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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0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30> 맛있는 미스터리 (5)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 

소화할 수 있을지 식사 전에 숙고해야 한다
- 소프 헤이즐(채식주의자 탐정)
 - <Sir Gilbert Murrell's Picture>(1912), 빅터 화이트처치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마치 고전적 추리소설 속에 나올 법한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뒤팽이나 홈즈 같은 위대한 명탐정을 예상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탐정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람입니다. 바로 19세기의 미식가이자 유명한 법률가인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이 그의 저서 <미식예찬(Physiologie du goût)>에 남긴 말입니다. 사바랭이 음식으로 범죄를 해결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음식 취향만으로도 인간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담은 훗날 등장하게 될 사립탐정의 대담함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맨 윗줄의 '영리한 자만이…' 역시 그가 남긴 말입니다.

브리야 사바랭(오른쪽 위)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 추리소설과 요리의 관계는 끊을 수 없습니다. 음식에 독을 넣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기록이 남아 있으며, 심지어 어떤 작품에서는 음식 재료가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끔찍한 범죄 장면 이외에도 추리소설에서는 요리에 대한 장면이 많이 등장해 관심 있는 독자의 눈길을 끌곤 합니다.
사건을 조사할 때는 배가 부르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식사를 거를 정도였던 전설적인 명탐정 홈즈를 미식가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건 해결 후 여유가 생기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장면이 작품 속에서는 드물지 않아 훗날 셜록 홈즈 연구가들에 의해 <Dining with Sherlock Holmes>, <Sherlock Holmes Cookbook> 등의 요리 관련 서적이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홈즈가 차린 것은 음식이 아니로군요('해군 조약'- 시드니 파젯의 그림)


미식가 탐정의 선구자로는 밴 다인의 <벤슨 살인사건>, <그린 살인사건>등에서 활약하는 박식함의 대명사 파일로 밴스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벤슨 살인사건>에서 밴스는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지적 향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안내인의 한 사람이지. 야만인은 야만인처럼 요리해 먹는다네.…(중략) 요리 예술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문화적 영광도 최고가 되었지. 음식 예술이 저하하면 인간 문명도 쇠퇴한다네.”라는 말로 고급 요리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파일로 밴스 시리즈로 막대한 수입을 올린 밴 다인은 실생활에서 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과 식사를 즐기는 등 사치스럽게 살아 온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탓인지 작고한 후 남은 재산이 전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요리에 대해 전문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로는 네로 울프 시리즈를 쓴 렉스 스타우트를 들어야겠군요. 지금까지 등장한 탐정 중 최고의 미식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네로 울프는 탐정 업무의 조수 아치 굿윈뿐만 아니라 정원사, 요리사 등을 고용하고 있는데, 굿윈은 자신보다 요리사인 프리츠 브레너의 월급이 더 많다고 불평을 하고 있을 정도로 요리에 대한 집착은 대단합니다. 그런 울프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요리장이 너무 많다(Too Many Cooks)>(1938)입니다. 이 작품에서 울프는 ‘15인의 명(名) 요리장’ 행사에 참석해 ‘고급 요리에 미친 미국의 공헌’에 대해 연설하러 갔다가 살인 혐의를 쓴 요리장 벨린의 누명을 벗겨 줍니다. 그런데 무엇으로든 신세를 갚겠다는 벨린에게 울프가 요구한 것은 금전적인 보수가 아니라 벨린 특유의 소시지 요리법(소시스 미뉴이 Saucisse minuit)이었습니다. 하지만 꼼짝 않고 맛있는 음식만 찾는 결과인지, 울프의 체중은 무려 300파운드(약 130kg)에 달한다고 하네요.

로버트 파커가 창조한 탐정 스펜서 역시 요리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확실할 때는 무엇이든 요리해서 먹어라’는 신조 때문에 혼자서도 거창한 요리를 만드는 그는 권투와 조깅 등으로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중년의 나이에도 탄탄한 몸집을 유지한다는 것이 네로 울프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 술, 식당 등을 소개한 <스펜서의 요리>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스펜서의 요리'

