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것

누구나 할리우드에서 6주일 이상 살게 되면,
갑자기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병에 걸린다고 한다.
 <트럼프 살인사건(The Four of Hearts)>(1938) - 엘러리 퀸


어느덧 활자(책)보다 영상(영화)이 강세를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음먹고 일정을 잡아야 하는 행사였지요. 그나마 개봉영화는 많지도 않아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었지만, 컬러 TV의 등장, 비디오․케이블 TV의 보급, 인터넷의 보편화, 그리고 이제는 DMB 등 기술 발전을 통해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영화 중 하나가 열차 강도를 소재로 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영화는 범죄를 소재로 한 것이 많았는데, 범죄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중소설인 추리소설은 역시 대중성을 추구하는 영화로 옮기기에 매우 적합한 듯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화관계자들이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는 독자라고도 합니다(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작가가 영화와 관계를 맺는 데는 작품 자체에 작가가 관여할 때, 즉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거나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가장 많습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는 일일이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라서 원작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볼 때가 흔하지요. 좀 오래된 기록입니다만, 1993년판 영화관련 기네스북을 보면, 가장 많이 영화에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명탐정 셜록 홈즈였습니다. 영국 작가 코난 도일이 창조한 전설적 인물 셜록 홈즈는 1900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211편의 영화에 등장해 2위인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159편)과 3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115편)을 여유 있게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숫자에서 눈치 챌 수 있듯 홈즈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해서 모두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인기가 있으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명한 주인공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이런 일은 드물지 않은데, 예를 들어 얼 데어 비거스의 찰리 챈 시리즈는 장편 여섯 개에 불과하지만 영화로는 1931년부터 1949년까지 20년 남짓 사이에 무려 43편이 제작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영화로 제작된 찰리 챈 시리즈

‘만약…’이라는 말은 언제나 여운이 남지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도 어쩌면 007과 같은 인기 시리즈가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사립탐정 루 아처(Lew Archer)의 이름이 루 하퍼(Lew Harper)로 바뀌고 제목도 <움직이는 표적>에서 <하퍼>가 된 이유는 주연배우 폴 뉴먼의 성공작들이 모두 H로 시작되었기 때문(<허드 Hud>, <허슬러 The Hustler> 등)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각본을 맡았던 -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 - 윌리엄 골드먼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아처 시리즈를 영화 시리즈로 제작할 계획을 세운 영화사는 아처의 이름을 계속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으며, 맥도널드가 그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당시 각색을 맡았던 골드맨이 아처와 발음이 비슷한 하퍼로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오락영화로 만들기에는 줄거리가 무거운 편이었던 아처 시리즈는 이런 이유로 <하퍼>와 <The Drowning Pool>등 두 편만 제작되는데 그쳤습니다. 골드먼은 아처 시리즈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소름>에 애착을 가지고 각본도 썼지만, 뉴먼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제작되지 않고 창고 어딘가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수백, 혹은 1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각색하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원작과 달라지기 때문에 원작을 읽은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도 불만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재키 브라운> <표적>등 호평 받은 영화의 원작자 엘모어 레너드는 영화계가 잡으려고 경쟁을 벌이는 현역 최고 작가 중 하나지만, 그의 첫 각본이자 자신의 작품을 직접 각색한 <The Moonshine War>가 제작되던 1970년에는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디트로이트의 디킨스' 엘모어 레너드

촬영 현장에 처음 나간 그는 프로듀서나 감독이 걸핏하면 각본을 즉석에서 바꾸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고, 주연 배우 패트릭 맥구헌이 ‘자신의 대사가 엉망이 되니 기분이 어때요?’하는 질문에 대답도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영화화 과정에서는 대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만큼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 판권을 팔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영화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는 제임스 엘로이의 태도가 훨씬 편할 것 같네요.

  유명한 추리작가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거나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각색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탐정 필립 말로우를 탄생시킨 하드보일드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역시 위대한 하드보일드 작가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케인의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3)을 훌륭하게 시나리오로 만들어 호평을 받았으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의혹의 전망차> 역시 여성 추리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데뷔작인 <낯선 승객>(1950)을 그가 각색한 작품입니다. 히치콕 감독의 또 다른 걸작 <새>는 로맨틱 서스펜스 작가 대프네 뒤 모리에의 단편 소설을 경찰소설의 대가 에드 멕베인이 각색한 것이지요.

