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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3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6> 부부 작가 (4)

함께 살면서 각각의 길을 가

사람들이 삶의 규칙들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내 여력이 되는 한 맞서 대항할 낡은 관습이 하나 있다.
결혼이 바로 그것이다.
 - 조르주 심농 (프란시스 라카생과의 대화에서, 1975)
 

추리소설이 인기 있는 나라에서 추리작가 부부는 드문 존재가 아닙니다. 젊은 시절 문학 수업 도중 사귀는 경우도 있고 추리작가들의 모임에서 마음이 맞는 경우도 있겠고, 그 이외에 남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연도 있을 수 있겠고과정이야 어쨌든 맺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을 하나 완성한 다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곤 하는데, 만약 작가에게 솔직할 수 있는 배우자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 특히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추리소설의 경우에는 -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 즉 1930년대에는 합작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팀을 이루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100여 편의 작품을 함께 발표한 G.D.H. 콜(George Douglas Howard Cole)과 M.I. 콜(Margaret Isabel Cole) 부부가 선구자 격입니다(콜 부인의 남동생 역시 사회학자이며 추리소설을 쓴 레이먼드 포스트게이트(Raymond Postgate)로 법정추리의 걸작 <12인의 평결(Verdict of Twelve)>(1940)을 썼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남편이 줄거리를 착상하고 집필은 아내가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고, 아쉽게도 그들의 작품 활동은 남편의 작고 후 끝나고 말았습니다.

G.D.H.콜, M.I콜 부부

스웨덴 출신의 페르 발루(Per Wahlöö)와 마이 흐웨발(Maj Sjöwall 발음과 표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여기를 참조했습니다.) 부부도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인 남편 발루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쓰기 이전 이미 두 편의 경찰소설을 발표한 바 있으며 아내인 흐웨발은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요. 이들은 스톡홀름 경찰국 ‘마르틴 베크 경감’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초기 이들의 작품은 에드 맥베인의 <87 분서>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정통적 수사물이었지만 나중에는 숨은 권력을 비판하는 사회적인 스타일로 차츰 변화했으며 당시 스웨덴의 사회를 엿볼 수도 있는 방대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총 10권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집필할 예정이었으나 1975년 남편인 발루가 먼저 사망하는 바람에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흐웨발은 혼자서 열 번째 작품인 <테러리스트 (Terrorist)>를 발표, 시리즈를 어렵게 마무리했습니다. 흐웨발은 10년 이상 소설 집필에서 손을 떼고 있다가 1990년 네덜란드 추리작가인 토머스 로스와의 합작인 <그레타 가르보를 닮은 여인 (Kvinnan Som Liknade Greta Garbo)>을 발표해 독자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스웨덴 우표에 실린 흐웨발과 발루 부부

명성만으로 따져볼 때 가장 화려한 부부 작가로는 로스 맥도널드와 마가렛 밀러 부부를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캐나다에서 성장한 맥도널드는 캐나다 태생의 동갑나기 밀러와 1938년 결혼, 1983년 작고하기까지 45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작품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남편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아내는 심리 서스펜스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게다가 각각 미국 추리작가협회(MWA)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에드거상 거장(Grand Master)으로도 선정된 유일한 부부이기도 합니다.

로스 맥도널드, 마가렛 밀라 부부

맥도널드-밀라 부부의 선배 격인 미국 추리작가협회 창설 멤버이자 하드보일드 작가 브렛 할리데이는 세 차례 결혼했던 상대가 모두 추리작가였다는 놀라운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아내인 캐슬린 롤린스와는 함께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 두 번째 아내인 헬렌 맥클로이는 기자 출신으로 여자로서는 최초로 미국 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세 번째 아내인 메리 새비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추리작가였습니다.

브렛 할리데이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웨스턴, SF,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발표하며, 장․단편에 모두 능할 뿐만 아니라 예리한 미스터리 평론가이기도 한 빌 프론지니는 오직 추리소설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여성 작가 마르시아 멀러의 배우자이기도 합니다. 이들 커플은 종종 함께 작품을 썼는데, 그들의 합작품 중 <더블(Double)>에는 독특하게도 서로의 주인공, 즉 프론지니의 이름 없는 탐정과 멀러의 샤론 맥콘이 등장해 협조하며 사건을 해결합니다.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다음에 결혼한 두 사람은 결혼 전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멀러-프론지니 부부의 합작 'Double'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작가 부부로는 조너던 켈러맨과 페이 켈러맨 부부가 있습니다. 각각 정신과 의사와 치과의사였던 두 사람은 특이하게도 결혼 이후 작가생활을 시작해 명성을 얻었습니다.

페이(왼쪽), 조너던 켈러맨 부부

가까운 일본에도 이미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부부 작가가 여럿 있습니다. 서술 미스터리의 대가 오리하라 이치(析原一)와 니츠 키요미(新津きよみ) 부부는 대학 졸업 후 여행과 관련된 직장에 다니면서 습작활동을 했으며, 같은 해(1988년) 작가로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2중 생활>이라는 공동작품도 발표했지만 각각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독립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열성 팬이 적지 않은 신본격파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의 부인은 공포소설과 팬터지 소설로 유명한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로, 공교롭게도 생일도 단 하루 차이(남편이 하루 앞이랍니다)나는 동갑나기입니다. 또 일상 미스터리를 주로 쓰는 가노 도모코(加納朋子)와 <우행록>을 쓴 누쿠이 도쿠로(貫井德郞)도 부부 사이입니다.

이들 뛰어난 부부 작가들을 살펴보노라면 한 가지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그들의 2세도 과연 추리작가로 활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미술가나 음악가 등 예술가들 집안은 후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과학 계통에서도 프랑스의 베르누이 집안은 뛰어난 수학자들을 연이어 배출했다고 하는데, 추리문학계의 경우는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아 아직까지 돋보이는 가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2대를 이어간 집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미국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수 그래프튼(Sue Grafton)은 역시 추리작가였던 아버지 C.W.그래프튼(Cornelius Warren Grafton)보다 훨씬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여성 추리작가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딸 캐롤 히긴스 클라크도 추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과연 어머니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P)

메리 히긴스 클라크(왼쪽), 캐롤 히긴스 클라크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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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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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3.23 2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부 작가라면 무엇보다도 남편은 남성 입장, 여성은 여성 입장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부 작가, 아니, 사실은 합작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방식으로 써 나갔을지가 더 궁금합니다. 엘러리 퀸의 경우(소문이지만) 리가 글을 쓰고 구성 등은 더네이가 했다고 합니다.

  2. 추리닝4 2011.03.24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도 부부 추리작가들 있지요. 이 회장님, 황 선배.. ^^

  3. 카메라이언 2011.03.24 0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 쿠헉! 이 얼마나 대단한... (뭐, 뭔가 결혼을 해도 될 것 같아. ;;)

  4. 필론 2011.03.27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 그래프튼의 아버지도 추리작가이셨군요.^^ 대를 이어서 추리문학을 쓰는 열정이 아름다워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