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0.07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 변장 (3)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숨기는 방법

                                  

"당신이 어떤 인물로  변장했을 때 당신 자신이 완전하게 그 인물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들통 날 걸세.” 

                                                                  
-<39계단>(1915), 존 버캔
   

                                                                      
어린 시절 뭔가 잘못했을 때, 아니면 누구를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을 때 손오공처럼 둔갑술을 가졌으면 했던 기억이 있는 분은 많을 것입니다. 추리소설 속의 탐정이나 악당들이 주문만 외워서 순식간에 변신할 수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현실성을 중시하는 추리소설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보통 사람에게는 초능력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변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쫓아가거나 쫓기는 경우,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싶은 경우 등 이유야 어쨌든 간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 변장입니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변장 장면은 비현실적입니다. TV 시리즈나 영화로 제작되었던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서는 등장인물이 인조 피부를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만, 영화와 현실이 똑같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다양한 인물은 물론 심지어는 무생물로까지 둔갑하는 코미디 영화 <마스터 오브 디스가이즈(Master of Disguise)>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말 그대로 코미디니까 그냥 봐 줄 수 있는 것이었지요. 

이것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페이스오프'에서


변장은 크게 영구적인 변장과 일시적인 변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변장은 바뀐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일시적인 변장은 필요할 때만 자신의 모습을 감출 뿐 평상시에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영구적인 변장 중 대표적인 것은 물리적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에서도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거의 완전할 정도로 다른 얼굴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수배중인 악당이 주로 이용하며, 증인이나 정치적 망명자 등도 신변보호를 위해 이용하곤 하지요. 가끔 성형수술로 특정한 사람과 똑같은 얼굴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렇게 되려면 원래부터 체격이나 용모가 가까운 편이어야 가능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 있었던 카게무샤(影武者)라던가, 이라크의 전 대통령 후세인은 집권 당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여럿 ‘만들어’ 암살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지요.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의 얼굴 피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상대방 행세를 하는 <페이스 오프(Face Off)>(1997)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사람의 외모는 피부보다 골격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처럼 다른 사람 얼굴의 피부를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얼굴과 절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신분을 위장하는 것만으로도 영구적 변장이 가능합니다. 땅이 넓고 신분등록제도가 약간 느슨한 편인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주민등록 제도가 철저한 편인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사회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이, 신용불량 때문에 재기불능이 되어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인생을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火車)>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 변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옷을 입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변장술로, 전쟁 때는 적군의 옷을 입고 기습공격을 하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전술적 위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신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등장하는 뒤팽은 편지를 훔친 장관을 찾아갔을 때 본명 대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름을 사칭하고 남의 집을 뒤지는 뒤팽 -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은 이런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요. 프랑스의 실존인물 비도크는 다양한 사람으로 변장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이면서 수사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으며, 그의 후배뻘인 명탐정 홈즈와 괴도 뤼팽 역시 놀라운 변장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홈즈는 노인에서부터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로 변장했고, 뤼팽은 귀족이나 건달은 물론 한술 더 떠 경찰 간부로 변장해 형사들을 지휘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 등장했던 일본의 전설적 범죄자 ‘괴인 20면상(怪人 20面相)’은 얼굴이 스무 개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뒤흔들어놓곤 했습니다.


실제 변장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작품이 있습니다.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재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에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암살을 의뢰받은 암살전문가 ‘재칼’은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체격을 가진 덴마크 목사, 미국 대학생의 여권을 훔치고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또 다른 여권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임무 수행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재칼은 대단히 세심하게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합니다. 암살용 무기와 가짜 신분증을 마련한 그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거쳐 이탈리아의 밀라노, 제노바 등을 거쳐 프랑스로 침투해 들어가는데, 프랑스 경찰은 암살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정작 암살자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난감한 처지에서 대책을 세워야만 합니다.

제이슨 본은 그의 본명이 아닙니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변장은 공권력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경찰을 비롯한 정부 조직은 범죄나 테러조직 침투나 함정 수사를 위해 위장을 하는데, 때로는 신분을 아예 바꿔버리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1980)에서는 거물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월남전 특수부대 출신 - 한때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뛰어난 변장술을 갖춘 - 요원을 제이슨 본(Jason Bourne)이라는 인물로 변신시킵니다. 그런데 그가 임무수행 와중에 사고로 기억을 상실하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지요(이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배경과 내용이 많이 바뀌긴 합니다).

엘러리 퀸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 표지

피해자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네요. 자신의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서 변장이라는 말이 어색합니다만, 살인자가 피해자의 신분을 숨겨 자신의 범행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이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어떤 작품인지 밝히는 순간 작품의 맛이 달아나 버리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엘러리 퀸의 <중국 오렌지의 수수께끼(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에서는 뉴욕 중심가의 한 호텔 대기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기묘하게도 피살자의 복장이 모두 뒤집혀 있습니다. 즉 상의는 등 쪽에서 단추가 채워져 있고 구두를 제외한 셔츠, 바지, 조끼, 그리고 속옷까지 그런 식으로 입혀져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가구나 시계, 카펫 등 방안의 가구라는 가구도 마찬가지로 반대편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이며 왜 모든 것이 뒤집혀 있는 것일까요.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도입부입니다  (:P)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추리닝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ignon 2010.10.07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엘러리 퀸의 소설, 제목부터 확 끄는데요?? 찾아봐야겠어요!!

    이 시리즈, 정말 재밌어요! ^^

  2. 2010.10.11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