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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20 명탐정 열전 ② 브라운 신부

날카로운 직관 - 브라운 신부

 

코넌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 셜록 홈즈가 명성을 날리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무렵, 미스터리의 붐을 타고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가지각색의 탐정들이 등장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찻잔 속 돌풍 정도의 화제도 되지 못한 채 금방 잊혀졌다. 이른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인기를 얻은 주인공들도 있지만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홈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가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브라운 신부는 그 흔치 않은 인물 중에서도 단연 첫 손에 꼽을 만한 인물이다.

 

 


가톨릭 신부라고 하면 위엄 있고 중후한 풍채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브라운 신부는 그런 모습과 한참 거리가 멀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단편 ‘푸른 십자가’(1911)에 묘사된 용모는 도무지 기품 있는 성직자나 명탐정의 분위기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 “작은 체격에 동부지방의 전형적인 멍청이처럼 생겼으며, 얼굴은 노포크의 명물인 푸딩처럼 둥글고 얼빠져 보이며… 눈은 북해(北海)처럼 흐리멍텅하다…커다란 모자에 낡고 커다란 우산을 자주 잃어버린다….” 이쯤 되면 평범하긴커녕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는 누구보다도 예리한 직감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추리법은 돋보기나 줄자를 이용한 과학적인 증거 분석보다는 직감적인 상상력에 의지한다. 즉 범인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생각하면서 범인의 내면을 파악해내는 것이다(‘외모는 평범함보다 못 미치지만 두뇌회전은 날카로운 탐정’이라고 하면 TV시리즈로 방영된 ‘형사 콜롬보’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텐데, 실제로 콜롬보 시리즈의 작가 윌리엄 링크와 리처드 레빈슨은 브라운 신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사라딘 공작의 죄악'에서 (시드니 시모어 그림)

 

 

한편 성직자로서의 경력도 만만치 않다. 20여 년 전 미국에 머무르면서 시카고 교도소 부속 성당의 사제로 있었으며 귀국 후에는 에섹스, 캠버웰을 거쳐 런던 외곽의 사제로 있다. 한편 유일하게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 바로 브라운 신부의 이름(first name). ‘아폴로의 눈’(1911) 서두에 잠깐 그의 신상이 다음처럼 언급된다. “캠버웰의 성 프랜시스 자비엘 성당의 J 브라운 신부님”. 하지만 단지 그것 뿐으로 ‘J’가 어떤 이름의 약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품에서는 그나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신부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벌(罰)보다 구원을 우선하는’ 성직자다운 정신이다. 브라운 신부는 정의를 추구하지만 자비로움을 잃지 않는다. 그의 사명은 범인을 체포하는 것보다 회개시켜서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다. 그가 거둔 최대의 성공이라면 유럽을 주름잡던 거물 도둑 프랑보를 개심 시킨 것.‘푸른 십자가’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신부와 마주치며 혼이 난 프랑보는 마침내 회개하고 사립탐정으로 전향해 신부를 돕게 된다.

 

알렉 기네스가 브라운 신부 역을 맡은 ''The Detective'

일부 미스터리 연구가들은 브라운 신부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고도 주장한다. 브라운 신부는 자신의 교구(敎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같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멕시코,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기괴한 사건들-비록 세상을 뒤흔들 만한 사건은 거의 없었지만-과 마주치며 또 놀랄 만큼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니 가히 신출귀몰한 인물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2000년 스포츠투데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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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리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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