과 인연을 거의 끊고 지내는 뒤팽은 밝은 태양보다는 어두운 밤을 좋아해서, 새벽 동이 트는 즉시 집안의 창문을 모두 가리고 강한 향기를 뿜는 촛불을 두 개 켠 후 독서 혹은 대화를 나누거나 사색에 잠긴다. 그리고 다시 밤이 돌아오면 거리로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다. 그가 세상의 일에 관심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다. 범죄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 덕택에 모든 사람들이 두 손을 들어버린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져 경찰국장인 G를 도와 해결에 나선다.

 

 


그가 처음 등장한 작품은 두 모녀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 밀폐된 방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사건을, 뒤팽은 신문의 관련 기사를 차분하게 읽고 사건 현장을 살펴본 후 범행 상황과 범인을 정확하게 밝혀낸다.

 

오귀스트 뒤팽(왼쪽)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그가 사건을 훌륭히 해결해내자 경찰은 그에게 종종 사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게 되고, 그 결과 두 개의 사건 기록이 더 남는다.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는 실제로 미국에서 발생한 미해결 사건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을 파리로 무대를 옮겨 뒤팽으로 하여금 해결하게 만든 작품이며, ‘도둑맞은 편지’는 맹점(盲點)을 이용한 재치 있는 작품이다.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뒤팽은 여러 면에서 훗날 등장하는 미스터리 작품 속 주인공들의 전형이 되었다. 기묘한 사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주인공의 뛰어난 두뇌회전, 별나다고 생각될 정도의 독특한 개성, 명탐정의 조수 역할을 하는 보조적 인물(이것은 나중에 등장한 홈즈의 친구 왓슨의 이름을 따 ‘왓슨 역’이라고 불리게 된다), 한 수 아래의 경찰, 고급스러운 유머, 그리고 논리적인 해결과 의외의 범인 등은 미스터리 작품의 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뒤팽은 두 개의 살인사건에서 특별한 보수를 원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했지만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편지를 찾아낸 후 사건 담당자인 경찰국장에게서 사례금을 받아내 사립탐정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뒤팽의 모델은 실존 인물이었던 프랑수아 비도크라는 것이 정설이다. 프랑스 출신의 범죄자였으며 훗날 범죄수사국의 책임자가 되는 비도크는 현직에서 은퇴한 뒤 회고록을 집필해 포를 비롯한 비슷한 시기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뒤팽은 비도크의 뒤를 따르는 데 만족할 수 없었던지 그에 대해 ‘육감도 끈기도 좋았지만 사고(思考)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모르그 거리의 살인)’고 혹평한 바 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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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기 어려운 비밀

세상은 거짓말장이로 가득 차 있다.
- 에버라드 도미니
<The Great Impersonation>(1920) 에드워드 필립스 오펜하임

 

추리작가들은 죽음, 수수께끼, 음모, 시기, 질투…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지만, 그들의 평상시 생활은 여느 사람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 돈이 많아진다면 생활수준은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또 요즘은 독자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해외의 스타급 작가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매스컴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가의 신간 안내나 인터뷰 기사가 문화면에 실리는 것 못지않게 작가가 사기를 당했다든가 표절로 제소됐다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도 실리곤 하죠. 게다가 오래 전에 사망한 작가들마저도 요즘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십 년, 길게는 1백 년 전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마저 연구가들이 파헤쳐 전기(傳記)로 발간하기 때문인데요, 한마디로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례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등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걸작 시리즈를 남긴 엘러리 퀸이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B.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 다른 필명인 바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드루리 레인 시리즈 4부작도 발표했지요. 퀸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컬럼비아 대학이 강연 요청을 하자, 둘 중 누가 갈 것인지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해서 결국은 리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퀸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던 터라 리는 고심 끝에 검정 마스크를 쓰고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퀸이 대중 앞에 나타나야 할 때면 항상 리가 검정 마스크를 쓴 채로 나섰으며, 바너비 로스 역으로는 더네이가 검정 마스크를 썼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강연회에 나타나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터라 1936년 <퍼블리셔스 위클리>를 통해 이들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 퀸과 로스가 같은 작가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거의 밝혀졌지요, 그러나 그들의 작업 분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이나 친지들을 통해 테마와 플롯,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틀은 더네이가, 그 기본에 살을 붙이고 세밀한 점을 보완하는 일은 리가 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할 뿐입니다.