  작가의 활동은 원작이나 시나리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가는 그 시대를 다룬 영화나 혹은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에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저명인사였던 코난 도일의 전기 영화는 제작된 적이 없지만, 그와 미국의 유명한 마술사인 해리 후디니의 친분은 워낙 잘 알려져 있어 <위대한 후디니(Great Houdini)>(1976), <젊은 해리 후디니(Young Harry Houdini)>(1987), <후디니(Houdini)>(1998) 등 후디니의 전기 영화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유명 작가가 실명으로 나오는 영화로는 1926년 발생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을 다룬 <애거서(Agatha)>(1979), 하드보일드 작가 대쉴 해밋과 그의 동반자적 존재였던 여성 극작가 릴리언 헬만의 이야기를 다룬 <줄리아(Julia)>(1977), <대쉬와 릴리(Dash and Lilly)>(1999)등이 있으며, 좀 독특한 소재의 영화로 빔 벤더스 감독의 <해미트(Hammett)>(1982)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탐정 출신 추리작가 조 고어즈가 해미트의 사립탐정 시절을 그린(물론 허구이죠)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해밋을 연기한 프레드릭 포러스트는 10년 후 제작된 <시티즌 콘(Citizen Cohn)>에서도 해미트로 등장합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해밋'

  여건이 되면 작가가 영화에 출연도 합니다. 코난 도일은 역시 이쪽에서도 선구자로 <5백만 달러 위조 계획(The $5,000,000 Counterfeiting Plot)>(1914), 또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1925) 등 두 편의 무성영화에서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변호사 출신 작가 얼 스탠리 가드너는 TV 시리즈 <페리 메이슨>에서 판사 역으로 출연했는데, 재판 과정에 익숙한 그로서는 근엄한 얼굴로 앉아있는 검사 연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조연으로 등장한 이들과는 달리, 화끈한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쓴 미키 스필레인은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 <걸 헌터>(1963)에 직접 해머로 등장했습니다. 스필레인은 TV 시리즈인 <형사 콜롬보>에도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살해당하는 소설가를 연기했지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범죄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남긴 트루먼 캐포티는 귀여운(?) 아저씨 같은 외모와는 달리 <5인의 탐정(Murder by Death)>라는 코믹 미스터리 영화에 출연해 명탐정들을 골탕 먹이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유명 희곡작가 닐 사이먼이 각본을 쓴, 싸구려 추리소설들을 야유하는 듯한 이 영화에서 캐포티가 연기한 괴상한 인물 라이오넬 트웨인은 탐정들이 너무 영리한 나머지 겸손함을 잃고 독자들을 기만한다고 질타하며, 결국에는 수백만의 독자들이 복수할 것이라고 외칩니다.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에서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체격에 강렬한 인상을 지닌 그는 ‘스티븐 킹의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이라는 퀴즈가 있을 정도로 자주 출연했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그를 찾아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이죠. 킹은 출연뿐만 아니라 <맥시멈 오버드라이브>의 감독을 맡은 적도 있는데,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이젠 감독 역할에 관심을 끊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2009년 말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영화 <이중 배상>에 각본을 썼던 레이먼드 챈들러가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죠(지금은 DVD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챈들러입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세계의 수천만 명이 보았을 터인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던 것도 놀랍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연구자가 거의 같은 시기에 발견했다는 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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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8.25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93년까지 만들어진 홈즈 영화가 211편이면 지금은 그보다도 더 많겠군요, 다 보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로 보고 싶은 추리소설 걸작은 존 딕슨 카의 <벨벳의 악마>,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김내성의 <마인>입니다.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나는 오늘 밤 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사람을 죽였다.
난 그놈들을 쏠 때마다 즐거웠고,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 마이크 해머
<One Lonely Night>(1951) 미키 스필레인

 

‘범죄자와 대결을 벌이려면 그들 이상의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없으면 안 되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뛰어난 머리일 수도 있고, 혹은 육체적인 힘, 아니면 무기를 사용하는 솜씨일 수도 있지요.

