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수상작가인 소설가 존 밴빌(John Banville)이 새로운 필립 말로 시리즈 작품을 2013년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헨리 홀트 출판사가 밝혔습니다. 새삼스래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필립 말로라 하면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명사적인 주인공이지요. 

 

존 밴빌


 

저작권자와의 합의는 이미 마쳤으며, 작품 배경은 1940년대의 베이 시티 -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를 모델로 한 가상 도시 - 이고, 밴빌은 이 작품에 말로의 친구인 버니 올즈도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945년 아일랜드 웩스포드에서 태어난 밴빌은 벤자민 블랙(Benjamin Black)이라는 필명으로 쿼크(Quirke)라는 이름의 병리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소설 시리즈를 발표해 왔으며 최근 다섯 번째 작품인 <Vengeance>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10대 시절 챈들러의 작품을 처음 읽은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읽었다면서, 챈들러의 주인공을 다시 살려내는 작업을 맡게 된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여긴다고 합니다.

 

챈들러가 발표한 필립 말로 시리즈는 다음과 같습니다:  <빅 슬립> (1939), <안녕, 내 사랑> (1940), <하이 윈도> (1942), <호수의 여인> (1943), <리틀 시스터> (1949), <기나긴 이별> (1953), <Playback> (1958).

이 시리즈는 거의 다 볼 수 있지만 마지막 작품인 <Playback>은 아쉽게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B.파커는 챈들러가 1959년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유작 <Poodle Springs>(1989)을 완성했고, 몇 년 후에는 <빅 슬립>의 속편 격인 <Perchance to Dream>(1991)도 쓴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밴빌은 필립 말로 시리즈를 정식으로 쓰는 세 번째 작가가 되는 셈입니다(참, 필명인 벤자민 블랙 명의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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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2.08.18 0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소한 작가군요, 하지만 레이몬드 챈들러 시리즈에 도전하다니 기대됩니다.


애주가, 주정뱅이, 알코올 중독자

세상에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남자가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
다른 하나는 여자가 마지막 한 잔을 마셨을 때이다.
     - <The Octopus Marooned> (1908) O.헨리
 
술.
술자리는 친구, 동료, 혹은 명절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자리일 수도 있겠지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가 괴롭기만 하죠. 또 음주가 지나치면 좋지 못한 일(따로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괴로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술은 매우 쓸모 있는 소도구로, 웬만한 작가라면 음주 취향만으로 등장인물의 사회적 지위와 배경을 쉽게(혹은 상투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와인을 즐기는 도시적인 인물, 생맥주를 들이키는 직장인,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묘령의 여인,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배 나온 중년 남자, 소주나 막걸리를 안주도 없이 들이키는 거친 사나이… 이런 전형적인 인물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커다란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리작가와 술의 관계도 밀접합니다. 현대 추리소설의 창시자 에드거 앨런 포는 음주벽으로 유명했고, 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네가 범인이다>, <아몬틸라도 술통>등의 작품도 있지만 그가 불과 40세라는 짧은 나이에 요절한 것은 폭음으로 인해 일찌감치 건강을 해쳤던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


그러나 포 이후 한동안 탐정은 술을 멀리한 것 같습니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연신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아편이나 코카인 등의 마약까지 상용했는데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귀족적인’ 영국 탐정은 식탁에서 예의 바르게 가벼운 술 한 잔을 즐기는데 그쳤지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주인공 엘큐울 푸아로는 박하주, 석류주 등 독하지 않을 듯한 술을 즐겼으며 배러니스 오르치가 만들어 낸 괴상한 주인공 ‘구석의 노인’은 쉴 새 없이 손을 만지작거리고 매듭을 만들며 마치 알코올중독자 같은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마시는 것은 놀랍게도 우유일 뿐이었습니다.

이언 플레밍이 만들어 낸 영국의 전설적인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도 고급 술을 즐기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습니다. 술에 대해 박식한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의 미각 묘사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보여주고 있지요. 영화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는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련 스파이가 생선 요리와 함께 레드와인(붉은 포도주)을 주문한 것. 공산주의자인 소련 스파이는 -빨갱이라서- 포도주도 붉은 것을 마신다는 유머와 함께, 본드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는 계기가 됩니다. 원래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와인(흰 포도주)을 함께 마시기 때문에 수상쩍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용의주도하게 와인 맛을 보는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연기).


