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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9 [고전] 흑묘이변 - 윤백남 (3)

흑묘이변(黑猫異變)


윤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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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장때를 당한 채소시장의 시세는 한없이 좋았다. 산같이 쌓아놓은 무, 배추, 그리고 고명 등속은 바람에 검불 날리듯 순식간에 없어지곤 하였다.

영수도 새벽같이 모든 사람 틈에 섞이어 무와 배추를 팔았다. 오늘에 한해서 영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팔았을 뿐 아니라 이익도 다른 날보다 특별히 많이 남아서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한 웃음이 가득하였다.

영수는 채소를 다 판 다음 집으로 돌아가려고 수레에 밧줄을 걷어 올리고 있을 때

“여보게 영수!”

하고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영수 옆에서 미나리를 팔고 있던 친구 순태였다.

“자네 벌써 다 팔았나?”

“다 팔고 집으로 가려는 참일세.”

“나도 다 팔았네.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일상 그렇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다른 날보다 쉽게 팔리고 돈도 더 남았네!”

“나도 오늘은 심심치 않았네.”

두 사람은 오늘의 장사에 한없이 만족을 느낀 듯이 껄껄 웃었다. 순태는 지게를 걸머지며 수레에 끈을 얽어매고 있는 영수를 돌아보며

“여보게 오늘은 재미를 봤으니 가다 한 잔 냄세!”

이렇게 영수의 술 비위를 충동하였다.

“하여간 누가 내든지 같이 가게.”

두 사람은 같이 걸었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순태는 지게를 지고 영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2.


영수는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가 규모가 있고 얌전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고로 일상 술잔을 대할 때마다 그 정도에 넘치지 않을 것을 늘 경계하여 왔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실수를 한 일이 없었다.

더욱이 영수가 새로 장가를 든 다음부터는 그리 많이 먹지 않던 술조차도 입에 댈 겨를이 없었다. 일찍이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일가에게 얹혀 자라나서 보통학교를 겨우 마친 다음부터 전혀 채소장수로 나선 까닭에 이제 와서는 채소장사로서의 경력과 수완도 상당히 있었고 더욱이 혼인한 다음부터 자기에게 한없이 순종해주며 넘치는 사랑과 친절을 다해 주는 아내와 더불어 남같이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생긴 후로부터는 더욱이 그러하였다.

천생으로 고운 얼굴을 타고난 그의 아내가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날 때마다 그는 장에서 물건을 팔고는 한달음에 집으로 가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집안 살림도 영수의 부지런으로 말미암아 그리 궁색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기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점점 고양이를 몹시 사랑하여 좋아하는 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검정고양이까지 집안에 기르고 있다.

이 고양이를 집에 기른 다음부터는 아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장에서 채소를 팔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고양이를 주려고 고기를 사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이와 같이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기를 사다 줄 적마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대해서 감사와 즐거움에 넘치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영수는 이같이 아내가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 보고 싶었고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그가 천성으로 좋아하지 않던 고양이가 자기 앞으로

“냐옹! 냐옹!”

하고 기어오면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자기 손으로 주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그만 아주 고양이하고 숙친(오래 사귀어 아주 가까움)하여져서 으레 집에 들어올 때면 고양이 먹을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자기 무릎에 고양이를 얹어 놓고 어루만지며 고기를 먹이고 아내의 사랑스런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그에게는 다시없던 행복이었다.

영수가 신혼살이를 시작한 다음부터 집안 살림은 더욱 늘어갔으며 고양이도 이 두 양주 틈에서 행복한 일 년 동안을 그 집안 자식같이 그들의 재미있는 신혼 자리 속에 길러졌다.

이와 같이 신혼살이에 재미가 가득한 영수는 더욱이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건실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장에서 채소를 팔아 많은 이익을 본 다음 영수가 한 동리 사는, 더구나 소학교까지 같이 졸업을 한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수레를 끌고 오래간만에 술집으로 향하고 걸었던 것이다.

영수는 수레를 끌고 걸으며 지게를 지고 옆에 서서 오는 순태를 돌아보며

“우리가 아마 같이 술 먹어 본 지도 오래되었지!”

하고 오래간만에 다정한 친구와 더불어 한 잔을 서로 나눌 기쁨에 넘치는 말을 꺼냈다.