추리소설의 초창기이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탐정과 범인과의 대결 양상은 머리싸움이었습니다. 당시 작품 속의 범인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고심 끝에 사건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보다 뛰어난 두뇌를 지닌 주인공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건이 미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범인의 계략을 모두 알아채고 궁지로 몰아놓아 체포하지만 이 과정에서 육체적인 격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범인은 사람을 죽인 흉악범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당할 수 없는 상대에게는 순응할 줄 아는 지능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묻혀 살던 샌님 같은 오귀스트 뒤팽은  진짜 흉악한 범죄자와 홀로 마주쳤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선원 한 사람을 만날 때 권총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조심성은 뛰어나도 맨손으로 범죄자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하네요. 반면 런던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력은 물론이거니와 권투를 포함한 격투기에 능하고 사격에도 일가견이 있어 행동하는 사립탐정의 이미지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심어 놓았습니다. 홈즈가 인기를 얻자 20세기 초반 ‘홈즈의 라이벌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체로 뛰어난 두뇌를 과시하느라 육체적 능력을 써먹을 틈은 별로 없었습니다. 브라운 신부처럼 플랑보라는 경호원 겸 조수를 함께 등장시켜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홈즈와 같이 주먹다짐을 피하지 않는 행동파 탐정은 한참 후에나 나타납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펄프 잡지를 통해 등장한 활극에 가까운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범죄라는 것이 일개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머리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쉴 해미트가 창조한 두 명의 주인공, 컨티넨틀 오프와 샘 스페이드를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겠군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수수께끼 풀이형 소설의 탐정들 - 크리스티의 엘큐울 푸아로와 미스 마플,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 - 은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 놀라운 추리력으로 기묘한 사건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동안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거리의 건달이나 폭력조직의 두목과 직접 마주쳐야만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완력 좋고 사격 솜씨도 뛰어난 탐정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턱대고 총을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탐정이건 경찰이건 상대가 위협을 가할 경우에만 사격할 수 있을 뿐, 먼저 총부터 쏘고 들이닥친다면 그건 범죄자나 마찬가지 이죠. 탐정은 경찰과는 달리 체포권이 없기 때문에 말로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약간의 완력을 쓰고, 총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쓰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해미트의 <붉은 수확>에 등장하는 컨티넨틀 오프는 포이즌빌의 악한들을 혼자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힘 대신 책략을 이용했습니다.

해미트의 '붉은 수확'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등장한 마이크 해머의 행동은 이전까지의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온화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미키 스필레인의 <심판은 내가 한다>(1947)에서 처음 등장한 그는 독자에게 엄청난 충격, 그리고 한편으로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를 ‘터프 가이’라 표현하면 오히려 부드럽게 여겨질 정도인 과격한 인물이지요. 45구경 군용 콜트 권총을 애용하는 그는 악당에 대해서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 버린다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습니다.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시대착오적인 폭력성향 탓에 그가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면 오히려 시체가 쌓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맙니다.

TV 시리즈 '마이크 해머'에서 주연을 맡았던 스테이시 키치. 원작과는 달리 매우 점잖았습니다.

탐정의 무기는 권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앤드류 복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과 27범의 무허가 탐정 버크는 총 뿐만 아니라 격투기에도 능하며 다양한 무기들도 사용합니다. 경찰의 수사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며 필요하다면 범인을 죽이는 것도 불사하는 버크는 표창이나 손톱에 독을 바른 칼날을 붙여놓고 싸움에 임할 정도입니다.


로렌스 블록의 매트 스커더 시리즈에 등장하는 미키 발루는 평범하지만 살벌한 무기를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사립탐정인 스커더의 친구이며 도살장 주인인 미키의 무기는 다름 아닌 커다란 식칼로, 총알이 난무하는 뉴욕의 뒷골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치명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패트릭 켄지 & 안젤라 제나로’ 시리즈에서도 이에 뒤지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죠. 두 사람의 친구이자 “인간 흉기”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부바 로고프스키는 불법 무기상이라 총을 달라고 하면 미사일은 필요없냐고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또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거침없이 사용하지요. 절대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영화 'Gone, Baby Gone'에서 부바 역을 맡은 배우 Slaine.

