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디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4.27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1> 시리즈 (3)
  2. 2011.03.02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3> 약점 (6)
  3. 2010.12.29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14> 겨울 (4)

 
그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잃어버린 세계>의 속편을 쓸 생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룡은 두 작품으로 충분해요."

 - 마이클 크라이튼, 1995년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맛이 좋은 음식은 아껴 먹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차분하게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게 되고, 또한 다 읽은 다음에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분이 부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요. 그런데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간단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고르면 됩니다. 

추리소설은 시리즈가 많습니다. 굳이 속편이라는 표현을 하지도 않을 정도로 장편이나 단편을 막론하고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뒤팽이나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등 추리소설의 초창기에도  그랬듯 인기를 얻은 수많은 탐정은 대부분 많건 적건 여러 작품에 등장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우선이다’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본다면 소설에서 후속편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거나 낯익건 작품의 재미만 있으면 그다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작품의 연속성은 작가와 독자에게 편리함과 친숙함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해 한번 인기를 얻으면 다음 작품에도 탄력을 받기 때문에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다만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서도 존 그리샴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리즈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가스실>과 <타임 투 킬>, <소환장>과 <불법의 제왕> 등에서 관련 사건이나 인물을 약간씩 언급할 뿐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 작품에 연결성을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속편을 쓴 것은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에 불과합니다(영화로는 후속편이 제작되었지만 그가 쓴 소설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요).

존 그리샴


그러나 많은 추리작가들이 하나의 주인공을 만든 후 계속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여성 작가 매저리 앨링엄은 독자 가운데 절반은 스토리 때문에, 나머지 절반은 주인공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매력 있는 주인공을 창조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오래 이어진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해갑니다. 조르주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 경감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 또한 전형적인 나이든 사람의 모습(?)인 고집스러운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미키 스필레인의 시리즈 주인공인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초기 대단히 거칠고 직선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다소 조심스러워졌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이크 해머 시리즈 'The Big Kill'


그런데 작품의 발표 순서가 주인공의 활약 순서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셜록 홈즈 시리즈로, 많은 연구자들이 작품 연대기를 만들 만큼 뒤죽박죽 섞여 있지요. 예를 들어 <마지막 문제>에서 폭포에 떨어져 죽은 것으로 알려진 홈즈는 <배스커빌 가문의 사냥개>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홈즈가 폭포에 떨어지기 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홈즈와 쌍벽을 이루는  뤼팽 시리즈 역시 작품 발표순서와 작품 속의 사건 발생 시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기를 얻으면 독자들은 후속편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전편을 원하기도 합니다. 테크노 스릴러 작가 톰 클랜시는 <붉은 10월>(1984)이 성공하자 후속작인 <패트리어트 게임>(1987)을 썼는데, 여기에는 전작에서 잭 라이언이 영국에서 벌인 무용담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수>에서 잭 라이언은 대학생으로 잠깐 등장하며 그의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티븐 킹은 딱 부러진 후속편을 쓰진 않았는데, 메인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가끔 과거의 이야기들과 현재의 이야기들이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주인공으로는 소설가가 종종 등장하는데, 심지어는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을 때도 있지요. <토미노커즈>(1987)의 한 대목인 ‘뱅고어에 사는 또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에서 ‘뱅고어의 어떤 작가’가 누구인지는 뭐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스티븐 킹의 '토미노커스'


인기 있는 시리즈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어집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언 플레밍의 전설적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일 것입니다. 1954년 <카지노 로열>로 세상에 등장한 제임스 본드는 작가인 플레밍이 1964년 세상을 떠나면서 끝나는 듯 싶었지만 플레밍 재단이 새 작가를 물색 끝에 선정한 존 가드너가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시리즈가 이어졌습니다. 가드너는 14편의 본드 시리즈와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 두 편을 쓴 후 70세가 되던 96년 새로운 작가 레이먼드 벤슨에게 본드를 넘겨줍니다. 본드에 대해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가졌다는 벤슨은 2002년까지 여섯 편을 썼고, 그 뒤를 이은 찰리 힉슨은 본드의 어린 시절을 그린 시리즈 여섯 편을 썼습니다(<실버핀>(2005)이라는 작품이 번역되어 있군요). 그리고 2008년 세바스천 포크스가 <Devil May Care>(2008) 한 편을 발표한 뒤 제프리 디버가 뒤를 이어 <Carte Blanche>를 오는 5월 말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프리 디버와 그의 첫 제임스 본드 시리즈 작품 'Carte Blanche'. 매우 기대됩니다^^