복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수많은 추리소설보다 훨씬 기묘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을 발표한 지 얼마 후인 1926년 12월, 당시 35세의 크리스티는 저녁식사 후 드라이브를 나간다고 말한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그녀의 소지품이 남아있던 차가 호수 근처의 풀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은 자살했거나 혹은 사고를 당했을 것 같은 정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흘 동안 전문가와 경찰, 보도진은 다양한 가설을 세웠으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근처를 철저한 수색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크리스티는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실종 다음날인 토요일부터 묵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외도 등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가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기억상실증을 일으킨 것으로 설명되었지만, 그 ‘실종’은 마치 계획이라도 짠 듯이 물 흐르듯 차질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외도한 남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진짜 기억상실증’ 등 가지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했지만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 사건의 기억을 잊고 싶어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실종된 애거서 크리스티 수색에 나선 사람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기발한 작품 세계와 맞먹을 만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의 죽음 역시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음주와 아편 흡입, 또 조울증 등으로 혼란한 정신상태였던 포우는 40세였던 1849년 9월 리치먼드에서 열차에 탄 뒤 닷새 후인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사흘 만에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병원 임상기록을 검토한 결과 포우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의해 광견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임상기록에 따르면 포우는 입원 당일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가 다음날 호전되었고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는데 이 증세는 광견병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확정된 진실이 아닌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불분명한 만큼 더욱 자세한 분석 방법이 나오게 되면 혹시 다른 이유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포가 죽음을 맞이하던 시기를 다룬 작품이 무척 많은데, 번역된 작품으로는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 등이 있습니다.

포의 묘비

포가 죽은 지 약 150여년이 지난 1996년 12월, 미국의 하드보일드 추리작가 유진 이지가 시카고 시내의 빌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채 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밧줄은 빌딩 14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금고에 연결되어 있었고, 금고 옆에는 권총 한 자루, 그의 주머니에는 브래스 너클(brass knuckle:격투할 때 손에 끼우는 쇳조각)과 현금 약 5백 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사무실 문은 잠겨 있어서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 일단 자살로 판단했습니다. 한동안 슬럼프였던 그가 새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설명에서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전행위라는 추론까지 나왔지만, 하지만 이지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10대의 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며 이미 생활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리를 잡은 작가였던 만큼 책을 더 팔기 위해 자살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신작 집필을 위해 취재해 왔던 민간무장그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가족들을 안전한 호텔로 옮기고 방탄복과 권총을 지닌 채 홀로 사무실에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살로 보기에도 미심쩍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유진 이지 Eugene Izzi(1953-1996)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이지는 운동으로 단련된 180cm, 100kg의 거구인데, 대낮에 사무실에서 격투한 흔적도 없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워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시카고 경찰은 밀실살인을 자주 다룬 작가 에드워드 호크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지만 뾰족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고 하네요.

어쩌면 추리소설가들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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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6.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의 죽음을 모델로 한 작품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2. 시무언 2011.06.27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게 코난 도일이 크리스티의 실종때 수사를 도왔다는군요. 그외의 사건도 해결한적이 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
 
"우리 집 고양이는 폭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1948년 제임스 샌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양이는 어쩐지 가까이하기 어려운 짐승 같습니다.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산 것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5천년 이상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서도 사람보다는 고양이 쪽에서 먼저 거리를 두곤 하죠(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개하고는 많이 다르더군요).

또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사자이며 악(惡)이나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의 숙적인 스펙터의 우두머리 블로펠드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장면은 그런 시각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금기는 무척 뿌리 깊어 요즘도 서양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매우 불쾌하게 여기곤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지요?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도둑을 잡는데 고양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답니다. 다만 개처럼 냄새를 쫓아가는 과학적 방식이 아니라 주술적 매개체로 썼지요. 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고양이를 잡아다가 시루 속에 넣고 상여줄로 시루를 감고 불을 때면서 도둑의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들게 해 달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렇게 해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도둑도 주문대로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든다는 것이다. 전북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항아리에 넣고 불을 때면서 주문을 외우다가 항아리 뚜껑을 열면 고양이가 도둑의 집으로 가서 죽고, 그때 도둑도 따라서 죽는다고 한다. 또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장례에 썼던 삼줄로 묶어 3일간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게 한 후 삼거리에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역시 도둑도 함께 죽는다는 것이다. 

…음, 끔찍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효력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추리소설보다는 공포소설로 보아야 할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아내를 살해한 죄목으로 다음날 사형 당할 예정인 한 사나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플루토’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는 단지 좀 똘똘해 보일 뿐 아무런 나쁜 짓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보통 고양이가 하는 흔한 행동, 즉 할퀴는 정도에 그치지요. 그러나 이 검은 고양이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아내를 죽이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주인공마저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19세기에 발표한 이런 구닥다리(?) 작품이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괴기영화에 나오는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 쓴 괴물은 더더욱 아닌,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은 고양이'(알퐁스 르그로의 그림)

현대 추리소설에서 고양이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립 탐정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종종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건 의뢰가 없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탐정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엘러리 퀸은 단편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에서 독자에게 희한한 수수께끼를 하나 제시합니다. 중풍으로 기동을 못하는, 그리고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는 할머니가 왜 매주 검은 고양이를 한 마리씩 사는 것일까요? 이 수수께끼의 뒤에는 놀라운 진상이 숨어 있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분을 위해서 여기서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양이의 복수극 같은 괴기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주로 집에서 집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에게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애완동물로서 무척 사랑 받는 것 같습니다.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타키(Taki)라는 이름의 검정색 페르시아 고양이를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키웠으며 문인들과의 편지에서도 소식을 써 보내기도 했습니다.