남성만 무기를 갖고 다니는 것은 아니죠. 강력범죄가 넘치는 미국에서는 여성 탐정들도 총을 다루고 쏠 줄 알아야만 합니다. 사라 패러츠키의 여성 사립탐정 V.I.워쇼스키는 시카고 대학 로스쿨을 거친 변호사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배운 사격과 격투기를 배워 웬만한 남자들은 쉽사리 제압합니다. 역시 여류작가인 수 그래프튼의 작품에 등장하는 킨지 밀혼은 전직 경찰이었기 때문에 사격이나 호신술 등 경찰이 하는 것은 다 할 줄 아는 여성 사립탐정이지요. 물론 자넷 이바노비치의 주인공 스테파니 플럼 같은 예외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후 돈이 필요해 용의자 소환 업무를 맡게 된 플럼은 총이라곤 생전 건드려 본 적도 없지만 진지하게 사격 연습을 시작합니다.

시대가 변했고 작가들도 변했고 독자들도 변했어도, 추리력이건 총이건 주먹이건 어떤 수단으로든 범인을 잡아낸다는 추리소설의 스타일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난 이국의 작품을 읽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요란한 수단을 쓰지 않는 평범한 인물들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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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5.26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탐정에게 제일가는 무기는 역시 뇌라고 해야겠지만 각종 무기를 사용하여 악당들을 해치우는 탐정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은 장비를 이용하여 악당을 잡는 탐정은 배트맨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배트맨도 일종의 탐정이니까요.


무슨 이름이 그래요?

주인공의 이름이 나의 취미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주제일지라도
그것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고경(苦境)에 빠진다.
     - 수필 <창백한 뇌수>(1939), 김내성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많은 고심을 하게 됩니다. 소재나 플롯은 물론 기본이고,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성격에서부터 사건 무대가 되는 배경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들 중 쉬운 것은 하나도 없지요.

헌데 언뜻 보면 등장인물의 이름 짓기는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뭐… 순간적으로 멋진 이름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것처럼 운이 좋을 때도 어쩌다가 있겠지만, 항상 그렇게 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인공의 이름은 작품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여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활자매체에서 등장인물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을 통해 독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아기 이름을 지어 보신 분이라면 고개를 끄떡이실지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작명하는 것은 동서양 작가들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추리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키 스필레인의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는 이름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깁니다. ‘마이크’라는 평범한 이름 뒤에 붙은 ‘해머(Hammer, 쇠망치)’라는 성은 그가 거칠고 강인한 남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그러고보니 ‘슬렛지 해머(Sledge Hammer, 대형 쇠망치)’라는 이름의 형사가 등장하는 뒤죽박죽 TV 시리즈도 있었습니다만…).

터프가이의 대명사 마이크 해머(TV 시리즈에서 대린 맥거번이 연기했습니다).


우리나라 작품의 등장인물 중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 비록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 김홍신 씨 원작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이었습니다. 원래는 ‘권총찬’이었다가 최종 단계에서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떤 식으로 이름을 지을까요? 아마 어감이나 의미를 고려해 지어낸 이름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멋지거나 독특한 이름이 실존한다면 작가는 그것을 빌려 쓰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주인공들만 살펴봐도 다른 곳에서 본 듯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의 이름은 코난 도일이 미국의 법률학자인 올리버 웬델 홈즈(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이름을 가져와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법률학자 올리버 웬델 홈즈


셜록 홈즈와 마찬가지로 영국 사람이며 국제적인 명성 또한 그에 못지않은 첩보원 제임스 본드는 원작자 이언 플레밍의 눈에 우연히 띈 책 <서인도제도의 새들(Birds in the West Indies)>을 쓴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의 책


얼 스탠리 가드너가 창조한 명 변호사 페리 메이슨은 선배 작가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의 작품에 나오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의 이름에서 따 왔는데, 재미있는 것은 페리 메이슨이 정의감 넘치는 인물이지만 랜돌프 메이슨은 악덕 변호사라는 점입니다.

'악덕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로스 맥도널드가 창조한 사립탐정 루 아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나는 선배 작가 해미트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의 작품 <몰타의 매>에 등장했던 마일즈 아처의 이름을 빌렸다는 것이고, 자신의 탄생 별자리가 궁수(弓手-Archer)자리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맥도널드가 직접 밝힌 바가 없어서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습니다만….

