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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31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45> 동제이작(同題異作) (1)

자칫하면 헛갈리는 수가 있습니다

"범죄자 하나보다 더 불필요한 것은 가짜 증인이다."
- 맥윌리엄 씨
<That Yew Tree's Shade>(1954) - 시릴 헤어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의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는 사자성어는 자주 보셨을 겁니다. 이렇게 단어가 존재하는 만큼 드문 경우는 아니고 직접 현실에서 가끔 마주치기도 하죠. 옛날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본 적도 있었는데, 요즘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세상에, 같은 이름이 이렇게 많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은이름은 필요하지만 새로운이름을 짓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회사나 상표 같은 것은 이름을 등록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이름에는 특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제목도 마찬가지라서 독점권이 없으니 먼저 나오는 쪽이 임자라기보다는 유명한 쪽이 임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소설을 비롯한 영화나 노래에서는 동제이작(사전에 이런 단어는 없습니다만)이 나오기도 하죠.
하긴 추리소설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작품 수가 수십만 권을 넘어가는 상황이니 같은 제목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들어볼까요. 지난 가을쯤 서점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 <최후의 증인>이 있어서 , 김성종 선생님의 작품이 또 재출간되었구나하고 슬쩍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 그것은 일본의 신진 작가 유즈키 유코의 작품이었습니다. 설마 하고 살펴보니 원제도 똑같은(물론 일본어지만) <最後証人>이었지요. 줄거리만 살펴보건대 내용은 전혀 비슷한 곳이 없어 보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작품은 일본에도 번역되었는데, 유즈키 유코의 작품 출간보다 1년 빠른 2009년이었습니다.


워낙 제목이 간결하고 강렬하니 저라도 써 보고 싶은 제목이기도 합니다. 일본 아마존을 검색해보니 같은 제목의 작품은 아직 없더군요. 그러니 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최후의 증인' 발간기념 사인회 광고


문득 궁금해서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검색해보니 <Last Witness>(혹은 <The Last Witness>)라는 제목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미스터리쪽으로만 좁혀보아도 조엘 골드먼, 질리앤 호프먼, K. T. 로버츠, 존 매튜스, 리처드 몽고메리, K. J. 에릭슨, 조셉 배론, 레이프 실베르스키 & 올로프 스베델리드등의 여러 작가가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추리소설 서지목록인 앨런 J. 휴빈의 <Crime Fiction II>에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두 편이 있으니,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엄청나게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증인이 너무 많다

지난 2006년부터 올해까지 번역된 작품의 목록을 뒤져보니 동제이작이 몇 편 나오는군요. <고백>(존 그리샴/The Confession, 미나토 카나에/告白), <소문>(고이케 마리코/うわさ, 오기와라 히로시/), <실종자>(오리하라 이치/失踪者, 도바 순이치/蝕罪), <약탈자>(퍼트리샤 콘웰/Predator, 막심 샤탕/Predateurs), <헤드헌터>(미셸 크리스피/Chasseur de Te'tes, 요 네스뵈/Hodejegerne)등인데, 원래 제목도 거의 같습니다. 사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일반명사이니 남의 제목이 멋있어서 베꼈다고 하기는 어렵지요.

비슷한 제목도 있습니다. <잘린 머리 사이클>(니시오 이신),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노리츠키 린타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미쓰다 신조) 잘린 머리트리오가 있고,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피에르 바야르),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디디에 드쿠엥), <누가 조지를 죽였는가>(레오니 슈반), <누가 하비 버델 선생을 죽였나>(엘렌 호란),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이스마일 카다레)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형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제목은 그렇다 치지만, 가끔 복잡한 제목이 겹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콜린 덱스터의 <옥스포드 운하 살인사건>의 원제는 <The Wench is Dead(‘여자(혹은 계집아이, 하녀)는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휴빈의 저서를 살펴보면 같은 제목이 덱스터의 작품 이외에도 두 편 더 있습니다(프레드릭 브라운과 루스 페니송이라는 작가가 썼네요). 이런 독특한 제목이 우연일까요? 역시 검색을 해 보면 16세기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The Jew of Malta>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생소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유명한 작가인 만큼, 그의 작품을 인용했을 가능성이 무척 커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콜린 덱스터의 책이 번역되어 있지만, 원제로 기억하는 분은 별로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콜린 덱스터


두툼한 <Crime Fiction II>를 뒤적이면서 비슷한 제목을 대강 살펴보니, ‘The Man with로 시작되는 제목은 1백 편을 넘깁니다. 조금 더 뒤져보니 ‘Murder at으로 시작되는 제목은 3백 편이 넘고, ‘Murder in으로 시작되는 제목은 5백편, ‘The Case of로 시작되는 제목은 무려 8백 편이 넘습니다(사실은 세어보다가 지쳐서 대충 계산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Murder’로 시작되는 제목은 셀 수도 없겠군요. 우리나라에 나온 작품도 정확한 집계는 어렵습니다만, '… 살인사건'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제목이 어째 비슷하다 생각하셨더라도 비슷한 제목이 이렇게 많을 줄 아신 분은 별로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추리소설가가 창의적으로 누굴 죽이고 또는 속이고(물론 작품 속에서) 하는데 애를 씁니다만 제목은 오히려 단순할 경우가 많지요. 외국 작품의 제목까지 챙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외국의 사실 복잡한 제목은 독자도 기억하기 힘드니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국(특히 영어권) 작품 중 똑같은 제목을 보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똑같은 제목이라도 상관없다는 배짱인지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연예인들은 유명한 선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많은데, 작가는 자신의 자식같은 작품 이름을 쉽사리 바꿀 수는 없나봅니다. 하여튼 좋은 제목은 이제 웬만큼 다 나왔으니, 혹시 비슷한 제목이 나오더라도 너그럽게 넘어가주어야 할 듯합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포스팅을 못했는데, 2011년 마지막날 턱걸이 하는군요.
새해 소원성취하시길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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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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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2.01.02 2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동제이작 하니 생각나는데 얼마 전 나온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신작 제목이 <주홍색 연구>더군요. 고전에 대한 오마주로 일부러 같은 제목을 붙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