술을 많이 마시는 탐정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귀족 같은 생활을 하던 유럽의 천재 탐정 대신 뒷골목에서 악당들과 맞붙는 현실적이며 훨씬 더 인간적인 탐정이 하드보일드 작품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드보일드의 선구자 대쉴 해밋이 만들어낸 탐정 샘 스페이드는 술을 즐기는 편인데, 사건을 의뢰 받았을 때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마십니다. 대신 강인한 외모나 성격처럼 알코올에도 강해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실망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해미트의 뒤를 이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탄생시킨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인데, 사무실의 책상 서랍(작품에서는 ‘깊숙한 서랍’이라고 나옵니다)에는 언제나 위스키 병과 술잔이 들어 있어 자신이 마시거나 손님에게 대접하곤 합니다.

술집에서의 필립 말로우(로버트 미첨이 연기). 영화 '빅 슬립'에서


지나간 일이니 결과론이 되겠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는 만약 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위대한 추리소설가 대신 유능한 사업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시절 변호사를 지망했던 챈들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문학세계로 발을 디뎠으나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못했고, 군복무 후 은행을 거쳐 석유회사의 중역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 이미 알코올중독 기미를 보여서 직장을 잃은 챈들러는 44세라는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빅 슬립>(1939), <안녕, 내 사랑>(1940),<기나긴 이별>(1954)등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 역시 포우에 못지않게 서글펐는데, 1954년 연상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진정되어가던 모습을 보이던 알코올중독이 다시 도진 것입니다. 결국 건강을 해친 그는 집필 중이던 장편 <푸들 스프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1959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미국 탐정이 위스키 같은 독한 술만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렉스 스타우트의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는 ‘맥주와 난(蘭)’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울프는 입맛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맥주도 가려서 먹는데, 문제는 마음에 드는 맥주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신다는 것이죠. 저녁식사 때는 언제나 맥주를 마시는데 어쩌다가 마음만 내키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계속 마시기 때문에, 조수인 아치 굿윈을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맥주 맛을 보는 네로 울프(에드워드 아놀드가 연기).


와인을 마시는 사람으로는… 역시 프랑스가 자랑하는 메그레 경감을 들 수 있겠군요. <Maigret a Vichy>(1968)에서는 휴가차 비시로 간 메그레 경감이 젊은 의사와 술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루에 와인을 1리터 정도를 마신다고 하니 거의 음료수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 집에서는 와인, 나가면 맥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애주가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술꾼이 되고, 그걸 더 넘어서면 알코올중독자가 되죠. 그런데 그런 탐정도 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조나단 라티머가 창조한 사립탐정 빌 크레인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이 들기까지 한다는 것이죠. 재치있고 머리도 좋아 어떤 궁지에서든 잘 빠져나오긴 하지만, 술만 아니면 궁지에 빠질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탐정 빌 크레인은 이렇게 생겼습니다-영화 '시체실의 여인' 포스터


<스위트홈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여류 작가 크레이그 라이스도 술꾼 주인공을 만들어 냈습니다. 뒤죽박죽 희극식 작품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변호사 존 J.말론은 과거 하드보일드 탐정들을 풍자한 듯이 보이는데, 그는 캐비넷 서랍 안에 ‘기밀(Confidential)’과 ‘비상 (Emergency)’이라고 붙여 놓은 술병을 숨겨 놓고 있으며, 아름다운 여자와 노닥거리는 것을 즐깁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보다 술이 덜 깼을 때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니 아무래도 별난 인물입니다.