챈들러와 그의 고양이 타키

이렇게 고양이들이 작가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급기야는 고양이가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작가 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코코(Coco)’라는 이름의 입맛 까다로운 수컷 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 <The Cat Who…>로 이어지는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코는 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치고는 터무니없이 머리가 좋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에 코코의 주인인 신문기자 짐 클라인이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코코가 스트레스를 받는 기미를 보이자 클라인은 ‘얌얌’이라는 이름의 암놈 샴 고양이를 구해 함께 키우게 됩니다. 작가 브라운은 과거에 생일 선물로 받은 고양이에 코코라는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는데, 어느 날 10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브라운 여사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자 1966년 첫 장편인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를 발표한 후 코코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2007년까지 발표했습니다(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1913년생입니다). 시리즈 30번째 장편이 될 뻔했던 <The Cat Who Smelled Smoke>는 출간이 취소되었다는데 이유는 모르겠군요.

릴리언 잭슨 브라운의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

그 뒤를 이었다고 하긴 뭣하지만, 역시 미국의 여성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은 고양이 머피 부인(고양이의 이름입니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내용보다 더 독특한 것은 이 시리즈를 쓰는 것이 작가 브라운이 키우는 고양이 스니키 파이 브라운이라는 것이지요. 작가 브라운은 자신이 공동 저자라고 주장합니다만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리타 메이 브라운과 스니키 파이 브라운

한편 일본 작가 아카가와 지로는 ‘홈즈’라는 이름의 암컷 얼룩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양이 홈즈의 주인인 가타야마 요시타로는 강력 사건을 다루는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피(血)만 보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현기증을 일으켜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고양이 홈즈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유머 미스터리를 표방한 홈즈 시리즈는 첫 작품 1978년 <얼룩고양이 홈즈의 추리>가 발표된 이래 장편 33권, 단편집 14권이라는 대하(大河) 시리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아키프 피린치의 <펠리데(Felidae)>는 인간의 사건이 아닌 고양이의 사건을 고양이가 해결한다는 독특한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심지어 컴퓨터까지 다루지만,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탐정 노릇을 하는 고양이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소설의 선구자였던 에드 맥베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탐정소설을 가지고 온갖 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맞아요. 고양이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금붕어는 어떨까요? 금붕어 앞에 범죄 무기로 의심되는 것을 들자 금붕어가 물거품을 뻐끔뻐끔 내 뿜는다… 맙소사.”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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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5.05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개보다 자유분방하니 고양이가 탐정 노릇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물 탐정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고양이 외에 과연 어떤 동물이 탐정 노릇을 하면 어울릴까요.

  2. 2011.05.09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소설보다 더욱 극적인 사람들

"당신 여권에는 작가라고 되어 있지만, 그건 아주 융통성 있는 단어이지요."
- 피터스가 라티머에게
   - <디미트리오스의 관>(1939)  에릭 앰블러

추리소설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에게 특유의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실상 천재 탐정이 드물게 된 요즘도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탐정보다 더 기발하고 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도 같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려는 작가도 드물지 않습니다.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 시리즈의 작가 어네스트 브라마는 출생연도까지 불분명하며(그의 출생연도는 자서전적인 소설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으며, 내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도 싫다”고 돌려보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작가협회에서는 매년 ‘여름추리소설학교’를 여는데, 그 행사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이 참가하죠. 여기 참가한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평범하고 어쩌며 소심해보이기까지 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기발한 범죄를 궁리하고 있습니다만 외모만으로는 어디서나 마주칠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거의 은둔자처럼 살았던 브래머와는 달리 이런 저런 기벽(奇癖)이 전해져오는 유명 작가도 있습니다.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추리소설을 썼다’는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적인 재능과 함께 반항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우한 성장 배경 탓일지는 몰라도 그는 평범함보다는 파격적인 면을 추구했습니다. 힘들게 들어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명령불복종’과 ‘의무 불이행’으로 퇴학당하는 등 타고난 반골 기질도 있었죠. 워낙 인생이 파란만장한 터라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여럿 있습니다. 몇 년 전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와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가 번역되었고, 얼마 전 출간된 앤드루 테일러의 <아메리칸 보이>는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합니다.

소년 시절의 포가 등장하는 '아메리칸 보이'