(본드의 팬이며 그에 대한 연구서 <James Bond Dossier>(1965)도 발표한 바 있는 킹즐리 에이미스가 1968년 로버트 마캄이라는 필명으로 007이 등장하는 <손 대령>을 내 놓았지만 재단의 인증이 없어 공식적인 시리즈 로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 명작의 속편을 현대에 새로 발표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원래 작품이 유명할수록 꽤 든든한 배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렛 미첼)의 속편 <스칼렛>(알렉산드라 리플리)이나 <레베카>(대프니 뒤 모리에)의 속편 <미세스 드윈터>(수잔 힐) 등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오페라의 유령> 속편이지요. <코마로프 파일>까지 주로 국제적 모략을 다룬 작품을 써 오다가 잠시 절필선언까지 했던 프레데릭 포사이스는 느닷없이 <오페라의 유령> 속편인 <맨하탄의 유령(번역작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 2-에릭의 부활)>을 발표합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을 떨어뜨릴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옛 친구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구성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습니다.

프레데릭 포사이스


우리나라의 특성상 아쉬운 점은 좀 다른 이외국 작품을 읽을 때 호응이 없어서 더 이상의 번역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많은 시리즈가 이런 상황입니다. 후속작에서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때도 있고, 갑자기 시리즈 중간의 작품부터 읽게 되어서 작품 속 인간관계 및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팔리지 않는 책을 출판사에게 내 달라고 하기도 어려우니,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ㅠㅠ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등 작품이 완역된 작가는 정말 복받은 것 같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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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현제 2011.04.28 1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에서 변한 탐정 하니까 시마다 소지의 미타라이가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점성술사에서 감자기 뇌의학자가 되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장면 이해가 안되네요. 물론 중간 사이에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요...

  2. 평시민 2011.04.28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즈물 이야기를 하자면 며칠은 걸려야 되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김내성 선생님의 유불란, 김성종 선생님의 오병호, 노원 선생님의 하영구 및 최선실, 이상우 선생님의 추병태 경감 등을 들 수 있지요, 최근 갈호태와 강지성 콤비, 문달과 설천 콤비, 백용준 형사 등 시리즈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들이 고정 팬을 확보하여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시리즈물을 빨리 선보이고 싶습니다.

  3. 쏘댕기자 2011.06.1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갈호태 아저씨를 어여 다시 보고파요! ㅎㅎ
    그건그렇고 '맨하탄의 유령' 소설 자체는 괜찮았던 건가요? 뮤지컬은 엄청난 혹평이었는데...


극복하면 더욱 가치 있는 것

나는 실수하거나 과신으로 속아넘어가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네.
-맥스 캐러도스
   - <디오니소스 은화>(1914) 어네스트 브래머

1842년 에드거 앨런 포우가 아마추어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한 후 속속 등장한 추리소설 속의 탐정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능력(추리력뿐만 아니라 체력이나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명탐정’이라는 호칭을 당당히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탐정이 장점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금방 질려 버릴 것 같습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인물은 친근감도 떨어지고 오히려 사건 해결에 왜 이리 시간이 걸리나 싶은 생각까지 들 듯 하네요. 나름대로 인간적인 면모들을 드러내 보여서 독자의 공감을 얻어야 주인공을 영웅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주인공들에게 뭔가 특징을 부여했는데, 그것은 독특한 외모나 취향일 수도 있었고 약간의 결점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결점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별난 성격이지요. 특출한 능력의 탐정이 가진 괴팍한 성격 - 이것은 일종의 공식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국 작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가 창조한 ‘평범한 주인공’ 조셉 프렌치 경감은 오히려 파격적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25년 <프렌치 경감 대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프렌치 경감은 온화한 성격과 성실함, 그리고 끈기라는 우수한 자질을 갖춘 유능한 경찰이지만, 허구의 인물치고는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 오히려 특징으로 보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심각한 육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도 등장했습니다. 1914년 영국 작가 어네스트 브래머의 단편에 처음 등장한 맥스 캐러도스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손끝으로 편지나 신문에 쓰인 글자를 읽어낼 정도의 예민한 감각을 가졌으며, 그의 하인 퍼킨슨은 놀라운 기억력으로 캐러도스의 눈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맥스 캐러도스

