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리 퀸(Ellery Queen)

 

미스터리 작가의 이름과 주인공(그 역시 미스터리 작가이다)의 이름이 같으며, 그 이름 또한 가명이라면 독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 작품성이 뛰어나다면 그 반대로 강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장편 미스터리 소설의 황금기인 1930년대에 등장한 아마추어 탐정 엘러리 퀸은 이름만큼이나 참신한 능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자리잡았다.


뉴욕 시 경찰 간부인 리처드 퀸의 아들인 엘러리 퀸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직후 할키스 살인사건(<그리스 관의 비밀>)을 수사중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한 차례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데 성공하고 경찰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추리소설가가 된 퀸은 뉴욕 웨스트 87번가의 아파트에서 아버지, 그리고 집안 일을 맡아 하는 고아 소년 쥬너와 함께 살면서 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TV 드라마에서 엘러리 퀸을 연기한 짐 허튼(오른쪽)

 

그의 아버지 리처드 퀸이 작은 체격에 성격도 급한 반면 엘러리는 대략 180cm의 큰 키에  느긋한 성격을 가져 대조적이다. 젊은 나이지만 항상 사슬이 달려 있는 테 없는 코안경을 쓰고 있는 퀸은 난해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이 코안경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우아한 동작으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다. 술을 좋아하긴 해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반면 담배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피우는데 생각에 잠기면 줄담배를 피워댄다.


엘러리 퀸에 대해 연구한 미스터리 평론가 프랜시스 네빈스는 퀸의 활동을 3기로 나누었다. 초기 국명 미스터리 시기가 1기, 1936년 <중간 지대>에서 <용의 이빨>까지가 2기, 그리고 1942년 <재앙의 거리>부터가 3기이다. 난해한 트릭을 해결해 나가던 1기와는 달리 2기는 인간 묘사를 주로 하는 등 작풍이 변화했으며, 3기부터는 사회성을 갖춘 고급 미스터리로 최고의 작품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에 따라 엘러리의 모습도 변했다. 젊은 시절의 엘러리는 명문 대학 출신의 인텔리로 지성(知性)과 이성(理性)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수시로 고전 문헌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아무리 복잡한 사건과 마주쳐도 치밀한 분석과 논리를 구사해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그는 범인에 대한 동정(감정)과 진상규명의 사명감(이성)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상의 마을 라이츠빌을 무대로 한 <열흘간의 불가사의>에서는 그의 갈등이 현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두 시기에 나타나는 퀸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 미스터리 작가이자 연구가인 줄리안 시먼즈는 ‘엘러리 퀸이 두 사람이다(초기 퀸과 후기 퀸은 형제간이라는 것)’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

초기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작품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J.J.맥에 따르면 퀸 부자는 범죄수사에서 손을 떼고 은퇴한 후 이탈리아에서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성기와 다른 점이라면 엘러리에게 아내와 아들이 생겼다는 것.

독자에게는 언제나 소설 속의 엘러리와 똑같은 증거-실마리가 공평하게 주어지면서 같은 상황에서 논리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배려를 해 준다. 초기 국명 시리즈에서는 종반에 ‘독자에의 도전’이 있어서, 추리력에 자신 있는 독자라면 해결편을 읽기 전에 탐정의 머리에 도전하고픈 의욕이 생기도록 부추긴다. 이 페어플레이 정신은 퀸이 평생 추구하던 것이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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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기 어려운 비밀

세상은 거짓말장이로 가득 차 있다.
- 에버라드 도미니
<The Great Impersonation>(1920) 에드워드 필립스 오펜하임

 

추리작가들은 죽음, 수수께끼, 음모, 시기, 질투…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지만, 그들의 평상시 생활은 여느 사람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 돈이 많아진다면 생활수준은 당연히 높아지겠지요. 또 요즘은 독자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해외의 스타급 작가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매스컴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가의 신간 안내나 인터뷰 기사가 문화면에 실리는 것 못지않게 작가가 사기를 당했다든가 표절로 제소됐다거나 혹은 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도 실리곤 하죠. 게다가 오래 전에 사망한 작가들마저도 요즘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십 년, 길게는 1백 년 전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마저 연구가들이 파헤쳐 전기(傳記)로 발간하기 때문인데요, 한마디로 유명세를 치르는 셈이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사례가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등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걸작 시리즈를 남긴 엘러리 퀸이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B.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또 다른 필명인 바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드루리 레인 시리즈 4부작도 발표했지요. 퀸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컬럼비아 대학이 강연 요청을 하자, 둘 중 누가 갈 것인지 동전을 던져 결정하기로 해서 결국은 리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퀸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던 터라 리는 고심 끝에 검정 마스크를 쓰고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퀸이 대중 앞에 나타나야 할 때면 항상 리가 검정 마스크를 쓴 채로 나섰으며, 바너비 로스 역으로는 더네이가 검정 마스크를 썼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강연회에 나타나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터라 1936년 <퍼블리셔스 위클리>를 통해 이들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 퀸과 로스가 같은 작가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거의 밝혀졌지요, 그러나 그들의 작업 분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유족이나 친지들을 통해 테마와 플롯,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틀은 더네이가, 그 기본에 살을 붙이고 세밀한 점을 보완하는 일은 리가 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할 뿐입니다.

복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수많은 추리소설보다 훨씬 기묘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1926)을 발표한 지 얼마 후인 1926년 12월, 당시 35세의 크리스티는 저녁식사 후 드라이브를 나간다고 말한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그녀의 소지품이 남아있던 차가 호수 근처의 풀밭에서 발견되었고, 그것은 자살했거나 혹은 사고를 당했을 것 같은 정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열흘 동안 전문가와 경찰, 보도진은 다양한 가설을 세웠으며,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근처를 철저한 수색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크리스티는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가명으로 숙박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실종 다음날인 토요일부터 묵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외도 등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가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기억상실증을 일으킨 것으로 설명되었지만, 그 ‘실종’은 마치 계획이라도 짠 듯이 물 흐르듯 차질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외도한 남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진짜 기억상실증’ 등 가지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했지만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그 사건의 기억을 잊고 싶어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실종된 애거서 크리스티 수색에 나선 사람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기발한 작품 세계와 맞먹을 만큼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그의 죽음 역시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음주와 아편 흡입, 또 조울증 등으로 혼란한 정신상태였던 포우는 40세였던 1849년 9월 리치먼드에서 열차에 탄 뒤 닷새 후인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사흘 만에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알코올 중독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병원 임상기록을 검토한 결과 포우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의해 광견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임상기록에 따르면 포우는 입원 당일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가 다음날 호전되었고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는데 이 증세는 광견병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확정된 진실이 아닌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아직 불분명한 만큼 더욱 자세한 분석 방법이 나오게 되면 혹시 다른 이유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포가 죽음을 맞이하던 시기를 다룬 작품이 무척 많은데, 번역된 작품으로는 매튜 펄의 <포의 그림자>, 조엘 로즈의 <가장 검은 새> 등이 있습니다.

포의 묘비

포가 죽은 지 약 150여년이 지난 1996년 12월, 미국의 하드보일드 추리작가 유진 이지가 시카고 시내의 빌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은 채 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밧줄은 빌딩 14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금고에 연결되어 있었고, 금고 옆에는 권총 한 자루, 그의 주머니에는 브래스 너클(brass knuckle:격투할 때 손에 끼우는 쇳조각)과 현금 약 5백 달러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사무실 문은 잠겨 있어서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 일단 자살로 판단했습니다. 한동안 슬럼프였던 그가 새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정신적인 압박을 받은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설명에서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전행위라는 추론까지 나왔지만, 하지만 이지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10대의 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으며 이미 생활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리를 잡은 작가였던 만큼 책을 더 팔기 위해 자살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신작 집필을 위해 취재해 왔던 민간무장그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가족들을 안전한 호텔로 옮기고 방탄복과 권총을 지닌 채 홀로 사무실에서 지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살로 보기에도 미심쩍은 점이 너무 많습니다.