코난 도일은 젊은 시절 심령술, 신비학(神秘學), 강령술(降靈術)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이를 먹은 후에는 관심 수준을 넘어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과학적인 상식을 지닌 홈즈라는 탐정을 만들어 냈으며, 원래 의사였던 그가 말년에 심령술 신봉자가 된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만…. 도일이 심령론을 신봉할 것을 공언하고 그 선전과 전도에 나선 것은 제1차 대전 끝 무렵부터였으므로, 그런 미신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전쟁 중에 장남 킹슬리를 비롯한 많은 친지를 잃고 마음의 균형을 잃은 탓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도일은 고고학 사상 최고의 사기극으로 일컬어지는 ‘필트다운 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필트다운 인 사건’이란 1912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이 영국 필트다운에서 발견한 원시인 두개골 화석이 사람과 오랑우탄의 턱뼈를 인위적으로 합성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근 40년이나 지나서야 밝혀진 사건이지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찰스 도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확실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이 사기극의 주모자로 도슨을 비롯한 주변의 고고학자들을 꼽고 보고 있지만 약 70년 후 이 사건을 연구한 미국의 고고학자 존 윈슬로(John Winslow)는 당시 필트다운 근처에 살았고 1912년에는 공공연히 발굴현장 근처를 자주 방문했던 코난 도일을 조심스럽게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도일은 장난을 꾸밀만한 기술, 지식, 기회를 모두 갖춘 인물로서 신비학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을 한 번쯤 골려주겠다는 동기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도일의 작품 <잃어버린 세계>에 나오는 가상 지역의 지도와 필트다운 근교의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소설 속에는 뼈의 위조나 장난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나오는 것을 볼 때 필트다운의 사기극은 <잃어버린 세계>의 플롯을 기초로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윈슬로에 따르면 도일은 이 사건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듯 여러 가지 어처구니없는 실마리 - 이를테면 크리켓 경기에 사용하는 배트 모양의 용도불명의 코끼리 다리뼈(코난 도일은 뛰어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턱뼈가 발견된 곳에서 3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어금니 등 -를 던져 놓았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을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과연 도일이 범인이었다면 그의 장난이 성공해서 즐거워했을지 아니면 어이없어했을지 궁금합니다.

밀실을 다룬 고전 <노란 방의 비밀>과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자 가스통 르루도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못지않은 기발한 장난기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기자였던 르루는 형무소에 있던 귀족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류를 위조, 동료 기자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특종을 따 낸 일화가 있습니다. 또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르루의 작품 집필 때의 습관도 유명합니다. 그가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작품을 쓸 때면 온 집안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그는 창문으로 뛰어가 총을 쏩니다. 그러면 그 신호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접시들을 깨뜨리고 냄비들을 두들기며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며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끝냈으니 화끈하게! 가스통 르루의 캐리커쳐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인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역시 기발한 재능과 독특한 장난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추리작가 도로시 솔즈베리 데이비스의 기억에 의하면, 어떤 만찬에 참석한 하이스미스는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애완용 뱀 두 마리(민달팽이라는 이야기도 있네요)를 테이블에 꺼내 놓고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놀라는 모습을 태연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1995년 작고할 때 예상대로(?) 놀라운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쓸 때 머물렀던 뉴욕 주 북부의 한 예술인 공동체 마을에 3백만 달러라는 그녀의 유산을 모두 기증한 것이지요. 이 일은 마을 공동체 1백년 역사상 한 사람의 기증으로서는 최고액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젊은 시절. (작품집의 표지입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 추리문학계에서 큰 활약을 보인 다카키 아키미츠의 성공은 미신과도 같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전 후 직업을 얻지 못해 2년 동안이나 실업자로 지내던 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을 쓰면 성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문학 수업 같은 것은 해 본적도 없었던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점괘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학생 시절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는 추리소설을 선택했으며, 전쟁 후 물자 부족으로 원고지도 없어 잡다한 종이에 약 6백매 정도의 장편을 3주 정도 걸려 단숨에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부푼 꿈을 안고 출판사 이곳저곳에 원고를 가져갔지만, 인쇄용지도 부족한 판국에 이름도 없는 젊은이가 쓴 장편소설을 상대해 주는 곳이 있을 리가 없지요. 여기서 그는 다시 한 번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대가(大家)에게 이 원고를 보내면 인정받을 것이고, 그럼 성공할 것이다’라는 낙관적인 점괘가 다시 나오자 그는 원고지에 깨끗하게 다시 쓴 후 당대 최고의 추리작가 에도가와 란포에게 원고를 보낸 것이죠. 란포는 이 무명 청년의 작품을 읽은 후 참신한 내용에 감탄해서 출판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역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문신 살인사건>(1948)이며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미즈 교스케는 최고의 천재 탐정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점의 인생론>, <방위학(方位學)입문>, <상성(相性)판단>등 일련의 점술 관련 서적을 집필하며 점술의 전면적 신봉자임을 밝혔습니다.

점을 신봉했던 다카키 아키미츠

사실 그의 점에 대한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 부친이 많은 빚을 남긴 채 급서(急逝)하고 자신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을 때, 부친의 친구에게 손금 점을 본 후 점괘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어쩌면 작가들의 인생만 살펴봐도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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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10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글을 쓸 때의 버릇은 특별히 없습니다만, 굳이 하나 든다면 밤에 써야 더 잘 써지더군요.

  2. 시무언 2011.03.10 0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난 도일같은 경우는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죠. 그것도 어찌보면 괴짜고...

  3. 카메라이언 2011.03.10 0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쩜 좋아요. 전 너무 평범한 것 같아요. 꺅. ==33 후다닥 도망.

