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로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30 테마로 보는 미스터리 <36> 그들의 예전 직업 (1)
  2. 2011.04.06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28> 밀실 (2)


하나를 잘 하면 다른 것도?

자, 이제부터 원고지를 꺼내 추리소설을 쓰기로 하자.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러 번 충고한 대로 한낱 부업으로서 말이다.
- <부업으로서의 추리소설>(1989) / 노 원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창조한 최초의 탐정 뒤팽은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자제’라고 완곡하게 돌려 설명하고 있지만 지금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고학력 실업자’이겠지요. 이후 등장한 주인공들 중에는 탐정, 경찰 등 범죄를 다루는 것이 직업인 인물들도 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처럼 살던 마을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할머니라던가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같은 성직자 등 다양한 직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낸 작가들은 원래 무슨 직업을 가졌을까요?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작가를 지망한 문학 지망생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소름끼치는 작품 <사이코>를 쓴 로버트 블록은 그런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고전적 공포물 작가 H.P.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17살 때 펄프 잡지에 첫 작품이 실리며 일찌감치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성년이 된 후에는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채 작품을 써 오다가 <사이코>의 성공에 힘입어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블록(1917-1994)

이렇게 블록처럼 차근차근 작가의 입지를 다져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반드시 이렇게 순탄한 길을 밟아온 작가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반드시 고생한 것은 아닐지라도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못지않게 원래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우선 범죄와 늘 마주치는 법조계 인사가 추리문학계로 여럿 투신했습니다. 이들 법조계 인사들 중에는 변호사가 가장 많은데, 최고참을 꼽으면 <월장석>(1868)의 작가인 영국의 윌키 콜린즈이며, 그 뒤를 ‘엉클 애브너’ 시리즈의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가 이어갑니다. 변호사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작가 얼 스탠리 가드너는 그가 소설 대신 변호사 업무에 전념했다면 미국 역사에 남을 뛰어난 변호사가 되었으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유능했으며 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하나인 존 그리셤 역시 변호사 출신입니다. 또한 하버드 출신의 스콧 터로우나 한때 지방검사국에 근무했던 리처드 노스 패터슨 등은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작가들입니다.

윌키 콜린스 (1824-1889)

한편 직접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나 탐정 출신 작가도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작가 대쉴 해미트는 유명한 핑커튼 탐정사에 14년 동안 근무했으며, 해미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해미트>의 작가 조 고어즈도 3년간 로스앤젤레스의 탐정 사무소에서 재직했습니다. 경찰 출신 작가로는 영국의 존 웨인라이트와 미국의 조셉 웜보가 대표적인데(웨인라이트는 22년, 웜보는 14년 근무), 이들은 천재나 영웅 대신 인간적인 경찰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형사 크리스티 오패러를 창조한 여성 작가 도로시 유낙도 경찰 근무 경력이 10년 이상이라고 하네요.

경찰 출신 작가 조셉 웜보(1937-)

제임스 본드, 007라는 불멸의 스파이를 창조한 이언 플레밍은 2차대전 중 해군 정보부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첩보임무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플레밍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007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는데, 60년대에 3백만 달러 이상의 거액을 벌어 들였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전설적인 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이 의사였다는 것은 웬만한 추리소설 팬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도일 이후의 의사 출신 작가로는 영국의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이 있습니다. 의사이자 박물학자이며 토지 측량원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그는 건강이 나빠져 의사 생활을 그만둔 후 홈즈의 인기에 영향을 받아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으로 검시관인 손다이크 박사를 내세운 그는 <노래하는 백골>에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처음부터 보여준 후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범인이 어떻게 잡히는가”에 중점을 두어 도치서술형 추리소설(일반적으로 도서 미스터리라고 불리죠)을 창안했으며, 또한 과학수사를 강조했습니다. 의사 출신 작가로는 하버드 의대 출신의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 마이클 파머, 일본의 가이도 다케루 등이 있는데, 그들은 의학적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추리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이도 다케루 (1961-)