유진 이지 Eugene Izzi(1953-1996)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이지는 운동으로 단련된 180cm, 100kg의 거구인데, 대낮에 사무실에서 격투한 흔적도 없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워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시카고 경찰은 밀실살인을 자주 다룬 작가 에드워드 호크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지만 뾰족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고 하네요.

어쩌면 추리소설가들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수수께끼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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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6.23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의 죽음을 모델로 한 작품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2. 시무언 2011.06.27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게 코난 도일이 크리스티의 실종때 수사를 도왔다는군요. 그외의 사건도 해결한적이 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
 
"우리 집 고양이는 폭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1948년 제임스 샌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양이는 어쩐지 가까이하기 어려운 짐승 같습니다.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산 것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5천년 이상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서도 사람보다는 고양이 쪽에서 먼저 거리를 두곤 하죠(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개하고는 많이 다르더군요).

또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사자이며 악(惡)이나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의 숙적인 스펙터의 우두머리 블로펠드가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장면은 그런 시각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금기는 무척 뿌리 깊어 요즘도 서양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매우 불쾌하게 여기곤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지요?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도둑을 잡는데 고양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답니다. 다만 개처럼 냄새를 쫓아가는 과학적 방식이 아니라 주술적 매개체로 썼지요. 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고양이를 잡아다가 시루 속에 넣고 상여줄로 시루를 감고 불을 때면서 도둑의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들게 해 달라는 주문을 외운다. 이렇게 해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도둑도 주문대로 눈이 멀거나 손이 오그라든다는 것이다. 전북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항아리에 넣고 불을 때면서 주문을 외우다가 항아리 뚜껑을 열면 고양이가 도둑의 집으로 가서 죽고, 그때 도둑도 따라서 죽는다고 한다. 또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고양이를 장례에 썼던 삼줄로 묶어 3일간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게 한 후 삼거리에서 고양이를 쪄 죽이면 역시 도둑도 함께 죽는다는 것이다. 

…음, 끔찍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효력이 있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추리소설보다는 공포소설로 보아야 할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아내를 살해한 죄목으로 다음날 사형 당할 예정인 한 사나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플루토’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는 단지 좀 똘똘해 보일 뿐 아무런 나쁜 짓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보통 고양이가 하는 흔한 행동, 즉 할퀴는 정도에 그치지요. 그러나 이 검은 고양이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아내를 죽이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주인공마저 파멸의 늪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19세기에 발표한 이런 구닥다리(?) 작품이 여전히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괴기영화에 나오는 고양이 가죽을 뒤집어 쓴 괴물은 더더욱 아닌,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은 고양이'(알퐁스 르그로의 그림)

현대 추리소설에서 고양이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립 탐정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종종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건 의뢰가 없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탐정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엘러리 퀸은 단편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에서 독자에게 희한한 수수께끼를 하나 제시합니다. 중풍으로 기동을 못하는, 그리고 고양이를 몹시 싫어하는 할머니가 왜 매주 검은 고양이를 한 마리씩 사는 것일까요? 이 수수께끼의 뒤에는 놀라운 진상이 숨어 있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분을 위해서 여기서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양이의 복수극 같은 괴기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주로 집에서 집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에게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라기보다 애완동물로서 무척 사랑 받는 것 같습니다.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타키(Taki)라는 이름의 검정색 페르시아 고양이를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키웠으며 문인들과의 편지에서도 소식을 써 보내기도 했습니다.

챈들러와 그의 고양이 타키

이렇게 고양이들이 작가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급기야는 고양이가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작가 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코코(Coco)’라는 이름의 입맛 까다로운 수컷 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연작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 <The Cat Who…>로 이어지는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코는 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치고는 터무니없이 머리가 좋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혼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에 코코의 주인인 신문기자 짐 클라인이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코코가 스트레스를 받는 기미를 보이자 클라인은 ‘얌얌’이라는 이름의 암놈 샴 고양이를 구해 함께 키우게 됩니다. 작가 브라운은 과거에 생일 선물로 받은 고양이에 코코라는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는데, 어느 날 10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슬픔에 잠긴 브라운 여사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자 1966년 첫 장편인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를 발표한 후 코코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2007년까지 발표했습니다(릴리언 잭슨 브라운은 1913년생입니다). 시리즈 30번째 장편이 될 뻔했던 <The Cat Who Smelled Smoke>는 출간이 취소되었다는데 이유는 모르겠군요.

릴리언 잭슨 브라운의 'The Cat Who Could Read Backwards'

그 뒤를 이었다고 하긴 뭣하지만, 역시 미국의 여성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은 고양이 머피 부인(고양이의 이름입니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작품 내용보다 더 독특한 것은 이 시리즈를 쓰는 것이 작가 브라운이 키우는 고양이 스니키 파이 브라운이라는 것이지요. 작가 브라운은 자신이 공동 저자라고 주장합니다만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리타 메이 브라운과 스니키 파이 브라운

한편 일본 작가 아카가와 지로는 ‘홈즈’라는 이름의 암컷 얼룩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고양이 홈즈의 주인인 가타야마 요시타로는 강력 사건을 다루는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피(血)만 보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현기증을 일으켜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고양이 홈즈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위기를 넘깁니다. 유머 미스터리를 표방한 홈즈 시리즈는 첫 작품 1978년 <얼룩고양이 홈즈의 추리>가 발표된 이래 장편 33권, 단편집 14권이라는 대하(大河) 시리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아키프 피린치의 <펠리데(Felidae)>는 인간의 사건이 아닌 고양이의 사건을 고양이가 해결한다는 독특한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심지어 컴퓨터까지 다루지만,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탐정 노릇을 하는 고양이에 대해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소설의 선구자였던 에드 맥베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탐정소설을 가지고 온갖 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맞아요. 고양이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금붕어는 어떨까요? 금붕어 앞에 범죄 무기로 의심되는 것을 들자 금붕어가 물거품을 뻐끔뻐끔 내 뿜는다… 맙소사.”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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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5.05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개보다 자유분방하니 고양이가 탐정 노릇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물 탐정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고양이 외에 과연 어떤 동물이 탐정 노릇을 하면 어울릴까요.

  2. 2011.05.09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여럿이 함께 하면 어려운 일도 있다

두 사람의 좋은 취향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못된 취향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루시 버레커
     - <The Yellow Room Conspiracy> (1994) 피터 디킨슨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속담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조사된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협동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국민 정서상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틀림없이 상위권에 올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미나 꿀벌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협동 정신은 스포츠는 물론이고 사회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통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예술적인 창작활동분야가 그런 곳이죠.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관련, 작곡 등 음악관련, 미술관련 등의 창작물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창작이란 산술적인 것이 아닌 오묘한 과정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한다고 해서 혼자 할 때보다 몇 배 뛰어난 작품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초반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를 연 영국 탐정작가클럽 회원들인 G.K.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등 14명의 작가가 릴레이로 <The Floating Admiral>(1931)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다시 모여 <The Scoop>(1933)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을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보이시죠?

이 연속극에 이어 작가들은 자신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Ask a Policeman> (1933)을 합작했으며, 이런 활동은 5년 후 <Double Death>(1938)까지 이어졌습니다. 추리소설 판 올스타 전을 벌인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지금 이 작품 제목이라도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발표 당시에야 물론 화제가 되었겠지만, 작품 자체는 후세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기는커녕 까마득히 잊혀져 버리고 만 것이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 20세기 초반 프랑스 대중소설계를 뒤흔들어놓은 초인적 악당 팡토마스(Fantômas)’를 창조해 낸 피에르 수베스트르(Pierre Souvestre)와 마르셀 알랭(Marcel Allain)을 성공한 합작 작가의 원조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1126세의 젊은 기자 알랭과 그보다 열한 살 연상의 기자인 수베스트르가 만들어낸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일이 목표인 팡토마스 시리즈는 놀랄만한 인기를 얻어 매달 새로운 작품이 등장했고, 단지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잠깐 중단되었습니다. 수베스트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알랭은 전쟁에 징집되었기 때문이지요. 알랭은 전쟁이 끝난 후 혼자서 작품을 썼지만 인기는 여전했고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사나이가 팡토마스! (DVD 커버)


팡토마스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던 무렵 미국에는 역대 최고의 합작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제왕으로 불리게 되는 엘러리 퀸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스터리 팬이었던 동갑내기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는 1920년대 S.S.반 다인의 미스터리가 선풍을 일으키자 자신들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 이외에도 버나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Y의 비극>등 걸작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습니다.

