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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동 본관

테마로 읽는 미스터리 <9> 완전범죄

추리소설가들과 범죄자들의 꿈

대부분의 살인자들은 범죄를 너무 완벽하게 저지르려는 실수를 범한다.
<The Willow Pattern>(1965)  -  로베르트 반 훌릭

 

추리소설가와 실제 범죄자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양 쪽 모두 범죄로 수익을 올린다는 점(물론 한쪽은 머릿속으로 구상해 글로 옮기는데 그치고, 다른 한쪽은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과 완전범죄(작가는 독자에 대해서)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완전범죄란 과연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치밀한 계획과 실행에 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거나 범죄를 입증할 수 없는 범죄

한 발 더 나아가볼까요.

일본의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살인산행>(1974)에서 완전범죄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종류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1. 심신 상실(心身喪失)을 이용한 범죄처럼 사회 상식적인 범죄로 보이는 행위가 있는데 범인도 증거도 갖추고 있으면서 법률적으로는 범죄에 대한 책임 추궁도 면하는 것.
2. 범행의 흔적이 명백하고 범인도 분명한데 유죄를 인정할 만큼 증거가 없는 것.
3. 미궁에 빠진 사건처럼 범행의 흔적이 있으면서 범인을 알 수 없는 것.
4. 범죄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흔적,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범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것.

하지만 작가는 범죄자와 다릅니다. 작가 마음대로 써서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잡지도 못한 채 끝난다… 하기는 쉽겠지만, 그렇게 무능한 수사관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틀림없이 독자에게 외면당할 겁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대체로 정의를 추구하는 탐정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능적인 범죄자가 저지른 사건이라도 반드시 해결되고 맙니다. 결국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는 작품은 드문 편이고 누구나 납득할 만큼 강한 설득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오히려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작품 속에서 범인이 체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합니다. 우선 탐정이 사건을 다 해결하고도 피해자가 더 악당이었다거나 가해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혹은 범인을 밝히게 되면 애꿎은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거나 할 때 눈감아 주는 경우입니다. 물론 공직자인 경찰이라면 사건을 그렇게 쉽사리 처리할 수는 없지만, 사립탐정이나 아마추어 탐정들은 가끔 그런 선심을 베풀 때가 있습니다(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은 공식적으로 미해결 사건으로는 남겠지만 수수께끼는 풀렸으니 완전범죄라고 하기엔 뭔가 미흡한 점이 있지요.

다른 한 갈래는 악당이 주인공일 경우입니다. 악당 주인공이라면,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프랑스의 괴도 아르센 뤼팽을 쉽게 연상하시겠지요? 뤼팽은 범죄를 예고하고 경찰을 농락하면서 그 자리를 유유자적하게 빠져나갑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는 단지 범인을 못 잡았을 뿐이지 누구의 짓인지는 뻔히 알기 때문에 이 역시 완전범죄의 범주에 넣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는 작가가 조건에 맞는 완전범죄를 완성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잘 알려진 작품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성 작가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톰 리플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으로, 가난한 미국 청년 리플리는 친구 디키의 부유한 생활을 부러워한 끝에 그를 살해한 후 대신 디키 행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용모를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머리 색깔을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글씨체, 행동, 그리고 사고방식까지 죽은 친구와 닮기 위해 노력하고, 또 눈치 챌만한 사람들은 죽이기까지 하는 강경한 행동까지 벌인 끝에 합법적으로 친구의 재산을 가로채는데 성공합니다.

나는 리플리인가 누구인가 - 영화 '태양은 가득히'


미국 작가 스콧 스미스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 <심플 플랜>(1993)은 전혀 사전 계획이 없었던 상태에서 범죄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약간 성격을 달리 합니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젊은 회계직원 행크는 형, 그리고 형의 친구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가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는데, 그 안에는 4백만 달러가 넘는 거액이 실려 있던 것입니다. 엄청난 돈 앞에서는 누구나 장님이 되곤 하죠. 하물며 경제적 여유가 그다지 없던 사람들이었다면 더욱 이성을 잃을 것입니다. 아무리 똑같이 나누기로 했어도 엄청난 액수의 돈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커다란 비극을 몰고 옵니다.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완전범죄가 되어버리긴 합니다만, 그들이 얻은 것은….

진정 돈 앞에 장사 없나 - 영화 '심플 플랜'


스위스의 역사학자 출신 작가인 장 자크 피슈테르의 첫 번째 소설 <편집된 죽음>은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는 달리 끔찍한 폭력도 없고 거액의 돈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아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가장 뛰어난 완전범죄 작품으로서 꼽을 만합니다. 주인공 에드워드 램은 친구인 니콜라 파브리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받으면서 행운의 절정에 오르는 순간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오던 보복을 실행으로 옮깁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에드워드를 여러 차례 절망 속에 빠뜨렸던 니콜라가 자신의 애인마저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계획된 것이었지요. 이 작품을 최고의 완전범죄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복수극을 벌인 장본인 에드워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심지어는 피해자 니콜라마저 그것이 복수였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편집된 죽음'


<슌킨쇼(春琴抄)>, <세설(細雪)>등의 작품을 남긴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는 추리소설에도 관심이 많아 작품을 직접 쓰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1920년 발표한 단편 <도상(途上)>은 에도가와 란포가 감탄할 정도의 완전범죄를 다루었습니다. 한 샐러리맨이 아내를 죽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직접적인 폭력 등을 행사하는 대신 은근히 위험한 상황을 거듭 만든다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후 만약 의심을 받더라도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완전범죄가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란포는 이런 방법을 ‘프로버빌리티(probability)의 범죄’, 즉 확률의 범죄라고 이름 붙였으며, 얼마 후에는 그 자신도 이런 트릭을 이용한 단편 <붉은 방>(1925)을 발표했습니다.

최근 접한 작품 중에서 이쪽 방면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우타노 쇼고의 단편집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2005)를 들고 싶습니다. 특히 작가의 본격 추리소설에 대한 (반어법적인) 애정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은 모두 밀실을 다루고 있는데, 그중 두 작품은 훌륭한 완전범죄 작품으로도 볼 만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그의 대표작 <나비부인 살인사건>(1946)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재미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인명을 존중하게 되며, 그럴수록 살인에 대한 제재가 엄격해진다. 그러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 범인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기 때문에, 완전범죄를 노린 교묘한 계획적 범죄가 발생할수록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 발전을 위해서’ 지능적 범죄자가 늘어나길 바라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하긴 합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