“여보게 오래되고말고. 그게 벌써 일 년이 되었네그려. 아― 자네 장가들던 날 우리가 서로 같이 한 잔 먹고는 오늘이 처음일세그려.”

“참 그렇게 되었든가?”

“자네야 원체 얌전한 사람이 장가든 다음부터는 더 얌전해져서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 동안에도 꾸준히 먹었네 만은 도무지 자네하고 한 잔 같이 할 기회가 없었네그려!”

“나는 그 동안 통 술이라고는 대질 않았네.”

“그렇겠지. 아마 자네 내무대신이 어지간히 딱정뗀(딱장대. 성질이 온순한 맛이 없이 딱딱한 사람)게지― 이사람. 하―하―하―”

“이 사람아 어느 미친놈이 계집에게 매여서 술 한 잔도 못 먹는단 말인가! 그렇지만 단 두 내외 사는데 내가 밤낮 술이나 먹고 집안 살림을 돌아보지 않아보게, 집안 꼴이 어떻게 되나!”

“그건 참 옳은 말일세! 그렇지만 자네같이 얌전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나 그렇지, 나는 암만 그러려도 그 마음이 사흘을 못 가네!”

같은 친구였지만 영수의 가라앉고 얌전한데 비해서 순태는 방탕한데 가깝고 성질이 욱하는 데가 있고 호탕한데 가까웠다.

이같이 두 사람의 성질은 정반대로 달랐으나 그들의 우정(友情)은 한없이 두터웠다.


3.


그들은 이와 같이 수작을 하는 사이에 벌써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우정에 넘치는 정다운 대화 속에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목적까지 잊은 듯하였다. 이와 같이 이야기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달은 듯이 순태는 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고

“참 여보게, 오래간만에 만나서 한 잔 먹을 참인데 어디로 갈까?”

“나야 술집을 다니지 않았으니 어디가 좋은지 알 수 있나!”

“그럼 내 앞장을 섬세. 모처럼 먹는 술에 시시한 ‘다찌노미(立飲み. 선 채로 술이나 음료수를 마심)’야 되었나”

그들은 시외에 떨어져 있는 어느 조그마한 식당으로 갔다. 순태는 서슴지 않고 식당으로 영수를 끌고 들어갔다. 순태는 이런 곳에 매우 익숙하였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이런 곳에 들어선 영수는 한없이 서툴렀다. 더욱이 밤을 낮삼아 영업하는 이런 곳에 낮의 풍경은 너무나 질서가 없고 정이 붙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 밉지 않은 계집이 손가락으로 찌르면 터질 듯한 복슬복슬한 두 볼에 웃음을 머금고 영수에게 은근히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순태와 영수는 한 자리에 걸터앉아 몇 잔의 술이 오고가고 하였다. 영수도 원래 먹지 못하는 술이 아닌 고로 어느 정도까지 그의 정신이 몽롱하도록 마셨다.

그 옆에 앉아 말없이 술을 따르고 있던 여자는 영수의 수줍은 태도가 우스운 듯이 흘금흘금 바라보며 술을 따라주었다. 

영수는 몽롱한 가운데 자기 옆에서 웃음을 머금은 여자의 눈초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몽롱한 중에도 멋쩍은 듯이 그의 시선을 피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이 가득한 여자의 추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영수의 마음은 몽롱한 중에도 아득하였다.

영수는 마음으로 그 여자의 시선을 피하려하면서도 시선은 그 여자에게로 가곤 하였다. 

몽롱한 그의 눈 속에 보이는 그 여자의 자태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무슨 차마 하지 못할 일이나 하는 듯이 그 여자가 자기를 보지 않는 사이에 그 여자의 얼굴을 도적질하여 보다가는 그 여자의 정이 가득히 실린 시선과 마주치곤 하였다.

이와 같이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영수의 얼굴은 상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행으로 그의 얼굴이 술기운으로 인하여 벌겋게 상기가 되어 있었던 고로 아무도 그의 얼굴이 유난히 붉어지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이를 따라 그의 가슴은 한없는 파동이 일어나곤 하였다.

“아이고 퍽 얌전도 하셔. 이렇게 얌전한 분의 부인은 퍽 행복이겠지!”

영수 옆에서 정다운 시선을 던지는 그 여자는 영수의 무릎에 자기 손을 얹어 놓으며 반딧불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풍겨 오는 여자의 살내음새, 그리고 성욕을 충동하는 듯한 화장품 냄새에 섞여 미적지근한 그의 숨결이 영수의 턱밑으로 풍기며 그의 정신을 한없이 유혹하였다.