여성 검시관이라는 흔치 않은 직업의 케이 스카페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퍼트리샤 콘웰의 약력을 보면 작가가 되기 전 검시실에서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검시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고 사무직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녀가 실제로 메스를 잡진 않았을지라도 검시실의 분위기를 충분히 묘사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파악하고 있음엔 틀림없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엄청난 양의 영화를 본 다음 영화감독의 싹을 키웠던 것으로 유명한데,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는 백과사전 세일즈맨, 서점 직원으로 일하다가 하드보일드에 흥미를 느껴 많은 양의 펄프 잡지들을 탐독한 후 6주 만에 탈고한 <미스 블랜디쉬의 난>으로 순식간에 성공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폭력 묘사로 논란도 일었지만 삽시간에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체이스를 서점 직원에서 작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여배우 밀레느 드몽조를 앞에 두고 집필중(?)인 체이스. 글이 써질까요?

트릭이 추리소설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면 트릭을 생명으로 삼는 마술사라면 추리소설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요? 1938년 <Death from a Top Hat>으로 데뷔한 클레이튼 로슨은 마술사인 그레이트 멀리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는데, 작가 자신도 그레이트 멀리니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 마술사였으며 마술에 관한 책을 집필할 정도로 조예가 깊었습니다. 일본에도 마술사 출신 작가가 있습니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작가인 아와사카 츠마오(泡坂妻夫)는 일본 마술계의 큰 상인 이시다 덴가이(石田天海)상을 받았으며, 문장(紋章)화가로도 활동하고 있어 어떤 것이 본업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군요.
직업이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범죄자 출신 작가도 있습니다. 이들은 예전에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일화 한 토막을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Jackrabbit Parole>(1986)을 복역 중에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캐나다 출신의 스티븐 리드가 1999년 6월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은행 강도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16살 때부터 1백 40여 차례 이상의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며 1천5백만 달러를 훔친 리드는 항상 스톱워치를 들고 1분 30초 내에 달아났기 때문에 ‘스톱워치 갱’이라는 별명이 붙은 강도단의 두목이었습니다. 1980년 30세로 체포된 리드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87년 출감 후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하고 영화나 TV에도 출연하며 다채로운 활동을 벌여왔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다시 범행을 저지르다가 잡힌 것입니다.

2008년의 스티븐 리드

과거의 솜씨나 경력은 화려했을지 몰라도 약 20년 만에 다시 은행을 털기에는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복역한지 18년 만인 2008년에 석방되었다고 합니다만… 역시 경험을 살려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P)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추리닝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평시민 2011.07.02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들의 전직이 그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마련입니다. 체스터 하임즈 역시 전과자 작가로서 뉴욕 뒷골목이나 할렘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로 유명하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마벨의 사랑>도 보고 싶습니다.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곳

진실은 바보같다
-기디언 펠 박사
 - <The Crooked Hinge>(1938), 존 딕슨 카

 

추리소설에서 다루는 지능적 범죄에는 철벽같은 알리바이, 시체(및 범행) 숨기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밀실입니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밀실도 쉽게 만들 수 없습니다


밀실이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누구도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는 방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방이 트여 있더라도 출입구가 잠겨 있는 고층건물의 옥상, 커다란 창문이 있지만 보통 사다리 정도로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탑의 방, 누가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는 해변 모래사장,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잠수함이나 우주선 같이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장소도 밀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궁극적으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드나들 수 없는 장소라면 모두 밀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작가들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는 3차원적 세계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마치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독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그래서 밀실 범죄는 흔히 ‘불가능 범죄’라고도 합니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게 되는 법이지요. 기원전에 기록된 성서 외경의 <벨과 뱀>에서 밀실을 다루었을 정도로 역사는 무척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 작가 존 딕슨 카는 <세 개의 관>(1935)에서 주인공인 펠 박사의 입을 빌려 밀실 트릭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한편 마술사 출신 작가인 클레이튼 로슨의 <Death From a Top Hat>(1938)에서는 마술사 겸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가 펠 박사의 밀실 강의를 이용해 약간의 내용을 더 추가하고 세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는 <탐정소설의 수수께끼(探偵小說の「謎」)>에서 밀실 트릭에 대해 정리했지요.