퀸의 뒤를 이어 등장한 합작 작가로는 패트릭 쿠엔틴
(Patrick Quentin)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리처드 윌슨 웹(Richard Wilson Webb)은 마사 모트 켈리(Martha Mott Kelly), 메리 루이스 애스웰(Mary Louise Aswell) 등 두 명의 여성 작가와 함께 Q.패트릭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써 오다가 역시 영국 출신이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휴 휠러(Hugh, C. Wheeler)와 함께 패트릭 쿠엔틴이라는 이름으로 <A Puzzle for Fools>(1936)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기 그들은 퀸의 국명 시리즈를 의식한 듯 <A Puzzle for Players>(1938), <A Puzzle for Puppets)>(1944), <A Puzzle for Wantons>(1945), <A Puzzle for Fiends>(1936), <A Puzzle for Pilgrims>(1947) 퍼즐이라는 제목이 붙은 여섯 편의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조너던 스태그(Jonathan Stagge)라는 필명으로도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52년 이후 웹이 건강상의 문제로 합작을 포기하며 해체되었으나 휠러는 패트릭 쿠엔틴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까지 계속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퍼즐 시리즈 중 하나인 'A Puzzle for Players'

프랑스에는
20세기 중반 추리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 콤비가 등장했습니다.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그들이죠. 두 사람은 각각 작품을 써 오다가 1952년 첫 합작품인 <악마 같은 여자>(영화 <디아볼릭>의 원작)를 발표했으며, 4년 후 발표한 <죽음의 입구>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의해 <현기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세련된 서스펜스로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이들은 공동저작에만 매달리지 않았는데, 부알로는 주로 라디오의 스릴러 드라마 시나리오를 썼으며 대학교수출신인 나르스자크는 <하드보일드 론>, <시므농 론>등 미스터리 평론서를 집필했습니다.

피에르 부알로(오른쪽)와 토마 나르스자크

윌리엄 링크와 리처드 레빈슨은 전업 소설가가 아니라 범죄 드라마 전문 작가이지만
,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도 지명도가 높은 주인공인 콜롬보 형사를 탄생시킨 콤비입니다.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난 링크와 레빈슨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금방 친구가 되었는데, 이들은 매주 다섯 권씩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토론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범인을 먼저 보여주는 도치서술형(흔히 도서추리라고 하죠)의 전형인 콜롬보 시리즈는 1971년 첫 방영되면서 총격전으로 일관된 당시의 TV 수사물과는 현격한 수준차이를 보여주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콜롬보 역의 주연 배우 피터 포크는 그저 그런 배우에서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역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시카의 추리극장>역시 이들의 작품인데, 1987년 레빈슨이 심장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들의 합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콜롬보일까요? 윌리엄 링크(왼쪽)와 피터 포크.


일본 신인작가의 등용문인
28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오카지마 후타리는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 두 사람의 공동 필명인데, 7살 차이의 이 콤비는 수준급 작품을 발표해 오다가 묘하게도 수상 7년 후에 해산하고 말았습니다.

오카지마 후타리의 데뷔작 '짙은 갈색 파스텔'


일본에는 부녀 합작 작가도 있었습니다. 후지 유키오(藤雪夫)1950년 딸의 이름인 엔도 케이코(遠藤桂子)로 데뷔해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84년 딸과 함께 <사자좌(獅子座)>를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세상을 떠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뛰어난 합작 작가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웬만큼 호흡이 맞지 않고서는 추리소설의 오묘한 짜임새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합작 작가들이 친척이거나 어릴 때부터의 친구였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십각관의 살인>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일본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는 다른 점에서 합작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합작 작가인 퀸의 팬인 유키토는 자신도 다케모토 켄지라는 작가와 합작 장편을 쓰려는 계획을 오래 전부터 해 왔고 플롯도 준비를 해 놓았는데 단 한 가지, 둘 다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계획이 실현되려면 아무래도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을 하나 더 끌어들여야만 할 것 같다고 하면서요).

여러 면에서 볼 때 합작이란 어려운 일이지만 완벽한 조화만 이룰 수 있다면
1+1=2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작업임엔 틀림없습니다. 참, 부부 작가는 많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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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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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1.02.24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롬보와 디아볼릭, 현기증에 그런 과거가. 꺅. 너무 좋아요. ㅋㅋㅋ 그나저나 부부작가 하니 블 모 작가님이 또 생각이 마구 나요. ㅋㅋㅋ

  2. 평시민 2011.02.27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엘러리 퀸이야말로 합작의 시너지 효과를 가장 잘 본 작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팡토마 시리즈도 한국에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추리닝4 2011.03.07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작가들도 공동 추리물 한번 시도해 보는 것 괜찮을 듯. 한권을 두 명이 쓰기 어려우면 한 캐릭터를 공유하면서 연작물로.

  3. 평시민 2011.03.10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39클루스>시리즈 역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작가 릭 라이어던이 전체 구성과 캐릭터 기획 및 1권 집필을 하고 6명의 작가들이 이어서 쓴 작품이죠. 언제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참여하고 싶습니다.

    • 카메라이언 2011.03.10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내성 오마쥬 모음집 어때요? 흐흐 <--지금 쓰고 있어서 이러는 거 맞음. ㅋㅋㅋ

  4. 평시민 2011.03.10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내성 오마쥬 좋지요, 유불란을 주인공으로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대신 배경이 일제 때여야 하니 그 방면에서 조사를 많이 해야겠군요.

    • 카메라이언 2011.03.11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마쥬니까 시대는 현재에 유불란이 주인공이라든가, 일제강점기 시대 유불란 주인공한 것도 나오고, 저처럼 김내성 자체를 주인공한 것도 쓰고 그밖에 연문기담이라든가 홈즈 시리즈 번안집 패러디 뭐 이런 것 나오면 재미있을 듯요. ㅋㅋ 근데 백주년 지나서 좀 무리일까나~ 아우 난 김내성 님 넘 좋아~~


 

결혼해도 아쉽고, 안해도 아쉽고

모든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성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
모든 남성들은 결혼하면 아내가 변함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결혼의 비극이다.
- 버니 샘슨
<London Match>(1985)  -  렌 데이튼

 

자, 우선 직설적인 질문부터 하나. 탐정은 이상적인 배우자감일까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이라 결혼상대자로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걸작 미스터리 속에 등장했던 탐정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등장인물의 가족상황을 살펴보면  1) 미혼, 2) 기혼, 3) 독신에서 결혼, 4) 기혼에서 독신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꽤 많은 수의 탐정이 미혼으로 지냈습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에드거 앨런 포우가 만들어낸 탐정 뒤팽은 몰락한 귀족 가문 청년으로 두뇌회전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친구와 함께 하숙집에서 삽니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명탐정 셜록 홈즈 역시 절친한 친구인 의사 왓슨과 베이커 거리의 하숙집에서 생활합니다. 친구 왓슨은 홈즈를 만난 이후 결혼을 세 번이나 했던 반면 홈즈는 도무지 여성에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이 탓에 나중 ‘홈즈는 동성연애자였다’거나 ‘왓슨이 여자였다’라는 구구한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지요(음,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다루겠습니다).