이와 같은 일을 처음 당한 영수는 다만 정신이 아찔할 뿐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그 여자에게 무어라 수작 한 마디 하여 볼 용기조차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여자의 정이 가득한 눈초리에 녹아서 그는 다만 의식 없이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얼마를 마셨는지 희미한 정신을 가다듬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해가 지고 전등불이 환하게 방 안에 비치고 있었다. 텁텁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누워 있는 곳은 틀림없는 자기 집이었다.

“어떻게 집에를 왔을까?”

그러나 어떻게 집에 왔는지 조금도 그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입술은 바짝바짝 타고 목이 한없이 탈 뿐이었다.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아서 방에서 비치고 있는 전등불이 뿌연 속에서 꼬리가 달려 보였다.

“취하면 댁에까지 내가 바래다 드리지요.”

그의 귀에는 아직도 이런 여자의 음성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 가득한 눈이 도저히 잊혀 지지를 않는 것 같았다.

“취해서 못 가시면 내 방에서 주무시지!”

이런 말도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도 그는 한없이 목마른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자기가 하고 온 일이 마음에 찔리는 것 같아서 그는 선뜻 자기 아내에게 물을 달라고 호기 있게 할 용기가 없었다.

“술이 깨면 목이 마를 줄 알고 물을 줄 것이지.”

이렇게 원망 비슷하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것도 지나가는 순간의 생각이었다. 영수는 땡한 골치를 붙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아내가 차려다주는 밥상을 대하였다.

“웬 술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도록 잡수시우.”

아내가 밥상을 갖다 놓으면서 이렇게 원망하듯 말하는 것이 더욱 미안하였다.

“오래간만에 누굴 만나서 그랬어.”

변명 비슷하게 이렇게 말을 하는 그는 몇술 밥을 뜨는 척하고는 수레에 채소를 싣고 장으로 갔다.

그가 채소를 다 팔고 났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시장에서 와글와글하고 물 끓듯 하던 사람도 하나씩 둘씩 툭툭 털고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영수는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사랑스러운 자기 아내가 집에서 기다릴 생각보다도 어제 식당에서 다정한 추파를 던져주던 그 여자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영수가 이같이 색다른 여자를 대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자기 아내보다도 이 색다른 여자에게로 마음이 이상하게 끌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에서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어떠한 구실이든지 만들어가지고는 식당으로 그 여자를 찾아갔다. 물론 그가 이런 곳에 다소간이라도 경험만 있다면 그 여자가 진정으로 자기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아닌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았을 것이지만 오늘까지 얌전하였고 마음이 단순한데다가 순정인 그는 그와 같은 것을 알아 볼 여지가 없었다.

그의 아내도 요새 와서 남편이 먹지 않던 술을 매일같이 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퍽 의심스럽게 여겼지만은 그 남편이 백방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에 흐지부지 속아오곤 하였다.

그것도 남편이 그전부터 술을 좋아하거나 불량한 사람 같으면 언짢은 소리도 하고 못 먹게 말려도 볼 것이지만은 요즈음 와서 별안간 술을 입에 대며 밤마다 나가는 것이 난봉이 나서 그러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전에 없던 옷 모양도 내고 세수도 다시 하며 수상한 행동이 보일 때 그 아내가 참다못해서

“아니 어디를 가게 이렇게 야단이요”

하고 물으면 영수는 다만

“친구의 집에 무슨 날이 되어서 가―”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장사를 더 크게 해 보려고 누구에게 돈 말을 했더니 만나자고 그래서”

할 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아내는 고지식한 남편의 말이라 그대로 믿어오게 되었다.

오늘도 영수는 저녁을 먹은 다음 부랴부랴 옷을 입은 다음 식당으로 향하여 걸었다. 그가 식당을 향하고 걷는 순간만은 장사도 집안 살림도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확실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만 처음 날 자기에게 한없이 친절히 해 주고 은근히 정다운 뜻을 보여준 그 화자라는 여자가 그리울 뿐이었다.

영수는 한달음에 식당으로 달려갔다. 화자는 자기를 기다리는 듯이 반기며 맞이하여 주었다. 은근히 영수의 손을 붙잡고

“어서 오세요.”