존경의 뜻을 담은 주인공의 이름을 또 들자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館)’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 시마다 기요시(島田潔)가 있습니다. 이 이름은 등단시절부터 그를 후원해주었던 작가 시마다 소지(島田莊司)의 성과 그가 창조한 주인공 미타라이 기요시(御手洗潔)의 이름을 합성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미타라이 기요시라는 이름에는 좀 어이없는(?) 사연이 있더군요. ‘미타라이’는 절 등에서 참배자가 손을 씻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화장실, 즉 변소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마다 소지의 어린 시절 별명은 ‘벤죠 소지(便所掃除)’, 즉 ‘변소 청소’였다고 하는데 이 별명이 훗날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명탐정 이름의 기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미타라이'라는 이름에 이런 심오한 의미가….


미국 작가 로버트 파커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스펜서는 일반적 이름인 ‘Spencer’가 아니라 ‘Spenser’로 표기하는데, 이는 16세기의 시인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 1552-1599)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그런데 ‘스펜서’가 이름인지 성(姓)인지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독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또 있는데요, 앤드류 복스가 창조한 전과자 출신 탐정 버크 역시 성인지 이름인지 불분명하군요.

호크와 스펜서(오른쪽) - TV 시리즈 '스펜서'에서


이들은 사립탐정이니까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고 하지만, 콜린 덱스터의 주인공 모스 경감은 한동안 성 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많은 독자들이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열네 번째 장편에서야 모스의 이름이 ‘엔데버(Endeaver)’라고 밝혀지면서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콜린 덱스터는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십자말풀이(crossword)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독자가 엔데버의 이름을 ‘end’와 ‘over’의 합성으로 넘겨짚어 해석해 그가 시리즈를 끝내거나 심지어 절필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예 이름이 없으면 편할까요? 대쉴 해미트는 하드보일드의 선구적인 작품 <붉은 수확>의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컨티넨틀 탐정사의 탐정이라는 의미인 ‘컨티넨틀 오프(Continental Op)’로만 불리는 이 중년의 독신 인물은 두 개의 장편을 비롯해 무려 28편의 중․단편에 등장하면서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탐정 '컨티넨틀 옵'


현대 작품에도 해미트의 착상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가가 있습니다. 빌 프론지니는 아예 ‘무명(無名) 탐정(Nameless Detective)’을 만들어 냈습니다. 프론지니는 이 40대 사나이의 여자관계에서부터 폐암이 겁나도 연신 담배를 피워 무는 강박관념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쓰지 않고도 솜씨 있게 묘사하고 있지요. 이 무명 탐정은 콜린 윌콕스와의 합작 <Two spot>(1978)에도 등장하는데, 윌콕스의 주인공 프랭크 헤이스팅즈 경사가 “빌(Bill)”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그런데 이 “빌”은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작가인 프론지니의 이름입니다).

작품에 잠깐 나오는, 즉 조연에도 못 미치는 인물들의 이름은 그냥 눈에 띄는 이름을 응용하는 것이 보통이라고도 합니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이름을 쓰거나 어떤 작가는 사람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책, 즉 전화번호부를 이용하기도 한다네요. 하지만 다작으로 유명한 아카가와 지로는 똑같은 이름이 계속 이어지는 전화번호부는 이용하기 불편해 잡지의 당첨자 발표 명단을 종종 이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백 편이 넘는 작품을 쓴 사람이니, 등장인물 숫자만도 엄청날 겁니다. 혹시 같은 이름이 있을지도…?

이름을 결정하는 방법은 작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너무 흔한 이름을 쓰지 말라는 것이죠. 이를테면 ‘홍길동’이나 ‘임꺽정’, 혹은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 당대의 유명인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쓰는 유치한 방법을 쓴다면 망하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설마, 그럴 분은 없으시겠지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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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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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시민 2011.01.26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탐정의 이름 하니 저도 생각납니다. 어렸을 적에 제가 어린이용 탐정소설을 쓰는 걸 본 제 사촌동생이 자기도 소설 쓰겠다며 자기 친구 이름을 딴 탐정이 주인공인 소설을 하나 썼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제가 만든 탐정에 그 이름을 붙였지요, 캐릭터 성격이나 외모 등은 다르지만요. 빨리 그 탐정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2. 레이 2011.01.26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마다 소지 님. ㅋㅋ
    제임스 본드, 어렸을 때 본드(접착제)라고 킥킥거렸는데 조류학자의 이름이었군요~