J.J. 말론은 이렇게 생겼을까요 (물론 뒤에 있는 남자)


한편 웨이드 밀러가 <Guilty Bystander>(1947) 등에 등장시킨 맥스 서즈데이는 아내와 헤어지고 나서 주정뱅이가 된 탐정입니다. 에드 맥베인이 커트 캐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일련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탐정 커트 캐넌(작가와 이름이 같습니다)도 이와 비슷한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뉴욕의 잘 나가는 사립탐정이었던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자 친구를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팬 끝에 탐정 허가증을 빼앗기고 아내도 잃고 말지요.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된 그는 뉴욕 뒷골목에 살게 되었지만 무허가 탐정으로 서민층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커트 캐넌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미국 추리작가협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역시 비슷한 경력을 가졌습니다. 뉴욕 시경 소속의 유능한 형사였던 스커더는 수사 중 쏜 총탄이 무고한 소녀의 생명을 빼앗자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경찰을 사직합니다. 그 후 아내와도 이혼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 그는 싸구려 호텔에 살면서 무허가 사립탐정 일을 하며 살아가다가 알코올중독자 치료모임에 들어가 금주(禁酒)를 시작하며 음지에서 양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8백만 가지 죽는 방법'에서 매트 스커더(왼쪽,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했습니다)


그나저나 술 하면 문득 떠오르는 작가는 나카지마 라모입니다. <가다라의 돼지>에서 어린 딸을 잃고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민족학자 오우베 교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늘 밤 모든 바에서>에서는 알코올성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알코올 중독자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한 것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술을 마신 탓에 그 역시 삼십 대 중반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지요.

공연중인 나카지마 라모


주정꾼 탐정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빈틈 하나 없는 사람보다 약한 면을 보이는 등장인물에게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좀 다르겠습니다만. (:P)

P.S.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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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2.03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에드 맥베인의 커트 케넌에 한 표!
    어린 시절 그 작품을 읽고 경도되었던 경험이....

    허나....술 먹고 댓글쓰는 건 참 ㅊ하들거미...ㅋㅎ샤댜ㅣㄹ ㅑ디

  2. 평시민 2011.02.03 0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선요리에 붉은 포도주 썼다고 빨갱이라니..., 조금 억지가 심한 건지 이안 플레밍이 의외로 매카시스트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드 하니 생각납니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보면 두 명의 킬러가 웨이터로 위장하고 본드에게 다가오는데 본드가 "이 요리에는 보르도산 포도주가 잘 어울리는데 오늘은 무통이군." 두 웨이터는 다 떨어졌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무통이 보르도산인데 말이죠. 본드는 이들이 웨이터 치고 향수 냄새가 짙다는 점(그것도 익숙한)을 보고 의심하고 있었지만요.

  3. 카메라이언 2011.02.14 0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카지마 라모 아저씨가 저렇게 생기셨었구나... 'ㅂ'... 수많은 직업들 중 뮤지션이기도 하셨다는 말에 궁금했었는데 (;;;) 아우 정말, 오늘 밤 모든 바에서 보면서 정말 술은 사회 악이구나 싶더라고요.

    크레이그 라이스의 책은 최근에 동서미스터리서 나온 스위트홈 살인사건을 봤는데, 안 그래도 작품 말미에 붙은 해설에서 나온 다른 소설들 읽고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번역이 상당히 어색한데도, 그 코믹코드가 넘넘넘 좋더라고요.

    명절은 한참 지났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__) (--) <--세뱃돈을 받고 싶은 수작. ㅋㅋㅋ

  4. 2011.03.06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결혼해도 아쉽고, 안해도 아쉽고

모든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성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
모든 남성들은 결혼하면 아내가 변함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결혼의 비극이다.
- 버니 샘슨
<London Match>(1985)  -  렌 데이튼

 

자, 우선 직설적인 질문부터 하나. 탐정은 이상적인 배우자감일까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이라 결혼상대자로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걸작 미스터리 속에 등장했던 탐정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등장인물의 가족상황을 살펴보면  1) 미혼, 2) 기혼, 3) 독신에서 결혼, 4) 기혼에서 독신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꽤 많은 수의 탐정이 미혼으로 지냈습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에드거 앨런 포우가 만들어낸 탐정 뒤팽은 몰락한 귀족 가문 청년으로 두뇌회전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친구와 함께 하숙집에서 삽니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명탐정 셜록 홈즈 역시 절친한 친구인 의사 왓슨과 베이커 거리의 하숙집에서 생활합니다. 친구 왓슨은 홈즈를 만난 이후 결혼을 세 번이나 했던 반면 홈즈는 도무지 여성에 관심이 없습니다. 결국 이 탓에 나중 ‘홈즈는 동성연애자였다’거나 ‘왓슨이 여자였다’라는 구구한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지요(음,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다루겠습니다).