  4. 갈매 2011.03.11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특이한 기벽이, 기질이 있어야 작가가 되는 것일까요? ^^

  5. 행인2 2011.03.11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선생, 정말 멋집니다^^
    '태양은 가득히'나 '낯선 승객'이나 정말 대단한 작품인데.

  6. myungworry 2011.03.14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예쁘군요. 물론 소설도 좋습니다만.

  7. Miss Baby 2011.05.2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카키 아키미츠의 문신살인사건 북리뷰를 하기 위해 작가 리서치하는 도중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을 발췌했습니다만,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코멘트 달아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 자체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많이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jaera1990.blog.me/130109318644


애주가, 주정뱅이, 알코올 중독자

세상에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남자가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
다른 하나는 여자가 마지막 한 잔을 마셨을 때이다.
     - <The Octopus Marooned> (1908) O.헨리
 
술.
술자리는 친구, 동료, 혹은 명절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자리일 수도 있겠지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가 괴롭기만 하죠. 또 음주가 지나치면 좋지 못한 일(따로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괴로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술은 매우 쓸모 있는 소도구로, 웬만한 작가라면 음주 취향만으로 등장인물의 사회적 지위와 배경을 쉽게(혹은 상투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와인을 즐기는 도시적인 인물, 생맥주를 들이키는 직장인,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묘령의 여인,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배 나온 중년 남자, 소주나 막걸리를 안주도 없이 들이키는 거친 사나이… 이런 전형적인 인물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커다란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리작가와 술의 관계도 밀접합니다. 현대 추리소설의 창시자 에드거 앨런 포는 음주벽으로 유명했고, 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네가 범인이다>, <아몬틸라도 술통>등의 작품도 있지만 그가 불과 40세라는 짧은 나이에 요절한 것은 폭음으로 인해 일찌감치 건강을 해쳤던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


그러나 포 이후 한동안 탐정은 술을 멀리한 것 같습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연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아편이나 코카인 등의 마약까지 상용했는데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귀족적인’ 영국 탐정은 식탁에서 예의 바르게 가벼운 술 한 잔을 즐기는데 그쳤지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주인공 엘큐울 푸아로는 박하주, 석류주 등 독하지 않을 듯한 술을 즐겼으며 배러니스 오르치가 만들어 낸 괴상한 주인공 ‘구석의 노인’은 쉴 새 없이 손을 만지작거리고 매듭을 만들며 마치 알코올중독자 같은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마시는 것은 놀랍게도 우유일 뿐이었습니다.

이언 플레밍이 만들어 낸 영국의 전설적인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도 고급 술을 즐기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습니다. 술에 대해 박식한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의 미각 묘사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보여주고 있지요. 영화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는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련 스파이가 생선 요리와 함께 레드와인(붉은 포도주)을 주문한 것. 공산주의자인 소련 스파이는 -빨갱이라서- 포도주도 붉은 것을 마신다는 유머와 함께, 본드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는 계기가 됩니다. 원래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와인(흰 포도주)을 함께 마시기 때문에 수상쩍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용의주도하게 와인 맛을 보는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연기).


술을 많이 마시는 탐정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귀족 같은 생활을 하던 유럽의 천재 탐정 대신 뒷골목에서 악당들과 맞붙는 현실적이며 훨씬 더 인간적인 탐정이 하드보일드 작품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드보일드의 선구자 대쉴 해밋이 만들어낸 탐정 샘 스페이드는 술을 즐기는 편인데, 사건을 의뢰 받았을 때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마십니다. 대신 강인한 외모나 성격처럼 알코올에도 강해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실망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해미트의 뒤를 이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탄생시킨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인데, 사무실의 책상 서랍(작품에서는 ‘깊숙한 서랍’이라고 나옵니다)에는 언제나 위스키 병과 술잔이 들어 있어 자신이 마시거나 손님에게 대접하곤 합니다.

술집에서의 필립 말로우(로버트 미첨이 연기). 영화 '빅 슬립'에서


지나간 일이니 결과론이 되겠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만약 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위대한 추리소설가 대신 유능한 사업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시절 변호사를 지망했던 챈들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문학세계로 발을 디뎠으나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못했고, 군복무 후 은행을 거쳐 석유회사의 중역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 이미 알코올중독 기미를 보여서 직장을 잃은 챈들러는 44세라는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빅 슬립>(1939), <안녕, 내 사랑>(1940),<기나긴 이별>(1954)등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 역시 포우에 못지않게 서글펐는데, 1954년 연상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진정되어가던 모습을 보이던 알코올중독이 다시 도진 것입니다. 결국 건강을 해친 그는 집필 중이던 장편 <푸들 스프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1959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미국 탐정이 위스키 같은 독한 술만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렉스 스타우트의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는 ‘맥주와 난(蘭)’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울프는 입맛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맥주도 가려서 먹는데, 문제는 마음에 드는 맥주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신다는 것이죠. 저녁식사 때는 언제나 맥주를 마시는데 어쩌다가 마음만 내키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마시기 때문에, 조수인 아치 굿윈을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맥주 맛을 보는 네로 울프(에드워드 아놀드가 연기).