하고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그 여자의 태도는 확실히 이 순진한 영수의 영혼을 불사르고 남을 만하였다.

“나는 꼭 당신이 오실 줄 알고 기다렸어요.”

화자가 이와 같이 정을 가득이 싣고 하는 말은 더욱이 영수를 황홀케 하였다.

붉고 푸른 전등 광선이 착잡하게 섞여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그 속의 풍경은 한없이 음침하고 더욱이 저급적인 레코드의 속된 유행가의 음향이 한데 섞여 나오는 그 속의 공기는 한없이 추잡하였다. 그러나 영수는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이 황홀 찬란한 그 판에 자기의 영혼까지 불사르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즐거운 것이 일하고 밥 먹고 아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이런 다음부터 영수는 거의 날마다 이 식당에 가게 되었다. 화자라는 그 여자도 처음에는 이 낯모를 부수수한 손님에게 대해서 될 수 있는 데까지 갖은 교태를 다 부려서 그의 마음을 끌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이 거듭함을 따라 영수의 태도가 점점 자기에게로 가장 진실하게 끌려오는 것을 알고 화자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그리고 공연한 짓을 하였다 하는 후회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영수가 돈 있는 집 자식으로 양복이라도 번드레하게 입고 돈냥이라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었다면 화자로서도 그릴 이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수는 보잘것없는 채소장사요 게다가 아내까지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안 화자로서는 영수가 아무리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을 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돌아올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영수는 이 화자라는 여자를 보기 위하여 이 식당으로 하루도 빼지 않고 갔으나 화자의 얼굴은 차차로 보기 드물었다. 어떠한 때에는 다만 억지로 왔느냐는 인사를 하고 자기 옆에 말없이 앉았을 따름이요, 그렇지 않으면 영수의 존재는 잊은 듯이 다른 손님하고 앉아서 갖은 교태를 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꼴을 당한 영수는 참다못하여 화자를 붙잡고 

“너 왜 요새 이렇게 내게 무정하게 구니”

하고 원망하듯이 말하면

“아이고 왜 이리 속을 못 채리우, 이런 곳에 있는 년이 어떻게 당신 비위만 맞춘단 말요.”

하고 툭 쏘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수는 이것이 이런 데 있는 여자의 버릇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은근한 마음이 있으면서 같이 있는 여자의 면목도 있고 그리고 여러 손님도 있는 관계로 짐짓 마음에 없는 말로 여러 사람의 이목을 잠깐 속이는 수단이거니 하였다.

자기의 밝지 못한 것을 모르는 영수는 이러한 화자의 모든 태도를 자기의 편리하도록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이 화자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와서는 아무리 이곳에 와도 화자의 그림자가 차차 자기 앞에서 멀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화자의 얼굴조차 얻어 볼 수 없었다.

자기의 순정을 다해서 한 달 동안이나 사랑하는 아내도 살림도 다 내던지고 사랑하던 화자로부터 한 마디 따뜻한 말도 들어보지 못하고 냉대를 당한 영수는 분노와 절망의 불길이 가슴 속에 터질 듯이 치밀어 올라왔다.

원망과 저주에 넘치는 술잔을 한없이 들었다. 점점 흥분해가는 그의 마음은 무엇이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같이 되었다.

한 달 사이에 영수의 마음은 거칠고 한없이 불량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기르고 있는 검정고양이만은 이와 같이 변해 가는 주인을 조금도 변치 않고 따르고 있었다.

영수가 상신(喪神: 병이나 충격 따위로 정신을 잃음)이 될 만큼 술을 먹고 잔뜩 흥분이 되어 들어오는 주인을 본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고 가까이 갔다. 그러나 한없이 흥분된 영수는 식당에서 화자에게 받은 분풀이를 고양이에게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에 한해서는 자기 앞에서 얼씬거리며 덤비는 고양이조차 한없이 밉게 보였다.

그리하여 원망이 뭉쳐진 그의 정신은 다만 세상이 귀찮다는 듯이 쫓아오는 고양이를 발길로 밀쳤다.

그러나 의식 없는 동물만은 주인이 화가 났든 안 났든 알 까닭이 없었다. 그리하여 다만

“냐옹― 냐옹―”

하고 발로 밀치고 가는 주인에게 기어올랐다.

“엣― 귀찮아!”

