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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5 명탐정 열전 (16) 87분서의 형사들

87분서의 형사들(Detectives of 87th Precinct)

 

성공적인 미스터리 시리즈라고 하면 대부분 멋진(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지만) 한 명의 주인공으로 상징되기 마련이다.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우의 작품에 등장하는 뒤팽을 필두로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엘러리 퀸, 미스 마플, 샘 스페이드 등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개성과 독특한 매력을 지녀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친근한 존재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첫 선을 보인 <87번 지서>시리즈에는 작품을 대표하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경찰소설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되는 <87번 지서>시리즈는 경찰의 수사활동이 중심 내용이 된다. 즉 한 명의 형사가 어떤 사건을 담당하더라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형사를 비롯, 경찰 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는 <87번 지서>라는 경찰서가 실질적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영화 <경관 혐오자>(1958). 맨 왼쪽은 스티브 카렐라 역을 맡은 로버트 로지아.

 

87번 지서는 뉴욕 시내의 가공 도시 아이솔라에 있는 일개 지서에 불과하다(‘아이솔라’는 이탈리아 어로 ‘섬 island'를 의미하며, 맨해튼이 모델이다). 첫 작품 <경찰 혐오자>의 내용에 따르면, 87번 지서에는 16명의 형사가 배속되어 있지만, 그들의 관할구역은 9만 명의 주민이 사는 35개 블록으로 116명의 형사가 있어도 손이 모자라 일을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지역.


87번 지서에는 프릭 서장과 번즈 수사주임 이하 다양한 형사들이 등장한다. 지서 내에서 가장 유능한 형사인 스티브 카렐라는 가장 많은 작품에 중심인물로 등장해 이 시리즈의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계인 카렐라는 몸집이 크지만 결코 둔해 보이지는 않으며, 마치 동양인과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는 수사 도중 테디 프랭클린이라는 아름다운 벙어리 아가씨와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다.

 

TV 드라마로 제작된 87분서 시리즈. 스티브 카렐라(오른쪽, 로버트 랜싱이 연기)와 테디 카렐라(지나 롤란즈가 연기)

 

카렐라의 동료로는 아버지가 이름을 장난스럽게 지었다고 불평하는 유태계 형사 마이어 마이어, 타인을 압도하는 우람한 체격의 인텔리 흑인 형사 아더 브라운, 빨간 머리에 흉터가 있는 코튼 호스, 유도의 명수 할 윌리스, 신참 형사 버트 클링, 그리고 이른바 ‘썩은  사과’라고 불리는 부패한 형사 로저 하빌랜드 등 독특한 인물들이 등장해 지서를 활기 있게 만들고 작품을 빛내준다.

 

이들은 작품에 따라 주연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조연 혹은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배속 인원이 16명이지만 수많은 형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수사 도중 피살되기도 하고 때로는 승진 등을 통해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시리즈가 시작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주연급 등장인물들은 거의 나이를 먹지 않고 있는데 반해 시간은 약간씩 흐르고 있다. 카렐라 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형사들은 모두 30대의 나이지만 카렐라 부부의 쌍둥이 아이들은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었다.

 

<살의의 쐐기> 표지

이 시리즈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매우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사건 현장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생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사건을 앉은자리에서 척척 해결하는 초인적 인물이 아니라, 봉급이 적다고 불평도 하고 연애도 하다가 때로는 실연의 상처도 입는 보통 사람들이다.


<87번 지서> 시리즈는 현역 작가의 미스터리 시리즈 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고 있는 작품이다. 1956년 <경찰 혐오자>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해마다 한 권 꼴로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2000년에도 어김없이 장편 <마지막 춤 The Last>이 발간되었다.

 

(스포츠투데이 2000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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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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