와인을 마시는 사람으로는… 역시 프랑스가 자랑하는 메그레 경감을 들 수 있겠군요. <Maigret a Vichy>(1968)에서는 휴가차 비시로 간 메그레 경감이 젊은 의사와 술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루에 와인을 1리터 정도를 마신다고 하니 거의 음료수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 집에서는 와인, 나가면 맥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애주가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술꾼이 되고, 그걸 더 넘어서면 알코올중독자가 되죠. 그런데 그런 탐정도 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조나단 라티머가 창조한 사립탐정 빌 크레인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이 들기까지 한다는 것이죠. 재치있고 머리도 좋아 어떤 궁지에서든 잘 빠져나오긴 하지만, 술만 아니면 궁지에 빠질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탐정 빌 크레인은 이렇게 생겼습니다-영화 '시체실의 여인' 포스터


<스위트홈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여류 작가 크레이그 라이스도 술꾼 주인공을 만들어 냈습니다. 뒤죽박죽 희극식 작품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변호사 존 J.말론은 과거 하드보일드 탐정들을 풍자한 듯이 보이는데, 그는 캐비넷 서랍 안에 ‘기밀(Confidential)’과 ‘비상 (Emergency)’이라고 붙여 놓은 술병을 숨겨 놓고 있으며, 아름다운 여자와 노닥거리는 것을 즐깁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보다 술이 덜 깼을 때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니 아무래도 별난 인물입니다.

J.J. 말론은 이렇게 생겼을까요 (물론 뒤에 있는 남자)


한편 웨이드 밀러가 <Guilty Bystander>(1947) 등에 등장시킨 맥스 서즈데이는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주정뱅이가 된 탐정입니다. 에드 맥베인이 커트 캐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일련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탐정 커트 캐넌(작가와 이름이 같습니다)도 이와 비슷한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뉴욕의 잘 나가는 사립탐정이었던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자 친구를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팬 끝에 탐정 허가증을 빼앗기고 아내도 잃고 말지요.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된 그는 뉴욕 뒷골목에 살게 되었지만 무허가 탐정으로 서민층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커트 캐넌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미국 추리작가협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역시 비슷한 경력을 가졌습니다. 뉴욕 시경 소속의 유능한 형사였던 스커더는 수사 중 쏜 총탄이 무고한 소녀의 생명을 빼앗자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경찰을 사직합니다. 그 후 아내와도 이혼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 그는 싸구려 호텔에 살면서 무허가 사립탐정 일을 하며 살아가다가 알코올중독자 치료모임에 들어가 금주(禁酒)를 시작하며 음지에서 양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8백만 가지 죽는 방법'에서 매트 스커더(왼쪽,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했습니다)


그나저나 술 하면 문득 떠오르는 작가는 나카지마 라모입니다. <가다라의 돼지>에서 어린 딸을 잃고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민족학자 오우베 교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늘 밤 모든 바에서>에서는 알코올성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알코올 중독자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한 것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술을 마신 탓에 그 역시 삼십 대 중반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지요.

공연중인 나카지마 라모


주정꾼 탐정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빈틈 하나 없는 사람보다 약한 면을 보이는 등장인물에게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좀 다르겠습니다만. (:P)

P.S.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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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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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2.03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에드 맥베인의 커트 케넌에 한 표!
    어린 시절 그 작품을 읽고 경도되었던 경험이....

    허나....술 먹고 댓글쓰는 건 참 ㅊ하들거미...ㅋㅎ샤댜ㅣㄹ ㅑ디

  2. 평시민 2011.02.03 0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선요리에 붉은 포도주 썼다고 빨갱이라니..., 조금 억지가 심한 건지 이안 플레밍이 의외로 매카시스트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드 하니 생각납니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보면 두 명의 킬러가 웨이터로 위장하고 본드에게 다가오는데 본드가 "이 요리에는 보르도산 포도주가 잘 어울리는데 오늘은 무통이군." 두 웨이터는 다 떨어졌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무통이 보르도산인데 말이죠. 본드는 이들이 웨이터 치고 향수 냄새가 짙다는 점(그것도 익숙한)을 보고 의심하고 있었지만요.

  3. 카메라이언 2011.02.14 0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카지마 라모 아저씨가 저렇게 생기셨었구나... 'ㅂ'... 수많은 직업들 중 뮤지션이기도 하셨다는 말에 궁금했었는데 (;;;) 아우 정말, 오늘 밤 모든 바에서 보면서 정말 술은 사회 악이구나 싶더라고요.

    크레이그 라이스의 책은 최근에 동서미스터리서 나온 스위트홈 살인사건을 봤는데, 안 그래도 작품 말미에 붙은 해설에서 나온 다른 소설들 읽고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번역이 상당히 어색한데도, 그 코믹코드가 넘넘넘 좋더라고요.