“캑―”

순간이었다. 영수는 기어오르는 고양이를 발길로 내질렀다. 힘센 발길에 내질린 고양이는 비명을 지르며 한간 밖에 떨어졌다.

이같이 혹독하게 주인의 발길에 채인 고양이는 얼마동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고양이가 그만 아무데나 피해버렸으면 관계없었을 것이나 아무 지능(知能)을 갖지 못한 동물이라 오늘까지 주인이 자기에게 극진히 친절히 해 준 관계로

‘오늘 주인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내가 주인에게 잘못한 게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한 고양이는 더욱 교태를 지어가지고 발길로 찬 주인의 앞으로 기어가서 옷자락에 매달리게 되었다.

“에잇― 경칠 놈의 것”

영수는 이 끈기 있게 덤비는 고양이에게 아까 식당에서 당한 원망의 불길과 아울러 모든 분풀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덤벼드는 고양이의 멱줄띠를 죽어라 하고 쥔 다음 몇 번을 휘둘러놓고는 고양이는 한 손에 쥔 채 도마 위에 놓여 있는 식도를 들어 고양이의 면상을 갈겼다. 

불의에 이 무서운 참형을 당한 고양이는 마지막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고 죽을힘을 다해서 영수의 손에서 빠졌다.

이 심상치 않은 소리에 놀란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서 있는 남편의 흉한 꼴을 아찔한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고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웬일이오?”

“……”

입을 다물고 서 있는 남편의 얼굴에는 처참한 살기가 가득하였다. 그의 아내는 다만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이 꼴을 바라볼 뿐이었다.

영수는 별안간 먹은 술이 홱 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점 의식이 분명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제정신이 차차 돌아오기 시작하였을 때 자기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식도가 쥐여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손에서 떨어지는 칼 소리와 아울러 영수는 후회에 넘치는 눈물이 두 눈에서 반짝였다.

그 이튿날 영수는 고양이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었다. 그리고 화자의 일도 잊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가 한없이 귀여워하는 고양이에게 그와 같이 무참한 짓을 한 것이 한없이 후회가 났다. 고양이는 그 다음부터 한 눈이 멀어버렸다. 그때 식도로 갈길 적에 불행하게도 바른편 눈을 맞았기 때문에 영수의 친절한 치료로 낫기는 했으나 영영 한 눈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글쎄 여보 말도 못하는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 꼴을 만들어 놓는단 말요.”

아내가 애처로운 듯이 이렇게 자기를 보고 원망을 할 때마다 영수는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나!”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영수는 그날부터 고양이가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고기를 사다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혼난 고양이는 이 주인만 보면

“냐옹! 냐옹!”

하고 슬슬 피하고 오질 않았다. 영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부르면 더욱 피하고 오질 않았다.

“내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돈을 들여가며 좋은 것을 사다주고 하는데도 오질 않아!”

이러한 섭섭한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밥상에 놓여 있는 밥을 고기국물에 비벼서 주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이 주는 밥을 먹지도 않고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

그의 측은한 마음은 차차로 미움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고양이의 이같이 야멸찬 짓에 잊어버렸던 화자의 얄미운 행동이 이 고양이와 같이 연상하게 되었다. 

영수가 한때의 잘못으로 이같이 고양이로 하여금 영원한 불구(不具)를 만들어 놓고 한없는 후회에 가슴을 태우며 갖은 친절을 다 해주었으나 주인의 이 친절을 받지 않고 얄밉게 구는 고양이를 밉게 보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수가 특별히 고양이가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늘도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술을 먹고 들어왔다.

그의 술 취한 몽롱한 눈에 먼 눈을 한 발로 어루만지고 있는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 눈을 깜짝거리며 술 취한 영수를 원망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영수의 몽롱한 머릿속에는 고양이의 꼴이 측은하게도 보였으나 자기에게 너무나 쌀쌀히 하는 것이 끝없이 밉게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정신은 또다시 맹수같이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경칠 놈의 고양이, 그렇게 해 주어도 그래?”

영수는 또다시 미친 사람 같이 날뛰어 고양이에게 덤벼들었다. 이 무서운 습격을 당한 고양이는 도망질을 쳤다.

“요놈의 자식 놓칠 줄 아니?”

쫓겨 가는 고양이를 영수는 마치 맹수와 같이 날뛰며 쫓아갔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영수는 쫓아가서 발로 밟은 다음 고양이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무서운 경험을 가진 고양이는 발로 비비며 마지막 용기를 다 내서 빠지려 하며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요놈의 자식 살려둘 줄 아니?”