셜록 홈즈의 번잡한 하숙방


렉스 스타우트가 창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역시 조수 아치 굿윈을 비롯해 여러 사람과 함께 살지만 배우자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인 샘 스페이드나 루 아처도 독신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명한 탐정 엘큐울 푸아로나 미스 마플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보면요. 이들이 홀로 산 것에는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 운이 도무지 없다는 점에서는 괴도 뤼팽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군요. 임꺽정처럼 험한 산 속에 집이라도 있는 산적이라면 아내도 맞이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겠지만(자녀교육에는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뤼팽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거부정의 거물급 범죄자’라 안정된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나름대로 여자관계는 또 복잡한 터라 연애감정을 가졌던 여성이 적진 않았지만, 이리 저리 꼬여서 결국 혼자가 되곤 했습니다.

한편 독신인 것이 당연한 인물도 있는데, G.K.체스터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브라운 신부나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도사 같은 성직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이야 속세를 떠난 분들이니 뭐…

사립탐정 대부분이 독신인 반면 안정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 주인공들은 결혼했고, 대부분 가정도 안정된 편입니다. 또한 가족들은 주인공에게 가정생활 뿐에서만 아니라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죠. F.W.크로프츠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셉 프렌치 경감은 추리소설 최초의 현실적인 경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과거의 명탐정들처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지독하다고 할 정도의 끈기가 있어 애독자들에게서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에게는 사건이 풀리지 않으면 종종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그의 아내입니다. 프렌치 경감의 아내는 남편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화를 통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곤 합니다.

메그레 경감. 심술궂어 보이지만 따뜻한 분입니다.


조르주 심농이 만들어낸 인물로 프랑스의 명배우 장 가방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파리 경찰국의 쥴 메그레 경감 역시 아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종종 아내와 다투기도 하지만 금방 풀어지며, 사건을 위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메그레 경감의 모습에서 마치 이웃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면 과장된 표현일지요. 로렌스 샌더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X.딜레이니 경감은 첫 아내와 사별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다가 만난 여성과 다시 결혼하는 것을 보면 혹시 지휘관급 경찰은 반드시 독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명탐정 엘러리 퀸은 사건 속에서 항상 독신 청년으로 나왔기 때문에 평생 혼자 산 것으로 오해를 많이 받고는 하는데, 사실 그는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 <로마 모자의 비밀>서문에서 유부남임이 밝혀져 있습니다. 즉 엘러리 퀸은 고향인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아버지, 아내, 어린 아들, 그리고 하인 주나와 함께 조용히 은퇴생활을 하고 있으며, 엘러리 퀸이 활약하는 모든 작품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결혼하는 경우는 아주 이상적입니다. 영국의 여성작가 도로시 세이어즈의 주인공 피터 윔지 경은 <맹독(Strong Poison)>(1930)에서 살인용의자였던 여성 추리작가 헤리엣 베인(세이어즈가 모델처럼 보이기도 하네요)의 누명을 벗겨준 뒤 여러 차례 구혼 끝에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헤리엣 베인과는 대조적으로 세이어즈의 결혼생활은 무척 굴곡이 심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상처를 입고, 미혼모가 되는가 하면 이혼남인 아서 플레밍과 결혼했지만 그는 아내가 자신보다 수입도 많고 명성도 높아지자 불만을 품고 결국은 외도까지 합니다. 결국 세이어즈에게 행복한 가정생활은 단지 꿈이었을 따름일까요.

훗날 부부가 되는 헤리엣 베인과 피터 윔지 경(오른쪽)


하드보일드 탐정이 언급될 때 필립 말로가 왜 빠졌나… 하셨을 텐데, 그도 역시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억만장자 할란 포터의 딸인 린다 로링. 필립 말로는 <기나긴 이별>과 <플레이백>에서 그녀와의 결혼을 거절하지만, 챈들러의 마지막 작품(그리고 미완성이어서 로버트 파커가 완성한) <푸들 스프링스 Poodle Springs>의 시작은 말로우와 린다와 결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챈들러의 미완성 유작을 파커가 완성한 '푸들 스프링스'


미국 만화의 주인공이며 우리나라에는 영화로 알려진 형사 딕 트레이시는 애인인 테스 트루하트와 만난지 어언 18년 만에 결혼을 합니다. 현실에서라면 거의 중년 나이가 된 셈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만화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외모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정적인(?) 딕 트레이시와 테스 트루하트


영국의 여성 거장 P.D.제임스는 애덤 댈글리쉬 경감과 여성 사립탐정 코델리아 그레이라는 두 명의 매력적인 주인공을 창조했는데, 이들은 완전한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며 호감을 가진 사이입니다(코델리아 그레이가 처음 등장하는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서부터 두 사람이 만나죠). 댈글리쉬 경감은 아기를 낳을 때 아내가 세상을 떠나  독신남입니다. 그래서 몇몇 여성을 만나기도 하죠. 열성 독자들은 코델리아와 댈글리쉬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밝히며 편지를 보냈다는데, P.D.제임스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진척시키진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이가 좋으면서도 이성관계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만, 최근에 소개된 타나 프렌치의 <살인의 숲>에서는 주인공인 롭 라이언 형사는 동료인 캐시 매독스 형사와 순수한 파트너 관계로서 지내오다가 사이가 진척되면서 갑작스러운 갈등에 빠지고 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을 보살피면서 위험한 범죄자와 상대하는 가정주부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여성 사립탐정의 많은 수가 독신입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여성 탐정들, 즉 수 그래프튼 작품의 주인공 킨지 밀혼은 두 차례, 새러 패러츠키 작품의 주인공 V.I.워쇼스키는 한 차례 이혼한 독신녀입니다. 밀혼은 경찰, 워쇼스키는 변호사 출신인데, 자신의 직업이 이상과 어긋나고 남편에게도 무시당하자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사립탐정의 길로 들어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영화에서 캐슬린 터너가 연기한 사립탐정 V.I.워쇼스키


2차대전 이후부터는 사립탐정 뿐만 아니라 경찰 주인공들도 독신이 늘어났습니다. 업무에 바빠서 결혼을 할 틈이 없었다면 거짓말 같고, 아무래도 멋진 주인공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이성 등장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주기 위한 작가들의 의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잡다한 일까지 묘사해야 작품의 맛이 살아나는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죠. 어쨌든 서두에 내 놓은 질문의 답은 어떠실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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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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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1.13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생긴 질문 하나!
    그럼 저런 멋진 탐정을 창조한 추리소설가들은 멋진 배우자감 일까요? ㅎㅎ

    • 카메라이언 2011.01.14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로 사람 죽이고 풀면서 스트레스 푸니까, 실제 생활에선 잘 하지 않을까요. +-_-+

  2. 카메라이언 2011.01.14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흑흑 이 글을 보니, 안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미미여사님의 '이름없는 독' '누군가' 시리즈 주인공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 상이 시리즈 세 번째 편에서 아내와 이혼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정말 말이죠, 탐정들은 결혼 못 한다니까요. 아우. 성격들 어떻게 할 테얏!!!! ㅠㅠㅠㅠㅠㅠㅠㅠ

  3. 레이 2011.01.15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나니 탐정 몽크가 생각나네요. 함께 살기 힘든 유형임에도 운 좋게 이상적인 아내를 만났지만, 끔찍한 사건으로 너무 일찍 잃게 된 몽크 탐정...

    탐정은... 혼자 사는 게 속 편할 듯합니다.

  4. 괴도40면상 2011.01.21 0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이라.. 참 멋진 일이죠.
    적어도 100명중 두명에게는. 나머진 그저 어떻게든 해보려는거고요.
    (..라고 말하던 필립 말로도 결혼을...-_-;;)


작가들이 사랑하는 것

“일찍이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이렇게 노래하셨느니라.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 윌리엄 수도사
<장미의 이름>(1980)  -  움베르토 에코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주로 읽는 책은 당연히 추리소설이겠지요. 사실 추리소설은 재미라는 면을 중시하다 보니 술술 읽히는 - ‘시속 수백 페이지’였던가, 뭐 그런 비슷한 광고를 본 것 같기도 합니다 -  바람에 한 번 잡으면 하루 이틀 만에 끝장을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십, 수백 권 정도로는 많이 읽었다고 내세우기도 어렵습니다(천 단위는 되어야 할 것 같군요).