많이 먹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무능하기로 악명 높은 도버 경감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조이스 포터가 창조한 이 먹성 좋은 인물은 어지간히 배가 불러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전히 손을 뻗치는 습성 때문인지 240파운드(약 108kg)라는 거구를 유지합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이를 능가하는 인물이 있는데, 중견 작가 야마무라 마사오(山村正夫)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키 렌타로(滝連太郞)라는 아마추어 탐정입니다. 학생 시절 럭비선수였던 그는 키가 2m에 달하는 장신으로 앉은자리에서 초밥 50개를 먹어치우는가 하면 한 끼 식사에 보통 사람의 3인분을 먹는 왕성한 식욕 때문에 ‘걸어 다니는 위장’이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대학 사학과의 조교로 재직 중인 그는 은사에게서 ‘연구자로는 장래성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추리력만큼은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많이 먹을수록 나른해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배가 불러야 머리회전이 더 좋아진다니 정말 별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워낙 요리 장면이 많다 보니 따로 책이 발간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네로 울프 못지않은 미식가였던 렉스 스타우트가 직접 집필한 <The Nero Wolf Cookbook>(1973)에는 아침과 점심식사, 더운 날과 추운 날의 저녁식사, 후식, 손님접대요리에 이르기까지 200여종 이상의 요리법이 나와 있습니다(물론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도 포함되어 있지요). 한편 미국 추리작가협회(MWA)는 작가들 특유의 요리법을 모아 <Plots and Pans>(1989)를 발간했습니다. 전채요리에서 후식까지 요리 풀코스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는데, 완벽한 조리법에서 아무렇게나 만드는 듯한 조리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혀 요리에 실력이 없는 독자라도 기자 플레치(Fletch) 시리즈의 작가 그레고리 맥도널드의 달걀 샌드위치 정도는 쉽사리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요리 방법이란 ‘빵 사이에 달걀 프라이를 넣는 것’인데, 작가는 절반 혹은 1/4로 자르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네요… 무척 심오해 보입니다. 어쨌든 이 책을 보면 의외로 많은 추리작가가 요리에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잘 살펴보면 스티븐 킹의 빵 만드는 법, 개빈 라이얼의 피자,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아보카도 샌드위치 등 요리와 작품 스타일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입니다. 후속작(?)인 <A Taste of Murder>, <A Second Helping of Murder>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추리작가들은 이렇게 요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여성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에도 요리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미국 여성추리작가협회(Sisters in Crime)는 <Desserticide>(1995)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Desserticide’라는 제목은 ‘후식(dessert)’과 ‘죽임(cide)’의 합성어인데, 제목뿐만 아니라 ‘독이 든 사과 케이크(Poisoned Apple Cake)’, ‘달콤한 복수 초콜렛 바(Sweet Revenge Chocolete Bars)', ‘연쇄살인범 과자(Serial Killer Cookie)', 티라미수(Tiramisu)를 변형한 ‘테러-미수(Terror-Misu)'등 살벌하고 기발한 이름이 붙은 요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주인공들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새러 패러츠키의 V.I.워쇼스키와 수 그래프튼의 킨지 밀혼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식사 습관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워쇼스키는 혼자서라도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정도지만, 킨지 밀혼은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며 평상시에는 패스트푸드를 즐기곤 하죠. 퍼트리샤 콘웰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검시관 케이 스카페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요리를 한다’고 할 정도로 요리에 관한한 선배들을 능가합니다. 또한 작품에 나온 요리를 바탕으로 <Food to Die for: Secrets from Kay Scarpetta's Kitchen>(2001)이라는 요리책이 나올 정도인데, ‘마이애미 스타일 칠리’(하트 잭), ‘초콜렛 피칸 파이’(시체농장) 등이 실려 있습니다.

'케이 스카페타의 부엌 비결'^^

덧붙여 <요리장이 너무 많다>에서 네로 울프가 그렇게 원했던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번역판에서는 모두 누락되어 있습니다-을 소개합니다.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실제로 만들어 볼 수는 없었는데(물론 핑계입니다^^),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군요. 만들어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소감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P)

소시스 미뉴이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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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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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4.21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절대미각 식탐정>이란 만화가 떠오르네요.
    정말 만화답게 엄청난 식탐을 자랑하던....얼마 전 완결이 되어서...아쉬워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에서 음식을 참 맛나게 표현하던데...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샌드위치와 맥주가 땡긴다는..

    소시스 미뉴이는..어떤 맛일까요...꾸..꿀꺽..

  2. 평시민 2011.04.21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식은 역시 추리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마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도 중간중간 요리나 가사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미국의 코지 미스터리를 보면 음식에 대한 묘사가 훌륭한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 요리를 다룬 추리소설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3. hansang 2011.04.22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장르문학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는데 아주 반갑네요. 제 졸문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좋은 글이기도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4. 갈매 2011.04.22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거슨.. 진정한 맞춤 포스팅!!!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저같은 초보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조만간 <too many cooks>는 꼭 읽어보겠어요.

    스카페타 시리즈는 저도 대학때 대여섯권 읽었는데..하도 오래되서, 이제 그녀가 요리를 즐겼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오리털 잠바였던가, 오리털 이불이었던가, 그 오리털의 출처를 찾아 범인을 잡던 에피소드만 살짝 기억이 나네요. ^^;;


    저기 나오는 책들-특히 요리책들 <plots and fans> 등이 지름신을 불러일으키는군요!
    언급된 소설도 다 읽어보고 싶고~~

    아.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먹어볼 요리도 많고!

    평시민님, 한국요리를 다룬 추리소설이라, 이거 재밌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5. 갈매 2011.04.22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위터 친구인 @searcherJ(Jung-youn, Yim)님이 링크를 소개하자 제게 궁금하다며 보내오신 멘션인데..
    해결 좀 해주세요~~ ^^

    "우와~ 이거 너무 재밌어요! 예전 탐정영화중에 유명 요리평론가들이 요리방법으로 연쇄살인 당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혹시 아시나요?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