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놈들을 쏠 때마다 즐거웠고,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 마이크 해머
<One Lonely Night>(1951) 미키 스필레인
이것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없으면 안 되는 조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뛰어난 머리일 수도 있고, 혹은 육체적인 힘, 아니면 무기를 사용하는 솜씨일 수도 있지요.
어둠 속에 묻혀 살던 샌님 같은 오귀스트 뒤팽은 진짜 흉악한 범죄자와 홀로 마주쳤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모르그 거리의 살인>에서 선원 한 사람을 만날 때 권총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조심성은 뛰어나도 맨손으로 범죄자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하네요. 반면 런던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력은 물론이거니와 권투를 포함한 격투기에 능하고 사격에도 일가견이 있어 행동하는 사립탐정의 이미지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심어 놓았습니다. 홈즈가 인기를 얻자 20세기 초반 ‘홈즈의 라이벌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체로 뛰어난 두뇌를 과시하느라 육체적 능력을 써먹을 틈은 별로 없었습니다. 브라운 신부처럼 플랑보라는 경호원 겸 조수를 함께 등장시켜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홈즈와 같이 주먹다짐을 피하지 않는 행동파 탐정은 한참 후에나 나타납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펄프 잡지를 통해 등장한 활극에 가까운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범죄라는 것이 일개 가정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머리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쉴 해미트가 창조한 두 명의 주인공, 컨티넨틀 오프와 샘 스페이드를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겠군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수수께끼 풀이형 소설의 탐정들 - 크리스티의 엘큐울 푸아로와 미스 마플,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 - 은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 놀라운 추리력으로 기묘한 사건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동안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거리의 건달이나 폭력조직의 두목과 직접 마주쳐야만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완력 좋고 사격 솜씨도 뛰어난 탐정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턱대고 총을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탐정이건 경찰이건 상대가 위협을 가할 경우에만 사격할 수 있을 뿐, 먼저 총부터 쏘고 들이닥친다면 그건 범죄자나 마찬가지 이죠. 탐정은 경찰과는 달리 체포권이 없기 때문에 말로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약간의 완력을 쓰고, 총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쓰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해미트의 <붉은 수확>에 등장하는 컨티넨틀 오프는 포이즌빌의 악한들을 혼자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힘 대신 책략을 이용했습니다.
해미트의 '붉은 수확'
TV 시리즈 '마이크 해머'에서 주연을 맡았던 스테이시 키치. 원작과는 달리 매우 점잖았습니다.
앤드류 복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과 27범의 무허가 탐정 버크는 총 뿐만 아니라 격투기에도 능하며 다양한 무기들도 사용합니다. 경찰의 수사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며 필요하다면 범인을 죽이는 것도 불사하는 버크는 표창이나 손톱에 독을 바른 칼날을 붙여놓고 싸움에 임할 정도입니다.
로렌스 블록의 매트 스커더 시리즈에 등장하는 미키 발루는 평범하지만 살벌한 무기를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사립탐정인 스커더의 친구이며 도살장 주인인 미키의 무기는 다름 아닌 커다란 식칼로, 총알이 난무하는 뉴욕의 뒷골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치명적인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패트릭 켄지 & 안젤라 제나로’ 시리즈에서도 이에 뒤지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죠. 두 사람의 친구이자 “인간 흉기”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부바 로고프스키는 불법 무기상이라 총을 달라고 하면 미사일은 필요없냐고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또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거침없이 사용하지요. 절대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영화 'Gone, Baby Gone'에서 부바 역을 맡은 배우 Slaine.
시대가 변했고 작가들도 변했고 독자들도 변했어도, 추리력이건 총이건 주먹이건 어떤 수단으로든 범인을 잡아낸다는 추리소설의 스타일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난 이국의 작품을 읽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요란한 수단을 쓰지 않는 평범한 인물들이 기억에 남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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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에게 제일가는 무기는 역시 뇌라고 해야겠지만 각종 무기를 사용하여 악당들을 해치우는 탐정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은 장비를 이용하여 악당을 잡는 탐정은 배트맨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배트맨도 일종의 탐정이니까요.