단기간의 독서량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화제에 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작가 S.S.밴 다인입니다. 현학적이고 대단히 유식한 탐정 파일로 밴스를 창조했으며, 추리소설을 쓰기 전에는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라는 본명으로 문학․미술평론가로 활동했던 인물이지요. 추리소설계에게 널리 알려진 그의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엄청난 독서량을 과시하고 있던 그는 1차 세계대전 직후 과로와 긴장으로 인한 신경쇠약으로 병석에 눕게 된다. 담당 의사는 그에게 신경 쓸 만한 책을 읽는 것을 금했지만, ‘추리소설 같은 대수롭지 않은 책들’을 읽는 것은 허락했다. 결국 반 다인은 병석에 누워 있던 1923년부터 1925년의 2년간 무려 2천여 권의 책을 읽었으며, 그때 두 가지 사실을 파악한다. 하나는 추리소설이 탄생한 나라는 미국인데도 당시의 영국 작가가 훨씬 뛰어났다는 것이며, 자신이라면 이들 작품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2년간 2천권을 읽었다'는 S.S.밴 다인


하지만 그의 전기 <일명 S.S.밴 다인(Alias S.S. Van Dine)>(1992)을 집필한 존 러퍼리에 따르면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는 허구와 사실을 밴 다인 자신이 교묘하게 조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병을 앓은 것이나 다른 작품을 읽고 자신감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2년 동안 병석에서 읽은 2천여 권’은 과장이었으며, 의사의 집필 허락 등의 에피소드는 자기 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신화였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계산을 해 봅시다. 2년, 즉 7백 30일 동안 2천권을 읽으려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 두 권 반씩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풍 같은 이야기가 의심 없이 아직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엘러리 퀸- 맨프레드 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공동 필명- 은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명예로운 별명은 위대한 추리작가를 뜻하지만, 추리문학 전반의 독보적 공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퀸은 추리소설 전문잡지(‘미스터리 리그’와 ‘엘러리 퀸즈 미스터리 매거진’)의 발간과 방대한 추리문학 관련 문헌의 수집․정리로 추리문학의 역사를 정립하는 업적을 남긴 것이지요. 그들의 장서량은 추리문학 관련 자료로는 당대 세계 최고를 자랑했으며, 그 장서의 대부분은 텍사스 대학에 기증, 보존되어 있습니다.

작업중인 엘러리 퀸


미국의 로렌스 블록이나 영국의 H.R.F.키팅은 직업상 의무적으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직업’은 추리작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로서의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블록은 14년 동안 <라이터스 다이제스트(Writer's Digest)>에 서평을 썼고, 키팅도 <타임즈(The Times)>에 장기간 서평을 썼습니다. 이들은 남의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두 사람 모두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써 오던 로렌스 블록은 고서점 주인을 작품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유머러스한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둑(Burglar) 시리즈의 주인공 버니 로덴바는 평상시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본업(?)은 물건을 훔치는 일입니다. 하지만 버니의 책에 대한 애정은 거짓말이 아니지요.

오래된 책을 수집하는 주인공은 버니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작가 빌 프론지니가 만들어낸 이름 없는 탐정(유명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의 유일한 취미는 오래된 펄프 잡지(1920년대 무렵 발간되었던 염가판 잡지)의 수집으로, 5천 권 이상의 잡지가 자신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하는 별난 인물입니다.

책 읽는데 장소를 가릴 필요는 없지만 독서실 겸 서재가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서재는 항상 조용하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도 남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곳이지요. 그래서 악당들은 그곳을 범행 장소로 노리기도 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걸작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로저 애크로이드가 살해된 곳이 그의 서재였으며,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종장(終章)>에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여성 소설가가 죽은 곳은 출판사였습니다. 고서점이 등장하는 인상적인 작품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이 있습니다. 필립 말로우는 협박범으로 여겨지는 고서점의 주인을 찾아가기 전 도서관에서 <벤 허>의 희귀본에 대해 조사하고 이웃 서점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으며 분주하게 돌아다니지요.

서점에서 탐문중인 필립 말로우 - 영화 '빅 슬립'에서


<죽음의 예약(Booked to Die)>, <깨어난 서적외판원(Bookman's Wake)>등 제목에서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존 더닝의 작품에는 콜로라도의 고서점 주인이자 전직 경찰인 클리포드 제인웨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전도유망한 추리작가였던 더닝은 출판사와 충돌, 절필을 선언하고 30대의 나이에 고서점을 개업해 10년 이상 동안 운영해오다가 50대에 접어들어 <죽음의 예약>으로 복귀했는데, 고서에 대한 깊은 지식을 피력하는 제인웨이는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인 셈입니다.

존 더닝보다 훨씬 먼저 고서점을 운영했던 작가가 있군요. 이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무역회사에 취직했지만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것이 지겨워 1년 만에 튀어나와 타자기 판매, 조선소 전기담당부, 잡지 편집, 포마드 제조업 지배인 등등 평균 반 년 정도마다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25세가 되던 해 2월, 자본이 별로 없이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생 두 명과 함께 고서점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수입은 시원치 않았고, 결국 경영난으로 2년을 못 채우고 폐업하고 맙니다. 얼마 후 신문사 편집부에 들어간 그는 그로부터 3년 뒤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한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작가활동으로 일본 추리문학계의 최고봉이 됩니다. 이쯤 되면 그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에도가와 란포입니다.

서재의 에도가와 란포

한때 정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추리작가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참신한 추리소설을 쓰기 어려울까’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렇고 해외 작가들의 인터뷰 등을 보면 딱 부러진 답이 나오진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키팅과 블록은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일부러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는 작가도 있으니까요. 답을 내긴 어렵겠지만, 뜬금없는 결론을 내리자만 작가들도 독자들만큼 책을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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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메라이언 2010.12.02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렇게 재미난 포스팅이 올랑오다니. ㅎㅎ 너무 좋아요. 그 때 해주셨던 이야기가 정리되어서. ㅎㅎㅎㅎ 그나저나 저는 책은, 많이 읽을 수록 좋다, 가능하다면 많이 베끼고, 생각하고, 주변에 추천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좋은 책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읽는 순간 뭔가가 번쩍거린달까요. ㅎㅎ

  2. 평시민 2010.12.03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작가는 영향받을까봐 일부러 책을 보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표절을 막기 위해서 많이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가 우연히 같은 플롯이나 트릭을 쓰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죠.

    • 추리닝4 2010.12.06 0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 많이 읽는게 창작에 도움된다고 생각하지만,너무 과하면 자기검열때문에 힘들어질 수도 있단 얘길 해^^...남편이 부인 죽이고, 부인이 남편 죽이는 설정 수백편을 있을듯~




이름 뒤에 숨어있는 비밀


"난 필명이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 웨스트레이크가 한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는, 맑은 날에는 그가 글을 썼고, 날씨가 궂은 날에는 스타크가 일을 떠맡았다고 했습니다." 
                                     -<다크 하프 The Dark Half>(1989), 스티븐 킹

자기의 본래 모습조차 잊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괴도 아르센 뤼팽은 각각의 변장에 어울리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마 열 개는 충분히 넘은 것 같지만 스무 개까지는 안 되는 것 같네요. 뭐,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이니까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마는 너무 많으면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테지요.

