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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0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47> 비현실적 살인방법 (1)

실제 효과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문 의사조차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을 

 미스터리 작가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미스터리를 과학하면>(1994) - 유라 사부로

 

 

얼마 전 TV 뉴스에 나온 주사 맞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1970년대에 나왔던 추리소설 중 하나인 ‘원한의 빨간 꽃’(저자 이상갑)이라는 작품입니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들어서 기억하시는 분도 별로 없을 듯합니다만.


제목만으로 짐작하시긴 어렵겠지만 이 작품은 어린이용, 정확하게는 ‘한국소년소녀추리모험소설선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중학생 이하의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텐데 내용은 무척이나 살벌했습니다. 그냥 어린 주인공이 등장해 비폭력적인 괴도와 머리싸움을 벌인다… 이런 것이 아니라 살인, 그것도 잔인한 방법의 살인이 여러 차례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잡지에 실린 광고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책이 없어서 정확한 기억이라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대략 시작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갑니다.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난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하는 장면이 도입부이죠. 만적(아니면 노비 중 하나)이 처참하게 죽으면서 ‘빨간 꽃’ 운운하는 저주와 모종의 해결 실마리를 남깁니다.
그리고 무대는 현대 - 아마도 1970년대쯤이겠죠 - 로 넘어갑니다. 주인공은 젊은 여자인데(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 이제부터 웃지 마시길, 제가 지어낸 것 아닙니다 - ‘선우걸작’이고, 그의 동료들 이름은 ‘고만두’, ‘이거야’(별명 문어대가리), ‘구린내’(별명 홍콩), ‘조여희(별명 불여우)’ 등 다양합니다. 선우걸작은 도둑인데, 동료들의 배신으로 형무소에서 죽었던가 뭐 그랬던 것 같네요.


어쨌거나 ‘빨간 꽃’의 저주가 무엇이냐 하면, 선우걸작 부녀는 평상시엔 선량한 사람이었다가 팔뚝에 빨간 꽃 모양의 반점이 나타나면 갑자기 범죄자로 변합니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혹은 헐크처럼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빨간 꽃은 매우 불규칙적으로 나타나서 예측불허입니다. 그래서 ‘저주’였겠지만…(잠깐 검색해보니 만적의 난은 1198년이던데, 6백년이 흐르는 동안 저주가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빨간 꽃 상태’에서의 기억을 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악당인 고만두라는 인물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다니죠. 연쇄살인은 다 이 인간의 짓입니다. 동료도 거침없이 죽이죠.
앞에서 주사기 이야기를 해 놓고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 작품에서 본 살인방법은 어린 나이의 시각으로는 너무 잔인해서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야(아니면 구린내였던가?)가 병원에서 마취제를 맞고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고만두가 나타나 정맥에 공기 주사를 놓아 죽이는 것이었죠. 말 그대로 눈 뜨고 죽는다는 것이 무척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위의 사진에 나온 시리즈 대부분을 다 읽었습니다만, 이러한 충격 탓인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작품뿐이네요).

 

주사기는 언제나 무섭군요


그런데, 이런 살인 트릭은 일본의 작품에서도 가끔 쓰였는지, 의학박사이자 법의관 생활도 잠시 했던 추리소설가 유라 사부로(由良三郞: 1921-2004) 박사(우리나라에 '운명교향곡 살인사건'이 번역된 바 있죠)도 <미스터리를 과학하면>(1994)이라는 책에서 이에 대해 글을 쓴 바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사로서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살인방법이라는 것이죠.


대강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로 정맥에 공기를 집어넣어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실험해 본 결과 체중 3kg정도 토끼의 정맥에 10cc 정도의 공기를 집어넣자 급격한 경직을 일으키면서 죽었으나, 1cc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토끼의 1cc는 체중으로 환산하면 사람에게는 20cc정도가 된다. 임상의사 선배는 정맥주사 때 실수로 작은 공기방울을 주입하기만 해도 사람은 즉사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그것이 맞다 해도 사람과 토끼는 반응이 다르지 않을까. 여기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지금까지 아무도 인간의 정맥에 공기를 주사하는 실험을 한 사람은 없다.”

 

사람 정맥에 200cc 공기를 넣으면 죽을 것 같긴 합니다만… 200cc라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군요.


이처럼 추리소설에는 당장 보았을 때 그럴듯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써먹을 수 없는 살인 방법이 많습니다. 유라 사부로 박사가 같은 책에서 언급한 것 중 하나는 광견병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드라마 제작 전 의학적 고증을 위해 문의를 해 왔는데, 플롯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느 형무소에서 탈옥한 두 명의 죄수가 들개에게 물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다른 하나는 산으로 도망친다. 추적하던 경찰이 조사한 결과 두 사람을 문 들개는 광견병에 걸린 것이 판명된다. 사건은 단순히 탈옥수 추적이 아니라 광견병 확산을 막아야 하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광견병 증세가 나타난 탈옥수는 사람들을 물어뜯으면서 광견병을 확산시키고 주변은 대공황에 빠지는데…’


여기까지 듣던 유라 사부로 박사는 ‘잠깐, 문제가 있습니다’하고 제동을 겁니다. 첫 번째로 개가 광견병에 걸렸는지 확인하는 데는 4주 정도 걸리며(이것은 요즘 빨라졌을 수도 있겠죠), 두 번째는 광견병은 금방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 2개월의 잠복기가 있으며 길면 1년 이상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개는 타액선을 통해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기지만, 사람은 광견병에 감염되면 타액선이 마비되기 때문에 사람을 물어도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유라 사부로의 추리소설 '고증' 관련 저서. 오른쪽의 <미스터리를 과학하면>은 번역되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소설가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복잡해지고 어려워집니다.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인 살인 트릭을 그럴 듯하게 사용하는 작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기시 유스케가 있네요. 단순한 무기 – 즉 칼이나 활, 혹은 둔기 등을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나머지 살인방법은 ‘위험하니 집에서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13번째 인격>이나 <신세계에서> 등에 나오는 초능력 살인방법은 따라 하라고 권해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유리 망치>의 살인방법은 -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 특정 장소와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그런 복잡한 방법을 택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심지어 작가는 <푸른 불꽃>에서 ‘실제로 효과가 없으니 따라 해도 소용없다’는 후기까지 남기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현실이야 어쨌거나 독자를 잘 설득시키는 것, 이런 솜씨가 뛰어나야 일급 작가가 될 수 있겠죠. 플롯이 재미있고 그럴 듯하다면, 독자도 알면서 기분 좋게 속아넘어가 줄 것입니다. (C:)

 

P.S. <원한의 빨간 꽃>은 사실 창작인지 번안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래 되어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프랑스 혁명 혹은 그런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빨간 꽃' 저주, 그리고 저주가 풀리는 장면이 거의 똑같은 외국 작품을 보고 "이거 베낀 것 아닌가?"라고 한 기억이 있어서… 번안이 아니라면 여러 작품을 짜집기했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완전한 착각일 수도 있겠죠.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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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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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리여왕 2013.04.12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업데이트네요, 반갑습니다. ^^ 소설을 읽다보면 트릭에 치중한 나머지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터무니 없는 경우는 좀 안타깝기도 하죠. 그것에 대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에서 아주 적절히 비꼬아놓았죠. ㅎ
    앞으로 좋은 이야기 또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