주인공들에게 별난 성격 수준을 넘어선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부여하면 손발이 묶인 듯한 제약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효용이 생깁니다. 우선 독자들은 주인공이 어떤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와 함께 동정심도 느끼기 시작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마주치면 주인공이 과연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며, 나아가서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움 섞인 격려를 보내게 됩니다.

신체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캐러도스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러리 퀸이 버너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비극’ 4부작에 등장하는 아마추어 탐정이자 은퇴한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 드루리 레인은 후천적인 청각장애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술을 보며 대화가 가능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사색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인물은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에 처음 등장하는 링컨 라임일 것입니다. 그는 현장조사 도중 사고를 당해 머리와 한쪽 손만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침대 탐정’이지만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요. 그는 뛰어난 판단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유능한 인물들을 지휘하여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링컨 라임(왼쪽, 덴젤 워싱턴이 연기)-영화 '본 콜렉터'에서


신체장애라는 극단적인 핸디캡은 때로 작위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 인물 묘사에 자주 쓰이는 방법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자꾸 사건이 이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위에 언급한 링컨 라임 같은 사람도 사실 경찰 소속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서 신체적 장애보다는 정신적인 약점을 가진 인물이 더 많은 편입니다.

예전부터 흔히 볼 수 있던 것은 알코올 중독, 바꿔 말하면 ‘주정뱅이’인데, 에반 헌터의 커트 캐넌이나 로렌스 블록의 매트 스커더가 대표적인 인물이죠. 이들은 원래 잘나가던 사람들이었으나 사립탐정이었던 캐넌은 아내의 배신으로, 형사였던 스커더는 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실수로 무고한 소녀를 사살한 후 충격을 받아 술을 탐닉하게 된 사람입니다. 꼭 알코올 중독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현대의 탐정 중에는 이른바 트라우마(trauma)라고 하는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토머스 해리스의 스릴러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을 괴롭히는 것은 야간 경비원으로 근무하다가 살해된 아버지, 호텔 청소부였던 어머니, 말 도살장에서 보냈던 유년기 등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이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헌데 이런 악당이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함부로 건드리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악당의 입장에서 볼 때)를 가져옵니다. A.J. 퀸넬의 화끈한 작품 <불타는 사나이>(<맨 온 파이어>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죠)의 주인공 크리시는 한때 최고의 용병이었지만 무의미한 삶에 지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보디가드를 맡으며 어느덧 인생의 밝은 면을 보게 되죠. 그런데 악당들이 소녀를 유괴하는 무모한 짓을 하고 말지요. 인간폭탄의 도화선을 점화한 겁니다.

'불타는 사나이' 크리시. 여기도 덴젤 워싱턴이 등장했네요.

최근에 접한 작품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폴 트렘블레이의 <리틀 슬립>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크 제네비치를 들 수 있겠는데, 이 사람은 어디 하나 번듯한 데가 없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얼굴도 항상 일그러져 있는데다가 기면증 - 운전할 때나, 의뢰인이 왔을 때나, 혹은 목숨이 걸린 위기에서도 갑자기 잠이 들어버리는 - 이라는 희귀한 병까지 지니고 있어서 이래서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정말 안타까울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을 용케 꾸역꾸역 넘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음 작품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됩니다.