한없이 흥분한 영수는 고양이 모가지를 움켜쥔 채 마루 아래로 내려가서 댓돌에다가 힘껏 다해서 내동댕이쳤다.

“캑!”

하고 비명을 지른 고양이는 댓돌에 부딪친 채 두서너 번 버둥버둥하다가 그만 아무 소리도 없고 말았다. 고양이의 입에서 흘러서 나오는 피가 댓돌 아래로 벌겋게 흘러서 보기에도 처참할 뿐이었다.

영수는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다시 집어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물독 옆을 파고 묻어버리고 나서는 비틀거리며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자기 남편이 요사이 와서 한없이 난폭해진 것을 슬퍼할 뿐이었다. 그의 아내는 무참히 죽은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와서 곱게 흙을 더 덮어 주고는 힘없이 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흑묘이변' 삽화 (구본웅 그림)


그 이튿날 영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려가지고 어젯밤에 자기가 너무나 잔인했던 것을 뉘우쳤다. 그러나 이미 자기 손에 아무 죄 없는 고양이가 죽은 것을 너무나 쓰라리게 생각하였다.

영수는 고양이가 묻혀 있는 부엌까지 들어가서 물독 옆을 들여다보았다. 한눈 먼 고양이가 자기를 원망하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가 묻혀 있는 곳을 다져주었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영수의 아내는 그날부터 마치 어린애를 잃어버린 어머니같이 아무 힘도 없어 보였다.

아내가 이와 같이 기운이 없어 하는 것을 본 영수는 더욱이 마음이 괴로웠다.

“그게 무슨 짓이람. 술을 먹지 말아야지.”

이렇게 후회까지도 하였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내 장에 갔다 오는 길에 고양이를 또 하나 얻어 보리다.”

이같이 자기 아내를 위로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지긋지긋한 행동을 한 번 본 다음부터는 그 남편을 대할 때마다 몸에서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여보 글쎄 그 전에는 그렇지 않더니 웬일이요. 안 먹던 술을 입에 대지 않나. 술주정을 하지 않나. 조용한 집안이 난가가 되니 도무지 동네가 부끄럽구려.”

이같이 아내에게 충고를 받을 때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다.

“지난 일을 말하면 소용 있소.”

“난 그 고양이가 불쌍해서 죽겠소.”

“여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소용 있소, 내 어디 또 하나 얻어 보리다.”

“그렇지만 당신이 또 죽이면 어떡하우.”

“그럴 리야 있소. 그것도 술김에 한 번이지. 자― 하여간 내 어디 얻어 보리다.”

“그럼 하나 얻어다 주어요. 그게 없으니까 집안이 빈 것 같구려.”

영수는 속마음으로는 고양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만큼 싫었으나 또 한편으로 자기 아내의 마음도 위로해줄 겸 또 그와 같은 고양이를 한 마리 얻어다 잘 길러주는 것이 먼저 자기 손에 무참히 죽은 고양이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되는 것 같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영수는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먼저 죽여 버린 고양이와 흡사한 것을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수는 한참이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들여다보다가 몇 푼의 돈을 어린아이들에게 던져주고 그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고양이 얻어왔소.”

그의 아내는 고양이 얻어왔다는 바람에 한달음에 대문까지 뛰어나왔다.

“아니 어쩌면 죽은 놈과 똑같을까?”

그의 아내는 한없이 즐거워하면서 내려놓기를 싫어하였다. 영수는 밥상을 앞에 놓은 다음에 고양이를 불러 무릎 위에 놓고 그중 맛있는 것을 가려 주었다.

“아이 여보, 좀 귀엽소.”

그의 아내는 만족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귀엽기야 하지만 고양이는 야멸찬 짐승이 되어서 소용없어.”

“그렇지만 좋은 걸 어떡하우.”

오래간만에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 이튿날 아침 영수가 세수를 하려고 마당으로 내려왔을 때 고양이는 그의 뒤를 따라왔다. 영수는 따라오는 꼴이 귀여워서

“냐옹! 이리 온.”

하고 불렀다.