    명절은 한참 지났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__) (--) <--세뱃돈을 받고 싶은 수작. ㅋㅋㅋ

  4. 2011.03.06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평범한 것은 싫다

탐정 일이란 천한 짓이지. 오직 신사나 악당만이 할 수 있어.
-키스 이네스
<The Rising of the Moon>(1945)  -  글래디스 미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때그때 달라지긴 합니다. 예를 들어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잘생기고 인간성은 훌륭하고 머리 역시 좋아서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 태반입니다. 다만 너무 착한 것이 약점일 뿐. 이 주인공들은 어떤 위험과 마주쳐도 죽지 않으니(좀 고생은 합니다만) 초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TV처럼 눈으로 보는 것에 의존하는 영상 매체에서는 잘생긴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반면 추리소설은 두뇌의 오락이라는 측면이 강한 탓에 등장인물들, 특히 탐정들의 외모나 성격은 그들의 뛰어난 머리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다소 독특한 묘사와 설정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현대 추리소설의 원조 격인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포는 자신의 반항적인 기질 탓인지 유별난 성격의 주인공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퇴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아마추어 탐정 뒤팽은 밝은 쪽 보다는 어두운 이미지가 훨씬 강합니다. 밤의 어두움을 좋아해서 대낮부터 창문을 가린 채 향기 나는 촛불을 켜 놓고 명상에 잠기는가 하면 밤이 되면 거리로 나가 산책을 즐긴다는 습관은 도무지 평범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주인공에게 이런 괴상한 버릇을 부여한 것은 훗날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산책중인 뒤팽(오른쪽)과 친구(포처럼 보입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탐정이지만 그에게도 괴상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 조차 모를 정도로 범죄 이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가끔 괴상한 바이올린 곡을 연주해 룸메이트인 왓슨을 괴롭게 만들 때도 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편, 모르핀, 코카인 등 마약을 상습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에 단속이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요즘 같았으면 홈즈는 정의를 추구하는 명탐정이 되기는커녕 마약 중독자로 교도소와 재활센터를 들락거리느라 사건을 다룰 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뒤팽, 홈즈는 점잖은 편입니다. 수수께끼 풀이 형식 추리소설의 시대에 등장했던 탐정들의 괴벽은 작품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나 주로 쓰였을 뿐이었지 그 요소들을 크게 강조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고 불렸던 수많은 단편의 주인공들은 홈즈라는 인물의 개성을 능가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괴상한 습관을 보여주었습니다.

멍청한 얼굴에 우산을 거듭 잃어버리는 브라운 신부라던가, 쉴 새 없이 매듭을 만지작거리며 수다를 떠는 구석의 노인, 왕위 계승 신분을 버리고 러시아에서 쫓겨나 런던 교외의 낡고 큰 저택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잘레스키 왕자, 철저한 채식주의자에 적에게 잡혀도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는 탐정 소프 헤이즐, 셜록 홈즈의 열성 팬으로 통신교육 탐정기술강좌를 수강한 아마추어 (엉터리) 탐정 파일로 겁, 심지어는 뤼팽 같은 도둑들까지 탐정으로 나설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약점이 보이지 않는 탐정들도 수두룩하게 등장했습니다. 오만한 성격만 제외하면 매력적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너무나 사무적인 오스틴 프리먼의 손다이크 박사 등은 그리스 조각 같은 외모에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닌 대표적 탐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은 그저 추리력을 보여주는 기계로 보일 만큼 독자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을 주기 어려웠지요. 


황금기의 주요 작가이며 밀실의 제왕이라 불리는 미국 작가 존 딕슨 카는 늑대인간, 마녀, 강령술(降靈術), 흡혈귀 전설 등 괴기스러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기디언 펠 박사나 헨리 메리베일 경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진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 딱딱함을 탈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유머란 범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를 전환해 주는 데에는 가벼운 웃음만큼 적절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주인공들의 철저한 완벽함 보다는 어딘가 보이는 약점은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도 있지요.

'세 개의 관' 표지에 보이는 펠 박사

유머가 가미된 작품들이 성공하게 되자 앞에 열거한 명탐정들의 괴상한 점들도 단숨에 평범하게 보일 만큼 경이적인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여성 작가 조이스 포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윌프레드 도버 경감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신장 188cm, 체중 100kg을 넘는 몸집을 가졌지만 근육질이 없고 대부분이 지방질이라 마치 하마처럼 보이는데다가 커다란 얼굴에 히틀러 같은 콧수염을 길러 첫 인상에서부터 부담감을 주는 인물이지요. 명색이 소설 주인공인데 외모가 이렇게 험악하다면 그것을 상쇄할 만한 뛰어난 두뇌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그는 영국 경찰국의 가장 무능한 경관으로 꼽히며, 범죄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것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수사를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귀찮아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게으름은 지저분한 와이셔츠와 원래 색깔이 어땠는지  알 수 없는 넥타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감을 보좌하는 찰스 맥그리거는 도버와는 달리 잘생기고 지성적인 인물이지만, 젊은이에게 고생이 필요하다는 상관의 생각으로 도버 경감과 일하게 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도버 경감이 어떤 사람인지 딱 감이 오시겠지요?