  3. 카메라이언 2011.01.27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타라이 기요시가 왜 이리 좋은가 했더니 변소여서였군요...아...어쩐지...넘...좋더라............(네이버 닉네임이 특급변소. 본래 이 변소는 변태완소의 줄임말로 카페 김종일의 경계문학의 초코소라빵님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마음이 들어 계속 쓰고 있 ;;;)

    저는 주인공 이름 윤해환은 고등학교 때 문학교과서에서 본 윤동주 아명이 마음에 들어 기억해 뒀다 피씨통신에서 고 3 때부터 필명으로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카메라이언 윤해환이라는 캐릭터 이름을 지은 건... 한 5 년 된 것 같은데요, 상당히 고민해서 지었던 듯해요, 정말.

    의도는 아니었지만, 사진 동호회 다니며 본 것들이라든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 메모하고, 취재하고, 직접 dslr 사용법 배우고, 어울리면서 스캔들도 뿌리면서(;;;) 카메라이언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출사다니면서 이런 출사지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서해안에 붉은 깃발의 섬 만들고, 사미사-사진에 미친 사람들 동호회 이름, 그 다음엔 동호회 시삽인 혁클베리-이건 실제로 한 동호회 시삽이시고 꽤나 유명하신 블로거이신 분의 예전 별명으로, 허락받고 빌렸어요- 정하고...(그 후로 글 쓴다고 동호회 안 나가버렸 ;; 열심히 활동하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배은망덕한 ㅡㅡ;;;;) 또 중간에 등장하는 반항야옹이는 제 옛날 다른 동호회 닉네임에다... 이야 정말 뭔가 상당히 설정이 많았네요. ;;;; 와, 엄청 덧글 길어졌다. ;;;;;

    주인공 이름들은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로 뭔가 복합적으로 (;;;) 만들고, 때문에 바꾸고 또 바꾸는데 그냥 인물들, 별 생각없이 짓는 인물들은 보통 눈앞에 보이는 책 저자 이름을 써요. (;;;;;)

  4. 이야기꾼 2011.01.27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 편하게 짓기로는 추리소설가 황세연을 빼놓을 수 없지요.
    온갖 한국추리소설가를 범인, 피해자, 목격자로 골고루 활용,
    작금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검색하면 '살인자 ***'으로 뜰 정도!

    대표적 인물로는 김성종, 이상우, 백휴, 서미애, 최혁곤, 한이...등등등...

    그러고 보니 드라마 작가 중에도 있네요...지화자, 배신남, 이런 이름으로 짓는 분이...



미국의 추리소설가 조 고어즈(Joe Gores)가 지난 1월 10일 캘리포니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1년 12월 25일(!)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독특하게도 12년 동안이나 사립탐정으로 일했으며 한때는 케냐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하네요(이외에도 트럭 운전, 모텔 매니저 등을 했습니다).

존스 그릴('몰타의 매'에 나오는 식당입니다) 앞에 서 있는 조 고어즈


1969년 <A Time of Predators>로 에드거상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댄 키어니 탐정 사무소(일명 DKA: Dan Kearny and Associates)'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립탐정 출신이라는 점에서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쉴 해미트와 공통점이 있어 종종 비교되기도 했는데, 그는 대쉴 해미트를 주인공으로 한 <Hammett>(1975)를 발표하는가 하면 <몰타의 매>의 공인된 전편(prequel)인 <Spade & Archer> (2009)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해미트가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 딱 5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울프 타임>(1989)이외에는 번역된 작품이 거의 없군요. 그나마도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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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야기꾼 2011.01.14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프 타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까지 필력을 자랑하시다 돌아가셨다니,
    작가로서 존경의 묵념을....

  2. 평시민 2011.01.20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 고어즈 관련 에피소드를 전에 본 기억이 납니다. 조 고어즈가 노트르담 대학의 어느 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 교수가 이렇게 답했죠. "작가가 되는 법은 간단합니다. 큰 도시로 가서 책상이랑 의자가 있는 작은 방을 하나 얻으십시오, 책상 위에 타자기를 놓고 쓰기 시작하십시오, 10년 후에 일어나면 당신은 작가가 되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