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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31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46> 클래식 음악 (1)

잔잔하면서도 격렬한 선율

"내 취향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악보다는 독일 음악이 더 맞아.
독일 음악은 내면 성찰의 느낌이 강하지."
- 셜록 홈즈
<붉은 머리 연맹>(1891) - 코난 도일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거리를 두고 있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들으면 좋긴 하지만 흔히 듣는 가요나 팝송보다 어쩐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지루하기도 하고이런 저런 이유로 이른바 대중음악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긴 하지요.


그럼 클래식 음악추리소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역시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 연관성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추리소설의 등장 초기부터 배경이나 소품으로서 만만찮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의 대중화를 성공시킨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음악과 미스터리를 연결시킨 시조(始祖)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를 보면 홈즈가 장차 하숙집 룸메이트가 될 왓슨에게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고, 단편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붉은 머리 클럽>에서는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사라사테(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의 연주회에 찾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왓슨에 따르면 홈즈는 문학이나 철학에는 거의 지식이 없고 관심도 없는 반면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이자 수준급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을 연주중인 홈즈


심지어 홈즈는 오페라에도 등장했습니다. 작가인 도일이 홈즈 시리즈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1893년 단편 <마지막 문제>에서 홈즈가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처리하면서 시리즈를 중단하자, 이듬해인 1894년 작곡가인 리처드 모튼과 H.C.배리는 <셜록 홈즈의 유령>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어 세상을 떠난 홈즈를 유령으로 만들어 출연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홈즈를 창조한 도일은 음악에 대해 전문가였을까요? 대개 바이올린은 턱 밑에 대고 팔로 받쳐 들고 연주하죠. 그런데 <주홍색 연구>에는 홈즈가 안락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옆으로 눕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치 기타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이건 가능하긴 해도 일반적인 연주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낭랑하고, 우울하고, 몽환적이고, 또는 명랑했으니 보통 솜씨가 아닌 것은 틀림없습니다. 도일이 설마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리는 없으니 무척 변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뜬금없이 입으로- 이빨로 기타를 연주했던 지미 헨드릭스가 머리에 떠오르는군요).

홈즈의 후배 탐정들도 여전히 고전음악을 즐깁니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스 경감은 스트립쇼를 종종 찾아가는 통속적인 취미도 있지만 평상시에는 집에서 <니벨룽의 반지><발퀴레> 등 바그너의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덱스터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음악은 등장인물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지만, 미국 작가 카터 브라운의 작품에서는 놀랍게도 살인 흉기로 쓰였습니다. 오디오 광()인 탐정 알 휠러가 등장하는 <찰리의 방법>에서, 악당은 스테레오 음향 설비가 된 밀폐된 방에 피해자를 가둔 채 볼륨을 최대로 높인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기상천외한 살인방법을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이 실제로 가능할지 의문스럽지만, 오래 전 중국에서 커다란 종() 속에 사람을 집어넣고 종을 울려 고문하거나 죽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추리작가 중에는 작곡가로 활동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 전 <즐거운 살인>(1948)이 국내에 소개된 영국 작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크리스핀은 23세 때 소설가로 데뷔해 유머 넘치는 고전적 미스터리 장편 9편을 발표했으며(그 중에는 오페라 무대를 소재로 한 <백조의 노래(Swan Song)>(1947)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오페라와 레퀴엠(장송곡), 영화음악 등을 남긴 작곡가였습니다.

악보를 다듬는 에드먼드 크리스핀


추리소설을 발표한 음악인도 있는데, 1923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공식 첫 공연 <라 보엠>에서 미미 역을 맡았던 퀴나 마리오(Queena Mario)가 집필한 <오페라 하우스의 살인(Murder in the Opera House)>(1934), <살인이 메피스토를 만나다(Murder Meets Mephisto)>(1942), <죽음이 델릴라에 떨어지다(Death Drops Delilah)>(1944) 등 세 작품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살려 뮤지컬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입니다.

퀴나 마리오


퀴나 마리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며 세인트루이스에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길 만큼 유명한 소프라노 헬렌 트라우벨(Helen Traubel)<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살인(The Metropolitan Murders)>(1951)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대필(代筆)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와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손가락 없는 환상곡>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군요. 80년대에 유라 사부로의 <운명 교향곡 살인사건>이 번역된 적도 있는데, 은근히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클래식 음악이 중요하게 이용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일찍 작고한 이갑재의 <로맨틱한 초상>이 있고, 김성종의 <피아노 살인>에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지요.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들을수록 좋은 것이 고전음악입니다. 다만 요즘 일부러 음악을 들은 지가 꽤 오래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좀 쑥스럽긴 합니다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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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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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2.02.02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갑재 님의 요절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맨틱한 초상>은 정말 오디오와 클래식에 대한 그 분의 깊은 지식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