그런데 영국의 추리소설가 존 크리시(John Creasey)는 비록 얼굴 생김새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없었을망정 이름의 숫자는 뤼팽을 압도합니다. 추리소설을 쓸 때는 존 크리시를 비롯해 고든 애쉬, 패트릭 길, J.J.매릭, 제레미 요크 등을 사용했으며 웨스턴 소설(서부극 소설입니다)을 쓸 때는 텍스 라일리, 지미 와일드, 켄 레인저 등, 그리고 로맨스 소설을 쓸 때는 마가렛 쿡, 엘리제 퍼캠프스 등 여성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작품 표지에 올라간 이름은 무려 28개,그리고 6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존 크리시 - 스물여덟개의 이름을 가진 사나이


실제 이름 대신 쓰는 가짜 이름은 범죄자들이 사용하면 가명(假名), 연예인들이 사용하면 예명(藝名), 작가들이 사용하면 필명(筆名) 등 다양하게 일컬어지는데(그러고 보니 이름 자체에도 다양한 이름이 많군요), 작가들이 필명을 쓰는 이유는 본명이 추리소설에 별로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거나, 유명인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하다던가, 발음이 어렵다던가, 혹은 이름을 숨기고 싶다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작가인 케네스 밀러(Kenneth Millar)는 추리소설을 쓰는 아내 마가렛 밀러(Margaret Millar)보다 늦게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네 권의 작품을 발표한 후 이미 유명했던 아내의 작품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존 로스 맥도널드(John Ross Macdonald)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유명 추리작가 존 D.맥도널드(John D.MacDonald)와 혼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그가 선택한 이름은 로스 맥도널드(Ross Macdonald)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그는 하드보일드의 거장이 되었고, 지금은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요. 역시 사람의 앞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의 계관 시인이며 옥스포드 대학 교수였던 세실 데이 루이스(Cecil Day-Lewis)는 낡은 지붕의 수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즐겨 읽던 추리소설을 직접 쓰기로 했는데, 본명으로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워 니콜라스 블레이크(Nicholas Blake)라는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처녀작인 <증거의 문제(A Question of Proof)>(1935)가 성공하면서 작가가 누구인지 금방 밝혀졌으나, 평생 본명으로는 추리소설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스티븐 킹은 웨스트레이크의 작품 이미지에서 착상해 <다크 하프(The Dark Half)>(1989)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소설가 새드 보먼트(Thad Beaumont)는 조지 스타크(George Stark)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범죄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 이름은 바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Donald Westlake)의 필명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에서 따온 것입니다. 웨스트레이크는 본명으로 <뉴욕을 털어라 (The Hot Rock)>(1970)와 같은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작품을 쓰지만 스타크란 필명으로는 <인간 사냥 (The Hunter, 리 마빈이 주연한 <포인트 블랭크 Point Blank>, 멜 깁슨 주연의 <페이백 Payback> 등 두 차례나 영화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1962)과 같은 어둡고 폭력적인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웨스트레이크의 필명은 스타크 이외에도 앨런 마셜, 터커 코우 등 15개가 더 있습니다.

오늘은 맑은 날인가요 궂은 날인가요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두 명이 함께 작품을 쓸 때면 대개 ‘누구와 누구’라는 식으로 쓰지만, 필명 하나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국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떠오르네요. 작품 속 탐정의 이름이자 작가의 이름이기도 한 엘러리 퀸은 사촌 형제 사이인 프레드릭 더네이(Frederic Dannay)와 맨프레드 리(Manfred B. Lee)의 합작 필명이란 것은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하지만 ‘더네이’나 ‘리’도 본명이 아닌데, 그들의 원래 이름은 대니얼 네이던(Daniel Nathan)과 맨포드 레포프스키(Manford Lepofsky)입니다. <로마 모자의 수수께끼>로 데뷔한 그들은 바나비 로스(Barnaby Ross)라는 필명으로도 <Y의 비극>등의 걸작을 발표한 뒤, 이름이 밝혀지기 전까지 퀸과 로스로 각각 행세하며 장난기 넘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컴퓨터의 덫(コンピュ-タの熱い罠)>(1986)을 쓴 오카지마 후타리(岡嶋二人)는 이름에서부터 ‘두 사람(二人)’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의미 그대로 도쿠야마 준이치(德山諄一)와 이노우에 이즈미(井上泉) 두 사람의 합작 필명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은 성(性)을 숨기기 위해 필명을 쓴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처럼 여겨지지만 20세기에만 해도 여성 작가들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인 미스터리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남자 이름을 써야만 했습니다. 영국 여성작가 루시 비어트리스 맬리슨(Lucy Beatrice Malleson)은 앤소니 길버트(Anthony Gilbert), J.키머니 키스(J.Kimeny Keith)라는 필명으로, 미국 시카고 출신의 여성작가 조지애너 앤 랜돌프(Georgiana Ann Randolph)는 크레이그 라이스(Craig Rice), 마이클 배닝(Michael Venning)이라는 남성적인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지요.

필명은 아니지만 영국 작가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Phyllis Dorothy James)는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기 위해 약자를 써서 P.D.제임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우리나라에 번역된 어느 작품에서는 P.D.를 Ph.D로 오해했는지 ‘제임스 박사’라고 소개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문학평론가이자 야구광인 오오이 히로스케(大井廣介)는 타지마 리마코(田島莉茉子)라는 이름으로 <야구 살인사건(野球殺人事件)>이라는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여성 작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1930년대 활약한 미국 작가 풀턴 아워즐러(Fulton Oursler, 1893-1952)는 추리소설을 쓸 때는 이름을 앤소니 애봇(Anthony Abbot)이라는 필명으로 바꾸고, 작품은 모두 ‘about’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 제목이 모두 ‘A’로 시작되기 때문에 도서관의 10진 분류법에 의해 정리하면 항상 목록 앞부분에 오도록 한 것이지요. 이와는 좀 다르지만, 본명이 재니스 영 브룩스(Janice Young Brooks)인 미국의 여성작가 질 처칠(Jill Churchill)은 알파벳 순으로 진열된 서점 책꽂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근처에 자리 잡기 위한 필명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필명은 어떤 방법으로 지을까요?

존 크리시가 기디언 경감 시리즈를 발표할 때 썼던 ‘J.J.매릭(J.J.Maric)’이란 필명은 자신의 이름 존(‘J’ohn), 부인 진(‘J’ean), 두 아들 마틴(‘Mar’tin)과 리처드(‘Ric’hard)등 가족 이름을 합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신데렐라의 함정(Piège pour Cendrillon)>(1962), <긴 일요일의 약혼식(Un long dimanche de fiançailles)>(1991)등의 작품이 소개된 프랑스 작가 세바스띠앙 자프리조(Sebastien Japrisot)의 본명은 장 밥티스트 로시(Jean-Baptiste Rossi)인데, 그는 자신의 이름 철자 순서를 바꿔(애너그램 anagram이라고도 합니다) 새 이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내 추리작가 중 가장 독특한 필명을 가진 분을 꼽아보자면 바로 원로 추리작가인 노원 선생님입니다. 원래 언노운(Unknown: '알려지지 않은','알 수 없는')을 한글로 차용한 안노운(安老雲)을 필명으로 사용하려 했다가 더 짧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노원(No One: 한자명은 盧媛→盧遠→魯元으로 세 차례 바뀝니다)’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단편 <미스터리 클럽의 살인>에는 안노운 경감이 등장해 한 가닥 흔적을 남기고 있지요.

'안노운'이 되실 뻔한 노 원 선생님


일본 추리문학계의 거두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의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인데, 에드거 앨런 포우의 이름과 흡사하게 들리는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추리소설의 원조인 포우의 이름을 빌린 작가답게 그는 일본 추리문학계의 선구자로서 추리작가협회의 조직 및 위상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요즘 눈에 띄는 독특한 필명의 작가는 <불야성(不夜城)>(1996)으로 알려진 하세 세이슈(馳星周)입니다. 그의 필명은 국내 독자들에게 일본식 발음으로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한자를 거꾸로 읽어보면 옳커니 할 독자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세 세이슈는 홍콩 영화의 팬인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주성치(周星馳)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자기의 필명으로 삼은 것이지요. 코믹한 배우의 이름을 빌리긴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웃음기라고는 거의 없이 어둡고 진지합니다.