미국 추리작가 존 D.맥도널드는 ‘최근의 추리소설들을 보면 탐정들이 온갖 특징과 소도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다운 마음은 없다.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도 않은 인물들을 만들어 내어 보통 사람들과 뚜렷한 차이만 만들면 성격 묘사가 확실하게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특징 있는 인물을 구상하는 것은 쉽지만, 그 인물을 어떻게 생생하게 살려 내느냐는 작가의 능력에 달렸지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특징만 기억나고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희미한 경우도 많은데, 과연 그것이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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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무언 2011.03.03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퍼센트의 용액같은 경우는 완벽해보이던 홈즈에게 그런 약점을 부여하는 시도라고 볼수있겠군요

  2. 카메라이언 2011.03.03 0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캐릭터가 생생하게 기억나면 어쩐지 좋던데요. ㅋㅋㅋ 그런데 홈즈의 지동설 천동설은 정말, 다시 읽어도 너무 웃기더라고요. ㅋㅋㅋㅋ 아우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BBC 보고 나서 전집 다시 읽다가 혼자서 막 웃었다는. ㅋㅋㅋㅋ 그나저나 신작 이야기 들을 때마다 다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어로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영어까지 공부하면 대체 글은 언제 (;;;;)

  3. 평시민 2011.03.03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반영웅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약점이 있는 캐릭터 쪽이 더 끌리더군요, 제가 만든 캐릭터 중 한 명은 약점이 너무 많아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4. 이야기꾼 2011.03.0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몽크>는 정말 쵝오!
    저 기묘한 캐릭터가 스토리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연구해보면
    추리소설, 특히 코지나 클래식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지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정말 독특(하다고 자부하는)한 몇 캐릭터를 구상중....
    어서 그들이 지면에서 활약을 좀 해야할텐데요....


흰 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이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패터 시의 사람들이
그해 겨울에 일어났던 일들을 잊어버리려면 꽤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호그 연속살인>(1979)  -  윌리엄 디앤드리어

 

추리소설의 계절은 흔히 여름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작품 외적인 입장, 즉 ‘여름의 무더위를 쫓기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시장 구조적인 시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에게는 오히려 겨울 쪽이 매력을 갖춘 계절처럼 보이긴 합니다. 고전적인 수수께끼 풀이 추리소설에서는 겨울이라는 계절만이 가진 요소, 특히 눈은 훌륭한 배경 및 소재가 되곤 하지요.

올해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고 방정을 떨었더니 웬걸, 한바탕 쏟아지고 또 내릴 분위기네요


눈에는 다양한 특성이 있습니다.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등 많은 이름이 있을 정도로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가지각색이고 땅에 떨어진 후에도 녹거나 얼어붙거나 아니면 얼지도 녹지도 않고 어중간할 때도 있기 때문에 변화무쌍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작가들은 눈을 트릭으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사건의 중요한 배경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배경’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표현인데, 눈이 내린다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햇볕이 화창하다’, ‘이슬비가 내린다’ 등의 날씨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웬만큼 내린 눈은 흔적을 남겨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나 교통수단의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는 위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람 키 정도로 눈이 쌓이게 되면 발자국 트릭 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태풍이나 홍수처럼 주변 사물을 어디론가 날려 보내지는 않는다는 것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엄청난 폭설이 등장하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네 번째 장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프랑스의 칼레까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특급열차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열차가 폭설 때문에 한밤중 유고슬라비아 국경 근처의 철길에서 꼼짝 못하게 되고, 그 무렵 만원이던 1등석 침대차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기차가 멈춘 곳은 외진 곳이라 누구도 열차로 몰래 들어오거나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침대차 안에 타고 있던 열 세 명의 승객 중 누군가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승객 모두에게는 각각의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질 것 같지만 하필이면 그 열 세 명 중에 푸아로라는 명탐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고로 사건은 뭐, 고비가 있지만 순조롭게 해결되지요. 이 작품에서는 폭설이 기차를 고립시키기 위한 배경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만, 독특한 범인의 설정은 이 작품을 영원한 걸작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승객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지는 명탐정 푸아로(중앙).


‘눈 속의 고립’이라는 상황은 범인이 당장 누구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어딘가로 도망치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탐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만약 악당 쪽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렇게 되면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공포소설이 되는 셈이지요. 스티븐 킹은 <샤이닝>(1977)과 <미저리>(1987)에서 그러한 무서움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이닝>은 한겨울동안 로키산맥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호텔을 관리하게 된 주인공 잭 토렌스가 이른바 오두막집 열병(Cabin Fever, 고립된 곳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신경증) 증세로 차츰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의 목숨마저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미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외딴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만(호텔에 존재하던 유령 탓이었지요), 어쨌든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며칠도 아닌 몇 달 동안 꼼짝 못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습니다. 한편 <미저리>에는 유령보다 더 무서운 집착을 가진 여인이 등장합니다. 눈길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소설가 폴 쉘던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미저리 체스테인’의 팬인 애니라는 여인에게 운 좋게(?) 구조되지만 그의 행운은 당분간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아니, 그것은 행운이 아니었지요.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설을 써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바깥은 눈이 와서 도망갈 수조차 없고 난감할 따름입니다.