도버 경감을 잇는 영국의 괴짜 경찰은 80년대 피터 러브지의 작품에 등장한 피터 다이아몬드 경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는 <마지막 형사>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데, 심술궂고 고집불통이며 현대의 첨단 수사기술을 불신하는 ‘마지막 고참 형사’입니다. 뚱뚱하고 몸집이 크다는 점에서는 도버 경감과 비슷하지만, 무능하면서도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았던 도버와는 달리 다이아몬드 경감은 자신의 실수에 대한 문책을 받고 결국 경찰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맛봅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을 떠나서도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끈질긴 면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주인공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괴짜들이라면 70년대 이후 미국에 등장한 탐정들은 현실 사회를 반영하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로저 사이먼의 <인간의 덫(The Big Fix)>에 등장한 유태계 사립탐정 모우지스 와인은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을 거리낌 없이 상용하고 있으며, 조셉 핸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보험조사원 데이브 브랜드스태터는 동성연애자입니다. 앤드류 복스의 주인공 버크는 무허가 탐정인데 전과 27범이기까지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겨야 그를 찾을 일이 생길까 궁금할 지경이죠.

사립탐정 모우지스 와인(리처드 드레이푸스).

이 정도만 소개해도 푸아로나 미스 마플 같은 사람이 얼마나 평범하고 무난한 인물인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이들은 아무리 이상한 성격을 가졌더라도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가끔 상식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시바타 렌자부로의 <유령신사>,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에 등장하는 탐정은 유령과 이미 죽어서 심장이 뛰지 않는 시체입니다.

무엇을 구상하십니까... 야마구치 마사야

여기에 한술 더 떠 공룡 탐정도 있습니다. 에릭 가르시아의 <Anonymous Rex>, <Casual Rex>, <Hot and Sweaty Rex>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빈센트 루비오는 사람 크기로 진화한 밸로시랩터 -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에서 떼지어 사람들을 습격하던 작은 공룡이 기억나시죠 - 로, 사람처럼 변장하고 태연하게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구 인구의 10% 정도가 변장한 공룡이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니 이미 보신 분도 계실 듯 싶네요.

맨 왼쪽이 주인공 빈센트 루비오(샘 트래멀). 겉보기엔 공룡처럼 보이진 않네요.

약점을 보완하는 쪽과 강점을 더욱 살리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좋을지는 정답이 없겠지요. 적어도 추리소설에서만큼은 이제 초인적인 천재 탐정이 오히려 너무 평범한(아니면 흔한) 만큼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비록 괴상하게 보이더라도 개성이 살아 있는 주인공들 쪽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도 며칠 지났네요.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올해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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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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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11.01.06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공룡!;;

  2. 이야기꾼 2011.01.0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룡 탐정에 비하면
    제가 구상한 탐정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너무 기괴하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었는데요...ㅎㅎ

  3. 허니문 베이베 2011.01.06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전환으로 허니문 차일드에서 베이베로 바꿨습니다. ㅎㅎ 추리닝님 글 읽다보면 회사에 금방 도착한다는. 덕분에 아이폰 배터리 빨리 소모돼도 마냥 즐겁다는. 탐정의 성격은 괴팍할수록, 특이할수록, 독특할수록 시선을 잡아 끄는 것 같습니다.^^

  4. 시무언 2011.01.07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하게 몇몇 팬들은 홈즈가 피도 눈물도 없는 추리 기계라고 얘기하더군요. 사회성이 부족할뿐이지 홈즈도 충분히 인간적인데(실수도 하고 말이죠)

    • 추리닝4 2011.01.11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솔직히 최근엔 홈즈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어릴때부터 봐온 너무 익숙한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여전히 탐정하면 홈즈!!

  5. 평시민 2011.01.08 0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셜록 홈즈 사건집>에 나오는 단편 <세 명의 개리뎁>을 보면 왓슨이 범인의 총에 맞았을 때 홈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 있죠, 홈즈가 왓슨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여러 캐릭터를 구상하고 있지요, 새해에 작가 분들 모두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멋진 캐릭터를 많이 구상하시기 바랍니다.

  6. 카메라이언 2011.01.09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핫핫 공룡탐정 ;;;;;;; 아우 생각만 해도 웃겨요. 크핫핫 ;;;; 음음 저도 제 캐릭터들 생각하는데... 아우 너무들 평범해요. 카메라이언만 해도 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보이는 정도 수준이니까요. 호호호... 라고 웃을 일이 아니잖아! OTL

    • 추리닝4 2011.01.11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메라이언님은 이미 확고한 본인 캐릭텨 있으셔요^^

    • 카메라이언 2011.01.11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무슨 초 감동의 세계로 빠지는 말씀을... ;ㅂ;
      한미모에 올릴 단편 열심히 쓰고 있사와요. 트릭을 중심으로 한 명탐정 카메라이언이 등장하는 롯데리아 살인사건-제목은 바뀌겠지만요-여요. 호호호. 기대하셔도 좋사와요-라고 자신있게 말은 못하겠습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