영수는 세수를 한 다음 수건으로 얼굴의 물을 씻으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를 안고 마루로 올라오려고 돌아보았다.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는 쪼그리고 앉아서 한 발로 바른 눈을 비비고 있었다. 영수는 이 순간 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것은 전날 죽여 버린 고양이가 한 눈이 먼 다음부터 늘 발로 바른편 눈을 만지고 있던 것이 생각이 갑자기 나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그 고양이를 찬찬이 살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어제 자기가 데리고 올 때까지 아무 일도 없던 고양이가 오늘 아침에는 그 바른편 한 눈이 확실히 멀어 있지 않은가. 그 고양이는 한 눈을 만지며 왼편 한 눈으로 영수를 쳐다보며 “냐옹! 냐옹!”하고 있었다.

“아― 이상도 하다!”

영수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전신을 떨었다.

“어쩌면 같은 바른편 눈이 멀었을까!”

이와 같은 의문은 더욱 영수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한 속으로 끌고 달음질하였다. 그러나

“아마 그 전부터 바른편 눈이 상했었던 게지.”

이같이 생각을 돌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결코 좋지는 않았다.

새로 얻어온 고양이가 “냐옹― 냐옹―” 하고 자기를 유달리 따를 때마다 몸에 소름이 쪽쪽 돋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영수는 그전같이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가 자기에게 친하게 덤벼들 때마다 영수는 고개를 외면을 하고는 슬슬 밀어버렸다.

영수가 이렇게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고양이는 “냐옹― 냐옹―” 하며 영수의 무릎에도 기어오르며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기도 하였다.

이같이 고양이가 영수에게 따르면 따를수록 영수는 싫증이 점점 더하여갔다.

“여보, 이제는 고양이가 보기도 지긋지긋하니 갖다 버립시다.”

참다못해서 영수가 아내에게 고양이 갖다버릴 의논을 하였다.

“여보, 애써 얻어온 것을 갖다버리면 불쌍하지 않소?”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아내는 이렇게 거절을 한다 할지라도 영수는 기어이 갖다 버릴 결심을 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따위 물건을 언제까지든지 두고 보겠단 말요.”

“아니 가만있는 게 뭐래우?”

“그래 남편이 싫어하면 먼저 버리는 게 아니라 이까짓 고양이가 남편보담 더하단 말요?”

영수는 이같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고 참 변덕도 심하오. 주워올 때는 언제고 또 갖다 버리는 것은 무어유.”

그의 아내도 지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니 그러면 이 보기 싫은 고양이를 끼고 살란 말야―”

“누가 보기 싫은 것을 당신더러 보라우.”

“그럼 그만 둬. 그렇게 고양이가 놓기 싫으면 고양이만 데리고 살아보지. 난 고양이가 보기 싫어 집에 안 있을 테야.”

영수는 이같이 잘라 말했다.

영수의 아내도 고양이를 좋아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자기 남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더 항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정― 싫은 거야 어떻게 하우. 갖다 버리던지 마음대로 하구려.”

영수는 두말하지 않고 고양이를 지게에다 얹고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수는 고양이를 지게에다 지고 삼십 리나 떨어져 있는 먼 곳에다 갖다버렸다.

“에― 이제는 근심 하나를 덜었다. 너도 팔자가 좋은 놈이면 훌륭한 집에 길리우겠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십 리나 넘어와 우연히 돌아다 볼 때 무엇인지 휙, 하고 앞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영수는 깜짝 놀라 다시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제가 쫓아올라구―”

또 먼저 일이 문득 생각나서 참아버리곤 하였다. 그보다도 날이 갈수록 고양이에 대한 미운 생각보다도 무서운 생각이 점점 드는 것이었다.

“여보 이것 좀 옮겨놓아 주어요.”

영수는 자기 아내가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엌으로 쫓아내려갔다.

영수의 아내는 부엌에서 문 옆에 놓여 있는 김치 중두리(항아리보다는 조금 크고 독보다는 조금 작은 오지그릇)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영수는 그의 아내가 들고 쩔쩔매는 중두리를 받아 들었다. 그가 번쩍 중두리를 들어서 옮겨 놓을 때 어느 틈에 따라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영수 발밑에서 “냐옹”거리고 있었다.

영수는 고양이가 밟힐까 염려해서 고양이를 피해서 발을 옮겨 놓다가 그만 중두리를 안은 채 넘어지고 말았다.

“경칠 놈의 고양이.”