셜록 홈즈의 번잡한 하숙방


렉스 스타우트가 창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역시 조수 아치 굿윈을 비롯해 여러 사람과 함께 살지만 배우자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인 샘 스페이드나 루 아처도 독신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명한 탐정 엘큐울 푸아로나 미스 마플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보면요. 이들이 홀로 산 것에는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 운이 도무지 없다는 점에서는 괴도 뤼팽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군요. 임꺽정처럼 험한 산 속에 집이라도 있는 산적이라면 아내도 맞이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겠지만(자녀교육에는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뤼팽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거부정의 거물급 범죄자’라 안정된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나름대로 여자관계는 또 복잡한 터라 연애감정을 가졌던 여성이 적진 않았지만, 이리 저리 꼬여서 결국 혼자가 되곤 했습니다.

한편 독신인 것이 당연한 인물도 있는데, G.K.체스터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브라운 신부나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도사 같은 성직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이야 속세를 떠난 분들이니 뭐…

사립탐정 대부분이 독신인 반면 안정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 주인공들은 결혼했고, 대부분 가정도 안정된 편입니다. 또한 가족들은 주인공에게 가정생활 뿐에서만 아니라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죠. F.W.크로프츠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셉 프렌치 경감은 추리소설 최초의 현실적인 경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과거의 명탐정들처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지독하다고 할 정도의 끈기가 있어 애독자들에게서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에게는 사건이 풀리지 않으면 종종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그의 아내입니다. 프렌치 경감의 아내는 남편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화를 통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곤 합니다.

메그레 경감. 심술궂어 보이지만 따뜻한 분입니다.


조르주 심농이 만들어낸 인물로 프랑스의 명배우 장 가방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파리 경찰국의 쥴 메그레 경감 역시 아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종종 아내와 다투기도 하지만 금방 풀어지며, 사건을 위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메그레 경감의 모습에서 마치 이웃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면 과장된 표현일지요. 로렌스 샌더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X.딜레이니 경감은 첫 아내와 사별하지만, 사건을 수사하다가 만난 여성과 다시 결혼하는 것을 보면 혹시 지휘관급 경찰은 반드시 독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명탐정 엘러리 퀸은 사건 속에서 항상 독신 청년으로 나왔기 때문에 평생 혼자 산 것으로 오해를 많이 받고는 하는데, 사실 그는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 <로마 모자의 비밀>서문에서 유부남임이 밝혀져 있습니다. 즉 엘러리 퀸은 고향인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아버지, 아내, 어린 아들, 그리고 하인 주나와 함께 조용히 은퇴생활을 하고 있으며, 엘러리 퀸이 활약하는 모든 작품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결혼하는 경우는 아주 이상적입니다. 영국의 여성작가 도로시 세이어즈의 주인공 피터 윔지 경은 <맹독(Strong Poison)>(1930)에서 살인용의자였던 여성 추리작가 헤리엣 베인(세이어즈가 모델처럼 보이기도 하네요)의 누명을 벗겨준 뒤 여러 차례 구혼 끝에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헤리엣 베인과는 대조적으로 세이어즈의 결혼생활은 무척 굴곡이 심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상처를 입고, 미혼모가 되는가 하면 이혼남인 아서 플레밍과 결혼했지만 그는 아내가 자신보다 수입도 많고 명성도 높아지자 불만을 품고 결국은 외도까지 합니다. 결국 세이어즈에게 행복한 가정생활은 단지 꿈이었을 따름일까요.