존 딕슨 카의 '세 개의 관'


다음 밀실 트릭들은 위 세 사람의 이론을 토대로 해서 요약한 밀실 트릭들입니다. 훗날 작품을 읽을 분들을 위해서 기본적인 해설만 했으며, 작가나 작품 제목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밀실 트릭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진짜 밀실이며 사람이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2. 밀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한 밀실이 아닌 경우

이들 커다란 두 분류를 기본으로 하여 세부적인 분류가 가능합니다.

더보기

 
덧붙이자면 밀실과 연관된 분야가 있는데, 바로 밀실을 빠져나오는 기술입니다. 이것은 밀실 트릭을 역으로 이용한다고도 할 수 있으며, 주로 교도소에서의 탈옥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목 등에서 결론이 이미 예고된 작품이라 대표적인 작품의 제목을 소개해도 지장이 없을 것 같네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는 작품으로는 자크 푸트렐의 단편 <13호 독방의 문제>, 모리스 르블랑의 단편 <뤼팽의 탈옥>등이 있습니다. 또한 정통적인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스티븐 킹의 <쇼생크 탈출>도 탈옥 기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891년 선을 보인 이즈라엘 쟁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는 밀실을 다룬 최초의 장편 분량 소설로서 영국의 신문에 연재되며 호평을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가스통 르루가 본격적인 밀실을 다룬 작품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을 써서 현재까지도 밀실 작품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편 코난 도일도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단편 <얼룩 끈>(1892)에서 밀실 사건에 도전합니다.

이즈라엘 쟁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


존 딕슨 카는 ‘밀실의 거장(The Master of the Locked Room)’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가지고 있지요. <유다의 창>(1938), <세 개의 관>, <비틀어진 경첩>등은 밀실을 다룬 그의 걸작입니다. 카의 전기 <존 딕슨 카: 기적을 해명한 사나이(John Dickson Carr: The Man Who Explained Miracles)>(1994)를 집필한 더글러스 G. 그린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밀실을 다룬 걸작들의 목록은 언제나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교한 해결 방법을 고안해 낸 존 딕슨 카의 작품들로, 그 자신만의 작품 영역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작가들에 의한 밀실 작품들이다.”

존 딕슨 카의 전기 '기적을 해명한 사나이' 표지

밀실 트릭의 대부분은 현대적 상식으로 바라볼 때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흔히 볼 수 없는 특수한 장치를 쓰거나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기법 같은 아이디어만으로는 독자에게 호응을 얻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지요. 하워드 헤이크래프트는 <오락을 위한 살인>에서 추리작가가 되려면 피해야 하는 항목을 열거한 바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밀실이었습니다: “밀실은 피하라. 오늘날 그것에 신기함과 흥미를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천재 밖에 없다.”

허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H.R.F.키팅은 ‘밀실 트릭은 추리소설을 쓰려고 생각했던 일이 있는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궁극적인 유혹’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고전적인 작품들은 트릭의 효용성을 떠나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실력 있는 작가들은 간결한 트릭만으로도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있습니다. 밀실 트릭은 모든 트릭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궁극적이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요즘도 밀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자주 나오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46번째 밀실>이나 이시모치 아사미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 여러 작품이 번역되어 있으니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밀실을 끝없이 추구하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키팅은 밀실에 대한 매력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불가능 범죄는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 내는 것도 즐겁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추리닝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평시민 2011.04.07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제대로 된 밀실물을 써 보고 싶습니다만 밀실도 당위성이 있어야 만드는 법이니 스토리상 제대로 연결되도록 해야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살인사건>을 보면 범인이 밀실을 만든 이유가 아주 기가 막히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좋겟습니다.

  2. 카메라이언 2011.04.08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헷 전 지금 연재 중인 붉은깃발의섬~을 밀실로 범벅해 놓았다는. 밀실 넘넘 사랑해요. 딕슨 카의 밀실은 구부러진 경첩에서 졌다고 느꼈었다는. 정말 화딱지 났었어요. 못 맞춰서. 으흑흑. 나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