눈 속의 산장이 보이는 '미저리' 오디오북 커버


눈이 많이 내리는 때를 살펴보니 그것은 12월과 1월로 이어지는, 즉 ‘연말연시’라고 불리는 시점입니다. 1년 365일 중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고 물리적으로도 그다지 특별한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점(해가 바뀐다는 것)을 맞이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의미를 두곤 합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화된 명절이 있고, 새해맞이 행사 역시 어느 나라에나 다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들뜬 사람들 사이에서 사고나 범죄는 발생하고, 때가 때인 만큼 당사자나 주변 사람은 평상시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을뿐더러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는 뭔가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밀실 상태의 방에서 피투성이 시체가 발견되는 살벌한 분위기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L.A.컨피덴셜>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경찰서 유치장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작됩니다. ‘피투성이 크리스마스’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과거의 정신적 상처와 야심을 숨긴 젊은 형사 세 사람의 운명을 크게 바꾸는 방아쇠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피투성이 크리스마스' 사건 - 영화 'L.A.컨피덴셜'에서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42번째 작품 <자장가(Lullaby)>에서는 10대 베이비시터 소녀가 새해 전날 살해됩니다. 살인을 주로 담당하는 형사들에게 사람의 죽음이란 그다지 드물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하필 이런 즐거운 때에 불행한 소식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전해 주는 일은 평상시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죽은 소녀의 부모에게는 이 날이 더 이상 새해의 전날이 아니라 딸의 기일(忌日)이라는 가슴 아픈 날로 돌변하는 것이니까요. 새해로 접어드는 새벽 3시 무렵 주인공인 카렐라 형사가 소녀의 집 현관을 노크한 후, 부모가 문을 열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하는 것으로 작가는 그 장면을 마무리 짓습니다. 독자들의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제프리 디버의 <악마의 눈물>에서도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무차별 총격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번이 아니라 그날 중 세 차례 더 학살극을 벌이겠다는 범인의 예고에 필적 전문가 파커 킨케이드를 비롯한 수사진이 막으러 나섭니다(시리즈 작품이 아니지만, 낯익은 인물이 깜짝 등장해서 즐거움을 주네요. 그 ‘낯익은 인물’은 연말인데도 아무 약속도 없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옛날 일을 한번 살펴볼까요? 코난 도일은 1887년 12월 <비튼>지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셜록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홍색 연구>를 발표했는데, 작품의 고료로 불과 25파운드밖에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도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실의가 컸습니다. 

셜록 홈즈가 이 잡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주홍색 연구>에 주목한 미국 잡지 <리핑코트>지가 도일에게 새 작품 원고를 청탁했고, 이때 쓴 두 번째 장편 <네 사람의 서명>은 1890년 1월호에 실리게 됩니다. 푸대접받던 도일의 작품들은 드디어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운명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도일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가장 잘 탄 작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다만 <주홍색 연구>나 <네 사람의 서명>은 잡지의 연말 특집에 실렸어도 내용은 전혀 크리스마스나 새해 분위기와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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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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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10.12.30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한 눈사람 사건>이랑 <고리키 공원> 읽어보고 싶네요.
    눈사람 속에 시신을 숨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은 있는데 생각해보니 작품으로 읽어본 적은 없군요.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김전일 만화에서 눈사람(아니면 그냥 눈?)속에 시신 숨긴 이야기가 있었는 거 같아요.)

    지난 글 덕분에 이번 겨울에 <심플 플랜>을 재밌게 읽었습니다.(우와우와~ 스콧 스미스!)

  2. 카메라이언 2011.01.03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그리고... ... 눈+살인... ... 눈의 살인...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인데요? 호호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