훗날 부부가 되는 헤리엣 베인과 피터 윔지 경(오른쪽)


하드보일드 탐정이 언급될 때 필립 말로가 왜 빠졌나… 하셨을 텐데, 그도 역시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억만장자 할란 포터의 딸인 린다 로링. 필립 말로는 <기나긴 이별>과 <플레이백>에서 그녀와의 결혼을 거절하지만, 챈들러의 마지막 작품(그리고 미완성이어서 로버트 파커가 완성한) <푸들 스프링스 Poodle Springs>의 시작은 말로우와 린다와 결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챈들러의 미완성 유작을 파커가 완성한 '푸들 스프링스'


미국 만화의 주인공이며 우리나라에는 영화로 알려진 형사 딕 트레이시는 애인인 테스 트루하트와 만난지 어언 18년 만에 결혼을 합니다. 현실에서라면 거의 중년 나이가 된 셈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만화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외모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정적인(?) 딕 트레이시와 테스 트루하트


영국의 여성 거장 P.D.제임스는 애덤 댈글리쉬 경감과 여성 사립탐정 코델리아 그레이라는 두 명의 매력적인 주인공을 창조했는데, 이들은 완전한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며 호감을 가진 사이입니다(코델리아 그레이가 처음 등장하는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서부터 두 사람이 만나죠). 댈글리쉬 경감은 아기를 낳을 때 아내가 세상을 떠나  독신남입니다. 그래서 몇몇 여성을 만나기도 하죠. 열성 독자들은 코델리아와 댈글리쉬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밝히며 편지를 보냈다는데, P.D.제임스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진척시키진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이가 좋으면서도 이성관계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만, 최근에 소개된 타나 프렌치의 <살인의 숲>에서는 주인공인 롭 라이언 형사는 동료인 캐시 매독스 형사와 순수한 파트너 관계로서 지내오다가 사이가 진척되면서 갑작스러운 갈등에 빠지고 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을 보살피면서 위험한 범죄자와 상대하는 가정주부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여성 사립탐정의 많은 수가 독신입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여성 탐정들, 즉 수 그래프튼 작품의 주인공 킨지 밀혼은 두 차례, 새러 패러츠키 작품의 주인공 V.I.워쇼스키는 한 차례 이혼한 독신녀입니다. 밀혼은 경찰, 워쇼스키는 변호사 출신인데, 자신의 직업이 이상과 어긋나고 남편에게도 무시당하자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사립탐정의 길로 들어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영화에서 캐슬린 터너가 연기한 사립탐정 V.I.워쇼스키


2차대전 이후부터는 사립탐정 뿐만 아니라 경찰 주인공들도 독신이 늘어났습니다. 업무에 바빠서 결혼을 할 틈이 없었다면 거짓말 같고, 아무래도 멋진 주인공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이성 등장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주기 위한 작가들의 의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잡다한 일까지 묘사해야 작품의 맛이 살아나는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죠. 어쨌든 서두에 내 놓은 질문의 답은 어떠실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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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1.13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생긴 질문 하나!
    그럼 저런 멋진 탐정을 창조한 추리소설가들은 멋진 배우자감 일까요? ㅎㅎ

    • 카메라이언 2011.01.14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로 사람 죽이고 풀면서 스트레스 푸니까, 실제 생활에선 잘 하지 않을까요. +-_-+

  2. 카메라이언 2011.01.14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흑흑 이 글을 보니, 안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미미여사님의 '이름없는 독' '누군가' 시리즈 주인공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 상이 시리즈 세 번째 편에서 아내와 이혼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정말 말이죠, 탐정들은 결혼 못 한다니까요. 아우. 성격들 어떻게 할 테얏!!!! ㅠㅠㅠㅠㅠㅠㅠㅠ

  3. 레이 2011.01.15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나니 탐정 몽크가 생각나네요. 함께 살기 힘든 유형임에도 운 좋게 이상적인 아내를 만났지만, 끔찍한 사건으로 너무 일찍 잃게 된 몽크 탐정...

    탐정은... 혼자 사는 게 속 편할 듯합니다.

  4. 괴도40면상 2011.01.21 0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이라.. 참 멋진 일이죠.
    적어도 100명중 두명에게는. 나머진 그저 어떻게든 해보려는거고요.
    (..라고 말하던 필립 말로도 결혼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