성공하려면 이분에게 이름을 얻어가야... 시마다 소지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는 <점성술 살인사건(占星術殺人事件)>(1981)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신본격(新本格)작가들의 대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인 작가들을 추천하고 독려했습니다. <십각관의 살인사건>을 쓴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작가 우타노 쇼고(歌野晶午), <살육에 이르는 병>의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我孫子武丸),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郞)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시마다 소지는 점성술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성명학(姓名學)에도 일가견이 있어 이들의 필명을 다 지어주었다고 하는군요.

그나저나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작품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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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뎅뎅 2010.10.28 1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저도 주성치 왕팬인데. 필명은 하나도 없는 저는 한때 별명이 한 스무개남짓 됐던 적도 있습니다. 실없는 오라버니가 저를 닥치는대로 부르다가 그만... 그때 다 적어나 둘 걸, 지금은 대여섯개 밖에 생각이 안나요.

    • 추리닝4 2010.10.29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성 자자한 그 오라버니 어릴때부터 언어유희를 꽤 즐기셨군. 합류걸님^^; .. 다른 얘기지만 나는 네이버에서 '최코치'란 닉네임을 쓰는데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 관련 일 하는 사람인 줄 알더라는 ㅠㅠ

  2. 갈매 2010.10.28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마다 소지!
    재밌네요. 우타노 쇼고며 아야츠지 유키토의 필명을 지어줬다니. 이들의 이름이 다 필명이었던 거군요.
    저도 좋은 필명 하나 얻으면 글이, 팍팍 써지려나??

  3. 카메라이언 2010.10.30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할아버지의 소설 '뉴욕을 털어라'와 '페이백'은 와앗, 정말 거리가 있는데요! '뉴욕을 털어라'는 정말 가볍던데! 새삼 놀랍니다. 아아, 그나저나 시마다 소지 넘넘 좋아하는데 저렇게 생기셨구나. 사진은 처음 봤어요. 와 멋져멋져 꺅꺅!

  4. 이야기꾼 2010.10.30 1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명하면 <류삼> 씨라는..ㅎㅎ
    그나저나 요새 류삼씨는 뭐하시나...

  5. 붕붕 2010.11.05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류삼', '삼류'...
    아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필론 2010.12.08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ill Bass와 John Jefferson이 한팀으로 Jefferson Bass란 이름으로 Body Farm 시리즈를 내는것이나, 요즘 화제가 되는 드라마 캐슬의 캐릭터가 실제 작가처럼 책을 낸 Richard Castle의 경우도 특이한 경우인것 같습니다.

    • 추리닝4 2010.12.09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리처드 캐슬 이름으로 출간하는 아이디어는 괜찮은 것 같아요..극중에서 함께 포커 치던 제임스 패터슨 옹이 생각납니당 ㅋㅋ 필론님 블로그와 링크 완료^^

    • 필론 2010.12.09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임스 패터슨이 (시즌 2에서는 마이클 코넬리가)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것도 드라마 캐슬의 매력인것 같더군요.^^



속고 속이는 죽음의 다이아몬드

                                  

탐정 짓은 그만하고 야구나 해.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네 차례야.
                                                -<스트라이크 살인>(1984), 리처드 로젠

 

한동안 서늘한 가을 날씨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국 프로야구도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도 포스트시즌 경기가 벌어지는 중이고, 겨울이 되기 전에 모두 끝이 나겠지요.

여기서 잠깐. 일반적으로 운동장은 '그라운드Ground'라고 하지만 야구장은 '다이아몬드 Diamond'라고 합니다. 이유는 단순한데, 하늘에서 보면 각 루를 이어지는 내야 지역이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 때문이지요. 1980년대 후반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던 무키 윌슨은 야구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이유를 묻자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아내가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원했거든요."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계의 밀실 미스터리(?)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1994년 7월의 일이니 꽤 되었습니다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진 라몬트 감독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잘 아시겠지만 추신수 선수가 현재 소속된 팀입니다)와의 경기 도중 상대팀 간판선수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강타자 알버트 벨이 부정 배트를 쓴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심판은 벨의 배트를 압수해서 사무국에 보내기 전까지 심판 라커룸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심판 라커룸에 들어간 심판들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날 압수했던 벨의 배트 대신 그의 동료 폴 소렌토의 배트가 놓여 있었던 겁니다. 라커룸 문은 잠겨 있고 열쇠를 가진 것은 분명히 심판들 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심판들 중 누군가가 바꿔친 것도 절대 아니었습니다. 추리소설에 나올 만한 불가사의한 밀실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요?

배트가 수상하면 이렇게 검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과학수사 팀이나 명탐정이 나설 필요도 없이, 심판들은 곧 알아챘습니다. 동료 선수가 천정을 통해 라커룸에 들어가 다른 배트와 바꿔치기 한 것이었습니다. 상황은 금방 확인됐고, 인디언스 팀은 벨의 배트를 내 놓아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 배트는 X선 검사결과 이물질, 즉 코르크가 들어 있는 것으로 판명돼 벨은 7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반 년쯤 지나 이듬해 춘계 훈련 때 인디언스의 투수 제이슨 그림슬리는 자신이 배트를 바꿔치기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처음에는 벨의 다른 배트로 바꾸려 했지만 모두 코르크가 들어 있어서 할 수 없이 소렌토의 것을 가져가야만 했다는 것이었지요.(미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실험한 것을 보면 코르크를 넣었을 때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부정방망이를 사용한 것은 어쩌면 헛수고였을지도?) 야구계의 밀실 미스터리는 이렇게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나저나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추리소설과 야구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억지를 써 본다면 몇 가지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규칙이지요. 야구를 비롯한 운동경기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어서 선수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하며, 추리소설 역시 유달리 규칙이 많기 때문에 작가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써야만 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약간 위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반칙왕’이나 ‘엉터리 작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경쟁입니다. 선수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심지어 직접 경기를 하지 않는 관중까지도 응원으로 경쟁을 합니다. 추리소설 속에서는 탐정과 범인사이에 대결이 벌어지지만, 그 바깥 - 즉 현실에서는 작가와 독자의 머리싸움이 벌어지지요. 작가는 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독자는 작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위해 꼼꼼하게 읽거나 심지어 메모까지 해 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씁니다.

이런 승부욕 탓인지 추리작가 중에는 야구팬이 적지 않습니다. 거장 엘러리 퀸(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촌 형제간인 맨프레드 리와 프레드릭 더네이의 합작 필명입니다)은 단편집 <엘러리 퀸의 새로운 모험(The New Adventures of Ellery Queen)>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스포츠 소재 작품에 할애했는데, 그중 <사람이 개를 물었다 Man Bites Dog>(1940)는 월드 시리즈가 한창 벌어지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황금의 투타 콤비? - 어린 시절의 엘러리 퀸(왼쪽이 리, 오른쪽이 더네이) (1912년 촬영)


또한 걸작 단편 <특별요리(Speciality of the house)>를 쓴 스탠리 엘린은 브루클린 다저스(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사랑하고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증오하는 프로야구 팬(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관계는 미국 프로 스포츠 계에서 최고의 앙숙으로 꼽힙니다)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 구장 펜웨이 파크


또한 올해 작고한 로버트 파커는 자신이 살고 있는 보스턴의 프로야구팀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습니다. 사립탐정 스펜서는 <최후의 도박(Mortal Stakes)>(1975)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의뢰로 에이스 투수 마티 랩이 승부조작을 하는지 조사에 나섭니다. 여기서 스펜서는 야구장이라면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만한 곳이 없다고 극찬하는 대목이 있는데, 저도 가 본 적은 없지만 TV 중계 화면만으로만 보아도 멋진 곳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포의 시구'를 하는 스티븐 킹.