영수는 분노의 불길이 걷잡을 새 없이 타올랐다. 중두리는 쩡 하고 몇 조각이 부서지고 넘어지는 바람에 깨어진 조각이 튀어 올라와서 그의 이마에는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근치근한 피가 머리에서 흐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영수는 눈이 뒤집힐 만큼 그의 분길은 한층 더하였다. 그의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의 불길은 오늘까지 고양이를 미워하던 생각과 아울러 터져버렸다.

영수는 일어서면서 눈앞에 보이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깜짝 놀란 그의 아내는 남편의 앞을 막아서며

“그까짓 고양이를 뭘 그러우―”

하고 애원하듯이 가로막았다.

“무어야!”

미친 듯이 날뛰는 영수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는 고양이가 한 눈을 지그시 뜨고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았다.

영수는 자기 앞을 막고 서서 말리는 아내를 밀치고 한 손에 쥐어진 도끼를 힘 있게 들어서 아래로 내려쳤다.

“으악―”

영수는 이 뜻밖의 비명에 정신을 잃고 자기 발밑에 벌어져 있는 참혹한 현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두 귀에서는 ‘왱’하고 모기 소리 같은 소리가 나며 두 눈에는 번갯불같이 반짝할 뿐이었다.

영수의 발밑에는 뜨거운 피가 벌겋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머리가 두 쪽으로 깨어진 채 아무 소리도 없었다.

“여보……”

영수는 억지로 정신을 수습하여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자기가 죽였으리라고 믿었던 고양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뜻하지 아니한 자기 아내가 보기에도 참혹한 죽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뜻하지 아니한 살인을 한 그의 정신은 공포에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사형대가 눈에 어른하고 비쳤다. 당장 무엇이 자기의 목을 자르는 것 같이 모가지가 답답하였다.

영수는 이 무서운 사실을 부인(否認)하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감은 눈에는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아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온몸을 떨고 또다시 잊으려 하였다.

“냐―옹”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유령이 또 자기를 향하고 덤비는 것도 같았다. 영수는 그만 실신한 채 그 자리에 혼도(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짐)하여 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린 영수는 무서운 죄적(罪跡)을 감추기 위해서 물독 뒤를 깊이 파고 아내의 신체를 파묻은 다음 흘러 있는 피를 흙을 파서 덮고 모든 흔적을 없이 한 다음에 그는 또다사 타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달아난 고양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 후 영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고양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영수는 이 사흘 동안을 무서운 공포 속에서 지냈다.

밤만 되면 원통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이 자기의 목을 누르는 것만 같고 먼저 죽은 고양이가 함부로 덤벼 온 전신을 집어 뜯는 것 같았다. 그는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웠다가 수없이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바람에 문소리만 나도 자기를 잡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사복형사가 그의 집에 이르러서 가택수색을 하기 시작하였다. 영수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잡고 수색하는 형사의 뒤만 따를 뿐이었다.

형사 일동은 아무 흔적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향하여 갔다. 영수의 마음은 한없이 뛰놀았다. 형사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이리 저리 보다가 새 흙이 덮여 있는 물독 옆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바라보는 순간 영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나오려 하였다.

“냐옹―”

이 순간 어디서인지 고양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알 수 없는 고양이 소리에 형사대는 발을 멈췄다. 

“냐옹”

또 들려왔다. 멀리 땅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군!”

“냐옹”

은은히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는 물독 뒤에서 나왔다.

“그곳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니 이상하군.”

“땅 속에서 나는 게 이상하니 파 보지.”

이 순간 영수의 정신은 먼 지옥을 걷는 것 같았다. 얼마 안 되어 영수의 아내 신체는 그 처참한 형체를 나타내었다.


모든 죄수를 실은 자동차는 재판소에서 나와서 형무소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이 죄수 중에는 오늘 사형의 언도(言渡)를 받고 형장을 향하여 가는 죄수가 있었으니 그는 얼마 전에 자기 아내를 죽인 영수였다. 마지막 형장으로 향하야 가는 영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이 몽롱한 그의 귀에는 다만

“냐옹”

하고 저주에 넘치는 고양이 소리가 바람결에 어디서인지 들려오는 듯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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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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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4.01.03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당시 벌써 검은 고양이의 번안물이 있었다니 놀랍군요.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코너도 잘 보았습니다.

  2. 빠오징(寶敬) 2014.04.05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지게 보고 갑니다.^^

  3. gg 2014.09.16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번안으로 보니 색다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