보스턴의 팬이라면 스티븐 킹이 더 유명하겠군요. 그의 작품 치고는 '덜 무서운'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The Girl Who Loved Tom Gordon)>(1999)가 눈에 띄고(톰 고든은 레드삭스의 구원투수로 활약했는데 나중에는 뉴욕 양키즈로 팀을 옮깁니다), 베이브 루스의 저주가 깨지던 2004년 시즌을 다룬 <Faithful>이라는 논픽션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유명작가인 폴 오스터가 먹고살기 힘들던 무명시절 ‘탐정소설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1976)입니다. 살해 협박을 당하는 스타 야구선수가 나오고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냄새가 푹푹 풍기는 매력적인 작품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폴 오스터에게 큰 돈을 벌어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때 야구 카드게임도 고안해서 팔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야구 관련 추리소설이 많은 나라는 일본입니다. 일본은 프로축구 창설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계기로 축구의 인기가 높아졌지만 역시 최고 인기 종목은 ‘미국이 발명하지 않았으면 일본이 발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구입니다. 그러다 보니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 역시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번역된 야구 관련 작품으로는 고교야구선수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1989)가 있겠군요. 생각보다는 적은 것 같습니다.

일본 작가 중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면 구장에서 스타 선수가 살해되는 사건을 다룬 <4만 명의 목격자(四万人の目擊者)>(1959)를 쓴 아리마 요리치카(有馬賴義)를 들 수 있겠는데,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야구 입단 테스트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자비로 아마추어 팀을 창단해 감독 겸 투수를 맡았는가 하면 1960년대에는 대학야구팀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한 경력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야구 관련 추리소설은 정현웅의 <스타의 마지막 여름(<황제 살인>으로도 출간>(1986), 박청하의 <마운드의 틈입자>(1990), 이승영의 <코리안 시리즈 살인사건>(1992), 그리고 단편으로 문윤성의 <프로야구와 프로도박사> 등으로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닙니다. 1982년 프로야구 창설 이후 바람을 타고 잠깐 나오는 듯하더니 요즘은 보기 어렵네요. 좀 아쉽습니다.

한국 추리작가들이 쓴 야구 소재 작품들.


야구 시즌이 끝나면 팬들께서는 섭섭하겠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야구는 다시 시작합니다. 그동안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시길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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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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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0.10.21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핫...야구와 추리소설이 이렇게 얽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카메라이언 2010.10.21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역시 앨러리퀸의 야구 소설(?)이 제일 먼저 나오는군요. 야, 정말 그런데 야구나 축구나 여러가지 미스터리를 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듯해요. 베이비루스 우주인설에 맞춘 추리물도 나올 수 있을 듯하고. 흐흐. 또, 전 명탐정 코난도 정말 좋아하는데(광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만 합니다만 주변에서 인정을 안 합죠) 이 이야기를 보면 코난과 가장 친한 친구(?)인 핫토리 헤이지가 각각 축구와 야구로 캐릭터를 표현합죠. 때문에 요 두 소년이 서로의 스포츠가 최고다, 하고 싸울 때란 참 즐겁더라고요.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숨기는 방법

                                  

"당신이 어떤 인물로  변장했을 때 당신 자신이 완전하게 그 인물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들통 날 걸세.” 

                                                                  
-<39계단>(1915), 존 버캔
   

                                                                      
어린 시절 뭔가 잘못했을 때, 아니면 누구를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을 때 손오공처럼 둔갑술을 가졌으면 했던 기억이 있는 분은 많을 것입니다. 추리소설 속의 탐정이나 악당들이 주문만 외워서 순식간에 변신할 수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현실성을 중시하는 추리소설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보통 사람에게는 초능력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변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쫓아가거나 쫓기는 경우,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싶은 경우 등 이유야 어쨌든 간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 변장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변장 장면은 비현실적입니다. TV 시리즈나 영화로 제작되었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서는 등장인물이 인조 피부를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만, 영화와 현실이 똑같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다양한 인물은 물론 심지어는 무생물로까지 둔갑하는 코미디 영화 <마스터 오브 디스가이즈(Master of Disguise)>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말 그대로 코미디니까 그냥 봐 줄 수 있는 것이었지요. 

이것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페이스오프'에서


변장은 크게 영구적인 변장과 일시적인 변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변장은 바뀐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일시적인 변장은 필요할 때만 자신의 모습을 감출 뿐 평상시에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영구적인 변장 중 대표적인 것은 물리적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에서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거의 완전할 정도로 다른 얼굴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수배중인 악당이 주로 이용하며, 증인이나 정치적 망명자 등도 신변보호를 위해 이용하곤 하지요. 가끔 성형수술로 특정한 사람과 똑같은 얼굴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렇게 되려면 원래부터 체격이나 용모가 가까운 편이어야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 있었던 카게무샤(影武者)라던가, 이라크의 전 대통령 후세인은 집권 당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여럿 ‘만들어’ 암살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지요.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의 얼굴 피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상대방 행세를 하는 <페이스 오프(Face Off)>(1997)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사람의 외모는 피부보다 골격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처럼 다른 사람 얼굴의 피부를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얼굴과 절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신분을 위장하는 것만으로도 영구적 변장이 가능합니다. 땅이 넓고 신분등록제도가 약간 느슨한 편인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주민등록 제도가 철저한 편인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사회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이, 신용불량 때문에 재기불능이 되어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인생을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火車)>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 변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변장술로, 전쟁 때는 적군의 옷을 입고 기습공격을 하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전술적 위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등장하는 뒤팽은 편지를 훔친 장관을 찾아갔을 때 본명 대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름을 사칭하고 남의 집을 뒤지는 뒤팽 -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은 이런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요. 프랑스의 실존인물 비도크는 다양한 사람으로 변장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면서 수사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으며, 그의 후배뻘인 명탐정 홈즈와 괴도 뤼팽 역시 놀라운 변장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홈즈는 노인에서부터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로 변장했고, 뤼팽은 귀족이나 건달은 물론 한술 더 떠 경찰 간부로 변장해 형사들을 지휘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 등장했던 일본의 전설적 범죄자 ‘괴인 20면상(怪人 20面相)’은 얼굴이 스무 개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뒤흔들어놓곤 했습니다.


실제 변장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작품이 있습니다.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재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에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암살을 의뢰받은 암살전문가 ‘재칼’은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체격을 가진 덴마크 목사, 미국 대학생의 여권을 훔치고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또 다른 여권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임무 수행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재칼은 대단히 세심하게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합니다. 암살용 무기와 가짜 신분증을 마련한 그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이탈리아의 밀라노, 제노바 등을 거쳐 프랑스로 침투해 들어가는데, 프랑스 경찰은 암살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정작 암살자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난감한 처지에서 대책을 세워야만 합니다.

제이슨 본은 그의 본명이 아닙니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변장은 공권력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경찰을 비롯한 정부 조직은 범죄나 테러조직 침투나 함정 수사를 위해 위장을 하는데, 때로는 신분을 아예 바꿔버리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1980)에서는 거물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월남전 특수부대 출신 - 한때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뛰어난 변장술을 갖춘 - 요원을 제이슨 본(Jason Bourne)이라는 인물로 변신시킵니다. 그런데 그가 임무수행 와중에 사고로 기억을 상실하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지요(이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배경과 내용이 많이 바뀌긴 합니다).

엘러리 퀸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 표지

피해자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네요. 자신의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서 변장이라는 말이 어색합니다만, 살인자가 피해자의 신분을 숨겨 자신의 범행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어떤 작품인지 밝히는 순간 작품의 맛이 달아나 버리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엘러리 퀸의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에서는 뉴욕 중심가의 한 호텔 대기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기묘하게도 피살자의 복장이 모두 뒤집혀 있습니다. 즉 상의는 등 쪽에서 단추가 채워져 있고 구두를 제외한 셔츠, 바지, 조끼, 그리고 속옷까지 그런 식으로 입혀져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가구나 시계, 카펫 등 방안의 가구라는 가구도 마찬가지로 반대편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이며 왜 모든 것이 뒤집혀 있는 것일까요.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도입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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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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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gnon 2010.10.07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엘러리 퀸의 소설, 제목부터 확 끄는데요?? 찾아봐야겠어요!!

    이 시리즈, 정말 재밌어요! ^^

  2. 2010.10.11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